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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0화

Author: 금붕어
최수빈이 아파트에 돌아왔을 때였다. 신발을 갈아 신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육민성이었다.

전화를 받고 그녀가 말을 꺼내기 전부터 휴대폰 너머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솔직히 말해. 민혁 씨가 네가 맡고 있던 일을 다른 사람한테 넘긴 거지?”

최수빈은 현관 벽에 기대서서 무심코 휴대폰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조용히 말했다.

“네. 당분간은 임하은 씨가 맡게 됐어요. 내 업무 부담을 줄여주려는 조정이라네요.”

“업무 부담은 무슨! 그냥 네 공헌 다 가로채고 사람은 내치는 거잖아!”

육민성이 분을 삭이지 못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은 안 변한다더니, 역시나야. 그 사람은 프로젝트를 제대로 된 일로 본 적이 없어.”

그의 분노 섞인 말을 듣고 있었지만 최수빈의 마음은 오히려 이상하리만큼 차분했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는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조정일 뿐’ 이라고 말하던 주민혁의 얼굴과, 기술 회의에서 막힘없이 발표하던 임하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선배,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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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06화

    순간 사방의 공기가 그대로 얼어붙었다.송미연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 속에서 아이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손톱이 손바닥을 깊게 파고들어 날카로운 통증이 일었지만, 그것을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그녀는 그저 속으로 간절히 부르짖을 뿐이었다.‘부르지 마, 제발 부르지 마...’하지만 그 찰나, 연한 금발의 아이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더니 까만 눈동자로 육민성을 바라보며 작은 입을 열었다.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아빠.”가볍게 흘러나온 한마디였으나 송미연의 가슴에는 거대한 망치가 되어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오장이 뒤틀리는 극심한 통증에 숨이 턱 막혔다.그녀는 멍하니 육민성을 바라보았다. 평소 자신 앞에서는 늘 차갑고 절제되어 웃음기조차 아끼던 남자가, 그 부름 한 번에 굳어 있던 표정을 단숨에 지워내고 생전 본 적 없는 온화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그는 살짝 몸을 굽혀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친밀한 몸짓이었으며, 눈빛에는 금방이라도 넘쳐흐를 듯한 다정함이 서려 있었다.잔인할 만큼 눈부신 다정함이었다.송미연은 머릿속이 하얘지며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오한을 느꼈다. 영혼마저 송두리째 빠져나간 것 같았다.알고 보니, 그가 다정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던 게 아니었다. 단지 그의 다정함이 한 번도 그녀의 것이 아니었을 뿐이다.그녀가 그에게 온 마음을 다 바치며 두 사람의 미래를 간절히 꿈꾸고 있을 때, 그는 이미 다른 곳에서 남편이자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결국 자신은 그저 불청객에 불과했던 것이다.곁에 있던 최수빈의 안색도 차갑게 굳어졌다. 이 숨 막히는 광경을 지켜보던 그녀는 룸 안에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서 있는 송미연을 바라보며 안타까움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자신도 모르게 송미연의 시야를 가려주려 발걸음을 옮겼다.하지만 눈썰미가 예리했던 금발의 여자는 고개를 슬쩍 돌려 룸 안에 있는 송미연을 정확하게 포착해 냈다.그녀는 흠칫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해외의 한 레스토랑에서 스치듯 마주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05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송미연은 애써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었다.다 정리됐다고.이제는 놓을 수 있다고.괜찮다고.최수빈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말했었다.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장면 하나가 그 모든 허세를 단숨에 무너뜨렸다. 애써 붙잡고 있던 마지막 자존심마저 산산이 깨진 것이었다.‘아... 이게 그 이유였구나.’육민성이 갑자기 이혼을 말한 이유.끝까지 이유를 알려 주지 않은 채 그렇게 차갑게 돌아선 이유.계약이 끝났다는 말도, 임무가 끝났다는 말도 전부 핑계였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그는 이미 외국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고 심지어 아이까지 두었던 것이다.그날 레스토랑에서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던 것도 전부 거짓말이었다.임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자신을 안심시키려고, 끝까지 상황을 무마하려고 연기했던 것이었다.그리고 이제 임무가 끝났으니 더 이상 연기할 필요도 없는지라 기다렸다는 듯 송미연을 밀어내고 그 여자와 아이에게 제대로 된 자리를 만들어 주려는 거였다.‘그럼... 저 아이는 정말 오빠의 아이인 거네.’처음부터 끝까지 우스운 꼴을 보인 것 자신뿐이었다.아무것도 모른 채 그에게 속고, 진짜 부부인 것처럼 함께 연기하고, 목숨까지 걸며 곁을 지켰다가, 마지막에 아무렇지 않게 버려진 사람은 그녀였다.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송미연의 손끝은 차갑게 식어갔고 눈은 순식간에 붉어지며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그녀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핏물이 배어 나올 만큼 힘을 줘야 겨우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있었다.이제야 알 것 같았다.자신이 쏟아부은 마음도, 그를 기다렸던 시간도, 끝내 놓지 못했던 미련도...이미 그에게 다른 가족이 있었다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그 순간 육민성도 최수빈을 발견했다. 그리고 열린 문 너머,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온몸을 떨고 있는 송미연까지 보자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며 안색도 순식간에 변했다.본능적으로 몸을 피하려는 듯했지만 이미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04화

