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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5화 네가 너무 역겨워

Author: 연의 수정
민여진은 웃으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박진성, 넌 나를 완전히 바보 천치로 만들었어. 어땠어? 재밌었어? 네가 해주는 그 따뜻한 말 한마디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서툰 그 거짓말에 사정없이 휘둘리는 날 보면서 진짜 우스웠겠다?”

“어제 오후에 말이야...”

민여진의 목소리는 이미 잔뜩 갈라져 있었다.

“너한텐 이제 나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어? 그때도 조롱이었지? 난 그 한 마디만 믿고 얼마나 감동 받았는데. 정말 바보처럼...”

“아니야!”

박진성은 고통으로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급히 반박했다. 배에 힘이 들어가자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와 뜨거운 피가 손바닥을 흠뻑 적셨다.

그는 두려웠다. 자신이 과다출혈도 죽는 것보다 민여진이 이대로 무너져 버릴까 봐 두려웠다.

“그 말들은 전부 진심이었어... 여진아... 미안해...”

이 순간, 박진성이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이대로 죽으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그에겐 누군가를 되살릴 능력 따윈 없었다

복부에서는 피가 미친 듯이 흘러나왔지만 그 고통은 박진성의 이성까지 앗아가지 못했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정하게 말했다.

“내가 잘못했어. 전부 다... 미안해. 나도 일이 이렇게 틀어질 줄은 몰랐어. 내가 다 보상해줄게. 내가 다 책임지도 원하는 거 다 해줄게. 뭐든지, 정말이야. 응?”

민여진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박진성을 바라보다가 다시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

“박진성, 그거 알아? 네가 나한테 보여줬던 그 온기들 말이야. 난 거기에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알아? 한편으로는 넘어갈까 봐 두려운데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너는 다 알고 있었잖아. 네 다정함 밑에 숨겨져 있던 게 우리 엄마 죽음이었어. 이제 널 보면 그냥 역겨울뿐이야.”

웃고 있던 민여진의 눈에서 증오가 타올랐다.

“다시는 너 안 믿어. 넌 살인자야.”

민여진은 박진성을 힘껏 밀쳤다. 차마 버티지 못한 박진성은 바닥에 힘없이 꿇어앉았다. 피가 천천히 흘러나와 땅바닥에 고였다.

