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Penulis: 금붕어

제1화

Penulis: 금붕어
“최수빈 씨, 죄송합니다. 최수빈 씨 따님은 2월 15일 새벽 1시 13분에 사망하셨습니다.”

최수빈은 토끼 인형을 손에 쥔 채 무감한 표정으로 수술실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만 딸을 보내줘야 했다.

최수빈은 수술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딸의 작은 손을 그러쥐었다.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손이었다.

딸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던 최수빈은 응급실로 실려 가기 전 딸이 힘없는 목소리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엄마, 아저씨 아직도 안 왔어요?”

주예린이 말한 아저씨는 주예린의 생부 주민혁이었다. 주민혁은 주예린에게 아빠라고 부르지 못하게 했으면서 정작 그의 첫사랑인 박하린의 아들에게는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게 했다.

주예린의 생일 소원은 아빠와 함께 생일을 보내는 것, 그리고 주민혁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면역력이 약한 주예린은 지난해 겨울 찬바람 속에서 주민혁이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기를 기다리다가 독감에 걸려 폐렴까지 앓게 되었다. 그러다 올해 몸 상태가 급격히 악화해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었다.

오늘도 혹독히 추운 날이었다. 주예린은 또다시 최수빈 몰래 밖으로 나가 주민혁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최수빈은 주예린이 정신을 잃은 걸 뒤늦게 발견하고는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을 때 최수빈은 주민혁에게 연락해 딸의 생일날만이라도 함께 있어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주민혁은 또 한 번 약속을 저버렸다.

최수빈은 딸의 작고 야윈 몸을 끌어안은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딸... 이젠 아프지 않겠네.”

이제 더는 병마에 시달릴 필요도 없고, 아빠에게 미움받거나 영원히 받지 못할 아빠의 사랑을 갈망할 필요도 없었다.

“엄마, 아저씨는 왜 아빠라고 부르게 못 하는 거예요? 저랑 다르게 오빠는 아빠라고 부를 수 있잖아요...”

“엄마, 하린 이모가 오빠를 좋아해서 아빠도 오빠를 좋아하는 거예요?”

딸의 천진난만한 질문이 아직도 최수빈의 귓가를 맴돌았다.

너무 어렸던 주예린은 아빠가 왜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지, 왜 아빠를 아빠라고 부를 수 없는지 몰랐다. 단순했던 주예린은 본인이 오빠만큼 잘나지 않아서 아빠가 자신을 싫어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6년 전, 최수빈은 주민혁과 얼떨결에 관계를 가졌다가 임신하게 되어 그와 결혼하게 되었다.

주예린을 낳을 때 최수빈은 난산으로 인해 과다 출혈까지 했지만 주민혁은 그녀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그날 주민혁은 그녀와 똑같은 날 출산하는 박하린의 곁을 지켰다. 그 점만 보아도 주민혁이 누구를 더 소중히 여기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박하린은 아들을 낳은 뒤 주민혁에게 아이를 맡기고 해외로 출국하여 자취를 감추었다.

주민혁을 오랫동안 짝사랑한 최수빈은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박하린의 아이를 데려와 친아들처럼 살뜰히 키웠다.

주민혁은 딸은 아빠라고 부르지도 못하게 했으면서 박하린의 아들은 끔찍이 여겼다. 차별 대우였다.

난산이었을 때 깨달아야 했다. 주민혁은 평생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걸 말이다.

심지어 주예린이 오전에 먼저 태어났는데도 주민혁은 아들을 첫째로 정해서 주씨 가문의 장손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다들 주예린을 사생아라고 생각했다.

의사는 최수빈의 뒤에 서서 애처롭게 떨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무거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아이 아빠는 아직 안 왔나요?”

주예린이 입원하고 나서 지금까지 의사는 단 한 번도 주예린의 아빠를 본 적이 없었다.

최수빈은 차가운 눈빛을 해 보이며 자조하듯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 아빠는 본인의 사생아와 함께 아이 엄마를 보러 갔어요. 그 아이의 생일을 함께 축하해 주겠다면서요.”

매년 그랬다.

그런데 최수빈은 멍청하게도 4년 동안 남의 아이를 정성을 다해 키웠다.

두 아이는 생일이 같은데 오직 주예린만이 냉대를 받았다.

의사는 당황했다. 그는 눈앞의 가련한 여자를 어떻게 위로해 줘야 할지 몰랐다.

...

주예린이 세상을 떠난 날, 최수빈은 주예린을 위해 모든 걸 정리했다.

