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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장난 아닌데

Author: 움냠냥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2 21:58:28

“소파 진짜 오빠가 써요?”

“응.”

“말 바꾸면 바로 나갈 거예요.”

“알았어.”

“그리고 이상한 장난 치지 말고.”

“어떤 장난?”

“그걸 왜 저한테 물어요.”

“구체적으로 말해줘야 안 하지.”

“강태준.”

서아가 결국 반말로 이름을 불렀다.

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또 친해졌네.”

“아, 진짜!”

서아가 쿠션을 집어 던졌다.

태준이 가볍게 받아냈다.

그리고 그 순간 서아는 깨달았다.

오늘 처음으로.

강태준과 단둘이 있는 게—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문제는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다른 쪽으로 긴장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일단 씻어.”

태준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서아가 눈을 크게 떴다.

“뭐요?”

“왜 그렇게 놀라.”

“갑자기 씻으라니까 그렇죠.”

“잘 거라며.”

“말을 왜 그렇게 해요?”

태준의 입꼬리가 또 올라갔다.

“어떻게 했는데?”

“지금 일부러 그러죠?”

“뭘.”

“됐어요.”

서아는 가방을 들고 욕실 쪽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태준의 목소리가 따라왔다.

“수건 안에 있어.”

“알아요.”

“칫솔도.”

“알았어요.”

“잠옷 없지?”

서아가 걸음을 멈췄다.

……그렇네.

오늘은 원래 자기 객실에서 잘 예정이었으니 갈아입을 옷은 캐리어 안에 있었다.

문제는 그 캐리어 역시 카드키를 잃어버린 객실 안에 있다는 거였다.

서아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태준은 이미 그녀의 표정을 보고 웃고 있었다.

“왜.”

“……옷 좀 빌려줘요.”

“싫은데.”

“강태준.”

“또 반말.”

“그럼 그냥 나갈게.”

“알았어, 알았어.”

태준은 웃으면서 캐리어를 열었다.

“티셔츠면 돼?”

“네.”

“바지는?”

“그것도.”

“사이즈 엄청 클 텐데.”

“알아요.”

태준이 검은색 반팔 티셔츠와 회색 트레이닝 바지를 꺼내 건넸다.

서아가 받아 들고 잠깐 내려다봤다.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 옷 입는 거 신경 쓰여?”

“아니거든요.”

“그럼 왜 또 빨개져.”

“더워서 그래요.”

“에어컨 21도인데.”

서아는 대답하지 않고 욕실 문을 닫았다.

철컥.

문이 닫히자마자 서아는 세면대 앞에 양손을 짚었다.

“미쳤나 봐.”

거울 속 얼굴이 생각보다 더 빨갰다.

강태준 옷을 입는 게 뭐라고.

그냥 티셔츠고 그냥 바지다.

세상에 남자 티셔츠 빌려 입는 여자가 한둘도 아니고.

친구 오빠잖아.

몇 년이나 봤고.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서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문제는 강태준이 아니었다.

오늘따라 자기가 이상했다.

괜히 그가 가까이 오면 긴장하고.

평소 같으면 무시했을 말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저 사람이 웃으면 괜히 따라 웃고.

아까는 심지어—

내가 진짜 쟤 방까지 왜 따라왔지?

“하.”

서아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생각하지 말자.

그냥 자고 아침에 나가면 된다.

그렇게 다짐하고 샤워를 마친 뒤 태준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거울을 보는 순간 또 한숨이 나왔다.

“이걸 어떻게 입으라는 거야.”

티셔츠는 허벅지 중간까지 내려왔다.

그나마 괜찮았다.

문제는 바지였다.

허리가 너무 컸다.

끈을 끝까지 당겨도 조금만 움직이면 흘러내릴 것 같았다.

서아는 한참 씨름하다 결국 바지를 포기했다.

티셔츠가 충분히 길었으니 그냥 이것만 입고 나가도 될 것 같긴 했다.

하지만.

밖에 강태준이 있었다.

“…….”

고민 끝에 서아는 욕실 문을 살짝 열었다.

“오빠.”

“응.”

“혹시 더 작은 바지 없어요?”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보던 태준이 고개를 들었다.

“없는데.”

