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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문위스퍼

作者: 신도아
last update 公開日: 2026-06-17 08:04:20

“싫어, 안 해. 귀찮아.”

J의 정식 제안을 듣기도 전에 정하는 J가 전화를 받자마자 거절 의사부터 밝혔다. 그러나 정하의 그런 반응을 예상한 건지, 전혀 당황하지 않은 J였다.

“이번에 블루도 앨범에 참여하기로 했는데?”

순간 ‘블루’라는 이름이 정하의 귓가에 꽂혔다. 볼멘소리를 하려던 기색을 감추고 잠자코 J의 말을 들었다.

“너 블루 한 번도 본 적 없다며. 심지어 너 블루가 쓴 가사라면 네가 평소에 극혐하는 아이돌 노래라도 다 찾아 듣잖아.”

‘블루’ 두 글자에 정하의 마음이 뛰기 시작했다. 귀찮기만 했던 J의 프로듀싱 제안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런 정하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 J가 먼저 승부수를 던졌다.

“싫으면 말고. 너 말고도 나랑 작업하고 싶다는 프로듀서 널렸다. 끊어~”

“잠깐, 잠깐만 형! 할게, 나 할게!”

몇 마디의 대화가 더 오가고, 만족한 J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정하는 홈 화면이 떠 있는 휴대전화를 한참이나 응시했다. 현실이 맞나 싶어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아야”

아팠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정하는 허벅지까지 꼬집었다. 역시 아팠다. 꿈이, 아니었다.

새로운 바람이 부는 느낌이었다. 마치 미니멀한 어쿠스틱 트랙 같던 일상에 처음으로 시티팝이 스며든 기분이었다.

-

작업 첫날. 애당초 약속된 시작 시간은 늦은 저녁이었다. 오후 8시 20분. 평소였다면 정해진 시간에 딱 맞춰왔을 정하가 한참이나 먼저 도착했다. 그런 그를 보며 J는 ‘역시 블루의 효과는 대단하구나’라며 감탄했다.

“블루 씨는?”

“아직 40분이나 남았다, 임마.”

블루를 기다리는 시간은 설렜고, 초조했다. 작업실 소파에 앉아있는 내내 정하는 다리를 떨기도 했고 손톱을 물어뜯기도 했다. 그런 정하를 보며 오히려 J가 더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가만히 좀 있어, 새끼야. 원래 점잖은 놈이 왜 이렇게 난리야.”

그때였다.

“안녕하세요”

“어, 왔니, 블루야!”

작업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J가 그녀를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

“어?”

“어? 플랫..님?”

정하를 ‘플랫’이라고 부르는 여자의 눈이 커졌다. 긴 파마머리에, 갈색 정장 원피스 차림이 익숙했다.

여자가 J에게 시선을 옮겼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꼭 ‘무슨 상황인지 설명하라’는 것 같았다.

“뭐야, 둘이 알아?”

J가 정하에게 물었다. 정하는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다는 듯이 그저 J와 여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피치님이 왜 여기..”

“아, 안녕하세요. 이번 작업 맡아주시기로 한 프로듀서님이신가 봐요. ‘블루’라고 합니다.”

정하보다 조금 먼저 정신을 차린 여자가 본인을 ‘블루’라고 소개하며 명함을 건넸다. 명함에는 블루라는 이름과 함께 그녀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피치님이 블루..님?”

“반가워요 프로듀서님.”

블루가 그를 보며 활짝 웃었다. 정하의 가슴 속 플레이리스트가 재생되었다.

“칵테일 사랑.. 마로니에..”

“네?”

속으로만 되뇌이던 노래 제목을 뱉어버렸다. 뜬금없는 정하의 발언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곧 웃음을 터뜨리는 블루와 J였다. 블루의 미소는 정하의 심장을 또다시 요동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

J가 정하를 알고 지낸 십여 년 동안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깔깔거리며 웃던 J가 한순간 입을 다물며 표정을 굳혔다.

“얘 뭐라냐. 인사도 했으면 회의 시작하자. 일단 오늘은 간단하게 레퍼런스 느낌으로?”

