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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24화

Author: 금붕어
가녀린 뒷모습에는 고집스러운 기색만이 남아 있었다. 송미연이 연회장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붙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육민성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가 떠난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으나 로라는 빠짐없이 다 지켜보았다. 그러자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지더니 육민성의 품에 기대선 채, 주변 사람들이 충분히 들을 만한 목소리로 대놓고 비웃었다.

“원래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있잖아요. 와 봤자 도움도 안 되고, 그냥 가 주는 게 오히려 속 편하죠.”

노골적이고도 악의가 가득한 이 말은 누가 들어도 송미연을 겨냥한 말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엇갈렸다. 난처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고 흥미진진하다는 듯 구경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누군가는 분위기를 수습하고 싶어 했지만 선뜻 나서지는 못했다.

육민성이 바로 옆에 있는 이상, 괜히 끼어들었다가 밉보이고 싶은 사람은 없었으니 말이다.

싸늘해진 분위기 속에서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던 그때, 한쪽에서 차분하면서도 날이 선 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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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26화

    육민성이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건 물론이고,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구는 모습을 보자 최수빈의 마음은 점점 싸늘하게 가라앉았다.처음에는 그가 그저 잠깐 새로운 자극에 눈이 멀었을 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아니면 남들 앞에서 일부러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걸 수도 있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지금, 이토록 냉담한 육민성의 얼굴을 마주하고 나니 이제야 확실히 알 것 같았다.그는 처음부터 송미연을 아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 최소한의 존중을 해 줘야 할 사람으로조차 여기지 않았다.육민성에게 송미연은 그저 집안에서 정해 준 장식품에 불과했다. 어른들 눈을 속이기 위한 수단이자, 필요할 때는 얼마든지 외면하고 체면을 짓밟아도 되는 존재일 뿐이었다.최수빈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가슴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른 뒤, 이곳까지 찾아온 진짜 이유를 꺼냈다.“선배, 내가 오늘 선배를 찾아온 건 단순히 미연이 편을 들어 주려고 온 게 아니에요.”그녀가 고개를 들더니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육민성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우리 동업 관계에 대해 얘기하러 왔어요.”그제야 표정에 미세한 변화가 스치며 육민성이 고개를 들었다.“무슨 뜻이지?”“말 그대로예요.”최수빈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이미 결심을 굳힌 사람 특유의 단호함이 묻어 있었다.“천공연구원 산하에서 우리가 함께 맡고 있는 사업은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자원 연계, 이후 운영까지 내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 자금과 인맥을 쏟아부은 일이에요. 나한테 이 회사는 단순한 사업이 아니었어요. 선배라는 사람을 믿었기 때문에, 선배와 계속 함께 일해도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죠. 그런데 이제는 아니에요.”육민성의 표정이 완전히 싸늘해졌다.“최수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고 있어? 미연 씨 때문에 사업까지 감정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거야?”“감정적으로 구는 게 아니에요.”최수빈은 고개를 저었다. 눈빛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이건 내 기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25화

    육민성이 휴게실 문을 밀고 들어가 막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려던 순간, 등 뒤에서 느릿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차분하면서도 망설임 없는 발걸음이었다.이에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돌아보지는 않은 채 무심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야?”최수빈은 그의 뒤로 두어 걸음 떨어진 곳에 멈춰 서서 더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았다. 여전히 연회장에서 입었던 심플한 검은 롱드레스 차림이었고, 긴 머리는 어깨 위로 자연스럽게 늘어져 있었다.연회장의 들뜬 분위기와 묘한 긴장감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은 듯, 최수빈은 흔들림 없이 꼿꼿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최수빈은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그는 천공연구원을 한 손에 쥐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송미연의 자존심을 처참하게 짓밟은 사람이었다.“선배, 얘기 좀 해요.”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긴 복도에 또렷하게 울렸고 말투에는 조금도 사양하는 기색이 없었다.그제야 천천히 몸을 돌린 육민성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최수빈을 바라보며 그녀의 속내를 가늠하듯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러고는 문틀에 기대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느긋한 자세로 서 있었다. 하지만 말투만큼은 차갑게 선을 긋고 있었다.“무슨 얘기? 서밋 아직 안 끝났어. 너도 알겠지만 지금이 잡담이나 할 때는 아닌 것 같은데.”“사업 얘기 아니에요.”최수빈은 물러서지 않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미연이 얘기, 선배 얘기, 그리고 우리가 같이 운영하는 이 회사 얘기지.”‘송미연’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육민성은 미간을 더욱 깊게 찌푸리더니 눈빛에도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우리 두 사람의 일은 부부 사이의 사적인 문제야.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라고.”목소리가 한층 차가워졌다.“그러니 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 일 때문에 우리 관계까지 틀어지는 것도 원치 않아.”“사적인 문제요?”최수빈이 기가 막힌다는 듯 낮게 되뇌었다. 그러면서 눈빛은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선배, 양심에 손을 얹고 말해 봐요. 오늘 있었던 일이 정말 사적인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24화