은산시에서 화장을 하기 위해서는 부모 양쪽의 사인이 필요했고, 최수빈은 해운 별장으로 돌아가 주예린의 유품들을 정리했다.

이때 아래층에서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언제 엄마를 버리고 하린 이모랑 결혼할 거예요? 저는 하린 이모가 제 엄마가 됐으면 좋겠어요!”

주민혁은 겉옷을 팔뚝에 걸치더니 허리를 숙이며 아이의 뺨을 꼬집었다.

“시후야, 너는 하린 이모를 엄마라고 불러도 돼.”

위층에 있던 최수빈은 그의 말을 똑똑히 들었다.

그녀는 가슴이 저려 눈을 감으면서 심호흡했다.

“가서 엄마한테 씻겨달라고 해. 그리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에 하린 이모 마중 나가자.”

주시후는 기뻐서 방방 뛰었다.

“좋아요!”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주시후는 울상을 하며 말했다.

“하지만... 만약 엄마가 이 사실을 알고 가지 못하게 하면 어떡해요? 엄마 진짜 싫어요. 바깥 음식들을 못 먹게 하잖아요!”

주민혁은 주시후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그의 편을 들어주었다.

“걱정하지 마. 아빠가 뭐라고 하면 엄마는 아무 말도 못 해.”

시선을 드는 순간, 주민혁은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최수빈과 눈이 마주쳤다.

주시후는 달려가서 최수빈의 손을 잡아당겼다.

“엄마, 저 씻겨주세요. 저 이따가 나갈 거예요.”

최수빈은 손을 빼낸 뒤 주민혁을 바라보았다.

“주민혁 씨, 뭐 잊은 것 없어요?”

주민혁은 덤덤한 눈길로 최수빈을 힐끗 보았다.

“뭐?”

그동안 주민혁은 늘 최수빈과 주예린에게 쌀쌀맞게 굴었다.

최수빈은 자조하듯 피식 웃었다.

주민혁이 주예린과 주시후의 생일이 같다는 걸 기억할 리가 없었다.

매년 주시후의 생일 때마다 그는 주시후를 데리고 박하린을 만나러 가서 주시후의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반대로 주예린은 매년 생일 때마다 찬바람 속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주민혁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나 할 말 있어요.”

주민혁은 코웃음을 쳤다.

“오늘 시간 없어.”

“얼마 걸리지 않을 거예요.”

최수빈이 말했다.

“여기 두 서류에 사인만 해주면 돼요.”

최수빈은 서류를 들고 사인해야 할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민혁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있는 매 순간이 짜증 난다는 듯이 말이다.

주민혁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대충 사인한 뒤 그녀에게 서류를 건넸다.

“오늘 나랑 시후는 집에 돌아오지 않을 거야. 내일 아침에 예린이에게 시후 대신 선생님께 얘기 전하라고 해. 시후는 오전 수업을 듣지 못한다고 말이야.”

최수빈은 이를 악물고 서류를 꽉 쥐었다. 힘을 너무 많이 주어서 관절 쪽이 창백해질 정도였다.

주민혁이 조금이라도 서류 내용에 신경을 썼다면 그 서류 중 하나는 이혼 합의서이고 다른 하나는 주예린의 화장 동의서라는 걸 발견했을 것이다.

주민혁은 서류에 사인할 때마저 무심했다.

“그리고 예린이에게 나한테 전화하지 말라고 해.”

최수빈은 차갑게 웃었다.

주예린은 그에게 전화하지 않을 것이다.

이젠 그럴 수가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주민혁은 평소와 다른 주예린의 모습을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시간이 넉넉지 않은 것인지 박하린 쪽에서 그들에게 연락하여 언제 오냐고 물었다.

주시후는 샤워도 못하고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주민혁을 따라 밖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저 오늘 밤에는 새엄마한테 씻겨달라고 할 거예요.”

주민혁은 애정 가득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래.”

최수빈은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멍하니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녀는 집에 있던 자신과 주예린의 소지품들을 전부 정리해서 불태웠다.

그리고 주예린의 시신을 화장하러 화장터로 향했다.

유골을 받았을 때 최수빈은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예린아, 조금만 기다려. 엄마도 곧 갈게...”

...

다른 한편, 주민혁은 주시후를 데리고 박하린의 귀국 축하 파티에 참석했다.

세 사람은 마치 진짜 가족처럼 화기애애했다. 다들 그들의 사이가 좋아 보인다면서 최수빈이 염치없이 주민혁의 아내 자리를 꿰차고 있으면서 방해꾼 노릇을 한다고 나무랐다.

이때 누군가 사람들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주민혁의 앞에 섰다.

