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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27화

Author: 금붕어
“잘 생각해 봐. 중간에 투자금을 빼고 사업을 분리하는 건 너한테도, 나한테도 득 될 게 없어.”

“충분히 생각했어요.”

최수빈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손해가 나더라도 감당할 수 있어요. 세상에는 이익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있으니까.”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날카로운 시선이 육민성을 정면으로 꿰뚫었다.

“내가 함께 일군 이 회사가 불륜 때문에 더럽혀지는 건 못 봐요.”

‘불륜’이라는 말이 유난히 또렷하게 들리는 순간, 육민성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주위의 공기마저 단숨에 날카로워졌다.

“최수빈, 말조심해.”

“내가 틀린 말 했어요?”

최수빈은 그의 기세에 눌리기는커녕 오히려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로라 씨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 다 잘 알잖아요. 선배의 사업 파트너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에요. 남의 결혼에 끼어든 여자일 뿐이죠. 그런 여자를 선배는 천공연구원 서밋에 데려왔어요. 우리가 모두 지켜보는 앞에서 안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게 내버려 뒀고, 미연이를 쓸모없는 사람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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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34화

    책상 위에 놓인 차가운 서류를 바라보자 송미연의 마음 한구석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마지막 기대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이제야 똑똑히 알 것 같았다.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을 잘못 본 건 자신이었다. 잠시 기댈 곳이 되어 준 사람을 평생 함께할 사람이라고 착각한 것이었다.송미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기사 부를 필요 없어요. 내가 직접 운전해서 갈 거니까. 지금 출발하죠. 오늘 한 번에 다 끝내요.”이에 육민성은 바로 외투를 집어 들었다. 위로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같이 가면 되잖아. 굳이 따로 운전할 필요 없어. 그게 더 편해.”“...”절차를 정리한 두 사람은 앞뒤로 천공연구원 건물을 나섰다.육민성이 운전석에 앉았고, 송미연은 말없이 조수석 문을 열고 몸을 숙여 차에 올라탔다.차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송미연은 좌석에 등을 기댄 채 고개를 살짝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며칠째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데다 마음고생까지 심했고, 며칠 전에는 비를 맞고 찬바람까지 쐰 탓에 가벼운 감기 기운도 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혼을 완전히 끝내야 한다는 생각뿐이라,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쯤은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그러다 차 안이 조용해지자 참아 왔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머리는 무겁고 관자놀이는 지끈거렸으며 막힌 코 때문에 숨쉬기도 답답했고 목은 바짝 마른 채 따끔거렸다.점점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송미연은 아무리 육민성이 냉정해도 적어도 먼저 이혼 수속부터 마친 뒤, 다른 일을 보러 갈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 이혼하기로 한 건 이미 정해진 일이었고 두 사람이 함께 내린 결정이었으니 말이다.육민성은 정면만 바라본 채 운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굳은 표정과 차가운 분위기 때문에 쉽게 말을 붙이기조차 어려워 보였다.그리고 송미연은 가끔 곁눈질로 그의 굳은 옆모습을 바라봤다. 마음속은 이미 아무것도 남지 않은 황무지처럼 메말라 있었다.숨 막히는 침묵이 십여 분쯤 이어졌을 때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33화

    “처음 계약 결혼을 시작했을 때, 오빠는 집안의 결혼 압박을 피하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위장일 뿐이라고 했죠. 난 그 말을 믿었어요. 해외에 나가서는 함께 포격을 견디고, 내부 배신자를 찾아다녔죠. 오빠가 다쳤을 때는 내가 밤낮으로 병상을 지켰고, 우리 집안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을 때 오빠가 먼저 나서서 이혼하지 않겠다고도 했고요. 그때 있었던 일들까지 전부 거짓은 아니었잖아요?”송미연의 말이 점점 빨라졌다. 눈가는 어느새 붉게 물들었고 목소리도 확연하게 떨렸다.“난 가짜 결혼도 언젠가는 진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서로 의지했던 마음만큼은 진심이라고 믿었고요. 그런데 결국 나 혼자 착각했던 거네요. 그렇죠?”육민성은 손끝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며 한동안 말이 없다가, 몇 초가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임무 중 서로 도운 건 책임 때문이었어. 그건 부정한 적 없어. 하지만 임무가 끝났으면 우리 관계도 처음 약속했던 대로 돌아가는 게 맞아.”“책임?”허탈한 웃음을 흘리는 송미연의 눈가에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그럼 로라 씨랑 그 아이는 뭔데요?”“해외 레스토랑에서 갑자기 나타났을 때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딱 잡아떼더니, 돌아서서는 우리가 살던 신혼집에 그 여자를 들였잖아요. 나랑 이혼도 하기 전에 회사 사람들이 그 여자를 사모님이라고 부르게 내버려 뒀고요. 그것도 책임이라 할 수 있어요?”“로라와 아이는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야. 내가 출국하기 전부터 이어져 있던 관계고.”육민성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그때 말하지 않은 건 괜히 임무에 차질을 빚고 팀 전체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그래서 나한테만 숨겼다는 거예요? 결국 나만 희생양이 됐고?”송미연의 가슴이 거칠게 들썩였다.“내 앞에서는 다정한 남편인 척해 놓고, 뒤에서는 이미 자기 가족이 따로 있었던 거잖아요. 그러다 임무가 끝나니까 기다렸다는 듯 날 밀어냈고, 로라 씨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도발하든 내버려 뒀죠. 심지어 천공연구원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32화

