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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2화

작가: 금붕어
그는 모든 걸 알고 있었으나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최수빈과 아이에게 무관심한 척, 그들과 완전히 선을 긋고 싶은 척, 그리고 그들을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는 척해야 했다.

그래야만 그들을 숨어 있는 위험들로부터 멀리 떼어놓을 수 있었고 그래야만 모녀가 아무 탈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도우미가 그릇을 정리하러 들어가자 거실에는 최수빈과 주민혁 둘만 남았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고요한 분위기, 그 사이로 창밖에서 가끔 새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최수빈은 주민혁의 무릎 위에 올려진 손을 바라보았다.

한때 그렇게도 안정적이던 손, 서류에 서명할 때면 힘 있는 필체를 남겼고 운전대를 잡을 때면 늘 여유로웠다. 최수빈이 아팠을 때는 그 손으로 약을 먹여 주었고 이불을 덮어 주며 안심하게끔 온기를 전해 주던 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젓가락조차 제대로 쥐지 못했다.

문득 이혼 합의서에 서명하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도 이렇게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이름을 적었고 잉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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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265화

    과학기술원은 각 부처와 즉시 공조에 들어가 칩 회수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동시에 그들에게는 현 위치에서 대기하며 다음 지시를 기다리라는 명령도 내려왔다.전화를 끊은 뒤, 최수빈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통신실을 나서자마자 마주친 건 주민혁이었다.그는 손에 외투 한 벌을 들고 있었는데 곧 말도 없이 그것을 최수빈의 어깨에 걸쳐주었다.“바람 세니까... 감기 걸리면 안 되잖아.”최수빈이 고맙다는 말을 하려던 순간, 주머니 속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강지안이었다. 신호는 중간중간 끊겼지만 다행히 통화할 정도는 됐다.그녀는 곧장 몸을 돌려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수빈 씨, 거기 신호 다시 잡혔어요?”강지안은 곧바로 목소리를 낮췄다.“민혁이의 상태는 좀 어때요? 피까지 토했다면서요?”최수빈은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주민혁을 한번 힐끗 본 뒤,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은 좀 나아졌어요. 기침도 멎었고. 강 선생님, 대체 무슨 병이길래 피까지 토하는 거예요? 우울증 때문에 이럴 리는 없잖아요.”휴대폰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그리고 이어진 강지안의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심맥이 손상됐어요.”그 짧은 한마디에 최수빈의 숨이 턱 하고 막혔다.강지안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그동안은 계속 약으로 버텨왔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남극에서 무리를 했고,= 몸도 심하게 상한 데다 찬바람까지 맞았잖아요. 그래서 지병이 다시 도진 거예요. 피를 토한 건... 심맥 손상이 더 심해졌다는 뜻이고요.”최수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주민혁은 이 모든 고통을, 이 오랜 세월 내내 홀로 견디고 있었던 거였다.전화를 끊은 뒤, 최수빈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속을 파고드는 시린 통증을 억지로 눌러 삼킨 뒤, 그녀는 천천히 주민혁의 방으로 향했다.그리고 문을 열어젖힌 순간, 최수빈은 그대로 멈춰 섰다.주민혁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는데 앞에 두툼한 설계도 뭉치가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신호 좀 잡히자마자 또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264화