“대표님, 사모님과 따님이 오늘 화장될 겁니다. 화장터로 가서 유골을 챙기셔야 합니다.”

주민혁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냉담하게 말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질투 때문에 이런 유치한 짓을 벌여?”

“하지만 화장 동의서에 사인한 것은 대표님이십니다. 그리고 이혼 합의서에도 사인을 하셨으니...”

주민혁은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뭐라고?”

주민혁은 미친 듯이 달려 화장터에 도착했고 아내와 딸이 화장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짧은 순간이었으나 주민혁은 심장 한 군데가 찢기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화장터 직원은 털썩 소리를 내며 주저앉은 주민혁을 보았다.

Lanjutkan membaca buku ini secara gratis
Pindai kode untuk mengunduh Aplikasi

Bab terbaru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690화

    강지안이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장성훈이 홀연히 미세하게 몸을 움직였다.이내 속눈썹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시야가 겨우 선명해지자마자 그가 가장 먼저 보인 반응은 눈을 비비거나 찌뿌둥한 몸을 펴는 것이 아니라 곧장 침대에 누운 그녀를 바라보며, 잠이 덜 깬 쉰 목소리로 초조함과 걱정을 한껏 담아 다급하게 물었다.“깼어요?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요? 물부터 마실래요? 아니면 식사부터 할까요? 아가씨가 좋아하는 걸로 사 올게요...”그가 쏟아낸 질문들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온통 그녀를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흡사 밤새 불편하게 웅크려 겪은 피로와 고단함이 눈을 떠 그녀를 마주한 순간 눈 녹듯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강지안은 그의 눈동자에 가득 찬 숨김없는 염려를 바라보자 가슴 한구석이 다시금 말랑하게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불편한 데 없어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차분하고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저 오늘 퇴원해요.”장성훈은 흠칫 놀랐다.“다리가 아직...”강지안이 단호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타박상일 뿐이에요. 뼈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내장이 다친 것도 아니니 집에 가서 쉬어도 된다고 의사 선생님도 말씀하셨어요. 병원은 사람도 많고 시끄러우니 집에 돌아가서 조용히 요양하는 게 회복이 더 빠를 거예요.”그녀는 더 이상 이 병실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아무런 명분도 없이 이렇게 그의 보살핌을 받고 싶지 않았고 모호한 이끌림과 선 긋기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팡질팡하고 싶지도 않았다.장성훈은 흔들림 없는 그녀의 결연한 눈빛을 바라보며 아무런 반박도, 설득도 하지 않았다.“알겠어요.”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덧붙였다.“퇴원 수속 밟고 올게요.”그의 움직임은 무척 신속했고 채 십 분도 지나지 않아 모든 서류 절차가 깔끔하게 완료되었다.의사는 퇴원 후 자택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몇 번이고 거듭 당부했고 그는 단 한 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머릿속에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689화

    다들 모두 자신처럼 온통 어둠으로 얼룩진 존재와는 아주 미세한 접점조차 두고 싶어 하지 않는 듯했다.장성훈은 아주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 정적이 얼마나 길었는지 강지안은 그가 이대로 입을 닫아버릴 것이라 믿었을 정도였다.결국 그는 아무런 반박도, 해명도, 곁에 남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가볍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알겠습니다.”짓눌린 마음을 대변하듯 가벼운 한 마디였지만 그 속에 담긴 무게는 감당하기 어려웠다.그는 더 이상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고요한 걸음으로 소파로 다가가 조용히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침묵에 잠겼다.그는 떠나지 않았다.강지안은 순간 멍해졌다.분명 돌아가라고 밀어냈고 신세 지기 싫다고 선을 그었으며 경계를 명확히 그어 놓았음에도 그는 그저 자리만 옮겼을 뿐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이 병실 안에 머물며 그녀의 눈길이 닿되 그녀가 꺼려하는 거리 밖에서 묵묵히 곁을 지키고 있었다.참으로 이상한 남자였다.강지안은 가슴속으로 깊은 탄식을 내뱉었으나 더 이상 그를 모질게 몰아세우지는 않았다.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버렸던 그녀는 억지로 잠을 청하려 지그시 눈을 감았으나 어지러운 머릿속은 온통 장성훈의 잔상으로 가득 차오를 뿐이었다.그의 말 없는 보살핌, 창백한 안색, 그리고 소름 돋을 정도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그녀의 식성...그가 사 온 죽은 온도도 맛도 더없이 적당했으며 대파를 싫어하고 너무 단것을 피하며 심심한 맛을 즐기는 그녀의 까다로운 취향까지 속속들이 꿰뚫고 있었다.흡사 실제로 십 년, 아니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 같았고 그녀의 미세한 습관 하나까지 그의 골육에 새겨진 느낌이었다.하지만 상황이 이럴수록 그녀는 더 갈팡질팡했고 가슴이 떨렸으며, 잃어버린 그 기억들을 하루빨리 움켜쥐고 싶어 안달이 났다.도대체 자신과 그는 어떤 사이였을까.둘 사이에 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걸까. 왜 그는 자신에게 이토록 헌신적이면서도 그토록 철저히 자신을 절제하는 것일까.그리고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688화

