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8화

Author: 귀차니즘
주시우는 신예린이 이렇게 빨리 결정을 내릴 줄은 몰랐다.

“결정한 거야?”

“네.”

신예린은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결정했어요.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얘기해.”

“저 결혼한다는 거, 저희 부모님에게는 당분간 비밀로 하고 싶어요.”

주시우는 잠시 침묵했다.

“그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야. 결혼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야. 비록 나는 한동안 해외에서 지냈지만 우리나라에서 결혼하려면 먼저 양가 부모님을 뵙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어. 그리고 언제 결혼할지, 예물은 어떻게 할지도 부모님과 다 상의해야 해. 그게 일반적이야.”

신예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전 그러고 싶지 않아요. 만약 제가 임신했다는 걸 아시면 저희 부모님께서는 무조건 아이를 지우라고 하실 거예요.”

신경무는 체면을 매우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만약 그들이 진실을 알게 된다면 그녀는 온갖 비난을 견뎌야 할 것이다.

주시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예린은 주시우가 마음을 바꿀까 봐 무서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건 다 필요 없어요. 전 그냥 당장 결혼하고 싶어요.”

신예린은 결국 울먹거리며 말했다.

“교수님, 제게 필요한 건 집이에요.”

신예린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 주시우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신예린이 홀로 외롭게 어둠 속에서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이 주시우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신예린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뒤, 주시우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일단 내 카톡 추가하고 네 기본적인 개인정보들 나한테 보내줘. 일단은 시간부터 정한 뒤에 다시 얘기하자.”

주시우가 동의하자 신예린은 기쁘게 웃어 보였다.

“네.”

“저녁이라서 밖은 좀 추울 테니까 집으로 돌아가.”

주시우는 그녀가 밖에 있다는 것도 알아맞혔다.

신예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일찍 쉬고 좋은 꿈 꿔.”

그녀의 착각일까? 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주시우의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다정했다.

그 뒤로 신예린은 그날 그에게 전화한 것이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수도 없이 생각했다.

신예린은 용기를 내어 주시우의 손을 잡았고 주시우는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녀에게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다.

...

월요일 오전, 신예린은 휴가를 신청한 뒤 주민등록증을 챙겨서 나섰다.

신예린의 주민등록증은 임정희가 관리하고 있었는데 어제 신예린은 학교로 돌아가기 전 임정희에게 주민등록증을 달라고 했다. 학교 일을 처리하는 데 필요하다고 말이다. 당시 신예린은 임정희가 무슨 일로 그러냐고 물을까 봐, 혹시라도 거짓말인 걸 들킬까 봐 매우 긴장했다.

검은색 차가 눈에 잘 띄지 않는 길가에 멈춰 섰다. 주시우는 거울을 통해 신예린을 보더니 차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신예린은 주시우를 본 순간 흠칫했고, 그때부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주시우는 조수석 옆에 서 있었다. 몸에 딱 맞는 정장은 그를 더욱 늘씬해 보이게 했고 뚜렷한 이목구비와 차분한 눈빛이 유독 매력적이었다.

주시우는 한껏 차려입었는데 그와 반대로 신예린은 누가 봐도 대학생 같아 보였다.

그녀는 조금 긴장한 얼굴로 자신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면서 제대로 꾸미고 나오지 않은 걸 후회했다.

주시우도 두 사람의 차이를 의식한 건지 신예린과 자신의 옷차림을 번갈아 보다가 싱긋 웃어 보였다.

“내가 너무 차려입었네.”

신예린은 서둘러 손을 저었다.

“아뇨. 제, 제가 차려입었어야 하는 건데... 지금 바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 올게요.”

말을 마친 뒤 신예린은 기숙사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주시우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따뜻한 온기에 신예린은 흠칫 놀라면서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주시우의 잘생긴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주시우가 말했다.

“지금 가야 제때 도착할 수 있어.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으면 늦을걸.”

신예린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이건 해결하기 쉬운 문제야.”

주시우는 그렇게 말한 뒤 정장을 벗었다. 그는 안에 흰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넥타이를 풀고 셔츠 단추도 두 개 정도 풀었다.

그러니 엄숙함이 줄어들고 섹시함이 더해졌다.

살짝 튀어나온 목젖, 쇄골, 그리고 그 아래...

신예린은 황급히 시선을 내려뜨렸다.

