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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2화

Author: 금붕어
“필요 없어.”

강지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딱 잘라 말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숨 좀 돌리는 시간이었지, 누군가의 통제 아래 얌전히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장성훈은 그 말뜻을 거스르지 않고 말없이 차 앞으로 돌아가 조수석에 타려 했다. 그런데 그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는 순간, 강지안이 갑자기 엑셀을 끝까지 밟았다.

차는 화살처럼 튀어 나가며 사라졌고 남은 건 매캐한 배기가스와 흙먼지뿐이었다.

장성훈은 그 자리에 굳어 섰다. 멀어져 가는 차를 바라보며 미간을 깊게 찌푸렸고 걱정하는 눈빛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잠시 침묵하던 그는 곧장 주차장 한쪽에 세워 둔 다른 차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따로 마련해둔 예비 차량, 언제든 출발할 수 있도록 늘 연료를 가득 채워 두는 차가 있었다.

곧 문을 열고 올라타려는 순간 휴대폰이 울려 그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형님, 부두 쪽에 일이 좀 터졌습니다. 형님이 와 주셔야...”

장성훈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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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686화

    강지안이 나직이 물었다.“상처는 좀 어때요?”장성훈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눈동자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스친 것을 보니, 그녀가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던질 줄은 꿈에도 몰랐던 모양이었다.“전 괜찮습니다.”장성훈은 그녀가 걱정하지 않도록 최대한 담담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본능적으로 대답했다.“안색이 무척 창백해요.”강지안은 거짓 없는 올곧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지난번 골목길에서 피를 아주 많이 흘렸잖아요.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을 텐데, 계속 여기 서서 날 지켜줄 필요는 없어요. 난 정말 괜찮으니 이제 돌아가서 쉬어요.”그녀는 그를 밀어내고 있었다.하지만 장성훈에게는 이 차분한 축객령이 그 어떤 모진 비난보다도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그녀는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모든 기억을 잃었어도, 자신에게 상처를 입었어도, 경계심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상처를 살피고 몸 상태를 걱정하며 그가 지치지 않았는지를 염려하고 있었다.본능 깊은 곳에 새겨진 그녀의 다정함이 그의 가슴을 시리도록 저미게 만들었다.장성훈은 몇 초간 침묵을 지키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어요.”쇳소리가 섞인 나직한 목소리였다.강지안은 일어서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순간 가슴 한구석이 텅 비어버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곁에 있던 소중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분명 제 손으로 가라고 밀어냈고 두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는 것이 정답이라 믿었음에도, 장성훈이 정말 돌아서는 순간 정체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그 허망한 상실감은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었지만 지독하리만치 선명했다.장성훈은 더 이상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한 번 더 눈길을 주면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기에 그는 돌아선 채 조용히 병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문이 아주 살며시 열렸다가 이내 부드럽게 닫혔다.찰칵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병실에는 오롯이 강지안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그녀는 침대 헤드에 기대어 굳게 닫힌 문을 멍하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685화

