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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작가: 곤원
“실성이라도 한 것이냐?”

도황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마음속 의문을 내뱉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어찌 저주에라도 걸린 듯 소연정에게 빠져 있단 말인가? 방탕하고 가식적인 여인의 어디가 그리 좋다는 것이냐.’

“어마마마께서 연정을 부인으로 삼게 허락해 주겠다 약조하지 않으셨다면, 저도 명주와 혼인하지 않았을 것이옵니다.”

태자가 차갑고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불길한 예감 때문에 도무지 냉정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어젯밤 그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춘화전에서 들었던 그 음란한 소리로 가득했다.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해 차마 생각할 수가 없었다.

태자의 추궁에 도황후는 화를 내고 싶었지만, 괜히 그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억지로 화를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

태자는 그녀의 친자식이 아니었다. 게다가 하필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아들이 태자였으니, 그녀가 황후라 할지라도 태자에게 함부로 할 순 없었다.

“소연정을 정실로서 대하겠다 하지 않았느냐? 좀 더 기다리거라.”

그녀의 말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법도에 따르면 태자는 측비 두 명, 양제(良娣) 세 명, 양원(良媛) 네 명, 승휘(承徽) 여섯 명과 여러 통방(通房)을 둘 수 있었다.

연정의 출신을 고려하면 측비 자리조차 그녀에겐 부족한 대우였고, 그보다 낮은 지위는 결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정실로서 대하겠다는 말은 사람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했다.

대진국 역사상 두 명의 황후를 둔 이는 개국 황제뿐이었다. 두 황후는 각각 동쪽 궁과 서쪽 궁에 머물렀다.

훗날 적통을 다투는 싸움이 너무 격렬해지자, 선대에 이르러 이 제도는 폐지되었다.

‘그 제도가 다시 부활되는 것은 아니겠지?’

눈빛이 밝아진 태자는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연정을 나의 정실로 삼는다면, 그 아이를 저버리지 않은 것과 같을 테지.’

얼굴이 창백해진 도명주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들어 도황후를 바라보았다.

도황후가 은밀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연정은 곧 떠날 몸이었고, 태자를 붙잡아두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연정이 떠나고 나면, 태자는 황제의 통제 아래 별다른 소란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태자의 원망 따위를 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대진 왕조는 어진 덕목과 효를 근본으로 천하를 다스리니, 태자도 진정으로 그녀에게 등을 돌리지는 못할 것이다.

몇 년 동안 연정을 만나지 못하면 태자의 마음도 자연히 옅어질 터였다. 그래도 미련이 남는다면 훗날 즉위한 뒤 스스로 해결할 일이었다. 그때 가서 백성의 여인을 빼앗든 신하의 부인을 빼앗든, 도황후가 관여할 바가 아니었다.

도명주는 도황후의 표정을 알아차리고 이내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연정을 정실로 대하겠다는 태자의 말은 도명주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질투심을 활활 불태우기에 충분했다.

‘조만간 기회를 봐서 소연정을 죽여야겠어.’

“감사드리옵니다.”

태자는 몸을 일으켜 도황후에게 예를 갖췄다. 실로 진심이 담긴 감사였다.

도황후는 애써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자애로운 어머니와 효성스러운 아들의 모습이었다.

*

그 뒤로 사흘 내리 황제에게 혼인 하사를 청하는 소태사의 상소가 올라왔다. 뜻을 이루기 전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기세였다.

이는 실로 대담하기 그지없는 일로, 황제를 겁박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소태사 같은 우직한 사내가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감히 황제에게 이런 짓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두 부녀의 깊은 정과 소태사의 저돌적인 성정만 더욱 분명해졌다. 황제에게 소연정은 소태사를 견제할 수 있는 중요한 연결고리였다.

“삼공주를 불러오거라. 그 아이의 학문을 시험해 볼 것이다.”

“예, 폐하.”

상덕이 허리를 굽혀 응답했다.

삼공주의 구원 요청이 담긴 서신이 연정의 책상 위에 도착했을 때, 연정도 마침 글을 쓰고 있었다.

책상 옆 바닥에는 알아볼 수 없는 부적 같은 글씨가 적힌 종이가 수없이 널려 있었고, 벼루 위에는 참새 한 마리가 짹짹거리고 있었다.

다른 이의 눈에는 그저 그녀가 심심풀이로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연정과 참새들만 알아볼 수 있는 일종의 암호문이었다.

