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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귀차니즘
손을 뻗어 검사 결과지를 건네받은 주시우는 신예린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신예린은 조심스럽게 그의 반응을 관찰했다. 그가 말없이 검사 결과지를 빤히 바라보자 신예린은 조금 당황해서 서둘러 말했다.

“교수님, 교수님 아이 맞아요. 저, 저 교수님하고만 잤어요.”

말을 마친 뒤 신예린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주시우의 시선이 검사 결과지에서 그녀의 얼굴로 옮겨졌다.

신예린이 그토록 긴장했던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신예린은 아무것도 경험해 보지 못한 21살 대학생이었으니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매우 두렵고 불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방법이 있었더라면 그를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주시우는 단 한 번의 실수로 어린 여학생의 미래를 망친 자신을 속으로 욕했다.

그는 결과지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그의 태연한 모습에 신예린은 조금 당황했다.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신예린은 고개를 저으면서 망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르겠어요. 저, 저는 조금 무서워요.”

주시우는 끊임없이 떨리는 신예린의 손을 보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무서운 건 당연해. 다른 사람들도 너 같은 나이에 이런 일을 겪었다면 다들 무서워했을 거야.”

신예린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시우는 본인의 생각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넌 겨우 21살이고 아직 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어. 지금 네게 가장 중요한 건 학업이야.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아이를 지우는 게 최선이야.”

예상했던 대답이었지만 신예린은 저도 모르게 심장이 쿵 내려앉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모님에게 얘기하지 못하겠어요. 그런데 수술하려면 가족들 사인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주시우는 신예린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았다.

“우선 사과부터 할게. 그날 내가 술을 마셔서 잠깐 자제력을 잃은 탓에...”

주시우는 그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었다.

“연상인 내가 자제를 해야 했어.”

신예린은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에요. 저도 잘못이 있는걸요...”

“만약 아이를 지울 생각이라면 내가 끝까지 책임지고 옆에 있어 줄게. 수술 비용이랑 수술 후 몸조리 비용도 다 내가 낼 거야. 네 몸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말이야.”

그의 차분한 목소리에 놀랍게도 신예린의 불안이 가셨다.

적어도 이 일을 의논할 사람이 한 명쯤은 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위안이 되었다.

신예린은 입술을 깨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시우는 최고의 선택지를 주었다. 수술 문제와 비용 문제도 전부 해결된 셈이다.

그런데 주시우가 말을 이어갔다.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두 번째 선택지도 있어.”

신예린은 당황했다.

“네?”

‘두 번째 선택지?’

주시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놀라운 말을 했다.

“바로 나랑 결혼하는 거야.”

‘뭐?’

신예린은 그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주시우를 바라보았다.

정작 주시우는 침착했다. 그는 조금 전 자신이 한 말이 충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아이를 지우는 건 네 몸에 큰 부담이 될 거야. 그리고 우리가 결혼한다면 아이를 떳떳하게 낳을 수 있어. 나는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할 거야. 그리고 학업도 걱정하지 마. 임신한 기간만 잠깐 휴학하고 출산한 뒤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 돼. 육아는 내가 할게. 그리고 휴학해서 집에서 지내게 되면 내가 옆에서 가르쳐줄게. 절대 다른 학생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거라고 내가 장담해.”

주시우는 깜짝 놀란 표정의 신예린을 바라보았다.

“물론 내가 너보다 나이가 훨씬 많을 거야. 하지만 그게 꼭 나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어. 나는 너보다 오래 살았으니까 너보다 더 많은 것들을 경험했고 너와 내 경험을 공유할 수도 있어. 그러니 너도 괜한 고생을 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 나는 연금도 너보다 훨씬 일찍 받을 거야.”

웃으라고 한 얘기일까?

신예린은 겨우 몇 분 사이에 주시우가 아주 빠르게 자신이 아버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할 줄은 몰랐다. 심지어 그중 하나는 그와 결혼하는 것이었고 그녀의 학업은 어떻게 할지, 육아는 누가 할지까지 전부 정했다.

역시 교수라서 그런지 남들보다 사고력이 뛰어났다.

신예린은 처음엔 놀랐다가 점점 겁이 났다.

“교수님, 농담하지 마세요.”

“농담 아니야.”

주시우의 진지한 표정을 본 신예린은 표정이 굳었다.

“일단 자기소개부터 할게. 나는 주시우고 29살이야. 주경 사람이고 박사 졸업했어. 지금은 화정 의대에서 일하고 있고 월급도 꽤 많이 받고 있어. 귀국한 지 얼마 안 돼서 지금은 전세로 살고 있는데 집은 언제든지 살 수 있어. 차는 내 명의로 된 차고 술, 담배는 안 해. 가정폭력도 걱정할 필요 없어. 평소 취미는 독서랑 러닝이고 부모님은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계셔서 앞으로 노후 걱정은 안 해도 돼. 결혼한 뒤에 우리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야 할 필요도 없어. 지금은 내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좀 바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주말마다 쉴 거고 방학에도 쉴 수 있어서 너와 아이랑 함께 있을 시간은 충분해.”

주시우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선을 보러 나온 줄 알 것이다.

신예린은 마치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주시우는 넋을 놓고 있는 신예린을 바라보면서 참을성 있게 말했다.

