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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술 두잔

Author: 에이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7 17:27:38

금요일 밤.

채도하에게서는 하루 종일 연락이 없었다.

송유지는 일부러 휴대전화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6화에서 자신이 먼저 거리를 두자고 말했고, 도하도 그 말을 받아들였다.

그러니 이게 맞았다.

연락이 줄어드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밤이 깊어질수록 괜히 마음이 허전했다.

유지는 침대에 누워 책을 펼쳤다가 몇 장 넘기지도 못하고 덮었다.

시간은 밤 11시 47분.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보는 순간 유지의 손이 멈췄다.

채도하.

유지는 몇 초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네.”

수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도하 씨?”

—응.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조금 느렸고.

“무슨 일이에요?”

—안 잤어?

“아직요.”

잠깐 침묵.

유지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술 마셨어요?”

도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얼마나요?”

—두 잔.

“두 잔인데 목소리가 왜 그래요?”

수화기 너머에서 도하가 작게 웃었다.

—내 목소리가 어떤데.

“평소보다 좀 느려요.”

—그래?

“네.”

다시 잠깐 조용해졌다.

유지가 먼저 물었다.

“근데 왜 전화했어요?”

도하는 대답 대신 다른 말을 했다.

—오늘 뭐 했어?

“회사 갔다 왔죠.”

—저녁은?

유지가 피식 웃었다.

“또 밥.”

—먹었어?

“네.”

—뭐 먹었는데.

“떡볶이요.”

이번에는 도하 쪽에서 한숨 같은 소리가 났다.

—그게 저녁이야?

“맛있었는데요.”

—내일은 밥 먹어.

“술 마시고도 잔소리하네요.”

도하가 아주 작게 웃었다.

유지도 따라 웃었다.

그 웃음이 끝나자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이상하게 어색하지 않았다.

유지는 괜히 이불 끝을 만지작거렸다.

“진짜 왜 전화했어요?”

도하는 한참 뒤 말했다.

—정리하다가.

유지의 손이 멈췄다.

“언니 물건이요?”

—응.

“혼자 했어요?”

—하다가 말았어.

“왜요?”

—생각보다 잘 안 되더라.

유지는 입술을 다물었다.

잠시 머릿속에 도하 혼자 유리의 물건을 정리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많이 힘들어요?”

도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좀.

유지는 눈을 감았다.

또 그냥.

하지만 이번에는 따지지 않았다.

“제가 가서 도와줄까요?”

말이 먼저 나왔다.

유지는 스스로도 멈칫했다.

분명 거리 두자고 한 건 자신인데.

도하도 잠시 침묵했다.

—괜찮아.

유지의 마음이 아주 조금 내려앉았다.

“싫으면 안 가고요.”

—싫다는 게 아니라.

도하가 말을 멈췄다.

유지는 기다렸다.

—네가 불편할까 봐.

또 그 말이었다.

도하는 늘 자신의 마음보다 유지가 불편한지를 먼저 확인했다.

“저 그렇게 불편해 보여요?”

도하는 한참 뒤 대답했다.

—가끔.

“언제요?”

—나랑 있을 때 갑자기 조용해질 때.

유지는 그대로 굳었다.

“그걸 봤어요?”

—보이니까.

“왜 그런 것도 봐요?”

이번에는 도하가 대답하지 않았다.

유지는 괜히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도하 씨.”

—응.

“왜 저를 그렇게 봐요?”

조용했다.

유지는 말하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너무 직접적이었다.

도하가 한참 뒤 낮게 말했다.

—오래 봤잖아.

“언니랑 있을 때부터?”

—응.

충분히 납득 가능한 말이었다.

가족처럼 오래 봤으니까.

유지는 괜히 기대했던 자신이 싫어졌다.

“그렇구나.”

도하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애매했다.

잠시 뒤 도하가 말했다.

—유지야.

“네.”