    사흘 내내 송미연은 별장에 틀어박혀 지냈다.그동안 송찬 그룹의 비서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업무 보고를 보내왔지만, 송미연은 몇 마디 지시만 간단히 남길 뿐 제대로 들여다볼 기력조차 없었다.휴대폰에는 최수빈이 보낸 걱정 어린 메시지가 여러 개 쌓여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난 괜찮아’라는 짧은 답을 보냈다.자신의 우울한 감정까지 친구에게 계속 떠넘기고 싶지는 않았다.그러나 밤이 깊고 주변이 조용해지면, 육민성과 관련된 기억들이 제멋대로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타국 임시 주둔지에서 육민성과 함께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처음에는 최대한 깔끔하게 물러날 생각이었다.조용히 이혼 절차를 마무리하고 더는 육민성과 다투지도 얽히지도 않으려 했다.하지만 천공연구원에서 한차례 부딪힌 뒤, 육민성이 보여 준 냉정함과 노골적인 편애를 떠올릴수록 마음속 억울함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진심을 다했는데 돌아온 결과가 고작 이것이라는 게 억울했다.자신이 쏟아부은 모든 마음과 노력을 그가 ‘이름뿐인 아내’라는 말 한마디로 아무렇지 않게 치부해 버린 것도 견딜 수 없었다.무엇보다 아직 법적으로 끝나지도 않은 결혼인데, 다른 여자에게 마치 자신이 승리자라도 된 양 몇 번이고 모욕당해야 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분했다.이제 체면을 지키는 건 아무 의미도 없었다. 계속 참고만 있다가는 상처를 삼키며 자신만 갉아먹을 뿐이었다.그렇게 결국 새벽녘, 송미연은 육민성을 직접 찾아가기로 결심했다.더는 감정을 억누르지도, 애써 예의를 지키며 거리를 두지도 않을 생각이었다.그동안 가슴속에 쌓아 둔 말을 전부 쏟아내고 그 자리에서 이혼까지 확실히 매듭지어 이 관계를 완전히 끝낼 생각이었다.아침 7시, 도시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고 도로에는 이른 출근길 차량만 드문드문 지나가고 있었다.준비를 마친 송미연은 어두운 계열의 옷으로 갈아입은 뒤 거울 앞에 섰다. 안에는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과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눈가가 고스란히 비치고 있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31화

