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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을 택한 남편에게, 굿바이
첫사랑을 택한 남편에게, 굿바이
Author: 길 잃은 물고기

제1화

Author: 길 잃은 물고기
“대표님, 사모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도우미의 보고를 받은 강재진은 2층 통유리창 너머로 별장 앞을 힐끗 내려다봤다.

늘씬한 몸매의 한서윤이 차에서 내려 별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한서윤이 아래층에서 올라오자 누군가 큼직한 손을 뻗어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놀라서 고개를 돌리니 강재진이었다.

강재진은 관계를 나눌 때면 말수가 거의 없었다.

한서윤은 뜨겁게 달아오른 강재진의 품에 안겨 그의 불타는 체온에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얼마 후, 뜨거웠던 열기가 차츰 가라앉았다.

한서윤은 한바탕 격정 넘쳤던 시간이 남긴 흔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잔뜩 구겨져 엉망이 된 이불을 응시하다가, 덤덤히 몸을 일으켜 피임약을 꺼내 한 알 삼켰다.

그때, 강재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 갖고 싶다며? 내가 못 갖게 하는 것도 아니잖아.”

한서윤은 약을 삼킨 뒤 입을 열었다.

“잊었어? 당신 첫사랑 임세린이 우리 아이를 발로 차서 죽였을 때… 분명히 말했잖아. 당신이 임세린을 용서하고 합의서에 도장 찍는다면, 난 두 번 다시 당신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한서윤의 눈가가 붉어졌다. 고통스러운 기억이 한꺼번에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5년 전, 한서윤은 강재진과 결혼하며 앞으로 평생 그의 보호와 사랑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임신 7개월째가 되었을 무렵, 갑자기 찾아온 임세린이 한서윤의 배를 무자비하게 걷어찼다.

그 여파로 한서윤은 유산으로 아이를 잃었다.

그러나 가장 큰 고통을 안긴 사람은 임세린이 아니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남편 강재진이었다.

강재진은 오히려 한서윤에게 넓은 마음으로 임세린을 용서하라고 요구했다.

한서윤은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내뱉었던 강재진의 그 말을 평생 잊지 못했다.

“세린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 아이는 다시 가지면 되지만, 세린이를 감옥에 보낼 수는 없어.”

‘세린이? 아주 다정하게도 부르네.’

임세린은 한서윤의 뱃속에 있던 아이를 죽인 장본인이었다.

그때, 한서윤은 사흘 내내 울다가 끝내 가슴에 맺힌 말을 쏟아냈다.

“난 평생 용서 못 해. 내 아이를 걷어차 죽인 사람을 위해 합의서에 서명할 수 없어. 난 임세린이 너무 미워.”

하지만 한서윤이 강재진 앞에서 아무리 울부짖으며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버텨도, 강재진은 끝내 한서윤을 대신해 합의서에 서명했다.

그때, 강재진의 목소리가 한서윤의 귓가에 울렸다.

“이미 다 지난 일이잖아. 아이도 하나 입양했는데, 지난 일은 왜 또 들먹여? 괜히 사서 고생하지 마.”

강재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곧이어 한서윤을 달래려는 듯 손을 뻗어 뺨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아이 낳기 싫으면 낳지 마. 네 마음대로 해.”

말을 마친 강재진은 침대에서 내려와 샤워하러 욕실로 향했다.

한서윤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이부터 살펴보려 했지만, 강재진이 막아서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한서윤은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놀이방으로 향했다. 놀이방으로 가던 길에 도우미와 마주쳤다.

“하준이는요?”

한서윤이 곧바로 물었다.

“자고 있어요.”

놀이방에 들어가 보니 강하준은 잠옷 차림이었지만 아직 잠들지 않은 듯했다.

아이는 작은 탁자 앞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고 누군가와 영상 통화를 하는 데 정신이 팔려, 방 안에 사람이 들어온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준아?”

강하준은 한서윤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급히 화면을 눌러 영상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한서윤은 다가가 강하준을 품에 안고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러자 강하준은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저리 가요! 가짜 엄마는 싫어요!”

한서윤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곧이어 이유를 알 수 없는 서글픔이 가슴 깊이 밀려들었다.

강하준이 한서윤이 낳은 아이가 아닌 건 사실이었지만, 한서윤은 줄곧 친자식처럼 키웠고 입양 사실도 단 한 번도 알려 준 적이 없었다.

