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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3화

Author: 금붕어
대문을 여는 순간, 그녀의 시야에 주민혁이 들어왔다.

그는 검은 정장을 입은 채 곧게 서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최수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에는 걱정과 함께 말없이 건네는 격려가 담겨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이미 주선웅과 심종연이 도착해 있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맞댄 채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최수빈과 주민혁을 발견하자 주선웅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 꿍꿍이가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

최수빈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말 없는 전쟁이 이제 막 막을 올리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손에 있는 서류를 꽉 움켜쥐고 한 걸음씩 회장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의 생각뿐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프로젝트를 따내야 해.’

주선웅의 음모를 막아야 하고 무엇보다 주민혁을 실망시켜서는 안 됐다.

주민혁은 최수빈의 단호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녀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꿈을 이루길 바라면서도 이 입찰로 인해 주선웅의 표적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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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885화

    최수빈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고개를 돌려보니 주선웅이 주민혁 앞에 서 있었다. 입가에는 노골적인 비웃음이 걸려 있었고 일부러 그런 말을 던졌다는 게 분명했다.주변은 숨소리조차 사라진 듯 조용해졌다. 모두가 주민혁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러나 주민혁은 주선웅을 그저 힐끗 바라봤을 뿐, 목소리는 놀랄 만큼 차분했고 그 어떤 감정의 기복도 없었다.“내 일은 형이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럴 시간에 잠시 후 입찰회에서 형이 제출한 기술 안에 들어 있는, 표절 의혹 부분을 어떻게 설명하실지나 고민해.”단 한마디에 주선웅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그는 주민혁이 이 이야기를 꺼낼 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말문이 막혀 이를 악물고 노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주민혁은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곧장 몸을 돌려 심사위원석 쪽으로 걸어가다 최수빈 옆을 지나는 순간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그리고 두 사람만 들을 수 있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걱정 마. 내가 있잖아.”최수빈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그는 늘 그랬다. 이미 너무 많은 걸 짊어지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그녀를 먼저 다독여주었고 사람들 앞에서는 언제나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겉으로는 정서상의 문제 따위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정상’이라는 가면 아래에 어떤 고통과 싸움이 숨겨져 있는지, 아는 사람은 그녀뿐이었다.입찰회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최수빈은 단상에 올라 프로젝트의 기술적 세부 사항을 설명하기 시작했다.목소리는 또렷했고 태도는 흔들림이 없었지만 시선은 자꾸만 객석의 주민혁을 향했다.그는 맨 앞줄에 앉아 꼼꼼히 듣고 있었고 때때로 노트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다.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평소의 모습 그대로였다.발표가 끝나자 심사위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대부분 기술적 난점이나 시장성에 관한 내용이었고 최수빈은 침착하게 하나씩 답해 나갔다.그때, 주선웅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884화

    바로 그때,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앞으로 다가와 주민혁의 손을 잡으며 감회에 젖어 말했다.“주 대표, 정말 오랜만이야. 지금 이렇게 상공협회를 잘 이끌고 있을 줄은 몰랐어. 생각해보면 예전에 자네가 구 원사 밑에서 연구하던 시절부터 나는 자네가 크게 될 인물이란 걸 알아봤지. 다만 아쉽게도....”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지만 그 한마디로 주변 공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 구 원사라는 사람이 주민혁의 스승이자 그의 마음속에 깊게 남아 있는 상처라는 걸.그해 구교진이 뜻밖의 사고로 물에 빠져 세상을 떠난 뒤, 주민혁은 연구원의 길을 완전히 접고 가업을 물려받았다. 그 이후로 그는 좀처럼 구교진을 입에 올리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 역시 감히 그의 앞에서 구교진을 언급하지 못했다.최수빈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컵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주민혁만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그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까 봐서였다.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주민혁의 얼굴에는 미동조차 없었다.그는 그저 노인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며 남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하게 말했다.“지난 일은 이제 그만 얘기하시죠. 산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법이잖아요. 선생님께서 많은 걸 가르쳐주신 건 사실이지만 지금 제 마음은 사업에 있습니다. 연구 쪽은... 이미 손을 놓은 지 오래됐고요.”너무도 태연한 태도가 일부러 더 무심해 보이려 애쓰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마치 한때 자신을 친자식처럼 아껴주던 스승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남아 있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주변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서둘러 화제를 돌렸고 더 이상 누구도 구교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구석에 서 있던 최수빈은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가슴 한가운데가 세게 움켜쥐어지는 듯한 느낌에 숨이 막혔다.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주민혁의 저 담담한 모습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밤마다 되살아나는 죄책감, 진실을 마주할 때마다 몰려오는 고통, 그리고 우울증이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883화

