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이는 울고불고 난리 치며 엄마에게 유치원으로 다시 보내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박예찬과 함께 유치원을 다니고 싶다고 하면서 말이다.지원 엄마는 박민정과 도한 엄마가 모두 앞에 있는 것을 보고서 더 이상 그 어떠한 체면도 차리지 않은 채 몸을 쪼그리고 앉아 지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이윽고 덩달아 울먹이며 말했다.“엄마가 분명히 말했었지! 너 퇴학당한 거야. 앞으로 유치원에 갈 수 없어.”“계속 이렇게 말 안 들으면 엄마 너 때릴 거야.”미치고 날뛰는 자기 엄마의 모습을 보고서 지원은 놀라움에 울음을 터뜨렸다.옆에서 보고 있던 박민정과 도한 엄마는 같은 엄마로서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하지만 지원이가 퇴학당한 이유가 모두 지원 엄마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박민정에게 아부를 떨다가 최현아에게 꼬리를 흔들다 보니 양쪽에 모두 외면을 당하게 된 것이다.지원이가 울고불고 난리를 치자 지원 엄마는 아이를 때리려고 했다.이에 지원이는 전보다 더욱 세게 울기 시작했다.“울지 말라고! 왜 울고 난리야!”하지만 이 모든 게 보여주기식으로 느껴졌다.박민정과 도한 엄마는 더 이상 그 ‘쇼’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 없었다.도한 엄마가 먼저 나서서 말렸다.“지원 엄마, 아이가 철이 없어서 그러는 거예요. 그만 화 좀 풀어요.”자기에게 이목이 쏠리자, 지원 엄마는 마침내 ‘다음 씬’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우리 지원이 유치원에서 엄청 착했는데 퇴학하고 난 뒤로 예찬이를 입에 달고 있었지 뭐예요. 보고 싶다면서 하루가 멀다고 울먹이며 애간장을 태워서 제가 아주 피 말라죽을 것 같아요.”지원이는 울면서 말했다.“예찬 오빠가 좋단 말이에요.”지원 엄마는 연기일지 모르겠지만 지원이는 진심이었다.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박민정은 그제야 소리를 냈다.“지원이는 왜 갑자기 퇴학당한 거죠?”지원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운을 떼기 시작했다.“최현아 씨 눈엣가시가 돼서 그래요. 최현아 씨 말 한마디에 바로 퇴학당하게 된 거예요.”최현아는 자기
도한 엄마와 함께 돌아가는 길에 도한 엄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예찬 엄마, 조금 전에 엄청 잘하셨어요. 그렇게 앞뒤가 다른 사람은 동정할 가치조차 없거든요.”“단물만 쏙 빼 먹고 바로 버리는 사람을 친구로 둘 필요도 없고요.”박민정이 덧붙였다.도한 엄마는 그 말에 무척이나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집으로 돌아온 박민정은 씻고 나서 쉬려고 했다.침대에 눕자마자 지원 엄마로부터 메시지가 보내왔다.[예찬 엄마, 저한테 원생 엄마들에 관한 스캔들이 엄청 많아요. 그중에 최현아 씨 스캔들도 포함되어 있는데.]박민정은 순간 구미가 당겼지만, 믿어지지 않았다.[그런 게 있었다면 바로 최현아 씨한테 말하지 그랬어요? 그럼, 지원 엄마한테 어찌할 수도 없었을 거잖아요. 아니에요?]얼마 지나지 않자 지원 엄마의 답장이 도착했다.[우리 심씨 가문과 유씨 가문은 서로 적으로 상대하고 있는데, 만약 최현아 씨가 제 손에 약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저를 죽이려고 들 거예요.][그럼, 제 편을 들겠다는 거죠? 그렇다면 어느 정도 성의를 보여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박민정은 지원 엄마를 바로 믿기로 하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지원 엄마는 최현아에 관한 스캔들을 보내왔다.이를 열어본 박민정은 저절로 동공이 움츠러들고 말았다.[정말이에요?][그럼요. 최현아 씨 집으로 우연히 갔을 때 제가 몰래 본 거예요.]지원 엄마는 재벌 집 사모님들과 모임을 가질 때 손에 쥐고 있는 권력도 예쁜 외모도 없어 늘 공기 취급을 당하는 편이었다.바로 그러한 이유로 몰래 많은 비밀을 염탐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박민정은 마침내 지원 엄마는 아주 큰 쓸모가 있는 사람임을 확신하게 되었다.지원 엄마가 지난번에 준 학부모회 구성원이 적힌 자료에서 많은 재벌가 사모님을 발견하게 되었었다.만약 그 사모님들에 관한 비밀을 알게 된다면 아마 앞으로 바움 그룹을 다시 설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박민정은 지원 엄마에게 답장을 보냈는데, 흥분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박민정은 살짝 멋쩍어했다.“예찬이랑 윤우 아빠야.”그 소리에 에리는 더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하지만 더는 말하지도 묻지도 않고 밀크티를 손에 쥐고 하염없이 마셨다.남자 연예인으로 몸매 유지를 해야 하나 박민정이 건네준 밀크티였기에 주저 없이 마셨다.두 사람은 간단하게 밥을 먹고 나서 바로 녹음실로 향했다.박민정은 프로다운 모습으로 에리 신곡 녹음을 지도해 주었다.일에 몰두하다 보니 시간은 유난히 빨리 지나갔다.