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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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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귀차니즘

제1화

Author: 귀차니즘
“읍.”

방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취기 가득한 얼굴로 현관에서 키스를 나누었고 거친 숨소리와 야릇한 분위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아.”

남자에게 안기게 된 신예린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작고 여린 신예린이 건장한 남자에게 안겨 있는 모습은 사람들의 음심을 자극했다.

그들은 곧장 침대로 향했다. 신예린은 침대 위로 옮겨졌고 거대한 몸이 그녀를 깔아뭉갰다.

남자의 눈꼬리가 빨갰다. 지금 이 순간, 평소 절제미가 느껴졌던 그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는 것만 같았다.

이성의 끈을 놓은 모습이었다.

신예린은 손가락이 하얘질 정도로 침대 시트를 힘주어 꽉 쥐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빛났다.

흔들리는 불빛 아래, 그들의 가쁜 숨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

“예린아.”

“예린아!”

신예린은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또다시 그 꿈을 꾸게 되었다. 벌써 한 달이나 지났는데도 매일 밤 그 장면이 꿈에 나왔다.

그날은 여도준의 생일날이었다. 신예린은 들뜬 마음으로 여도준을 찾아갔는데 여도준은 그녀뿐만 아니라 같은 과의 다른 친구들도 불렀고 그중에는 예쁘기로 소문난 강효은도 있었다. 두 사람은 바짝 붙어 앉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스킨십을 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예린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반응이 궁금한 것처럼 말이다.

신예린과 여도준은 같은 과지만 반이 달랐고 과 동기들은 신예린이 여도준을 2년 가까이 좋아했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심지어 여도준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단 한 번도 그녀를 거절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 친구들의 반응을 살펴보니 이미 다들 강효은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듯했다. 오직 신예린만 바보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여도준은 강효은과 썸을 타면서 어장 관리를 했다.

호기심 가득한 친구들의 시선에 상처를 받은 신예린은 웃음거리가 되어버린 자신의 짝사랑을 이젠 끝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 기분이 좋지 않았던 신예린은 술을 많이 마셨고 화장실에 갈 때 취기에 비틀거리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한 남자의 그윽한 눈매를 보게 되었다.

남자는 여도준보다 훨씬 더 잘생겼고 더 남자다웠다.

술에 취해 무모해진 신예린은 남자의 멱살을 잡으면서 작게 숨을 내뱉었다.

“나랑 잘래요?”

그 뒤는 뻔했다. 두 사람은 함께 호텔로 향했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술에 취해 미친 짓을 저지른 신예린은 다음 날 아침 자신이 다른 남자와 나체로 침대 위에 누워있는 걸 본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헐레벌떡 호텔을 떠났다.

신예린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그 일을 얘기하지 못했고 그 남자가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 일을 줄곧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거의 매일 밤 같은 꿈을 꾸었다.

서로 얽힌 나신과 거친 숨소리, 그리고 남자의 그윽한 눈매까지...

“예린아, 어서 일어나. 왜 넋을 놓고 있어? 개강하자마자 지각하고 싶어서 그래?”

송지유의 목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신예린은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머릿속에서 지운 뒤 황급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세수를 마친 뒤 신예린은 가방을 들고 송지유와 함께 교실로 향했다.

“뭐가 그렇게 급해?”

신예린은 송지유의 발걸음을 따라가기가 벅찼다.

“오늘 해부학 수업 있는 거 잊었어?”

송지유가 말했다.

“너 요즘 진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아무것도 기억 못 하잖아.”

신예린은 그제야 학교에서 거금을 들여 아주 뛰어난 해부학 교수님을 모셔 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교수님은 세계 최고의 의대인 존 헤일리 의대를 졸업한 뒤 바로 교수가 되었는데 의대 역사상 가장 젊은 교수라고 한다.

그 교수님은 개인적인 일 때문에 제때 학교에 도착하지 못했고 학교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해부학 수업을 한 달 뒤로 미뤘다. 연휴가 끝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그들이 들어야 할 첫 수업이 바로 그 교수님의 수업이었다.

“예린아, 그거 알아? 오늘 아침에 그 교수님을 만난 애가 있대.”

송지유가 약간 신난 어투로 말했다.

“그 교수님 엄청 잘생겼대. 우리랑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사람이라고 하던데. 그것 때문에 지금 학교 완전 난리 났어. 그 교수님 수업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들 모두 후회하고 있대.”

송지유는 신예린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우리 빨리 가자. 늦으면 우리 자리가 없을지도 몰라.”

