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잡아먹어서 안달 났다고?윤소현의 말 한마디에 퇴근하고 있던 호산 그룹 직원들이 삼삼오오 ‘사건 현장’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롤스로이스 앞에서 젊은 여자가 흐느끼면서 하소연을 하고 있으니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다.윤소현까지 합세하자 박민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윤소현 씨, 제대로 알고 말하시는 건 어때요?”“제 남편이 저를 데리러 왔는데, 기어이 타겠다고 이렇게 우기고 있는 거잖아요. 택시 타고 가라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기어이 이 차에 타겠다고 고집부리고 있잖아요. 그래도 제가 못 잡아먹어서 안달난 것 같아요?”박민정은 덤덤한 목소리로 단번에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하지만 윤소현은 주위에 구경꾼도 있고 추경은이 막무가내로 우기고 있는 틈을 타서 박민정을 바닥으로 깔아뭉갤 생각이었다.“그렇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저렇게 눈물까지 뚝뚝 떨구면서 서럽게 울고 있는데, 좀 태워준다고 해서 어디 덧나기라도 나는 거예요?”오늘 유난히 피곤했던 박민정이다.그뿐만 아니라 임신한 뒤로 호르몬 변화로 졸음도 자주 밀려오곤 한다.지금 박민정은 여러모로 불편한 상황을 견뎌내면서 이를 악물고 있다.“뭐라고 했어요?”“좀 태워준다고 해서 어디 덧나냐고요!”윤소현은 일부러 더 자극하려고 소리까지 높였다.“그래요? 그럼, 가시는 길에 좀 바래다 주지 그래요?”박민정은 속으로 ‘옳거니’ 하면서 바로 받은 대로 돌려주었다.순간 말 문이 탁 막힌 윤소현이다.“형님 댁으로 온 손님이잖아요. 그러니 형님 쪽에서 챙겨야 하는 거 아닌가요?”“그래요? 그럼, 우리가 알아서 우리 식대로 챙길 테니 신경 좀 꺼줄래요? 그렇게 신경 쓰이면 가는 길에 좀 바래다주던가요.”자기 할 말을 마친 박민정은 두 사람과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이윽고 차 문을 막고 있던 추경은을 옆으로 밀쳐버리고 바로 차에 올랐다.“윤소현 씨께서 경은 씨를 많이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아요. 윤소현 씨한테 집까지 바래다 달라고 해보세요. 엄청 좋아할 것 같은데...”박민정은 웃
한수민을 본 순간 박민정은 얼이 빠져 한참 후에야 정신이 돌아왔다.“한 여사님, 누가 당신더러 여기에 오라 한 거죠?” 박민정의 소리에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는 한수민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난...”그녀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추경은이 입을 열었다. “새언니, 아주머니는 새언니의 친엄마 아닌가요? 왜 최 여사님이라고 불러요? 너무 버릇없는 것 아닌가요?”추경은은 박민정과 한수민 사이에 불쾌한 일들이 있었음을 알고 고의로 물었다. 한수민은 그 말을 듣고는 이내 추경은한테 말했다. “그런 말 말아요. 쟤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게 내버려두어요.”그녀는 애당초 박민정의 친엄마가 아니다. 박민정은 주먹을 다잡고 추경은의 말을 무시한 채 한수민 앞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 있거든 우리 나가서 말해요.” “그래.”한수민은 일어나서 박민정과 함께 밖으로 향했다. 추경은은 그 모습을 보고 그 둘의 뒤를 조용히 뒤따라갔다. 밖으로 나온 뒤 가로등의 어둑한 불빛 아래서 박민정이 차가운 어투로 물었다. “돈을 원해요? 아니면 다른 거?”지금 한수민의 친딸과 아들 심지어 남편마저 그녀를 외면하고 있으니 또 뭔 일을 꾸미려 온 것이 분명하였다. 한수민은 목구멍이 막혀오는 듯하였다. “돈 때문이 아니야. 그저 너와 너의 아이를 보러 온 것뿐이야.”이 말에 박민정은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또 감성팔이 하시려고요? 잊지 마세요. 우리 둘은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남이란 걸.”한수민은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이미 다 늦었음을 알았다. 오늘 그녀는 두원별장의 부근에 왔다. 원래는 그저 멀리서 박민정의 모습 한번 보고 가려 했는데 마침 추경은과 마주쳤다. 추경은은 그녀를 방 안으로 끌어들였다. “나도 알아. 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진짜야, 진짜.”한수민은 중얼거렸다. “나 지금 갈게.”구부정한 허리와 함께 그녀는 터벅터벅 걸어 떠나갔다. 박민정은 왜소한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가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것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남준아, 나 이제 확신할 수 있어. 그 유리 파편이 원인이야.” 김인우가 앉으면서 말했다. “이제 수술 시간을 정해야 하는데, 이 수술은 큰 위험이 생길 수도 있어.” 유남준이 듣고는 물었다. “어떤 위험?” “그 유리 파편의 위치가 좀 특수해. 주변에 많은 뇌신경이 있어서 수술이 잘못되면 지적 장애자가 될 수도 있어.” 김인우는 걱정 가득한 얼굴이었다.이것이 그가 유남준의 상처를 봉합하기 전에 이물질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제거하지 못했던 이유다. 뇌 수술은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 조금의 실수에도 환자가 평생 고통받을 수 있기 때문에. 유남준은 이 말을 듣고 오랫동안 침묵했다.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되지?” “50%도 안 돼.” 김인우는 한숨을 쉬었다. 김인우의 기술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그는 국내의 외과 의사들도 수술의 성공을 확신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유남준은 즉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지적 장애자는 간단히 말하면 바보이다. 