    가녀린 뒷모습에는 고집스러운 기색만이 남아 있었다. 송미연이 연회장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붙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육민성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가 떠난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으나 로라는 빠짐없이 다 지켜보았다. 그러자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지더니 육민성의 품에 기대선 채, 주변 사람들이 충분히 들을 만한 목소리로 대놓고 비웃었다.“원래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있잖아요. 와 봤자 도움도 안 되고, 그냥 가 주는 게 오히려 속 편하죠.”노골적이고도 악의가 가득한 이 말은 누가 들어도 송미연을 겨냥한 말이었다.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엇갈렸다. 난처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고 흥미진진하다는 듯 구경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누군가는 분위기를 수습하고 싶어 했지만 선뜻 나서지는 못했다.육민성이 바로 옆에 있는 이상, 괜히 끼어들었다가 밉보이고 싶은 사람은 없었으니 말이다.싸늘해진 분위기 속에서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던 그때, 한쪽에서 차분하면서도 날이 선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였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또렷했다.“로라 씨는 육 대표님이 예뻐해 준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함부로 깎아내려도 된다고 생각하시나 봐요?”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향했다.깔끔한 검은색 롱드레스 차림으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최수빈은, 부드러운 인상과 달리 흔들림 없는 분위기를 풍기며 로라를 바라보는 눈빛에도 주눅 든 기색이 전혀 없었다.최수빈은 주민혁의 아내였다. 은산시 사교계에서 늘 조용히 지내는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로라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자신에게 대놓고 따지는 사람이 나올 줄 몰랐었는지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최수빈을 쏘아봤다.“그쪽은 누구시죠? 저랑 민성 씨 얘기하는데 끼어들지 마세요.”“제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요.”최수빈은 천천히 앞으로 다가가더니 담담한 눈빛으로 로라를 바라보았다.“중요한 건 여기가 서밋 현장이지, 그쪽이 질투에 눈이 멀어 아무나 물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23화

    구석 자리에 앉아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송미연은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 손끝이 하얗게 질리더니 마디마디가 푸르스름하게 변할 정도였다. 어느 순간부터 주변의 시선도 하나둘 그녀가 있는 구석으로 향하기 시작했다.안쓰러워하는 눈빛도 있었고 남의 불행을 구경거리 삼듯 흥미로워하는 눈빛도 있었으며 대놓고 무시하거나 위아래로 훑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마치 남편에게 버림받아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가엾은 여자를 구경하는 것만 같았다.송미연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자 긴 속눈썹 아래로 옅은 그늘이 드리워지며 눈에 담긴 모든 감정을 감췄고 겉으로 드러난 건 아무렇지 않은 듯한 차분한 표정뿐이었다.행사 시작까지는 아직 삼십 분이나 남아 있었다.손님들은 계속해서 들어왔고 여기저기 모여 가벼운 인사를 나누면서도 수시로 입구 쪽을 바라봤다.오늘 이 자리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 육민성을 기다리는 것이었다.육민성은 공식 석상에 여성을 데리고 나타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혼자 참석하거나 비서나 회사 임원 정도만 대동했다.그런 그가 오늘은 로라와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선남선녀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만큼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의 등장에 장내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지고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사람들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몰래 휴대폰을 들어 촬영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윽고 조금 전보다 훨씬 큰 수군거림이 장내를 뒤덮었다.“세상에, 육 대표님이 진짜 로라 씨를 데리고 왔네요. 두 사람 정말 다정해 보여요.”“이 정도면 그냥 파트너가 아니라 예비 사모님을 데리고 온 거나 다름없잖아요.”“로라 씨도 정말 예쁘네요. 육 대표님 옆에 서 있으니까 너무 잘 어울려요.”“그러고 보니 정작 육 대표님 부인은 너무 존재감이 없네요.”육민성은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과 수군거림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표정은 여전히 담담했고 로라가 제 팔에 기대어 있는 것도 굳이 떼어내지 않았다.로라가 그의 귀 가까이 다가가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22화