    “그 사람 없어도 나 잘 살 수 있어.”송미연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최수빈에게 하는 말 같았지만 실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설득하려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최수빈은 그런 송미연이 안쓰러웠으나 지금은 무슨 말을 더 얹어 봐야 소용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래서 결국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됐어.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네 편이니까, 힘들면 언제든 나 찾아와.”“응.”송미연은 작게 대답한 뒤 다시 고개를 숙였다.그런데 젓가락으로 밥알을 건드리던 순간, 눈물 한 방울이 소리도 없이 그릇 안으로 떨어졌다.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재빨리 고개를 더 숙였다.정말 마음을 정리한 게 아니었다.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뿐이었다.싫다고 버텨 봐야 달라지는 게 있을까.울고 매달리면?화를 내고 따져 물으면?그를 쫓아가 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물으면?육민성은 이유 하나조차 말해 줄 생각이 없는데 그런 사람을 붙잡고 계속 답을 요구해 봐야 비참해지는 건 자신뿐이었다.조용한 별실 안에는 따뜻한 음식 냄새와 김이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그 온기가 잠시나마 날카롭게 파고들던 아픔을 무디게 해 주는 듯했다.송미연은 문득 어쩌면 이대로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제 각자 제 갈 길을 가고 다시는 서로를 붙잡지도 그리워하지도 않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그러던 그때, 별실 밖 복도에서 갑자기 조금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사람들이 대화하는 소리와 어린아이가 작게 보채는 소리, 손님을 안내하는 직원의 목소리가 뒤섞여 있었다.이는 식당이라면 흔히 들리는 소리인지라 송미연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밥을 먹었다.최수빈 역시 옆방 손님이거나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일 거라 생각했다.다만 조금 시끄럽다는 생각에 직원을 불러 조용히 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최수빈의 표정이 굳었다.복도 저편에서 너무도 익숙한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03화

    전화를 끊은 최수빈은 간단히 준비를 마친 뒤 곧장 송미연의 아파트로 차를 몰았다.문이 열리고 보니 송미연이 안쪽에 서 있었다.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눈에는 옅은 실핏줄이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도 의외로 차분했고 심지어 애써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왔어?”“왜 불도 안 켜고 있어?”최수빈은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거실 불을 켰다.따뜻한 노란빛이 방 안을 환하게 밝혔지만 송미연의 눈에 내려앉은 냉기까지 녹이지는 못했다.송미연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그냥 멍하니 있다가 깜빡했어.”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그녀를 보자 최수빈은 가슴이 저릿저릿해졌다.숨이 막힐 만큼 아픈데도 괜찮은 척해야 하는 마음, 그 기분을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남들이 걱정할까 봐, 혹은 입을 여는 순간 정말 무너져 버릴까 봐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붙들고 있는 마음 말이다.“집에만 있지 말고 나가서 뭐라도 좀 먹어.”최수빈은 송미연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손을 잡아 일으켰다.“이렇게 계속 굶으면 네 몸부터 상해.”처음에 송미연은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최수빈을 보고는 결국 작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대충 밝은색 외투 하나를 걸친 뒤 송미연은 그녀를 따라 집을 나섰다.차는 밤거리를 조용히 달렸다.도시는 형형색색의 불빛으로 화려하게 빛났고 거리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넘쳐났다.송미연은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만 바라본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최수빈도 섣불리 위로하지 않았다.어떤 상처는 말을 덧붙일수록 오히려 더 아파지는 법이기에 그저 묵묵히 운전하면서 가끔 거울 너머로 송미연을 살필 뿐이었다.너무나 갑작스럽고 이상한 육민성의 태도에 속으로는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다.외국에 있을 때만 해도 송미연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분명 애정이 있었다. 그녀를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었다.위험한 순간마다 몸부터 먼저 움직여 그녀를 지키던 모습도 연기라고 보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02화

