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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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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귀차니즘

제1화

Author: 귀차니즘
“읍.”

방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취기 가득한 얼굴로 현관에서 키스를 나누었고 거친 숨소리와 야릇한 분위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아.”

남자에게 안기게 된 신예린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작고 여린 신예린이 건장한 남자에게 안겨 있는 모습은 사람들의 음심을 자극했다.

그들은 곧장 침대로 향했다. 신예린은 침대 위로 옮겨졌고 거대한 몸이 그녀를 깔아뭉갰다.

남자의 눈꼬리가 빨갰다. 지금 이 순간, 평소 절제미가 느껴졌던 그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는 것만 같았다.

이성의 끈을 놓은 모습이었다.

신예린은 손가락이 하얘질 정도로 침대 시트를 힘주어 꽉 쥐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빛났다.

흔들리는 불빛 아래, 그들의 가쁜 숨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

“예린아.”

“예린아!”

신예린은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또다시 그 꿈을 꾸게 되었다. 벌써 한 달이나 지났는데도 매일 밤 그 장면이 꿈에 나왔다.

그날은 여도준의 생일날이었다. 신예린은 들뜬 마음으로 여도준을 찾아갔는데 여도준은 그녀뿐만 아니라 같은 과의 다른 친구들도 불렀고 그중에는 예쁘기로 소문난 강효은도 있었다. 두 사람은 바짝 붙어 앉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스킨십을 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예린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반응이 궁금한 것처럼 말이다.

신예린과 여도준은 같은 과지만 반이 달랐고 과 동기들은 신예린이 여도준을 2년 가까이 좋아했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심지어 여도준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단 한 번도 그녀를 거절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 친구들의 반응을 살펴보니 이미 다들 강효은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듯했다. 오직 신예린만 바보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여도준은 강효은과 썸을 타면서 어장 관리를 했다.

호기심 가득한 친구들의 시선에 상처를 받은 신예린은 웃음거리가 되어버린 자신의 짝사랑을 이젠 끝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 기분이 좋지 않았던 신예린은 술을 많이 마셨고 화장실에 갈 때 취기에 비틀거리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한 남자의 그윽한 눈매를 보게 되었다.

남자는 여도준보다 훨씬 더 잘생겼고 더 남자다웠다.

술에 취해 무모해진 신예린은 남자의 멱살을 잡으면서 작게 숨을 내뱉었다.

“나랑 잘래요?”

그 뒤는 뻔했다. 두 사람은 함께 호텔로 향했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술에 취해 미친 짓을 저지른 신예린은 다음 날 아침 자신이 다른 남자와 나체로 침대 위에 누워있는 걸 본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헐레벌떡 호텔을 떠났다.

신예린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그 일을 얘기하지 못했고 그 남자가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 일을 줄곧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거의 매일 밤 같은 꿈을 꾸었다.

서로 얽힌 나신과 거친 숨소리, 그리고 남자의 그윽한 눈매까지...

“예린아, 어서 일어나. 왜 넋을 놓고 있어? 개강하자마자 지각하고 싶어서 그래?”

송지유의 목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신예린은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머릿속에서 지운 뒤 황급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세수를 마친 뒤 신예린은 가방을 들고 송지유와 함께 교실로 향했다.

“뭐가 그렇게 급해?”

신예린은 송지유의 발걸음을 따라가기가 벅찼다.

“오늘 해부학 수업 있는 거 잊었어?”

송지유가 말했다.

“너 요즘 진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아무것도 기억 못 하잖아.”

신예린은 그제야 학교에서 거금을 들여 아주 뛰어난 해부학 교수님을 모셔 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교수님은 세계 최고의 의대인 존 헤일리 의대를 졸업한 뒤 바로 교수가 되었는데 의대 역사상 가장 젊은 교수라고 한다.

그 교수님은 개인적인 일 때문에 제때 학교에 도착하지 못했고 학교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해부학 수업을 한 달 뒤로 미뤘다. 연휴가 끝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그들이 들어야 할 첫 수업이 바로 그 교수님의 수업이었다.

“예린아, 그거 알아? 오늘 아침에 그 교수님을 만난 애가 있대.”

송지유가 약간 신난 어투로 말했다.

“그 교수님 엄청 잘생겼대. 우리랑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사람이라고 하던데. 그것 때문에 지금 학교 완전 난리 났어. 그 교수님 수업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들 모두 후회하고 있대.”

