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가자, 스패로.”
바스티안이 헬멧을 건넸다.
“야, 왜 대답이 없어?”
앤서니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냥 둬. 벨이 집에 가야 하잖아. 아니면 네가 직접 데려다줄래?”
“미안한데, 나 끝내야 할 일이 산더미야.”
벨은 오빠에게 살짝 어이없다는 듯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인 뒤 작별 인사를 했다.
그녀는 바스티안과 함께 가게 밖으로 나와 주차된 오토바이 쪽으로 걸어갔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다시 바스티안의 오토바이를 타게 되다니.
예전에는 바스티안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었기 때문에 늘 그의 오토바이를 함께 탔다.
하지만 그를 좋아하기 시작한 뒤로는 바스티안이 태워다 주겠다고 해도 자주 거절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후회가 됐다.
<벨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차 문이 닫혔다. 그녀의 시선은 8층짜리 건물에 걸린 병원 간판으로 향했다.이브도 차에서 내려 재빨리 문을 닫고 경보 장치를 잠근 뒤, 두 사람은 함께 병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벨의 마음은 혼란스러웠다.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자리 잡은 감정은 두려움과 호기심이었다.펠릭스의 어머니가 왜 자신에게 오라고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대체 무슨 병이길래 펠릭스가 특별히 자신을 보고 싶다고 한 걸까?그렇게 심각한 상태인 걸까?벨은 오는 동안 받았던 이전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메시지에는 병원 이름과 펠릭스가 치료받고 있는 층, 병실 번호까지 적혀 있었다.벨은 이브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5층으로 향했다.“기억해. 내가 먼저 병실 확인할 거야. 안에 누가 있으면 우린 바로 나가.”이브가 다시 한번 당부했다.“응.”벨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엘리베이터가 5층에 멈추며 부드러운 딩 소리가 울렸다.두 사람은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향해 방문자 명부에 이름을 적었다.간호사는 한 번에 한 명의 방문객만 병실에 들어갈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두 사람은 양옆으로 닫힌 병실 문이 줄지어 있는 텅 빈 복도를 조용히 걸었다.펠릭스의 병실이 가까워졌을 때, 이브가 벨을 멈춰 세웠다.“여기서 기다려.”이브가 단호하게 말했다.그녀는 곧장 펠릭스의 병실로 다가가 가볍게 노크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벨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불확실한 마음과 걱정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펠릭스에게 정말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깊고 불안한
이브가 집요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자 벨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하지만 이브가 더 빨랐다.그녀는 벨의 턱을 붙잡아 억지로 자신의 눈을 마주 보게 했다.“뭐가 문제야?”이브가 단호하고 추궁하듯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야.”벨은 무릎 위에 올려둔 책에 집중하는 척했다.“너 지금 30분째 같은 페이지 보고 있어.”“초등학교 때 내 문학 선생님이었던 팬시 선생님한테 감시받는 기분이야.”벨이 애써 딴청을 피웠다.“화제 돌리지 마.”이브가 쏘아붙였다.그녀는 벨의 무릎에서 책을 낚아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들킨 벨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긴장한 듯 입술을 살짝 적셨다.이브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스러운 눈빛이 가득했다.“벨, 펠릭스가 너한테 무슨 짓 했어? 나한테 말해도 돼.”“아니. 펠릭스는 만나지도 않았고, 얘기도 안 했어.”벨이 고개를 저었다.“정말 괜찮아. 알겠지? 아무 일도 없었어. 모든 게 완전히 평소와 똑같아.”“네 행동은 전혀 평소 같지 않은데.”벨의 눈에는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둔 슬픔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아무리 잘 감추려고 해도 이브의 매처럼 날카로운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다.그녀의 본능은 아주 멀리서 하는 거짓말도 귀신같이 알아차렸다.벨은 이브라는 인간 거짓말 탐지기를 피해 갈 수 없었다.하지만 며칠 전 바스티안과 있었던 일을 정말 이브에게 말해야 할까?아마 안 될 것이다.
벨은 바스티안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머릿속은 엉망으로 뒤엉켰고, 가슴을 짓누르는 아픔은 더욱 심해졌다.두 사람은 어떤 관계도 가져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그런데 왜 바스티안은 이렇게 대놓고 자신을 놓아주지 않으려는 걸까?“대체 왜 이러는 거야!”벨은 더 이상 눈물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바스티안은 그녀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그의 마음 역시 아팠다.벨을 외면하려고 할수록 그 고통과 숨 막힐 듯한 그리움은 더욱 견디기 힘들어졌다.“내가 잘못한 거 알아. 널 상처 입힌 것도 알아.”바스티안이 털어놓았다.“하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벨. 그냥…… 우리 둘이 함께하면 모든 게 더 복잡해질 것 같아.”“아, 그래서 내가 엉망이라는 거야?”벨이 울먹이며 되물었다.“내가 당신 인생에 문제만 일으키는 사람이라고?”“아니! 그런 뜻이 아니야! 네가 오해한 거야!”“그럼 뭔데?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난 당신을 잊으려고 계속 노력했어! 그런데 갑자기 당신이 변했잖아!”“난 변한 적 없어.”벨은 바스티안의 품에서 걷잡을 수 없이 흐느꼈다.더 이상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바스티안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우리가 함께하면 네가 나 때문에 고통받을까 봐 두려워, 벨.”바스티안이 말했다.“우리의 나이 차이도 그렇고…… 네 부모님도 그렇고.
