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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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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귀차니즘

제1화

Author: 귀차니즘
“읍.”

방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취기 가득한 얼굴로 현관에서 키스를 나누었고 거친 숨소리와 야릇한 분위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아.”

남자에게 안기게 된 신예린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작고 여린 신예린이 건장한 남자에게 안겨 있는 모습은 사람들의 음심을 자극했다.

그들은 곧장 침대로 향했다. 신예린은 침대 위로 옮겨졌고 거대한 몸이 그녀를 깔아뭉갰다.

남자의 눈꼬리가 빨갰다. 지금 이 순간, 평소 절제미가 느껴졌던 그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는 것만 같았다.

이성의 끈을 놓은 모습이었다.

신예린은 손가락이 하얘질 정도로 침대 시트를 힘주어 꽉 쥐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빛났다.

흔들리는 불빛 아래, 그들의 가쁜 숨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

“예린아.”

“예린아!”

신예린은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또다시 그 꿈을 꾸게 되었다. 벌써 한 달이나 지났는데도 매일 밤 그 장면이 꿈에 나왔다.

그날은 여도준의 생일날이었다. 신예린은 들뜬 마음으로 여도준을 찾아갔는데 여도준은 그녀뿐만 아니라 같은 과의 다른 친구들도 불렀고 그중에는 예쁘기로 소문난 강효은도 있었다. 두 사람은 바짝 붙어 앉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스킨십을 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예린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반응이 궁금한 것처럼 말이다.

신예린과 여도준은 같은 과지만 반이 달랐고 과 동기들은 신예린이 여도준을 2년 가까이 좋아했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심지어 여도준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단 한 번도 그녀를 거절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 친구들의 반응을 살펴보니 이미 다들 강효은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듯했다. 오직 신예린만 바보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여도준은 강효은과 썸을 타면서 어장 관리를 했다.

호기심 가득한 친구들의 시선에 상처를 받은 신예린은 웃음거리가 되어버린 자신의 짝사랑을 이젠 끝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 기분이 좋지 않았던 신예린은 술을 많이 마셨고 화장실에 갈 때 취기에 비틀거리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한 남자의 그윽한 눈매를 보게 되었다.

남자는 여도준보다 훨씬 더 잘생겼고 더 남자다웠다.

술에 취해 무모해진 신예린은 남자의 멱살을 잡으면서 작게 숨을 내뱉었다.

“나랑 잘래요?”

그 뒤는 뻔했다. 두 사람은 함께 호텔로 향했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술에 취해 미친 짓을 저지른 신예린은 다음 날 아침 자신이 다른 남자와 나체로 침대 위에 누워있는 걸 본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헐레벌떡 호텔을 떠났다.

신예린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그 일을 얘기하지 못했고 그 남자가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 일을 줄곧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거의 매일 밤 같은 꿈을 꾸었다.

서로 얽힌 나신과 거친 숨소리, 그리고 남자의 그윽한 눈매까지...

“예린아, 어서 일어나. 왜 넋을 놓고 있어? 개강하자마자 지각하고 싶어서 그래?”

송지유의 목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신예린은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머릿속에서 지운 뒤 황급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세수를 마친 뒤 신예린은 가방을 들고 송지유와 함께 교실로 향했다.

“뭐가 그렇게 급해?”

신예린은 송지유의 발걸음을 따라가기가 벅찼다.

“오늘 해부학 수업 있는 거 잊었어?”

송지유가 말했다.

“너 요즘 진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아무것도 기억 못 하잖아.”

신예린은 그제야 학교에서 거금을 들여 아주 뛰어난 해부학 교수님을 모셔 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교수님은 세계 최고의 의대인 존 헤일리 의대를 졸업한 뒤 바로 교수가 되었는데 의대 역사상 가장 젊은 교수라고 한다.

그 교수님은 개인적인 일 때문에 제때 학교에 도착하지 못했고 학교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해부학 수업을 한 달 뒤로 미뤘다. 연휴가 끝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그들이 들어야 할 첫 수업이 바로 그 교수님의 수업이었다.