모든 걸 마치고 나오자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파파라치에게 찍혀 에리에게 폐를 주고 싶지 않아 박민정은 운전기사에게 마중을 오라고 했다.에리는 그녀가 떠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았다.매니저가 오고 나서 그에게 물었다.“오늘 녹음 엄청 잘했더라?”에리는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그럼, 민정이가 옆에서 도와줬잖아.”매니저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아쉬울 따름이야. 듣는 쪽이 아니라 부른 쪽이라면 너보다 훨씬 유명해졌을 건데 말이야.”에리는 웃으며 말했다.“만약 가수로 데뷔한다면 나, 민정이 일호 팬으로 영원히 남을 거야.”“하도 겸손해서 말이지. 지금 잘나가고 있는 곡들도 모두 민정이가 만든 건데.”에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음 곡에 조금만 더 힘을 실으면 안 돼? 한 곡 더 터지면 그때 박민정 씨에 관해 언급해도 되는 거잖아.”매니저의 제안에 에리는 고개를 저었다.“지금껏 나랑 다니면서 민정이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몰라? 겸손하고 조용하게 사는 게 민정이잖아.”“하긴.”매니저는 그렇게 뛰어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 왜 배후에만 머물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박민정은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 박윤우부터 챙기고 바로 박예찬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애어른인 박예찬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 시름이 놓이는 편이다.이번에 해외에서도 선생님이 해내지 못한 것도 기특하게 해냈으니 말이다.하지만 박민정에게 있어서 박에찬은 어린아이일 뿐이다.“엄마, 나 잘 지내고 있어. 모레면 귀국할 건데 엄
“아빠, 저 지금 몰래 전화하고 있는 거예요. 비밀로 해주셔야 해요.”박윤우는 말을 하고서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이고 수화기 너머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지 유심했다.다행히 다른 여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유남준은 박민정이 뒤에서 시켜서 전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실망했다.예전과 같았다면 박민정은 겨우 3일 정도 버티고 바로 전화를 걸어왔었다.하지만 지금은 3일이 코 앞임에도 불과하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무슨 일이야?”박윤우에게 말하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부하에게 묻고 있는 것처럼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보고 싶어서 전화한 거예요. 내일 아빠 만나러 가면 안 돼요?”박윤우는 직접 쓰레기 아빠가 있는 곳으로 확인하러 가고 싶었다.어떠한 여우가 틈을 공략하고 들어왔을 수도 있다면서.“안 돼.”유남준은 더없이 차갑게 거절해 버렸다.순간 박윤우는 말 문이 막혔지만 바로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아빠, 예쁜 윤우 이젠...”하지만 애교를 채 부리기도 전에 전화가 끊겨 버렸다.박윤우는 어안이 벙벙해졌고 유남준의 무정함에 한 방 맞은 것만 같았다.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유남준에게 비밀이 있다는 의심이 커졌다.오지 말라고 하는 걸 봐서는 더더욱.박윤우는 내일 금요일에 홀로 유남준을 찾아가 보겠다고 다짐했다.유남준의 거처를 모르고 있으나 전화로 서다희에게 물을 수 있다.이튿날 아침, 박윤우는 화장실을 본다는 명의로 서다희에게 몰래 전화하여 유남준의 거처를 알아냈다.서다희는 겉으로 보기에 세상 딱딱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어린아이에게 그 어떠한 항마력도 없는 사람이다.특히 박윤우의 애교를 마주하게 되면 사르르 녹아버리고 만다.서다희는 바로 유남준의 현재 거처를 술술 알려주었다.박민정은 박윤우의 계획을 모르고 있었고 오늘 두 시간 늦게 하교한다는 소식만 듣게 되었다.“알았어. 그럼, 정민 아저씨보고 좀 늦게 데리러 가라고 할게.”“좋아.”박윤우는 고개를 끄덕였다.두 시간이면 유남
박윤우는 그 소리에 따라 고개를 돌렸는데, 낯설지만 청순하기 그지없는 얼굴이 보였다.여자는 츄레이닝복에 포니테일을 하고서 부드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혹시나 하는 마음에 박윤우는 다시 고개를 돌려 번지수를 확인했는데, 틀림없었다.‘뭐지? 쓰레기 아빠 찾아온 여우인가?’“아줌마, 혹시 여기 집주인이세요?”박윤우는 떠보면서 물었다.추경은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여긴 우리 사촌 오빠 집이야. 오빠 찾으러 온 거야.”말을 마치고 추경은은 박윤우를 자세히 훑어보았다.“너 설마 우리 남준 오빠 아들 아니지?”먼 친척임을 확인하고 박윤우는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딩동댕이에요.”“와, 이렇게 다 만나는구나. 난 또 잘못 찾아온 줄 알았잖아. 