“괜찮아?”바스티안이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깨며 물었다.벨은 자신의 얼굴에 닿는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의 품에 안긴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응, 난…….”벨은 바스티안에게서 떨어지려고 뒤로 물러섰다.너무 어색한 순간이었다.게다가 르네와 괜한 문제를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계속 자신을 노려보는 사람과 함께 있는 걸 누가 좋아하겠는가?갑자기 바스티안의 품에 쓰러진 것을 르네가 알게 된다면 분명 화를 낼 것이다.벨은 자신이 마치 나쁜 여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바스티안을 향한 감정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벨이 자리에 앉자 바스티안은 그녀에게서 조금 떨어졌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폰 손전등을 켰다.“퓨즈가 나간 건가? 평소에는 이렇게 정전되는 일이 없잖아.”“시청에서 사건이 있은 뒤로 이 근처에서 몇 번 정전이 있었어. 아마 전기 공사를 하는 걸지도 몰라.”“정말? 전력 회사에 전화해볼까?”“괜찮아.”벨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어둠 속에서 바스티안에게 보일 리 없었다.“금방 다시 들어올 거야.”“알겠어.”바스티안은 다시 그녀의 옆에 앉았다.벨은 그가 메신저 앱을 열어 앤서니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화면에 뜬 내용이 벨에게도 보였다.“부모님이 급한 일 때문에 타지로 가셔야 한대. 너도 집으로 오라고 하셨어. 서둘러. 벨을 혼자 여기 두고 싶지 않아.”잠시 후 앤
결국 갤러리로 돌아온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벨은 르네가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벨은 그저 앤서니와 다른 사람들, 그리고 이브와 함께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그럼에도 일찍 자리를 떠난 것이 마음에 걸렸기에, 벨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물론 끔찍하게 불편한 마음으로.바스티안의 여자친구에게 저녁 내내 노려보이는 걸 누가 좋아하겠는가?“자기, 나 집에 갈게. 너무 피곤해. 너무 늦게까지 있지는 마.”르네가 말했다.그리고 벨이 보는 앞에서 일부러 바스티안의 입술에 입을 맞춘 뒤 자리를 떠났다.“나 가게로 돌아간다고 했잖아.”바스티안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니. 아파트로 돌아가.”르네가 명령하듯 말하더니 누구에게도 인사하지 않고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벨은 르네가 자신에게 차갑게 구는 것 자체는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분명 그 싸늘한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너희 둘 싸웠어?”닉이 문 쪽을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바스티안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왜?”“방금 우리가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들인 것처럼 그냥 가버렸잖아.”“미안. 르네가 가끔 좀 그래.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야.”바스티안은 뒤쪽으로 가서 피터가 쟁반을 나르는 것을 도왔다.벨은 이브 옆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펠릭스와 있었던 소동 이후, 벨은 친구와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이브 역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티를 내지
펠릭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가 벨에게는 거의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특히 펠릭스는 난폭하고 빠르게 차를 몰고 있었고, 그 때문에 벨은 두려움에 떨었다.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 안을 가득 채운 침묵은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나한테 거짓말하려고 했어?”펠릭스가 으르렁거렸다.“벨, 솔직함이 없으면 연애는 오래갈 수 없어.”물론 벨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펠릭스와 연애한다는 건 먼저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뜻 아닌가?이런 식이 아니라.벨은 늘 자신만 펠릭스를 이해하고, 그가 원하는 대로 맞춰줘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정작 펠릭스는 자신의 감정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오빠 친구 집에 갔어. 오빠도 거기 있었고. 대체 뭐가 문제야?”벨은 최대한 차분하게 말하려고 애썼다.“나한테 말 안 했잖아!”“깜빡했어, 알겠어? 왜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만들어?”“우리 아직 사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나한테 거짓말을 하잖아!”그 말에 벨의 감정이 폭발했다.지금까지 벨은 단 한 번도 펠릭스를 속인 적이 없었다.이번에 한 번 깜빡한 게 전부인데, 이제 와서 자신을 거짓말쟁이라고 부르는 건가?“그런 말도 안 되는 억측 하지 마. 거짓말? 당신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잖아!”벨이 날카롭게 받아쳤다.“아, 역시 여자들은 다 똑같네. 자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