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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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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남편은 알고 보면 여우 제471화
곧이어 오정우도 밖으로 나왔다. 그는 재빨리 윤해준에게 담배를 건네 불을 붙여주었다.“다 처리했어?”윤해준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태연하게 물었다.오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십시오, 대표님. 깨끗하게 정리했습니다.”“귀국하자.”윤해준의 표정은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이 하찮은 것들 때문에 자신이 안다혜와 이틀이나 떨어져 있어야 했으니,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윤해준이 돌아온 건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그 사이, 안다혜는 김미진의 건강 문제로 갑자기 업무가 몰려들어 큰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정신없이 바빠 윤해준을 떠올릴 여유조차 없을 정도였다.비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 걸 눈에 담고 있었다.“대표님, 잠깐이라도 쉬시는 게 어떠세요?”안다혜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안 돼요.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입니다.”그녀는 억지로 정신을 부여잡고 안경을 고쳐 쓰며 모니터 속 글자를 들여다봤다.비서는 더는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다.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녀를 방해하지 않는 것뿐이었다.비서가 밖으로 나오자 부서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비서에게로 쏠렸다.관심과 걱정이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대표님은 어떠세요?”“아직도 안에서 일하고 계셔요?”“큰일이네요. 몸이라도 상하면 어떡하죠?”동료들이 걱정하는 표정에 비서의 마음이 따뜻해졌다.평소에는 안다혜에게 불만이 많아 보이던 이들이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이렇게 걱정하고 있었다.이렇게 보니 이 회사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다들 진정하세요. 각자 맡은 자리에서 업무를 잘해주시면 됩니다. 대표님은 제가 잘 챙길게요.”비서는 그렇게 말하고는 음식을 사러 나갔다.사무실은 다시 조용해졌다.그러다 누군가 입을 열었다.“사실 평소에 대표님이 우리한테 참 잘해주셨잖아요.”“맞아요. 안씨 가문의 둘째 딸이라지만, 절대 잘난 척하지 않고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오셨죠.”“우리 대표님께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있는지 물어보는 게 어떨까요?”결국
차가운 남편은 알고 보면 여우 제470화
안다혜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했지만 결국 이 일은 마음속에 묻어두기로 했다.마침 그가 집에 없으니 오히려 이틀쯤은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겠다 싶었다.그날 밤, 안다혜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이 안방이 왜 이렇게 큰지, 처음 그런 느낌이 들었다.끝없는 고독이 사방에서 몰려와 자신을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벽에 걸린 전등도 끄지 않았다.습관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안다혜는 그제야 실감했다.알고 보니 자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윤해준의 존재에 익숙해져 있었다.그는 공기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서히 스며들어 그녀의 곁을 감싸고 있었다.고개를 돌려 옆자리를 바라보았다.윤해준이 함께 있을 때는 오히려 좁게 느껴졌던 침대가 지금은 세 명은 거뜬히 누울 만큼 넓게만 보였다.익숙했던 등, 그리고 좋아하던 체온이 사라지자, 안다혜는 처음으로 불안한 잠을 잤다.아침이 되자 안다혜는 일찍 눈을 떴다.주방에서는 낯선 아주머니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그녀는 안다혜를 보자마자 다가와 인사했다.“사모님, 저는 황정숙이라고 합니다. 대표님께서 부탁하셔서 식사 때마다 오게 되었어요. 아침은 제가 직접 끓인 단호박 좁쌀죽과 갓 쪄낸 만두예요. 한번 드셔보세요.”안다혜는 깜짝 놀랐다. 윤해준이 이렇게까지 세심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음식은 죄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이었다.만두를 베어 문 순간,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라울 만큼 맛있었다.