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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이성준의 힘이 어찌나 센지, 백아영은 뒤로 밀려나 차 문에 쿵 하고 부딪혔다. 이내 등에서 통증이 밀려왔다.

따끔거리는 느낌에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드는 반면, 이성준이 그녀에게 기회를 주기는커녕 조사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적인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제 도망칠 구멍은 없었다.

“차 세워요! 얼른!”

백아영은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가만히 앉아서 죽기를 기다릴 리가 있겠는가! 변명해도 소용이 없으면 삼십육계 줄행랑이다.

다만 차는 여전히 쏜살같이 달리고 있었고, 그녀의 애원 따위 통하지 않았다.

이내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차 문을 벌컥 열었다.

운전 중인 위정이 깜짝 놀라 서둘러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가 멈추기도 전에 백아영은 이미 훌쩍 뛰어내렸다.

땅바닥에 10여 바퀴나 데굴데굴 굴러서 드디어 멈춰선 그녀의 몸에 군데군데 다친 흔적이 역력하며 피가 흥건했다. 비록 통증 때문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결국 이를 악문 채 바닥을 짚고 힘겹게 일어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뛰어갔다.

“뭐야? 영화 찍어? 형수님 장난 아닌데?”

구민기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토록 무모한 여자라니, 정말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다.

이성준은 착잡한 얼굴로 백아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젓가락처럼 깡마르고 가녀린 여자는 옷이 흙과 피로 얼룩진 채 비틀거리며 도망갔다.

비참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이성준의 마음은 이루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짠했다.

그러나 몇 번이고 남자를 몰래 만나서 그런 짓거리를 한다는 생각만 떠올리면 역겹기 짝이 없었다. 이처럼 방탕하고 더러운 여자는 밖에 돌아다녀봤자 공기를 오염시키는 일밖에 더 있지 않겠는가!

그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가에 연락해서 붙잡아 오라고 해.”

“네.”

위정은 즉시 전화를 걸면서 차를 몰았다.

조수석에 앉은 구민기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백아영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여태껏 두 번 만난 새로운 형수님은 항상 다른 남자와 함께했는데 겉보기에는 음탕하기 그지없었다.

다만 그동안 무수히 많은 여자를 봐 온 사람으로서 백아영처럼 깨끗한 눈동자를 가진 탕녀는 처음이었다.

그가 식견이 짧은 건지, 아니면 속사정이 따로 있는 건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여자라면 당연히 관심이 많은 구민기는 즉시 문자를 보내 조사해 보라고 지시했다.

물론 궁금증을 해결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수석에 탄 그는 뒤돌아 뒷좌석에서 싸늘한 냉기를 내뿜는 이성준을 바라보며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형, 방금 흥미로운 걸 알아냈어. 자, 봐봐.”

구민기가 휴대폰을 건네자, 액정에 오재문이 지난 며칠 동안 여기저기 다니며 발기부전 치료를 받은 진료기록이 떠 있었다.

이성준은 놀라움에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정말 백아영을 오해한 걸까?

“참, 그리고 어쩌다 알아낸 사실이 있는데, 지난번 헤이데이에서 ‘만취한’ 남자가 바로 오재문이었어. 그날 이후로 잘 안 선다고 하더라고.”

백아영이 발기부전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인즉슨 서지 못하게 하는 방법도 따로 있다는 것을 뜻했다.

따라서 그날 헤이데이에서 오재문이 목적을 달성하기도 전에 백아영에게 먼저 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이성준은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내 초조한 얼굴로 열심히 변명하던 백아영이 떠올랐지만, 정작 본인은 말도 안 되는 편견과 악의를 가지고 단 한마디도 믿어주지 않았다.

심지어 차에서 뛰어내려 다치도록 몰아붙이기까지 하다니.

“위정아, 차 돌려!”

위정 역시 그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 백아영이 정말 결백할 줄이야!

그는 즉시 차를 돌렸다.

...

한참을 달리던 백아영은 이성준의 차가 쫓아오는 대신 제 갈 길을 가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멈춰 섰다.

차에서 뛰어내렸을 때 다친 부위가 점점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가로등에 몸을 기댄 채 겨우 허리를 펴고 지나가는 차를 잡아 시내까지 얻어 탈 작정이었다.

그런데 차를 잡기도 전에 번호판조차 없는 승합차 한 대가 그녀 앞에 멈췄다.

순간 위험을 느낀 그녀는 즉시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중년 남성 4명이 재빨리 승합차에서 내렸다. 이내 손에 쇠파이프를 든 사람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를 에워쌌다.

“에이, 예쁜이, 도망가려고? 우리를 만났는데 감히 도망쳐? 다리 몽둥이 부러뜨려줘?”

백아영은 잔뜩 경계하며 가로등에 바짝 기댔다.

“뭔데?”

“돈이 좀 필요해서 말이야.”

남자는 쇠파이프로 백아영을 가리키더니 두 눈을 부라리며 호통쳤다.

“얼른 가진 돈 다 내놔!”

“그래, 다 줄게.”

이런 상황에서는 안전이 최우선이다. 백아영은 잽싸게 가방을 쇠파이프에 걸어 놓는 반면, 손바닥에 몰래 은침 몇 개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녀의 가방을 빠르게 뒤적거리던 남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버럭 화를 내며 그나마 가방 안에 유일하게 값나가는 휴대폰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젠장, 돈도 없는 빈털터리네! 괜히 헛걸음하게 하다니, 죽여버릴 거야!”

남자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채 쇠파이프를 번쩍 들어 백아영을 때리려고 했다.

이미 예상한 백아영은 즉시 몸을 피하며 손을 뻗어 은침으로 남자를 찌르려 했지만, 순간 다른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정확하게 붙잡았다.

곧이어 세게 움켜쥐자, 백아영은 너무 아픈 나머지 힘이 풀렸고 이내 은침 몇 개가 바닥에 후드득 떨어졌다.

마치 그녀가 은침으로 기습할 걸 예견이라도 한 듯, 백아영은 그 남자 때문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년이 기습까지 하려고 들어? 죽고 싶어?”

순간 쇠파이프가 백아영을 강타했다.

백아영은 꼼짝도 못 하고 땅바닥에 풀썩 쓰러졌고, 고통에 땀을 뻘뻘 흘렸다.

그와 동시에 남자의 손에 들려 있던 쇠파이프는 어느샌가 나이프로 바뀌었고, 빠른 속도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을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단순히 재물을 탐하는 게 아니라 진짜 그녀를 죽이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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