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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나 인제 끝장이야. 악마 같은 이 인간에게 입맞춤하다니, 이제 곧 아래층으로 내던져버리겠지?’

그녀를 구하던 중 갑작스러운 키스에 이성준은 멍하니 넋을 놓고 말았다.

겁에 질린 백아영과 달리 그는 솜사탕처럼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촉감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 느낌은 그날 밤 그 여자한테서만 받을 수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딱 한 번으로 그를 미치게 만들었는데 백아영이...

“나, 절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백아영은 황급히 뒤로 물러가며 발코니 구석에 서서 그와 가장 먼 거리를 유지하려 했다.

“저 새가 넝쿨에 얽혀버려서 구하려고 한 것뿐이야.”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당황하고 쑥스러워하는 청초한 그 얼굴은 마치 한 떨기 꽃잎처럼 아름다울 따름이었다.

이성준은 잠시 넋을 놓아버렸다.

다만 그녀가 저질렀던 만행을 되새기자 또다시 증오가 밀려왔다. 청순하고 예쁜 이미지는 결국 다 거짓이었다.

그는 차갑게 시선을 돌리고 넝쿨에 얽힌 새를 쳐다봤다. 얽혀버린 넝쿨이 어느덧 반쯤 풀렸다.

이성준은 난간 위로 올라갔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뛰어 내려왔다.

그는 손을 펼쳐 작은 새를 날려 보냈다.

백아영은 의외라는 듯이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깔끔하게 해결하는 그의 모습이 실로 멋있을 따름이었다.

게다가 마냥 차가울 줄 알았던 이 남자가 선뜻 작은 새를 구해주다니.

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성준은 사실 그렇게 차갑고 나쁜 사람이 아니야. 단지 내게만 편견을 갖고 있어서 그래.’

...

그날 밤, 백아영은 낯선 번호로 수십 통의 전화가 걸려온 후에야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기 너머로 오재문의 용서를 비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영아, 내가 잘못했어. 병만 치료할 수 있다면 4천만 원 바로 줄게!”

백아영은 예상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

“내일 아침 9시, 성서 라이트 클럽에서 만나.”

라이트 클럽은 식사와 레저를 동시에 즐기는 고급 클럽이었다.

도심과 멀리 떨어진 성서 구역이라 위치가 비교적 은밀하고 만약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거든 전용 통로가 마련되어 있어 소리 없이 왔다가 갈 수 있다.

지난번 이성준은 백아영에게 두 번 다시 이씨 일가의 명성을 해치는 일을 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었다. 전 남자친구와 만나는 일은 어떤 이유든 사람들에게 들키지 말아야 했다.

다음날, 준비를 마친 백아영이 기사에게 라이트 클럽으로 데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전용 통로를 이용하여 길에서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은 채 곧게 예약한 룸으로 들어갔다.

오재문은 일찌감치 와 있었다.

백아영을 본 그는 아양을 떨며 반겨주었다.

“아영이 왔어? 얼른 앉아.”

백아영은 본론부터 들어갔다.

“돈부터 입금해.”

“아영아, 아직 치료도 안 했는데 돈부터 받는 건 좀 그렇지 않아? 일단 완치만 되면 바로 입금해줄게.”

“오재문, 내가 바보로 보여? 완치하면 네가 정말 입금하기나 할까?”

백아영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수작 부릴 생각하지 마. 1분 시간 줄게. 당장 입금해. 안 그러면 2억으로 사정해도 절대 치료 안 할 줄 알아.”

오재문은 사색이 되었다. 그의 눈가에 음침한 빛이 감돌았지만 곧바로 표정을 감추고 활짝 미소를 지었다.

“얘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지금 갖고 싶다면 바로 주면 될 거 아니야.”

그는 얼른 휴대폰으로 입금했고 백아영의 잔액도 4천만 원으로 변했다.

금액을 확인한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돌변했다. 이 돈은 오재문이 대학을 다니며 그녀에게 빌린 돈인데 이젠 다시 이 돈으로 백채영의 범죄 증거를 조사해야 한다.

“이젠 치료할 수 있겠지?”

입금을 마친 오재문은 더이상 아양을 떨지 않고 그녀를 다그쳤다.

백아영도 더는 쓰레기 같은 이 남자와 머물고 싶지 않아 얼른 분부했다.

“옷 벗어.”

최고급 한정판 마이바흐 안에서.

이성준이 백채영한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백채영은 말을 꺼내기 어려운 듯 한참 우물쭈물하다가 겨우 말했다.

“성준아, 사실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 일은 너의 체면과 연관된 일이라 한참 고민했었어. 실은 아영이가...”

그녀는 한껏 수치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아영이가 지금 전 남자친구랑 함께 라이트 클럽에서 데이트하고 있어. 그렇고 그런... 짓을 벌이는 중이야...”

이성준의 눈빛이 확 어두워졌다.

그는 백아영의 기사를 도맡은 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영이 지금 어디 있어?”

“사모님은 지금 라이트 클럽에 있습니다.”

이성준이 손에 힘을 너무 준 나머지 휴대폰까지 부서질 뻔했다.

‘열흘 감금이 끝나자마자 그 남자를 찾아갔단 말이야? 그런 줄도 모르고 어젯밤에 귀엽고 청순하단 생각까지 한 내가 어리석었지.’

이성준이 차갑게 명령했다.

“라이트 클럽으로 가.”

“형, 우리 지금 선우 일가의 단서를 조사하러 가야 하잖아. 왜 갑자기 라이트 클럽으로 가는 건데?”

구민기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슨 일인데 그래?”

이성준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간통 현장 잡으러.”

“뭐? 간, 간통?”

구민기는 턱이 빠질 것만 같았다. 이성준과 금방 결혼한 형수가 이 정도로 막무가내란 말인가? 결혼한 지 보름도 채 되지 않아 감히 바람을 피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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