    모르는 번호로 온 문자 한 통이 화면 위에 떠올랐다.그리고 화면 위로 시선이 스친 순간, 장성훈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누가 보냈는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바로 민채영의 부모였다.[장성훈, 네가 이 문자를 보고 있다는 거 알고 있어. 오늘 사고는 그저 경고일 뿐이야. 우리 딸을 감옥에서 꺼내주지 않으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을 거다. 죽는 한이 있어도 강지안까지 끌고 가서 우리 가족과 함께 끝장을 볼 거야.]순간, 장성훈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더니 차갑고 서늘한 살기가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솟았다.검은 눈동자 안에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분노와 살의가 번뜩였다.알고 보니 민씨 가문의 민채영의 부모가 감옥 밖에서 미친 듯이 복수를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감히 아가씨에게 손을 대?’장성훈은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주며 천천히 휴대폰을 움켜쥐었다.당장이라도 휴대폰을 부숴버릴 기세였다.그는 그동안 민씨 가문의 사업을 막고 돈줄을 끊어버리는 정도로 끝내 더 이상 날뛰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다.하지만 설마 그 가족이 이 정도까지 미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감히 은산시 시내 한복판에서 일부러 사고를 일으키고 강지안의 목숨을 노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똑같이 문자 내용을 확인한 강지안도 안색이 살짝 창백해지더니 무의식적으로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장성훈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봤다. 눈빛에 서려 있던 날카로운 분노는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억지로 가라앉았다.그 대신 남은 건 강지안을 향한 깊은 안타까움과 죄책감뿐이었다.모두 자신의 탓이었다.자신이 민채영을 감옥에 보냈고 자신이 민씨 가문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여 결국 강지안까지 다시 위험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었다.“아가씨.”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잠겨 있어 한마디 한마디가 무겁게 내려앉았다.“죄송해요.”“제가 아가씨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강지안은 그를 바라봤다.“그게 성훈 씨랑 무슨 상관인데요?”이윽고 장성훈은 굳은 얼굴로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684화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강지안의 비서로, 울음을 참지 못한 듯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장 대표님! 빨리 병원으로 와주세요! 강 선생님이... 강 선생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셨어요!”그 순간, 장성훈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어느 병원입니까?”감정이 격해지면서 허리의 상처가 찢어질 듯 아파왔다. 순간 눈앞이 흐려졌지만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상태는 어때요? 많이 다친 겁니까?”“현재 태산제일병원에 있습니다! 사, 사고 직후에도 의식은 있으셨어요. 다리를 부딪쳐서 다쳤는데... 의사 선생님이 조금만 늦었으면 그대로 대형 트럭에 치였을 거라고 하셨습니다!”조금만 늦었으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말에 장성훈은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서늘한 공포가 단숨에 머리끝까지 치솟았다.강지안, 그녀는 장성훈이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은 사람이자 빛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게 해주고 싶은 사람이었다.그녀를 위해 그는 민채영을 감옥에 보냈고, 민씨 가문을 완전히 무너뜨렸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녀를 가로막던 모든 장애물을 치워왔다.그런데도 결국 강지안은 다친 것이다.“지금 바로 갈게요.”장성훈은 이를 악물고 짧게 내뱉은 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곧장 차 키를 움켜쥐더니 밖으로 뛰쳐나갔다.허리 옆 상처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퍼뜨렸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았지만 그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뿐이었다. 바로 강지안의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부두도, 엘리아스도, 심종연도, 그 거래도, 이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장성훈은 차를 몰고 미친 듯이 질주했다.평소의 냉정하던 모습, 잔혹할 만큼 치밀했던 계획도 모든 계산도 강지안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 앞에서는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지금 그에게 남은 건 가장 본능적인 두려움뿐이었다.‘만약 그 차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만약 아가씨가 피하지 못했다면... 그렇다면 난...’생각하는 것조차 두려웠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683화

    최수빈은 곧장 걱정 가득한 눈빛을 한 채 주민혁에게 다가갔다.“어떻게 됐어요? 들킨 건 아니죠?”“아니.”주민혁은 고개를 젓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상황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해.”그는 몸에 숨겨뒀던 초소형 카메라를 꺼내 휴대폰에 연결했다. 그리고 조금 전 녹화된 영상을 빠르게 확인했다.화면은 어둡고 음성도 선명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모습과 대화 속 핵심 내용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엘리아스 씨가 안에서 밀거래를 하고 있었어.”주민혁은 빠르게 설명했다.“정확히 뭘 거래하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물자는 절대 아니야. 내일 아침 일찍 부두에서 만나서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했어.”이에 최수빈의 표정이 굳어졌다.“부두요? 그럼 내일 우리는...”“내일은 가면 안 돼.”주민혁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가면 그대로 국경을 넘나드는 대형 사건에 휘말리게 되니까.”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진지한 눈빛으로 덧붙였다.“이제 단순한 개인적인 원한이나 사업 경쟁의 문제가 아니야. 국경을 사이에 둔 불법 거래가 걸려 있어. 반드시 신고해야 해.”최수빈이 놀란 듯 물었다.“누구한테요?”“국정원.”이미 휴대폰을 꺼낸 주민혁은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며 암호화된 연락처를 찾아냈다.과거 몇몇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정원 측과 협력한 적이 있었는지라 긴급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연락망도 있었다.국경 안보와 관련된 지하 거래라면,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곳은 그들뿐이었다.전화가 연결되자 주민혁은 불필요한 말 없이 바로 입을 열었다.“저 주민혁입니다. 현재 국경 항구 쪽에 있는데 방금 국경을 넘나드는 불법 거래 현장의 영상과 음성 자료를 확보했습니다. 상대는 외국인 사업가 엘리아스예요. 내일 새벽 5시, 동삼 부두에서 물품 인수인계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즉시 현장 배치 요청합니다.”휴대폰 너머에서는 잠시 침묵이 흘렀으나 곧 차분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가 돌아왔다.“그 정보, 확실합니까?”“제가 직접 현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682화