—요즘 왜 나 피하는지 물어봐도 돼?

유지의 손끝이 굳었다.

이번에는 도하가 먼저 물었다.

“제가요?”

—응.

“거리를 두자고 했잖아요.”

—그건 알아.

“그럼 됐죠.”

—그런데.

도하가 말을 멈췄다.

유지는 숨을 조금 죽였다.

—평소랑 다르니까.

그게 다였다.

마음이 쓰인다거나.

서운하다거나.

보고 싶었다는 말은 없었다.

유지는 괜히 아쉬웠다.

“신경 쓰였어요?”

도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눈에는 들어왔지.

유지는 피식 웃었다.

“눈에 들어왔다.”

—응.

“딱 그 정도예요?”

이번에는 도하가 잠깐 웃었다.

—왜, 더 있어야 해?

유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요.”

이번에는 자신이 먼저 물러났다.

도하도 더 묻지 않았다.

잠시 후 그가 말했다.

—이번 주말에는 오지 마.

유지의 표정이 굳었다.

“왜요?”

—내가 좀 더 정리해둘게.

“제가 가는 게 싫어서요?”

—아니.

대답은 빨랐다.

유지는 그 한 박자를 놓치지 않았다.

“그럼 왜요?”

—어머니도 신경 쓰시고.

“그게 다예요?”

도하는 잠시 조용했다.

—그게 제일 큰 이유지.

완전히 아니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게 더 신경 쓰였다.

유지는 괜히 목소리를 낮췄다.

“알겠어요.”

—화났어?

“아니요.”

—목소리가 그런데.

“도하 씨는 진짜 사람 목소리까지 다 듣네요.”

—들리니까.

유지는 또 말이 막혔다.

그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별거 아닌 말처럼 해놓고.

사람을 멈추게 했다.

“됐어요. 늦었으니까 자요.”

—응.

“잘 자요.”

—유지야.

끊으려던 손이 멈췄다.

“왜요?”

도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지는 기다렸다.

수화기 너머로 그의 숨소리만 들렸다.

—아니다.

“또요?”

—잘 자.

“도하 씨.”

—응.

“술 마시고 전화해놓고 말하다 마는 거 진짜 별로예요.”

수화기 너머에서 아주 낮은 웃음이 들렸다.

—미안.

“다음에는 끝까지 말해요.”

도하가 잠시 조용해졌다.

—그럴 수 있으면.

유지의 심장이 순간 철렁했다.

“뭐라고요?”

도하는 바로 말을 바꿨다.

—아무것도 아니야.

“또.”

—잘 자.

이번에는 전화가 끊겼다.

유지는 한동안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그대로 있었다.

그럴 수 있으면.

도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술 때문이었을까.

그냥 말이 꼬인 걸까.

유지는 수화기 대신 꺼진 화면을 바라봤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은 평소보다 더 많은 걸 들은 기분이었다.

채도하는 소파에 기대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비어 있는 술잔 하나와 반쯤 남은 병이 있었다.

정말 두 잔뿐이었다.

취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도하는 통화가 끝난 화면을 한동안 바라봤다.

이번 주말에는 오지 마.

그 말은 자신이 했다.

거리를 두자고 한 것도 유지였다.

그럼 그대로 두면 됐다.

그게 맞았다.

도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몇 초 뒤.

다시 들었다.

송유지와의 통화 기록이 화면 맨 위에 있었다.

그는 화면을 껐다.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고도 잠시 후 또 확인했다.

새로운 메시지는 없었다.

도하는 낮게 중얼거렸다.

“왜 자꾸 보지.”

대답은 없었다.

그는 유리의 물건이 담긴 상자 쪽을 바라봤다.

그러다 다시 휴대전화로 시선이 돌아갔다.

그날 도하는 처음으로 인정했다.

송유지가 신경 쓰이긴 했다.

다만 그게 왜 그런지는.

아직 굳이 알아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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