“진짜?”

“내가 갑자기 작아질 예정이 없어서.”

“아.”

쓸데없이 맞는 말이라 더 짜증 났다.

“왜?”

“너무 커요.”

“그냥 티셔츠만 입어.”

서아의 얼굴이 굳었다.

태준이 말을 뱉고 나서야 의미를 알아차린 듯 잠시 멈췄다.

그리고 웃었다.

“아니.”

“…….”

“그런 뜻 아니었어.”

“거짓말.”

“진짜.”

“방금 웃었잖아요.”

“네 표정이 웃겨서.”

“바지 다른 거 찾아 봐요.”

“없다니까.”

서아가 문을 닫으려 하자 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왜요.”

“내가 봐 줄게.”

“뭘 봐 줘요!”

“바지를.”

“됐거든요!”

문이 거의 닫히려는 순간 태준이 웃으며 말했다.

“서아야.”

“왜요.”

“나 너 잡아먹는 사람 아니야.”

서아가 욕실 문틈으로 그를 째려봤다.

“그 말 하는 사람이 제일 수상해요.”

“그럼 나 눈 감고 있을까?”

“…….”

“진짜로.”

태준은 양손으로 눈을 가렸다.

“봐. 안 보잖아.”

“손가락 벌리면 죽어요.”

“무서워라.”

“진짜 죽여요.”

“네.”

서아는 잠깐 고민하다 욕실에서 나왔다.

티셔츠는 생각보다 더 길었다.

무릎 바로 위까지 내려와서 사실상 원피스처럼 보였다.

서아는 양손으로 티셔츠 끝을 괜히 잡아내렸다.

“눈 떠도 돼요.”

태준이 손을 내렸다.

그리고.

말이 없어졌다.

서아가 눈썹을 찌푸렸다.

“뭐예요.”

“아니.”

“왜 봐요.”

“내 옷 맞나 싶어서.”

“맞잖아요.”

“좀 다르게 보이네.”

“뭐가요.”

태준은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이상했다.

평소 같으면 분명 한마디 더 했을 텐데.

서아가 괜히 의심스럽게 그를 바라봤다.

“왜 갑자기 조용해요?”

“조용히 있으라며.”

“제가 언제요?”

“이상한 장난 치지 말라며.”

“……그건 그렇지만.”

“오늘은 말 잘 들을게.”

태준이 다시 소파로 돌아갔다.

서아는 잠깐 멍하니 서 있었다.

뭐야.

왜 갑자기 저래.

차라리 놀리는 게 나았다.

이상하게 점잖아지니 더 신경 쓰였다.

서아는 침대 끝에 앉았다.

태준은 소파에 기대어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객실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서아는 괜히 휴대폰을 확인했다.

지은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미안ㅠㅠ 아직 엄마랑 있음]

[너 괜찮지??]

서아가 답장을 쓰려다가 멈췄다.

‘응, 네 오빠 방에서 자.’

이걸 그대로 보내야 하나.

몇 초 고민하다 결국 짧게 보냈다.

[응 괜찮아]

그러자 거의 바로 답장이 왔다.

[어디서 자게??]

서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태준 오빠 방]

이번에는 답장이 조금 늦었다.

5초.

10초.

그리고.

[????????????????]

서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뒤이어 메시지가 폭발했다.

[왜]

[어떻게]

[둘이????]

[잠깐]

[내가 지금 잘못 읽었나]

서아가 빠르게 답했다.

[방 넓음]

[오빠 소파]

[나 침대]

[아무 일도 없음]

지은의 답장은 더 빨랐다.

[내가 아무 일 있냐고 물었냐]

서아의 손가락이 멈췄다.

“…….”

맞네.

안 물었네.

서아가 혼자 당황하고 있는 사이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뭐 해?”

“아!”

서아가 휴대폰을 뒤집었다.

어느새 태준이 침대 옆까지 와 있었다.

“왜 그렇게 놀라.”

“언제 왔어요?”

“방금.”

“기척 좀 내요.”

“냈는데 네가 못 들었어.”

태준이 뒤집힌 휴대폰을 힐끗 바라봤다.

“지은이?”

“아니거든요.”

“맞네.”