“어때? 이제 덜 늙어 보이지?”

주시우는 신예린이 긴장한 걸 알아채고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했다.

신예린은 주시우가 매우 진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가 이런 농담을 할 줄은 몰랐다.

그녀는 살짝 멈칫했다가 이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다고 해서 나이 차이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나이 있는 남자들은 모두 나이 얘기에 민감하다고 하니 말이다.

“늦겠다. 얼른 타.”

주시우는 신사처럼 차 문을 열었고 신예린은 감사 인사를 한 뒤 조수석에 탔다.

곧이어 주시우도 차에 올랐다. 그는 신예린에게 종이백을 하나 건넸다.

“아침이야.”

신예린은 주시우가 아침까지 준비해 줄 줄은 몰랐다. 오늘 그녀는 룸메이트가 다 외출한 뒤에야 외출할 수 있었고 그 탓에 학식도 먹지 못했다.

사실 학식을 먹어도 상관없었다. 그저 도둑이 제 발 저려서 감히 가지 못한 것뿐이다.

“감사해요.”

신예린은 조심스럽게 종이백을 받았다.

“식기 전에 먹어.”

주시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신예린은 샌드위치와 우유를 들고 있다가 뭔가 떠올리고는 물었다.

“교수님은 아침 드셨어요?”

“응. 난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주시우는 핸들을 쥐고 앞을 바라보았다.

“네.”

신예린은 짧게 대답한 뒤 샌드위치를 한 입 먹었다.

에그마요 샌드위치라서 느끼하지 않고 맛있었다. 신예린은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샌드위치를 다 먹은 뒤 신예린은 우유를 마셨다. 그런데 빨대를 꽂는 순간 우유가 흘러나왔다.

‘티슈, 티슈...’

신예린은 차를 더럽히게 될까 봐 황급히 움직였다.

“티슈는 앞에 있는 수납함에 들어 있어.”

옆에서 주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운전하고 있는데 그녀가 티슈를 찾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신예린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수납함을 열어 티슈로 손을 닦았다.

구청에 도착했을 때 신예린은 샌드위치를 다 먹었다.

주시우는 신예린이 샌드위치가 들어있던 종이백을 구청 앞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걸 보고 결론을 내렸다.

‘음, 입맛은 있나 보네. 아직 입덧이 심하지 않은가 봐.’

구청에 들어간 신예린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아서 멍해졌다.

그녀는 강아지처럼 주시우의 뒤만 졸졸 쫓아다녔다. 사진을 찍을 때 웃으라고 하면 웃고, 개인 정보를 적으라고 하면 개인 정보를 적었다.

반대로 주시우는 모든 것이 익숙해 보였고 결국 신예린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교수님, 혹시 전에 결혼하신 적 있으세요?”

당시 주시우는 두 사람의 서류를 구청 직원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신예린의 질문에 주시우뿐만 아니라 직원까지 그녀를 바라보았다.

“...”

신예린은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걸 눈치채고 뻘쭘해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거야?”

주시우의 질문에 신예린은 얼굴이 빨개진 채 말했다.

“굉장히 익숙해 보여서요.”

주시우는 웃었다.

“여기 직원분이 증명해 주실 수 있어. 나는 오늘 인생 처음으로 혼인신고를 하는 거야. 미리 인터넷으로 찾아봐서 그렇게 보였나 보네. 나는 뭐든 미리 준비해야 하는 성격이거든.”

주시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신예린을 힐끔 보았다.

“너는 예외지만.”

신예린은 그 말을 들은 순간 저도 모르게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교수님. 그런 말은 위험하다고요!’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터닝포인트   제147화

