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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Author: 수리춘
유민영이 끌려 나간 뒤, 안채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은정서는 힘없이 의자에 다시 주저앉았다. 가을 햇살이 따사롭게 비쳐들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한기가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 치솟았던 분노가 가라앉고 나자, 마음속에는 허탈함과 싸늘한 배신감만 남았다.

어쩌다 자신이…… 사람을 그토록 잘못 보았단 말인가.

차분하고 세심한 데다 은혜를 알 줄 알고, 재주까지 제법 있다 여겼던 유민영이 속으로는 이토록 추한 사람이었단 말인가?

자주와 홍옥이 조용히 위로를 건넸다.

“마님,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 때문에 마음 쓰실 가치도 없습니다.”

“맞습니다, 마님. 그래도 일찍 알아차려 다행입니다. 정말 큰일을 저지르기 전에 막은 셈이니까요.”

은정서는 손을 내저으며 그만 말하라는 손짓을 했다.

“엽이를 옆채로 데려가거라. 나는 잠시 쉬어야겠다.”

시녀들은 분부대로 소공자를 안고 물러났다.

은정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경대 앞으로 갔다. 머리의 비녀와 장신구를 풀고 잠시 눈을 붙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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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쫓겨난 유모, 유국공부를 접수하다   제30화

    유민영이 끌려 나간 뒤, 안채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은정서는 힘없이 의자에 다시 주저앉았다. 가을 햇살이 따사롭게 비쳐들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한기가 느껴졌다.방금 전까지 치솟았던 분노가 가라앉고 나자, 마음속에는 허탈함과 싸늘한 배신감만 남았다.어쩌다 자신이…… 사람을 그토록 잘못 보았단 말인가.차분하고 세심한 데다 은혜를 알 줄 알고, 재주까지 제법 있다 여겼던 유민영이 속으로는 이토록 추한 사람이었단 말인가?자주와 홍옥이 조용히 위로를 건넸다.“마님,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 때문에 마음 쓰실 가치도 없습니다.”“맞습니다, 마님. 그래도 일찍 알아차려 다행입니다. 정말 큰일을 저지르기 전에 막은 셈이니까요.”은정서는 손을 내저으며 그만 말하라는 손짓을 했다.“엽이를 옆채로 데려가거라. 나는 잠시 쉬어야겠다.”시녀들은 분부대로 소공자를 안고 물러났다.은정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경대 앞으로 갔다. 머리의 비녀와 장신구를 풀고 잠시 눈을 붙일 생각이었다. 자주가 곁에서 시중을 들었다.은정서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머리에 꽂은 적금 비녀 하나를 뽑아, 습관처럼 화장함 안에 넣으려 했다.그러나 화장함 맨 위층의 작은 서랍을 열고 그 안을 확인한 순간, 은정서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서랍 안에는 금빛으로 번쩍이는 팔찌 하나가 버젓이 놓여 있었다.팔찌가…… 어찌 이곳에 있는가? 유민영이 몰래 가져간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은정서는 배꽃 걸상에 앉은 채, 얼마 동안 멍하니 굳어 있었다.자주도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내밀었다가 서랍 안의 팔찌를 확인하자 크게 놀랐다.“어머, 저 팔찌가 어째서 여기에……?”그 순간 은정서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 스쳤다.잘못 짚었구나!자신이 잘못 짚은 것이었다!유민영은 팔찌를 훔친 것이 아니었다. 도리어 팔찌를 챙겨 화장함 안에 넣어 둔 것이었다.자주가 대충 훑어보기만 하고 자세히 살펴보지 않은 탓이었다.자신이 유민영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고 말았다!“어서! 당장 가서 유민영을

  • 쫓겨난 유모, 유국공부를 접수하다   제29화

    유민영은 고개를 저으며 곧장 내실을 나섰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와 금팔찌를 향해 손을 뻗었다…….유민영은 대부인의 곁으로 돌아왔다.대부인은 아이와 함께 잠시 화원에 앉아 쉬었다. 차를 반 잔쯤 마시고, 햇살이 조금 누그러지자 돌아갈 채비를 했다.일행은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은정서가 상좌에 앉자, 자주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내실로 향했다. 그러나 경대 위는 텅 비어 있었다.자주의 얼굴빛이 미묘하게 변하더니, 이내 빠른 걸음으로 은정서 곁에 돌아와 몸을 숙여 귓속말을 했다.“마님, 팔찌가 사라졌습니다.”귓가의 머리카락을 쓸던 은정서의 손이 그대로 굳었다. 싸늘한 시선이 유민영에게로 꽂혔다.유민영은 마침 평상 옆에 쪼그려 앉아 엽이의 턱받이를 정성껏 갈아주고 있었다.조금 전 화원에서 아이를 돌보던 유민영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 온 신경을 아이에게 쏟던 그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손길까지도 또렷했다.은정서도 한때 마음이 흔들렸었다. 자주의 계책이 과한 것은 아닌지, 혹 애꿎은 사람을 의심한 것은 아닌지 생각할 정도였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마음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요행과 믿음이 산산이 부서졌다.스스로 늑대를 집 안에 들인 꼴이었다!자신이 정말로 늑대를 집 안에 들이고 만 것이다!그토록 믿고 아꼈다. 아이를 데리고 저택에 들어오는 것도 허락했고, 엽이 곁에서 시중들게 했으며 장부까지 맡겼다.그런데 그 속이 이토록 더럽고, 손버릇마저 고약한 인간이었다니!속았다는 분노와 배신감에, 은정서의 이성은 거의 무너지고 말았다.자신이 사람을 이토록 잘못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녀는 곁에 서 있던 시녀에게 낮은 목소리로 명했다. “엽이를 옆방으로 데려가거라.”소공자가 갑자기 안겨 나가자, 유민영도 방 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감히 묻지 못한 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서 있었다.자신이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인가?유민영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어지러워졌다.“유씨, 묻겠다. 네가 이 저