    “그러게요. 송미연 씨랑 결혼한 뒤에도 육 대표님은 공식 석상에 한 번도 같이 나온 적이 없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다른 여자를 데리고 서밋처럼 중요한 자리에 나타나다니. 이건 대놓고 송씨 가문 얼굴에 먹칠하는 거죠. 송미연 씨 자존심도 완전히 짓밟는 거고.”“송미연 씨도 명문가 아가씨인데 참 안됐어요. 하필 이런 결혼을 해서 남편 있는 과부처럼 사는 것도 모자라 이런 수모까지 겪어야 하다니.”주변에서 들려오는 말들이 차가운 빗물처럼 송미연의 마음을 적시자 손끝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송미연은 손에 든 물잔을 세게 움켜쥐었다. 차가운 감촉이 손바닥에 고스란히 전해졌지만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참담함까지 식혀 주지는 못했다.당장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다. 이 숨 막히는 공간에서 도망치고 싶었다.하지만 이곳은 엄연한 공식 석상이기에 그럴 수 없었다.자신의 남편이 다른 여자의 손을 잡고 사람들 앞에서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광경을, 아내인 자신은 정작 없는 사람처럼 내버려 두는 광경을, 송미연은 그저 남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그러던 그때, 행사장 입구 쪽에서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흩어져 대화를 나누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은은하게 흐르던 바이올린 연주 소리마저 순간 작아진 듯했다.모든 시선이 입구에 집중됐다.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나 송미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입구를 바라봤다.곧이어 훤칠한 남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육민성이었다.완벽하게 재단된 검은색 맞춤 정장 차림의 그는 넓은 어깨와 긴 팔다리가 한층 돋보였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쉽게 다가가기 힘든 위압감이 느껴졌다.넥타이는 매지 않은 모습이었다. 셔츠 단추를 살짝 풀어 둔 덕분에 평소의 딱딱한 분위기는 조금 누그러졌지만 오히려 특유의 여유롭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더 짙어졌다.짙은 눈썹과 또렷한 눈매, 곧게 뻗은 콧날과 굳게 다문 입술, 차갑고 무심한 인상은 여전했다.다만 그의 팔에는 로라가 바짝 붙어 있었다.오늘 그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21화

    서밋의 공식 개막까지는 아직 30분이나 남아 있었지만 행사장에는 벌써부터 손님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인사를 나누면서도 틈만 나면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 이 자리의 진짜 주인공, 천공연구원의 육민성을 기다리는 것이었다.육민성이 공개 석상에 여성을 동반하는 일이 극히 드물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기업 행사에 참석할 때조차 대부분 혼자였고 곁에 누군가가 있다 해도 비서나 회사 임원 정도가 전부였다.결혼한 뒤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그런 육민성이 오늘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과 함께 참석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은산시의 사교계가 발칵 뒤집혔다. 대체 어떤 여자이기에 육민성이 그동안의 원칙까지 깨 가며 직접 데리고 나타나는지 모두가 궁금해했다.그 시각, 행사장 한쪽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자리한 조용한 휴게 공간.송미연은 따뜻한 물이 담긴 잔을 든 채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잔을 감싼 손끝에는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오늘 그녀는 별다른 장식이 없는 심플한 아이보리빛 새틴 드레스 차림에 길게 늘어뜨린 머리는 느슨하게 틀어 올려 가녀린 목선과 단정한 쇄골을 그대로 드러났다.화장도 옅었으나 그럼에도 타고난 단아함과 청초한 분위기까지 가려지지는 않았다.다른 재벌가 아가씨들처럼 화려하게 치장한 채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며 인맥을 쌓지도 않았다. 마치 눈앞의 화려하고 떠들썩한 세상과 자신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라도 그어진 것처럼, 송미연은 그저 이곳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그녀는 육민성이 정식으로 맞아들인 아내이자 법적으로도 명백한 육민성의 부인이었다.두 사람의 결혼은 두 가문 간의 정략결혼으로 시작됐다.송씨 가문은 육씨 가문만큼 막강한 권세를 지닌 것은 아니었지만, 은산시에서 꽤 오랜 세월 명성을 이어 온 명문가였다.그러니 두 사람의 결혼은 양가 모두에게 득이 되는 혼사였고, 남들이 보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부부였다.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은 처음부터 껍데기뿐이었다는 걸, 송미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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