송지유는 신예린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우리 빨리 가자. 늦으면 우리 자리가 없을지도 몰라.”

신예린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미 3학년이었고 심지어 해부학 수업은 1교시였다. 사실 일부 학생들은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룸메이트에게 대리 출석을 부탁할 때가 있었고 그 탓에 실제로 교실은 텅 비어 있어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출석 체크를 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교실 앞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로 북적이는 교실을 본 신예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소라면 절대 볼 수 없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지유는 이런 상황을 이미 예상한 듯했다.

“잘생긴 데다가 학벌도 좋으니 아이돌이 따로 없네.”

그녀는 신예린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만요. 들어갈게요. 청강하러 오신 분들은 저희 수강생들에게 자리를 좀 양보해 주시겠어요?”

어렵게 빈자리를 찾아서 앉자 송지유는 뭔가를 발견하고 질린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침부터 재수가 없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앞에 여도준과 강효은이 앉아 있었다.

일부 중요한 수업들은 같은 과 학생들이 모두 함께 큰 교실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해부학 수업에서 그들과 마주칠 줄은 몰랐다.

그들은 아주 다정한 사이 같아 보였다. 여도준이 귓속말을 하자 강효은이 수줍은 표정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신예린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한 송지유는 한숨을 쉬었다.

“네가 요즘 정신이 빠진 사람처럼 구는 것도 이해가 가. 2년 동안 짝사랑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랑 사귄다는데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지.”

그 말에 신예린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송지유를 바라보았다.

“둘이 사귄다고?”

“어. 여도준 생일날부터 사귀기 시작했대. 그 표정 뭐야? 설마 지금 안 거야?”

신예린이 대답했다.

“응. 방금 알았어.”

“그러면 그동안 정신줄을 놓고 다닌 이유가 뭐야?”

개강한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기 때문에 송지유는 신예린의 상태를 알 수밖에 없었다.

“...”

신예린은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과 잤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고, 그녀가 대꾸하지 않자 송지유는 신예린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말했다.

“그래, 알겠어. 네 말을 믿을게.”

“...”

그건 사실이었다.

“여도준이 좀 잘생긴 데다가 성적이 좋은 건 맞지만 그걸 제외하면 잘난 점 하나 없지 않아? 저런 쓰레기 같은 놈을 좋아할 필요는 없어. 여도준보다 잘생기고 공부 잘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널렸거든. 새로 온 교수님도 그렇잖아. 여도준 따위는 비교도 안 되지. 예린아, 차라리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건 어때?”

신예린은 망연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구?”

송지유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새로 온 교수님은 어때?”

송지유는 못 하는 말이 없었다.

신예린은 송지유의 이마를 찰싹 때렸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갑자기 교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왔다. 교수님 오셨어.”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교실 안이 삽시에 떠들썩해졌다. 다들 기린처럼 목을 쭉 빼고 교수를 기다렸고 신예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단순히 그 교수가 얼마나 잘생겼는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정말 그렇게나 비현실적으로 잘생겼을까?

아주 늘씬한 남자가 교실 문 앞에 도착했다.

그는 키가 매우 컸고 얼굴도 준수했다. 날카로운 턱선, 쭉 뻗은 콧대에 높은 코끝, 매력적인 입술... 그윽한 눈동자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듯했고 점잖으면서도 고고한 분위기는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송지유는 옆에 앉은 신예린이 헛숨을 들이키는 걸 들었다.

“예린아, 내가 말했지. 진짜 잘생겼다니까.”

신예린은 책상에 납작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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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147화