    신예린의 얼굴은 순식간에 삶은 새우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주시우의 눈가에는 장난스러운 흥미가 스쳤다.“네가 정말 원한다면... 내가 네 소원을 들어줄 수도 있어.”“아, 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신예린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저... 저 먼저 샤워하러 갈게요!”토끼처럼 냅다 달아나듯 자취를 감춰 버린 신예린의 뒷모습을 보며 주시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같이 씻자고? 들어보니 그럴듯한데? 물도 아끼고 말이야.’하지만 주시우는 금세 고개를 저었다.‘아니지. 예린이가 진심으로 좋다고 해야 가능하지.’주시우는 서재에서 읽다 만 책을 들고나왔지만 정작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거실에 앉아 있어도 귓가로 들려오는 건 샤워실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뿐이었다.머릿속에는 조금 전에 품에 안겼던 신예린의 붉어진 얼굴과 희미하게 젖은 눈빛만이 자꾸만 맴돌았다.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열기가 차올랐고 주시우는 관자놀이를 눌러 가라앉히려 애썼다.욕망이라는 게 한 번 열리면 되돌리기 어려웠고 주시우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한편, 욕실 거울 앞의 신예린도 마음이 복잡하게 요동쳤다.거울에 비친 얼굴은 하얗게 빛나면서도 붉은 기운이 번졌고 눈동자마저 물빛처럼 출렁였다.손으로 볼을 감싸 보니 손끝에 닿는 열기가 그대로 전해졌고 설레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버렸다.밤이 깊어지자 신예린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바로 옆에 주시우가 누워 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지만 오늘 밤 일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며 심장이 쿵쾅거려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그때, 옆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탁상 등이 켜졌다.순간 번진 부드러운 불빛에 신예린은 반사적으로 눈을 가늘게 떴고 시야에 들어온 건 바로 주시우의 얼굴이었다.주시우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잠이 안 와?”‘역시 알고 있었구나.’신예린은 반쯤 이불 속에 얼굴을 묻고는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네.”“왜 잠이 안 오는지 말해 줄래?

  • 터닝포인트   제146화

    거실은 은은한 노란 불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신예린은 아직도 카펫 위에 힘없이 누운 채 방금 주시우와 나눈 키스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잠시 후, 부엌에서 주시우의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그는 손에 물 한 잔을 들고 신예린 앞으로 다가왔다.조명 아래 비친 신예린의 얼굴은 투명한 옥처럼 빛났고 작은 코와 촉촉하게 빛나는 입술 주변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그건 분명 주시우의 흔적이었다.평소라면 언제나 차분하고 절제된 모습이었지만 방금은 도저히 제어할 수 없었다.주시우는 신예린을 여러 번 안아 버렸고 혹시 겁을 주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뒤늦게 밀려왔다.주시우는 신예린한테 잔을 건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물 좀 마셔.”그 한마디에 신예린은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신예린은 입안이 바싹 말라 있었고 볼에 닿는 열기도 여전히 뜨겁게 남아 있었다.신예린은 잔을 받아 들어 조심스럽게 몇 모금 삼켰다.긴 속눈썹이 눈 밑에 그림자를 드리우자 주시우의 목젖이 미묘하게 흔들렸다.바로 그때 신예린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올려 주시우를 바라봤다.주시우의 붉어진 뺨과 까만 눈동자에는 묘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아까... 누가 자기 키스 못 한다고 했죠?”그 말에 주춤한 주시우는 어색하게 기침을 흘렸다.“음... 아마 본능이었던 것 같네.”‘본능이라니... 교수님이 말한 본능이 결국 날 이렇게 정신없이 흔들어 놓았잖아...’잔을 다 비우자 주시우는 신예린의 앞에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먼저 샤워할래?”신예린은 눈길을 피하며 작게 대답했다.“네... 알겠어요.”신예린은 갑작스러운 관계의 변화가 아직은 익숙하지 않았다.특히 조금 전까지 그토록 뜨겁게 입맞춤을 나눴다는 사실이 자꾸만 떠올라 얼굴이 달아올랐다.평소의 주시우는 마치 욕망과는 거리가 먼 사람처럼 절제된 수도승 같은 느낌이었는데 조금 전처럼 붉어진 눈가로 자신을 삼킬 듯 바라보던 모습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평소의 주시우랑 차이가 너무 커서 신예린의 심장은 아직도