  • 쫓겨난 유모, 유국공부를 접수하다   제28화

    은정서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허리를 곧게 세웠다.“무슨 허튼소리를 하는 것이냐? 유 유모는 일도 성실히 하고 엽이를 돌보는 데도 지극정성인데, 대체 어찌 마음이 불순하다 하는 것이냐? 함부로 남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고는 있느냐?”홍옥은 꾸지람에 몸을 움찔 떨었다. 하지만 이미 입 밖에 낸 말이었다. 이제 와 물러설 수도 없어,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소인이 감히 허튼소리를 할 리 있겠습니까! 첫째 나으리께서 돌아오시기 전, 소인이 배가 불편해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런데 돌아왔을 때 문밖에서…… 소인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첫째 나으리께서 유 유모를 끌어안고 계셨습니다.”은정서의 얼굴에 놀람과 분노가 스쳤다. “확실하느냐?”“틀림없습니다. 소인이 분명히 보았습니다.”자주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대부인을 슬쩍 살피며 낮은 목소리로 거들었다.“마님, 홍옥은 본래 겁이 많은 아이입니다. 제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결코 이런 말을 함부로 아뢰지는 못했을 것입니다.”은정서의 얼굴이 굳어졌다. 한낱 유모조차 품에 안으면서, 정작 부인인 자신은 안아 주지 않는단 말인가?예전 같았다면 은정서도 이토록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필 출산 뒤 한층 예민해진 때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그럼에도 은정서는 한쪽 말만 듣고 곧장 믿어 버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구나 시녀 하나의 일방적인 증언만으로 유민영의 죄를 결정지을 수도 없었다.그녀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단호한 목소리로 추궁했다.“홍옥, 네가 방금 한 말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가벼이 넘길 수 없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사실이 아니거나, 네가 잘못 보아 유 유모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것이라면, 그 책임을 네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은정서의 눈빛이 불꽃처럼 날카롭게 홍옥을 향했다.“게다가 유씨가 정말 그런 못된 마음을 품고 주인 어른을 유혹할 속셈이었다면, 방금 일부러 찻잔을 엎질러 나으리의 의복을 더럽히고 심기를 거스른

  • 쫓겨난 유모, 유국공부를 접수하다   제27화

    소공자는 부드러운 비단 포대기에 감싸여 있었다. 새까맣고 동그란 큰 눈이 호기심 어린 듯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아버지를 보자 이도 나지 않은 작은 입을 방긋 벌리고 웃었다.“부군, 이리 와서 보세요. 엽이가 이제 사람을 알아보는 모양입니다. 부군을 보자마자 저리 웃네요.” “며칠 전 하인이 그러더군요. 이제 이가 나기 시작해서 침을 많이 흘릴 때라기에, 부드러운 턱받이를 여러 장 만들어 둘러 주었다고요.”“또 그 헝겊으로 만든 작은 장난감들도 손에 쥐여 주면 한참을 갖고 논답니다…….”은정서는 나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가 조금씩 자라 온 일들을 하나하나 부군에게 들려주었다.배정현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포대기 속 아이의 눈매와 얼굴 생김새는 갈수록 자신을 닮아 가고 있었다. 제 피를 이은 아이였다.차갑게 굳어 있던 입가가 저도 모르게 누그러졌고, 눈가에도 따스한 정이 어렸다.햇살은 마침 좋았고 아이는 옹알거렸으며, 부인은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더없이 따스하고 평온했다.은정서는 말을 마친 뒤, 부드러운 눈빛으로 부군을 바라보며 기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부군도 엽이를 한번 안아 보시겠어요?”그녀는 아이를 바로 내밀지 않고, 여전히 품에 안은 자세 그대로 있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부군이 그대로 자신과 아이를 함께 끌어안아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출산 이후로 두 사람 사이에는 늘 보이지 않는 얇은 장막이 드리운 듯했다. 예전처럼 살갑고 가까웠던 분위기도 조금은 옅어져 있었다.그러나 배정현은 손을 뻗어 아들만 받아 안았다.작디작은 몸이 품 안으로 들어왔다. 젖내 섞인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자, 배정현의 마음 또한 스르르 녹아내렸다.그는 서툰 손길로 자세를 고쳐 아이가 더 편히 기대도록 했다.은정서는 아이를 안는 데 몰두한 부군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품이 갑자기 텅 비어 버리자, 기대하던 마음 한구석도 덩달아 텅 빈 듯 허전해졌다.희미한 쓸쓸함이 가느다란 덩굴처럼 조용히 마음을 휘감았다.하지만 그녀는 곧 그 감