지금은 보지 못하지만 자아의식이 있어서 돈을 벌고 박민정과 아이가 부족한 것 없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바보가 된다면 그 후의 상황은 상상하기조차 끔찍하다. “좀 더 생각해 볼게.” 유남준이 대답했다. “빨리 결정해야 해. 유리 파편이 머릿속에 남아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수술 성공 확률이 낮아져.” 김인우가 말을 덧붙였습니다. “알았어.” 유남준은 잠시 멈추고 다시 말했다. “이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응.” 김인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남준은 그제야 진료실에서 나왔다. 서다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유남준이 나온 것을 보고는 그에게 길을 안내했다. “대표님, 상처는 이제 괜찮으신가요?” 유남준은 그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응, 완전히 다 나았어.” “다행입니다.” 서다희가 안도하며 말했다. “이제 회사로 돌아갈까요?” “응.” 병원을 나서면서 서다희는 유남준과 몇 마디를 나눴다. 유남준이 차에 타면서부터 회사에 도착하기까지
박민정은 말을 마친 후 약간의 고민을 하며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보지 못한다면 아이들을 잘 돌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 말을 하면서 그녀는 유남준이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가 갑자기 정서가 하락하였다고 생각하여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남준 씨와 나는 분명 다를 거예요. 남준 씨가 지금 보지는 못해도 많은 정상인보다 훨씬 뛰어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유남준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응, 계속 일하도록 해.” 그가 말했습니다. “그래요.” 박민정은 그가 헛된 걱정을 하지 않도록 말을 덧붙였다. “걱정 마요,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착하지.” 전화를 끊고 난 후에도 유남준은 여전히 휴대전화를 꽉 쥐고 있었다. 박민정이 장난스럽게 말한 ‘착하지’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착하지?' 유남준은 마음속이 복잡했다. 다른 쪽에서는 박민정이 휴대전화를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유남준이 시각을 잃은 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번처럼 유남준의 입으로부터 완곡한 말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박민정은 오늘 일찍 퇴근하여 유남준을 만나러 가기로 결심했다. 그가 너무 걱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가 볼 수 있든 아니든 자신과 두 아이는 그를 절대 멀리하지 않을 거다. 결정을 내린 후 박민정은 오늘의 임무를 신속하게 처리했다. 하지만 최현아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회의를 진행할 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위층에게 말했다. “어제의 계약은 박민정 비서의 공헌이 큽니다. 만약 그녀가 아니었다면 우리와 천인 그룹의 합작이 이토록 순조롭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두가 감탄하는 시선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최현아가 말을 꺼냈다. “박민정 비서, 당신의 능력이 뛰어나서 그러는데, IM 그룹 본사를 한 번 방문해 줄 수 있을까요?” IM 그룹...이 몇 글자가 나오자, 모든 사람의 얼굴색이 어두워졌고 유남우의 눈 밑에도 어두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한때 유엔 케이 그룹은 진주시에서 적수가 없었지만, IM
최현아는 박민정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을 디스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무슨 뜻이죠? 내가 당신을 IM 그룹에 보내는 게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나요? 난 당신 보고 상대 회사에 가서 두 회사 간의 협력 의향을 말하라는 거예요.”최현아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주변의 다른 고위층들은 그녀의 신경질적인 상태에 익숙해져 있어 아무도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다만 속으로 신입 비서의 처지에 동정을 표했다. 이때 유남우가 입을 열었다. “최 대표, 박민정 씨는 제 개인 비서로 경쟁 회사와의 조정을 담당하지 않습니다. 인원이 필요하다면 홍보부나 영업부에서 찾아보세요. 그쪽이 더 적합할 겁니다.”회사의 사장이 말을 하자 최현아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참고 또 참다 한마디 뱉었다. “방금 박민정 비서와 농담한 것뿐이에요.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아요. 그녀가 대표님의 비서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죠.”그러곤 박민정을 바라보며 웃었다. “비서에게 영업과 홍보 업무를 맡기는 것은 확실히 무리이긴 하죠.”그 뜻인즉슨 박민정이 영업부와 홍보부 직원에 비해 부족하다는 거다. 박민정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유남준을 만나러 가야 했기에 최현아한테 낭비할 시간 따윈 없었다. 회의는 이렇게 끝났다. 회의실을 나서면서 최현아는 박민정의 곁으로 다가가 목소리를 낮춰 말하였다. “남우 도련님이 도와준다고 해서 자기가 대단한 줄 아는 것 같은데. 알려줄게, 능력이 없으면 호산 그룹에서 오래 못 버텨.”말을 마친 후, 최현아는 박민정의 옆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박민정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어제 집에 돌아가서 생각해 본 결과 자신이 영원히 대표 비서로만 있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현아는 현재 영업부를 담당하는 부장 중 한 명으로서 그녀보다 직위와 권한이 높다는 것을 안다. 같은 유씨 가문의 며느리로서 자신이 최현아보다 못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무실로 돌아왔다