난 추경은이라고 하고 앞으로 경은 이모라고 부르면 돼.”추경은?왠지 모르게 익숙한 이름이었다.박윤우는 추경은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를 맡고서 약간 어지러웠다.“경은 이모, 저 좀 내려주세요.”하지만 추경은은 내려놓으려고 하지 않았다.“이모 좀만 더 안고 있자.”추경은이 그러면 그럴수록 박윤우는 혐오감이 들어 발버둥을 치기까지 했다.하는 수 없이 추경은은 그를 내려놓아 주고서 벨을 눌렀다.“누구시죠?”“남준 오빠, 나 경은이야. 오빠 보려고 온 거야.”추경은은 유남준이 혹시나 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봐 한마디 덧붙였다.“여기 윤우도 있어.”박윤우는 마냥 의아하기만 했다.“경은 이모, 제 이름은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너랑 네 형에 대해서 할아버지께서 가족 단톡방에 이미 올리셨어. 지난 명절 때도 찾아갔었고. 그대 너랑 네 형 모두 본 적 있어.”박윤우는 그제야 익숙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하지만 박예찬처럼 뛰어난 기억력이 없어 단번에 알아볼 수 없었다.두 사람은 입구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이때 경비원이 다가와 말했다.“죄송합니다만 대표님께서 두 분 모두 뵙고 싶지 않다고 전해달라고 하십니다.”추경은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갖은 곡절을 겪
추경은은 순간 난처하기 그지없었다.유남준이 자기를 잊고 있으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난처함도 잠시 추경은은 설명하기 시작했다.“남준 오빠, 나 추경은이야. 어릴 적부터 함께 놀면서 우리 엄청 친하게 지냈었잖아. 오빠 결혼하던 그해에 만나기도 했었는데.”한편에 서 있던 박윤우는 추경은의 대답에 계속 미심쩍은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추경은이 누군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 괴로웠다.‘형 있었더라면 좋았을걸.’그러더니 갑자기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조급한 모습을 드러냈다.“아빠, 저 쉬 마려워요.”박윤우가 화장실에 가려고 하자, 유남준은 눈살을 찌푸렸다.“혼자서 가.”“네.”“박윤우는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화장실에 도착한 그는 물을 최대한으로 가장 크게 틀고 박예찬에게 전화를 걸었다.시차로 박예찬이 있는 쪽은 새벽이다.한참 잘 자고 있었는데 동생 박윤우의 전화에 바로 깨어난 것이다.“박윤우! 여기 지금 몇 시인지 알아?”박예찬은 뭐나 다 좋지만 자고 있을 때 건드리면 성질이 좀 사나워진다.“형, 일단 진정하고 추경은이 누군지 알려줘.”직감이 말해주고 있는데, 추경은은 좋은 캐릭터가 아닌 것 같았다.박예찬은 바로 침착하고 기억을 더듬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걸 기억해 냈다.“우리 아빠 할아버지께서 전에 후씨 가문의 한 어르신을 구해주셨는데, 추경은은 바로 그 어르신의 손녀야. 두 어르신은 그 일을 계기로 서로 형제 사이를 맺게 된 것이고. 증조 할아버지께서 젊으셨을 때 두 가문의 관계는 엄청 좋았는데, 지금으로서는 양 가문의 차이가 너무 커서 그리 자주 연락하고 계시지 않아. 유씨 가문은 점점 더 강대해지고 있으나 추씨 가문은 점점 바닥을 치고 있으니 말이야.”박예찬은 자기가 유남준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유씨 가문에 대해 샅샅이 알아보았다.박예찬의 말을 듣고서 박윤우는 작은 손을 불끈 쥐었다.“그럼, 사촌 동생도 아니었네. 어쩐지 이상하다고 했어.”“사촌 동생 이라니? 우리 아빠랑 그 어떠한 혈연관계
박윤우는 바로 머릿속으로 재산 쟁탈 전쟁을 벌이는 막장 드라마를 상상해 냈다.정신을 차리고 나서 박윤우는 바로 추경은 앞으로 달려갔다.“경은 이모, 얼른 일어나세요. 우리 아빠 돈 엄청 많아요. 소는 얼마든지 살 수 있어요.”그 말에 추경은은 안색이 굳어지고 말았다.“윤우, 이모가 소처럼 일할 수 있다고 하긴 했지만, 말 그대로 들으면 안 돼.”박윤우는 알 듯 모를 듯했다.“그럼, 무슨 뜻인데요?”말문이 턱 막힌 추경은은 순간 어떻게 박윤우에게 설명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이곳에 남고 싶은 마음은 굴뚝과 같으나 유남준이 거절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추경은은 바로 박윤우를 붙잡았다.이곳에 남을 수 있는 가장 관건이 되는 인물이 박윤우라고 느끼면서.“그냥 예를 든 것뿐이야. 윤우야, 넌 이모가 이곳에 남았으면 좋겠어? 이모 매일 다양하게 맛있는 것도 만들어줄 수 있고 우리 윤우 학교까지 바래다 주고 주말에는 같이 게임도 할 수 있는데.”유남준 앞에서 그의 아들을 유인하는 건 아마 추경은만이 할 수 있는 짓일 것이다.추씨 가문 어르신의 체면을 감안하여 유남준은 바로 화를 내지 않았다.“그럼, 이모 저 엉덩이도 닦아줄 수 있어요?”박윤우가 대뜸 물었다.순간 추경은은 안색이 확 달라지고 말았다.‘엉덩이를 내가 왜?’지금 비굴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도 추경은은 추씨 가문의 천금이다.“당연하지.”하지만 입으로는 생각과 반대되는 말을 했다.“그럼, 지금 닦아주세요. 제가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잊어먹고 그냥 나왔거든요.”말을 마치고 박윤우는 바로 몸을 돌려 엉덩이를 추경은에게 보였다.“이모, 손으로 닦으셔야 해요. 티슈로는 안 되거든요. 엄마가 티슈로 닦으면 저의 여린 피부에 상처가 생긴다고 했었어요.”그 말에 추경은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손으로 닦아? 누가 그래?’놀라기는 했지만 이대로 지고 싶지 않았다.“윤우야, 엉덩이도 제대로 안 닦고 바로 나온 거야?”“가자, 일단 화장실로 가. 이모가 새 옷이랑