    남자는 목젖을 한 번 움직이더니 여전히 조금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훨씬 또렷한 소리였다.“깼어?”최수빈은 그 한마디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며칠째 팽팽하게 조여 있던 신경도 따뜻한 온기에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뻗어 이불자락을 다시 여며주었다.“기침은 안 나요?”“원래 있던 증상이야.”주민혁은 한쪽 입꼬리를 씩 당기며 말했다.“이 정도는 혼자 버틸 수 있어.”그는 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고 최수빈도 굳이 캐묻지 않았다.창백하긴 해도 어제처럼 잔뜩 굳어 있지는 않은 그의 얼굴을 보며, 오래도록 불안하던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지근한 물을 한 잔 따라 건넸고 그는 그 물을 조금씩 천천히 마셨다.하지만 그렇게 찾아온 평온은 오래가지 못했다.사라진 칩은 여전히 행방이 묘연했기에 기지 회의실 안은 숨이 막힐 만큼 공기가 무거웠다.장병욱은 맨 앞에 선 채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날카로운 시선이 사람들을 훑고 지나가더니 끝내 최수빈에게 멈췄다. 그 눈빛에는 노골적인 의심이 서려 있었다.“지금 기지 핵심 구역을 벗어난 사람은 최수빈 씨밖에 없습니다.”그는 차갑게 말을 이어갔다.“칩이 사라진 날 밖에 나갔던 사람도 최수빈 씨 한 명뿐이었고 게다가 외부에서 파견된 인원이라 신분 자체도 완전히 믿기 어렵죠.”그 말이 떨어지자 회의실 안이 금세 술렁였다.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최수빈에게 쏠렸다.의심과 경계, 탐색이 뒤섞인 눈빛들이 가느다란 바늘처럼 그녀의 몸 위로 꽂혀 들었다.최수빈은 등을 곧게 피고 의자에 반듯하게 앉은 채 표정에도 아무런 동요가 드러나지 않았다.곧 그녀가 시선을 들어 장병욱을 똑바로 바라봤다.“의심하는 건 상관없어요. 하지만 그러려면 증거를 가져오세요.”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호했다.“칩 분실은 중대한 문제예요. 근거 없는 추측만으로 사람을 범인 취급할 수는 없습니다.”“증거요?”장병욱이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지금 폭설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263화

    “말하지 마요.”최수빈은 주민혁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그냥 좀 쉬어요. 기운 아끼면서.”주민혁의 무겁게 가라앉은 시선이 최수빈의 얼굴 위에 머물렀다.불빛 아래 드러난 그녀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고 눈 밑에는 옅게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었다. 며칠 내내 그의 곁을 지키느라 몸이 상한 게 분명했다.주민혁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듯 목젖을 천천히 움직였으나 끝내는 작게 고개만 끄덕였다.“응.”쉰 목소리가 낮게 흘러나왔다.하지만 그의 마음속은 조용하지 않았다.무언가로 꽉 막힌 듯 답답했고 온갖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시리고, 쓰리고, 아프고, 그러면서도 설명하기 힘든 따뜻함이 맨 밑바닥에 남아 있었다.최수빈은 잠시 자리에 앉아 있다가도 끝내 마음을 놓지 못했다.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이불 끝을 다시 정리해주고는 병실을 나섰다.고요한 복도는 비상등만이 희미한 빛을 비추고 있었다.그녀는 옆방 몇 군데를 차례로 두드리며 혹시 기침약이나 목캔디를 가진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대원들 대부분은 주민혁의 부하들이었다. 때문에 최수빈의 얼굴만 봐도 병실 안 상황이 어떠한지 짐작한 듯, 모두 말없이 짐을 뒤지기 시작했다.잠시 뒤, 최수빈의 손에는 서로 다른 브랜드의 기침약 몇 판과 목캔디 두 상자가 들려 있게 되었다.그녀는 짧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병실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따뜻한 물을 한 컵 따라 약을 손에 쥔 채 주민혁에게 내밀었다.“약 먹어요. 조금이라도 나을 수 있잖아요.”주민혁도 알고 있었다. 이 약들이 자신의 병에는 별 소용이 없다는 걸.그럼에도 그는 조용히 턱을 조금 들어 올리고 그녀가 내민 약을 그대로 삼켰다. 이어 목캔디 하나도 입에 물었다.달콤하면서도 시원한 박하 향이 입안에 퍼졌지만, 목구멍 깊숙이에 배어 있는 비릿한 피 맛까지는 지워주지 못했다.밤은 점점 깊어졌고 병실 안에는 두 사람의 옅은 숨소리만 남았다.주민혁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여전히 때때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262화

