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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남하준은 아찔하고도 강렬한 수컷의 기운을 내뿜었다.

“감히 날 협박해?”

서다인은 그의 압도적인 기세에 숨이 막혀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녀는 불안감에 떨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발 사람 강요하지 말아요.”

남하준은 싸늘하고도 한없이 짙은 두 눈동자를 반짝이며 그녀의 얼굴을 담담하게 쳐다봤다.

매끄럽고 탱탱한 피부 결과 또렷한 이목구비, 작고 동그란 얼굴은 젖살이 채 빠지지 않아 귀엽고 앙증맞을 따름이었다.

그녀의 예쁘장한 얼굴은 백하린의 어릴 때 모습을 조금 닮아 있었다.

남하준은 넋 놓고 바라보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눈썹을 살짝 들썩거렸다.

“네가 그 여자 어릴 때 모습이랑 비슷해지려고 갖은 수단을 부렸나 봐? 이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겠어. 이래서 할머니가 널 그렇게 좋아하셨구나.”

그 여자 어릴 때 모습이라니?

남하준이 말한 ‘그 여자’는 대체 누구일까?

서다인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남하준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알았어, 네 요구 들어줄게.”

그는 이 말만 남긴 채 부하를 데리고 방을 나섰다.

그 순간 서다인은 어안이 벙벙했다.

어떤 요구를 들어준다는 말이지?

이혼 아니면 부부로서 잘 지내는 거?

...

밤이 깊어지고 청량한 바람이 불어왔다.

류청이 저녁밥을 방 문 앞까지 가져왔고 서다인은 식사를 마친 후 방 안에서 병법에 관한 서적을 한 권 찾아내 흥미진진하게 새벽까지 책을 읽었다.

피곤이 몰려오자 그제야 씻으러 들어갔다.

욕실에서 30분을 씻은 후 갈아입을 옷이 없어 몸에 걸쳤던 때 묻은 옷을 깨끗이 빨아서 욕실 창문 밖에 내걸어놓고는 샤워가운을 두르고 밖으로 나왔다.

별안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녀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라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남하준이 막 상의를 벗고 튼실한 몸매를 드러내며 버젓이 방에 나타난 것이다.

건강한 피부색과 탄탄한 근육, 군살 하나 없는 완벽한 몸매에 간간이 옛 상처가 보여 남자의 매력이 더 물씬 풍겼다. 말 그대로 상남자였다.

남하준이 상의 탈의한 채로 화끈한 몸매를 드러내며 그녀의 방에 나타나자 화들짝 놀란 그녀는 미처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남하준은 미간을 구기며 그녀를 쳐다봤다.

서다인의 두 볼은 지금 누가 봐도 빨갛게 달아올랐다. 맑고 영롱한 두 눈은 순진한 척하는 연기가 절대 아니었다.

남하준은 훤히 드러난 그녀의 새하얀 어깨를 바라보다가 늘씬한 흰 다리에 시선을 옮겼다.

성형을 십여 차례 했음에도 몸매와 외모 전부 이토록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니, 의사가 신이 내린 손길로 지금 눈앞의 완벽한 결정체를 만들어낸 듯싶다.

그는 시선을 거둬들이며 저도 몰래 목젖을 움직이더니 옷장에서 캐쥬얼한 여름옷 한 벌 꺼내서 무심코 욕실로 걸어갔다.

서다인의 곁을 지날 때 운동복 세트를 그녀의 품에 밀어 넣었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남하준이 건넨 옷을 와락 끌어안았다.

서다인은 머리가 백지장이 된 채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남자가 대체 왜 이러는 거지?

이때 남하준이 차갑게 명령했다.

“입어.”

그녀는 재빨리 돌아서서 욕실로 들어가는 남하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하준 씨가 왜 제 방에 있어요?”

남하준은 그녀를 등지고 내심 불만을 토로하듯이 말했다.

“제대로 된 부부생활을 하자던 사람이 누군데?”