모두가 왜 이토록 통이 큰지 이해하게 되었다. 산 물건들은 모두 최고급으로 아주 비싼 것들이다. 박민정은 모두의 부러움을 속에서 겨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무실 안은 여전히 웅성거렸다. 유남우도 돌아왔을 때 사무실 앞에 놓여 있는 밀크티와 디저트들을 보았다. 그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누가 놓고 간 거지?”홍주영이 대답했다 “방금 밖에서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큰 도련님이 보내신 것 같아요. 각 부서마다 다 있답니다.”유남우는 알게 모르게 표정이 변했다. “난 이런 거 좋아하지 않아, 네가 먹어.”홍주영은 그 말을 듣고는 답했다. “저도 있어요. 이걸 다 먹긴 힘들어요.”“그럼 다른 사람에게 주도록 해. 가지려는 사람이 없으면 쓰레기통에 버려.”유남우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홍주영은 그의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그녀는 디저트와 밀크티와 다 밖으로 가져가서는 청소부 아주머니에게 주었다.아주머니는 놀라며 말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별말씀을요.”홍주영은 아주머니와 말을 나눌 때 분위기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박민정이 화장실에 가는 길에 그 장면을 마침 보게 되었다. 홍주영은 매일 칙칙한 직업복을 입고 일도 매우 엄격하게 처리하여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감정이 없는 일하는 기계로 생각했다. 모두가 그녀를 두려워하고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박민정은 이 비서가 내면적으로는 좋은 사람일 것으로 느꼈다. 홍주영이 뒤돌아설 때 박민정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박민정이 오해할까 봐 설명했다. “사장님께서 단것을 드시지 못하셔서 저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했어요. 제 건 이미 다 먹었어요. 잘 먹었습니다.”박민정은 급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괜찮아요.”이 말을 한 후 그제야 화장실로 갔다. 박민정은 화장실 칸 안에서 연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바로 연결되었다. “민정아, 꽃 도착했어?”박민정이 묻기 전에 연지석이 먼저 물었다. “정말 네가 보낸 거야?”박민정은 조금 놀라며 말했다
오후 4시쯤, 하루 업무를 마친 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같은 시각 유남준은 한창 회의 중이었다.아직 대중들에게 신분을 밝히고 싶지 않았던 유남준은 매번 회의를 온라인으로만 진행하고 있다.회의 중, 박민정에게만 설정된 벨 소리가 울리자, 그는 두말하지 않고 바로 회의를 중단했다.“무슨 일이야?”“언제 퇴근해요?”‘이미 퇴근했나?’그 말을 듣고서 유남준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지금.”박민정의 출퇴근을 직접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바가 있었으니 말이다.“그럴 필요 없어요. 남준 씨 어디에 있는지 위치만 보내주면 돼요. 내가 갈게요.”바로 오겠다는 말에 박민정은 서둘러 말했다.다소 의외라는 듯 유남준은 표정이 약간 달라졌지만 그래도 데리러 가겠다고 주장했다.“괜찮아. 이미 차에 탔고 가는 중이야.”“네? 벌써 퇴근했다고요?”박민정은 약간 풀이 죽은 듯한 모습을 드러냈다.‘서프라이즈해줄려고 일찍 퇴근했는데...’그렇다, 박민정은 오늘 일찍 퇴근해서 유남준이 데리러 오기 전에 먼저 찾아가려고 했었다.조금이나마 기분이 풀렸으면 하는 마음에 말이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유남준은 마냥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민정아, 근데 너 이미 퇴근하지 않았어?”“오늘 일부러 일찍 퇴근했단 말이에요. 남준 씨한테 먼저 찾아가려고 했었는데...”박민정의 대답을 듣고서 유남준은 자신이 너무 섣불리 말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럼, 남준 씨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게요.”“그래.”그렇게 두 사람의 통화가 종료되었다.전화를 끊자마자 유남준은 다시 온라인 회의 방으로 들어가서 마무리 멘트를 던졌다.“오늘 회의는 이쯤에서 마치겠습니다.”열띤 토론을 나누고 있던 고위직 직원들은 그 말에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얼굴 없는 대표님’께서 오늘따라 왜 저러실까?아직 마땅한 계획마저 내놓지 못했는데, 왜 갑자기 회의를 그만두시는 걸까?혹시 화가 나신 걸까? 지금껏 토론했다고 한들 결과 하나 없어서?온갖 생각이 동시에 떠오르면서
‘꽃? 디저트?’유남준은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내가 민정이한테 꽃이랑 디저트를 보냈었다고?’유남준에게 박민정의 참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추경은은 지금 이를 악물고 있다.여기저기 한눈을 팔고 다니는 여자는 유남준 곁에 있을 자격이 없다면서 말이다.“서 비서가 보낸 거야. 알고 싶으면 서 비서한테 물어봐.”이상하기는 했지만 유남준은 덤덤하게 대답했다.순간 추경은은 당황하기 그지없었다.당연히 의심부터 하면서 야단을 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박민정을 감싸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추경은은 화장실에서 연지석과 박민정의 통화 내용을 똑똑히 들었었다.연지석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는 것까지.“남준 오빠, 서 비서님이 보낸 거 맞아? 