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쿵’
“아……!”
이 집안의 고요를 깬 건, 역시나 이곳에 영 적응하지 못하는 서현이었다.
소파에서 굴러떨어진 서현의 몸은 얼마나 잤는지 심히 뻐근했고, 떨어진 충격에 팔꿈치까지 저려왔다.
아직 게슴츠레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지만, 이 집구석은 도대체 시간이 몇 시인지, 낮인지 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서현은 몸을 일으켜 소파 위에 놓인 핸드폰을 쥐었다.
하지만 미처 충전하지 못한 핸드폰은 방전된 상태였다.
거실 창에는 암막 커튼이 있는 것도아닌데 불투명한 유리가 빛을 가리고 있어 밖을 확인할 수도 없었다.
“…답답하네, 진짜.”
서현은 조심히
‘쿵’“아……!”이 집안의 고요를 깬 건, 역시나 이곳에 영 적응하지 못하는 서현이었다.소파에서 굴러떨어진 서현의 몸은 얼마나 잤는지 심히 뻐근했고, 떨어진 충격에 팔꿈치까지 저려왔다.아직 게슴츠레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지만, 이 집구석은 도대체 시간이 몇 시인지, 낮인지 밤인지 알 수가 없었다.서현은 몸을 일으켜 소파 위에 놓인 핸드폰을 쥐었다.하지만 미처 충전하지 못한 핸드폰은 방전된 상태였다.거실 창에는 암막 커튼이 있는 것도아닌데 불투명한 유리가 빛을 가리고 있어 밖을 확인할 수도 없었다.“…답답하네, 진짜.”서현은 조심히 지음이 사라졌던 방문 앞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섰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귀를 문에 바짝 가져다 댔다.역시나 어떤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여기 없나…”서현은 잠시 문을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렸고, 본의 아니게 집안을 수색(?)하기 시작했다.“강지음…!”제 목소리가 외로이 집안을 울렸다.아니 무슨 집에서 사람을 찾아다녀야 해. 참 나…!“…강지음!”게스트룸, 드레스룸 등등 여러 개의 방을 살폈지만 지음의 모습은 도통 보이지 않았다. 남의 집을 이렇게 구석구석 다녀도 되는지 싶은 마음은 점점 사라지고, 어느새 근심과 걱정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오랜만이네요?”위스키 바에 도착한 건하를 흔연하게 맞이하는 연지는 첫 만남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단정하지도, 정갈하지도 않은 연지의 자태는 여전히 매혹적이었지만 건하에게는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은 여자였다.“안 그래도 우리 홍 작가님한테 연락드릴 참이었는데, 통했네요.”“일 얘기라면 사양할게요, 오늘은.”연지가 시선을 위스키 잔 안에 떨어트렸다. 건하는 작은 한숨을 흘리곤 매니저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짧게 주문을 마쳤다.“머리가 바뀌었네요. 잘 어울려요.”건하의 건조한 말투에 연지가 ‘하’ 하고 소리를 내며 웃었다.“그게 다예요?”“음.”건하가 술잔을 손끝으로 천천히 굴렸다.“우리 사이에 이렇게 스토리가 없었나. 실망인데요.”연지가 술잔을 들며 건하를 느리게 바라보았다. 그의 옆모습엔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있었지만, 속내는 전혀 읽을 수 없었다.“추억은 잘 안 만드는 편이라.”“여기, 그리고 호텔. 그날 밤. 다 추억 아닌가?”연지의 말에 건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술을 한 모금 넘겼다. 오늘따라 타들어 가는 술맛이 괴롭게 느껴졌다.“오늘도 추억 만들기가 목적이면, 먼저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이봐요, 윤건하 씨.”건하가 잔을 내려놓았다.&n
건하를 보내고 다시 지음의 집으로 돌아가던 서현은 불어오는 찬바람에 겉옷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그러자 잔뜩 구겨진 사진 한 장이 손에 걸렸다.꺼내고 싶지 않은 그것을 그대로 더욱 구겨 쥐었다. 종이가 손바닥 안에서 구겨지는 감촉이 느껴졌다. 손 끝에 힘을 줄수록 사진 속 얼굴도 함께 일그러지는 것만 같았다.다시 보고 싶지 않은 그 얼굴을 기억 속에서도 구겨버리고 싶었다.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날의 기억까지 전부 없던 일이 될 수 있다면….하지만 기어코 그 얼굴은 그날의 기억을 불러왔다.10년 전 그날.지음을 만나러 나갔던 날―지음은 서현의 집 앞에서도, 그의 집에서도 만날 수 없었다. 다시 훈련하러 돌아갔나 싶었지만, 서현은 멈추지 않고 지음이 있을 것 같은 곳을 뛰어다녔다.혹시나 싶어 자주 가던 곳을 하나씩 찾아다녔다. 둘이 함께 걷던 길도, 장난처럼 시간을 보내던 곳도.그렇게 한참을 돌다 자주 만나던 강운사거리로 돌아온 그 순간. 횡단보도 건너편에 선 지음이 보였다.그 역시 자신처럼 땀에 흠뻑 젖은 듯했다.저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고 있던 그의 얼굴.그 얼굴이……어땠더라.지음의 얼굴은 웃고 있었던가. 아마도 바보같이 그랬겠지.얼른 신호가 바뀌기만을 기다리는 두 사람의 마음과 달리, 빨간 불은 유난히 길게 이어졌다.