“어떻게 알아요.”

“네가 그렇게 당황할 사람이 걔밖에 더 있어?”

서아는 휴대폰을 베개 아래로 밀어 넣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 얘기 했지?”

“안 했어요.”

“거짓말.”

“진짜.”

“그럼 보여 줘.”

“왜 보여 줘요.”

“내 얘기 아니라며.”

“사생활이거든요?”

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순순히 물러나자 오히려 서아가 의아해졌다.

“진짜 안 봐요?”

“보지 말라며.”

“…….”

“왜, 봐 줬으면 좋겠어?”

“아니요.”

“또 아쉽네.”

“뭐가 맨날 아쉬워요.”

“너.”

서아가 멈칫했다.

태준은 태연하게 물병을 집어 들었다.

“물 마실래?”

“……네.”

진짜.

사람 심장 들었다 놨다 하는 데 취미 있나.

태준이 물을 건네자 서아는 받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오빠는 안 자요?”

“좀 이따가.”

“내일 결혼식인데 피곤하지 않아요?”

“내 결혼식 아니잖아.”

“그래도 가족인데.”

“넌?”

“저는 신부 친구고요.”

“그러니까.”

태준이 소파 대신 침대 반대편 끝에 앉았다.

서아가 조금 긴장했다.

거리는 꽤 있었지만 침대가 살짝 꺼지는 느낌이 이상하게 선명했다.

“지은이랑 오래 알았지?”

“대학교 1학년 때부터요.”

“그럼 거의 9년인가.”

“네.”

“나도 그만큼 본 거네.”

서아가 태준을 바라봤다.

“오빠를 9년 동안 본 건 아니죠.”

“왜.”

“맨날 본 것도 아닌데.”

“그래도 처음 본 게 그때잖아.”

“그렇긴 한데.”

“그때 너 머리 길었지.”

서아가 눈을 깜빡였다.

“그걸 기억해요?”

“응.”

“왜?”

“기억나니까.”

“저는 오빠 처음 봤을 때 기억 잘 안 나는데.”

태준이 서아를 바라봤다.

조금 상처받은 척하는 얼굴이었다.

“진짜?”

“……조금은 기억나죠.”

“뭐가.”

“금발 아니었어요.”

“맞아. 그때는 검정.”

“그리고 엄청 무서웠어요.”

“나 그때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래서 더 무서웠어요.”

태준이 헛웃음을 쳤다.

“말하면 까분다 그러고, 안 하면 무섭다 그러고.”

“적당히 하면 되잖아요.”

“네 기준 맞추기 어렵다.”

“누가 맞추래요.”

“내가 맞추고 싶은데.”

서아는 또 말문이 막혔다.

태준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냥 평소처럼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눈빛이 장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서아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

“오늘 이상해요.”

“내가?”

“네.”

“뭐가.”

“평소보다 더…….”

“더?”

서아는 잠깐 고민했다.

“사람 헷갈리게 해요.”

태준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내가?”

“네.”

“어떻게.”

“자꾸 이상한 말 하잖아요.”

“어떤 말.”

“같이 있고 싶다느니, 제가 궁금했다느니.”

태준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아는 그 침묵이 괜히 부담스러워 말을 덧붙였다.

“원래 장난 많이 치는 건 아는데 오늘은 좀 심해요.”

“장난 같아?”

서아가 눈을 들었다.

태준의 얼굴에서 웃음이 조금 사라져 있었다.

“……아니에요?”

“다 장난은 아닌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서아는 물병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그럼 뭐예요.”

“뭐가 궁금해.”

“방금 말한 거요.”

“같이 있고 싶다는 거?”

“……네.”

“진짜.”

대답이 너무 빨랐다.

서아가 당황해 입을 다물었다.

“나 너랑 같이 있고 싶었어.”

태준이 덧붙였다.

“오늘만 그런 것도 아니고.”

서아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태준은 그녀를 재촉하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졌다.

평소 같으면 어떻게든 장난으로 분위기를 풀었을 사람이 가만히 있으니 오히려 더 어색했다.

“왜요?”

결국 서아가 물었다.

“뭐가.”

“왜 저랑 같이 있고 싶었는데요.”

태준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걸 진짜 몰라?”

