이를 들은 박민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밥만 먹었다.박민정도 자기가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몰랐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도움과 호의를 받아들이는 걸 어려워했다. 신세 지는 게 두려운 것 같았다.그래서인지 정수미와 윤소현이 아이를 해친 걸 알면서도 조하랑과 유남준에게 말하지 않았다.유남준은 박민정이 밥을 먹는 소리를 듣고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냉대를 받는 기분이 정말 별로였다. 하여 유남준은 별로 먹지 않았다.식사가 끝나고 박민정이 유남준의 손을 잡았다.“이제 가요.”유남준이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박민정은 넋을 잃었다.“안 가요?”설마 애처럼 심술부리는 건 아니겠지?유남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민정을 꼭 끌어안았다. 너무 꽉 끌어안아서인지 박민정은 숨을 쉬기가 힘들어 유남준의 팔을 두드렸다.“이거 놔요. 시도 때도 없이 왜 안고 그래요?”두 사람이 나가려는데 다른 룸의 문이 열렸다. 이웃 룸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온 윤소현과 유남우가 이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유남우의 걸음이 멈칫했다. 윤소현은 혀를 끌끌 찼다.“여기서 아주버님과 형님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결혼한 지가 몇 년인데 아직도 이렇게 뜨겁대요.”유남우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유남준도 끝내는 박민정을 놓아주더니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러다 유남우와 윤소현을 마주치게 되었다.박민정은 순간 난감해졌다.윤소현은 유남준이 둘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할까 봐 먼저 입을 열었다.“아주버님, 형님, 밸런타인데이라고 나온 거예요?”유남준이 이를 듣더니 박민정이 선 쪽을 바라봤다. 박민정이 대답했다.“네.”윤소현은 박민정에게 과시라도 하듯 유남우의 팔을 꼭 끌어안았다.“저랑 남우 씨도 그래서 나왔는데. 어떻게 이런 우연이 다 있어요? 같은 레스토랑에서 만나고.”박민정은 차를 타고 조금만 더 나가도 이 두 사람을 마주칠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예의를 차리며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유남준을 데리고 나가려는
박민정이 의아한 눈빛으로 유남준을 바라보더니 그가 말을 이어가기를 기다렸다.“내가 눈이 안 보이잖아.”여기까지 걸어오는데도 사람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유남준은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박민정이 잠깐 침묵하더니 이렇게 답했다.“눈이 안 보이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정말 부끄러운 건 그런 사람을 비웃는 사람들이죠.”박민정의 말을 들은 유남준은 전에 박민정과 같이 나갈 때마다 번번이 박민정의 난청을 무시했던 게 떠올랐다.“민정아, 미안해.”박민정이 멈칫했다. 도대체 오늘 그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왜요?”“별거 아니야. 이제 가자.”“그래요.”박민정이 시동을 걸었다.돌아가는 길에 유남준이 그녀에게 물었다.“병보석 건은 어떻게 됐어?”“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뇌 전문가가 증거 찾는 걸 도와주셨어요. 아마 곧 다시 감옥에 돌려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박민정의 대답에 유남준이 살짝 놀랐다.김인우에게 이 일을 몰래 맡겨서 진행하고 있었는데 박민정이 정말 직접 해결한 것이었다.그 뇌 전문가라는 사람을 어떻게 섭외했는지 궁금했다.“그럼 유산 소송은?”“그 일은 아직 더 준비해야 해요. 그렇게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시간이 오래 지났고 바움 그룹도 망했으니 유산 소송을 하려면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유남준은 더는 묻지 않았다. 박민정에게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유남준은 다음 순서로 YN그룹의 해외 프로젝트를 뺏어올 생각이었다.YN그룹처럼 기반이 약하고 여자로 돈을 번 회사는 바움 그룹보다 더 상대하기 쉬웠다.유남준은 YN그룹을 인수하고 바움 그룹을 서프라이즈로 박민정에게 선물해 줄 생각이었다....두원 별장.박윤우는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면서 유남준을 혼내줄 생각이었다.“아,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도우미는 그가 왜 이렇게 다급해하는지 몰라 이렇게 말했다.“사모님은 약 한 시간 뒤에 오실 거야. 조급해하지 마.”“아저씨 기다리는 거
