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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Penulis: 곤원
과연, 연정의 말이 끝나자마자 황제와 황후는 같은 상념에 빠졌다.

특히나 도황후의 안색이 유난히 좋지 않았다. 태자가 신분을 아랑곳하지 않고 연정을 쫓아갈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볼썽사나운 일이었다.

도황후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소태사가 가장 아끼는 딸을 어찌 출가시키겠느냐. 태사의 본적이 영주라던데, 차라리 영주로 가는 게 어떻겠느냐.”

영주는 변방의 척박한 땅이었다. 태사 가문이 그곳에서 세력을 일으킨 것도 끊이지 않는 전란과 도적 떼 덕분이었다. 그들은 이를 발판 삼아 개국 황제를 도와 천하를 평정했다.

지금은 예전보다 안정되었다지만 여전히 척박하고 낙후된 데다, 이따금 산적까지 출몰했다. 어린 여인이 홀로 지내기에는 결코 좋은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도황후에게는 외진 곳이라는 점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연정을 태자에게서 떼어놓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사내의 마음이란 눈앞에서 멀어지면 이내 식는 법이었으니.

도황후의 제안에 연정은 겁먹은 기색으로 자기도 모르게 황제를 힐끗 바라보고는 황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의 입술은 미세하게 움직였지만, 결국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황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보아 연정과 태자 사이에서, 태자를 택한 것이었다.

설령 연정이 무고하다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태자의 감정이 제일 중요했다.

연정은 황실의 이런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처사에 극도의 혐오를 느꼈다.

“예,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연정은 억울한 기색을 애써 누르고, 순종적이며 사리를 아는 여인처럼 답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일을 아무도 모르게 덮는다면 군신과 부자 사이에는 아무런 균열도 생기지 않을 터였다. 황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최선의 결말이었다. 그 대가로 여인 하나쯤 희생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한 시진 후, 연정과 병부상서의 적녀 심경아는 각자의 부저로 돌려보내졌다.

태보의 서녀인 김화월과 공부상서의 적녀인 민서영은 여전히 동궁에 남아 있었다.

며칠 안으로 그들을 태자의 측비로 삼는다고 공표될 것이다.

“정아, 어찌 해시가 되어서야 돌아왔느냐, 태자의 대혼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

정아는 소연정의 아명이었다.

막 부저에 들어선 연정을 소태사와 소부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정말 무슨 일이 생겨 늦어진 것이라면 자칫 웃음거리가 될 수 있었기에, 두 사람은 미리 하인들을 모두 물려두었다.

“억울한 일이 있었다면 이 아비에게 말하거라. 내가 전장에서 반평생을 싸운 것도, 전부 너희를 위해서니.”

연정이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소태사의 마음은 더욱 급해졌다.

같이 갔던 여인 중 누군가가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한 것 때문에 소란이 일어나 이 밤중에 쫓겨난 것이라고 여겼다.

연정의 용모와 재주, 가문으로 볼 때 측비의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측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쫓겨나듯 돌려보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됐어요! 동궁에서 오래 있었으니, 우선 방으로 돌아가 좀 쉬게 한 후에 얘기하시지요.”

소부인이 소태사의 말을 급히 끊었다.

세 사람은 서둘러 연정이 지내는 남월루로 향했다.

내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은 소태사와 소부인은 연정의 한마디에, 손에 든 찻잔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폐하와 몸을 섞었사옵니다.”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소부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어라 외치려다가, 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애써 참았다.

소부인이 손에 든 손수건을 꽉 움켜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인의 정절과 명예가 걸린 일이다, 그런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아니 된다!”

소태사도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폐하께서는 태자를 그토록 아끼시는데, 어찌 이런 일이…”

두 사람의 시선은 일제히 연정에게 향했다.

내실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연정은 동궁에서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이야기했다. 황제를 계략에 빠뜨렸다는 부분은 숨기고, 그저 모함을 당한 것으로만 이야기했다.

분노로 가득 찼던 소태사와 소부인은 이내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을 이토록 능멸하다니!”

소태사가 탁자를 세게 내리치자 탁자 위에 뚜렷하게 깊은 손자국이 남았다.