    “선배 미연이 남편이잖아요. 아무리 마음이 없다 해도 이 정도면 얼굴이라도 한번 비춰야 하는 거 아니에요?”휴대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돌아온 육민성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심하기 짝이 없었다.“자기 몸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 건 본인 문제야. 나랑은 상관없어.”“선배!”최수빈은 분노로 인해 온몸이 떨렸다.“선배한테는 정말 마음이라는 게 있기는 해요? 미연이는 엄연히 선배와 결혼한 사이라고요. 미연이가 지금 이 지경이 된 것도 전부 선배 때문이고요! 당장 병원으로 와요. 안 오면 나 평생 선배 용서 안 해요. 천공연구원과 진행 중인 협력도 오늘부로 끝이에요!”최수빈은 육민성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육민성이 송미연의 생사에는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천공연구원과의 협력 사업까지 아무렇지 않게 포기할 리는 없었다. 최수빈이 기대를 걸 수 있는 건 이제 그 이해관계 하나뿐이었다.그리고 예상대로 이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병실 문이 열리며 육민성이 들어왔다.그는 여전히 서밋에서 입었던 검은 정장 차림이었다. 다만 넥타이와 셔츠 깃은 아까보다 흐트러져 있었고 몸에서는 아직 행사장의 향긋한 향이 희미하게 묻어났다.그러나 얼굴에서는 걱정도, 다급한 기색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병원에 온 것도 그저 귀찮은 의무 하나를 해치우러 온 듯 무심하고 냉랭했다.병실 문 앞에 선 육민성은 침대에 누운 송미연을 한번 흘끗 바라봤다.너무나 담담한 눈빛에는 안타까움도, 미안함도, 하다못해 사람이라면 보일 법한 최소한의 걱정조차 없었다. 그저 마치 모르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이러한 모습에 최수빈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갔다.“이제야 왔네요.”최수빈이 자리에서 일어나 차갑게 그를 노려봤다.“미연이 이 꼴 된 걸 보니까 이제 속이 시원해요?”육민성은 최수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송미연의 창백한 얼굴에만 시선을 두었다.그러고는 잠시 후 잔인할 만큼 무덤덤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본인이 너무 약한 거지. 이 정도 일 하나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30화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못한 데다 그동안 억눌러 온 서러움과 상처까지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원래부터 그리 튼튼하지 않았던 몸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도우미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챘을 때 이미 송미연은 소파에 축 늘어진 채 쓰러져 있었다.얼굴은 종잇장처럼 새하얗게 질렸고 입술에는 핏기 하나 없었으며 의식마저 흐릿해지고 있었다.기겁한 도우미가 곧바로 119에 신고한 뒤, 다급하게 송씨 가문에도 연락을 넣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별장 앞에 도착했고 기진맥진한 송미연은 곧장 은산 중앙병원으로 이송됐다.응급 검사를 마친 의사는 송미연의 상태가 오랫동안 감정을 억누르며 쌓인 스트레스에 갑작스러운 충격까지 겹친 탓이라고 진단했다. 거기에 제대로 먹고 마시지 못하면서 저혈당과 전해질 불균형까지 생겨 심한 탈진과 위경련 증세가 나타난 상태였다.당장 입원해 수액 치료를 받으며 충분히 쉬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상태가 더 악화될 수도 있었다.이 소식은 곧 최수빈에게도 전해졌다. 이제 막 천공연구원 서밋을 떠난 참이었던 그녀는 송미연이 당한 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화가 가라앉지 않았고, 오늘만큼은 꼭 곁에 있어 주며 달래 줘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그런데 병원에서 걸려 온, 송미연이 너무 힘든 나머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결국 병원까지 실려 갔다는 전화를 받는 순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최수빈은 하던 일을 전부 내팽개치고 가방만 챙겨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가는 내내 걱정과 자책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내가 조금만 더 일찍 미연이 곁에 있어 줬더라면, 조금만 더 빨리 마음을 풀어줬더라면, 어쩌면 그 애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붙이진 않았을 텐데...’병실에 도착했을 때 송미연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창백한 얼굴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였고 손등에는 수액 바늘이 꽂혀 투명한 수액이 관을 따라 천천히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눈을 감고 있었지만 미간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잠들어 있는 와중에도 고통과 피로가 얼굴에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829화

    그 시각 송미연은 이미 천공연구원 서밋이 열리는 연회장을 떠나 육민성과 함께 살던 신혼집으로 돌아와 있었다.은산시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에 자리한 단독주택은 넓고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지만, 사람 사는 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차갑고 휑했다.집에 들어온 송미연은 불도 켜지 않은 채 그대로 거실 소파에 몸을 묻었다. 통유리창 너머로 들어온 네온사인이 어두운 거실을 희미하게 물들이며 그녀의 몸 위로 얼룩진 빛을 드리웠다.그러다 송미연은 무심코 휴대폰을 꺼냈다. 그냥 아무거나 보면서 머리를 식힐 생각이었지만 화면을 켜는 순간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천공연구원 서밋 관련 기사와 알림이 눈에 들어왔다.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었기에 떨리는 손끝으로 기사를 눌렀다.그러자 눈을 찌르는 듯한 사진들이 줄줄이 화면에 떠올랐다.언제나 차갑고 빈틈없어 보이는 육민성, 그리고 그의 곁에 바짝 붙어 있는 화려한 모습의 로라...로라는 행사장을 제 세상처럼 누비며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고, 얼굴에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이 가득했다.그 아래에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댓글들이 이어졌다. 모두가 육민성의 아내라는 송미연의 처지를 비웃고 있는 것이었다.[송미연 씨 진짜 불쌍하다. 엄연한 아내인데 불륜녀한테 대놓고 무시당하고도 아무 말도 못 하네.][애초에 정략결혼의 희생양이잖아. 육 대표님은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왔으니 이제 밀려나는 수밖에.][혼자 행사장 나가는 뒷모습 보니까 너무 안쓰럽더라. 저런 수모를 누가 견뎌.][로라 씨도 진짜 뻔뻔하다. 자기가 육 대표님 아내라도 된 줄 아나 봐.]쏟아지는 댓글과 기사, 행사장에서 찍힌 사진들이 뒤엉켜 송미연의 가슴을 사정없이 후벼 팠다.그녀는 자신이 충분히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다.지난 3년 동안 겪은 외면과 서러움 덕에 이제는 웬만한 일에는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고 믿었다.하지만 자신의 남편이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서 다른 여자와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장면을 직접 마주하고, 그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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