“알면 안 물어보죠.”

“난 네가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줄 알았는데.”

“뭘요.”

태준이 서아를 바라봤다.

한참.

평소처럼 장난스러운 표정도 아니었다.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서아의 머릿속이 잠깐 멈췄다.

“……네?”

“그렇게 놀랄 일이야?”

“아니, 잠깐만요.”

서아가 손을 들었다.

“지금 그 좋아한다는 게.”

“응.”

“그 좋아한다는 거예요?”

“좋아한다는 데 종류가 몇 개야?”

“많죠!”

서아가 버럭했다.

“동생 친구로 좋아할 수도 있고, 사람으로 좋아할 수도 있고—”

“여자로.”

서아의 말이 끊겼다.

태준은 아주 담담했다.

“너 여자로 좋아해.”

“…….”

“꽤 오래됐고.”

서아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뇌가 따라가지 못했다.

강태준이.

자기를.

여자로.

꽤 오래.

“장난이죠?”

겨우 나온 말이 그거였다.

태준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지금도 그렇게 보여?”

서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안 보였다.

그게 더 문제였다.

“근데…….”

“응.”

“왜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네가 나 피했잖아.”

“제가 언제요.”

“나만 보면 도망갔지.”

“그건 오빠가 부담스러워서—”

“그러니까.”

태준이 웃었다.

“부담스럽다는데 내가 뭘 해.”

서아는 입을 다물었다.

생각보다 너무 정상적인 대답이었다.

이 사람이라면 ‘그래도 계속 들이댔지’ 같은 소리를 할 줄 알았는데.

“그래서 그냥 있었어.”

태준이 말했다.

“근데 오늘은 네가 안 도망가잖아.”

서아의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저 도망 안 간 적 많거든요.”

“오늘처럼 내 방까지 들어온 적은 없지.”

“그건 카드키 때문에—”

“알아.”

태준이 웃었다.

“그거 때문에 고마워하고 있어.”

“뭐가 고마워요.”

“핑계 생겨서.”

“…….”

이 인간은 진지하게 말하다가 꼭 한 번씩 저런다.

서아가 베개를 집었다.

“또 던진다.”

태준이 미리 말했다.

“이번엔 얼굴 맞출 거예요.”

“잘생긴 얼굴인데.”

“본인이 말하니까 진짜 재수 없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서아의 손이 멈췄다.

“제가 언제요.”

“표정이 그래.”

“아니거든요.”

“처음 볼 때부터 그랬는데.”

“…….”

설마.

태준의 눈이 웃었다.

“‘저 오빠 잘생겼다.’”

“미쳤어요?”

“‘근데 무섭다.’”

“아니거든요!”

“‘말 걸면 무서울 것 같다.’”

“지은이가 말했죠?”

“아니.”

“그럼 어떻게 알아요!”

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였어?”

“…….”

아.

또.

또 낚였다.

서아는 쿠션으로 얼굴을 가렸다.

“나갈래.”

“밤 열한 시 넘었는데?”

“로비에서 잘 거예요.”

“삐졌어?”

“안 삐졌어요.”

“근데 왜 얼굴 가려.”

“보기 싫어서요.”

“내 얼굴?”

“제 얼굴!”

태준이 한참 웃었다.

서아는 쿠션 뒤에서 이를 악물었다.

진짜 죽이고 싶다.

그런데 웃음 소리를 듣다 보니 나도 조금 웃음이 났다.

“그만 웃어요.”

“미안.”

“하나도 안 미안해 보이거든요.”

“근데 진짜 귀여워서.”

“그 말 하지 말라니까.”

“알았어.”

“…….”

“예뻐.”

서아가 쿠션을 내렸다.

“그것도 하지 마요.”

“왜.”

“그냥 하지 마요.”

“싫은데.”

“오빠.”

“응.”

“저 지금 되게 혼란스럽거든요.”

태준의 웃음이 조금 잦아들었다.

“알아.”

“몰랐던 사람이 갑자기 좋아한다고 하니까.”

“응.”

“그것도 몇 년 동안 봤던 친구 오빠가.”

“응.”

“그러니까 자꾸 장난치지 마요.”