“아주머니, 솜씨가 정말 대단하시네요!”안다혜는 아낌없이 칭찬을 건넸다.일에 파묻혀 살아도, 사실 그녀는 이런 소박한 음식들을 좋아했고 먹는 걸 좋아했다.황정숙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사모님께서 맛있게 드시니 저도 보람이 있네요.”그날 아침 식사는 말 그대로 주인과 가정부가 함께 즐겁게 나눈 한 끼였다.출근길에 오른 안다혜는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그녀는 윤해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아주머니께서 해주신 식사가 정말 맛있었어요.]그녀는 답장을 기다리지도 않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채 곧장 태안 그
차가운 남편은 알고 보면 여우 제469화
뜻밖에도 사석에서 안다혜는 꽤 귀여운 면이 있었다.“알았어요, 제가 잘못 말했네요.”비서는 센스 있게 다시 물었다.“그럼 대표님 친구분 중에 혹시 속상한 일을 겪는 분이 있는 건가요?”그 한마디에 안다혜의 날 선 기운이 싹 가라앉았다.그녀는 마치 도도한 페르시아고양이처럼 느긋하면서도 고귀한 분위기로 변해버렸다.“그게...”사실 안다혜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됐다.어쨌든 이건 철저히 두 사람 사이의 문제라 여겼고 제삼자가 끼어드는 건 오히려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렇다고 혼자 끙끙 앓는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건 또 아니었다.결국 그녀는 ‘친구의 이야기’라는 식으로 돌려서 비서에게 털어놓았다....“그러니까 대표님은... 아니, 대표님 친구분의 남편이 자기 여동생이라고 하는 여자랑 식사했다는 거죠? 모든 게 사실 대표님을... 아니, 그 친구분을 속이는 거라는 의심이 드는 거고요?”비서는 복잡한 관계를 정리하면서 여러 번이고 말실수했다가 안다혜의 위압적인 눈빛에 급히 ‘친구분’이라고 말을 고쳤다.솔직히 말했다면, 비서는 훨씬 더 솔직하게 조언할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빙빙 돌려 말할 수밖에 없었다.이런 방식이라도 어쩔 수 없었다. 상대는 다름 아닌 자기 상사니까 따르는 수밖에.“제 생각에는요, 대표님. 이런 문제는 그냥 친구분께서 직접 남편분께 말씀드려도 된다고 봐요. 같이 잘해보기로 했는데 괜히 꼬아서 생각할 게 뭐가 있어요.”비서의 단호한 표정에 안다혜는 멍하니 물었다.“그러니까 제가... 아니, 제 친구가 꼬여있다는 말씀이세요?”그녀는 정말로 자신이 괜히 꼬아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은 자신이 직접 윤해준한테 물어봐야 하는 상황이란 말인가?그런데 윤해준은 한유라랑 아무 관계도 없다고 분명 얘기했었는데 지금 이런 상황은 또 뭔지 혼란스러웠다.안다혜는 입술을 꾹 다물며 비서에게 계속 말해보라는 듯 눈짓했다.비서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꼭 그렇다
차가운 남편은 알고 보면 여우 제468화
이모건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꺼냈다.“다혜야, 굳이 고맙다는 말은 안 해도 돼. 너무 선을 긋는 것 같잖아. 우리 친구잖아?”햇살 아래 빛나는 그의 옅은 머리카락은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겼다.하지만 이번만큼 안다혜는 이모건의 진지한 표정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는 한 번도 이렇게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을 한 적이 없었다.“왜 그래? 표정이 왜 그렇게 심각해.”안다혜는 화제를 돌리려는 듯 애써 가볍게 웃어 보였다.이모건은 그녀의 의중을 알아차린 듯 이내 미소 지었다.“별일 아니야. 다만, 네가 정말 날 친구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매번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야. 난 귀찮거나 그런 거 전혀 없거든. 뭐든 내가 도울 수 있다면 기꺼이 돕고 싶어.”안다혜는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너한테 그 정도로 예의를 차리지는 않아.”두 사람이 헤어지기 직전, 이모건은 끝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아까 식당에서... 해준 씨 본 거 맞지?”분명 물음이었지만 확신하는 말투였다.안다혜는 순간 눈빛이 어두워지고 웃음기도 사라졌다.“아니야, 무슨 소리야.”그녀는 다시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나 회사에 들어가야 해. 너도 조심히 들어가.”안다혜는 돌아서는 순간, 얼굴에서 웃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차갑게 굳은 표정 그대로 태안 그룹 건물로 들어갔다.사람들은 그런 안다혜를 보고는 인사도 건네지 못했다.평소에도 일에 매달리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인간적인 따뜻함이 남아 있었는데 지금의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비서가 서류를 들고 들어왔을 때도 그녀는 이런 모습이었고 비서는 문득 긴장했다.“대표님, 이너 그룹에서 온 서류입니다.”“네, 거기 두세요.”안다혜는 짧게 대답했고 비서는 그녀의 말대로 서류를 자리에 내려놓았다.비서는 그녀의 기분에 대해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였다. 대표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부서 전체가 덩달아 긴장
