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여진 씨, 진짜 박 대표님 와이프 맞아요?”안솔의 말투엔 불신과 경멸이 가득했다. 민여진이 미소를 거두고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그 질문은 조금 전에도 하셨잖아요. 이미 진성 씨가 솔직하게 대답한 것 같은데요.”안솔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전 사실을 듣고 싶어요.”“사실이요?”민여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사실은 안솔 씨가 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전 진성 씨가 와이프가 맞거든요.”민여진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박진성의 법적인 와이프였다. 물론 며칠 후면 이혼 절차를 밟게 될 테지만 말이다. “그럴 리가.”안솔이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같은 여자가...”“저 같은 여자가 어때서요?”안솔의 말을 자른 민여진에게서 박진성과 똑 닮은 카리스마가 흘러넘쳤다.그 모습에 안솔은 흠칫 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던 안솔은 체면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말했다.“배경도, 능력도 뭐도 없는 네가 뭔데?”그 말에 민여진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안솔 씨 말이 맞아요. 전 안솔 씨처럼 좋은 가정 환경에서 자란 건 아니에요. 하지만 가정 교육만큼은 엄마께 잘 받았다고 생각해요.”“면전에 대고 사람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독선적으로 굴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전 알 거든요. 어쩌면 그런 것 때문에 진성 씨가 저와 결혼한 거 아닐까요?”민여진의 말은 결국 안솔은 가정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안하무인의 사람이라는 얘기였다.그 뜻을 모를 리 없는 안솔의 얼굴이 분노로 파랗게 질려버렸다.더 이상 안솔과 말다툼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던 민여진이 벽을 짚으며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그런 민여진을 지켜보던 안솔의 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곧이어 휘청거리며 화장실에서 나오는 중년 남자를 본 안솔은 번뜩 뭔가를 떠올린 듯 앞으로 다가갔다....화장실 칸막이에서 나온 민여진은 세면대로 향했다. 바로 그때, 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유난히 크게 들리는 문이
“거짓말하시는 거죠? 이런 여자가 있다는 말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갑자기 대표님 와이프가 될 수 있는 거예요?”미소 짓던 박진성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박진성이 무표정한 얼굴로 되물었다.“제가 왜 안솔 씨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죠?”“하지만...”“안솔!”목소리를 높여 안솔을 다그친 안태용이 곧 웃는 얼굴로 박진성에게 말했다.“솔이가 쉽게 흥분하는 성격이라... 죄송해요. 대표님께 아내가 생겼다니 축하해요. 청첩장이 나오면 꼭 보내주세요.”박진성이 그제야 빙그레 미소 지었다.“당연히 보내드려야죠.”그 후 박진성과 몇 마디를 더 나눈 안태용은 눈시울이 붉어진 안솔을 데리고 자리를 벗어났다.“앞도 못 보는 주제에, 뭔데...”인정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안솔의 말이 귓가에 들려왔지만 태연하게 고개를 돌린 민여진이 말했다.“저 여자가 마음에 안 들면 본인이 직접 거절하면 되잖아. 왜 굳이 날 방패막이로 삼아서 나에게 적을 만들어 주는 거야?”하지만 박진성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민여진 씨가 방패막이로 쓰기엔 딱이니까.”박진성과 불필요한 언질을 하고 싶지 않았던 민여진이 테이블 앞으로 걸음을 옮겨 디저트를 맛보며 파티가 끝나기를 얌전히 기다렸다.박진성에게 인사를 하러 오는 사람은 끊이지 않았고 파티도 곧 시작할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진시호는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조바심이 난 민여진이 물었다.“설마 오늘은 그저 이렇게 끝나는 거야?”진시호는 쉽게 포기할 인간 같지는 않았다.박진성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진시우는 보이지 않았다.“아마 주인공이 아직 나타나지 않아서 그런가 봐.”말하는 박진성의 시선이 민여진이 얼굴에 닿았다. 박진성이 갑자기 손을 뻗어 민여진의 턱을 잡았다. 따뜻한 손가락이 민여진의 입가를 문질렀다.“뭐 하는 거야.”갑작스러운 손길에 놀랐지만 민여진은 감히 박진성을 거부할 수도 없었다.민여진의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를 닦아낸 박진성이 비웃듯 말했다.“내가 뭘 했다고 그