“예린아, 그거 알아? 오늘 아침에 그 교수님을 만난 애가 있대.”

송지유가 약간 신난 어투로 말했다.

“그 교수님 엄청 잘생겼대. 우리랑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사람이라고 하던데. 그것 때문에 지금 학교 완전 난리 났어. 그 교수님 수업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들 모두 후회하고 있대.”

송지유는 신예린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우리 빨리 가자. 늦으면 우리 자리가 없을지도 몰라.”

신예린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미 3학년이었고 심지어 해부학 수업은 1교시였다. 사실 일부 학생들은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룸메이트에게 대리 출석을 부탁할 때가 있었고 그 탓에 실제로 교실은 텅 비어 있어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출석 체크를 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교실 앞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로 북적이는 교실을 본 신예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소라면 절대 볼 수 없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지유는 이런 상황을 이미 예상한 듯했다.

“잘생긴 데다가 학벌도 좋으니 아이돌이 따로 없네.”

그녀는 신예린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만요. 들어갈게요. 청강하러 오신 분들은 저희 수강생들에게 자리를 좀 양보해 주시겠어요?”

어렵게 빈자리를 찾아서 앉자 송지유는 뭔가를 발견하고 질린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침부터 재수가 없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앞에 여도준과 강효은이 앉아 있었다.

일부 중요한 수업들은 같은 과 학생들이 모두 함께 큰 교실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해부학 수업에서 그들과 마주칠 줄은 몰랐다.

그들은 아주 다정한 사이 같아 보였다. 여도준이 귓속말을 하자 강효은이 수줍은 표정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신예린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한 송지유는 한숨을 쉬었다.

“네가 요즘 정신이 빠진 사람처럼 구는 것도 이해가 가. 2년 동안 짝사랑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랑 사귄다는데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지.”

그 말에 신예린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송지유를 바라보았다.

“둘이 사귄다고?”

“어. 여도준 생일날부터 사귀기 시작했대. 그 표정 뭐야? 설마 지금 안 거야?”

신예린이 대답했다.

“응. 방금 알았어.”

“그러면 그동안 정신줄을 놓고 다닌 이유가 뭐야?”

개강한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기 때문에 송지유는 신예린의 상태를 알 수밖에 없었다.

“...”

신예린은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과 잤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고, 그녀가 대꾸하지 않자 송지유는 신예린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말했다.

“그래, 알겠어. 네 말을 믿을게.”

“...”

그건 사실이었다.

“여도준이 좀 잘생긴 데다가 성적이 좋은 건 맞지만 그걸 제외하면 잘난 점 하나 없지 않아? 저런 쓰레기 같은 놈을 좋아할 필요는 없어. 여도준보다 잘생기고 공부 잘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널렸거든. 새로 온 교수님도 그렇잖아. 여도준 따위는 비교도 안 되지. 예린아, 차라리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건 어때?”

신예린은 망연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구?”

송지유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새로 온 교수님은 어때?”

송지유는 못 하는 말이 없었다.

신예린은 송지유의 이마를 찰싹 때렸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갑자기 교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왔다. 교수님 오셨어.”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교실 안이 삽시에 떠들썩해졌다. 다들 기린처럼 목을 쭉 빼고 교수를 기다렸고 신예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단순히 그 교수가 얼마나 잘생겼는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정말 그렇게나 비현실적으로 잘생겼을까?

아주 늘씬한 남자가 교실 문 앞에 도착했다.

그는 키가 매우 컸고 얼굴도 준수했다. 날카로운 턱선, 쭉 뻗은 콧대에 높은 코끝, 매력적인 입술... 그윽한 눈동자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듯했고 점잖으면서도 고고한 분위기는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송지유는 옆에 앉은 신예린이 헛숨을 들이키는 걸 들었다.

“예린아, 내가 말했지. 진짜 잘생겼다니까.”