하지만 유남준이 이를 거절했다.“아니야. 이제 정말 배불러서 못 먹겠어.”이에 박윤우가 떼를 쓰기 시작했다.“안 돼요. 무조건 하나 더 먹어야 해요.”박민정은 그런 부자를 지켜보더니 안으로 들어갔다.“윤우야, 지금 이런 행동 매우 무례한 거 알지?”박윤우는 박민정이 이렇게 꾸짖자 유남준에게 더는 뭔가를 먹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유남준이 가고 내키지 않았던 박윤우가 주먹밥 하나를 들어 작게 베어 물었다가 매워 죽는 줄 알았다고 한다.“아, 매워. 너무 매운데?”박윤우가 테이블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테이블엔 박윤우가 미리 준비한 뜨거운 물이 놓여 있었다. 원래는 유남준을 위해 끓여둔 것이다. 하지만 그걸 대신 마신 박윤우는 혓바닥이 더 매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어떻게 이럴 수가...”박윤우는 자기가 유남준에게 속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남준의 연기도 만만치 않게 좋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베어 물었을 뿐인데도 이렇게 참기 힘든데 하나를 통째로 삼키고도 표정 관리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박윤우는 테이블에 놓인 다른 주먹밥을 쓰레기통에 버리려는데 주방으로 들어온 박민정이 그 주먹밥에서 살짝 삐져나온 겨자를 발견했다.“윤우야, 대답해. 이거 뭐야?”이에 박윤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엄마, 나는...”“안에 겨자를 넣었으면서 왜 아저씨한테 먹으라고 한 거야?”박윤우가 손톱을 잡아 뜯더니 이렇게 말했다.“엄마, 내가 잘못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안 이럴게요.”박민정은 딱히 그를 혼내지는 않았지만 자세를 낮추고 이렇게 물었다.“그냥 왜 아저씨를 괴롭히는지 궁금해서 물었을 뿐이야.”유남준은 그래도 박윤우의 친부였다. 언젠가 그들도 크면 분명 알게 될 것이다.박민정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싫어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유남준이 약속을 어기고 그를 회사에 데리고 가지 않아 그런 거라고 말할 엄두가 나지 않은 박윤우라 어쩔 수 없이 핑계를 지어낼 수밖에 없었다.“엄마, 아저씨가 생기니까 엄
몽유했다고?박윤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그럴 리가 없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자다가 돌아다닌 적은 없는데.”유남준은 대답 대신에 이렇게 말했다.“얼른 정리하고 회사 가야지.”“네.”회사로 간다는 말에 박윤우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박민정은 그가 유남준을 따라 회사로 간다는 말에 딱히 막지 않았다. 그저 안전에 조심하고 함부로 뛰어다니지 못 하게 잘 살펴보라고 했다.가는 길, 박윤우는 들뜬 마음으로 창밖을 스치는 풍경을 감상했다.한 시간 뒤, 차는 호화로운 빌딩 앞에 도착했다.IM 그룹을 보며 박윤우는 어딘지 모를 익숙함을 느꼈다. 이거 형 박예찬이 말한 그 회사 아닌가? 최근에 다른 사람의 프로젝트를 많이 가로채 돈을 많이 벌었다는 그 회사였다. 유씨 집안도 IM 그룹의 배후가 누군지 찾고 있었다.“아저씨, 이 회사가 아저씨 회사에요?”“응, 왜?”“완전 크네요.”박윤우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다른 사람은 모르는 비밀을 알아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빠 회사랑 비기면 어때?”유남준이 물었다. 이에 박윤우가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에이, 당연히 아빠 회사가 더 크죠. 아직 아빠랑 비기려면 멀었어요.”유남준은 이를 듣고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박윤우를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시간이 없어 여자 비서 한 명을 붙여줬다.여비서는 박윤우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물었다.“꼬마야. 안녕. 넌 이름이 뭐야?”여자의 몸에서 진한 향수 냄새가 풍겨왔다. 박윤우는 본능적으로 이 여자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저는 윤우라고 합니다.”박윤우가 무미건조하게 대답하더니 회사를 빙 둘러봤다. 회사 규모가 꽤 컸고 여러 업무를 포함하고 있었다. 앞으로 만약 엄마와 형, 그리고 자기를 먹여 살리기엔 충분한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회사에 예쁜 여비서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윤우야, 아줌마랑 근처 놀이공원 가서 놀래?”여비서가 박윤우와 친해지려고 힘썼다.아이라면 놀이공원을 싫어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박윤우가 이를 거절