그러니 민여진처럼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은 그 세상에 잘못 빠져들었다간 뼈도 못 추스르는 수가 있었다.지금 이 순간, 민여진은 임재윤이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이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겪는데 뭐?”민여진의 말에 뼈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박진성이 냉소 지으며 말했다.“네가 나와 결혼했을 땐 그 일이 있기 전이었어. 난 한순간도 너에게 소홀한 적 없었어.”“맞아.”민여진이 쓴웃음을 지었다.박진성은 밖에서는 단 한 번도 민여진을 홀대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늘 좋은 남편이었고 시어머니인 이정화도 누구보다 민여진을 아껴주었다.박진성과의 결혼생활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딱 하나, 박진성이 민여진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말이다.“여기 디저트 있어? 나 배고파.”민여진이 적당한 타이밍에 말을 돌렸다. 물론 배가 고픈 것도 사실이었다.주위를 둘러보던 박진성이 민여진의 손을 잡고 구석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누군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박 대표님, 오랜만이네요. 양성이 아니면 박 대표님을 마주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심나연 씨 생일 파티에서 이렇게 만나네요.”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한 박진성이 눈앞의 중년 남성을 쳐다보았다. 흐릿한 기억으로는 동진 안씨 가문의 사람이었다.“파티를 성대하게 준비한다고 해서 초대장을 받은 김에 구경하러 왔어요.”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안태용이 낯을 가리며 서 있는 여자를 부르더니 박진성에게 소개했다.“여긴 우리 작은딸 안솔이에요. 솔아. 대표님께 인사드려.”쭈뼛거리며 앞으로 다가와 박진성을 힐끔 쳐다본 안솔은 또다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박 대표님... 안녕하세요.”안태용이 말했다.“얘가 평소엔 이런 성격이 아닌데 박 대표님만 보면 쑥스러워서 말도 못하더라고요. 박 대표님께서 18살 때 솔이를 구해준 적이 있으시다면서요.”“구해줘요?”박진성이 옅게 미간을 찌푸렸다.“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네요. 까맣게 잊은 걸 보면 별것도 아닌 일이었을
“마음에 안 들 리가 없잖아요.”심나연은 예상치 못한 선물에 당황한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심나연의 생일 파티였지만 이곳에서 그녀는 투명인과도 다를 바가 없었다. 심나연의 취향까지 생각해 선물을 골라준 민여진에 심나연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여진 씨는 예쁘시니까 안목도 좋으실 것 같아요. 오히려 선물까지 챙겨주셔서 제가 영광이죠.”민여진이 심나연을 따라 미소 지었다.업무적인 얘기를 주고받는 시간이 이어지자 민여진은 조금의 존재감도 드러내지 않은 채 그저 박진성의 옆에서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박진성과 협업하려는 의지가 강했던 진시호는 그런 생각을 자주 드러냈고 박진성은 그럴 때마다 깔끔하게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자 진시호가 진시우의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제 동생은 아직도 철이 없는 것 같아요. 아이처럼 유치하게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박 대표님과 연을 끊고 뒷담화까지 하다니...”그 말에 박진성은 짜증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저와 진시우는 애초부터 친구를 하기엔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어요. 하지만 이제와서 더 할 얘기도 없으니 차라리 연락을 끊는 편이 더 낫죠.”“그러니까요.”박진성의 눈치를 살피던 진시호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대표님께서 저와 시우를 같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사실 박 대표님을 굉장히 존경하는 사람 중 한 명이거든요.”술을 한 모금 마신 박진성이 대답했다.“그럴 리가요. 진시호 씨가 어떤 분이신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능력도 좋으시잖아요. 아니면 어떻게 진씨 가문을 이 자리까지 이끌어왔을 수 있겠어요.”진시호가 일부러 겸손한 척 대답했다.“과찬이세요. 능력으로 따지면 전 대표님 발끝도 못 따라가죠.”이때, 심나연이 다가와 또 다른 손님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진시호가 얼른 박진성에게 말했다.“여진 씨와 마음껏 파티를 즐기세요. 저는 손님이 오셔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나중에 시간 될 때 다시 얘기 나누시죠.”