화장실 안에는 더러운 것들이 여기저기에 묻어 있었다.추경은은 하마터면 바로 토할 뻔했다.하지만 유남준과 결혼하여 그의 곁에 남고 싶어서 그 힘든 걸 참아내기 시작했다.샤워기를 손에 들고서 주위를 물로 씻어내고 나서 박윤우의 바지를 씻기 시작했다.박윤우는 문 앞에 서서 그런 추경은을 바라보고 있었다.당장이라도 노발대발할 것처럼 보이나 억지로 역겨움과 화를 꾹꾹 억누르며 바지를 씻고 있는 추경은의 모습을.왠지 모르게 기분이 상쾌해지는 순간이었다.“이모, 싫으시면 그만 나오세요. 아빠가 씻어줄 거예요.”멀리서 앉아 있던 유남준은 그 말을 듣고서 눈살을 찌푸렸다.엉덩이도 스스로 닦지 못하면서 바지에 묻히고 다니는 박윤우를 때리지 않은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한다면서.박민정이 아이 교육을 어떻게 했는지 화가 나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박윤우, 이리로 와.”박윤우는 유남준이 자기를 부르는 것을 듣고 긴 샤워타월을 잡고서 짧은 다리로 빠르게 달려갔다.“아빠, 저 보고 싶어서 부리신 거죠?”박윤우는 말하면서 조금 더 가까이 가려고 했다.“거기 서.”하지만 유남준이 그를 그 자리에 바로 세우고 말았다.“거리를 좀 두는 게 좋겠어.”박예찬의 심한 결벽증은 바로 유남준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박윤우가 엉덩이도 제대로 닦지 못하고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자 얼굴이 다 일그러졌다.“어린아이도 아니고 아직도 엉덩이 닦을 줄 모르는 거야?”유남준이 물었다.박윤우는 말 문이 막혔다.추경은에게 본때를 보여주고자 그러한 것인데, 자신이 이렇게 다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유남준이 자기를 무척이나 싫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그...”뭐라고 설명할 말도 딱히 없었다.유남준은 그가 인정한 셈을 쳤다.“오늘부터 잘 배워. 또다시 다른 사람한테 엉덩이 닦아달라고 부탁한다면 그땐 널 화장실로 버려버릴 거야.”“네.”박윤우는 입술을 삐쭉내밀고 계속 유남준을 떠보려고 했다.“아빠, 저 싫어요?”손을 내밀어 유남준을 다치자마자 바로 손목이 잡혀버
“엄마, 아빠랑 이혼 잘하셨어요.”유남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유남준 앞을 지나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번에도 졌네.”유남준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유남우는 사실 그가 어떻게 반격할지 걱정되기보다 이번에도 졌다는 게 더 분통했다.밖으로 나온 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연락처를 훑어보다가 홍주영에서 멈칫하더니 결국에는 통화버튼을 누르지도 못한 채 핸드폰을 다시 꺼야 했다.실내 안.거실은 유난히 조용했고 유지욱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남우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였는데.”고영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말하는 ‘예전’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고영란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에 유지욱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아니에요.”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 달은 될수록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그리고 이혼 숙려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가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고영란은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혼하고 싶은데 지금 이혼하려면 한 달씩이나 기다려야 했다.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한 달 동안에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좀 생각해 보고요.”말을 마친 뒤 유지욱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한편.박씨 가문의 옛 저택.박민정은 유남준이 너무 걱정되어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비록 서다희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이때,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에 박민정이 다급히 차창 밖을 내다보니 유남준의 차도 마침 도착해 있었다.박민정은 빠르게 차에서 내린 뒤 유남준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괜찮아요?”그러자 유남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당연하지, 다희가 나 괜찮을 거라고 알려줬잖아.”박민정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