그녀가 한 말이긴 하지만 이건 단지 이혼을 위해서일 뿐 내연녀에, 서로 감정도 없이 강요당해서 사는 비정상적인 혼인 관계를 죄스럽게 유지하자는 뜻이 아니었다.

남하준이 욕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나서야 그녀는 내내 참고 있던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답답한 마음을 추슬렀다.

그녀는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다가 또다시 화끈거리는 얼굴을 쓰다듬었다.

미처 어쩔 바를 모르는 모습이었다.

15분 뒤.

남하준이 심플한 캐쥬얼 잠옷을 입고 개운하게 샤워를 마친 후 욕실에서 나왔다.

서다인은 잔뜩 긴장해서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하준 씨, 우리 얘기 좀 해요.”

물론 이 남자를 3년 동안 짝사랑했지만 가슴보다 머리가 먼저 알려주고 있다. 그와 억지로 이 결혼을 유지한다면 나중에 상처받을 사람은 무조건 그녀라는 것을.

남하준은 옷장 앞에 다가가 안에서 다른 이불을 꺼내더니 그녀 맞은편의 침대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시간이 너무 늦었어. 용건 있으면 내일 다시 얘기해.”

서다인은 마음이 복잡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는 저도 몰래 옷깃을 꼼지락거리며 맑은 눈동자로 그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다정하게 되물었다.

“우리 이혼 안 하는 건가요?”

남하준은 이불을 펴고 침대 한쪽에 눕더니 눈을 감았다.

“당분간은 안 할 거야.”

서다인은 바짝 긴장해서 나지막이 요구했다.

“그럼 꼭 남편의 도리를 지켜요.”

“알았어.”

남하준이 고민 없이 바로 대답했다.

서다인은 그가 이토록 흔쾌히 대답할 줄은 몰랐다.

침대에 누워 잠든 이 남자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불과 베개를 챙겨서 살금살금 바닥에 펴놓았다.

남하준의 마음속에 딴 여자가 있으니 분명 그녀와 한침대에서 자길 원치 않을 것이다.

서다인은 하는 수 없이 저 자신을 희생하며 바닥에서 자기로 했다.

이부자리를 다 펴고 불을 끈 후 창밖의 달빛을 빌어 담요까지 걸어가 살며시 누웠다.

몇 초 후 갑자기 불이 환하게 켜졌다.

서다인은 비스듬히 눈을 뜨고 남하준의 차갑고 준수한 얼굴을 마주했다. 그는 옆에 서서 거만한 눈길로 그녀를 내려다봤다.

굳게 잠긴 허스키한 목소리에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서다인은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자고 있잖아요!”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남하준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이부자리에 누운 그녀까지 함께 덥석 안아 올렸다.

태평양처럼 넓은 어깨에 어마어마한 팔뚝 힘까지 과시했다.

“하준 씨?”

서다인은 허공에 붕 떠 있다가 미처 반응하지도 못한 채 그의 거친 손길로 침대에 내동댕이쳐졌다.

침대에서 살짝 튀어 올라 머리가 어지럽고 다친 몸에 이따금 고통이 밀려왔다.

남하준은 그녀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화들짝 놀란 서다인은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어 그의 가슴을 밀쳤다.

“하준 씨...”

남하준은 양손으로 침대를 짚고 팔뚝 하나를 사이에 둔 거리로 그녀를 가둬두었다.

서다인은 그의 탄탄한 가슴에 손이 닿은 순간 너무 수줍어서 황급히 거둬들였다. 그녀는 보호 차원으로 제 가슴팍을 감싸 안으며 긴장하고 불안한 눈빛으로 이 남자의 그윽한 검은 눈동자를 쳐다봤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녀였다. 남하준이 가까이 다가오니 두려우면서도 은근 기대되어 너무 긴장한 나머지 온몸이 경직됐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설마 그녀랑 하룻밤을 보내겠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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