집을 비운 건 고작 보름뿐인데 강하준이 갑자기 한서윤을 가짜 엄마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토록 거부하며 싫다고 말하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한서윤은 아이를 내려놓았다.

“엄마는 오랫동안 하준이를 못 봐서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하지만 아무리 달래며 설명해도 강하준은 계속 울며 떼를 썼다.

이윽고 한서윤이 놀이방을 나간 뒤에야 겨우 진정됐다.

한서윤은 이제 겨우 다섯 살인 강하준이 휴대전화에 중독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방을 나서며 기기도 함께 챙겼다.

잠시 후, 휴대전화를 살펴보니 강하준이 영상 통화를 나눈 상대는 ‘세린 이모’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계정이었다.

한서윤은 순간 숨이 턱 막혔지만, 이내 어린이집에 새로 온 선생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임세린일 가능성을 애써 부정했다.

놀이방 문을 닫자마자 무언가 떠오른 한서윤은 도우미에게 물었다.

“요즘 하준이 어린이집에 새로 오신 여자 선생님이 있나요?”

도우미는 고개를 저었다.

침실로 돌아온 한서윤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가장 싫어하고 증오하는 사람의 이름이 대체 어떻게 아이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것인지 의문만 깊어졌다.

‘세린 이모는 대체 누구지?’

한서윤은 강재진의 휴대전화를 홱 집어 들었다.

그때 알림창에 떠 있는 읽지 않은 메시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재진 오빠, 오빠와 함께 하준이 곁을 지킬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

목구멍이 바짝 조여 들었고 휴대전화를 움켜쥔 손가락이 하얗게 질렸지만, 한서윤은 애써 담담한 척 그대로 메시지를 열어보았다.

강재진과 임세린의 카톡 대화창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은 거의 매일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5년 전, 임세린은 두 사람의 아이를 걷어차 죽였다.

한서윤은 강재진이 임세린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채팅 기록 속에서 강하준을 언급할 때마다 보인 임세린의 다정한 말투였다.

마치 강하준이 임세린과 강재진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라도 되는 것만 같았다.

한서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손에 쥔 휴대전화 화면 위로 떨어졌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분노와 굴욕감, 고통이 거센 파도처럼 한꺼번에 가슴을 덮쳐 왔다.

‘5년 전 내가 아이를 잃었던 것도... 전부 임세린이 혼외자를 우리 집에 들이기 위해 강재진과 미리 입을 맞추고 꾸민 일이었다는 거야?’

당시 한서윤은 아이를 잃고 극도로 무너진 상태였기에 강하준을 마음의 버팀목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제 와 돌이켜 보니, 그저 바보처럼 이용당한 채 임세린과 강재진의 뜻대로 놀아나고 있었던 셈이었다.

카톡 대화를 증거로 남기려던 순간, 욕실에서 들려오던 물소리가 갑자기 뚝 끊겼다.

강재진이 욕실에서 나왔다.

한서윤은 이미 강재진의 휴대전화를 내려놓은 뒤였지만,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극심한 슬픔에 온몸이 경련하듯 떨려, 마치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보였다.

강재진은 눈을 내리깔고 한서윤을 바라봤다.

한서윤의 처참한 모습을 본 순간, 조금 전까지 품고 있던 욕정도 흔적 없이 식어 버렸다.

“우리 아이 기일이 언제인지 기억해?”

한서윤이 묻자, 강재진은 이번에도 냉담하게 말했다.

“감정이 너무 격해진 것 같네. 혼자 좀 진정해. 내일 얘기하자.”

말을 마친 강재진은 휴대전화와 침대 위에 놓인 잠옷을 챙겨 들고 침실을 나갔다.

결혼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강재진은 잠자리를 가질 때를 제외하면 늘 한서윤에게 냉담하고 무심했다.

언제나 거리를 둔 채 귀찮다는 듯한 태도로 일관했다.

하나뿐인 아이의 기일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다.

반면 임세린에게는 귀찮은 기색 한 번 보이지 않았다. 무엇을 물어도 빠짐없이 대답해 주었으며 언제나 너그럽고 인내심이 넘쳤다.

한서윤은 진작 이런 차별에 익숙해졌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 결혼을 이어 가고 싶지 않았다.

‘이제 이혼할 때가 온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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