    신예린의 얼굴은 순식간에 삶은 새우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주시우의 눈가에는 장난스러운 흥미가 스쳤다.“네가 정말 원한다면... 내가 네 소원을 들어줄 수도 있어.”“아, 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신예린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저... 저 먼저 샤워하러 갈게요!”토끼처럼 냅다 달아나듯 자취를 감춰 버린 신예린의 뒷모습을 보며 주시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같이 씻자고? 들어보니 그럴듯한데? 물도 아끼고 말이야.’하지만 주시우는 금세 고개를 저었다.‘아니지. 예린이가 진심으로 좋다고 해야 가능하지.’주시우는 서재에서 읽다 만 책을 들고나왔지만 정작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거실에 앉아 있어도 귓가로 들려오는 건 샤워실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뿐이었다.머릿속에는 조금 전에 품에 안겼던 신예린의 붉어진 얼굴과 희미하게 젖은 눈빛만이 자꾸만 맴돌았다.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열기가 차올랐고 주시우는 관자놀이를 눌러 가라앉히려 애썼다.욕망이라는 게 한 번 열리면 되돌리기 어려웠고 주시우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한편, 욕실 거울 앞의 신예린도 마음이 복잡하게 요동쳤다.거울에 비친 얼굴은 하얗게 빛나면서도 붉은 기운이 번졌고 눈동자마저 물빛처럼 출렁였다.손으로 볼을 감싸 보니 손끝에 닿는 열기가 그대로 전해졌고 설레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버렸다.밤이 깊어지자 신예린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바로 옆에 주시우가 누워 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지만 오늘 밤 일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며 심장이 쿵쾅거려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그때, 옆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탁상 등이 켜졌다.순간 번진 부드러운 불빛에 신예린은 반사적으로 눈을 가늘게 떴고 시야에 들어온 건 바로 주시우의 얼굴이었다.주시우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잠이 안 와?”‘역시 알고 있었구나.’신예린은 반쯤 이불 속에 얼굴을 묻고는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네.”“왜 잠이 안 오는지 말해 줄래?

  • 터닝포인트   제146화

    거실은 은은한 노란 불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신예린은 아직도 카펫 위에 힘없이 누운 채 방금 주시우와 나눈 키스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잠시 후, 부엌에서 주시우의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그는 손에 물 한 잔을 들고 신예린 앞으로 다가왔다.조명 아래 비친 신예린의 얼굴은 투명한 옥처럼 빛났고 작은 코와 촉촉하게 빛나는 입술 주변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그건 분명 주시우의 흔적이었다.평소라면 언제나 차분하고 절제된 모습이었지만 방금은 도저히 제어할 수 없었다.주시우는 신예린을 여러 번 안아 버렸고 혹시 겁을 주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뒤늦게 밀려왔다.주시우는 신예린한테 잔을 건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물 좀 마셔.”그 한마디에 신예린은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신예린은 입안이 바싹 말라 있었고 볼에 닿는 열기도 여전히 뜨겁게 남아 있었다.신예린은 잔을 받아 들어 조심스럽게 몇 모금 삼켰다.긴 속눈썹이 눈 밑에 그림자를 드리우자 주시우의 목젖이 미묘하게 흔들렸다.바로 그때 신예린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올려 주시우를 바라봤다.주시우의 붉어진 뺨과 까만 눈동자에는 묘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아까... 누가 자기 키스 못 한다고 했죠?”그 말에 주춤한 주시우는 어색하게 기침을 흘렸다.“음... 아마 본능이었던 것 같네.”‘본능이라니... 교수님이 말한 본능이 결국 날 이렇게 정신없이 흔들어 놓았잖아...’잔을 다 비우자 주시우는 신예린의 앞에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먼저 샤워할래?”신예린은 눈길을 피하며 작게 대답했다.“네... 알겠어요.”신예린은 갑작스러운 관계의 변화가 아직은 익숙하지 않았다.특히 조금 전까지 그토록 뜨겁게 입맞춤을 나눴다는 사실이 자꾸만 떠올라 얼굴이 달아올랐다.평소의 주시우는 마치 욕망과는 거리가 먼 사람처럼 절제된 수도승 같은 느낌이었는데 조금 전처럼 붉어진 눈가로 자신을 삼킬 듯 바라보던 모습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평소의 주시우랑 차이가 너무 커서 신예린의 심장은 아직도