신예린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미 3학년이었고 심지어 해부학 수업은 1교시였다. 사실 일부 학생들은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룸메이트에게 대리 출석을 부탁할 때가 있었고 그 탓에 실제로 교실은 텅 비어 있어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출석 체크를 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교실 앞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로 북적이는 교실을 본 신예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소라면 절대 볼 수 없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지유는 이런 상황을 이미 예상한 듯했다.

“잘생긴 데다가 학벌도 좋으니 아이돌이 따로 없네.”

그녀는 신예린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만요. 들어갈게요. 청강하러 오신 분들은 저희 수강생들에게 자리를 좀 양보해 주시겠어요?”

어렵게 빈자리를 찾아서 앉자 송지유는 뭔가를 발견하고 질린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침부터 재수가 없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앞에 여도준과 강효은이 앉아 있었다.

일부 중요한 수업들은 같은 과 학생들이 모두 함께 큰 교실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해부학 수업에서 그들과 마주칠 줄은 몰랐다.

그들은 아주 다정한 사이 같아 보였다. 여도준이 귓속말을 하자 강효은이 수줍은 표정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신예린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한 송지유는 한숨을 쉬었다.

“네가 요즘 정신이 빠진 사람처럼 구는 것도 이해가 가. 2년 동안 짝사랑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랑 사귄다는데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지.”

그 말에 신예린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송지유를 바라보았다.

“둘이 사귄다고?”

“어. 여도준 생일날부터 사귀기 시작했대. 그 표정 뭐야? 설마 지금 안 거야?”

신예린이 대답했다.

“응. 방금 알았어.”

“그러면 그동안 정신줄을 놓고 다닌 이유가 뭐야?”

개강한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기 때문에 송지유는 신예린의 상태를 알 수밖에 없었다.

“...”

신예린은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과 잤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고, 그녀가 대꾸하지 않자 송지유는 신예린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말했다.

“그래, 알겠어. 네 말을 믿을게.”

“...”

그건 사실이었다.

“여도준이 좀 잘생긴 데다가 성적이 좋은 건 맞지만 그걸 제외하면 잘난 점 하나 없지 않아? 저런 쓰레기 같은 놈을 좋아할 필요는 없어. 여도준보다 잘생기고 공부 잘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널렸거든. 새로 온 교수님도 그렇잖아. 여도준 따위는 비교도 안 되지. 예린아, 차라리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건 어때?”

신예린은 망연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구?”

송지유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새로 온 교수님은 어때?”

송지유는 못 하는 말이 없었다.

신예린은 송지유의 이마를 찰싹 때렸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갑자기 교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왔다. 교수님 오셨어.”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교실 안이 삽시에 떠들썩해졌다. 다들 기린처럼 목을 쭉 빼고 교수를 기다렸고 신예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단순히 그 교수가 얼마나 잘생겼는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정말 그렇게나 비현실적으로 잘생겼을까?

아주 늘씬한 남자가 교실 문 앞에 도착했다.

그는 키가 매우 컸고 얼굴도 준수했다. 날카로운 턱선, 쭉 뻗은 콧대에 높은 코끝, 매력적인 입술... 그윽한 눈동자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듯했고 점잖으면서도 고고한 분위기는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송지유는 옆에 앉은 신예린이 헛숨을 들이키는 걸 들었다.

“예린아, 내가 말했지. 진짜 잘생겼다니까.”

신예린은 책상에 납작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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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heejeong
계속보고싶어요 너무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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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559화

    소지훈은 단상 위에서 손이 덜덜 떨렸고 옆에 있는 주시우에게 속삭였다.“나... 좀 떨려.”주시우의 시선은 내내 신예린에게 고정돼 있었다.“괜찮아. 처음이 그렇겠지. 두 번째는 쉬울 거야.”소지훈은 당장 발로 한 대 걷어차고 싶었지만, 체면 때문에 꾹 참았다.마침내 신부들이 눈앞에 도착했다.주시우는 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신예린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두 손이 맞닿는 순간, 그는 낮고 다정하게 말했다.“딱 내가 상상한 그대로야. 정말 예뻐.”숨길 수 없는 감탄이 주시우의 눈에 고였고 신예린이 입술을 꼭 다물며 웃었다.“당신도 아주 멋있어요.”신예린의 말 그대로였다. 턱시도를 입은 주시우는 기품 있고 단정했다. 또렷한 이목구비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재벌가 도련님 같았다.그때 옆에서 소지훈이 코끝이 메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여보... 울 것 같아요.”이정현은 난감한 표정으로 눈을 치켜떴다.“표정 관리, 표정 관리! 그렇지 않아도 오늘 하늘까지 흐린데 사진까지 엉망이면, 전부 삭제할 거예요.”그 말에 소지훈은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억지로 활짝 웃었다.모두 그런 소지훈을 보니 할 말을 잃었다.신예린과 주시우는 눈을 마주치고 또다시 피식 웃었다.반지 교환 순서가 되었다. 분홍색 치마를 입은 주아윤이 작은 보폭으로 깡충깡충 단상으로 뛰어왔다. 볼에는 반짝이는 블러셔가 발라져 더없이 사랑스러웠다.그러자 소지훈이 이정현의 귀에 슬쩍 속삭였다.“여보, 우리도 저렇게 예쁜 딸 하나 낳아요.”“우리 나이에 쉬울지 모르겠네요. 그냥 아윤이를 이따가 데리고 갈까?”“좋아. 오늘식 끝나면 데려가자.”‘친부모 앞에서 대놓고 아윤이를 탐내다니... 아주 잡혀가기에 딱 좋겠어!’결혼식이 절정으로 향하던 때, 하늘이 참고 있었던 듯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비가 내리네요.”그러자 스태프들이 미리 준비한 투명 우산을 하객들에게 나눠 주었다.신예린의 하얀 드레스 자락이 젖자, 주시우가 재빨리 치맛단을 들어 올리고 우산을 자기 쪽으로