박윤우의 눈은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여비서를 무시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새엄마가 되어주고 싶어 한다니 교훈을 줄 수밖에 없었다.여비서의 몸이 티 나게 굳어지더니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만 해도 괜찮던 아이가 왜 갑자기 표정이 삭 바뀐 거지?서다희는 그제야 여비서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여비서를 쏘아보더니 박윤우를 데리고 몸을 돌렸다.일단 대표이사 비서실의 풍기를 잘 다스려야겠다고 생각했다.퇴근 후 박윤우는 유남준과 함께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박윤우가 유남준을 떠보기 시작했다.“아저씨, 회사에 예쁜 이모들이 많던데. 왜 우리 엄마를 좋아하게 된 거예요?”이를 들은 유남준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몰라.”유남준도 왜 박민정을 좋아하게 됐는지 알았다면 지금처럼 답답하게 속수무책은 아닐 것이다.박윤우가 말문이 막혔다. 뭔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앞에 앉은 기사가 이렇게 말했다.“대표님, 누군가 우리를 미행하고 있습니다.”IM이 두각을 드러내면서부터 많은 회사가 그 배후가 누군지 조사하고 있었기에 유남준은 이미 이런 상황에 적응했다.“피해서 다른 길로 바꿔.”“네.”기사가 바로 다른 길로 바꿨다. 하지만 오늘 그들에게 붙은 차는 조사만을 위해서 따라붙은 건 아닌 것 같았다. 뒤에서 따라오던 차가 갑자기 속도를 내더니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창이 깨지고 말았다.유남준은 본능적으로 박윤우를 품에 꼭 감싸더니 갑자기 날아온 비수를 막아냈다.귓가에 불어치는 차가운 바람에 박윤우는 넋을 잃은 채 유남준의 품에서 꼼짝달싹하지 않았다.기사는 이런 장면이 익숙한지 별로 놀라지 않은 듯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뒤따라오던 차가 몰래 유남준의 차량을 보호하던 차들로 둘러싸였다.사태가 진정되긴 했지만 유남준은 아까 날아든 비수에 의해 얼굴이 살짝 찢어졌다.“대표님, 괜찮으세요?”“난 괜찮아.”유남준이 이렇게 말하더니 품에 안은 아기를 다독였다.“나랑 회사로 나와보니 어때?”박윤우는 너무 놀란
박윤우는 한번 고집을 피우면 끝이 없었다. 문제는 지금 정말 아파서 몸이 불편했다.박민정은 꾹 참고 아이를 달래주었다.그러나 박윤우는 포기하지 않았다.“엄마, 아저씨가 와서 우리랑 같이 있어 줬으면 좋겠어.”“알았어. 그럼 아저씨 보고 오라고 할게. 그러니까 그만해.”박민정은 어쩔 수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유남준은 아직 잠들지 않았고 서재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박민정은 살짝 미안한 듯 문을 두드렸다.유남준은 보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문 쪽을 쳐다봤다.“아직 안 끝났어요?”“거의 다 됐어. 왜?”유남준이 묻자 박민정은 용기를 내서 말했다.“이따가 일 다 끝나면 우리랑 같이 자요.”유남준은 그 말을 듣고는 당장이라도 하던 일을 멈추고 뛰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애써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그래.”그제야 박민정은 방으로 돌아가서 박윤우에게 유남준이 이따가 곧 올 거라고 했다.원래는 적어도 30분 정도 걸릴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하고 몇 분 만에 유남준이 잠옷으로 갈아입고 온 것이다.박윤우는 유남준을 보자마자 소리쳤다.“아저씨, 제가 자면서도 막 걸어 다닌다면서요? 오늘 밤에 제가 돌아다니지 못하게 안아줘요.”유남준은 긴 다리를 앞으로 내디디면서 침대로 가 누웠다.박윤우는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치면서 박민정에게 말했다.“엄마, 엄마도 나 안고 자. 되지?”“그래.”박민정은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그렇게 박윤우는 두 사람 사이에서 잤고 박민정과 유남준은 박윤우를 안아주다가 손이 닿았다.박윤우는 지금처럼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다.엄마와 아빠가 양쪽에서 자신을 안아주자 박윤우는 곧 잠들었다.박민정은 아직 자지 않았고 어두운 불빛을 통해 유남준의 상처 있는 얼굴을 보고는 만지려고 손을 막 들었다.그런데 유남준은 어떻게 알았는지 먼저 박민정의 손을 잡으면서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아직 안 잤어?”박민정은 흠칫했지만 손을 빼지 않고 말했다.“네.”유남준은 박민정의 손을 놓고 박윤우를 안아서 자신의 옆으
박예찬은 박윤우더러 일의 경과를 말해 보라고 했다.몇 분 후 자초지종을 다 들은 박예찬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가끔 보면 나쁜 것 같지는 않아.”“그렇지? 형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박윤우의 큰 눈동자에 기대가 가득했다.박예찬은 동의했다.“그래. 그런데 그게 뭘 의미하는데? 아저씨는 사람을 보내서 나를 구한 적도 있어.”그러자 박윤우는 살짝 실망했다.“그러니까 형은 아직 아빠를 받아주기 싫어?”박예찬은 또 한 번 침묵하다가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엄마가 용서하면 나도 용서할 거야.”엄마가 고생하면서 그들을 키웠는데 유남준이 조금 좋은 모습을 보였다고 엄마가 외국에서 혼자 겪었던 고생을 잊으면 안 된다.“그럼 그렇게 약속한 거다?”박윤우는 엄마가 다시 아빠를 사랑할 수 있도록 아빠를 천천히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박예찬은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고는 눈을 감고 좀 더 잤다. 그런데 김인우가 문을 열고 들어와 큰 책가방 하나를 던졌다.“이제 그만 자고 일어나. 어린이집 가야지.”또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니...박예찬은 하마터면 자신이 유치원생이라는 사실을 잊을 뻔했다. 