유석진의 입에서 갑자기 자기 둘째 아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고영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또한 왜 두 아들 사이에 지금 저런 모순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유남준도 괜히 고영란이 중간에서 난처하게 된 것 같아 일부러 유남우를 빤히 바라보며 유석진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사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큰아빠가 아무리 남우랑 같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별로 무겁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위협감이 느껴졌다.순간 유석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때, 그의 며느리인 최현아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끼어들었다.“남준 씨, 그래도 한 가족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그러자 유성혁도 한마디 거들었다.“남준아, 우리도 잘못했단 걸 알고 있어. 아버지가 이제 연세도 많아서 상황판단이 안 될 때가 많아.”유석진도 사실 지금 자존심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말해주면 내가 다 들어줄게.”사실 유남준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금방 인수한 시내 중심에 있는 그 건물을 저한테 넘겨주세요.”그 땅은 유명훈의 땅이고 죽기 전 유석진에게 물려준 유산인데 지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올랐다.유석진이 이 땅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곳의 상권을 손에 쥔 거나 다름없었는데 나중에 아무 건축물을 세워 올려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안되지!”역시나 유석진이 단번에 거절했다.그가 오랫동안 눈독 들였던 땅이었는데 유명훈이 죽어도 물려주지 않으려 해서 여태껏 애를 먹고 있었다가 이제 겨우 손에 들어온 땅이고 또 자기만의 계획이 따로 있었다.“그러면 조만간 IM 그룹의 변호사를 만나셔야겠네요.”유남준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유석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안 도우미에게 외쳤다.“모셔다드려!”그렇게 도우미들은 그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고 거실에는 유남준 가족들만이 남게 되었다.유지욱과 고영란은 눈앞의 두 아들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유남준이 잡혀갔다는 소식에 유석진 가족들은 조용히 자축하고 있었다.최현아도 너무 기뻐했지만 유독 유성혁만 우울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아빠, 그래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꼭 이래야 할까요? 남준이가 잡혀가도 우리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 다시 풀려나서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그러자 유석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왜 쓸데없는 일을 벌써 걱정하고 그래? 간이 그리도 콩알만 해서 큰일 하겠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유성혁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다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유지훈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저는 할아버지가 한 행동이 맞다고 봐요.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유석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하하, 역시 우리 손자가 똑똑하다니까. 네 말이 맞아. 사람은 무조건 자기가 일 순위여야 해. 절대 네 바보 같은 아빠를 닮아서는 안 된다.”그러자 유지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저도 알고 있어요.”그리고 유석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들은 너무 일찍 기뻐했던 게 오후가 되자마자 유남준은 바로 풀려났다.