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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Penulis: 곤원
“오늘 조회에서 정신이 딴 데로 가 있는 듯하던데, 무슨 심려라도 있는 것이오?”

용상에 단정히 앉아 있는 황제는 이미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뒤였다.

태연한 그의 얼굴에는 어떤 이상한 기색도 드러나지 않았다.

‘뻔뻔하기도 하지! 내 귀한 여식을 품고도 어찌 이리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굴 수 있단 말인가!’

황제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소태사였지만, 공손함을 잃지 않고 근심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폐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어린 여식이 어젯밤 영주의 본가로 돌아가고 싶다고 청하였사옵니다. 워낙 외지고 척박한 데다 도적 떼도 많은 곳이라 마음이 놓이지 않사옵니다. 그렇다고 경성에 남기자니 떠도는 소문에 아이가 상처를 입을 것이 뻔하여 걱정이옵니다.”

“그래도 영주로 보내는 편이 나을 듯하옵니다. 다만 올해 열다섯인 아이를 홀로 보내면 혼사를 돌보기 어려울 터이니, 경성에 있는 동안 미리 혼약을 정할 생각이옵니다. 아들이 호송해 영주로 데려가는 길에 아예 혼례까지 치르게 할까 하옵니다.”

“그리하면 앞으로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옵니다.”

막 상소를 집어 들려던 황제의 손이 멈추었다. 그는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소태사를 바라보았다.

“서둘러 혼사를 치르려는 것을 보니 이미 마땅한 자를 정해둔 모양이군. 허나 진심으로 아껴주지 않는 사내라면, 그 혼처가 오히려 불구덩이가 될 터인데.”

소태사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

‘참으로 뻔뻔하십니다. 폐하 때문에 제 여식이 서둘러 시집을 가는 것입니다!’

동궁보다 더 깊은 불구덩이는 없을 터였다.

“폐하의 관심에 감사드리옵니다.”

소태사가 먼저 두 손을 모아 감사를 표한 뒤, 이어서 말했다.

“신은 본적이 영주이옵니다. 영주에는 오랜 벗과 이웃들이 있사옵고, 그중에는 출중한 젊은이들도 적지 않사옵니다.”

“예전에 딸아이를 데리고 영주로 갔을 때, 몇몇 지인들을 소개해 준 적이 있사온데, 그들은 옛정 때문이든 신의 관직 때문이든, 함부로 딸아이를 대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자신의 지위와 가문의 위세를 굳게 믿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황제가 잠시 침묵하더니 한마디했다.

“그 아이는 시집가기를 원하는가?”

소태사가 웃으며 답했다.

“부모의 명이니 틀림없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다행히 효성스러워서 어른들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사옵니다.”

이내, 소태사가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무릎을 꿇고 청했다.

“폐하, 한 달간의 휴가를 청하고자 하옵니다. 직접 딸아이를 시집보내고 싶사옵니다.”

“가장 아끼는 막내딸인 만큼, 어려서부터 고생해본 적이 없어 여리고 겁도 많사옵니다. 먼 곳으로 시집가는 것이니,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옵니다.”

“제 손으로 시집보내지 않는다면, 딸아이가 필시 상심할 것이옵니다.”

소태사는 딸을 애지중지하는 아버지답게 한참 동안 말을 이어갔다.

소태사의 말을 듣던 황제의 뇌리에 품속에서 흐느끼며 두렵다고 하던 연정의 모습이 떠올랐다.

확실히 여리고 어린 소녀였다.

아무 잘못도 없는 어린 소녀가 황당한 일 때문에 대가를 치러야 하는 처지였다.

군신과 부자 사이에 균열이 생길까 염려해 억울함마저 묵묵히 삼켰다.

굳게 다잡았던 황제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식을 사랑한다면 그 앞날을 헤아리는 것도 당연한 도리지요.”

“폐하께서 친히 제 딸아이에게 혼인을 하사하는 성지를 내려주시옵소서. 마지막으로 아이의 체면을 지켜주시어, 영주에 가서도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소태사가 무릎을 꿇은 채 말했다.

여식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던 소태사의 얼굴에는 어느새 씁쓸함이 번졌다. 황제에게 조심스레 간청하는 그의 눈가에는 물기마저 어렸다.

황제는 소태사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았다.

올해 쉰셋인 소태사는 선황제와 현 황제를 모두 섬긴 노신이었다.

황제의 기억 속에서 소태사는 언제나 과감하고 결단력 있으며 거칠고 용맹한 인물이었다.

강철 같은 사내가 드러낸 부성애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황제는 자기도 모르게 일찍 세상을 떠난 자신의 생모를 떠올렸다. 창하행궁의 궁녀였던 그녀는 하룻밤의 은총으로 그를 잉태하게 되었다.

하지만 선황제는 이미 행궁을 떠난 뒤였다. 그의 생모는 발각되면 죽임을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몰래 아이를 낳아 다섯 살까지 길렀다.

‘나를 기르기 위해…’

황제는 지난날들을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가 여섯 살이 되던 해 선황제가 다시 행궁을 찾았다. 생모는 아들을 선황제 앞에 데려가 황실 족보에 올려달라고 청했다. 모자는 온갖 굴욕적인 검증을 견뎌야 했고, 생모는 끝내 아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제 목숨까지 내놓았다.