부저 안에 수많은 참새를 길들여 둔 것도 오랜 세월 공을 들인 결과였다.

종이에는 황제의 과거와 취향, 그리고 최근 궁중에서 벌어진 중요한 일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소저, 옷을 갈아입고 입궁하시겠습니까?”

몸종 설기가 두 손으로 서신을 받쳐 올리며 물었으나, 연정은 쳐다보지도 않고 답했다.

“가지 않을 것이니, 태우거라.”

설기는 잠시 망설이다가 밖으로 나가 서신을 태워버렸다.

“왜 안 가는 거야? 그가 널 보고 싶어 하는데.”

참새가 고개를 갸웃하며 소연정을 바라보았다.

주인이 궁 안의 그 사내를 지켜보라고 한 것을 보면 분명 몹시 신경 쓰는 듯했다. 그런데 정작 그 사내가 만나고 싶어 하는데도 왜 찾아가지 않는지, 참새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연정이 고개를 들어 참새 복실이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오직 이 새들 앞에서만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폐하께서 나를 보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삼공주가 나를 보고 싶어 하는 거야.”

연정의 말에 복실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직접 봤는걸? 분명 그 사내가 삼공주에게 네게 서신을 쓰라 시켰어.”

연정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하지만 난 못 봤는걸.”

복실이는 이해할 수 없는 듯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뜻을 알아차리기 위해 애썼다.

“쉽게 얻는 것은, 대개 소중히 여기지 않는 법이지.”

“부르면 오고, 쫓으면 가는 것은 개나 하는 짓이다.”

연정은 눈을 내리깔며, 마음 깊은 곳에서 전해지는 아릿한 고통을 감추었다.

한때, 그녀도 태자를 위해 개가 되었다. 그래서 태자가 더 거리낌 없이 굴었던 것이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거야.’

“난 개가 좋아. 복실이 보고 싶어.”

복실이는 그녀의 말뜻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개라는 말만 알아듣고, 신이 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 모습에 연정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참새들은 겉보기에는 다 똑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처럼 저마다 성격이 크게 달랐다.

복실이가 좋아하는 것은 개였다. 모든 개가 복실이 눈에는 그저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귀여운 생명체였다.

신기하게도 다른 이름에는 꿈쩍도 하지 않던 녀석이 ‘복실이’라고 부를 때만 반응했다. 그래서 이름도 복실이가 되었다.

“그래, 공을 세웠으니 부저 서쪽 화원에 가 봐. 널 위해 개 두 마리를 준비했으니.”

연정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복실이는 신이 나서 날아갔고 방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그녀는 계속해서 종이 위에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한편 황제는 연정이 한참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자 삼공주에게 또다시 책을 베끼게 했다. 벌써 세 번째였다. 더는 견디지 못한 삼공주는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어서방을 빠져나갔다.

삼공주 복경은 올해 열네 살로, 이황자 진엽과 쌍둥이 남매였다.

일찍부터 조숙하고 총명한 진엽과 달리, 복경은 시원시원하고 털털한 성격이었다.

그녀는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고,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어머니 품에 안겨 계화 떡을 먹는 것이었다.

그 뒤로 다시 사흘이 지났다. 삼공주는 매일 사람을 보내 연정에게 서신을 전했지만, 연정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소태사의 혼인 하사를 청하는 상소도 멈추지 않았다.

나흘째 되던 날, 어전에서 태사 부저로 사람을 보내어, 연정에게 입궁하라는 명을 전했다. 최근 성적이 좋지 않은 삼공주와 함께 공부하라는 것이었다.

연정이 어서방에 도착했을 때,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관 한 명조차 보이지 않았다.

걸음을 멈춘 그녀는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은 없는지 주의 깊게 살폈다.

나뭇가지 위에서 복실이가 노래하듯 지저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주변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다.

끼익-

어서방의 문을 열고 들어간 그녀는 다시 문을 닫았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병풍을 돌아가 문을 등지고 서자, 앞에 곧게 서 있는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바로 황제였다.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폐하를 뵈옵니다. 폐하, 만수무강하시옵소서.”

연정은 황제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무릎을 꿇어 공손히 예를 올렸다.

마치 군주를 처음 알현하는 낯선 신하처럼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이 광경을 목격한 황제는 못마땅한 듯 말했다.

“참으로 담이 크구나. 짐이 이리 청해야만 오는 것을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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