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다급하게 울리는 벨 소리에 덩달아 마음도 조마조마해졌다.‘왜 이 시간에 대표님께서 연락하셨지?’오정우는 손을 뻗어 전화받으려 했다.하지만 오른손이 오랫동안 전화기 위를 맴돌며 머릿속으로는 전화를 받을지 말지 계속 갈등했다.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불안했다.어쩐지 그가 놓쳤던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오정우는 손이 허공에 멈춘 채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빠뜨린 게 없는지 생각했다.그 순간 전화벨 소리가 뚝 멈췄다.오정우의 심장도 덩달아 쿵 내려앉았고 마음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뿐이었다. ‘이젠 끝이다.’제때 전화를 받지 않았으니 분명 윤해준이 직접 찾아올 것이다.예상대로 오정우가 속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오정우는 깜짝 놀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고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오 비서님, 안 계신가요?”오정우는 급히 몇 번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밖을 향해 말했다.“있는데 무슨 일이죠?”밖에 있던 사람은 안으로 들어올 생각도 없이 문 너머로 소리쳤다.“오 비서님, 대표님께서 찾으세요. 얼른 가보세요.”상대는 친절하게 한 마디 덧붙였다.그 역시 상사의 기분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전화받았을 때 목소리가 확연히 가라앉아 있었다.밖에 있던 사람의 말을 듣고 오정은 점점 더 긴장하기 시작했다.‘끝났다. 이번엔 정말로 끝장이네.’전화 한번 받지 않은 걸로 상사가 사람까지 보내 그를 찾는 걸 보니 절대 작지 않은 실수를 저지른 게 분명했다.오정우가 서둘러 사무실을 향해 달려가 문을 열었을 때 얘기를 전하러 온 사람이 아직도 문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오정우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저기... 사장님이 와서 얘기 전하라고 하실 때 기분이 어때 보였어요?”상대는 오정우의 잿빛 얼굴을 바라보더니 그의 기대에 찬 눈빛에도 결국 고개를 저었다.“기분이 아주 안 좋았어요. 조심해요.”그 말을 듣자 오정우는 그대로 비틀거리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안다혜는 책상 위 자료를 보며 입가에 흥미로운 미소를 띠었다.이렇게 흥분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예전에도 태안 그룹을 노린 자들이 있었지만 나중에 전부 손을 뗐다.그때는 다른 회사에서 태안 그룹을 저격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누군가 몰래 도와주고 있으니 차라리 이 틈을 타서 회사를 성장시키고 규모를 늘이는 게 나았다.바로 그런 이유로 안다혜는 공격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다른 회사들이 태안 그룹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버그를 잘 활용해야 했다.하지만 서진우가 이렇듯 노골적으로 움직이니 오히려 호기심이 들었다.‘대체 무슨 배짱으로...’그녀의 눈동자에 흥미로운 빛이 스쳤다.서진우가 지금 보여주는 행동은 실로 재밌었다.그리고 그 여자도 기회가 된다면 꼭 만나봐야겠다....한편 윤해준은 태안 그룹을 떠난 후 바로 차를 몰고 풍산 그룹으로 향했다.지금 안다혜가 태안 그룹을 운영하는데 잘 적응하고 있으니 걱정할 게 없었다.다소 서툴더라도 그건 잠시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조금만 시간을 주면 금방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윤해준 또한 현재 안다혜의 가장 큰 골칫덩어리는 김미진과 눈앞에 놓인 문제에 대해 마음 편히 털어놓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마음의 매듭만 풀리면 더 걱정할 게 없었다.하지만 이 일은 오로지 안다혜 혼자서 마주해야 했고 다른 누구도 그녀를 도울 수 없었다.그들 모녀 사이의 사적인 일이자 비밀이니까.그 속에서 복잡하게 얽힌 감정의 골은 아무도 몰랐다.윤해준은 얇은 입술을 꽉 다문 채 풍산 그룹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사무실로 향했다.주변 사람들은 윤해준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속으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거의 한 달 동안 보이지 않던 대표가 오늘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누군가는 속삭이며 그가 전보다 말라 보인다고 수군거렸다.그럼에도 몸에서 풍기는 위압적인 기세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특히 그들을 향한 시선은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윤해준도
