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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오지 말라고 한 이유

ผู้เขียน: 에이르
last update วันที่เผยแพร่: 2026-09-07 17:30:20

주말이 왔다.

송유지는 아침부터 괜히 휴대전화를 자주 확인했다.

채도하에게서는 아무 연락도 없었다.

당연했다.

이번 주말에는 오지 말라고 한 사람이 도하였다.

그런데도 유지는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다.

혼자 정리한다고 했는데 괜찮은지.

어젯밤 술까지 마셨던 사람이 제대로 잤는지.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더 생각났다.

결국 오전 열한 시가 조금 넘었을 때 유지가 메시지창을 열었다.

—정리하고 있어요?

한참 바라보다 지웠다.

다시 썼다.

—밥은 먹었어요?

또 지웠다.

“아, 진짜.”

유지는 휴대전화를 소파 위에 내려놨다.

선을 긋자고 한 건 자신이었다.

도하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자신이 먼저 그 사람의 하루를 궁금해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집에만 있으면 계속 생각날 것 같아 밖으로 나왔다.

혼자 카페라도 가려고 했는데 마침 나현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 뭐 해?

유지는 바로 답했다.

—아무것도.

—그럼 나와. 쇼핑이나 하자.

좋은 핑계였다.

유지는 한 시간 뒤 나현을 만났다.

둘은 옷을 구경하고, 늦은 점심을 먹고, 별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 같으면 충분히 즐거웠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유지의 집중력은 자꾸 끊겼다.

“너 오늘 왜 그래?”

나현이 물었다.

“뭐가?”

“딴생각하잖아.”

“안 했는데.”

“세 번째야.”

나현은 유지의 얼굴을 빤히 봤다.

“진짜 남자 생겼어?”

유지의 손이 순간 멈췄다.

“아니.”

“그럼 좋아하는 사람?”

“없어.”

대답은 빨랐다.

너무 빨라서 오히려 스스로도 어색했다.

나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수상한데.”

“진짜 아니라니까.”

“그럼 소개팅이나 해.”

유지가 고개를 들었다.

“소개팅?”

“응. 괜찮은 사람 있어.”

유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현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변호사인데 성격 괜찮고, 나이도 너랑 두 살 차이밖에 안 나.”

화면에 한 남자의 사진이 떴다.

깔끔한 인상이었다.

보통이라면 한 번쯤 만나볼 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좋아해도 되는 사람.

아무에게도 설명할 필요 없는 사람.

유지는 그 문장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좋아해도 되는 사람.

“할래?”

나현이 재촉했다.

유지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진짜?”

“한번 만나볼게.”

나현이 바로 웃었다.

“잘 생각했어.”

유지도 따라 웃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속은 편하지 않았다.

저녁 여섯 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유지는 신발을 벗고 소파에 앉았다.

휴대전화를 켰다.

채도하에게서 연락은 여전히 없었다.

유지는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 스스로 피식 웃었다.

“뭘 기대한 거야.”

그 순간 전화가 울렸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화면을 확인했다.

엄마였다.

유지는 괜히 실망한 자신이 싫어졌다.

“응, 엄마.”

—유지야, 지금 어디야?

“집.”

—잘됐다. 잠깐 나 좀 도와줄래?

“뭔데?”

—도하한테 반찬 좀 가져다주려고 했는데 갑자기 약속이 생겼어.

유지의 표정이 굳었다.

“도하 씨한테?”

—응. 며칠 전에 해놓은 건데 아직 못 줬어.

“내일 주면 되잖아.”

—내일까지 두면 맛없어져. 네가 좀 가져다줘.

유지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번 주말에는 오지 말라고 했다.

도하가 분명 그렇게 말했다.

“엄마가 직접 연락해.”

—전화했는데 안 받아.

유지의 손끝이 멈췄다.

“전화를 안 받아?”

—응. 아까부터.

괜히 불안해졌다.

별일 아닐 수도 있었다.

정리하다가 휴대전화를 못 봤을 수도 있고.

잠들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젯밤 늦은 전화가 떠올랐다.