차가운 남편은 알고 보면 여우 제467화
이모건이 그런 생각에 잠겨 있던 바로 그때, 안다혜와 고객의 대화가 불현듯 끊겼다.이모건은 의아해하며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멀리서 윤해준이 어떤 여자와 함께 식사하는 모습이 보였다.순간적으로 그는 안다혜의 반응을 살폈다.그러나 안다혜는 곧바로 표정 관리하더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객에게 말을 이어갔다.“저희가 현재 해외 이너 그룹과 협업을 진행 중입니다. 이게 앞으로의 협력 방향과 흐름인데, 한번 보시겠어요? 그리고 이건 우리 회사의 향후 발전 전략과 방향입니다. 이런 부분은 귀사에서도 참고하실 수 있을 겁니다.”조금 전 흔들리던 사람이 그녀가 맞나 싶은 정도였다.이모건은 속으로 캐묻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았다. 지금은 중요한 협상 자리이니 감정이 먼저일 수는 없었다.고객도 안다혜의 진지한 태도에 조금 마음이 움직인 듯했다.“좋습니다. 이 자료들은 모두 가져가서 자세히 검토해 보겠습니다.”그는 안경을 고쳐 쓰며 덧붙였다.“다만 최종 결정권은 제게 없습니다. 저는 단지 중간에서 전달하는 사람일 뿐이니, 이 점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안다혜 씨.”안다혜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당연히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리만 잘 놓아주신다면 선생님께 돌아가는 이익도 절대 적지 않을 겁니다.”이 자리에 있던 모두가 눈치 빠른 사람들이었다.모두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었고 못 들은 척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이모건은 슬쩍 안다혜를 쳐다보았고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협상 상대를 응시하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역시 안다혜야. 별일 없다는 듯 태연하게 협상을 이어가다니.’그러나 정작 그녀의 다른 한쪽 손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조금 전 윤해준과 한유라가 함께 있는 장면을 본 순간, 곧바로 무너져 내릴 듯 마음이 요동쳤다.다행히 이성의 힘이 감정을 제어했고 안다혜는 간신히 냉정함을 유지했다.“여기 있습니다!”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불쑥 들려왔다.모두가 고개를 돌
차가운 남편은 알고 보면 여우 제466화
“이러면 놀러 나온 기분 다 망치잖아. 나 기분 상하면 무슨 말을 모르잖아?”노골적인 협박이었다.윤해준이 바보가 아닌 이상, 한유라의 뜻을 모를 리 없었다.그는 그런 수를 봐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분명 약속은 그냥 식사 한 끼였어.”“난 그때 식사 한 끼라고 한 적 없는데?”한유라는 억지를 부리며 말장난을 이어갔다.윤해준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냉랭하게 말했다.“혼자 알아서 먹고 가. 난 회사에 가봐야 해.”그는 협박을 가장 싫어했다. 한유라는 참 겁이 없었다.한유라는 떠나는 윤해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곧 마음을 다잡았다.괜찮다. 천천히, 은근하게 파고들면 된다.시간을 두고 서서히 다가간다면 언젠가는 윤해준의 마음도 흔들릴 거라 믿었다.대체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굳게 믿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꼭 좋아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만약 안다혜가 이 생각을 알았다면, 분명 박장대소할 것이다.서진우와 한유라, 이렇게 자기애가 강한 두 사람이 한자리에 있다니, 이보다 더 어울릴 수 있을까.비록 식사는 불쾌하게 끝났지만, 한유라의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그녀는 휴대폰에 윤해준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훑어보다가 의미심장하게 눈썹을 치켜세웠다.‘타이밍을 맞춰서 안다혜한테 보여줘야지.’안다혜가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그녀는 쾌감을 느꼈다.안다혜를 향한 증오는 한층 더 짙어졌다.그 시각, 식사 중이던 안다혜는 갑자기 크게 재채기했다.옆에 있던 이모건은 깜짝 놀랐다.“왜 그래? 감기라도 걸린 거야?”“아니, 그냥 목이 좀 불편해서 그래.”안다혜는 심각한 표정으로 덧붙였다.“근데 말이야, 자꾸 누가 내 험담을 하는 것 같아.”“진짜?”이모건은 의외로 이런 말에 쉽게 수긍하는 편이었다.게다가 이렇게 표정이 풍부한 안다혜는 흔치 않았기에 그에게는 더 새로웠다.“정말로 그래. 특히 이런 자리에서는 더 강하게 느껴져. 누군가 내 뒷담화를 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