민여진은 광기 어린 눈빛으로 주위를 샅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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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시호는 민여진을 보며 말했다.“보아하니, 네가 문채연보다 먼저인 모양이야. 박진성이 널 선택했네?”머릿속이 터질 것처럼 어지러웠다. 민여진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꿈을 꾸는 것 같았다. 박진성처럼 콧대 높고 오만한 남자가,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을 그가 진시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이제 됐어?”박진성은 시선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무릎을 꿇어도 몸에 서린 기세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민여진 놔줘. 너한테 진 빚, 내가 갚을 테니까 애먼 사람 괴롭히지 마.”“글쎄...”진시호는 일부러 머뭇거리며 입꼬리를 얄밉게 끌어올렸다.“진짜 무릎 꿇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 그런데 무릎 한 번 꿇었다고 해서 모든 걸 지우기는 어렵지.”박진성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네가 말했잖아. 내가 무릎 꿇으면 된다고.”“그래.”진시호는 시원하게 웃었다.“그런데 민여진 풀어준다는 소리는 안 했어. 그저 네가 무릎을 꿇으면 더는 괴롭히지 않겠다는 말이었지.”박진성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참을 수밖에 없었다. 진시호의 눈빛에는 묘한 만족감이 번졌다.그는 본래 박진성이 또 다른 수를 숨겨두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박진성은 아무것도 없이 홀로 이곳을 찾아왔다. 그 무모함이 어이없을 지경이었다.여자에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예전엔 문채연을 위해 나섰고 지금은 또 민여진을 위해 나섰다.“하지만 나도 그렇게 억지 부리는 사람은 아니야.”진시호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심드렁하게 말을 이었다.“내 앞에서 머리 한번 조아려. 그러면 전에 날 두들겨 팬 거, 없던 일로 해주지.”그는 박진성이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이 정도면 꽤 의리 있는 거 아니야? 네 주먹질 때문에 난 병원 신세를 졌어. 그런데도 상처 하나 안 내고 여기서 끝내주겠다는데 이보다 관대한 게 어디 있겠어.”몸에 상처는 나지 않아도 매질보다 더 치욕스러운 행위였다. 고통이 아니라 모욕이었다.박진성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진시호가 이렇게 쉽게 끝낼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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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민여진에게는 임재윤이 있었다.‘내가 죽으면 재윤이는 어떡하지?’‘최소한... 재윤에게 인사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네 생사는 박진성에게 달렸어.”진시호가 콧방귀를 뀌었다.“그러게, 누가 멍청하게 그런 남자에게 붙어먹으래?”파르르, 민여진의 속눈썹이 떨려왔다. 심장은 또다시 누가 쥐어짜기라도 하듯 아파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민여진이 말했다.“그래, 내가 보는 눈이 없었어. 그러니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기회?”진시호가 민여진이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너에게 이제 기회 같은 건 없어.”짜증스럽게 넥타이를 내린 진시호가 말을 이었다.“천천히 놀아줄 생각이었는데... 넌 내 마지막 인내심까지 바닥냈어. 오늘 네 태도에 따라 널 며칠 더 내 곁에 둘지, 아니면 오늘 바로 온야에 보내 손님을 받게 할지 결정할 거야.”말을 마친 진시호가 손을 뻗어 민여진의 옷을 찢어 버렸다. 억누른 분노를 전부 민여진에게 쏟아낼 작정이었다. 그러지 않는다면 민여진에게 놀아났다는 분노는 도무지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정신이 든 민여진이 몸을 웅크리고 진시호의 손길을 거부했다. 몸부림 쳤지만 진시호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진시호가 민여진을 덮치려던 그 순간,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대표님!”진시호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무슨 일이 있든 나 찾지 마! 당장 꺼져!”진시호가 민여진의 목에 입을 맞추던 그때, 고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얼른 내려오세요. 박진성이 왔어요.”그 말에 놀란 민여진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박진성이 왔다고?’‘양성으로 돌아갔다며? 끝까지 모른 척하려던 거 아니었어? 왜...’진시호 역시 놀란 듯 민여진을 덮치려던 몸을 일으켜 외투를 입으며 고안에게 들어오라고 지시했다.고안이 방으로 들어서자 진시호가 말했다.“박진성이 왔다고? 지금 어디 있어?”“마당에 있어요.”진시호가 미간을 찌푸렸다.“혼자 온 거야?”고안이 고개를 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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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뒤에 있던 보디가드가 대답했다.“사실입니다.”진시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끓어오르던 열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심지어 조금은 역겹기도 했다.민여진이 말했다.“뭐가 그렇게 급하세요? 원하시는 게 뭐든, 박진성을 무너뜨리고 나면 더 기분 좋게 가질 수 있지 않겠어요?”꽤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다. 여자라면 민여진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것보다는 콧대 높던 박진성을 발밑에 두는 것이 더 뿌듯한 일이었다.진시호가 곧바로 물었다.“문민서는 지금 어디 있어?”“양성 거산의 절에 있어요.”“절?”진시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생각보다 멀리 떨어진 곳에 진시호가 불퉁하게 말했다.“여자가 절에서 뭐 해?”“얼마 전 박진성이 많이 아파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어요. 문민서가 치성드리러 절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본인이 치어죽인 사람에게 사죄도 할 겸.”그럴듯한 이유였다. 게다가 진시호는 민여진은 감히 거짓말을 못 할 것이라 자신했다. 진시호는 별다른 추궁 없이 기고만장한 태도로 저택을 벗어나 문민서를 잡으러 곧장 양성으로 향했다.방문이 닫히자 민여진이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등은 이미 식은땀으로 젖어있었다.아직 시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진시호는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였다.문민서는 양성의 거산에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쯤 교도소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그러니 진시호는 곧 민여진이 거짓말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될 것이다. 민여진이 도망갈 수 있는 시간은 오늘 밤뿐이었다.그 생각에 민여진은 도무지 진정할 수가 없었다.이틀 동안 민여진은 밖을 지키고 있는 두 명의 보디가드의 루틴을 파악했다. 두 사람은 저녁 10시가 되면 밥을 먹으러 거실로 내려갔다.얘기를 나누며 식사했기에 큰소리만 나지 않는다면 충분히 도망갈 수 있었다.민여진은 두 사람이 거실로 내려가는 틈을 타 옆에 있던 테이블을 문 쪽으로 밀어 문을 막았다. 그리곤 이불 시트를 찢어 협탁에 놓였던 시계를 팔꿈치에 묶었다. 욕실의 창문 앞으로 다가간 민여진이 팔꿈치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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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히 그럴 거라 예상한 일이었지만 직접 사실을 전해 들으니 민여진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저렸다.냉혈하고 무정한 박진성이 그녀에게 조금의 연민이라도 느껴주길 바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위기에 처했을 때마저도 박진성은 민여진을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동진을 떠났다...독한 인간이었다.민여진이 옅은 비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네. 박진성이 어떤 사람인지, 전 진작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 진 대표님께 전해주세요. 대표님께서 제 안전만 보장해 주신다면 반드시 박진성을 무너뜨릴 거라고.”방을 나선 보디가드가 생리대를 사서 돌아올 때까지 민여진은 여전히 조금 전 그대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늘진 곳에 있던 탓에 민여진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측은지심이 생긴 보디가드가 조금은 누그러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걱정하지 마세요. 민여진 씨 말이 전부 사실이고 대표님께 협조적으로 구신다면 대표님은 여진 씨를 해치지는 않을 거예요.”민여진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눈물을 닦는 것인지, 그저 피곤한 탓인지 알 수 없었다.“고마워요.”보디가드가 건넨 봉지를 건네받은 민여진이 벽을 더듬어 화장실로 향했다.문을 닫는 그 순간, 민여진 얼굴에 드리웠던 나약함과 슬픔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대신 그곳엔 차분함과 냉정함이 자리했다.박진성이 동진을 떠났다는 사실에 마음이 시큰거린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의 저릿함이 슬픔은 절대 아니었다. 민여진은 누구보다 박진성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민여진은 박진성에게 그 어떤 기대도 품지 않았다.조금 전의 그 모습은 그저 민여진의 연기에 불과했다.보디가드에게 보여주려고 준비한 연기였다. 아무리 차가운 남자라도 상처받아 슬픔에 허덕이는 여자에게는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보디가드의 경계가 조금이라도 늦춰진다면 민여진에게는 기회였다. 그 기회가 1%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생리대를 뜯는 시늉을 하던 민여진이 곧이어 벽을 짚고 창가로 향했다.다행히 화장실의 창문에는 방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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