“알겠어.”

결국 유지가 말했다.

“내가 가져다줄게.”

도하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일곱 시 반이었다.

유지는 반찬통이 든 가방을 들고 현관 앞에 섰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에 잠시 망설였다.

오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도 엄마 부탁 때문에 온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시 눌렀다.

여전히 조용했다.

유지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저 앞이에요.

메시지를 보냈다.

읽지 않았다.

문 앞에 가방만 두고 갈까 고민하던 순간.

안쪽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쿵.

유지의 표정이 굳었다.

“도하 씨?”

대답이 없었다.

“채도하 씨?”

유지는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뒤 안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렸다.

도하가 서 있었다.

평소와 달랐다.

셔츠 소매는 걷혀 있었고 머리도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유지는 안도부터 했다.

“뭐예요. 전화도 안 받고.”

도하가 유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첫마디가 나왔다.

“왜 왔어?”

유지는 순간 기분이 상했다.

“엄마가 반찬 가져다주래서요.”

가방을 들어 보였다.

“이번 주에는 오지 말라면서요. 저도 알아요.”

도하의 시선이 가방으로 내려갔다.

“그냥 문 앞에 두고 가지.”

유지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제가 그렇게 불편해요?”

“그런 뜻 아니야.”

“근데 왜 자꾸 오지 말라고 해요?”

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유지는 집 안쪽을 슬쩍 봤다.

거실에는 상자들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유리의 물건들이었다.

지난번보다 훨씬 많이 정리되어 있었다.

“혼자 진짜 많이 했네요.”

도하가 문을 조금 더 닫으려 했다.

“반찬 줘. 들어가.”

그 반응이 이상했다.

평소 같으면 들어와서 물이라도 마시라고 했을 사람이다.

유지는 문틈 사이로 다시 집 안을 바라봤다.

그때 보였다.

거실 바닥에 떨어진 사진 한 장.

사진 속에는 송유리와 채도하가 함께 웃고 있었다.

유지는 입을 다물었다.

조금 전 들린 소리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도하는 오늘 혼자 언니의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유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도하가 낮게 말했다.

“오늘은 그냥 가.”

“괜찮아요?”

“응.”

“진짜요?”

“응.”

대답은 단호했지만 얼굴은 그렇지 않았다.

유지는 가방을 건넸다.

도하가 받아 들었다.

그 순간 그의 손등에 작은 상처가 보였다.

“손 왜 그래요?”

도하가 바로 손을 내렸다.

“별거 아니야.”

“피 나잖아요.”

“정리하다 긁혔어.”

유지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저한테는 손목 긁힌 걸로 연고까지 사다주더니.”

도하가 잠깐 멈췄다.

유지는 그의 손을 다시 봤다.

“약 발랐어요?”

“괜찮아.”

“안 발랐죠?”

“유지야.”

“잠깐만 들어갈게요.”

“안 돼.”

대답이 너무 빨랐다.

유지가 멈췄다.

둘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왜요?”

도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유지는 그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평소보다 훨씬 굳어 있었다.

“제가 보면 안 되는 거라도 있어요?”

“그런 거 아니야.”

“그럼요?”

도하가 시선을 피했다.

“오늘은 네가 여기 있는 게 좀 그래.”

유지의 가슴이 묘하게 내려앉았다.

“무슨 뜻인데요?”

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현관문 손잡이를 잡은 채 서 있었다.

유지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돌아서려는데 도하가 불렀다.

“유지야.”

유지가 돌아봤다.

도하는 잠시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뭔데요?”

“아무것도 아니야.”

또 그 말이었다.

유지는 씁쓸하게 웃었다.

“도하 씨는 늘 아무것도 아니래.”

그리고 돌아섰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유지는 괜히 속이 답답했다.

왜 자신을 밀어내는지 알 수 없었다.

언니 물건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인지.

혼자 있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정말 자신이 불편해서인지.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유지가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현관문이 다시 열렸다.

“유지야.”

유지가 돌아봤다.

