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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너라는 불면

Penulis: 소라닌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8-11 16:00:43

그때, 사람들을 택시로 밀어 넣는 작업을 모두 마친 서현이 홀로 비틀거리다 모르는 사람과 부딪혀 엉덩방아를 찧었다.

자신과 부딪혀 넘어진 서현을 일으켜 주려 남자가 팔을 뻗으려는 순간, 차 안에 갇혀 있던 지음이 어느새 튀어나와 얼른 몸을 숙여 서현의 어깨를 감쌌다.

그런 지음의 등장으로 당황한 남자는 죄송하다는 말을 여러 번 뱉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아아…아프다. 엉덩이가 아파.”

반쯤 풀린 눈으로 얼굴을 구기며 연신 아프다던 서현이 불쑥 고개를 젖혔다.

서현의 얼굴이 제 어깨 안에 담겼다. 반지르르 흰 피부에 검고 긴 생머리가 아무렇게나 달라붙어 있었다.

그러나 갸름하고 작은 얼굴 속 또렷한 이목구비는 조금도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려놓은 듯한 눈썹과 오똑한 코, 제법 도톰하면서도 날렵한 입매…까칠하고 차가워 보이는 얼굴이지만,

서현이는 여전히 예뻤다. 스무 살의 서현이도, 서른 살의 서현이도 내가 본 여자 중에 가장 예쁜 여자였다.

“이제 다 컸는데, 아직도 길에서 아무 남자 품에 자빠지고 다닐래?”

“아…왜 이제와요.”

서현이 제 어깨를 머리로 툭툭 치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왜 이제 오냐는 서현이의 말에 몸이 굳은 듯 움직이지 않는 지음이 입술만 달싹거리는데, 서현이 눈을 질끈 감으며 이어 말했다.

“아 나 몰라…몰라. 나 오늘 술 지인짜 많이 마셨어. 선배가 데려다줘. 자, 알았으면 출발! 윤건하…출바알…!”

윤건하. 양 대리가 알려 준 출판사 대표 이름이었다. 두 사람은 대학 선후배 사이라고 알려졌지만, 단순한 관계는 아닌 것 같다는 양 대리의 첨언이 함께 떠올랐다. 지음은 아랫입술을 저도 모르게 꾹 깨물었다.

“…그래, 출발하지 뭐.”

지음은 처음 서현을 만난 날처럼, 서현을 품에 안아 들고 일어섰다. 술기운에 괴로운지 신음을 하던 서현이 금세 제 품에 안겨 눈을 슬며시 감았다.

지음은 서현을 데리고 호텔로 향했다. 차마 집으로 데려갈 순 없었다. 집이라는 공간에는 자신의 치부가 즐비해 있었으니까.

그렇게 그날 밤, 꿈속 재회가 아니었던 바로 그날 밤이 시작된 것이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잠든 서현이를 침대에 눕힌 지음은 막상 데려와 놓고 나니 난감해 미칠 노릇이었다.

마치 처음 만난 그날처럼 말이다.

“강지음 미친…하.”

서현을 보며 오히려 또렷해지는 정신에 지음은 심히 괴로워졌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예나 지금이나 이건 범죄에 가깝지 않은가. 예전에는 나이라도 어렸지, 서른셋이나 먹은 남자가 술 취한 여자를 호텔로 데려오는 건…범죄다 범죄야. 중범죄!

“그래, 번호만 남기고 가자.”

지음은 앉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서 눈썹 뼈를 매만지다, 결심한 듯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협탁 위에 놓인 메모지로 손을 뻗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곤히 자고 있는 서현의 얼굴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세상모르고 자는 서현의 얼굴은 스무 살 때 그 모습과 똑같았다.

그 모습은, 마치 장대비가 내리던 10년 전 그날을 그대로 데려온 듯했다.

“…그때도 남의 집에서 그렇게 잘 자더니.”

“으…”

그때, 서현이 어딘가 불편한 듯 미간을 접더니 몸을 뒤척였다.

겉옷이 불편한가…?

메모지로 뻗었던 지음의 손이 잠시 갈 길을 헤맸다.

그래, 겉옷만. 겉옷만 벗겨주자.

혹여나 서현이 깰까 최대한 고요한 움직임으로 서현의 재킷을 벗기는데, 얼굴이 정면으로 겹쳐진 그 순간 서현의 눈꺼풀이 얕게 진동하더니 이윽고 눈동자를 드러냈다.

깊고 짙은 서현의 검은 눈동자에 제 얼굴이 그대로 비쳤다. 서현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저를 보며 두어 번 눈을 슴벅였다. 이에 지음의 목젖이 크게 움직였다.

“…어…왜…왜지…?”

서현의 마른 입술이 벌어지며 소리를 내었다. 서현의 목소리에 지음도 반응했다.

“오랜만이야. 마서현.”

지음의 말에 서현의 눈동자엔 말간 빛이 가득 일렁였다.

왜, 누굴 보고 우는 건데. 마서현.

“…맞네…맞잖아. 근데…왜…왜 이제 와. 왜…!”

왜 이제 오냐는 말. 아까와 같은 말이었지만 이번엔 서현이 말하는 사람이 윤건하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번은, 한번은 와줄 수 있었잖아. 내가 아무리 미워도, 아무리 끔찍해도, 꿈인데…이렇게 그냥 꿈인데…한번은 와주지 그랬어.”

서현의 눈가에 가득 고여 있던 눈물이 쉴 새 없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지음은 그런 서현을 내려다보며 서서히 진해지는 아릿한 두통과 묵직하게 조여 오는 심장에 인상을 구겼다.

나를 기다렸어? 그렇게 매정하게 사라져 놓고, 나를 기다렸어 네가?

감정의 요동이 육체적 고통으로 밀려들었지만, 느껴지는 고통을 삼키며 지음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 본 새에 더 말랐네.”

“오빠 너는…하나도 안 변했네. 진짜 웃긴다아…”

“나 엄청 변했는데. 잘 봐봐.”

그때, 서현이 지음의 목을 감싸며 물었다.

“이거 꿈…이지? 그치?”

지음이 잠시 머뭇거리다 메이는 목소리로 답했다.

“응. 꿈이야.”

“이제야 꿈에 와주네…내 첫사랑.”

서현은 그대로 지음의 목을 천천히 당겼다.

“꿈이니까. 꿈이니까 키스해도 되지?”

서현의 물음에 지음은 괴로운 듯한 얼굴로 눈을 감았고, 서현의 볼 위로 지음의 눈물이 툭 떨어져 내렸다.

지음은 그렇게 처음 만난 날처럼 서현과 하룻밤을 보냈다. 아니 그보다 더 격하고 뜨거운 밤을 보냈다.

그리고 지음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약도, 술도 없이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10년 만에 처음이었다. 아주 아주 깊은 잠이었다.

그렇게 다음 날 서현은 꿈이 아닌 현실을 마주했고, 지음은 불면의 밤이 사라진 개운한 아침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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