    그 한마디가 허공으로 흩어지자마자, 넓은 병실 안은 일순간 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바늘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법한 정적이었다.장성훈은 돌처럼 그 자리에 딱딱하게 굳어버렸고 마른침을 깊게 삼키며 한참 동안 단 한 마디도 입 밖에 내지 못했다....공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어색하게 얼어붙었다.강지안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장성훈 역시 그 딱딱하게 굳어버린 자세 그대로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머릿속은 하얗게 포맷되어 버린 상태였고 병실 안의 공기는 순간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무겁게 가라앉아 버렸다.강지안의 뺨은 금방이라도 타오를 듯 뜨겁게 달아올랐고 속눈썹을 가늘게 파르르 떨며 그의 시선을 필사적으로 피한 채 온몸을 이불 속으로 파묻고 싶어 했다.그녀 역시 무수한 인체와 질병을 보아온 의사였기에 머리로는 이것이 지극히 당연한 생리 현상임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감정은 이성과 따로 놀았다. 과거가 안개처럼 흐릿하고 관계마저 미묘한 데다 제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는 이 남자 앞에서 이런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마치 살갗이 벗겨져 나가는 듯 쓰라린 수치였다.장성훈이 한참 동안 굳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강지안의 마음속에는 부끄러움과 조급함이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쳤다.그녀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겨우 쏘아붙였다.“화장실 갈 건데... 설마 이것까지 같이 가줄 건 아니죠?”그 말에 장성훈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목젖을 크게 일렁이며 눈동자 깊은 곳에 가라앉은 어지러운 감정들을 억누른 그는 그녀가 더 무안해하지 않도록 시선을 피하며 나직이 말했다.“간병인을 불러올게요.”그는 거의 도망치듯 방을 나섰는데,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황급하고 어설퍼 보였다.몇 분 뒤, 경험 많고 차분한 인상의 여자간병인이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며 병실로 들어왔다.장성훈은 뒤따라 들어오지 않고 복도 끝에 홀로 서서 꼿꼿한 자세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그는 혹시라도 그녀가 불편해할 만한 모든 거리를 철저히 계산해 피해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687화

    강지안은 장성훈을 바라보며 찰나의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심장이 불규칙하게 요동치는 걸 느꼈다.장성훈은 침대 곁으로 다가와 종이 쇼핑백을 하나씩 열고 내용물을 꺼내기 시작했다.소화가 잘되도록 정성껏 조리한 부드러운 죽과 밑반찬, 그리고 촉촉하게 찐 딤섬까지 온통 환자에게 안성맞춤인 음식들뿐이라 그의 세심한 배려가 고스란히 묻어났다.“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잖아요.”장성훈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하며 온기가 남아 있는 따스한 죽 한 그릇을 그녀의 앞으로 내밀었다.“조금이라도 먹어요.”강지안은 그가 건넨 죽과 그의 깊은 눈 속에 담긴 감출 수 없는 피로와 다정함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았고 이전처럼 차갑게 밀어내지도 않았다.그녀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죽을 받아들고는 조그만 목소리로 읊조렸다.“고마워요.”그러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 그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덧붙였다.“같이 먹어요.”장성훈은 순간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녀가 기억을 잃은 뒤, 먼저 함께 식사를 하자고 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경계심도, 밀어내려는 거부감도, 미움도 전혀 묻어나지 않는 말투였다.마치... 세상에서 지극히 평범한 연인들처럼 다정한 모습이었다.그는 목이 메어 거의 신음 같은 대답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아무런 대화 없이 그저 묵묵히 음식을 들었다.병실 안은 더없이 따스했고 불빛은 온화했으며 음식은 구수한 냄새를 풍겼다.이 순간만큼은 피비린내 나는 복수도, 음모도, 어둠도, 얽히고설킨 해묵은 은원도 모두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그저 그와 그녀, 단둘만이 고요히 앉아 한 끼 식사를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강지안은 아주 천천히 수저를 움직였다. 따뜻한 죽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얼어붙어 있던 마음마저 포근하게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강지안은 슬쩍 고개를 들어 맞은편의 장성훈을 훔쳐보았다.그는 우아하면서도 빠른 속도로 음식을 비워내고 있었는데, 정말 피곤하고 허기가 졌던 모양이었다.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끊임없이 그녀에게 머물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686화