  • 터닝포인트   제145화

    그러자 주시우가 가볍게 웃었다.“내가 왜 널 속이겠어. 원한다면 증명해 줄까?”신예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어떻게... 증명해요?”“예린이가 조금 전에 나한테 한 것처럼 말이야.”그 순간 신예린의 뇌리에는 방금 장면이 스쳤고 얼굴이 곧장 붉게 달아올랐다.주시우의 눈빛은 점점 깊어졌다.“예린이가 날 좋아해서 키스했다면 내가 예린한테 하는 키스는 똑같은 마음 때문이겠지.”주시우의 굵직한 목소리가 귀에 파고드는 순간, 신예린은 마치 몸이 둥실 뜨는 듯 어지러웠다.“증명해 줄까?”‘세상에... 누가 키스를 이런 식으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신예린은 두 손을 만지작거리며 얼굴을 붉혔다.“네.”하지만 신예린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 거의 들리지 않는 정도였다.“뭐라고?”주시우가 몸을 조금 더 가까이 기울이자 얼굴이 바로 신예린의 앞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반쯤 그림자에 잠긴 주시우의 옆모습은 몹시 점잖았고 길게 드리운 속눈썹과 날렵한 콧날, 단정한 입술 선은 숨이 막히도록 매혹적이었다.신예린은 알 수 없는 용기가 솟구쳤고 그 순간 살짝 고개를 들어 주시우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가벼운 입맞춤이 이어졌고 이건 곧장 말이 필요 없는 대답이었다.공간을 가득 메운 공기는 순식간에 달아올랐고 뜨겁고 조용한 기류가 두 사람 사이에 퍼졌다.주시우는 눈빛이 불길처럼 이글거렸고 신예린을 끌어안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은 순간, 전류가 튀듯 강렬한 불꽃이 스쳤다.“내 키스는 좀 서툴지도 몰라.”주시우의 목소리는 낮게 잠겨 있었고 신예린은 볼이 활활 달아올랐다.“만약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말해. 우리 둘 다 배우는 거에는 자신 있잖아. 잘 안되면 몇 번이고 연습하면 되지.”그 한마디에 신예린은 온몸이 전율하며 숨조차 가빠왔고 수치스러움과 설렘이 뒤섞여 머릿속이 하얘졌다.“그럼... 시작할까?”키스하면서도 먼저 허락을 구하는 주시우의 태도에 신예린은 어이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하지만 다가오는 주시우의 얼굴이 눈앞에 닿

  • 터닝포인트   제144화

    주시우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통화를 끊어 버렸다.신예린의 등줄기가 순간적으로 서늘해졌다.주시우의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단박에 알아챌 것이다.이건 사실상 두 사람의 관계를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었다.아니나다를까 전화를 끊긴 채 멍하니 휴대폰만 바라보던 여도준은 머리가 하얘졌다.‘방금... 주시우 교수님의 목소리를 들은 게 맞아?’하지만 주시우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신예린을 개의치 않고 휴대폰을 무음으로 돌려놓았다.앞으로의 시간을 어떤 방해도 허락할 수 없다는 듯 무심히 옆에 내려놓고 시선을 다시 신예린에게로 맞췄다.신예린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여전히 조금 전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멘탈이 흔들리고 있었다.“아직 대답 안 했잖아.”주시우의 손끝이 신예린의 손목을 따라 미끄러지듯 움직였고 그의 낮게 울리는 목소리는 귓가에 파문처럼 퍼져 나갔다.“왜 날 몰래 키스한 거야? 날 좋아해서 그래?”신예린의 얼굴은 금세 달아올라 불길처럼 붉게 타올랐고 도무지 주시우와 시선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 고개를 숙이고는 아주 작지만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주시우의 눈빛은 유리 조각처럼 반짝이며 빛을 품었고 그동안 마음속을 짓누르던 온갖 망설임과 걱정이 모두 사라졌다.나이가 많든 세대 차이가 있든 그 순간 이제는 아무 상관 없었다.주시우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눈앞에 있는 신예린이 자신을 똑같이 좋아한다는 사실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했다.신예린이 입술을 대던 그 찰나부터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예린이를 절대 놓쳐서는 안 돼.’목울대를 울리며 주시우는 쉬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신기하네. 나도 그래.”늘 그렇듯 담담한 어투였지만 주시우의 그 한마디는 신예린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신예린은 숨이 멎을 듯 가슴이 요동치며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라고 하셨어요?”그러자 조명 때문에 빛을 띤 주시우의 눈동자가 깊이 흔들렸다.“나도 널 좋아한다고.”신예린은 머