그 말에 태준이 완전히 웃음을 거뒀다.

서아는 순간 괜히 긴장했다.

“알았어.”

“…….”

“오늘은 안 놀릴게.”

태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가 장난칠 때보다 훨씬 위험하게 들렸다.

서아가 시선을 피했다.

“저 잘래요.”

“그래.”

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 순간.

서아도 동시에 움직이다가 침대 옆에 놓여 있던 물병을 건드렸다.

“어.”

물병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서아가 급하게 손을 뻗었다.

태준도 동시에 몸을 숙였다.

툭.

두 사람의 손이 맞닿았다.

“…….”

서아가 고개를 들었다.

너무 가까웠다.

정말.

너무.

조금만 움직이면 닿을 정도로.

아까 엘리베이터에서보다도 가까웠다.

태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서아 역시 움직이지 못했다.

시선이 맞았다.

평소라면 태준이 웃었을 것이다.

뭐라고 한마디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서아가 먼저 숨을 삼켰다.

“오빠.”

“응.”

목소리도 가까웠다.

“……왜 안 비켜요.”

“비켜?”

그가 낮게 되물었다.

“네.”

“진짜?”

서아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왜.

왜 저걸 다시 물어.

그냥 비키면 되잖아.

“네.”

대답은 했는데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태준의 시선이 서아의 눈에서 잠깐 아래로 내려갔다.

입술.

그리고 다시 눈.

서아는 그 움직임을 봐버렸다.

순간 온몸이 굳었다.

태준이 아주 조금 가까워졌다.

서아의 손끝이 그의 재킷을 붙잡았다.

밀어내려던 건지.

붙잡은 건지.

자기도 알 수 없었다.

“서아야.”

“……왜요.”

“싫으면 말해.”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싫냐고 묻는다면—

싫지는 않았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태준이 조금 더 가까워졌다.

서아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으려다가 다시 떴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또 놀리는 거면 진짜 죽어요.”

태준이 멈췄다.

잠깐의 정적.

그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장난스러운 웃음이 아니었다.

“서아야.”

“왜요.”

태준의 시선이 깊어졌다.

“나 지금 장난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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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의 결혼식이 시작되고 나서야 서아는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적어도 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태준도 자기 옆에 붙어 있을 수 없을 테니까.그렇게 생각했다.딱 십 분 동안.“여기 자리 비었네.”익숙한 목소리에 서아가 고개를 들었다.태준이 너무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았다.“왜 여기 앉아요?”“자리가 비어 있으니까.”“가족석 따로 있잖아요.”“사진 찍고 왔어.”“그럼 다른 데 앉으세요.”“싫어.”서아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오빠 때문에 지은이가 이상하게 보잖아요.”“뭘.”“우리요.”태준이 고개를 돌렸다.“우리?”또 저 말투.서아가 바로 정정했다.“저랑 오빠요.”“그게 우리지.”“아, 진짜.”태준이 웃었다.“목소리 낮춰. 결혼식이야.”“누구 때문에 이러는데요.”“나?”“네.”태준은 억울하다는 듯 눈썹을 올렸다.“난 얌전히 앉아 있는데.”말은 맞았다.문제는 그 얌전히 앉아 있는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팔이 조금만 움직여도 닿았다.서아가 슬쩍 의자를 옆으로 밀었다.태준도 따라 밀었다.서아가 다시 움직였다.태준도 다시.세 번째쯤 되자 서아가 이를 악물었다.“왜 따라와요?”“자리 좁아.”“아까는 안 좁았거든요.”“지금 좁아졌어.”“누가 좁게 만들었는데요.”태준은 대답 대신 웃었다.서아는 그냥 포기하고 앞을 봤다.그때 신랑과 지은이 서로 반지를 끼워주는 순간이 왔다.주변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서아도 무심코 미소를 지었다.“예쁘네.”옆에서 태준이 말했다.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게요.”“너 말이야.”서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태준은 앞만 보고 있었다.“……뭐라고요?”“식 예쁘다고.”“방금 저라고 했잖아요.”“잘못 들었겠지.”입꼬리는 이미 웃고 있었다.서아가 그의 팔을 꼬집었다.“아.”“조용히 하세요. 결혼식이잖아요.”태준이 웃음을 참느라 고개를 숙였다.정말 초등학생도 이것보다는 덜 유치할 것 같았다.식이 끝나자마자 단체 사진 촬영이 시작됐다.“신

