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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9화

Author: 금붕어
채혈을 마친 뒤, 최수빈은 결과를 기다리며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대합실에는 사람이 가득했고 그녀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손에 쥔 검사지를 내려다봤다. 무의식중에 종이 가장자리를 몇 번이고 문질렀다.

잠시 후 육민성이 밖에서 들어왔다. 손에는 따뜻한 우유 한 컵이 들려 있었다.

“우유 좀 마시고 체력 보충해.”

최수빈은 말없이 컵을 받아 몇 모금 마셨다. 따뜻한 우유가 목을 타고 내려가자 속을 달래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채혈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아직 십여 분, 하지만 그 짧은 시간조차 끝없이 길게 느껴졌다.

결과가 양성일까 봐, 모든 계획이 한순간에 어그러질까 봐 두려웠다.

또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변화 앞에 서게 될까 봐 막연한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너무 긴장하지 마.”

육민성은 최수빈이 굳어있는 것을 알아채고 조용히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을 덮었다. 체온이 그대로 전해졌다.

“결과가 어떻든 다 해결할 수 있어.”

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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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022화

    최수빈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꾹 눌러 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하은을 응시했다.“하은 씨, 제가 민혁 씨와 어떤 결혼생활을 했는지는 하은 씨가 평가할 일이 아니에요. 남의 과거를 이러쿵저러쿵 짐작할 시간에, 지금 본인 상황이나 잘 챙기세요. 세상 모든 사람이 하은 씨처럼, 배 속 아이 하나로 자기 자리를 굳힐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임하은의 얼굴에 있던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지며 표정이 삽시간에 험악해졌다.“수빈 씨, 그게 무슨 말이에요?”“별다른 뜻 없어요.”최수빈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투는 한없이 담담했다.“저는 이만 할 일이 있어서요. 하은 씨의 식사에 더는 함께하지 않겠습니다.”말을 마치고 나서 최수빈은 곧장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뒤에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임하은과 어찌할 바를 몰라 시선을 피하는 동료들만 남았다.자리에 돌아온 최수빈은 컴퓨터 화면에 멍하니 시선을 둔 채 한동안 손을 움직이지 못했다.임하은의 말은 거칠고 모욕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녀를 더욱 냉정하게 만들었다.주민혁과의 일은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었고 떠올릴수록 쓰라린 실수였다.그리고 뜻밖에 찾아온 이 아이는 그 실수의 연장선처럼 느껴졌다.그녀는 이 아이가 자신의 미래에 짐이 되게 할 수 없었다. 더더욱 주예린의 성장을 방해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됐다.이러한 생각에 이르자 최수빈의 눈빛이 서서히 단단해졌다.그녀는 컴퓨터를 켜고 남은 인수인계 문서를 빠르게 처리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이 남아 있었다.최대한 빨리 절차를 끝낼 것.이 뜻밖의 상황을 정리할 것.그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점심시간, 최수빈의 휴대폰이 울렸다. 육민성이었다.“인수인계는 어디까지 했어? 내가 데리러 갈까?”“거의 끝났어요. 오후면 마무리돼요.”최수빈의 목소리에는 피곤한 기색이 엿보였다.“선배... 저 생각해봤는데, 이 아이는 결국 지우기로 했어요.”전화기 너머가 몇 초간 조용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021화