그길로 옛 저택으로 오게 되었고 동시에 유석진네 식구들과 유남우를 전부 집으로 불러 모았다.이 시각, 유지욱도 마침 그곳에 있다가 눈앞의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남준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아빠, 제가 지금부터 저 사람들의 실체에 대해 다 밝히려고요.”그리고 서다희가 한 무더기의 자료와 증명서를 건네주자마자 그는 유석진네 식구들에게 뿌려줬다.종이들이 공중에서 흩날리다가 전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유석진은 그중 한 장을 주워 읽어보고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했다.“남준아, 다 오해야.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하겠니?”그러자 유남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에게 되물었다.“우리 회사에 심어둔 사람들을 제가 다 데려올까
유남준은 사실 진작에 유남우와 유석진 쪽에 사람들을 붙여서 그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서 일단 내버려두고 있었다.이튿날, IM 그룹으로 세무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러자 서다희가 눈살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대표님을 감옥에 보내려고 아주 별짓을 다 하네요. 이런다고 그 사람들한테 득이 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특히 유남우는 왜 자기 친형을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조사해 보니 역시나 회사 장부에 문제가 있었고 회사 자금을 불법으로 돌렸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다 그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가짜 장부들이었다.그렇다고 해도 유남준은 회사 법인으로서 조사를 받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연행되었다.가면서도 서다희에게 당부했다.“민정이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서다희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뉴스에서 하루 종일 보도될 예정이라 아마 얼마 안 돼서 알게 될 것이다.역시나 박민정은 출근길에 그에 관한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다.“어떻게 이럴 수가?”이때, 고영란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민정아, 남준이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그러나 박민정도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저도 방금 기사를 봐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당장 다희 씨한테 전화해 볼 테니까 어머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래.”고영란은 착잡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유지욱과 이혼하겠다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서다희는 빠르게 박민정에게 전화해서 유남준이 시킨 대로 알려줬고 모든 일은 다 대비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때 서다희가 한마디 더 했다.“그런데 이 일은 절대 고영란 사모님한테 말하지 말아 주세요.”“알겠어요.”어쩌면 유남우 귀에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
고영란도 유석진의 고함에 깜짝 놀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여태껏 모든 집안일을 아내한테 떠넘긴 채, 홀로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유지욱이 원망스럽기만 했다.한 사람에 대한 단념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실망감이 천천히 쌓이면서 식어가는 것이다.보아하니 오늘 저녁에도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유지욱이 도착해보니 유씨 가문의 모든 친척이 다 모여있었다.그리고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은 고영란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왜 진작에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그의 물음에 고영란은 실망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제가 말해주지 않았다고요? 한 달 전에 전 분명히 아버님 건강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 와서 회사 일 좀 도와드리라고 귀띔해 줬어요.”“난 네가 우리 아버지 재산 때문에 나더러 오라는 줄 알았지.”유지욱의 말에 고영란은 큰 충격을 받고 잠깐 멍해졌다가 다시 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유지욱 씨, 정말 어이없네요. 