  • 친구의 오빠와 실수했다   Chapter 9. 왜 자꾸 붙어요

    “안 같이 왔어.”“같이 왔는데.”두 사람의 대답이 동시에 튀어나왔다.서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태준은 아주 평온한 얼굴이었다.오히려 눈까지 마주치며 웃고 있었다.미쳤나.지은이 둘을 번갈아 바라봤다.“뭐야?”“뭐가.”태준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서아가 급하게 끼어들었다.“복도에서 만난 거야.”“아까는 안 같이 왔다며.”“그러니까… 같이 온 건 아니고, 오는 길에 만났다고.”“그게 같이 온 거 아냐?”“강지은.”“왜.”“오늘 결혼이나 신경 써.”지은이 눈을 가늘게 떴다.“수상한데.”서아의 심장이 철렁했다.반대로 태준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뭐가 수상해.”“둘이.”“우리?”태준이 굳이 ‘우리’라는 단어를 강조했다.서아가 바로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쳤다.“아.”“조용히 좀 하세요.”작게 말했는데 지은이 그걸 놓칠 리 없었다.“뭐야. 방금 둘이 뭐 했어?”“아무것도!”이번에도 서아의 대답이 너무 빨랐다.태준이 고개를 숙이며 웃음을 참았다.서아가 이를 악물었다.지금 상황이 혼자 재미있지?“됐고.”지은이 손을 내저었다.“서아야, 나 귀걸이 좀 봐줘.”“응.”서아는 거의 도망치듯 지은 쪽으로 갔다.이제 살았다.그렇게 생각한 지 정확히 삼 분 뒤.“서아야.”등 뒤에서 태준의 목소리가 들렸다.서아는 못 들은 척했다.“한서아.”계속 무시했다.“서아 씨.”결국 서아가 홱 돌아봤다.“왜요.”태준이 만족스럽게 웃었다.“이제 보네.”“바쁘거든요.”“커피.”그의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들려 있었다.서아가 멈칫했다.“제 거예요?”“응.”“왜요?”“왜긴. 아까부터 정신없어 보이니까.”“저 커피 안 마셔도 돼요.”“그럼 내가 먹지 뭐.”태준이 바로 빨대를 입에 가져갔다.서아가 반사적으로 컵을 빼앗았다.“제 거라면서요.”태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안 마신다며.”“갑자기 마시고 싶어졌어요.”“그래.”“왜 웃어요?”“그냥.”서아는 괜히 컵을 세게 쥐었다.

  • 친구의 오빠와 실수했다   Chapter 8. 모르는 척은 나만

    서아는 천장을 보며 한참을 누워 있었다.지은이 얼굴을 어떻게 볼지, 이 일을 어떻게 넘길지.결론은 하나였다.없던 일로 하면 된다.어젯밤은 분위기에 휩쓸린 사고였고, 아침이 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면 된다.서아는 최대한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옆에서 태준이 자고 있었다.평소처럼 입만 열면 사람 약 올리던 얼굴이 잠들어 있으니 의외로 얌전했다.서아는 잠깐 그 얼굴을 보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뭘 보고 있어.’급하게 시선을 거두고 바닥에 떨어진 옷을 챙겼다.지금 나가면 된다.씻고, 옷 갈아입고, 지은에게 가면 끝.서아가 침대에서 발을 내리는 순간이었다.“어디 가.”뒤에서 잠긴 목소리가 들렸다.서아의 등이 굳었다.“……깨셨어요?”“응. 누가 도망가려고 해서.”태준은 베개에 얼굴을 반쯤 묻은 채 웃고 있었다.서아는 아무렇지 않은 척 옷을 정리했다.“도망가는 거 아니거든요. 제 방 가는 거예요.”“카드키도 없으면서?”“지은이한테 받을 거예요.”“나 두고?”“왜 제가 오빠를 데리고 가요?”태준이 몸을 일으켰다.“어제는 잘 데리고 있더니.”“오빠.”“응.”“아침부터 진짜 그러지 마세요.”태준의 웃음이 더 짙어졌다.“뭘 했다고.”서아는 대답 대신 가방을 집었다.“그리고 어제 일은 그냥 잊어주세요.”태준의 표정이 아주 잠깐 멈췄다.“왜.”“그냥요.”“그냥은 이유가 아닌데.”“저한텐 이유예요.”“난 싫은데.”너무 태연한 대답이었다.서아가 고개를 돌렸다.“뭐가 싫어요?”“잊는 거.”“오빠.”“응.”“어제 일 때문에 갑자기 이상하게 굴지 마세요.”태준이 침대에서 내려왔다.서아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그걸 본 태준이 피식 웃었다.“이상하게 구는 건 지금 너 같은데.”“제가 뭐가요.”“눈도 안 마주치고, 슬금슬금 도망가고.”“원래도 오빠 피했거든요.”“그러네.”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평소랑 똑같네.”“그러니까 그대로 하자고요.”“좋아.”너무 쉽게 받아들여서 서아가