말을 마친 안다혜는 자리에서 일어나 김미진을 정면으로 바라보지도 않았다.“다른 건 저도 잘 모르니까 저 괴롭히지 마세요. 궁금하면 엄마가 알아서 조사해 볼 수도 있잖아요.”그렇게 말한 안다혜는 곧장 자리를 떠나려 했다.김미진은 안다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전 자신이 안다혜를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정말 방법이 없었다.똑같이 애지중지 키운 딸인데 어느 쪽을 버리겠나.계속 캐묻는 게 안다혜의 마음을 상하게 할지라도 안소현이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나았다.게다가 허씨 가문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김미진이 아름다운 눈을 감자 한 줄기 맑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그런데 이 장면을 안다혜는 보지 못했다.그녀가 김미진의 사무실을 나설 때 밖에 서성이고 있던 유이현이 보였다.안다혜가 물었다. “왜 아직도 여기 있어요?”유이현은 안다혜가 나오는 것을 보고 다소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달려와 안쪽을 향해 눈짓했다.“대표님, 회장님과 이야기는 잘하셨어요?”안다혜의 표정이 굳어지며 일전에 보이던 편안한 모습이 사라졌다.유이현도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두 사람의 대화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그게 아니고서야 말을 꺼내자마자 안다혜가 이런 표정을 지을 리는 없으니까.오랜 직장 경험 덕분에 유이현은 제법 눈치가 있었다.“그럭저럭요. 고마워요.”안다혜가 살짝 미소를 지었지만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단순히 입꼬리만 올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네, 그 얘기는 이쯤하고...”유이현이 어색하게 화제를 돌렸다.“대표님, 서씨 가문 쪽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안다혜는 가볍게 기침하며 업무에 집중했다.“우선 그 회사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정리해서 가져오세요.”안다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리고 서진우의 최근 동선도 알려줘요.”유이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안다혜는 수고하라는 의미로 그를 향해 살짝
뭐가 됐든 안다혜에게 미안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지금 안다혜에게 안소현의 상황을 물어봐야 했다.딸이 죽는 걸 눈 뜨고 지켜볼 수는 없으니까.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키워온 자식이고 오랜 세월 쌓인 정이 있었기에 김미진은 결코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김미진은 마음속 차오르는 생각을 억누른 채 입을 열었다.“다혜야, 엄마도 네 언니가 잘못한 거 알아. 하지만 엄마는 너희 자매가 지금처럼 지내는 걸 원하지 않아. 네 언니가 죽어가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도 없어.”그 말을 듣고 안다혜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당연히 엄마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오랜 세월 그녀는 그저 두 자매가 잘 지내길 바랐을 거다.‘하지만 그게 내가 원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잖아.’게다가 이번만큼은 안소현이 명백하게 선을 넘었다.안다혜가 침대에 누워 지낸 한 달 동안 아마도 가장 기뻐했던 게 안소현이었을 거다.그러면 회사에서도 자연스럽게 자기가 자리를 대신하고 한층 더 위로 도약할 수 있으니까.그리고 안다혜 본인도 계속 누워만 있다 보면 본래 자리를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이러한 이치를 안다혜가 어찌 모르겠나.상대의 얘기를 듣고 있던 그녀가 예쁜 눈을 질끈 감았다.김미진의 말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사실 안다혜에겐 목숨이 달린 문제였고 정작 속마음과는 다른 말을 뱉어야 했기에 편치 않았다.결국 안다혜는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엄마, 저도 언니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언니 상황이 어떤지도 잘 몰라요.”그렇게 말한 안다혜는 얼굴을 돌리며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김미진도 그걸 눈치챘지만 지금은 많은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작 둘밖에 없는 아이들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면 앞으로 둘이 어떻게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겠나.그 생각을 하자 김미진의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팠다.그녀는 가슴을 움켜쥐고 숨이 막히는 듯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안다혜는 김미진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철렁했다.“엄마, 왜 그래요?”안다혜가 김미진