한 시간, 두 시간.. 가벼운 레퍼런스라는 말이 무색하게 진지한 회의가 이어졌다. 설렘에 찼던 정하도, 평소 장난기 넘치는 J마저도. 웃음기 없는 대화가 오고 갔다.

“형 저번 타이틀곡이 정통 발라드보단 R&B에 가까웠잖아. 그러니까 이번 앨범은 좀 그쪽으로 가는 게 어때? 그게 형 깔이랑 제일 맞기도 하고.”

“최근에 J님 예능 활동이 많아지셨잖아요. 그러면 차라리 정통 발라드 결보다 미니멀 아님 팝 발라드로 가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어요.”

“나도 그게 좋을 것 같아. 이제 정통 발라드 좀 지겹기도 하고.”

한참 회의가 진행되던 때, 블루가 들고 온 작업 노트가 J의 눈에 들어왔다. J가 기지개를 피며 물었다.

“작업노트 또 바뀌었네. 요즘도 아무데서나 아이디어 떠오르면 노트부터 펴? 아직도 전봇대 같은데에 머리 박고 다니는 거 아니지?”

무거웠던 작업실 분위기가 J의 농담에 조금 풀어졌다. 블루도, 정하도 웃었다.

정하는 블루에게서 잠시 눈을 떼지 못했다. 여전히 웃는 모습이 예뻤다. 예쁘기만 한 게 아니었다. 알 수 없는 벅참이 올라왔다. ‘리버브’에서 본 것과 다른 모습이었다.

“오늘은 이만하고, 술이나 마시러 가죠. 첫날이니까 내가 쏠게.”

“엇, 그럼 혹시 ‘블루문’ 어때요? 다들 모르시려나.. 근처이긴 한데..”

‘블루문’이란 단어에 블루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블루문 아세요? 저도 거기 좋아하는데.”

‘좋아한다’는 한마디에 괜히 정하의 볼이 빨개졌다. J는 흥미로운 듯 둘을 지켜보았다. 못 볼 꼴을 보면서도 구미가 당기는 모양이었다.

-

“어서오세요”

여전히 인자하신 사장님이 셋을 반겼다. 그의 왼쪽 가슴팍엔 여전히 ‘제이 Jay’라는 이름이 빛나고 있었다.

정하와 블루가 사장님께 고개를 살짝 숙이며 눈인사를 했다. J는 블루문의 분위기에 매료된 것처럼 입을 벌리고 주위를 훑었다.

“어, 왔어요?”

정하와 블루를 반기는 사장님의 눈빛이 평소와는 달랐다. 마치 두 사람이 올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

J가 잠시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가고, 정하와 블루가 테이블에 앉았다. 사장님이 메뉴판을 가져다주며 이야기했다.

“두 단골이 같이 오니 더 반갑네. 두 사람 서로 아는 사이였구나. 근데 왜 저번에 모르는 척 했어요?”

“네?”

사장님의 물음에 정하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한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오늘따라 많이 지친 느낌이시네요. 손님도 그렇고, 저쪽 테이블에 앉아계신 여성분도 그렇고.“

”아,“

정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사장님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LP판의 턴테이블 바늘이 돌아가고, 앰프를 통해 《짐노페디 1번》을 흘려 나왔다.

“오늘은 단골 두 분이 와주셨으니까 특별한 칵테일을 만들어 드리죠. 괜찮으실까요?”

두 사람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한 칵테일이라니 기대가 됐다.

잠시 뒤 웃으며 진열대 뒤쪽으로 들어갔던 사장님이 나왔다. 보라색 꽃이 떠다니는 푸른색 칵테일 두 잔이 나왔다.

‘나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다 미안, 나중에 진짜로 맛있는 거 쏠게. 오늘 보라씨랑 재밌게 놀다 들어가라’ 하는 문자가 왔지만 정하는 휴대전화에서 울리는 진동음 따윈 신경쓰지 않았다.

“‘문위스퍼’입니다. 조용한 감정을 깨우는 칵테일이죠. 어쩌면 조금 시끄러워질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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