확실해?”자기 시나리오와 다르게 흘러가고 있자, 추경은은 달갑지 않아 했다.그 말에 유남준은 마침내 인내심을 잃고 말았다.“서 비서가 아니면 네가 보낸 거야?”또다시 생각지도 못한 반박에 추경은은 말 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박민정 역시 살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대놓고 자기를 도와주는 유남준의 말과 행동에 말이다.한바탕 신경전을 벌이고 난 뒤.지금 침실에는 유남준과 박민정 둘만 있다.“남준 씨, 그 꽃이랑 디저트 말이에요... 지석이가 보낸 거예요.”박민정이 먼저 자기한테 설명하기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던 유남준이다.“오는 길에 나한테 준 그 케이크도 걔가 보낸 거야?”“아니에요! 그건 회사 근처에 있는 디저트가게에서 내가 직접 산 거예요.”이성 친구한테서 받은 물건으로 자기 남편에게 잘 보일 만큼 어리석은 박민정이 아니다.하물며 연지석과 유남준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불꽃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박민정의 설명을 듣고 난 유남준은 그제야 기분이 좀 풀리는 듯했다.“근데 왜 너한테 꽃이랑 디저트를 보낸 거야?”“너무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아서... 이런 방식을 통해서라도 연락하고 싶었다고 해요.”박민정은 연지석이 해준 말을 그대로 유남준에게 알려주
“엄마, 아빠랑 이혼 잘하셨어요.”유남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유남준 앞을 지나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번에도 졌네.”유남준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유남우는 사실 그가 어떻게 반격할지 걱정되기보다 이번에도 졌다는 게 더 분통했다.밖으로 나온 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연락처를 훑어보다가 홍주영에서 멈칫하더니 결국에는 통화버튼을 누르지도 못한 채 핸드폰을 다시 꺼야 했다.실내 안.거실은 유난히 조용했고 유지욱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남우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였는데.”고영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말하는 ‘예전’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고영란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에 유지욱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아니에요.”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 달은 될수록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그리고 이혼 숙려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가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고영란은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혼하고 싶은데 지금 이혼하려면 한 달씩이나 기다려야 했다.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한 달 동안에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좀 생각해 보고요.”말을 마친 뒤 유지욱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한편.박씨 가문의 옛 저택.박민정은 유남준이 너무 걱정되어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비록 서다희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이때,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에 박민정이 다급히 차창 밖을 내다보니 유남준의 차도 마침 도착해 있었다.박민정은 빠르게 차에서 내린 뒤 유남준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괜찮아요?”그러자 유남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당연하지, 다희가 나 괜찮을 거라고 알려줬잖아.”박민정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
유석진의 입에서 갑자기 자기 둘째 아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고영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또한 왜 두 아들 사이에 지금 저런 모순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유남준도 괜히 고영란이 중간에서 난처하게 된 것 같아 일부러 유남우를 빤히 바라보며 유석진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사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큰아빠가 아무리 남우랑 같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별로 무겁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위협감이 느껴졌다.순간 유석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때, 그의 며느리인 최현아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끼어들었다.“남준 씨, 그래도 한 가족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그러자 유성혁도 한마디 거들었다.“남준아, 우리도 잘못했단 걸 알고 있어. 아버지가 이제 연세도 많아서 상황판단이 안 될 때가 많아.”유석진도 사실 지금 자존심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말해주면 내가 다 들어줄게.”사실 유남준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금방 인수한 시내 중심에 있는 그 건물을 저한테 넘겨주세요.”