  • 터닝포인트   제145화

    그러자 주시우가 가볍게 웃었다.“내가 왜 널 속이겠어. 원한다면 증명해 줄까?”신예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어떻게... 증명해요?”“예린이가 조금 전에 나한테 한 것처럼 말이야.”그 순간 신예린의 뇌리에는 방금 장면이 스쳤고 얼굴이 곧장 붉게 달아올랐다.주시우의 눈빛은 점점 깊어졌다.“예린이가 날 좋아해서 키스했다면 내가 예린한테 하는 키스는 똑같은 마음 때문이겠지.”주시우의 굵직한 목소리가 귀에 파고드는 순간, 신예린은 마치 몸이 둥실 뜨는 듯 어지러웠다.“증명해 줄까?”‘세상에... 누가 키스를 이런 식으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신예린은 두 손을 만지작거리며 얼굴을 붉혔다.“네.”하지만 신예린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 거의 들리지 않는 정도였다.“뭐라고?”주시우가 몸을 조금 더 가까이 기울이자 얼굴이 바로 신예린의 앞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반쯤 그림자에 잠긴 주시우의 옆모습은 몹시 점잖았고 길게 드리운 속눈썹과 날렵한 콧날, 단정한 입술 선은 숨이 막히도록 매혹적이었다.신예린은 알 수 없는 용기가 솟구쳤고 그 순간 살짝 고개를 들어 주시우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가벼운 입맞춤이 이어졌고 이건 곧장 말이 필요 없는 대답이었다.공간을 가득 메운 공기는 순식간에 달아올랐고 뜨겁고 조용한 기류가 두 사람 사이에 퍼졌다.주시우는 눈빛이 불길처럼 이글거렸고 신예린을 끌어안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은 순간, 전류가 튀듯 강렬한 불꽃이 스쳤다.“내 키스는 좀 서툴지도 몰라.”주시우의 목소리는 낮게 잠겨 있었고 신예린은 볼이 활활 달아올랐다.“만약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말해. 우리 둘 다 배우는 거에는 자신 있잖아. 잘 안되면 몇 번이고 연습하면 되지.”그 한마디에 신예린은 온몸이 전율하며 숨조차 가빠왔고 수치스러움과 설렘이 뒤섞여 머릿속이 하얘졌다.“그럼... 시작할까?”키스하면서도 먼저 허락을 구하는 주시우의 태도에 신예린은 어이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하지만 다가오는 주시우의 얼굴이 눈앞에 닿

  • 터닝포인트   제144화

    주시우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통화를 끊어 버렸다.신예린의 등줄기가 순간적으로 서늘해졌다.주시우의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단박에 알아챌 것이다.이건 사실상 두 사람의 관계를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었다.아니나다를까 전화를 끊긴 채 멍하니 휴대폰만 바라보던 여도준은 머리가 하얘졌다.‘방금... 주시우 교수님의 목소리를 들은 게 맞아?’하지만 주시우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신예린을 개의치 않고 휴대폰을 무음으로 돌려놓았다.앞으로의 시간을 어떤 방해도 허락할 수 없다는 듯 무심히 옆에 내려놓고 시선을 다시 신예린에게로 맞췄다.신예린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여전히 조금 전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멘탈이 흔들리고 있었다.“아직 대답 안 했잖아.”주시우의 손끝이 신예린의 손목을 따라 미끄러지듯 움직였고 그의 낮게 울리는 목소리는 귓가에 파문처럼 퍼져 나갔다.“왜 날 몰래 키스한 거야? 날 좋아해서 그래?”신예린의 얼굴은 금세 달아올라 불길처럼 붉게 타올랐고 도무지 주시우와 시선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 고개를 숙이고는 아주 작지만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주시우의 눈빛은 유리 조각처럼 반짝이며 빛을 품었고 그동안 마음속을 짓누르던 온갖 망설임과 걱정이 모두 사라졌다.나이가 많든 세대 차이가 있든 그 순간 이제는 아무 상관 없었다.주시우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눈앞에 있는 신예린이 자신을 똑같이 좋아한다는 사실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했다.신예린이 입술을 대던 그 찰나부터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예린이를 절대 놓쳐서는 안 돼.’목울대를 울리며 주시우는 쉬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신기하네. 나도 그래.”늘 그렇듯 담담한 어투였지만 주시우의 그 한마디는 신예린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신예린은 숨이 멎을 듯 가슴이 요동치며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라고 하셨어요?”그러자 조명 때문에 빛을 띤 주시우의 눈동자가 깊이 흔들렸다.“나도 널 좋아한다고.”신예린은 머