    룸 안의 조명은 테이블 위 좁은 공간만 비추고 있었다. 주변은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을 만큼 짙은 어둠으로 가득했다.엘리아스는 상석에 앉아 손끝으로 소파 팔걸이를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낮에 보였던 온화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의 얼굴에는 사업가 특유의 냉정함과 경계심만이 남아 있었다.맞은편에는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남자 두세 명이 앉아 있었다.그들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춘 채 은밀하게 대화를 이어갔으며 장소를 언급할 때조차 이름을 직접 말하지 않고 모두 돌려 표현했다.주민혁은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을 그저 술이나 나르는 종업원으로 철저히 위장했다.감히 주변을 훔쳐보지도 못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며 천천히, 그리고 안정적으로 잔을 하나씩 정리했다.하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의 후드티 안쪽, 가슴 부분에 부착된 초소형 핀홀 카메라가 조용히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그것은 룸 안의 사람들, 목소리, 분위기까지 단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기록하고 있었다.주민혁은 불필요한 움직임을 전혀 하지 않았다.끼어들지도, 고개를 들지도, 괜히 머물지도 않았고 그저 기록할 뿐이었다.역시나 그들의 대화는 철저하게 감춰져 있었다.거래 내용은 단 한마디도 직접 언급하지 않았고 물건의 이름조차 모두 암호명으로 대신했으니 말이다.그중 주민혁의 귀에 들어온 유일한 핵심 내용은 단 한 문장이었다.“내일 아침, 늘 만나던 부두에서 봐. 그때 자세히 이야기하지.”‘늘 만나던 부두...’그곳은 바로 오늘 최수빈과 엘리아스가 물건을 확인했던 국경 인근 부두였다.순간 주민혁의 표정이 굳었다.‘역시 그랬던 거야. 낮에 확인했던 물자는 그저 눈속임에 불과했어. 진짜 중요한 거래는 내일 진행되는 거군.’그는 마지막 생수병을 제자리에 내려놓더니 살짝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이제 나가겠다는 듯 자연스럽게 몸을 돌렸다.그런데 바로 그때...“잠깐.”엘리아스의 부름에 주민혁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발걸음을 멈췄다.심장이 순간 팽팽하게 조여 왔지만 겉으로는 조금도 티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681화

    정면으로 들이닥치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계속 기다리기만 한다면 결정적인 정보를 놓칠 수도 있었다.그러던 바로 그때, 반대편 복도에서 다소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검은 조끼를 입고 술이 담긴 쟁반을 든 종업원 하나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빠르게 걸어오는 것이었다.쟁반 위에는 위스키와 얼음통, 생수 몇 병, 간단한 안주가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엘리아스가 있는 룸으로 가져가는 술이었다.순간 눈빛이 가라앉으며 주민혁은 곧바로 결정을 내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와 복도 한가운데 섰다. 아무 생각 없이 서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침 종업원이 지나가려는 길을 정확히 막고 있었다.화들짝 놀란 종업원은 급히 걸음을 멈췄다.“저... 죄송하지만 조금만 비켜주시겠어요? 술을 가져가야 해서요.”주민혁은 비켜주는 대신 눈을 살짝 들어 올리며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뭐가 그렇게 급해.”마치 이 바닥 사람인 것처럼 그는 무심한 말투로 덧붙였다.“안에 있는 손님이 술을 다른 거로 바꾸라고 하던데.”그러자 종업원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술, 술을 바꾼다고요? 전 그런 연락을 받은 적이...”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민혁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팔꿈치를 살짝 움직였다.하지만 그 움직임은 정확하게 종업원의 겨드랑이 쪽을 강하게 찔렀고, 종업원은 순간적인 통증에 손에 힘이 풀렸다. 그 덕분에 쟁반은 그대로 주민혁 쪽으로 미끄러져 내려왔다.주민혁은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내는 동시에 엄지로 종업원의 목 옆, 잘 보이지 않는 지점을 가볍게 눌렀다.강한 충격은 아니었으나 상대를 순간적으로 어지럽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이내 종업원이 눈빛이 흔들리더니 몸을 휘청거리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했다.주민혁은 재빨리 그를 붙잡았다. 그리고 반쯤 부축하고 반쯤 끌어당기듯 옆쪽의 사용하지 않는 창고 안으로 데려갔다.그 과정은 매우 빨라 누군가 봤다면 그저 순간적으로 사람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을 정도였다.걸린 시간은 고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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