  • 쫓겨난 유모, 유국공부를 접수하다   제26화

    유민영과 배정현의 시선이 마주쳤다. 공기가 그대로 얼어붙은 듯 했다.유민영은 머릿속이 얼마간 새하얘졌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첫째 나으리께서 분명 자신을 대부인 마님로 착각하신 것이 틀림 없었다!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한낱 유모에게 이토록 선을 넘는 친밀한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유민영은 몇 걸음 물러나 그의 팔에서 벗어나며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첫째 나으리, 용서해 주십시오. 소인은 나으리께서 오신 줄 미처 몰랐습니다.”방금 전 손끝에 남은 따스한 감촉과 코끝에 맴도는 은은한 젖내에, 배정현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그는 방금 자신이 한 행동을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결국 시선을 피하듯 돌려, 글상 위에 놓인 장부를 바라보았다."이걸 네가 정리한 것이냐?"유민영은 감히 제 공을 내세우지 않고, 대부분의 공을 은정서에게 돌렸다. "소인이 장부 정리를 조금 배운 적이 있어, 대부인 마님께서 집안일을 돌보느라 바쁘시고 장부를 보실 때마다 머리 아파하시는 것을 보고 자청하여 조금 거들었을 뿐입니다. 그것도 마님께서 부족한 소인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신 덕분입니다.”배정현은 그 말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시선은 여전히 글상에 머물러 있었다. 그 장부들은 그가 예전에 보았던 것들보다 훨씬 더 명확하고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었다.예전 은씨의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유민영은 고개를 한껏 숙이고 있었다. 그러다 곁눈질로 문 쪽을 살피는 순간, 연분홍빛 치맛자락 한 자락이 스치듯 사라졌다.아까 뒷간에 다녀온다던 그 시녀였다.그 순간, 유민영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능성이 번뜩 스쳤다.그 시녀가 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방금의 그 아찔한 장면을 혹시 보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만약 그 일이 퍼져 나가, 한낱 유모인 자신이 첫째 나으리를 유혹했다는 말이 돌기라도 한다면, 입이 열 개라도 해명할 수 없었다.가볍게는 쫓겨날 것이고, 심하면 목숨조차 보전하기 어려웠다.위태로운 순간, 유민영의 머릿속에 문득

  • 쫓겨난 유모, 유국공부를 접수하다   제25화

    “대부인 마님께 아뢰옵니다. 소인의 이웃 중에 상점에서 장부를 보는 서생이 있었습니다. 곁에서 보고 들은 것이 많다 보니, 겉핥기로나마 조금씩 기억해 둔 것뿐입니다.”은정서는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감탄하며 말했다. “너를 그저 유모로만 두기엔 좀 아깝구나.”유민영은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가장 중요한 순간이 왔음을 짐작했다.“대부인 마님, 과찬이십니다. 소인은 감히 그런 말씀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마님께서 거두어 주신 덕분에 이 저택 안에 몸 둘 곳을 얻고, 소공자님께 젖을 먹여 키울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하늘 같은 복입니다. 그저 훗날에도 계속 저택에 남아 밥벌이를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은정서가 어찌 그 말에 담긴 속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겠는가.방금 유민영이 보여 준 셈 솜씨와, 평소 엽이를 정성껏 돌보던 모습을 떠올린 은정서는 옅게 웃었다.“넌 참 괜찮은 사람이다. 마음가짐도 바르고 매사에 정성을 다할 줄 알지. 걱정 마라. 훗날 엽이가 젖을 떼게 되더라도, 저택에서 네 앞날을 모른 척하지는 않을 것이다.”그 말은 분명한 약속이나 다름없었다!가슴 한편을 짓누르던 불안이 그제야 조금 가라앉았다. 유민영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굽혔다.“감사합니다, 마님! 반드시 이 은혜를 잊지 않고 갚겠습니다!”그날 대부인 앞에서 장부를 계산하는 솜씨를 보인 뒤, 유민영의 소임에 은근한 변화가 생겼다.소공자 배엽헌을 돌보는 일 외에도, 은정서의 뜻에 따라 밀린 재산 장부를 정리하고 계산하는 일을 돕게 된 것이다.쉴 틈은 줄었지만, 유민영은 오히려 달게 여겼다.그녀는 장부 양식을 새로 손보았다. 수입과 지출 항목을 종류별로 나누어 정리하니, 훨씬 또렷하고 보기 쉬워졌다.또 은정서에게 보조 장부를 따로 두어 외상 거래와 재고 변동을 별도로 기록하자고 권했다.은정서도 처음엔 그저 시험 삼아 맡겨 보자는 마음이었기에, 유민영이 정리한 것도 직접 다시 점검하곤 했다.그러나 결과를 본 뒤에는 감탄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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