  • 터닝포인트   제143화

    신예린의 입술에 닿았던 부드러움이 사라지자 주시우의 눈매가 스르르 좁혀졌다.신예린은 놀란 새처럼 허겁지겁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그러나 곧 따뜻하면서도 강한 주시우의 손길이 신예린의 손목을 단단히 움켜쥐었고 주시우는 그대로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겼다.방심한 신예린은 힘없이 중심을 잃고 넓은 가슴팍으로 고스란히 안겨 버렸다.한 손으로 주시우의 가슴을 짚자 얇은 옷 너머로도 뜨겁게 전해지는 체온이 고스란히 손끝에 스며들었다.그 순간 신예린은 심장이 제멋대로 빨리 뛰었고 숨이 가빠졌다.주시우는 여전히 손목을 놓지 않은 채 그윽한 눈빛으로 신예린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순간, 신예린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어떻게 변명해야 하지? 방금 몰래 키스하려던 걸 들킨 건가... 날 내쫓으면 어쩌지...’신예린은 입술이 바짝 말랐고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교수님...”그러나 말끝을 이어 가기도 전에 주시우의 낮고 깊은 목소리가 귀가에 와닿았고 묘하게 울리는 울림은 신예린의 귓불을 간질이며 온몸을 달아오르게 했다.“날... 좋아해?”신예린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주시우의 숨결이 바로 앞에서 스쳐 오고 알 수 없는 뜨거운 기운이 휘몰아쳤다.‘좋아하냐고요? 당연하죠. 너무 좋아한다고요!’좋아하는 감정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신예린의 마음속에서 넘쳐흘렀다.주시우의 시선이 불길처럼 타오르는 가운데 신예린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입술을 열어 고백을 내뱉으려는 찰나,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순식간에 달아오른 분위기는 바로 깨져 버렸고 은근하게 고여 있던 아늑한 느낌은 산산이 흩어졌다.신예린은 당황한 표정으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 전화를 받아야 할 것 같아요.”신예린이 살짝 몸을 일으켜 휴대폰을 집으려 했으나 주시우의 손아귀는 여전히 놓아주지 않았다.주시우의 눈빛은 신예린에게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신예린은 어쩔 수 없이 몸을 기울여 손을 뻗어서 핸드폰을 확인했고 화

  • 터닝포인트   제142화

    신예린은 밥을 먹다 말고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주시우의 창백한 피부에 희미한 홍기가 번지더니 마치 유백색 옥에 빛이 스며든 듯 은은한 광택이 돌았다.신예린은 몇 번이고 주시우의 얼굴을 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조심스레 물었다.“교수님, 괜찮으세요?”주시우는 겉으로는 침착했지만 조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도저히 믿기지 않았기에 신예린은 무심코 손을 뻗어 주시우의 얼굴을 만지려 했다.그러나 닿기도 전에 주시우의 뜨거운 손바닥이 곧장 신예린의 손목을 붙잡았다.신예린은 손끝이 덜컥 떨렸고 주시우 역시 버티기 힘들었다.신예린의 손목은 여름날 얼음 조각처럼 차가워 주시우의 뜨거운 손바닥을 식혀 주었고 그래서 더 놓기가 아쉬웠다. 그러나 혹시라도 지난번처럼 이성을 잃을지 두려워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주시우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낮게 말했다.“아마 잠시 후에 설거지를 좀 부탁해야 할 것 같아. 머리가 좀 어지러워.”“머리가 어지러워요?”신예린의 눈빛이 잔뜩 긴장으로 흔들렸다.“그냥... 취한 것 같아.”‘단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신예린은 믿기지 않아 눈을 크게 떴고 주시우는 신예린의 표정을 읽고는 차분히 덧붙였다.“난 술에 굉장히 약해. 조금만 마셔도 바로 취해. 그때도... 겨우 한 모금이었어.”갑작스레 그날 밤 이야기가 언급되자 신예린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단 한 모금으로 그렇게 격렬할 수 있다니... 앞으로 교수님한테 술을 조금 더 권하면...’엉뚱한 생각이 머리에 스쳤으나 신예린은 금세 고개를 흔들며 진정을 되찾았다.‘안 돼. 그런 비겁한 방법을 어떻게 떠올릴 수가 있어.’식사를 마친 뒤, 신예린은 서둘러 설거지를 마쳤다.부엌을 정리하고 나와 보니 거실은 고요했고 소파 위에 주시우가 누워 있었다.따뜻한 불빛 아래 드리운 긴 그림자 속에서 주시우의 몸은 한 겹 붉은 기운에 싸여 있었고 붉게 물든 입술은 마치 활짝 핀 꽃처럼 눈부시게 빛났다.‘잠자는 미남이라는게... 딱 이 모습이구나.’신예린은 저도 모르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