  • 터닝포인트   제143화

    신예린의 입술에 닿았던 부드러움이 사라지자 주시우의 눈매가 스르르 좁혀졌다.신예린은 놀란 새처럼 허겁지겁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그러나 곧 따뜻하면서도 강한 주시우의 손길이 신예린의 손목을 단단히 움켜쥐었고 주시우는 그대로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겼다.방심한 신예린은 힘없이 중심을 잃고 넓은 가슴팍으로 고스란히 안겨 버렸다.한 손으로 주시우의 가슴을 짚자 얇은 옷 너머로도 뜨겁게 전해지는 체온이 고스란히 손끝에 스며들었다.그 순간 신예린은 심장이 제멋대로 빨리 뛰었고 숨이 가빠졌다.주시우는 여전히 손목을 놓지 않은 채 그윽한 눈빛으로 신예린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순간, 신예린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어떻게 변명해야 하지? 방금 몰래 키스하려던 걸 들킨 건가... 날 내쫓으면 어쩌지...’신예린은 입술이 바짝 말랐고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교수님...”그러나 말끝을 이어 가기도 전에 주시우의 낮고 깊은 목소리가 귀가에 와닿았고 묘하게 울리는 울림은 신예린의 귓불을 간질이며 온몸을 달아오르게 했다.“날... 좋아해?”신예린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주시우의 숨결이 바로 앞에서 스쳐 오고 알 수 없는 뜨거운 기운이 휘몰아쳤다.‘좋아하냐고요? 당연하죠. 너무 좋아한다고요!’좋아하는 감정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신예린의 마음속에서 넘쳐흘렀다.주시우의 시선이 불길처럼 타오르는 가운데 신예린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입술을 열어 고백을 내뱉으려는 찰나,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순식간에 달아오른 분위기는 바로 깨져 버렸고 은근하게 고여 있던 아늑한 느낌은 산산이 흩어졌다.신예린은 당황한 표정으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 전화를 받아야 할 것 같아요.”신예린이 살짝 몸을 일으켜 휴대폰을 집으려 했으나 주시우의 손아귀는 여전히 놓아주지 않았다.주시우의 눈빛은 신예린에게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신예린은 어쩔 수 없이 몸을 기울여 손을 뻗어서 핸드폰을 확인했고 화

  • 터닝포인트   제142화

    신예린은 밥을 먹다 말고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주시우의 창백한 피부에 희미한 홍기가 번지더니 마치 유백색 옥에 빛이 스며든 듯 은은한 광택이 돌았다.신예린은 몇 번이고 주시우의 얼굴을 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조심스레 물었다.“교수님, 괜찮으세요?”주시우는 겉으로는 침착했지만 조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도저히 믿기지 않았기에 신예린은 무심코 손을 뻗어 주시우의 얼굴을 만지려 했다.그러나 닿기도 전에 주시우의 뜨거운 손바닥이 곧장 신예린의 손목을 붙잡았다.신예린은 손끝이 덜컥 떨렸고 주시우 역시 버티기 힘들었다.신예린의 손목은 여름날 얼음 조각처럼 차가워 주시우의 뜨거운 손바닥을 식혀 주었고 그래서 더 놓기가 아쉬웠다. 그러나 혹시라도 지난번처럼 이성을 잃을지 두려워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주시우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낮게 말했다.“아마 잠시 후에 설거지를 좀 부탁해야 할 것 같아. 머리가 좀 어지러워.”“머리가 어지러워요?”신예린의 눈빛이 잔뜩 긴장으로 흔들렸다.“그냥... 취한 것 같아.”‘단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신예린은 믿기지 않아 눈을 크게 떴고 주시우는 신예린의 표정을 읽고는 차분히 덧붙였다.“난 술에 굉장히 약해. 조금만 마셔도 바로 취해. 그때도... 겨우 한 모금이었어.”갑작스레 그날 밤 이야기가 언급되자 신예린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단 한 모금으로 그렇게 격렬할 수 있다니... 앞으로 교수님한테 술을 조금 더 권하면...’엉뚱한 생각이 머리에 스쳤으나 신예린은 금세 고개를 흔들며 진정을 되찾았다.‘안 돼. 그런 비겁한 방법을 어떻게 떠올릴 수가 있어.’식사를 마친 뒤, 신예린은 서둘러 설거지를 마쳤다.부엌을 정리하고 나와 보니 거실은 고요했고 소파 위에 주시우가 누워 있었다.따뜻한 불빛 아래 드리운 긴 그림자 속에서 주시우의 몸은 한 겹 붉은 기운에 싸여 있었고 붉게 물든 입술은 마치 활짝 핀 꽃처럼 눈부시게 빛났다.‘잠자는 미남이라는게... 딱 이 모습이구나.’신예린은 저도 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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