    최수빈은 발소리를 죽여 딸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앳된 얼굴로 깊이 잠든 아이를 바라보는 순간, 가슴 한켠이 시큰거렸다.주예린을 복잡한 환경 속에서 키우고 싶지 않았고 더더욱 이 뜻밖의 아이가 딸에게 짐이 되는 일은 바라지 않았다.그날 밤, 최수빈은 거의 한숨도 자지 못했다.거실 소파에 앉아 창밖으로 스며드는 달빛을 바라보며 육민성의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지만 처음 세운 생각은 끝내 바뀌지 않았다.동이 트기 직전이 되어서야 그녀는 몸을 일으켜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항공우주 연구원에서 남은 마지막 인수인계 절차를 마치기 위해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잠에서 깬 육민성은 핏발 서린 최수빈의 눈을 보고 가슴이 미어졌다.“오늘은 그냥 쉬는 게 어때? 내가 항공우주 연구원 쪽에 말해볼게.”“괜찮아요. 정말 마지막 절차만 남았거든요. 이것만 끝내면 다 정리돼요.”최수빈은 애써 웃으며 가방을 들었다.“선배는 집에서 예린이랑 같이 있어 줘요. 금방 다녀올게요.”항공우주 연구원에 도착해서 보니 사무실은 이미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다.최수빈이 막 자리에 도착했을 때, 조금 떨어진 소파에 임하은이 앉아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앞에는 고급스러운 보온 도시락이 놓여 있었는데 몇몇 여자 동료들이 둘러서서 수군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하은 씨, 주 대표님 정말 세심하시네요. 매일 임산부 식단도 챙겨주시고 너무 부러워요.”“그러게요. 영양사한테 따로 맞춘 식단이라던데 맛도 있고 몸에도 좋다면서요? 진짜 행복하시겠어요.”임하은은 흐뭇한 표정을 지은 채 있다가 최수빈을 보자 곧바로 손짓했다.“수빈 씨, 이리 와서 같이 좀 먹어요. 민혁 씨가 너무 많이 챙겨와서 혼자서는 다 못 먹겠어요.”최수빈은 사양하려 했지만 끝내 옆에 있던 동료에게 떠밀리듯 자리에 끌려갔다.임하은이 도시락통 뚜껑을 열자 정갈하게 담긴 음식에서 먹음직스러운 향이 퍼져 나왔다.임하은은 갈비 한 점을 집어 최수빈의 앞 접시에 올려놓으며 일부러 호기심을 가장한 말투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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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하은 씨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좀 이상해. 아이 아버지라면 보일 법한 모습이 아니잖아.”최수빈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육민성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만약 자기 아이가 아니라면 임하은 씨 성격상 이렇게까지 매달릴 필요도 없고, 굳이 요란하게 약혼식까지 할 이유도 없죠. 그 여자가 원하는 건 언제나 주씨 가문 며느리라는 자리였어요. 아이는 그 지위를 굳히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요.”육민성은 코웃음을 쳤다. 말투에는 노골적인 냉소가 섞여 있었다.“그 말도 맞네. 너 예전에 주민혁 씨가 주시후한테 집착하던 거 기억나? 친자 확인까지 하고 밖에서는 그렇게 감싸더니 결과가 나오고 나서 어떻게 했더라? 친자가 아니라는 걸 알자마자 바로 선을 그었잖아. 결국 그 사람이 집착하는 건 누군가가 아니라, 자기의 것이라는 사실뿐이야.”그의 말은 차가운 물처럼 최수빈의 머리를 단번에 식혀 주었다.‘그래, 민혁 씨의 관심은 늘 조건부였지.’지금 임하은의 아이에게 보이는 태도 역시, 임하은 개인이 아니라 ‘주씨 가문의 혈통’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최수빈은 한결 담담해진 목소리로 말했다.“그 사람은 언제나 자기감정만 생각해요. 자신의 우유부단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지는 한 번도 고민하지 않죠.”육민성은 그녀의 손을 잡아 가볍게 두드렸다.“이제라도 그렇게 본다니 다행이네. 앞으로는 그 사람의 태도에 휘둘리지 마. 우리의 삶은 우리가 잘살면 돼.”그때, 대합실 전광판이 켜지며 최신 검사 결과가 순서대로 올라가기 시작했다.최수빈의 심장이 갑자기 빨라졌다. 그녀는 숨을 죽인 채 화면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이름과 검사 항목을 확인하는 순간 벌떡 일어섰다.육민성도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천천히.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은 빠르게 결과 수령 창구로 향했다.이내 출력된 검사지를 받아 들었는데 긴장한 탓에 최수빈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천천히 종이를 펼쳤다.HCG 수치가 또렷하게 인쇄돼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019화

    채혈을 마친 뒤, 최수빈은 결과를 기다리며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대합실에는 사람이 가득했고 그녀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손에 쥔 검사지를 내려다봤다. 무의식중에 종이 가장자리를 몇 번이고 문질렀다.잠시 후 육민성이 밖에서 들어왔다. 손에는 따뜻한 우유 한 컵이 들려 있었다.“우유 좀 마시고 체력 보충해.”최수빈은 말없이 컵을 받아 몇 모금 마셨다. 따뜻한 우유가 목을 타고 내려가자 속을 달래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채혈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아직 십여 분, 하지만 그 짧은 시간조차 끝없이 길게 느껴졌다.결과가 양성일까 봐, 모든 계획이 한순간에 어그러질까 봐 두려웠다.또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변화 앞에 서게 될까 봐 막연한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너무 긴장하지 마.”육민성은 최수빈이 굳어있는 것을 알아채고 조용히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을 덮었다. 체온이 그대로 전해졌다.“결과가 어떻든 다 해결할 수 있어.”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려 했다.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들어 보니 엘리베이터 쪽에서 주민혁이 임하은을 부축한 채 나오고 있었다. 임하은은 한 손으로 배를 감싸고 있었는데 막 산전 검진을 마친 듯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어려 있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어오다 마침 대기 구역 근처에서 멈춰 섰다.그렇게 최수빈과 육민성을 발견한 순간, 주민혁의 걸음이 멈췄다.그의 시선이 최수빈에게 꽂혔고 이내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아직 검사 결과 안 나왔어? 어디 문제라도 있는 거야?”무심코 튀어나온 걱정 어린 말투였다. 그의 시선은 오롯이 최수빈에게만 가 있었고, 바로 옆에 선 임하은의 얼굴이 굳어 가는 것은 눈치채지도 못했다.그 순간, 육민성이 최수빈의 손을 더 꽉 잡았다.그는 시선을 들어 주민혁을 바라보며 한층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주 대표님, 약혼녀 앞에서 제 여자친구를 그렇게 걱정하시는 건 좀 부적절하지 않습니까?”‘여자친구’라는 단어를 유독 또렷하게 눌러 말했다. 그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018화