어미 없이 아들만 남긴다는 원칙에 따라 그는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입궁한 그는 황실 족보에 이름을 올리고,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던 태후의 양자가 되었다.

‘자식을 사랑한다면 그 앞날을 헤아리는 것도 당연한 도리라….’

“그만 물러가지.”

황제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무거운 마음을 가리기 위해 황제는 눈을 내리깔았다.

‘정녕 어린 소녀 혼자 이 모든 일을 감당하게 해야 하는가? 혈육의 정까지 갈라놓아야 한단 말인가?’

황제의 표정을 살핀 소태사는 이쯤에서 멈추기로 했다.

소태사는 성정이 거칠긴 하나 어리석지는 않았다. 오랜 세월 조정에 몸담아 온 만큼, 나름의 생존 원칙이 있었다.

“그럼, 제 딸아이의 혼사는 어찌하옵니까?”

소태사가 다시 한번 넌지시 말을 얹었다.

고개를 든 황제의 눈빛에 날카로움과 불쾌함이 가득했다.

황제가 미간을 찌푸리며 무어라 하기도 전에, 소태사가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그만 물러가겠사옵니다.”

소태사는 말을 마치고는 서둘러 인사를 올리고 자리를 떴다.

궁을 나선 소태사는 말 위에 앉아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황제의 속마음은 헤아리기 어려웠고, 쉽사리 그 진의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연정의 말대로 장황하게 사정을 늘어놓으며 애처롭게 혼인을 하사해 달라고 청하긴 했지만, 정말 이렇게 폐하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소태사는 큰 기대를 하지 않은 듯, 한숨을 쉬며 자리를 떴다.

한편, 태자는 도명주와 함께 입궁하여 도황후에게 문안 인사를 드렸다.

이는 새색시가 갖추어야 할 예법이었다.

“태자전하와 태자비마마를 뵈옵니다. 황후마마께서는 안에서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두 분께서 오시면 바로 안으로 모시라 특별히 당부하셨사옵니다.”

봉의궁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유상궁은 멀리서 태자와 태자비의 행차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마중 나왔다.

유상궁은 도황후가 태부 가문에서 직접 데려온 몸종이었다. 태자와 태자비 앞에서도 입지가 굳건한 만큼, 이들의 사이는 여느 신하와 주군보다 각별하고 친밀했다.

냉랭하던 태자의 얼굴도 유상궁을 발견하자 금세 누그러졌고,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번졌다.

그러고는 곁눈질로 도명주를 힐끗 훑으며 얼음장같이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

“어마마마를 걱정시키지 말거라.”

도명주는 입술을 다물고 눈을 내리깔았다.

“예, 전하.”

도명주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고, 그 얼굴에는 기쁜 기색만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은 유상궁의 안내를 받아 함께 봉의궁으로 들어갔다.

상석에 단정히 앉아 있는 도황후에게 두 사람이 함께 예를 올렸다.

“어마마마를 뵈옵니다. 부디 강녕하시기 바라옵니다.”

붉은 혼례복을 입은 두 사람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았다.

도황후가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일어나서 자리에 앉거라.”

“감사하옵니다.”

두 사람은 함께 도황후의 왼쪽에 앉았다. 태자가 상석이었다.

도황후는 두 사람의 눈 밑에 어렴풋이 비치는 거뭇한 그림자를 알아차리고 미소 지었다.

“신혼이니, 금슬이 좋은 것도 이해가 되나 건강도 잘 챙겨야 하느니라.”

두 사람은 단번에 도황후의 말속에 담긴 뜻을 알아들었다.

하지만 태자는 끝내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태자비는 억지로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소매 속에서 손수건을 찢어버릴 듯이 움켜쥐고 있었다.

“예, 황후마마의 가르침을 명심하겠사옵니다.”

도명주가 온화하고 부드럽게 웃었지만, 억누르기 힘든 원한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어제 태자와 합방조차 하지 않았다.

어젯밤 태자는 씻고 난 후 그대로 바깥채에서 잠들어버렸다. 그녀가 아무리 애원해도, 손끝 하나 대려 하지 않았다.

끈질기게 애원하는 도명주에게 태자는 지친다는 듯 한마디했다.

“정실의 자리까지 주었으니, 연정과 다른 것까지 다투려 하지 말거라.”

태자의 말에 그녀는 하마터면 화가 나서 죽을 뻔했다. 소연정과 폐하 사이의 일을 태자에게 털어놓으려다 가까스로 참아냈다.

다시 생각해도 여전히 가슴이 답답하고 쓰라렸다. 그만큼 연정에 대한 원한이 한층 더 깊어졌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독을 썼을 텐데!’

“어찌하여 김화월과 민서영을 동궁에 남겨두셨사옵니까? 아바마마께서 소자에게 연정을 측비로 맞아들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사옵니까?”

태자는 아침 내내 참았던 말을, 마침내 입 밖으로 꺼냈다.

순간 장내가 고요해졌다.

도황후는 겨우 가라앉혔던 화가 다시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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