신예린은 책상에 납작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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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heejeong
계속보고싶어요 너무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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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447화

    “읍...”신예린은 반사적으로 숨을 들이켰다.주시우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신예린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다쳤어? 아까 씻을 때 확인했는데 상처 없었잖아. 다시 봐줄게.”주시우는 말하며 당연하다는 듯 손을 뻗어 신예린의 바지를 잡으려 했다.‘이런 말을 왜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하는 건데...’신예린은 얼굴이 활활 달아올라 이를 악물 듯 말했다.“저 아무렇지도 않아요! 얼른 시트나 갈아요.”주시우는 신예린의 붉어진 얼굴을 보며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천천히 일어섰다.“알았어. 지금 바로 갈아줄게.”그러다 시선이 문 쪽을 스치자,그곳에 서 있는 작은 그림자를 발견했다.“아윤아!”주시우가 놀란 목소리를 냈고 그 순간 신예린도 급히 고개를 돌렸다.잠옷 차림의 주아윤이 인형을 끌어안은 채 문 앞에 서 있었고 두 눈은 동그랗게 커져 있었다.‘끝났다... 들켰어.’신예린은 그 자리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아빠 엄마, 왜 제가 제 방에 있어요?”주아윤의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그게... 에헴...”신예린은 머리끝까지 뻣뻣해져 억지 기침을 해대며 고개를 홱 돌렸다.마치 수업 시간에 선생님 눈을 피하는 학생처럼 혹시라도 주아윤의 질문이 자신을 향할까 두려워서였다.주아윤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이번에는 아빠를 바라봤다.주시우는 잠시 눈빛을 흔들더니 곧 태연하게 설명했다.“아빠가 침대 시트를 갈아야 해서 잠깐 아윤이를 방에 데려다준 거야.”주아윤은 방 안을 둘러보았고 반쯤 갈아진 시트가 눈에 들어오자 고개를 끄덕였다.“아빠, 또 시트 더럽혔구나?”신예린은 뒷모습으로만 대응하면서 속으로 구멍이라도 있으면 당장 들어가고 싶었다.주시우는 미간 하나 찌푸리지 않고 담담히 대답했다.“응.”“아빠, 제가 도와줄게요!”주아윤은 인형을 꼭 안은 채 총총 달려왔다. 그 모습이 귀엽고 엉뚱해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괜찮아. 넌 엄마 옆에 가 있어.”주시우는 부드럽게 말했다.주아윤은 얌전히 신예린 쪽으로 가서 안겼고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 터닝포인트   제446화

    신예린은 얼굴이 화끈거려 견디지 못하고 마치 화풀이하듯 주시우의 어깨를 꾹 깨물었다.“으음...”낮게 신음을 흘린 주시우는 곧바로 웃음을 터뜨렸다.“그렇게 물어뜯는 게 좋아?”이런 때 나오는 말은 뭐든 곧장 엉뚱한 쪽으로 연결되기 마련이었다.신예린의 뺨은 금세 불길처럼 달아올랐다.주시우의 목소리는 한층 낮아져 귓가를 울렸다.“입 뗄 생각은 하지 마.”겹치는 그림자와 거칠어지는 호흡이 온몸을 데워 왔다.신예린은 주시우의 목에 매달려 스스로 손등을 물고 목구멍에서는 숨죽인 신음이 흘러나왔다.한바탕이 지나고 난 뒤, 깨끗이 씻은 신예린은 힘이 풀린 채 의자에 늘어져 앉아 주시우가 침대 시트를 갈아엎는 모습을 지켜봤다.방 안에는 아직 달콤하고도 진한 공기가 감돌았다.허리를 굽혀 시트를 팽팽히 펴는 주시우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한결 여유롭고 옆모습에는 은근한 미소까지 번져 있었다.‘이제와서 정상적인 사람 같긴 하네... 아까 짐승처럼 날뛰던 모습은 어디다 숨겼대.’신예린은 속으로 투덜댔다.“창문 좀 열어서 바람 들여요.”신예린은 게으른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 금방 할 게.”주시우가 대답했지만 신예린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불평했다.“보세요. 자기 좋을 때만 바로바로 대답하고 제가 뭐라 하면 말도 안 듣잖아요.”신예린의 새침한 말투에 주시우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신예린은 시선을 외면하며 못 본 척했다.입가에 미소를 띤 주시우는 손에 들린 시트를 내려두고 창문을 열었다.차가운 밤바람이 스며들자 방 안의 후끈한 공기가 한결 가라앉았다.주시우는 곧 신예린 앞으로 다가와 그녀를 내려다보며 웃음 섞인 눈길을 보냈다.“이제 만족해요? 우리 작은 공주님.”작은 공주님이라는 호칭에 신예린의 가슴이 간질거리듯 떨렸다.주시우의 다정한 눈빛과 겹치자 금세 시선을 피하며 뻣뻣하게 말했다.“남편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죠.”주시우는 몸을 기울여 의자 등받이에 팔을 짚고 신예린을 가두듯 내려다봤다.“뭐, 뭐

