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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or: 숲속의사슴
여준은 난장판이 된 거실을 바라보다가, 힘이 빠진 사람처럼 소파에 주저앉았다.

담배에 불을 붙인 뒤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지만, 답답하게 막힌 가슴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이모님, 제가 아내한테 그렇게 못했습니까? 시유가 이렇게까지 화낼 일입니까?”

유민자는 바닥에 흩어진 파편을 쓸어 담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표님이 사모님께 못하신 건 아니에요. 두 분 결혼하고 5년 동안 큰소리 한 번 오가는 걸 못 봤으니까요.”

“다만 여자가 아이를 낳고 나면 마음이 많이 흔들릴 수 있어요. 산후 우울감도 올 수 있고요. 이럴 때일수록 남편분이 더 곁에 있어 주셔야 해요.”

여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시유가 산후우울증이라는 겁니까? 다른 여자들은 아이 낳고도 이렇게까지 변하지 않던데요. 여전히 다정하고 조용히 지내잖아요.”

유민자의 손이 잠시 멈췄다.

“다른 여자라니요?”

여준은 자신이 말을 잘못 꺼냈다는 걸 깨달았다. 눈빛이 흔들렸다.

“제 사촌동생도 얼마 전에 아이를 낳았어요. 그런데 성격은 여전히 온순합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로 사람을 몰아붙이지는 않아요.”

유민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분은 남편이 옆에서 내내 챙겨 줬나 보네요. 사모님은 임신부터 출산, 육아까지 거의 혼자 버티셨잖아요.”

“여자가 아이를 낳는 건 인생에서 정말 큰 일이에요. 출산 뒤에는 남편의 보살핌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여준은 말을 잃었다.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침묵했다. 마음 한구석에 불편한 죄책감이 스치듯 지나갔다.

“이모님, 순영 이모님한테 물어봐 주세요. 시유가 아이를 데리고 어디로 갔는지.”

유민자가 대답했다.

“아까 용달차가 와서 짐을 실어 갔어요. 기사님한테 물어보니 태양파크 쪽으로 간다고 하더라고요.”

유민자는 망설이다가 끝내 한마디를 덧붙였다.

“대표님, 사모님 곁에 조금 더 있어 주세요. 사모님은 원래 이런 분이 아니잖아요. 요즘 대표님이 중요한 시기에 너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셨어요.”

‘태양파크...’

‘이곳은 신도시에 있는 중상급 아파트단지인데...’

‘우리 부강그룹 계열에서 지은 곳도 아니잖아.’

‘왜 그곳으로 갔을까?’

여준은 2년 전 시유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윤마리가 태양파크에 집을 샀다고 했었다.

조금 전 전화에서 마리가 쏟아 낸 무례한 말들이 떠오르자, 여준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역시 윤마리가 옆에서 부추겼구나.’

‘그래서 시유가 몰래 그쪽에 집까지 마련한 거야.’

여자는 절친이 있으면 골치 아파진다. 곁에서 바람을 넣으면 금세 휘둘리고, 결국 남편에게 맞서려 든다.

여준은 곧바로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유가 산 집의 정확한 동호수를 알아냈다.

여준이 태양파크에 도착했을 때는 밤 아홉 시가 넘은 뒤였다.

...

시유는 장순영, 마리와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빛나를 재운 뒤에는 장순영이 끓여 준 약재 팩을 욕조에 풀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다.

며칠 동안 무겁게 달라붙어 있던 피로가 조금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기름지고 엉켜 있던 긴 머리도 깨끗이 감고 나니, 겨우 사람다운 몰골로 편안히 숨을 쉴 수 있었다.

시유는 목욕가운을 걸친 채 욕실을 나왔다.

막 침실로 들어가 쉬려던 때, 초인종이 울렸다.

마리라고 생각한 시유는 하품을 삼키며 현관문을 열었다.

“이 밤에 또 왜...”

말이 중간에서 끊겼다.

문밖에는 여준이 서 있었다. 표정은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남자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억눌린 분노가 묻어 있었다.

“말 한마디 없이 집을 나와?”

시유가 대답하기도 전에, 여준은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왔다.

큰 키의 남자가 현관을 가득 채우자, 익숙한 위압감이 공간을 짓눌렀다.

좁은 현관이 한층 더 어둡게 느껴졌다.

여준은 빠르게 집 안을 훑어보았다.

전체 구조를 확인한 뒤, 날카롭게 서 있던 기세가 조금 누그러졌다.

“우리 신혼집을 왜 그렇게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나 했더니 여기 새집이 있었네. 이 집 샀으면 남편한테 말은 해야지.”

여전히 위에서 상대를 내려다보는 말투였다.

말을 마친 여준은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시유의 귓불을 가볍게 만졌다.

손은 익숙하게 시유의 허리를 감쌌다.

시유가 입을 열기도 전에 여준은 늘 그랬듯 시유를 벽 쪽으로 밀어붙이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시유는 순순히 여준의 목을 감싸지 않았다.

몸을 낮춰 여준의 팔 아래로 빠져나온 뒤, 재빨리 두 걸음 물러섰다.

이어 차갑게 여준을 바라보았다.