  • 친구의 오빠와 실수했다   Chapter 7. 돌이킬 수 없는 밤

    “……네.”서아가 겨우 대답했다.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다.태준이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빼내며 속옷을 아래로 내렸다. 서아는 다리에 힘을 줬다가 이내 다시 힘을 풀었다. 태준이 자신의 바지와 속옷까지 벗고 몸을 더 가까이 붙였다. 뜨거운 것이 허벅지 안쪽에 닿자 서아는 숨을 들이켰다.“읏…….”태준이 천천히 밀어 넣었다. 서아는 그의 어깨를 세게 움켜쥐며 소리를 참지 못했다.“하아…… 으응.”처음 느껴 보는 감각에 서아는 눈을 질끈 감고 숨을 고르려 했다. 태준이 잠깐 멈춰 그녀의 호흡을 기다렸다.“괜찮아?”“…… 처음이라 아파요.“”너 처음이라고?”“네...”“그걸 왜 이제 말해.”“말하면 이 분위기가 깨질 것 같아서요.”원래라면 분위기를 깼어야 하는 게 맞고, 태준의 방에서 나왔어야 하는 게 맞다. 근데 처음 겪어 보는 분위기에 취해서인지, 태준이 본인을 좋아하고 있다란 말에 머리가 고장난 건지, 태준을 밀어내긴 커녕 더 이어나가고 싶었다.서아의 대답에 태준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처음이니까 아픈 건 아프다 말해야 돼.“아까와는 다르게 단호한 어투로 이야기하는 태준에 서아는 흠칫 놀랐지만, 놀랄 겨를도 없이 태준이 천천히 다시 움직였다.천천히, 깊게. 서아의 허리가 들썩였다. 숨이 가빠지며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하…… 오빠…… 하아.”태준이 그녀의 목을 물며 속도를 조금 올렸다. 서아는 다리를 더 벌리고 허리를 맞췄다. 태준의 손이 가슴을 감싸 쥐고 유두를 문질렀다. 서아는 그의 등을 긁듯 잡으며 소리를 냈다.“하앙…… 으응, 하.”태준이 낮게 웃었다.“괜찮아?”“으응, 읏! 괜찮, 아요... 하아.”서아는 얼굴을 그의 어깨에 묻으려 했지만 태준이 더 깊게 들어갈 때마다 몸이 들썩여서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서아는 그저 그의 움직임과 현재 기분에 충실할 뿐이었다. 내일 일은 머릿속에서 점점 멀어졌다.