도하가 복도에 서 있었다.

이번에는 손에 사진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이거.”

도하가 다가와 사진을 내밀었다.

유지는 받아 들었다.

사진 속에는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자신과 송유리가 함께 웃고 있었다.

“이게 왜 여기 있어요?”

“유리 지갑 안에 있었어.”

유지는 사진을 바라봤다.

자신도 잊고 있던 사진이었다.

“가져가.”

“도하 씨가 가지고 있어도 되잖아요.”

도하는 잠시 사진을 바라봤다.

“네 사진이잖아.”

유지의 손끝이 아주 조금 굳었다.

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그런데 도하는 ‘유리 사진’이라고 하지 않았다.

‘네 사진’이라고 했다.

유지가 고개를 들었다.

도하는 이미 한 걸음 물러나 있었다.

“조심해서 가.”

“도하 씨.”

“응.”

“오늘 저 오지 말라고 한 이유.”

도하의 표정이 아주 조금 굳었다.

“정말 혼자 있고 싶어서였어요?”

몇 초 동안 대답이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 했다.

유지가 버튼을 눌러 문을 다시 열었다.

도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네가 오면.”

말이 끊겼다.

유지의 심장이 빨라졌다.

“제가 오면요?”

도하가 시선을 내렸다.

잠시 후 말했다.

“자꾸 손이 멈춰.”

유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요?”

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몇 초 뒤.

“유리 물건 정리하는데 네가 옆에 있으면 예전 생각이 너무 많이 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유였다.

유지와 유리는 자매였고.

셋이 함께했던 시간도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지는 완전히 납득되지 않았다.

“그게 다예요?”

질문이 먼저 나왔다.

도하의 시선이 유지에게 올라왔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

도하는 다시 평소의 얼굴로 돌아왔다.

“그럼 뭐가 더 있어야 해?”

유지는 입을 다물었다.

또 그 말이었다.

조금만 더 들어가려 하면 도하는 늘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없어요.”

유지는 사진을 꼭 쥐었다.

“갈게요.”

“응.”

이번에는 도하가 붙잡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유지는 내려가는 동안 사진만 바라봤다.

언니와 자신.

두 사람이 나란히 웃고 있었다.

그런데 머릿속에는 다른 문장만 계속 남았다.

네가 오면 자꾸 손이 멈춰.

예전 생각이 많이 나서.

그 말만 보면 충분히 설명이 됐다.

그런데 도하는 왜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왜 오지 말라고 했고.

왜 현관문까지 닫으려 했고.

왜 마지막 순간에야 다시 따라 나왔을까.

유지는 사진을 뒤집었다.

뒤에는 유리의 글씨가 남아 있었다.

‘우리 유지. 여전히 철없음.’

유지는 작게 웃었다.

그 순간 가슴 한쪽이 아렸다.

언니였다.

이 모든 관계의 시작에는 언제나 언니가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더 이상한 생각을 하면 안 됐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도하가 말하지 않은 뒷부분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

유지는 점점 더 궁금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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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은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됐다   23. 보고 싶지 않은 사진