비몽사몽 일어나 옷을 입었다.김인우는 그런 박예찬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지금까지 어른들이 말을 안 해도 혼자서 잘 일어나서 어린이집 갈 준비를 했던 박예찬이 이런 모습도 있다니.“어제 뭐 하러 갔길래 아직도 잠이 안 깬 거야?”박예찬은 당연히 그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별거 안 했어요.”박예찬이 그렇게 말할수록 김인우는 더 궁금했다.김인우는 직접 박예찬을 어린이집까지 데려다주고 전과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 근처에 많은 경호원까지 배치해 두었다.드디어 어린이집 문 앞에 도착했고 박예찬은 차에서 내리기 전에 멀리서 유지훈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봤다.박예찬이 차에서 내리자 유지훈이 즉시 뛰어와 훑어보더니 의심하면서 물었다.“네가 박예찬이야?”“내가 아니면 누군데?”박예찬은 어이가 없었다.이때 조동민도 다가와 말했다.“
집에 혼자 있던 박윤우는 심심해서 나갔다가 집 앞에서 유지훈과 다른 두 아이와 마주쳤다.유지훈은 유남준의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서 박윤우를 보자마자 다급히 말했다.“박윤우, 너 할 수 있으면 나와 봐.”박윤우는 유지훈의 뒤에 있는 다른 두 아이를 보고 그들이 절대 자신과 얘기를 나누려고 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박윤우는 멍청하지 않았다. 몸이 좋지 않은 박윤우는 세 명은 말할 것도 없고 유지훈과 단둘이 붙어도 이기지 못할 것이다.“지금 나한테 말하는 거야?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해?”박윤우는 유지훈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그러자 유지훈은 더욱 화가 났다.“너 이 새X, 감히 그런 눈으로 나를 봐?”그 말을 듣자 박윤우의 눈빛이 싸늘해졌다.오늘 반드시 이 아이들을 혼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유지훈, 너 혼자 들어올 용기는 있어?”유지훈은 그 말을 듣고 눈앞에 있는 박윤우는 박예찬과 외모가 닮기만 했지 전혀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이 무조건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없을 리가 있나?”유지훈은 뒤에 있는 두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하고는 돌아서서 유남준의 집으로 들어갔다.경비원은 유지훈이 박윤우와 아는 사이인 것 같아 들여보내 주었다.들어가자마자 유지훈은 주먹을 꽉 쥐고 박윤우를 향해 휘둘렀다.그러나 박윤우가 피하며 말했다.“여기는 보는 사람이 있으니까 싸우기 불편해. 우리 사람 없는 곳으로 가자.”유지훈은 그 말에 동의했다. 만약 경비원이 자신이 박윤우를 때리는 것을 보면 무조건 박윤우를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다.유지훈은 박윤우를 따라 정원에 있는 조산으로 걸어갔다.조산은 크기가 커서 네다섯 살짜리 아이 두 명이 그쪽으로 걸어가자 곧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박윤우는 유지훈이 이렇게 속이기 쉬운 줄 몰랐다. 그는 속도를 높여 계속 주위를 돌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유지훈은 머리가 어지러웠고 어느새 앞에 있던 박윤우가 보이지 않았다.“어디 갔어? 박윤우?”유지훈이 소리쳐 물었지만 조산 안의 소리만 들려왔다.유지훈은 여기저기
“엄마, 아빠랑 이혼 잘하셨어요.”유남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유남준 앞을 지나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번에도 졌네.”유남준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유남우는 사실 그가 어떻게 반격할지 걱정되기보다 이번에도 졌다는 게 더 분통했다.밖으로 나온 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연락처를 훑어보다가 홍주영에서 멈칫하더니 결국에는 통화버튼을 누르지도 못한 채 핸드폰을 다시 꺼야 했다.실내 안.거실은 유난히 조용했고 유지욱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남우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였는데.”고영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말하는 ‘예전’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고영란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에 유지욱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아니에요.”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 달은 될수록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그리고 이혼 숙려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가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고영란은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혼하고 싶은데 지금 이혼하려면 한 달씩이나 기다려야 했다.