  • 터닝포인트   제558화

    “잠깐, 잠깐만!”소지훈은 뭔가 번쩍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시우야, 안 돼. 같이 결혼하면 절대 안 돼.”“왜요?”신예린이 휴대폰에 얼굴을 바짝 대고 물었다.신예린의 머리에서 물이 또르르 떨어지는 걸 본 주시우가 수건을 집어 들고 조심스레 머리를 닦아 줬다.“고등학교 때부터 그랬는데 주시우가 있는 곳에는 늘 제가 투명 인간 취급을 당했거든요. 같이 결혼하면 둘 다 신랑인데, 얼굴도 나보다 훨씬 잘생겼잖아요. 스포트라이트도 전부 가져가겠죠.”소지훈의 말에 모두가 폭소했다.“웃지 마세요. 여러분들은 모를 거예요. 영원한 2등의 마음을 말이죠... 흑흑.”이정현이 일부러 거들었다.“그래요? 그럼 같이 안 할 거면... 제가 결혼식을 같이 해 줄 다른 서방님을 찾아볼까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지훈이 바로 꼬리를 내렸다.“아니에요. 같이 해요. 영원한 2등이면 어때요. 제가 정현 씨의 마음속 1등이면 됐지.”이정현이 손바닥을 내밀었다.“봐요.”“뭘요?”소지훈이 두리번거렸다.“닭살이요.”“...”두 사람의 티키타카에 신예린은 웃으며 주시우의 품으로 쏙 몸을 기댔다.“가자, 머리 말려 주게.”주시우가 다정하게 신예린을 일으켰다.그러자 신예린이 문득 떠올랐다.“지유한테도 미리 말해야겠어요. 맨날 세계를 돌아다니니 일단 스케쥴부터 비워 놓으라고요.”신예린은 송지유한테 전화를 걸었다.“예린아.”전화기 너머로 웅성거림을 뚫고 송지유의 목소리가 들렸다.“지유야, 내년 초에 결혼식 하려는데 와 줄 수 있어?”“결혼식?”깜짝 놀란 송지유가 고래고래 외쳤다.“누구랑? 너... 주 교수님이랑 이혼했어?”“...”신예린이 살짝 눈치를 보며 주시우를 힐끗 봤다. 그러자 주시우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신예린이 급히 진정시키며 상황을 설명했다.“그런 게 아니야! 주 교수님이랑 난 그냥 못 올린 결혼식을 하는 거야.”“아이고, 오래된 부부가 이렇게 로맨틱하다니 질투 나네.”송지유는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좋아. 대략 날짜만