눈빛은 얼음칼처럼 날카로웠다.

여준의 가슴이 이유 없이 철렁하며 미간을 찌푸리며 나무라듯 말했다.

“왜 이렇게 고슴도치가 됐어? 내가 너무 받아 줬나 보네. 때릴 만큼 때렸고, 부술 만큼 부쉈잖아. 이제는 남편까지 모르는 척하겠다는 거야?”

그 낮고 묵직한 목소리, 다정한 척 훈계하는 말투.

한때는 시유가 가장 좋아하던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부재에 익숙했던 시유가 자신보다 다섯 살 많은 상사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도, 여준에게서 풍기던 단호함과 다정함을 동시에 갖춘 보호자로서의 면모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여준에게 꾸중을 들으면 상처받았지만, 시유는 오히려 괜찮았다.

여준이 자신을 몰아붙이고 다그치는 것조차 애정의 방식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그 환상은 완전히 깨졌다.

시유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분노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현관장 위에 놓인 꽃병을 집어 들고 여준의 머리를 겨누었다.

“나가.”

여준의 웃음기 어린 눈매가 단단하게 굳었다.

“이만큼 난리 쳤으면 됐잖아. 여보, 내가 지금 당신한테 기회를 주는 거야. 이 기회 걷어차면, 다음엔 없어.”

시유는 싸늘하게 웃었다.

“그 기회는 당신이나 가져. 나는 필요 없어.”

시유는 이 원망을 너무 오래 삼켜 왔다. 자신을 이토록 고통스럽게 만든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 꼴을 보기 전까지, 시유는 절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여준은 눈썹 사이를 문질렀다. 한 발 다가와 조심스럽게 시유 손에 들린 꽃병을 받아 내려 했다.

곧이어 시유의 양 손목을 빠르게 붙잡더니, 마른 몸을 번쩍 안아 올렸다.

시유는 있는 힘껏 몸부림쳤다.

하지만 여준은 놓지 않았다. 그대로 시유를 소파로 데려가 눕히고 위에서 눌렀다.

날카로운 눈빛이 시유를 꿰뚫을 듯 내려다보았다.

뜨거운 숨결이 귓가에 닿았다.

“됐어. 내가 잘못했어. 요즘 새나를 좀 더 챙기느라 당신을 소홀히 한 거 인정해.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 더는 떼쓰지 마.”

시유의 두 손은 머리 위로 눌려 움직일 수 없었다.

바로 다리를 들어 밀쳐 내려 하자, 여준은 긴 다리로 시유의 다리까지 단단히 막았다.

키 162센티미터에 몸무게 45킬로그램 남짓한 시유가, 183센티미터에 80킬로그램이 넘는 여준을 밀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놔!”

“안 놔. 남편 말을 잘 들어. 여보, 나 보고 싶었지?”

“놓으라고!!”

시유는 이를 악물고 낮게 내뱉었다.

여준의 눈에는 오히려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호흡이 조금 거칠어졌다.

“당신 산후조리도 이제 끝났잖아. 괜찮을 거야. 오늘은 내가 당신 옆에 있을게.”

말을 마친 여준은 고개를 숙여 시유의 귓불을 입술로 건드렸다.

시유의 몸에 대해서라면, 여준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어디를 건드리면 시유가 흥분하고 반응하는지, 무엇에 약한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유의 마음은 알지 못했다. 알려고 한 적도 없었다.

예전에도 시유가 화를 내거나, 상처받거나, 여준에게 맞서려 들 때면 그는 늘 같은 방식으로 시유를 무너뜨렸다.

몸을 먼저 정복하면 마음도 결국 따라올 거라고 믿었다.

여준에게 그것은 늘 통했다. 시유 앞에서 여준은 언제나 정복감에 익숙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시유의 몸은 마비된 듯 굳어 있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 나무토막처럼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여준은 여러 번 시유를 달래듯 입 맞추고 끌어안았다.

하지만 시유가 끝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자, 여준의 움직임이 멈췄다.

이와 동시에 눈 안쪽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당신...”

여준이 손을 풀고 물으려던 때였다.

짝!

시유의 손이 망설임 없이 올라갔다. 여준의 뺨에 세찬 소리가 떨어졌다.

공기가 얼어붙었다.

여준의 표정은 물을 끼얹은 듯 어둡게 가라앉았다.

한참 뒤, 그는 억눌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 너무한 거 아니야?”

여준의 눈빛이 조금씩 차갑게 식었다. 얼음이라도 품은 듯 서늘했다.

시유는 흐트러진 옷깃을 빠르게 여몄다.

곧바로 몸을 일으켜 맞은편에 앉았다.

일부러 여준과 거리를 벌렸다.

“내가 이혼하자고 한 건 홧김에 하는 말이 아니야. 정식으로 통보한 거야.”

시유의 목소리는 차갑고 또렷했다.

“내일 변호사가 당신 회사로 이혼 서류 보낼 거야. 이혼하고 나면, 당신은 당당하게 사촌 여동생이랑 새나 아이 챙기면 되겠네.”

어차피 헤어질 거라면, 앞으로 여준이 누구를 돌보든 시유와는 상관없었다.