    대문을 여는 순간, 그녀의 시야에 주민혁이 들어왔다.그는 검은 정장을 입은 채 곧게 서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최수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에는 걱정과 함께 말없이 건네는 격려가 담겨 있었다.그 맞은편에는 이미 주선웅과 심종연이 도착해 있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맞댄 채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었다.최수빈과 주민혁을 발견하자 주선웅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 꿍꿍이가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최수빈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말 없는 전쟁이 이제 막 막을 올리려 하고 있었다.그녀는 손에 있는 서류를 꽉 움켜쥐고 한 걸음씩 회장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의 생각뿐이었다.‘무슨 일이 있어도 프로젝트를 따내야 해.’주선웅의 음모를 막아야 하고 무엇보다 주민혁을 실망시켜서는 안 됐다.주민혁은 최수빈의 단호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그녀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꿈을 이루길 바라면서도 이 입찰로 인해 주선웅의 표적이 될까 봐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그래서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녀만은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속으로 다짐하며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었다....입찰회가 공식적으로 시작됐다.심사위원들이 차례로 자리에 앉고 언론사 기자들은 카메라를 세팅하기 시작했다.최수빈은 단상에 올라 프로젝트의 기술적 강점과 향후 발전 가능성을 설명했다. 목소리는 또렷했고 태도에는 흔들림이 없었다.아래에서는 주민혁이 자부심과 존경심이 담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반면, 주선웅과 심종연은 간간이 시선을 주고받았다. 말 없는 교감 속에서 무언가를 꾀하고 있음이 분명했다.어느덧 시간이 흘러 최수빈의 발표가 끝나자 회장 안에는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자리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심종연이 최수빈의 쪽으로 다가왔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그 미소에는 진심이 없었다.“수빈 씨, 발표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몇몇 기술 수치가 조금 애매해 보이더군요. 따로 시간을 내서 한번 자세히 이야기해보는 게 어떻겠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882화

    주민혁은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가서 심종연이 형에게 정보를 넘겼다는 증거를 전부 정리해둬.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보이면 바로 공개하도록.”“알겠습니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려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갔다.곧 사무실에 다시 정적이 흘렀다.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는 주민혁은 마음속에 온통 초조함뿐이었다.내일 열릴 입찰은 분명 쉽지 않은 싸움이 될 터였다.주선웅은 어떤 수를 써서든 프로젝트를 손에 넣으려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최수빈과 주예린을 협박 카드로 끌어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때문에 그는 철저히 대비해야 했다.프로젝트를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키고 싶은 사람들까지 반드시 보호해야 했다.같은 시각, 최수빈은 침대 위에서 좀처럼 잠들지 못한 채 뒤척이고 있었다.내일이면 항공우주 연구원 무인기 프로젝트의 공개 입찰이 열린다.그 프로젝트는 그녀와 팀원들이 수없이 밤을 새워가며 쌓아 올린 결과물이자 모두의 기대가 걸린 일이었다.하지만 지금은 주선웅과 심종연이 노골적으로 노리고 있었기에 입찰 현장에서 어떤 수작을 부릴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길까 걱정되는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욱 불안한 것은 이번 입찰을 계기로 주민혁이 주선웅과 완전히 적이 될 경우였다.그렇게 되면 위험이 언제든 자신과 주예린에게로 향할 수 있으니 말이다.최수빈은 휴대폰을 들어 강지안과의 대화창을 열었다.몇 마디라도 나누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었지만 문장을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결국 화면을 껐다.이미 강지안은 자신과 주민혁의 문제로 충분히 마음을 써주고 있었기에 더 이상 걱정을 얹고 싶지 않았다.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창밖이 밝아오고 있었다. 최수빈은 잠깐 졸음이 오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정신을 차렸다.서둘러 몸을 일으켜 씻고 주예린의 아침 식사를 챙겨준 뒤, 아이가 식사를 마치는 걸 보고서야 항공우주 연구원으로 향했다.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동료들이 몰려왔다. 모두의 얼굴에는 긴장과 기대가 동시에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881화