    토요일 오후. 송유지는 엄마와 약속한 카페로 향하면서도 전날 밤 일을 계속 떠올렸다. 아파트 앞에서 한 시간 넘게 앉아 있던 채도하. 기다린 게 아니라고 끝까지 우기던 사람. 그리고 자신이 말했다. 누군가 자꾸 신경 쓰인다고. 좋아하는 건지 아직 모르겠다고. 도하는 그 말을 듣고도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혹시 자신이냐고도. 그저. —잘 모르겠으면 급하게 결정하지 마. 그 말뿐이었다. 유지는 카페 문을 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대체 뭘 기대하는 거야.” 엄마는 이미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기.” 유지는 맞은편에 앉았다. “일찍 왔네.” “근처에 볼일 있어서.” 주문한 음료가 나오고 한동안 별것 아닌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러다 엄마가 휴대전화를 만지며 말했다. “아, 맞다.” “뭐?” “도하 소개해주려고 했던 사람.” 유지의 손이 멈췄다. 또 그 이야기였다. “왜?” “사진 보여줄까?” “나한테 왜 보여줘.” 대답은 빨랐다. 엄마가 눈썹을 올렸다. “왜 그렇게 정색해?” “정색 안 했어.” “궁금하지도 않아?” “안 궁금해.” 거짓말이었다.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화면을 몇 번 넘겼다. “도하한테도 보냈는데.” 유지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휴대전화로 향했다. “봤대?” “응. 사진은 봤대.” 21화에서 도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진만 보고 뭘 알아. 그때는 별 관심 없는 것처럼 말했었다. 엄마가 휴대전화를 유지 쪽으로 돌렸다. “괜찮지?” 보지 않으려고 했다.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결국 시선이 화면에 닿았다. 사진 속 여자는 단정한 인상이었다. 긴 머리. 차분한 미소. 잘 꾸민 사람. 그리고. 도하 옆에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여자였다. 유지는 바로 시선을 거뒀다. “괜찮네.” 말은 아무렇지 않게 했다. 하지만 가슴 한쪽이 묘하게 답답했다. “그렇지?” 엄마는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성격도 좋대. 직장도 괜찮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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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 송유지는 퇴근 준비를 하면서도 이상하게 휴대전화가 신경 쓰였다. 오늘은 강현민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그리고 채도하는 말했다. 늦어지면 연락하라고. 현민이 데려다줄 수도 있다고 했는데도. 그래도 연락은 하라고. 유지는 그 말을 떠올리다 스스로 웃었다. “왜 내가 신경 쓰고 있어.” 채도하가 자신을 챙기는 건 이제 익숙했다. 문제는 그 익숙함이었다. 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짧은 메시지 하나에도 요즘은 이유를 찾게 됐다. 도하도 알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행동이 유지에게 신경 쓰이게 한다는 걸. 그런데도 멈추지 않았다. 왜일까. 유지는 그 질문을 애써 밀어냈다. 오늘은 현민을 만나는 날이었다. 다른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강현민은 오늘도 먼저 와 있었다. “오늘은 안 피곤해 보여요.” 유지가 웃었다. “지난번에 제가 그렇게 피곤해 보였어요?” “조금요.” “미안해요.” “왜 미안해요.” 현민은 자연스럽게 의자를 빼줬다. “오늘 즐거우면 됐죠.” 좋은 사람이었다. 유지는 다시 한번 그렇게 생각했다. 현민은 자신을 헷갈리게 하지 않았다. 좋으면 좋다고 말했고. 만나고 싶으면 약속을 잡았다. 무엇을 궁금해하는지도 분명했다. 채도하와는 달랐다. 둘은 저녁을 먹고 근처를 조금 걸었다. 현민이 말했다. “요즘 유지 씨한테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뭔데요?” “혹시 마음에 둔 사람 있어요?” 유지의 걸음이 아주 잠깐 느려졌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가끔.” 현민은 웃었다. “저랑 있는데 다른 사람 생각하는 얼굴을 해서.” 유지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제가요?” “제가 틀렸으면 좋겠는데.” 현민의 말투는 부드러웠다. 책망하는 느낌도 없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미안했다. 유지는 바로 부정하지 못했다. 현민도 그걸 알아차린 듯 더 묻지 않았다. “괜찮아요.” “현민 씨.” “아직 제가 물어볼 단계도 아니잖아요.” 유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해요.”