  • 터닝포인트   제557화

    신예린은 금세 정신이 든 듯 품에서 살짝 빠져나와 눈을 깜빡였다.“방금 뭐라고 했어요?”주시우가 신예린의 손을 잡아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또렷하게 눈을 맞추더니 입을 열었다.“예린아, 나랑... 결혼식 한 번 올려 줄래?”신예린이 황급히 설명했다.“아까 제가 말한 건 그냥 오늘 본 걸 당신한테 알려주고 싶어서 그랬어요. 결혼식 하자고 보채려던 건 아니고요.”“알고 있어.”주시우가 다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신예린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잠시 말이 없더니 다시 주시우를 와락 껴안았다.“지금으로도 충분해요. 저는 결혼식에 집착 안 해요. 당신이랑 아윤이만 있으면 됐어요. 저는 지금 정말... 너무 행복해요.”말하다 보니 신예린은 목이 조금 메었고 어떻게든 지금의 행복을 더 또렷하게 전하고 싶었다. 신예린은 주시우가 자신한테 이 일 때문에 미안해할까 봐, 그런 생각부터 먼저 지우고 싶었다.“내가 하고 싶은 거야. 예린아, 이렇게 오래 살면서도 네가 웨딩드레스 입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봤거든.”주시우가 신예린의 눈가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나한테... 한 번만 보여 줄래?”신예린이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눈에 물기가 번진 채 신예린은 그저 살며시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주시우는 그런 신예린을 품에 꼭 안고 달래고 또 달랬다....“뭐라고? 결혼식을 다시 올린다고?”전화기 너머 소지훈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들려왔다.“갑자기 왜?”주시우는 아이패드로 웨딩 업체에서 보낸 제안서를 넘기며 대답했다.“우리는 아예 결혼식을 하지 못했잖아. 이제 와서 하는 게 이상한 거야?”그때 주아윤이 다가와 귀엽게 끼어들었다.“대부님, 아빠랑 엄마가 저보고 화동하래요. 그날 예쁘게 꾸밀 거예요!”샤워를 마치고 나오던 신예린이 그 말을 듣고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며 웃었다.“와, 그럼 우리 아윤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화동이겠네.”칭찬에 주아윤은 곧바로 입이 귀에 걸렸다.그때 전화기 너머에서 이정현의 목소리도 들려왔다.“누가 결혼

  • 터닝포인트   제556화

    주아윤은 의류 매장에서 턱을 괴고 앉아 있었고, 주시우는 걸려있는 옷들을 하나하나 고르고 있었다. 한참 동안 기다리던 주아윤이 결국 못 참고 물었다.“아빠, 엄마 쇼핑 언제 끝나요?”며칠 뒤 동료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가게 된 신예린은 남의 결혼식은 처음이라 옷차림이 고민됐다. 쉬는 날을 택해 주시우와 주아윤을 데리고 백화점에 왔고, 오랜만이라 그런지 지나가는 가게마다 들여다보며 신나게 구경했다.문제는 뒤에서 따라다니는 두 사람이었다.주시우는 그제야 몇 년 전 주혁재가 왜 쇼핑 동행을 싫어했는지 실감했다.‘쇼핑하는 여자의 체력은 왜 이렇게 넘치는 걸까...’주아윤의 짧은 다리는 덜덜 떨렸고 가게만 들어가면 의자부터 찾아 앉았다. 부녀 두 사람은 참 고생이 많았다.“거의 다 됐어.”주시우가 달래자 주아윤은 울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이따 장난감도 사 줄 거죠?”“그럼... 당연하지.”대답을 듣자마자 주아윤은 방전됐던 기운이 순식간에 차올랐다.‘역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사야 힘이 나는 법이네.’주아윤이 장난감 매장에 들어가면 지금의 신예린처럼 눈이 반짝일 게 뻔했다.곧 신예린이 피팅 룸에서 나왔다. 하얀 롱 원피스에 허리띠를 매니 라인이 더 가늘어 보였고, 부드러운 원단과 가벼운 치맛단이 발걸음마다 살랑거렸다. 다섯, 여섯 살짜리 아이의 엄마라기보다 대학생 같은 청순함이 보였고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번졌다.“와, 엄마 진짜 예뻐요!”주아윤이 손뼉을 척척 쳐대며 칭찬했다.주시우도 다가와 위아래로 살피며 말했다.“예쁘네. 신부보다 너무 튀지도 않고 딱 좋아.”남편과 딸의 합창에 신예린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그러면 이걸로 해요!”이어서 몇 군데 더 돌며 주시우와 주아윤의 옷까지 몇 벌 챙겼고, 세 사람은 한가득 든 쇼핑백을 먼저 차에 실었다.주시우가 쇼핑백을 차에 넣는 걸 지켜보던 신예린이 살짝 다가가 그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고마워요. 이렇게 오래 같이 걸어 줘서.”주시우가 웃었다.“괜찮아.