“네. 그러시죠.”진시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기자가 사진을 찍으며 다급히 질문을 던졌다.“박진성 씨, 옆에 계신 여자분은 누구시죠? 처음 보는 분이신 것 같은데요.”“문민서 씨인가요?”“문민서 씨를 본 적 있는데 저렇게 예쁘지 않았어. 게다가 분위기도 완전히 달랐다고. 문민서 씨일 리가 없어.”“그럼 새 여자친구겠네요? 하지만 이번 여자친구분 미모가 엄청난 것 같아요. 연예인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아요. 하긴, 그러니 박진성 씨 눈에 들 수 있었겠죠. 박진성 씨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사람이잖아요.”수많은 수군거림을 뒤로 한 채 박진성과 민여진은 파티장으로 들어섰다.민여진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손끝마저도 빨갛게 열이 올랐다.최근 2년 사이, 민여진은 악의가 가득한 말이라면 수도 없이 들었었다. 많은 사람들은 민여진을 추녀라고 부르며 혐오 섞인 눈빛을 보냈었다. 심지어 어린아이는 민여진의 얼굴을 마주한 후 통곡을 하기도 했었다.그런 상황들이 쌓이고 쌓여 민여진은 이미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전부 잃은 상태였다.‘나도 예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저 사람들 말이 맞아.”박진성이 갑자기 차분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너 예쁜 거 맞아. 그러니까 이제 더는 고개 숙일 필요도 없고 열등감을 가질 것도 없어.”멈칫한 민여진이 저도 모르게 박진성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진성 씨도 인정한다는 뜻일까?’민여진이 여전히 박진성의 말을 곱씹고 있던 그때, 앞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진시호가 반가운 말투로 입을 열며 황급히 걸어왔다.“얼마 전 초대장을 보냈을 땐 못 온다고 하시더니 이렇게 찾아주셔서 깜짝 놀랐어요. 미리 말씀을 해주셨으면 제가 모시러 갔을 텐데요.”박진성은 거의 티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옅은 미소를 지었다.“처음엔 올 생각이 없었어요. 와이프가 요즘 몸이 안 좋아서 잠깐 바람 좀 쐬려고 했는데 여진이가 마침 동진에 와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왔어요.”“실례라니요. 전혀요.”박진성의 옆으로 시선을 돌린 진시호는 그제야 박진성 곁에 있는
한복은 노출 하나 없이 민여진의 몸을 꽁꽁 감출 수 있었다.파티에서 예뻐 보일 수 있는 착장도 아니었고 한복을 입기엔 민여진의 몸매가 너무 아까웠다.하지만 강경한 박진성의 태도에 스타일리스트는 어쩔 수 없이 민여진에게 한복을 입어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잠시 후, 한복을 입고 나온 민여진의 모습은 상상 그 이상으로 황홀하기만 했다.검은색 옷감이 민여진의 영롱한 자태를 완벽하게 감싸며 섹시하고 매혹적인 매력을 물씬 풍겼다. 유난히 하얗게 돋보이는 피부에 괜히 아련한 분위기가 흘러넘치기도 했다.눈부시게 아름다운 이목구비에 빨간 입술, 시스루라 은근히 보이는 속살은 유난히 시선을 사로잡았다.박진성이 괜한 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했지만 예상외의 결과물에 스타일리스트는 칭찬을 금치 못했다.“역시 대표님께서 안목이 있으시네요. 단아한 한복이지만 민여진 씨께서 입으니 오히려 드레스보다 더 화려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미간을 찌푸린 박진성은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의아한 표정을 짓던 스타일리스트가 물었다.“대표님, 또 무슨 문제라도...? 만약 스타일링이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바로 여진 씨 헤어스타일을 수정할 거예요.”“아뇨.”박진성이 속살이 드러나는 저고리를 가리키며 말했다.“여기. 뭐라도 더 입혀요.”“더 입히라고요?”스타일리스트는 삐질,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진심이세요?”‘더울 것 같은데...’박진성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스타일리스트가 고민하던 그때. 조용하기만 하던 민여진이 입을 열었다.“진성 씨. 여기서 더 껴입으면 나 너무 더워.”박진성이 그제야 미간을 찌푸리며 최대한 양보하며 말했다.“그럼 다른 거로 갈아입혀요.”스타일리스트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다른 저고리를 고르며 스타일리스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유명한 양성의 박진성이 스타일링을 포기하면서까지 파트너의 노출을 막으려 하다니.’다른 사람이었다면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파트너의 매력을 최대한 발산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박진성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