그 땅은 유명훈의 땅이고 죽기 전 유석진에게 물려준 유산인데 지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올랐다.유석진이 이 땅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곳의 상권을 손에 쥔 거나 다름없었는데 나중에 아무 건축물을 세워 올려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안되지!”역시나 유석진이 단번에 거절했다.그가 오랫동안 눈독 들였던 땅이었는데 유명훈이 죽어도 물려주지 않으려 해서 여태껏 애를 먹고 있었다가 이제 겨우 손에 들어온 땅이고 또 자기만의 계획이 따로 있었다.“그러면 조만간 IM 그룹의 변호사를 만나셔야겠네요.”유남준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유석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안 도우미에게 외쳤다.“모셔다드려!”그렇게 도우미들은 그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고 거실에는 유남준 가족들만이 남게 되었다.유지욱과 고영란은 눈앞의 두 아들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유남준이 잡혀갔다는 소식에 유석진 가족들은 조용히 자축하고 있었다.최현아도 너무 기뻐했지만 유독 유성혁만 우울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아빠, 그래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꼭 이래야 할까요? 남준이가 잡혀가도 우리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 다시 풀려나서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그러자 유석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왜 쓸데없는 일을 벌써 걱정하고 그래? 간이 그리도 콩알만 해서 큰일 하겠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유성혁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다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유지훈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저는 할아버지가 한 행동이 맞다고 봐요.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유석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하하, 역시 우리 손자가 똑똑하다니까. 네 말이 맞아. 사람은 무조건 자기가 일 순위여야 해. 절대 네 바보 같은 아빠를 닮아서는 안 된다.”그러자 유지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저도 알고 있어요.”그리고 유석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들은 너무 일찍 기뻐했던 게 오후가 되자마자 유남준은 바로 풀려났다.그길로 옛 저택으로 오게 되었고 동시에 유석진네 식구들과 유남우를 전부 집으로 불러 모았다.이 시각, 유지욱도 마침 그곳에 있다가 눈앞의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남준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아빠, 제가 지금부터 저 사람들의 실체에 대해 다 밝히려고요.”그리고 서다희가 한 무더기의 자료와 증명서를 건네주자마자 그는 유석진네 식구들에게 뿌려줬다.종이들이 공중에서 흩날리다가 전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유석진은 그중 한 장을 주워 읽어보고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했다.“남준아, 다 오해야.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하겠니?”그러자 유남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에게 되물었다.“우리 회사에 심어둔 사람들을 제가 다 데려올까
유남준은 사실 진작에 유남우와 유석진 쪽에 사람들을 붙여서 그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서 일단 내버려두고 있었다.이튿날, IM 그룹으로 세무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러자 서다희가 눈살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대표님을 감옥에 보내려고 아주 별짓을 다 하네요. 이런다고 그 사람들한테 득이 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특히 유남우는 왜 자기 친형을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조사해 보니 역시나 회사 장부에 문제가 있었고 회사 자금을 불법으로 돌렸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다 그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가짜 장부들이었다.그렇다고 해도 유남준은 회사 법인으로서 조사를 받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연행되었다.가면서도 서다희에게 당부했다.“민정이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서다희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뉴스에서 하루 종일 보도될 예정이라 아마 얼마 안 돼서 알게 될 것이다.역시나 박민정은 출근길에 그에 관한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다.“어떻게 이럴 수가?”이때, 고영란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민정아, 남준이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그러나 박민정도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저도 방금 기사를 봐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당장 다희 씨한테 전화해 볼 테니까 어머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래.”고영란은 착잡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유지욱과 이혼하겠다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서다희는 빠르게 박민정에게 전화해서 유남준이 시킨 대로 알려줬고 모든 일은 다 대비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때 서다희가 한마디 더 했다.“그런데 이 일은 절대 고영란 사모님한테 말하지 말아 주세요.”“알겠어요.”어쩌면 유남우 귀에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