  • 터닝포인트   제555화

    “뭐, 뭐 하는 거예요!”놀란 이정현은 소지훈의 팔을 꽉 움켜잡았다.소지훈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정현을 안은 채 빙글빙글 돌았다.“정현 씨가 저랑 결혼한다고 그랬어요! 우리 결혼한다고요!”핑그르르 도는 사이 이정현은 살짝 어지러웠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이제 내려줘요.”“싫어요. 평생 안고 있을 건데요?”소지훈이 몇 바퀴를 더 돌다가 자신도 어지러워 비틀거렸다.두 사람은 함께 소파 쪽으로 와르르 쓰러졌다.이정현이 위로 눌리듯 소지훈 위에 포개졌고, 소지훈의 손이 본능처럼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감쌌다.눈과 눈이 맞닿는 순간, 두 사람은 모두 말이 없어졌고 서로의 숨결만 가까이서 또렷했다.소지훈은 마치 이정현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여보.”낮고 떨리는 소지훈의 목소리에는 가눌 수 없는 기쁨이 묻어났다.“아직 함부로 부르지 마세요. 저는 아직 지훈 씨의 아내 아니거든요.”이정현은 일부러 새침하게 받아쳤다.“몰라요. 제 마음속에서 정현 씨는 이미 제 아내예요.”소지훈은 못 이기는 척 뿌듯하게 중얼거렸다.“여보, 여보, 여보.”이정현의 눈꼬리가 수줍게 휘었다.“그럼 저도 불러줘요. 당신이라고...”소지훈이 들뜬 목소리로 이정현을 달래 보았다.“싫어요.”“한 번만요...”“안 불러요.”“그럼... 부를때까지 입을 막아버려야겠네요...”“안 돼... 읍...”소지훈은 먼저 자기 입술을 이정현에게 붙여 그녀의 거절을 부드럽게 삼켜 버렸다.이정현도 혀끝을 살짝 내밀어 대응했고 그 순간, 서로의 숨과 열이 뒤엉켰다.이정현의 옷은 어느새 허리께까지 밀려 올라가 있었고, 소지훈의 넓은 손바닥이 맨살을 천천히 쓸었다.입맞춤은 입술에서 턱선, 쇄골로 이어졌고, 지나간 자리마다 연한 홍조가 피어났다.소지훈의 숨결은 점점 거칠어졌다.탁!버클이 풀리는 금속음이 울리고, 이정현의 하얀 손가락이 그의 허리띠에 닿았다. 차가운 금속과 희고 매끈한 손끝이 묘하게 어울렸다.소지훈의 목젖이 꿀꺽 움직였

  • 터닝포인트   제554화

    “콜록, 콜록!”예상 못 한 한마디에 소지훈이 자기 침에 거의 체할 뻔했다. 소지훈은 기침이 멎지를 않고 얼굴까지 벌게졌다.“엄마, 첫 만남부터 그런 걸 물어보시면 어떡해요.”이정현이 못마땅하다는 듯 말하자 한미정은 아주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너희도 이제 나이가 적지는 않잖아. 서로 괜찮으면 일찍 결혼하고 일찍 애도 낳고...”“사귄 지 얼마나 됐다고요. 엄마는 너무 급하세요.”이정현이 슬쩍 받아쳤다.“그게 뭐가 어때서? 나랑 너희 아빠는 두 번째 만남에 바로 혼인신고 했단다.”“지금 시대가 다르다고요.”“요즘도 번개 결혼이 많아. 게다가 너랑 지훈 씨는 알고 지낸 지도 오래됐잖아.”지난번 전화 이후로 한미정은 은근슬쩍 소지훈에 대해 이것저것 캐묻고 있던 터였다.한미정이 곧장 소지훈에게 화살을 돌렸다.“지훈 씨는 어때? 어떻게 생각해?”그러자 이정현의 시선도 자연스레 소지훈에게로 갔다.소지훈은 드물게 표정을 단단히 굳히고 또박또박 말했다.“아주머니, 저는 정현 씨를 오래전부터 좋아했습니다. 결혼은... 오래전부터 꿈꿔 왔어요. 다만 결혼은 둘의 일이니까 정현 씨의 의견을 먼저 존중해야 합니다. 오래 알던 사이라도, 친구로는 합격이지만 남편으로서는... 좀 더 검증받아야죠.”소지훈의 말은 짧았지만 진심이 꽉 차 있었다.이정현은 잠시 소지훈을 깊게 바라봤다.그 짧은 몇 초 동안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질문만 맴돌았다.‘지금, 이 남자와 결혼하라면... 나는 허락할 수 있을까?’결혼에도 순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 이정현의 가슴에는 분명한 충동이 일었다.“그럼 해요.”옆 사람을 번쩍 놀라게 하는 한마디였다.한미정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정, 정현아... 방금 뭐라고 했어?”소지훈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더듬었다.이정현은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했다.“결혼하자고요.”소지훈의 입이 떡 하니 벌어졌다.“왜요? 싫어요?”이정현이 힐끗 짚고 넘어갔다.“그럼 방금 말 취소할게요.”“아니, 아니에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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