  • 죽은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됐다   21.괜히 듣고 싶지 않은 말

    월요일 오전. 송유지는 출근하자마자 바빴다. 주말 동안 쌓인 메일을 확인하고, 회의 자료를 정리하고, 팀장에게 수정안을 넘겼다. 정신없이 오전을 보내다 보니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휴대전화를 제대로 확인했다. 채도하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점심 먹어. 유지는 화면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도하는 여전히 이런 식이었다. 다정하게 묻기보다 짧게 말하고. 챙겨놓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사람. 유지는 답장을 보냈다. —먹을 거예요. 몇 초 뒤 읽음 표시가 떴다. —진짜? 유지는 웃었다. —네. —사진 보내. 유지는 눈썹을 올렸다. —왜요? —안 믿겨서. 유지는 점심으로 받은 샐러드와 샌드위치 사진을 찍어 보냈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이건 밥 아니잖아. —샌드위치인데요. —저녁 제대로 먹어. —또 잔소리. —응. 유지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도하와 이렇게 사소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그게 가장 문제였다. 오후 세 시쯤. 강현민에게 메시지가 왔다. —이번 주 금요일 저녁 시간 괜찮으세요? 유지는 한참 화면을 바라봤다. 현민과는 이미 몇 번 만났다. 좋은 사람이었다. 부담스럽지 않았고, 대화도 편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음 약속을 잡을 때마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좋아서 만나고 싶은 게 아니라. 만나도 되니까 만나는 느낌. 유지는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네. 괜찮아요. 곧바로 답장이 왔다. —좋아요. 이번엔 제가 장소 정할게요. 유지는 짧게 웃었다. 그 순간 책상 위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채도하였다. —금요일 약속 있어? 유지는 그대로 멈췄다. 시간이 묘했다. 방금 현민과 약속을 잡은 직후였다. 물론 우연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지는 일부러 답장을 늦게 보냈다. —왜요? 읽음. 잠시 뒤. —그냥 물어봤어. 유지는 미간을 찌푸렸다. 또 그냥

  • 죽은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됐다   20.아무렇지 않은 얼굴

    일요일 저녁.송유지가 부모님 집에 도착했을 때, 채도하는 이미 와 있었다.거실 소파에 앉아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테이블 한쪽에는 그가 가져온 과일 상자가 놓여 있었다.유지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다가 잠깐 멈췄다.예상은 했지만 막상 얼굴을 보니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도하와 마지막으로 제대로 마주한 뒤 며칠이 지났다.연락은 했다.하지만 전처럼 자주 하지는 않았다.유지도 일부러 먼저 연락하지 않았고, 도하 역시 별다른 이유 없이 메시지를 보내지는 않았다.그래서 괜찮아진 줄 알았다.막상 마주 보니 아니었다.도하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왔네.”“네.”짧은 인사.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신경 쓰였다.“유지 왔니? 손 씻고 앉아.”주방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유지는 가방을 내려놓고 식탁 쪽으로 갔다.잠시 뒤 가족들이 자리에 앉았다.도하는 유지 맞은편이었다.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반찬을 더 꺼냈다.“도하 너 좋아하는 갈비 해놨어.”“많이 안 하셔도 되는데.”“뭘. 너 요즘 제대로 먹고 다니긴 해?”유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도하와 눈이 마주쳤다.그가 아주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유지는 곧바로 시선을 피했다.자신에게는 그렇게 밥을 먹으라고 잔소리하면서.정작 본인도 똑같았다.식사는 평범하게 시작됐다.회사 이야기.날씨 이야기.아버지가 요즘 시작한 운동 이야기.유지는 의도적으로 도하를 보지 않았다.그런데 신경을 안 쓰려고 할수록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더 잘 느껴졌다.컵을 드는 손.엄마 말에 가끔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잡채 접시가 비어갈 때쯤 아무 말 없이 접시를 유지 쪽으로 밀어놓는 행동까지.유지가 젓가락을 멈췄다.도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국을 먹고 있었다.“이거 왜 이쪽으로 줘요?”“좋아하잖아.”“도하 씨도 먹어요.”“난 됐어.”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도하는 예전부터 유지 먹는 건 잘 알더라.”유지의 손이 굳었다.도하도 잠깐 멈췄다