고영란도 유석진의 고함에 깜짝 놀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여태껏 모든 집안일을 아내한테 떠넘긴 채, 홀로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유지욱이 원망스럽기만 했다.한 사람에 대한 단념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실망감이 천천히 쌓이면서 식어가는 것이다.보아하니 오늘 저녁에도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유지욱이 도착해보니 유씨 가문의 모든 친척이 다 모여있었다.그리고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은 고영란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왜 진작에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그의 물음에 고영란은 실망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제가 말해주지 않았다고요? 한 달 전에 전 분명히 아버님 건강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 와서 회사 일 좀 도와드리라고 귀띔해 줬어요.”“난 네가 우리 아버지 재산 때문에 나더러 오라는 줄 알았지.”유지욱의 말에 고영란은 큰 충격을 받고 잠깐 멍해졌다가 다시 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유지욱 씨, 정말 어이없네요. 맞아요, 제가 빨리 돌아오라고 했던 원인이 아버님의 재산이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지욱 씨한테도 나눠줬으면 했어요. 그런데 그 재산이 전부 아주버님한테 넘어갔네요?” 그러나 유지욱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이었다.“그깟 돈 몇 푼 가지고 왜 그래? 우리가 모두 한 식구인데 주면 줬지.”유지욱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님들을 맞이하러 떠났다.그리고 유석진과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고영란은 제대로 마음이 상했다.박민정도 손자며느리로서 유남준과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다가 우연히 시부모님이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사실 유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시아버지인 유지욱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유지욱은 젊었을 때부터 고집불통에 집안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저 매일 여행이나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여 유지욱과 고영란은 1년 중에도 만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살짝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남준 씨, 가서 어머님 좀 위로해 주세요.”여자
유남준의 아버지, 유지욱은 계속 외국에서 살다보니 이 자리에 없었다.그러자 고영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지욱 씨는 지금 당장 오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방금 비행기 탔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릴 거예요.”그러자 유석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그러면 지욱이가 도착하고 나서 다시 말할 테니까 외부인은 참견하지 말아요.”순간 고영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줬는데도 제가 아직 외부인인가요? 저는 오늘 아버님께서는 왜 그리도 자식들을 편애하시지 꼭 물어봐야겠어요!”“제 아들들이 능력이 뛰어나면 이런 불공평한 대우도 다 받아들여야 하나요?”여태껏 유명훈은 많은 주식을 갖고 있었다.비록 유남준이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유명훈의 지분이 그대로 유석진네로 넘어가게 되면 유남준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더구나 유남우도 그의 재산이 필요한데 말이다!게다가 유명훈은 오랜 세월 동안 주식 말고도 분명 많은 재산을 모았을 텐데 그 돈마저 전부 저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고영란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유석진은 유명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여태껏 지욱이를 잘 붙잡아 두지 못한 제수 씨를 탓해야죠! 지욱이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어요!” 고영란이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유남준이 그녀를 말렸다.“엄마, 그만해요.”여태껏 유명훈이 유석진네만 편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그이기에 지금 아무리 그와 말싸움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유남우도 불쾌했지만 애써 덤덤한 척 그녀에게 말했다.“엄마, 형 말이 맞아요. 할아버지께서 결정하신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싸울 필요 없어요.”이 시각, 침대에 누워있던 유명훈은 호흡이 점점 더 가빠져 헐떡거리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눈앞에서 자식들이 자기 재산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지욱이...”그는 힘겹게 유지욱을 불렀다.유지욱은 평소에도 그의 말을