  • 친구의 오빠와 실수했다   Chapter 6. 선을 넘은 밤

    등이 침대에 닿자 서아는 태준의 어깨를 밀어냈다.“잠깐만요.”태준이 바로 상체를 들었다.“왜.”“……숨이 안 쉬어져요.”“안 무거워.”“무거운데요.”태준이 팔꿈치로 몸을 받치면서도 얼굴을 완전히 떼지는 않았다. 서아는 시선을 피하려다 실패했다.“왜 그렇게 봐요.”“그냥.”“보지 마세요.”“싫어.”태준이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입을 맞췄다. 서아는 숨을 참았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손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그의 어깨를 잡았다. 태준이 그 손을 내려다 봤다.“잡고 있네.”“……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어서요.”“편하게 잡고 있어.”태준의 어깨를 잡고 있다는 것이 의식이 되어서 그런지 서아가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살살 잡아도 돼.”“아... 죄송해요.”“미안하라고 한 말은 아니고. 긴장하고 있는 것 같길래.”서아가 머쓱해하며 손에 힘을 살짝 풀자 태준이 낮게 웃으며 다시 입을 맞췄다. 키스가 길어지자 태준의 손이 그녀의 허리로 내려갔다. 블라우스 위를 천천히 쓸었다. 손가락이 옷단을 살짝 들어 올리자 서아의 몸이 굳었다.“여기.”“…….”“안 돼?”서아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완전히 떼지는 않았고, 그냥 붙잡았다. 태준이 손을 멈췄다.“싫어?”“……아니요.”“그럼.”서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태준이 다시 옷단을 들어 올렸다. 피부가 닿았다. 서아는 숨을 들이쉬며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태준이 입을 떼며 물었다.“계속 해도 돼?”“……물어보지 마요.”“물어봐야 알지.”서아가 눈을 피했다.태준이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단추가 풀릴 때마다 서아는 시선을 천장으로 돌렸다. 태준이 웃었다.“왜 눈을 피해.”“피한 거 아니에요.”“피했잖아.”“시끄러워요.”태준이 그녀의 쇄골에 입을 내렸다. 서아의 손이 그의 티셔츠 자락을 잡았다. 위로 잡아당기자 태준이 순순히 팔을 들어 올렸다. 티셔츠가 벗겨져 침대 옆으로 떨어졌다. 피부가 맞닿자 서아는 어깨를 움츠렸다.그 모습에 태준이 바로

  • 친구의 오빠와 실수했다   Chapter 5. 분위기 탓

    “나 지금 장난 아닌데.”서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태준이 너무 가까웠다.평소 같았으면 밀어냈을 것이다.한마디 쏘아붙이고 소파로 돌아가라고 했을 것이다.그런데 지금은 이상하게 몸이 굳었다.강태준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했다는 사실도,친구의 오빠라는 것도,지금 이 순간엔 제대로 생각나지 않았다.“서아야.”“……왜요.”“싫으면 말해.”태준은 더 가까이 오지 않았다.기다렸다.서아는 그게 더 곤란했다.싫냐고 묻는다면—싫지는 않았다.그렇다고 좋다고 대답하기도 싫었다.“모르겠어요.”“그럼 안 할게.”태준이 물러나려 했다.그 순간 서아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재킷 자락을 잡았다.둘 다 동시에 멈췄다.서아는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왜 잡았지.태준이 낮게 물었다.“이건 가지 말라는 뜻?”“……아무 말 하지 마요.”“알았어.”태준은 웃지 않았다.그래서 더 긴장됐다.그가 다시 천천히 가까워졌다.입술이 닿았다.짧게.그리고 떨어졌다.서아가 숨을 들이마시는 사이 다시 입술이 겹쳤다.이번에는 조금 길었다.서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그래서 그냥 태준의 옷을 잡고 있었다.손끝에 힘만 들어갔다.태준의 손이 허리에 닿자 서아의 몸이 움찔했다.그가 바로 멈췄다.“괜찮아?”“……자꾸 묻지 마요.”“안 물으면 화낼 것 같은데.”“그것도 맞는데.”태준이 낮게 웃었다.“어렵네.”“누가 하래요.”“그럼 그만할까?”태준이 정말로 손을 떼려 했다.서아는 또 그의 옷을 붙잡았다.이번에는 조금 더 세게.태준의 눈빛이 달라졌다.“서아야.”“왜요.”“너 지금 나 되게 헷갈리게 하는 거 알아?”“저도 헷갈리니까 그렇죠.”솔직한 말이 튀어나왔다.말하고 나서야 서아는 입술을 깨물었다.태준이 한동안 그녀를 바라봤다.그리고 다시 입을 맞췄다.이번에는 서아가 생각할 틈이 없었다.허리를 감싸는 팔.가까워지는 체온.귓가를 스치는 숨.그 모든 게 너무 낯설었다.서아는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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