맞아요, 제가 빨리 돌아오라고 했던 원인이 아버님의 재산이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지욱 씨한테도 나눠줬으면 했어요. 그런데 그 재산이 전부 아주버님한테 넘어갔네요?” 그러나 유지욱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이었다.“그깟 돈 몇 푼 가지고 왜 그래? 우리가 모두 한 식구인데 주면 줬지.”유지욱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님들을 맞이하러 떠났다.그리고 유석진과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고영란은 제대로 마음이 상했다.박민정도 손자며느리로서 유남준과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다가 우연히 시부모님이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사실 유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시아버지인 유지욱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유지욱은 젊었을 때부터 고집불통에 집안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저 매일 여행이나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여 유지욱과 고영란은 1년 중에도 만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살짝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남준 씨, 가서 어머님 좀 위로해 주세요.”여자
유남준의 아버지, 유지욱은 계속 외국에서 살다보니 이 자리에 없었다.그러자 고영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지욱 씨는 지금 당장 오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방금 비행기 탔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릴 거예요.”그러자 유석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그러면 지욱이가 도착하고 나서 다시 말할 테니까 외부인은 참견하지 말아요.”순간 고영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줬는데도 제가 아직 외부인인가요? 저는 오늘 아버님께서는 왜 그리도 자식들을 편애하시지 꼭 물어봐야겠어요!”“제 아들들이 능력이 뛰어나면 이런 불공평한 대우도 다 받아들여야 하나요?”여태껏 유명훈은 많은 주식을 갖고 있었다.비록 유남준이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유명훈의 지분이 그대로 유석진네로 넘어가게 되면 유남준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더구나 유남우도 그의 재산이 필요한데 말이다!게다가 유명훈은 오랜 세월 동안 주식 말고도 분명 많은 재산을 모았을 텐데 그 돈마저 전부 저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고영란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유석진은 유명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여태껏 지욱이를 잘 붙잡아 두지 못한 제수 씨를 탓해야죠! 지욱이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어요!” 고영란이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유남준이 그녀를 말렸다.“엄마, 그만해요.”여태껏 유명훈이 유석진네만 편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그이기에 지금 아무리 그와 말싸움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유남우도 불쾌했지만 애써 덤덤한 척 그녀에게 말했다.“엄마, 형 말이 맞아요. 할아버지께서 결정하신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싸울 필요 없어요.”이 시각, 침대에 누워있던 유명훈은 호흡이 점점 더 가빠져 헐떡거리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눈앞에서 자식들이 자기 재산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지욱이...”그는 힘겹게 유지욱을 불렀다.유지욱은 평소에도 그의 말을
