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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아쉽네, 이렇게 예쁜 애를 이제야 발견하다니. 진작 딴 사람이 낚아챘겠지.”

구민기는 많이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성준의 낯빛이 확 어두워지고 주먹을 너무 세게 쥔 나머지 뼈마디가 마찰하는 소리까지 났다.

그는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백아영 앞에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를 덥석 잡아당겼다.

백아영은 갑자기 다가온 남자에 화들짝 놀라더니 얼굴을 똑바로 확인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준아, 너였어.”

이성준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손목을 꽉 쥐었다. 힘을 너무 세게 준 탓에 백아영은 뼈가 부러질 것 같았다.

이성준이 혐오에 찬 말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백아영, 네가 감히 이런 곳에 와?!”

그런 줄도 모르고 그날 밤 그 여자가 백아영이 아닐지 우려했던 자신이 너무 우스웠다. 백아영은 천하고 음탕한 여자일 뿐 절대 그날 밤 청순하고 깨끗했던 그 여자일 리가 없었다!

백아영은 멍하니 넋 놓고 있다가 그제야 이성준이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알아챘다. 헤이데이는 문란한 장소이고 그녀는 또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으니 딱 오해받기에 십상이었다.

그녀는 얼른 해명에 나섰다.

“성준아, 오해야. 나 여기 병 치료하러 온 거야.”

이성준은 그녀를 잡아당기며 룸문을 힘껏 걷어찼다.

어수선한 방안에 흥분을 일으킬 것 같은 꽃향기와 짙은 알코올 냄새가 가득 찼고 오재문이 한창 헝클어진 옷차림에 곤드레만드레 취한 채로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이성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유흥 업소 룸안에서 술에 취한 남자를 병 치료한다고? 백아영, 내가 바보로 보여?”

백아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당장이라도 오재문을 토막 내 머리째로 시궁창에 내팽개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비겁하고 천박한 이 남자는 항상 그녀를 해치고 있었다.

“성준아, 내 말 진짜야. 저 인간이 일부러 딴마음을 품고 아픈 척하며 병이 발작했단 이유로 날 이곳에 불러왔어. 지금은 취한 게 아니라 내가 은침을 놔서 기절한 거야.”

“증거 있어?”

오재문에게 고의상해죄라는 뒷덜미가 잡히지 않기 위해 그녀는 일부러 흔적을 없애버렸기에 막상 상처 자국도 찾기 힘들었다.

그런데 대체 어디서 증거를 내놓으란 말인가?

그녀가 아무 말도 못 하자 이성준의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 입만 열면 온통 거짓말뿐인 음탕한 이 여자가 너무 한심하고 얄미웠다.

이성준은 더는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아 그녀를 룸에서 내쫓으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백아영, 혼약 기간에는 반드시 처사를 똑바로 해야 해! 내 아내라는 명분으로 망신당할 일을 저지르거든 그땐 어르신도 널 지킬 수 없어. 당장 돌아가. 열흘 동안 꼼짝 말고 방안에서 반성해. 이번엔 경고뿐이지만 다음에 또 이러면 그땐 정말 가만 안 둬!”

말을 마친 이성준은 곧장 자리를 떠났다.

커다란 뒷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싸늘한 한기에 온몸이 오싹해질 따름이었다.

백아영은 초라한 몰골로 바닥에 앉아있었다. 몸에서 전해지는 고통보다 마음에서 전해지는 서운함이 더 컸다.

‘또 이런 식이야. 나야말로 피해자인데, 괴롭힘을 당한 건 나인데 왜 결국 나만 죄인이고 나쁜 사람이 되는 건데?’

...

열흘 동안 갇혀있으란 말에 백아영은 정말 한 발짝도 별장을 나서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셋째 날 오재문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다짜고짜 욕설부터 퍼부었다.

“야, 백아영, 너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나 지금 발기부전이야, 발기부전이라고! 당장 튀어와서 내 병 치료해!”

백아영은 담담하게 전화를 끊은 후 바로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다.

이제 막 전원을 켰는데 오재문한테서 또다시 전화가 왔다.

백아영은 벨 소리가 울리는 채로 5분 동안 놔두다가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오재문의 고함이 들려왔다.

“백아영, 너 X발...”

“한 번만 더 욕하면 평생 나한테 전화 못 걸 줄 알아.”

순간 오재문이 조용해졌다.

요 며칠 오재문은 병원이란 병원은 다 다녔고 한의학, 서의학을 불문하고 전부 시도해보았지만 완치는커녕 병의 원인조차 밝혀내지 못했다.

게다가 의사들은 그를 선천적 발기부전이라고 의심하기까지 했다.

다만 그는 전에 온갖 음탕한 생활을 즐기며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이건 분명 백아영의 침 때문이었다!

백아영은 본인만의 의학 실력을 지니고 있어 자신이 벌인 일은 반드시 자신만이 치료할 수 있다. 하여 오재문은 화를 꾹 참고 그녀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차오르는 분노를 겨우 가라앉히고 이를 악문 채 말을 이어갔다.

“아영아, 조건만 말해. 내가 어떻게 하면 치료해줄 거야?”

백아영이 웃으며 대답했다.

“치료비용 4천만 원을 입금해.”

“4천만 원? 너 지금 제정신이야?! 꿈도 꾸지 마. 네가 놓은 침을 네가 치료하지 않거든, 그땐 내가...”

오재문의 욕설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아영이 전화를 끊고 그의 번호를 차단해버렸다.

지금 급한 것은 그녀가 아니라 오재문이었다.

백아영은 책을 펼치고 계속 독서했다.

잠시 후 짹짹거리는 새소리와 함께 고개를 들고 보니 발코니 위에 놓인 장미꽃 넝쿨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얽혀있었다.

새가 발버둥 칠 때마다 장미꽃 넝쿨의 가시에 끊임없이 찔렸다.

‘이대론 안 되겠어.’

백아영은 얼른 발코니 난간에 기어올라 작은 새를 구하려 했다.

하지만 난간 바깥쪽이 허공에 떠 있었고 이곳은 4층이라 지면과 족히 10미터는 떨어져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본 백아영이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녀는 재빨리 시선을 옮기고 심호흡을 하며 팔을 뻗어 넝쿨을 풀려고 했다.

바로 이때 방안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는 거야?”

극도로 긴장한 상태에 갑자기 질책에 가까운 목소리를 듣자 마치 뒤에서 귀신이라도 나온 듯 무섭고 소름 끼쳤다. 백아영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기울이려 했는데 난간 가장자리에 발을 내딛는 순간 몸이 중심을 잃었다...

“으악!!!”

그녀가 아래로 떨어지려던 찰나, 이성준이 긴 팔을 내뻗어 힘있게 그녀를 잡아당겼다.

백아영은 몸 전체가 앞으로 확 쏠렸고 멈춘 순간 입술이 마침 그의 입술에 닿았다.

그녀는 머리가 띵해지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백아영은 눈앞에 나타난 확대된 것만 같은 이성준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녀는 실수로 이성준에게 입맞춤을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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