여준을 보지 않으면 된다.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왜냐하면 시유의 마음은 이미 여준에 대한 혐오로 가득 차 있었다.

더는 자신을 갉아먹고 싶지 않았다.

아내의 차가운 태도를 마주한 여준은 결국 참지 못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시유!”

여준의 목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당신 마음속으로는 누구보다 잘 알잖아. 내가 그때 왜 당신을 결혼 상대로 골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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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림
미친인간 세상에 이 남주 딱 하나이길...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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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유는 여준을 차갑게 한번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곧 영우를 데리고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여준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가슴속에서는 분노와 미련이 뒤엉켜 들끓었다.‘대체 왜?’분명 자신이 시유의 남편인데 오히려 남처럼 문밖에 서 있었다.그런데 영우는 아무렇지 않게 시유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속은 끓었지만 임애교 앞에서는 애써 감정을 눌렀다.여준은 순순히 그녀를 따라갔다.“장모님.”눈을 내리깔며 습관처럼 불렀다.임애교의 눈에는 온기라고는 조금도 없었다.깊은 혐오만 남아 있었다.집 안으로 들이지도 않았다.제대로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계단 위에 서서 곧 전 사위가 될 여준을 내려다봤다.“그렇게 부르지 마. 듣기 역겨우니까.”여준의 몸이 굳었다.믿기지 않는다는 듯 임애교를 올려다봤다.“전 정말 시유를 잃고 싶지 않습니다. 빛나도 잃고 싶지 않고요...”“잃고 싶지 않다고?”임애교가 기가 막힌다는 듯 비웃었다.“자네가 말하는 잃고 싶지 않다는 게 시유를 몇 번이고 무너질 때까지 몰아붙이고, 삶을 뒤흔들어 편할 날도 없게 만드는 거야?”“지금 자네가 이렇게 망가진 꼴로 다니면 누가 동정이라도 해 줄 것 같아?”임애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목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웠다.“5년 전에 내가 이 결혼을 반대한 건 너희 부씨 집안 사람들이 하나같이 냉정하고 이기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자네 역시 타고난 듯 오만하고 냉정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지난 5년 동안 시유가 자네 집안에서 온갖 무시를 당하는 걸 내가 다 봤어.”“난 시유가 자네 엄마한테 시달려 점점 수척해지는 것도 봤고, 자네가 일로 죽도록 몰아붙이면서 그걸 훈련이라고 포장하는 것도 봤지.”임애교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그때 자네가 말하는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은 어디 있었어?”“자네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내가 돌려서 얼마나 많이 말했어. 시유한테 좀 잘하라고. 그런데 단 한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2화

    연회장 안.시유의 시선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여준에게 박혀 있었다. 여준은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술잔을 들고, 새나를 데리고 테이블마다 돌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제 친구 영우가 해외 현장에 장기 파견을 나가 있어서, 돌아오려면 1년은 더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제가 영우 대신 인사도 드리고, 술도 대신 받겠습니다.”“새나는 아직 몸조리 중이라 술도, 찬 음료도 조심해야 합니다. 새나 몫으로 주시는 잔은 제가 대신 받겠습니다.”“...”시유는 입안으로 넘어간 오렌지 주스가 유난히 차갑고 쓰게 느껴졌다. 가슴 안쪽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1화

    “여보, 우리 아기 오늘 태어난 지 한 달 됐잖아. 나랑 아기 데리러 올 수 있어?”임시유는 속싸개에 싸인 딸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수화기 너머에서 부여준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들려왔다. 감정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갑자기 일정이 생겼어. 기사한테 당신이랑 아기 태우고 집까지 오라고 할게.]출산할 때도, 산후조리 기간 내내 여준은 회사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시유와 아기의 곁에 없었다.이제 아기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어 조리원에서 퇴원하는 날인데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4화

    유민자가 허둥지둥 방에서 뛰쳐나오며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지진이에요? 지금 지진 난 거예요?”장순영은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를 안고 있다가, 요란한 소리에 놀라 맨발로 가방부터 움켜쥐고 현관 쪽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심지어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었다.유민자와 장순영이 거실로 뛰어들었을 때, 두 사람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늘 차분하고 이성적이던 시유가 미친 사람처럼, 한때 그토록 아끼던 장식품들을 하나씩 바닥에 내던지고 있었다.유민자는 다급히 시유에게 달려가 말렸다.“사모님, 그만하세요! 제발 그만하세요! 무슨 일이든 차분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3화

    시유는 액셀을 깊게 밟아, 두 사람의 신혼집이 있는 단독주택 단지 ‘그림빌’로 차를 몰았다.현관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 이 집에서 오래 일한 가사도우미 유민자와 시유가 따로 고용한 시터 장순영이 아이를 어르고 있었다.시유의 새하얗게 질린 낯을 본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사모님, 어디 편찮으세요?”시유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괜찮아요. 배가 좀 고파서요. 따뜻하게 닭칼국수 한 그릇만 해 주세요.”장순영의 품에서 아이를 받아 든 시유의 복잡하게 뒤엉킨 마음은, 보드랍고 발그레한 아기 얼굴을 보자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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