  • 터닝포인트   제44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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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444화

    밤하늘은 마치 먹물을 풀어놓은 듯 짙게 내려앉아 있었고 자동차는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차 안에서 신예린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운전대를 잡은 주시우가 옆눈으로 그녀를 흘깃 바라보았다.주아윤이 의자를 붙잡고 엄마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엄마, 뭐가 그렇게 웃겨?”그건 당연히 오늘 밤에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처음에는 단지 주시우를 불러내 이석훈에게 현실을 보여주고 스스로 물러나게 하려는 의도였을 뿐인데 뜻밖에도 상황이 훨씬 더 잘 풀렸고 신예린은 그 여운을 곱씹다 보니 차 안에서까지 웃음이 새어 나왔고 마음까지 시원하게 뚫린 듯했다.신예린은 커다란 눈망울을 반짝이는 딸을 바라보며 물었다.“아윤아, 이 원피스는 네가 고른 거야?”주아윤은 고개를 저으며 옆자리의 주시우를 가리켰다.“아니에요. 아빠가 입으래서 입었어요.”“응?” 신예린은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으며 주시우를 바라봤다.“아빠가 왜 이 옷을 입히고 싶으셨을까?”“아빠가 자기 체면이 걸린 문제라 그랬어요.”“에헴.”운전석의 주시우가 헛기침했다.신예린의 눈웃음과 마주친 순간, 주시우는 시선을 피하며 더듬거렸다.“나... 그냥 한 말이야.”신예린이 대답하기도 전에 주아윤이 잽싸게 덧붙였다.“엄마, 그런 게 아니에요. 아빠는 옷도 여러 번 갈아입었어요. 그리고 저한테 아빠 잘생겼냐고 계속 물어봤어.”“콜록, 에헴.”주시우의 기침은 점점 심해졌고 귀 끝이 붉게 달아올랐으며 그는 이를 악문 채 낮게 말했다.“아윤아, 넌 정말 입이 무겁구나.”하지만 주아윤은 그 반어법을 알 리 없었다.“아빠, 저 하나도 안 무거워요. 진짜 가볍거든요?”순진한 대답에 신예린은 결국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제가 아직 전화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고 나타났어요? 그것도 그렇게 멋지게 차려입고...”신예린은 식당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장면이 떠올라 고개를 기울였다.“혹시... 오늘 소지훈 씨가 무슨 말을 한 거예요