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한 달 동안에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좀 생각해 보고요.”말을 마친 뒤 유지욱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한편.박씨 가문의 옛 저택.박민정은 유남준이 너무 걱정되어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비록 서다희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이때,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에 박민정이 다급히 차창 밖을 내다보니 유남준의 차도 마침 도착해 있었다.박민정은 빠르게 차에서 내린 뒤 유남준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괜찮아요?”그러자 유남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당연하지, 다희가 나 괜찮을 거라고 알려줬잖아.”박민정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
유석진의 입에서 갑자기 자기 둘째 아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고영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또한 왜 두 아들 사이에 지금 저런 모순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유남준도 괜히 고영란이 중간에서 난처하게 된 것 같아 일부러 유남우를 빤히 바라보며 유석진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사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큰아빠가 아무리 남우랑 같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별로 무겁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위협감이 느껴졌다.순간 유석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때, 그의 며느리인 최현아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끼어들었다.“남준 씨, 그래도 한 가족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그러자 유성혁도 한마디 거들었다.“남준아, 우리도 잘못했단 걸 알고 있어. 아버지가 이제 연세도 많아서 상황판단이 안 될 때가 많아.”유석진도 사실 지금 자존심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말해주면 내가 다 들어줄게.”사실 유남준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금방 인수한 시내 중심에 있는 그 건물을 저한테 넘겨주세요.”그 땅은 유명훈의 땅이고 죽기 전 유석진에게 물려준 유산인데 지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올랐다.유석진이 이 땅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곳의 상권을 손에 쥔 거나 다름없었는데 나중에 아무 건축물을 세워 올려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안되지!”역시나 유석진이 단번에 거절했다.그가 오랫동안 눈독 들였던 땅이었는데 유명훈이 죽어도 물려주지 않으려 해서 여태껏 애를 먹고 있었다가 이제 겨우 손에 들어온 땅이고 또 자기만의 계획이 따로 있었다.“그러면 조만간 IM 그룹의 변호사를 만나셔야겠네요.”유남준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유석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안 도우미에게 외쳤다.“모셔다드려!”그렇게 도우미들은 그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고 거실에는 유남준 가족들만이 남게 되었다.유지욱과 고영란은 눈앞의 두 아들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유남준이 잡혀갔다는 소식에 유석진 가족들은 조용히 자축하고 있었다.최현아도 너무 기뻐했지만 유독 유성혁만 우울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아빠, 그래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꼭 이래야 할까요? 남준이가 잡혀가도 우리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 다시 풀려나서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그러자 유석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왜 쓸데없는 일을 벌써 걱정하고 그래? 간이 그리도 콩알만 해서 큰일 하겠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유성혁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다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유지훈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저는 할아버지가 한 행동이 맞다고 봐요.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유석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하하, 역시 우리 손자가 똑똑하다니까. 