최현아는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지만 박민정은 그저 냉담한 얼굴로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러자 그녀는 뻘쭘해진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일은 무슨, 윤소현이 드디어 판결받았다고 해서 축하해주려고 왔지.”박민정은 분명 다른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최현아와 그의 시아버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왠지 그럴수록 더 수상했다.“감사합니다.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일 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마자 박민정이 뒤돌아서니 역시나 최현아가 빠르게 그녀의 팔을 부여잡았다.“민정아,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박민정은 이제 와서 한 식구라는 그녀의 말이 그저 가소로웠다.“도대체 할 말이 뭔가요?”그리고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최근에 할아버지 건강이 점점 악화하면서 동서랑 남준 씨가 그립기도 하고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도 보고 싶은가 봐. 혹시 오늘 밤 할아버지 뵈러 같이 가지 않을래?”최현아는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사실 박민정도 할아버지의 건강이 여태껏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늘 두 사람을 부른 이유도 아마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네, 알겠어요.” 최현아는 그제야 박민정의 팔을 놓아줬지만 그녀가 떠나가자마자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그리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껏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재수 없는 것, 운발로 지금 자리에 올라앉은 주제에.” 차에는 낯선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박민정한테 화낼 필요 없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의 주식이랑 모든 돈을 너한테 넘길 수 있도록 잘 구슬리는 거야.”그러자 최현아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나도 알아, 저번에 이미 할아버지랑 말해봤다니까? 유남준 씨랑 민정이는 괜히 고고한 척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상황이라 우리 쪽에 전부 몰리게 되어있긴 한데, 난 지금 성혁 씨 얼굴만 봐도 짜
조하랑은 그제야 화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그러면 왜 저 여자한테 찾아갔어요?”“당연히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러 갔죠. 그리고 이지원에 대해 정신감정도 의뢰했거든요. 만약 진짜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게 다 쇼하는 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요.”김인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다가 조하랑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에 제가 지원이한테 어떻게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하랑 씨도 잘 알잖아요. 만약 저를 구해줬던 사람이 형수님이었단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절대 그 애를 도와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지금은 그저 마땅히 받아야 할 벌만 받았으면 좋겠고요.”조하랑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제가 오해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저는 인우 씨가 또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여자한테 찝쩍거린다고만 생각했어요.”그녀의 말에 김인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되물었다.“하랑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순간 조하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누, 누가 질투한다는 거예요? 그저 저를 배신한 인우 씨한테 화나고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나한테 실망했을 뿐이라고요!”“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의사도 임산부가 흥분하면 아이한테 안 좋다고 말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는 다정하게 조하랑을 품에 안았는데 순간 그녀는 얼굴이 더욱 빨개진 채 온몸이 굳어버렸다.당연히 김인우도 눈치채고는 빠르게 물었다.“왜요, 부끄러워요?”“그, 그럴 리가요...”조하랑은 말까지 더듬으며 애써 덤덤한 척했다.“저도 안을 줄 알거든요?”그리고 똑같이 김인우를 꼭 안아줬는데 이번에는 김인우가 속으로 움찔했다.추운 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아 줬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멈춰졌다 가곤 했다.조하랑도 어느새 그걸 느꼈는지 재빨리 김인우를 밀쳐냈다.“됐어요. 이제 병실로 돌아가 봐야 하니까 인우 씨도 그만 돌아가요.”“저랑 같이 안 가고요?”김인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