최현아는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지만 박민정은 그저 냉담한 얼굴로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러자 그녀는 뻘쭘해진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일은 무슨, 윤소현이 드디어 판결받았다고 해서 축하해주려고 왔지.”박민정은 분명 다른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최현아와 그의 시아버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왠지 그럴수록 더 수상했다.“감사합니다.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일 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마자 박민정이 뒤돌아서니 역시나 최현아가 빠르게 그녀의 팔을 부여잡았다.“민정아,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박민정은 이제 와서 한 식구라는 그녀의 말이 그저 가소로웠다.“도대체 할 말이 뭔가요?”그리고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최근에 할아버지 건강이 점점 악화하면서 동서랑 남준 씨가 그립기도 하고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도 보고 싶은가 봐. 혹시 오늘 밤 할아버지 뵈러 같이 가지 않을래?”최현아는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사실 박민정도 할아버지의 건강이 여태껏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늘 두 사람을 부른 이유도 아마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네, 알겠어요.” 최현아는 그제야 박민정의 팔을 놓아줬지만 그녀가 떠나가자마자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그리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껏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재수 없는 것, 운발로 지금 자리에 올라앉은 주제에.” 차에는 낯선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박민정한테 화낼 필요 없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의 주식이랑 모든 돈을 너한테 넘길 수 있도록 잘 구슬리는 거야.”그러자 최현아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나도 알아, 저번에 이미 할아버지랑 말해봤다니까? 유남준 씨랑 민정이는 괜히 고고한 척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상황이라 우리 쪽에 전부 몰리게 되어있긴 한데, 난 지금 성혁 씨 얼굴만 봐도 짜
조하랑은 그제야 화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그러면 왜 저 여자한테 찾아갔어요?”“당연히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러 갔죠. 그리고 이지원에 대해 정신감정도 의뢰했거든요. 만약 진짜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게 다 쇼하는 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요.”김인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다가 조하랑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에 제가 지원이한테 어떻게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하랑 씨도 잘 알잖아요. 만약 저를 구해줬던 사람이 형수님이었단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절대 그 애를 도와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지금은 그저 마땅히 받아야 할 벌만 받았으면 좋겠고요.”조하랑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제가 오해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저는 인우 씨가 또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여자한테 찝쩍거린다고만 생각했어요.”그녀의 말에 김인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되물었다.“하랑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순간 조하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누, 누가 질투한다는 거예요? 그저 저를 배신한 인우 씨한테 화나고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나한테 실망했을 뿐이라고요!”“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의사도 임산부가 흥분하면 아이한테 안 좋다고 말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는 다정하게 조하랑을 품에 안았는데 순간 그녀는 얼굴이 더욱 빨개진 채 온몸이 굳어버렸다.당연히 김인우도 눈치채고는 빠르게 물었다.“왜요, 부끄러워요?”“그, 그럴 리가요...”조하랑은 말까지 더듬으며 애써 덤덤한 척했다.“저도 안을 줄 알거든요?”그리고 똑같이 김인우를 꼭 안아줬는데 이번에는 김인우가 속으로 움찔했다.추운 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아 줬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멈춰졌다 가곤 했다.조하랑도 어느새 그걸 느꼈는지 재빨리 김인우를 밀쳐냈다.“됐어요. 이제 병실로 돌아가 봐야 하니까 인우 씨도 그만 돌아가요.”“저랑 같이 안 가고요?”김인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