“입궁해야겠다.”

소태사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 하자, 연정이 그를 붙잡았다.

“아버지, 폐하께서는 근래 들어 이미 저희 집안을 경계하고 계시옵니다. 아버지께서 소란을 피우시면 황실의 눈 밖에 날 것이옵니다. 두 오라버니의 벼슬길이 위태로워지고, 두 언니도 시댁에서 곤란해질 것이옵니다.”

소태사가 입궁한다는 소식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려던 소부인은 연정의 말에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소태사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자신들은 황실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 모두 알고 있었다.

“우리 가문의 공훈은 사내들이 피와 땀으로 일군 것이다. 여식까지 희생시켜 앞날을 보장받을 필요는 없다. 네가 억울하게 당한 일이니 입궁하여 폐하께 살길을 열어주시라 청하겠다. 영주는 네가 지낼 만한 곳이 못 된다.”

소태사가 주먹을 꽉 쥐고,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그래, 영주로 돌아갈 바에야, 차라리 출가하는 게 낫겠구나. 적어도 곁에 있으면 우리가 돌볼 수라도 있으니.”

소부인이 연정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지만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소부인은 이남이녀를 낳았다. 서녀는 그녀의 몸종이 첩으로 들어앉아 낳은 아이였으니, 그녀를 제외하면 온 집안이 모두 그녀의 혈육이었다.

모두가 제 배 아파 낳은 자식인 만큼, 소부인은 한 명만 선택할 수 없었다.

연정은 담담히 속눈썹을 내리깔아 감정을 감췄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더없이 고요한 얼굴이었다.

“두 분께서는 이 일을 모르는 척하십시오. 제게 다 생각이 있습니다.”

소태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그녀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연정은 어릴 적부터 여느 규수와 달리 총명하고 냉정했으며, 판단이 빠르고 결단력도 있었다. 그래서 소태사는 막내딸을 가장 아끼고 신뢰했다.

*

한편, 어서방에서 상소를 살펴보던 황제의 앞에 가면을 쓴 암위 하나가 무릎을 꿇고 조사 결과를 보고하고 있었다.

“폐하, 신이 여러 방면으로 조사해 보았사온데 오늘 밤의 일은 분명 소연정 소저와 무관하옵니다. 지난 두 달 동안 동궁에서 성실히 궁중 예법을 익혔으며, 사사로이 궁녀나 내관을 매수한 흔적도 없사옵니다. 폐하를 함정에 빠뜨릴 만한 여력도 없었사옵니다.”

“다만 흠이라 할 만한 것은… 그분께서 이따금 태자전하와 죽마고우였음을 내세우며, 태자비께 몇 차례 말대꾸를 한 적이 있었답니다.”

황제가 붓을 멈추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황제는 총애를 믿고 오만해져 자신의 분수를 알지 못하는 여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정의 출신을 고려하면 그것도 이해가 되었다. 소태사부터가 원체 거친 성정이니, 그 여식인 연정이 버릇없게 자란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태자비는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

황제의 물음에 암위가 답했다.

“태자비께서는 성품이 너그럽고 온화하시어, 말대꾸를 당하고도 화를 내지 않으셨사옵니다.”

황제의 미간이 어느 정도 풀렸다. 이것이야말로 정실의 품위였다.

“황후와 태자비를 계속 조사하거라.”

질투는 때로 사람을 광기에 빠뜨리지만, 속내를 감추는 것 또한 궁중 여인이 갖춰야 할 처세였다.

“예,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더 이상의 분부가 없자 암위가 막 물러가려 했다. 그때 황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아이가 영주로 떠날 때, 암위 한 무리를 붙여 몰래 호송하도록 하고, 영주에 도착하면 유도독에게 잘 돌보라 이르거라. 무슨 변고라도 생긴다면, 짐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암위가 얼굴을 굳히며 두 손을 모았다.

“예,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황제가 손을 내젓자, 암위는 그제야 물러갔다. 동시에 창가의 참새 몇 마리도 날개를 펼치고 날아갔다.

다음날, 조회를 마친 황제는 소태사를 어서방에 불러 정사를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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