네 말이 맞아. 사람은 무조건 자기가 일 순위여야 해. 절대 네 바보 같은 아빠를 닮아서는 안 된다.”그러자 유지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저도 알고 있어요.”그리고 유석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들은 너무 일찍 기뻐했던 게 오후가 되자마자 유남준은 바로 풀려났다.그길로 옛 저택으로 오게 되었고 동시에 유석진네 식구들과 유남우를 전부 집으로 불러 모았다.이 시각, 유지욱도 마침 그곳에 있다가 눈앞의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남준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아빠, 제가 지금부터 저 사람들의 실체에 대해 다 밝히려고요.”그리고 서다희가 한 무더기의 자료와 증명서를 건네주자마자 그는 유석진네 식구들에게 뿌려줬다.종이들이 공중에서 흩날리다가 전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유석진은 그중 한 장을 주워 읽어보고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했다.“남준아, 다 오해야.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하겠니?”그러자 유남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에게 되물었다.“우리 회사에 심어둔 사람들을 제가 다 데려올까
유남준은 사실 진작에 유남우와 유석진 쪽에 사람들을 붙여서 그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서 일단 내버려두고 있었다.이튿날, IM 그룹으로 세무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러자 서다희가 눈살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대표님을 감옥에 보내려고 아주 별짓을 다 하네요. 이런다고 그 사람들한테 득이 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특히 유남우는 왜 자기 친형을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조사해 보니 역시나 회사 장부에 문제가 있었고 회사 자금을 불법으로 돌렸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다 그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가짜 장부들이었다.그렇다고 해도 유남준은 회사 법인으로서 조사를 받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연행되었다.가면서도 서다희에게 당부했다.“민정이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서다희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뉴스에서 하루 종일 보도될 예정이라 아마 얼마 안 돼서 알게 될 것이다.역시나 박민정은 출근길에 그에 관한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다.“어떻게 이럴 수가?”이때, 고영란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민정아, 남준이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그러나 박민정도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저도 방금 기사를 봐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당장 다희 씨한테 전화해 볼 테니까 어머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래.”고영란은 착잡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유지욱과 이혼하겠다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서다희는 빠르게 박민정에게 전화해서 유남준이 시킨 대로 알려줬고 모든 일은 다 대비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때 서다희가 한마디 더 했다.“그런데 이 일은 절대 고영란 사모님한테 말하지 말아 주세요.”“알겠어요.”어쩌면 유남우 귀에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
고영란도 유석진의 고함에 깜짝 놀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여태껏 모든 집안일을 아내한테 떠넘긴 채, 홀로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유지욱이 원망스럽기만 했다.한 사람에 대한 단념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실망감이 천천히 쌓이면서 식어가는 것이다.보아하니 오늘 저녁에도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유지욱이 도착해보니 유씨 가문의 모든 친척이 다 모여있었다.그리고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은 고영란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왜 진작에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그의 물음에 고영란은 실망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제가 말해주지 않았다고요? 