    강지안이 나직이 물었다.“상처는 좀 어때요?”장성훈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눈동자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스친 것을 보니, 그녀가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던질 줄은 꿈에도 몰랐던 모양이었다.“전 괜찮습니다.”장성훈은 그녀가 걱정하지 않도록 최대한 담담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본능적으로 대답했다.“안색이 무척 창백해요.”강지안은 거짓 없는 올곧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지난번 골목길에서 피를 아주 많이 흘렸잖아요.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을 텐데, 계속 여기 서서 날 지켜줄 필요는 없어요. 난 정말 괜찮으니 이제 돌아가서 쉬어요.”그녀는 그를 밀어내고 있었다.하지만 장성훈에게는 이 차분한 축객령이 그 어떤 모진 비난보다도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그녀는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모든 기억을 잃었어도, 자신에게 상처를 입었어도, 경계심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상처를 살피고 몸 상태를 걱정하며 그가 지치지 않았는지를 염려하고 있었다.본능 깊은 곳에 새겨진 그녀의 다정함이 그의 가슴을 시리도록 저미게 만들었다.장성훈은 몇 초간 침묵을 지키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어요.”쇳소리가 섞인 나직한 목소리였다.강지안은 일어서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순간 가슴 한구석이 텅 비어버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곁에 있던 소중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분명 제 손으로 가라고 밀어냈고 두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는 것이 정답이라 믿었음에도, 장성훈이 정말 돌아서는 순간 정체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그 허망한 상실감은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었지만 지독하리만치 선명했다.장성훈은 더 이상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한 번 더 눈길을 주면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기에 그는 돌아선 채 조용히 병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문이 아주 살며시 열렸다가 이내 부드럽게 닫혔다.찰칵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병실에는 오롯이 강지안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그녀는 침대 헤드에 기대어 굳게 닫힌 문을 멍하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685화

    모르는 번호로 온 문자 한 통이 화면 위에 떠올랐다.그리고 화면 위로 시선이 스친 순간, 장성훈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누가 보냈는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바로 민채영의 부모였다.[장성훈, 네가 이 문자를 보고 있다는 거 알고 있어. 오늘 사고는 그저 경고일 뿐이야. 우리 딸을 감옥에서 꺼내주지 않으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을 거다. 죽는 한이 있어도 강지안까지 끌고 가서 우리 가족과 함께 끝장을 볼 거야.]순간, 장성훈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더니 차갑고 서늘한 살기가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솟았다.검은 눈동자 안에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분노와 살의가 번뜩였다.알고 보니 민씨 가문의 민채영의 부모가 감옥 밖에서 미친 듯이 복수를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감히 아가씨에게 손을 대?’장성훈은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주며 천천히 휴대폰을 움켜쥐었다.당장이라도 휴대폰을 부숴버릴 기세였다.그는 그동안 민씨 가문의 사업을 막고 돈줄을 끊어버리는 정도로 끝내 더 이상 날뛰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다.하지만 설마 그 가족이 이 정도까지 미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감히 은산시 시내 한복판에서 일부러 사고를 일으키고 강지안의 목숨을 노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똑같이 문자 내용을 확인한 강지안도 안색이 살짝 창백해지더니 무의식적으로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장성훈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봤다. 눈빛에 서려 있던 날카로운 분노는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억지로 가라앉았다.그 대신 남은 건 강지안을 향한 깊은 안타까움과 죄책감뿐이었다.모두 자신의 탓이었다.자신이 민채영을 감옥에 보냈고 자신이 민씨 가문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여 결국 강지안까지 다시 위험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었다.“아가씨.”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잠겨 있어 한마디 한마디가 무겁게 내려앉았다.“죄송해요.”“제가 아가씨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강지안은 그를 바라봤다.“그게 성훈 씨랑 무슨 상관인데요?”이윽고 장성훈은 굳은 얼굴로

Bab Lainnya
Jelajahi dan baca novel bagus secara gratis
Akses gratis ke berbagai novel bagus di aplikasi GoodNovel. Unduh buku yang kamu suka dan baca di mana saja & kapan saja.
Baca buku gratis di Aplikasi
Pindai kode untuk membaca di Aplikasi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