    “뭘 걱정하는지는 알아요. 하지만 분명히 말해두죠. 제가 수빈 씨를 찾은 데에는 다른 의도가 없고 그저 한마디 조언을 해주고 싶었을 뿐이에요.”“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저는 솔직히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최수빈은 다시 한번 선을 그었다.“시간도 늦었고 집에 가서 아이를 돌봐야 해서요. 이만 끊겠습니다.”이 말을 끝으로 심종연이 더 말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최수빈은 전화를 끊었다.휴대폰을 내려놓은 그녀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이러한 심종연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는 최수빈으로 하여금 더욱더 확신하게 만들었다.주선웅 쪽에서 분명 무언가를 꾸미고 있고 자신과 주예린은 이미 이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새벽 세 시, 최수빈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그때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인 휴대폰이 갑자기 진동하며 울리기 시작했다. 고요한 밤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에 그녀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어 들고 화면을 확인한 순간, ‘주민혁’이라는 이름이 떠 있는 걸 보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이 시간에 왜 전화를 건 거지? 무슨 일이 생겼나?’서둘러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휴대폰 너머로 주민혁의 낮고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심종연이랑 가까이하지 마.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믿지 말고 절대 혼자 만나지도 마.”잠긴 목소리에는 피로가 가득 묻어 있었다.최수빈은 잠시 멈칫했다가 곧 상황을 이해했다. 려운에게서 심종연이 자신에게 야식을 먹자고 제안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분명했다.그래서 그녀는 아직 잠기운이 가시지 않은 눈을 비비며 잠에서 막 깬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네, 알겠어요. 그 사람하고는 안 만날게요.”휴대폰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 그녀가 이렇게 바로 수긍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왜 그런지는 안 물어봐?”“민혁 씨가 그렇게 말할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거겠죠.”최수빈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아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그리고 원래도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880화

    이 모든 조치를 마친 뒤에야 최수빈은 조금 숨을 돌릴 수 있었다.그렇게 막 짐을 정리하고 퇴근하려는데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화면에 떠오른 이름은 ‘심 대표님’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최수빈의 미간이 자연스레 좁혀졌다.심종연 역시 이번 프로젝트의 협력 담당자 중 한 명이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철저히 업무에 한정돼 있었다.사적인 연락을 주고받을 일은 거의 없었고 더더욱 퇴근 시간에 전화가 올 이유는 없었다.‘이 시간에 왜 전화를 걸어오신 거지?’최수빈은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심 대표님, 안녕하세요. 혹시 업무 관련해서 연락 주신 건가요?”“수빈 씨, 안녕하세요.”심종연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차분한 것이 감정의 기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업무라기보다는 요즘 다들 프로젝트 때문에 고생이 많잖아요. 잠깐 시간 되시면 야식 먹으면서 이야기 좀 나눌까 해서요.”최수빈은 즉각 경계했다. 심종연은 주선웅의 측근이었으니 말이다.그들은 오랜 기간 함께 일해 온 사이였고 두 사람의 관계가 각별하다는 건 업계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주선웅이 막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이 시점에 심종연이 갑자기 야식을 핑계로 연락해 왔다?결코 단순한 제안일 리 없었다.무엇보다 그녀와 심종연 사이에는 일 말고는 나눌 이야기가 없었다.“죄송합니다, 심 대표님. 오늘은 좀 피곤해서요. 집에 가서 쉬어야 할 것 같아요.”최수빈은 정중한 말투를 유지했다.그러자 휴대폰 너머가 잠시 조용해지더니 이내 심종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여전히 담담했지만 은근히 무언가를 유도하는 듯한 뉘앙스가 섞여 있었다.“그렇게 급하게 거절하실 필요는 없어요. 사실 오늘 연락드린 건... 선웅 씨에 관해 할 이야기가 있어서입니다. 아마 느끼셨을 거예요. 선웅 씨가 수빈 씨에게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걸요. 그와 관련해서 수빈 씨가 알아야 할 것들이 좀 있습니다. 제대로 한번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수빈 씨에게도, 주 대표님에게도 좋을 거예요.”심장박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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