“조금 전에 내가 한 얘기들 중에 너의 미래 반려자를 고르는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 볼래?”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은 없었다. 신예린은 주시우가 하늘이 자신에게 내려준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훌륭한 주시우가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하다니.

테이블 아래서 신예린은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어 보았다.

‘으악, 아파!’

꿈이 아니었다.

신예린은 주시우의 진지한 표정을 본 순간 그가 한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정말로 진지하게 이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혼은...’

신예린은 결혼이 아주 먼 미래의 얘기라고 생각해 단 한 번도 그 문제를 고려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아이를 지우는 것보다도 더욱 중요한 일이었다.

신예린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교수님, 저 조금 고민해 봐도 될까요?”

“언제까지?”

“다음 주 월요일까지 결정하고 말씀드릴게요.”

“그래.”

주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신예린은 결정을 내리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넋을 놓은 채로 집에 도착했을 때 문을 열자마자 임정희와 신민호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저 신발 사고 싶어요.”

신민호의 목소리였다.

“새 신발 산 지 얼마 안 됐잖아.”

임정희가 말했다.

“어제 농구하다가 망가졌어요.”

임정희가 조금 망설이다가 물었다.

“얼마 주면 돼?”

“40만 원이요.”

임정희의 목소리가 순간 커졌다.

“그렇게 비싸다고? 민호야,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겨우 신발 하나를 살 필요는 없어.”

신민호는 또 짜증을 부렸다.

“제 친구들은 그것보다 훨씬 더 비싼 신발을 신고 다녀요. 제가 학교에서 얼마나 창피한지 아세요? 됐어요. 사주기 싫으면 말아요. 어차피 저도 친구들에게 놀림당하는 거 익숙하니까요.”

임정희는 서둘러 말했다.

“사줄게. 민호야. 엄마가 사줄게.”

신예린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들은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임정희는 전업주부였고 평소 집에서 직접 만든 것을 팔아서 돈을 조금씩 벌었다. 그리고 신경무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라서 월급을 많이 받지 못했다.

신예린은 철이 들 무렵부터 부모님들로부터 늘 그들은 집안 형편이 좋지 않다고, 부모님들이 힘들게 일해서 돈을 버는 것이니 아껴 써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래서 학교에 다닐 때는 생활비를 거의 받지 못했고 고등학교 때 기숙사에서 지내게 된 뒤에야 겨우 매달 십만 원 정도를 생활비로 받아서 썼다. 게다가 그들은 단 한 번도 먼저 생활비를 준 적이 없었다. 신예린은 매번 돈이 없어 배를 곯을 지경이 되어서야 그들에게 조심스레 생활비를 보내달라고 했고 그때마다 부모님에게 혼나야 했었다.

대학교에 다니게 된 뒤로는 등록금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부모님에게 손을 벌린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그녀는 40만 원으로 몇 달을 버텼었다.

게다가 그녀는 매번 어렵게 부탁해서 생활비를 받았는데 그의 동생은 아주 손쉽게 용돈을 받았다.

그 순간 숨이 턱 막히면서 이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 강렬하게 들었다.

그리고 주시우는 그런 그녀에게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그대로 집에서 뛰쳐나온 신예린은 아파트 아래에서 주시우의 번호로 연락했다.

“여보세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온화하고 다정했다.

“교수님.”

그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신예린은 저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쥔 채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결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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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147화

    신예린의 얼굴은 순식간에 삶은 새우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주시우의 눈가에는 장난스러운 흥미가 스쳤다.“네가 정말 원한다면... 내가 네 소원을 들어줄 수도 있어.”“아, 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신예린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저... 저 먼저 샤워하러 갈게요!”토끼처럼 냅다 달아나듯 자취를 감춰 버린 신예린의 뒷모습을 보며 주시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같이 씻자고? 들어보니 그럴듯한데? 물도 아끼고 말이야.’하지만 주시우는 금세 고개를 저었다.‘아니지. 예린이가 진심으로 좋다고 해야 가능하지.’주시우는 서재에서 읽다 만 책을 들고나왔지만 정작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거실에 앉아 있어도 귓가로 들려오는 건 샤워실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뿐이었다.머릿속에는 조금 전에 품에 안겼던 신예린의 붉어진 얼굴과 희미하게 젖은 눈빛만이 자꾸만 맴돌았다.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열기가 차올랐고 주시우는 관자놀이를 눌러 가라앉히려 애썼다.욕망이라는 게 한 번 열리면 되돌리기 어려웠고 주시우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한편, 욕실 거울 앞의 신예린도 마음이 복잡하게 요동쳤다.거울에 비친 얼굴은 하얗게 빛나면서도 붉은 기운이 번졌고 눈동자마저 물빛처럼 출렁였다.손으로 볼을 감싸 보니 손끝에 닿는 열기가 그대로 전해졌고 설레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버렸다.밤이 깊어지자 신예린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바로 옆에 주시우가 누워 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지만 오늘 밤 일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며 심장이 쿵쾅거려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그때, 옆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탁상 등이 켜졌다.순간 번진 부드러운 불빛에 신예린은 반사적으로 눈을 가늘게 떴고 시야에 들어온 건 바로 주시우의 얼굴이었다.주시우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잠이 안 와?”‘역시 알고 있었구나.’신예린은 반쯤 이불 속에 얼굴을 묻고는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네.”“왜 잠이 안 오는지 말해 줄래?

  • 터닝포인트   제1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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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1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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