한 달 전에 전 분명히 아버님 건강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 와서 회사 일 좀 도와드리라고 귀띔해 줬어요.”“난 네가 우리 아버지 재산 때문에 나더러 오라는 줄 알았지.”유지욱의 말에 고영란은 큰 충격을 받고 잠깐 멍해졌다가 다시 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유지욱 씨, 정말 어이없네요. 맞아요, 제가 빨리 돌아오라고 했던 원인이 아버님의 재산이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지욱 씨한테도 나눠줬으면 했어요. 그런데 그 재산이 전부 아주버님한테 넘어갔네요?” 그러나 유지욱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이었다.“그깟 돈 몇 푼 가지고 왜 그래? 우리가 모두 한 식구인데 주면 줬지.”유지욱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님들을 맞이하러 떠났다.그리고 유석진과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고영란은 제대로 마음이 상했다.박민정도 손자며느리로서 유남준과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다가 우연히 시부모님이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사실 유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시아버지인 유지욱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유지욱은 젊었을 때부터 고집불통에 집안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저 매일 여행이나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여 유지욱과 고영란은 1년 중에도 만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살짝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남준 씨, 가서 어머님 좀 위로해 주세요.”여자
유남준의 아버지, 유지욱은 계속 외국에서 살다보니 이 자리에 없었다.그러자 고영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지욱 씨는 지금 당장 오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방금 비행기 탔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릴 거예요.”그러자 유석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그러면 지욱이가 도착하고 나서 다시 말할 테니까 외부인은 참견하지 말아요.”순간 고영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줬는데도 제가 아직 외부인인가요? 저는 오늘 아버님께서는 왜 그리도 자식들을 편애하시지 꼭 물어봐야겠어요!”“제 아들들이 능력이 뛰어나면 이런 불공평한 대우도 다 받아들여야 하나요?”여태껏 유명훈은 많은 주식을 갖고 있었다.비록 유남준이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유명훈의 지분이 그대로 유석진네로 넘어가게 되면 유남준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더구나 유남우도 그의 재산이 필요한데 말이다!게다가 유명훈은 오랜 세월 동안 주식 말고도 분명 많은 재산을 모았을 텐데 그 돈마저 전부 저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고영란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유석진은 유명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여태껏 지욱이를 잘 붙잡아 두지 못한 제수 씨를 탓해야죠! 지욱이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어요!” 고영란이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유남준이 그녀를 말렸다.“엄마, 그만해요.”여태껏 유명훈이 유석진네만 편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그이기에 지금 아무리 그와 말싸움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유남우도 불쾌했지만 애써 덤덤한 척 그녀에게 말했다.“엄마, 형 말이 맞아요. 할아버지께서 결정하신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싸울 필요 없어요.”이 시각, 침대에 누워있던 유명훈은 호흡이 점점 더 가빠져 헐떡거리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눈앞에서 자식들이 자기 재산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지욱이...”그는 힘겹게 유지욱을 불렀다.유지욱은 평소에도 그의 말을