“여기라고?”“응.”이런 으리으리한 집에 살면서 왜 코딱지만 한 우리 집에…꾸역꾸역.서현은 하늘까지 솟은 듯 보이는 고급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얼마나 높은지 금세 목이 아파와 고개를 돌려 지음을 노려보았다.“물이 안 나온다는 그 집…”서현의 추궁에 지음이 슬쩍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생각보다 빨리 고쳤다네.”“그게 하필 오늘이고?”“공교롭게도.”지음은 최대한 뻔뻔한 태도로 대답한 뒤 택시에서 서현의 짐과 제 짐을 재빨리 내렸다. 서현의 따가운 눈초리를 의식하며 짐을 옳기던 그때, 서현의 핸드폰이 울렸다.서현이 짐을 옮기려다 멈춰서며 전화를 받았다.“응, 선배.”이윽고 지음의 발걸음도 멈춰 섰다.서현은 그런 지음을 힐끗 보고는 고개를 돌려 통화를 이어갔다.“내가 나가는 게 편할 것 같아. 네, 알겠어요.”통화를 끝내자마자 지음이 말했다.“같이 들어가도 되는데.”지음의 말에 서현이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제 캐리어를 톡톡 두드렸다.“이것만. 선배는 근처에서 혼자 보고 올게.”혼자 보내기 싫은데.지음의 긴 손가락이 무심코 아랫입술을 문질렀다.“……
언제 어떻게 떨어뜨렸는지도 모를 자신의 핸드폰의 행방을 지음은 당최 어떻게 알았는지 찾으러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다.서현은 그사이 이불 속에서 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다.얼마나 잤을까.현관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지음이 돌아온 건가 싶어 몸을 일으키려는데, 후다닥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사라지는 발소리가 왠지 모르게 꺼림칙했다.“강지음?”더 이상 어떤 기척도 없는 현관 쪽으로 괜스레 그의 이름을 불러봤지만, 역시나 아무런 답이 없었다.서현은 영 불안한 기운을 떨쳐내지 못한 채 겉옷을 찾아 걸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스스슥—문 뒤에서 무언가 밀려나는 소리가 났다.서현이 고개를 내밀어 확인하자, 금방 그 정체를 발견했다.덩그러니 놓여있는 작은 상자 하나.상자 윗면에는 운송장도 없이 검은 매직으로 휘갈겨 쓴 글씨 세자만이 보였다.‘퀵 배달’서현은 서늘한 바람만 스산하게 스치는 마당을 천천히 둘러봤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지만 이상하게도 불안했다. 영문을 모르겠는 와중에도 불안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이 상자를 여는 순간 자신이 마주하게 될 무언가를, 이미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서현의 손이 느리게 상자를 뜯어 열었다.
똑똑.대표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건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반응했다.“네, 들어오세요.”느리게 열린 문틈 사이로 주승이 고개를 먼저 빼꼼 내밀었다.“응, 와서 앉아.”주승이 터덜터덜 걸어 들어왔다. 얼굴에는 근심이 잔뜩 피어 있었다. 건하는 그런 그를 보며 느른한 미소를 지었다.“혼자 하려니 쉽지가 않지?”“생각보다 더 어렵네요…!”“어제 홍연지 아나운서랑 만났다고 했나? 갑자기 미팅을 잡은 거야?”건하의 물음에 주승의 얼굴엔 난감한 기색이 그대로 비쳤다.“그게….”“마 대리랑 홍 아나랑 좋은 인연은 아닌 것 같지?”“엇…음, 잘은 모르지만 그런 것 같아요. 저는 마 대리님이 그렇게 감정적으로 누군갈 대하시는 거 처음 봤거든요.”건하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서현의 모습이 어쩌면 아주 일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걱정과 불안이 일순 크게 치솟았다.“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어, 주승 씨는?”“연락을 드려봤는데요…”영 표정이 풀어지지 않는 주승에게 건하는 편하게 말하라는 듯 손짓을 보냈다.“제 기획안으로 진행해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근데? 뭐가 문젠데?”주승이 손가락을 꼼지락 대며 영 입을 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