    “우린 다 괜찮아요. 민혁 씨의 곁을 떠난 적 없어요.”그 말에 주민혁의 몸이 순간 굳었다. 최수빈을 끌어안고 있던 힘도 조금씩 느슨해졌다.그런데 팔이 풀린 바로 그 순간, 남자의 등이 갑자기 팽팽하게 굳어졌다.다음 순간, 아무런 예고도 없이 거센 기침이 터져 나왔다. 아까보다도 훨씬 심하고, 훨씬 사납게 몰아쳤다.주민혁의 가슴이 크게 들썩이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그는 최수빈의 옷자락을 꽉 움켜쥔 채 놓지 않았는데 손가락 마디는 잔뜩 힘이 들어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뜨끈한 액체가 그녀의 손등 위로 튀었다.짙은 피비린내가 섞인 달큰한 냄새였다.최수빈은 순간 그대로 굳어버리며 온몸의 피가 얼어붙은 것만 같았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창백한 조명 아래, 눈에 박힐 만큼 선명한 붉은빛이 보였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민혁 씨!”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부르며 부축하려 손을 뻗었지만 남자는 고개를 돌려 최수빈의 손을 피했다.그러고는 힘겹게 몸을 옆으로 틀어 그녀에게 등을 보였다. 어깨는 여전히 거칠게 들썩이고 있었다.기침은 한 차례로 끝나지 않았다.한 번 시작된 기침은 또다시, 또다시 몰아쳤고 금방이라도 속에 든 것까지 모조리 토해낼 것처럼 처절했다.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주민혁은 겨우 숨을 고를 수 있었다.“나... 괜찮아.”거의 끊어질 듯한, 너무 가벼워서 더 불안한 목소리였다.코끝이 시큰해진 탓에 최수빈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이내 시야에는 수척하게 야윈 그의 등이 들어왔다. 목덜미에 핏줄이 선명하게 돋아오른 것도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한 가지의 생각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지난번에도 피를 토했었지? 빙하 틈 속에서, 얼음벌판을 헤매던 그때도 분명 그랬어. 그때는 나도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우울증 때문에 이럴 리는 절대 없어. 동상에도 피를 토하는 증상은 없어. 그렇다면... 내가 모르는 병이 또 있는 건가?’이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261화

    끝없이 펼쳐진 하얀 세계, 주민혁은 텅 빈 묘지 한가운데 서 있었다. 손에는 종이 두 장이 쥐어져 있었는데 하나는 화장 통지서, 다른 하나는 이혼 합의서였다.종이 위의 글씨는 눈이 시릴 만큼 또렷했고 맨 아래에는 그가 직접 적은 사인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왜 그걸 썼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그저 최수빈이 없고, 율이도 없다는 사실만 분명했다.품 안에는 두 개의 유골함이 안겨 있었다. 작고 가벼운 그것들이 이상하게도 불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가슴을 짓누르며 타들어 가듯 시린 통증까지 남겼다.그는 한 걸음씩 앞으로 걸었다.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었다.귓가에는 거칠게 몰아치는 바닷바람 소리가 들렸고 짠내가 코끝을 파고들었다. 숨이 막힐 듯 목이 조여왔다.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녀들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아무도 찾지 못할 곳까지, 그곳에서 함께 머물며 다시는 헤어지지 않기 위해서...파도가 거세게 밀려왔다.철썩, 철썩하며 끊임없이 해변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그건 마치 최수빈이 꾹꾹 눌러 참고 있던 울음 같기도 했고, 또는 율이의 부드럽고 어린 목소리 같기도 했다.“아빠...”“아빠, 나 좀 안아줘요.”“민혁 씨... 나 좀 봐줘요.”그 목소리들은 수없이 많은 바늘이 되어 주민혁의 심장을 찔러댔다. 숨이 막힐 듯 아파서 그는 몸을 웅크렸다.그 순간, 사방에서 바닷물이 한꺼번에 밀려왔다.차갑고 짠 물이 입과 코를 통해 들이닥쳤고 앞다투듯 밀려 들어와 숨통을 죄어왔다.결국 숨이 완전히 막혀버렸다.“컥!”거친 기침이 목을 찢듯 터져 나왔다.비릿하면서 달큰한 액체가 혀끝으로 차올라 입술 사이로 흘러내리자 하얀 베개 커버가 이내 붉게 물들였다.주민혁은 번쩍 눈을 떴다.동공이 급격히 수축하더니 눈에는 아직 공포가 가시지 않아 붉은 실핏줄이 가득 번져 있었다.가슴이 크게 들썩였다. 숨을 쉴 때마다 폐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따라왔다.조금 전까지의 악몽이 머릿속을 미친 듯이 맴돌며 좀처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260화