최현아는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지만 박민정은 그저 냉담한 얼굴로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러자 그녀는 뻘쭘해진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일은 무슨, 윤소현이 드디어 판결받았다고 해서 축하해주려고 왔지.”박민정은 분명 다른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최현아와 그의 시아버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왠지 그럴수록 더 수상했다.“감사합니다.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일 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마자 박민정이 뒤돌아서니 역시나 최현아가 빠르게 그녀의 팔을 부여잡았다.“민정아,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박민정은 이제 와서 한 식구라는 그녀의 말이 그저 가소로웠다.“도대체 할 말이 뭔가요?”그리고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최근에 할아버지 건강이 점점 악화하면서 동서랑 남준 씨가 그립기도 하고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도 보고 싶은가 봐. 혹시 오늘 밤 할아버지 뵈러 같이 가지 않을래?”최현아는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사실 박민정도 할아버지의 건강이 여태껏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늘 두 사람을 부른 이유도 아마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네, 알겠어요.” 최현아는 그제야 박민정의 팔을 놓아줬지만 그녀가 떠나가자마자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그리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껏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재수 없는 것, 운발로 지금 자리에 올라앉은 주제에.” 차에는 낯선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박민정한테 화낼 필요 없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의 주식이랑 모든 돈을 너한테 넘길 수 있도록 잘 구슬리는 거야.”그러자 최현아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나도 알아, 저번에 이미 할아버지랑 말해봤다니까? 유남준 씨랑 민정이는 괜히 고고한 척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상황이라 우리 쪽에 전부 몰리게 되어있긴 한데, 난 지금 성혁 씨 얼굴만 봐도 짜
조하랑은 그제야 화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그러면 왜 저 여자한테 찾아갔어요?”“당연히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러 갔죠. 그리고 이지원에 대해 정신감정도 의뢰했거든요. 만약 진짜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게 다 쇼하는 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요.”김인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다가 조하랑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에 제가 지원이한테 어떻게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하랑 씨도 잘 알잖아요. 만약 저를 구해줬던 사람이 형수님이었단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절대 그 애를 도와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지금은 그저 마땅히 받아야 할 벌만 받았으면 좋겠고요.”조하랑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제가 오해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저는 인우 씨가 또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여자한테 찝쩍거린다고만 생각했어요.”그녀의 말에 김인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되물었다.“하랑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순간 조하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누, 누가 질투한다는 거예요? 그저 저를 배신한 인우 씨한테 화나고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나한테 실망했을 뿐이라고요!”“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의사도 임산부가 흥분하면 아이한테 안 좋다고 말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는 다정하게 조하랑을 품에 안았는데 순간 그녀는 얼굴이 더욱 빨개진 채 온몸이 굳어버렸다.당연히 김인우도 눈치채고는 빠르게 물었다.“왜요, 부끄러워요?”“그, 그럴 리가요...”조하랑은 말까지 더듬으며 애써 덤덤한 척했다.“저도 안을 줄 알거든요?”그리고 똑같이 김인우를 꼭 안아줬는데 이번에는 김인우가 속으로 움찔했다.추운 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아 줬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멈춰졌다 가곤 했다.조하랑도 어느새 그걸 느꼈는지 재빨리 김인우를 밀쳐냈다.“됐어요. 이제 병실로 돌아가 봐야 하니까 인우 씨도 그만 돌아가요.”“저랑 같이 안 가고요?”김인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