    “오빠 사실 그 여자 아는 거 아니에요?”송미연은 눈물로 흐려진 시야 너머로 육민성을 똑바로 바라봤다.“마음에 다른 사람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이제 임무도 끝났겠다, 나 버리고 그 여자한테 가려는 거예요?”“아니야.”육민성은 망설임도 없이 부정했다.“그럼 대체 왜요?”송미연이 한 걸음 더 다가섰다.“우리 송씨 가문이 망해서? 이제 내가 육씨 가문 며느리로는 부족해서? 내가 오빠 발목만 잡으니까 지겨워진 거예요? 아니면... 처음부터 날 좋아한 적도 없었던 거예요? 나 혼자 착각하고 나 혼자 의미를 부여한 거였어요?”쉴 새 없이 이어지는 질문이 무겁게 내려앉았다.그제야 송미연을 바라보는 육민성의 눈빛 깊은 곳에서는 짙은 고통과 망설이는 듯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너무도 찰나여서 송미연이 알아차릴 틈조차 없을 정도였다.하지만 이내 그는 억지로 그 감정을 눌러 버렸고 대신 얼굴에는 더 차갑고 단호한 기색만이 남았다.“이유까지 알 필요는 없어.”육민성이 고개를 돌리며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어쨌든 이혼은 할 거야. 변호사한테 말해서 최대한 빨리 서류 준비하게 할게. 재산도 충분히 챙겨 줄 거고 송씨 가문 쪽도 계속 사람을 붙여 도와줄 테니까 미연 씨가 곤란해질 일은 없게 할 거야.”“챙겨 줘요?”모욕처럼 느껴지는 말에 송미연의 몸은 크게 떨렸다.“오빠, 오빠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난 오빠 돈 필요 없어요. 재산도 필요 없고, 송씨 가문 도와주는 것도 필요 없어요. 난 그냥 이유를 듣고 싶은 거라고요. 진짜 이유.”그러자 육민성은 눈을 감더니 낮게 쉰 목소리로 말했다.“이유는 없어. 그냥... 여기까지 하자.”“난 이혼 안 해요.”송미연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그러자 참아 왔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나 동의 못 한다고요.”절박하면서도 완강한 목소리였다.“오빠가 뭐라고 해도 난 이혼 안 할 거예요.”“미연 씨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야.”육민성은 이 말만 남기고는 더는 그녀를 보지도 않은 채 외투를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01화

    “농담하는 거 아니야.”육민성이 다시 한번 전혀 흔들림이 없는 목소리로 못을 박았다.“우리 이혼하자.”“...”송미연의 얼굴에서는 순식간에 핏기가 가시더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대에 차 반짝이던 눈빛이 그대로 꺼져 버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눈동자가 흔들렸고 온몸이 얼어붙은 사람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다.손끝부터 차갑게 식어 가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가슴 한복판을 세게 움켜쥔 듯한 통증에 다리에 힘이 풀릴 것만 같았다.“왜요?”떨리는 목소리가 겨우 흘러나왔다.“왜 갑자기... 이혼하자는 거예요?”육민성은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목울대가 한 번 크게 움직였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여전히 차갑도록 담담했다.“이유는 없어. 임무도 끝났고 애초에 우리 사이의 계약도 여기까지였잖아. 모든 게 끝났으니까 이혼하는 게 당연하지.”“당연하다고요?”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으나 붉어진 눈시울에서는 어느새 참을 새도 없이 눈물이 차올랐다.이윽고 송미연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오빠, 나한테 똑바로 말해 봐요. 오빠한텐 정말 이 모든 게 그냥 계약이었어요? 임무였고, 끝나면 당연히 정리해야 하는 관계였던 거예요? 폐허에서 목숨 걸고 날 지켜 준 것도 계약이었어요? 내가 병실에서 오빠 곁을 지키고, 오빠가 눈을 뜨자마자 나를 바라봤던 그 눈빛도? 우리 집안에 일이 터지고 육씨 가문에서 나한테 이혼하라고 압박했을 때, 절대 나 놓지 않겠다고 나선 것도 전부 계약이었어요? 그 레스토랑에서 그 여자가 일부러 시비를 걸었을 때, 모르는 사람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면서 내 편을 들어 준 것도요? 우리 같이 포화 속을 버티고 내부의 배신자까지 상대하면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잖아요. 그 모든 게... 오빠한텐 그냥 계약대로 끝까지 연기한 것뿐이었어요?”질문을 하나씩 쏟아낼 때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울음을 삼키느라 목소리는 자꾸만 끊겼다.송미연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그렇게 많은 일을 겪고도 끝내 함께 살아남아, 이제야 모든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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