    장병욱은 그녀가 끝내 뜻을 굽히지 않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최수빈은 그렇게 아주 오랜 시간 주민혁의 곁을 지켰다.병상 옆에 앉아서는 차가운 물수건을 손에 쥔 채 그의 이마에 밴 식은땀을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는데 손길이 아주 조심스러웠다.해 질 무렵, 장병욱이 한 번 더 찾아와 조심스럽게 말했다.“수빈 씨, 이틀 밤낮을 꼬박 지키셨습니다. 이러다가는 수빈 씨의 몸이 먼저 버티지 못하겠어요. 대표님 쪽은 저희가 보고 있으니, 정말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하지만 최수빈은 대답 대신 시선을 내리깔고 주민혁의 손만 바라보고 있었다.그 손은 한때 정교한 기계를 다루던 손이었다. 수백억 원짜리 계약서에 서명하던 손이기도 하고, 서툴지만 정성스럽게 율이의 머리를 묶어 주던 손이기도 했다.그런데 지금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것이 온기라고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장병욱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는 더 말을 보태지 않고 죽 그릇을 침대 머리맡에 조용히 내려놓은 뒤, 발소리마저 죽인 채 문을 닫고 나갔다.방 안은 다시 적막에 잠겼다.남은 건 두 사람의 숨소리와 창밖으로 눈발이 흩날리며 부딪히는 자잘한 소리뿐이었다.깊은 밤이 되자 스며드는 한기는 바늘처럼 옷깃 사이를 파고들어 뼛속까지 시리게 했다.최수빈은 몸에 걸친 커다란 방한복을 더 꼭 끌어당겼다.이는 주민혁의 옷이었다. 어쩐지 아직도 그에게서 나던 서늘하고 맑은 체취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그녀의 시선은 한순간도 주민혁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잔뜩 찌푸린 미간, 미세하게 떨리는 속눈썹, 시간이 갈수록 더 맺혀 오는 이마의 식은땀까지...젖은 앞머리가 이마에 눌어붙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다.그러다 최수빈은 문득 송미연과 육민성이 떠올랐다.한참 전, 카페에 마주 앉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날.그때의 그녀는 율이를 데리고 은산시에 막 돌아온 직후였다.주민혁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본능적으로 표정이 굳힐 만큼 그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상태였다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23화

    최수빈은 잠시 멈칫했다. “네.”주민혁은 당연히 학부모회에 참석할 시간이 없을 테고 그녀도 갈지 말지 불필요하게 묻지 않을 것이다....학부모회의 당일 최수빈은 일찍부터 준비를 마치고 어린이집에 도착했다.어린이집에는 부모들이 모두 나란히 참석해 있었다.주예린은 엄마가 온 걸 보고 기쁨에 겨워 달려 나가 그녀를 안았다. “엄마.”최수빈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주예린이 최수빈의 뒤를 바라보았지만 아빠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최수빈도 딸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몸을 굽혀 말했다. “엄마 혼자 학부모회에 왔는데 괜찮아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30화

    최수빈은 웃음이 났다.맞다. 그녀는 다 알고 있었다.다 안다고 번번이 박하린 모자에게 양보해야 하는 건가?“본인이 벌인 난장판은 알아서 수습해요.”최수빈은 주예린의 손을 잡고 돌아서서 떠나려고 했다.방금 육민성이 메시지를 보내 연구소에 긴급회의가 생겨서 오지 못한다고 했다. 같이 일하는 후배를 보내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괜히 신세 지기 싫어서 거절했다.그를 불러 행사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지금 보니 남은 행사는 이어가지 못할 것 같았다.그러니 그녀도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며 그들과 얽힐 이유가 없었다.걸음을 내딛기 무섭게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53화

    강연이 끝나고 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참관하러 온 사람들은 일제히 직원 식당으로 가 식사를 했다.육민성도 최수빈과 사람들 틈에 섞여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사실 너 떠났을 때랑 크게 달라진 건 없어.”육민성의 말에 최수빈이 웃었다.“그런 것 같네요.”그때, 말을 마친 최수빈이 갑자기 관자놀이를 어루만지며 미간을 찌푸렸다. 또다시 몸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육민성은 그녀의 안색이 파리해지자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일단 여기 앉아 있어. 밥은 내가 가지고 올게.”최수빈은 괜찮다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51화

    장원호는 그녀의 겸손한 태도가 마음에 드는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나는 수빈이 네가 오겠다고 하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혹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다오. 뭐든 도와줄 테니까.”육민성은 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조용히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그런데 전화를 끊고 다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박하린이 옆으로 다가왔다. 우연히 마주친 게 아니라 그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하실 말씀이라도?”박하린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대뜸 이런 말을 꺼냈다.“혹시 수빈 언니 좋아해요?”“뜬금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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