“그렇게 말없이 있지 말아요. 제가 불효녀예요. 제일 먼저 엄마를 보러 오지 못했어요.”김미진은 정신을 차리고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다혜야, 그렇게 말하지 마.”그녀는 안다혜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넌 엄마의 소중한 딸이야. 엄마는 네 결정이 뭐든 다 존중해. 기억해, 넌 오직 널 위해서만 살아가야 해. 아무도 네 결정을 막을 수 없어.”안다혜는 김미진의 말에 감동했다.전에 모녀 사이에 말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는데 지금 두 사람은 마주 앉아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오해도 풀린 셈이었다.안다혜는 지금의 김미진을 바라보며 자신이 그녀를 오해했음을 깨달았다.심지어 내심 유이현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그가 방금 밀어주지 않았다면 아마 이렇게 빨리 김미진과 화해하지 못했을 테니까.안다혜는 김미진을 끌어당겨 소파에 앉은 뒤에도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김미진도 안다혜가 자신에게 의지하는 걸 느끼고 마침내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정말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언젠가 아이와 이렇게 마주 앉아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는.안다혜가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부터 딸과의 재회를 수없이 상상해 왔다.그런데 이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황에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너는 모를 거야. 네가 혼수상태에 빠진 뒤로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어.”김미진은 한숨을 내쉬며 여전히 안다혜의 손등 위에 손을 얹은 채 살며시 쓰다듬었다.잃었다가 되찾은 느낌에 김미진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꼈다.안다혜도 성숙한 말을 꺼냈다.“엄마도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냥 하세요.”사실 마음속으로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김미진이 말을 꺼내기 전까진 입을 열지 않기로 했다.모든 일에 순서가 있는 법이기에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다만 김미진의 속내를 직접적으로 들출 수는 없었다. 서로 생각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그렇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꼴이 될 거다.사업과 인간관계에선 항상 물러설 여지를 남겨두어야 했다.이런 이치를
그래야 회사를 더 높은 단계로 이끌 수 있었다.이 점에 있어서는 두 사람의 협력이 필요하니까.유이현은 자연스럽게 문을 닫은 뒤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가득 띠었다.진작 이렇게 모녀 둘을 위한 시간을 마련해줄 걸 그랬다.대부분 상황에선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소통하며 서로 마음을 터놓는 것이 가장 좋았다.계속 마음에 담아둬봤자 서로에게 좋을 게 없었다.바로 이 점을 고려해 유이현은 안다혜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려 했다.안으로 떠밀리듯 들어간 안다혜는 처음엔 당황한 기색이었다.정신을 차린 뒤 그녀는 재빨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자 김미진이 책상 뒤 가죽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서 고개를 숙인 채 얼굴에 체인이 달린 안경을 쓴 모습이 보였다.김미진은 눈썹을 찌푸린 채 앞에 놓인 서류를 보고 있었다.안다혜는 까다로운 일이 생긴 거라고 추측했다.이런 엄마의 모습에 그녀도 내심 마음이 아팠다.이제 막 큰 병을 이겨냈는데 억지로 버티며 회사에 나와 일을 하고 계셨다.이 모든 게 다 자신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남의 계략에 걸리지 않았을 테고 엄마도 이렇게 힘들지 않을 텐데.하지만 세상엔 ‘만약'이란 없다.시선을 바닥으로 떨군 안다혜의 작고 정교한 얼굴에 눈에 띄는 상실감이 스쳤다.마음속에도 슬픔이 밀려왔다. 이런 김미진을 마주하니 죄책감과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안다혜는 조금씩 김미진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 참지 못하고 그녀를 불렀다.“엄마...”익숙한 목소리를 듣자 김미진은 고개를 들기도 전에 눈가에 붉은 기운이 돌고 눈동자가 촉촉해졌다.시선을 들어 안다혜의 익숙한 얼굴을 보자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그리워하고 걱정하던 사람이 바로 눈앞에 나타나니 눈물이 둑이 무너진 듯 쏟아져 내렸다.김미진은 책상을 짚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책상을 지나쳐 눈앞의 안다혜가 진짜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었다.“다혜야?”김미진이 앞으로 걸어가자 눈가에 맺힌 눈물이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그녀는 손을 뻗어 안다혜의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