    “그...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진 않았어요.”최수빈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고 손끝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그녀가 당황해하는 것을 알아차린 의사는 말투를 한층 누그러뜨렸다.“괜찮아요.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이후에 CT 검사가 필요할 수도 있어서 임신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해요. 우선 혈액 검사로 HCG 수치를 확인해 봅시다. 결과가 나오면 바로 알 수 있어요.”최수빈은 의사가 건네준 검사지를 꽉 쥔 채 멍하니 진료실을 나섰다.복도의 조명이 유난히 눈부셔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무슨 일이야? 검사 결과 나왔어?”육민성이 빠르게 다가왔다.창백한 얼굴과 초점 없는 눈빛을 본 순간, 그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곧바로 최수빈의 팔을 부드럽게 붙잡았다.“어디 불편해?”그의 걱정 어린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최수빈의 마음속에 억눌러 두었던 불안이 한꺼번에 밀려왔다.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다잡으려 했지만 목소리는 끝내 흔들렸다.“민성 선배... 나, 임신했을 수도 있대요.”“임신?”육민성의 눈동자가 순간 작게 흔들렸다.예상치 못한 말에 잠시 굳어 있었지만 그는 곧 손에 힘을 주며 최수빈을 지탱했고 이내 놀란 기색을 감췄다.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괜찮아. 우선 피 검사부터 하자. 결과 나오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아. 어떤 상황이든 내가 옆에 있을게.”최수빈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육민성을 바라봤다.“이제 천공에 가기로 막 결정했고 예린이도 돌봐야 하는데... 만약 정말 임신이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지금은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말자. 결과부터 보자고.”육민성은 그녀를 부축해 복도 의자에 앉힌 뒤 앞에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맞췄다.“혹시 정말 임신이라면, 그때는 우리가 같이 방법을 찾으면 돼. 아이를 낳을지, 다른 선택을 할지 그건 전부 네가 결정하는 거야. 난 어떤 결정이든 지지할게. 예린이한테도 천천히 이야기하면 돼. 그 애라면 분명 이해해 줄 거야.”잠시 말을 멈추더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017화

    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막 차에서 내리려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다.주민혁이 임하은을 조심스럽게 부축하고 있었고 임하은은 아랫배가 살짝 불러온 채 임신 초기 특유의 부드러운 표정을 띠고 있었다. 두 사람은 병원 복도를 나란히 걸었는데 누가 봐도 다정해 보였다.임하은이 먼저 최수빈을 알아보고는 곧장 주민혁의 팔을 잡아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일부러 걱정하는 듯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수빈 씨? 여기서 뵐 줄은 몰랐네요. 병원에는 왜 오셨어요? 어디 안 좋아서 검사 받으러 오신 거예요?”최수빈과 육민성 사이를 오가는 그녀의 시선에는 탐색하는 듯한 기색이 미묘하게 스쳐 지나갔다.최수빈은 손에 힘을 주고 담담하게 대답했다.“별일은 아니고 정기 검진받으러 왔어요.”주민혁의 시선이 최수빈의 얼굴에 머물렀다. 감정을 읽기 힘든, 짙고 어두운 눈빛이었다.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는 그 시선에는 묘하게 무거운 압박감이 담겨 있었다. 마치 그녀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것처럼 말이다.육민성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뒤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자연스럽게 최수빈을 자신의 뒤쪽으로 보냈다. 뒤이어 짧게 말했다.“예약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요. 두 분과 인사 나눌 여유는 없겠네요.”말을 마치자 그는 자연스럽게 최수빈의 어깨를 감싸고 그대로 산부인과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임하은은 나란히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주민혁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충분히 또렷했다.“두 사람 꽤 다정해 보이네요. 아침부터 같이 병원에 오다니... 혹시 같이 살고 있는 거 아닐까요?”주민혁의 손끝이 미세하게 굳었다. 그는 최수빈의 뒷모습을 끝까지 눈으로 따라가다 그 모습이 복도 모퉁이 너머로 사라지고 나서야 천천히 시선을 거두었다.이윽고 임하은의 말에는 답하지 않은 채 얼굴빛만 한층 가라앉은 상태로 몸을 돌렸다.“잡담은 그만하고 검사나 받으러 가자.”임하은은 그의 차가운 옆모습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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