  • 터닝포인트   제443화

    “얼굴이 밥 먹여줄 수도 있죠. 지금처럼요. 우리 예린이가 지금 기꺼이 저를 먹여 살리잖아요.”주시우는 태연한 듯 그렇게 말했고 그 말은 오히려 당당함이 묻어났다.‘뭐야, 남자가 그렇게 자랑스럽게 빌붙는 걸 대놓고 말하다니...’이석훈은 비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곧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주... 주 교수님?”화장실에서 급히 달려 나온 소정이 말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주시우를 보고는 두 눈을 비비며 거듭 확인했다.‘교수님?’신예린의 동료들도 그 말에 모두 놀라 고개를 돌렸다.분명 예린이가 선생님이라고만 했는데 어쩌다 교수라는 말이 나온 걸까. 게다가 저렇게 젊은데 벌써 교수라니 믿기지 않았다.옆에서 듣던 이석훈의 가슴 속에는 서서히 불길 같은 불안이 피어올랐다.주시우의 시선이 소정을 향했다.“저를... 아세요?”“알죠. 알죠!”소정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주 교수님, 전 주경 의대 출신이에요. 교수님 강의 들은 적 있어요.”주시우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답했다.“그래요. 반가워요.”황이슬은 그제야 주시우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다가 점점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소정 씨, 혹시... 소정 씨가 말하던 그 교수님이...”소정은 흥분을 주체 못한 듯 황이슬의 팔을 붙잡고 크게 외쳤다.“맞아요. 바로 그분이에요. 제가 말했던 교수님 말이죠. 잘생기고, 학력도 최고고, 우리 학교 역사상 최연소로 교수직에 오른 전설적인 분입니다.”그 말이 떨어지자 방 안은 다시 술렁였다.주경 의대 최연소 교수라니, 그 무게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여기 앉아 있는 이들 중에도 주경 의대 출신이 많았고 아무리 의술이 뛰어나도 학교로 돌아가면 선생님이라 부르며 존경해야 할 존재였다.“세상에... 신 선생님이 바로 우리 사모님이었네요. 같이 근무하는 동료였다니 감격스러워서 울고 싶네요.”“...”“...”신예린과 주시우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며 난감하게 웃었고 분위기는 마치 팬 미팅 현장 같았다.모든 시

  • 터닝포인트   제442화

    남자의 체격은 길고 곧게 뻗어 있었고 선이 잘 드러나는 얼굴에 도드라진 눈썹뼈, 깊고 맑은 눈매가 더해져 마치 난초처럼 고결하고 옥처럼 단정한 기품을 풍겼다.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안정감이 느껴졌고 급할 것 없는 태도 속에서 검은 눈동자에는 오로지 신예린의 모습만이 담겨 있었다.그 손을 잡은 아이는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주아윤이었다. 까르르 뛰어다니는 발걸음에 피부는 마치 조각한 듯 고왔고 또렷한 이목구비에는 아빠와 엄마의 장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특히 까만 눈망울은 보는 이마다 어쩜 이렇게 귀여워’하는 탄성을 먼저 터뜨리게 할정도였다.신예린은 주시우와 주아윤이 올 거라는 건 알았지만 이런 모습으로 등장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차려입었다고 하기에는 주시우의 옷차림은 편안해서 한 다섯 살쯤은 더 어려 보였고 그렇다고 가볍다고 하기에는 주아윤이 마치 파티에 갈 듯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아니, 이 옷은 그때 교수 이미지랑 안 맞는다며 못 입게 하더니... 왜 지금은 당당히 입고 나온 거야.’그 모습은 꼭 화려한 왕자님 같았다.순간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 주시우는 이미 주아윤과 함께 신예린 앞에 다다랐다.가까이에서 보니 주시우의 인상은 더 또렷했고 시선이 저절로 끌렸다.“와, 진짜 잘생겼다.”누군가 무심결에 내뱉었다.“신 선생님, 남편 잘생겼다고 해도 못 믿었는데... 진짜였네요.”“이런 남편이랑 같이 자면 매일 웃다가 깰 듯하겠네요.”“세상에, 따님도 너무 예쁘네.”농담 섞인 말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이석훈은 주시우를 보는 순간 얼굴빛이 확 굳었다.그제야 신예린이 말한 잘생겼다는 기준이 어떤 건지 알았다. 남자인 자기 눈으로 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도저히 비교조차 되지 않는 외모였다.신예린은 동료들의 놀림을 받으며 가볍게 웃고는 주시우 팔을 끌어당겨 소개했다.“제 남편 주시우예요. 그리고 이쪽은 제 딸, 아윤이에요.”주시우의 시선이 자연스레 사람들을 훑고 지나갔다가 이석훈 앞에서 잠시 멈췄다.상대의 눈빛에는 뭔가 억눌린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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