  • 죽은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됐다   19. 그러면 안 되는 이유

    일요일 오전. 송유지는 평소보다 늦게 눈을 떴다. 햇빛이 커튼 틈으로 길게 들어와 있었다. 휴대전화를 확인하자 알림은 몇 개 있었지만, 채도하에게서 온 메시지는 없었다. 유지는 화면을 한참 바라보다가 이불을 걷어냈다. 어젯밤 통화가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잘 안 되네. 그리고. —내가 그러면 안 될 것 같으니까. 그 말이 가장 신경 쓰였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게 뭘까. 자신에게 신경 쓰는 것? 현민을 신경 쓰는 것? 아니면. 그보다 더한 어떤 감정. 유지는 세면대 앞에 서서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생각하지 말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늦었다. 도하가 하지 않은 말까지 자꾸 상상하게 됐다. 점심 무렵.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 저녁에 시간 되니? 도하도 온대. 유지는 메시지를 보고 한참 멈춰 있었다. 도하도 온다. 별것 아닌 문장이 심장을 괜히 빠르게 만들었다. —응. 갈게. 답장을 보내고 나서 유지는 옷장을 열었다. 평소 같으면 아무 옷이나 골랐을 텐데, 오늘은 괜히 몇 벌을 꺼냈다 다시 넣었다. 그러다 스스로 어이가 없어졌다. “엄마 집 가는데 뭘.” 결국 가장 평범한 니트를 골랐다.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저녁 여섯 시. 유지가 집에 들어갔을 때 도하는 이미 와 있었다. 거실에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하가 현관 쪽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다. “왔어?” 평소와 같은 목소리였다. 유지도 평소처럼 대답했다. “네.” 끝. 그런데 이상하게 어젯밤 통화 때문에 모든 게 다르게 느껴졌다. 도하가 물을 마시는 것도. 소매를 한 번 접어 올리는 것도. 자신을 잠깐 바라보는 것도. 전부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지야.” 어머니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응?” “접시 좀 가져다줄래?” “아, 응.” 유지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릇을 꺼내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도하였다. “뭐 찾으세요?” “물.

  • 죽은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됐다   18.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토요일 오후.송유지는 거울 앞에 서서 귀걸이를 한 번 만졌다.평소보다 조금 신경 쓴 옷차림이었다.너무 꾸민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나온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정도.현민을 만나는 날이었다.유지는 가방을 들다가 휴대전화를 확인했다.아무 연락도 없었다.채도하에게서도.당연했다.어제 자신이 말했다.헷갈리니까 그런 말 하지 말라고.도하는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잘 만나고 오라고까지 했으니까.유지는 휴대전화를 가방 안에 넣었다.“오늘은 진짜 신경 쓰지 말자.”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약속 장소에는 강현민이 먼저 와 있었다.유지를 발견한 현민이 웃었다.“오늘은 제가 먼저 왔네요.”“많이 기다렸어요?”“아니요. 한 오 분?”“그럼 다행이고요.”현민은 자연스럽게 레스토랑 문을 열어줬다.유지는 안으로 들어가며 가볍게 웃었다.편했다.현민과 있으면 어렵지 않았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됐고, 상대의 표정을 하나하나 읽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다.그게 좋은 점이었다.“지난번에 파스타 좋아한다고 했죠?”“기억했어요?”“그 정도는 기억하죠.”유지는 순간 멈칫했다.기억.별것 아닌 단어인데 또 다른 사람이 떠올랐다.—오늘은 약속 없다고 했잖아.—그걸 기억해요?—기억나니까.유지는 바로 생각을 끊었다.“유지 씨?”“네?”“뭐 드실래요?”“아, 저는 이거요.”유지는 메뉴판을 가리켰다.현민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식사는 편안하게 이어졌다.현민은 회사 이야기를 했고, 유지는 적당히 웃었다.가끔 유리 얘기가 떠오를 때도 있었지만, 굳이 꺼내지 않았다.오늘만큼은 다른 생각을 하고 싶었다.“요즘 좀 괜찮아 보여요.”현민이 말했다.“제가요?”“처음 봤을 때는 계속 어딘가 신경 쓰는 얼굴이었거든요.”유지가 웃음을 멈췄다.“그랬어요?”“네.”현민이 물잔을 내려놓았다.“누구 기다리는 사람처럼.”유지의 손끝이 미세하게 굳었다.똑같은 말을 나현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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