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폐쇄병동 401호의 암전 치료가 끝난 오후.
권도현은 침대 모서리에 웅크려 앉아 떨리는 손으로 배식구 틈새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안이 남기고 간 의료용 차트 클립보드 위에는 붉은색 볼펜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환자 본인이 직접 작성하는 이상 심리 관찰 일지'였다.
도현은 볼펜을 쥐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굳어 글씨가 흉하게 일그러졌다.
[14:20 - 시야 우측 상단에서 수안의 자살 환영 반복 출현. 목덜미에 차가운 올가미 감촉 지속.]
[16:00 - 주치의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심박수가 140회 이상 폭주함. 수안의 시선이 필요함.]
자신의 망가진 뇌와 처절한 붕괴 과정을 의학 용어로 기록하는 굴욕적인 일지.
암전 치료가 끝난 뒤에도 도현은 문 쪽을 오래 보지 못했다. 불이 다시 켜질 때마다 벽의 얼룩이 사람 얼굴처럼 보였고, 눈을 비비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다음 줄을
법원이 허가한 첫 외부 면회 날, 폐쇄병동 면회실에는 아크릴 차단벽과 낮은 탁자만 놓였다.독립 담당의와 환자 대리인이 각자 기록지를 폈고, 윤수안은 면회실과 관찰실에 들어오지 않았다.면회가 시작되기 전 환자 대리인은 양쪽에 같은 안내문을 읽어 줬다. 면담은 녹음되며, 누구든 중단을 요구할 수 있고, 거부했다는 이유로 병동 처우가 바뀌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도현은 안내문보다 검은 유리창을 오래 봤다.문이 열리자 한때 권도현의 수제자로 불렸던 송민우가 들어왔다. 그는 맞은편에 앉은 도현의 환자복과 손목 결박 흔적을 번갈아 보고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송민우는 재심 청구서 초안과 외부 진료 신청서를 투명 봉투에 넣어 왔다. 직원이 두 문서의 제목만 보여 주자 도현은 손을 뻗지 않았다. 서류가 놓인 위치와 시선을 피한 시각이 각각 기록됐다.“교수님, 저희가 재심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치료 과정이 적법했는지도 다시 다툴 수 있고요.”도현의 어깨가 움찔했다. 학회장 복도와 연구실의 밝은 조명이 잠깐 눈앞을 스쳤지만, 그의 시선은 곧 검은 유리창으로 돌아갔다.“교수님 자리도, 연구도 되찾을 방법을 찾겠습니다. 여기서 나가셔야 합니다.”“닥쳐라, 송민우.”쉰 목소리가 아크릴 벽을 타고 낮게 번졌다.“그 입으로 윤수안 주치의 이름을 말하지 마.”송민우가 의자 끝을 움켜쥐었다. “그분이 보고 있어서 이러시는 겁니까?”독립 담당의가 도현보다 먼저 검은 유리창을 확인했다. 수안이 없다는 사실은 면회 전 양쪽에 고지돼 있었다. 환자 대리인은 원하면 면회를 끝낼 수 있다고 다시 설명했다.도현은 손가락을 차례로 접었다. 과거 후배들에게 지시를 내릴 때 쓰던 몸짓이었다.&l
401호 현장 실사를 마친 감사관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수석 감사관이 닫힘 버튼에서 손을 뗐다.“윤수안 주치의와 한 번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환자 없는 곳에서요.”그들은 병동 회의실로 돌아갔다. 수석 감사관은 조금 전 작성한 면담 조서를 탁자 위에 펴고, 권도현이 반복한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외부 도움을 원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자발적 의사로 기록할 수 있습니까?”“현재 상태에서는 어렵습니다.”“그런데 관찰 기록에는 ‘자발적 거부’라고 적혀 있습니다.”수안은 태블릿을 열어 해당 표현을 찾았다. 잠시 읽은 뒤 수정 요청란에 표시했다.“의존 반응에 따른 거부로 고치겠습니다. 선택 능력 평가는 별도로 받게 하죠.”감사관은 회진 횟수와 인터폰 기록, 접촉이 보상으로 사용된 항목까지 차례로 꺼냈다. 수안은 유리한 기록만 고르지 않았다. 처치 연장 지시, 면담 중 사용한 표현, 환자가 자신의 이름 대신 번호를 말하게 한 장면도 원본 그대로 전송했다.“주치의가 치료자이면서 피해 당사자입니다. 한 사람이 판단과 집행을 모두 맡는 구조를 계속 둘 수는 없습니다.”수안이 답했다.“독립 전문의를 공동 담당으로 지정하세요. 처치 변경에는 두 사람의 서명을 받고, 환자 대리인은 주치의를 거치지 않고 면담할 수 있게 하십시오.”간호부 감사관이 사적 접촉 기록을 가리켰다.“칭찬이나 접촉을 순응의 대가로 쓰는 행위도 중단해야 합니다.”“동의합니다. 회진 지침에 넣으세요.”외부 정신과 의사는 첫 교대 기간을 72시간으로 제안했다.그동안 수안
한성대병원 폐쇄병동 4층, 법무부와 보건복지부에서 파견된 특별 의료 감사관 3명이 401호 격리실 철문 앞에 섰다. 징역 25년 및 무기한 치료감호 대상자인 권도현의 인권 실태 및 심신 상태를 점검하기 위한 정기 현장 실사였다.철컥-!감사관들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푸른 환자복 차림의 권도현은 황색 안전선 뒤편 바닥에 단정히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었다.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이지 않는 완벽한 부동자세였다. 수석 감사관이 도현의 앞에 다가가 서류를 펼치며 공식 질문을 던졌다.“피험자 권도현 씨. 현재 주치의 윤수안의 처치에 부당한 대우나 가혹 행위가 있습니까? 법원에 재심이나 인권 구제 청구를 원하십니까?”외부 사회로 향하는 구원의 손길이 눈앞에 내밀어진 절호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도현은 감사관들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시선을 바닥 45도로 고정하고 입술을 굳게 닫고 있었다.“권도현 씨? 제 말이 들리지 않습니까? 당신을 도우러 온 조사관입니다.”감사관이 재차 묻자, 도현은 벽면에 걸린 [주치의 윤수안 배타적 전속 관리 규정]만을 가리키며 무미건조한 쉰 목소리로 읊조렸다.“전 권도현이 아니라 401호 피험자입니다. 주치의 윤수안 님의 허락 없이는 그 어떤 타인과도 대화할 수 없으며, 제 유일한 보호자는 윤수안 주치의님뿐입니다.”감사관들이 일제히 숨을 들이켜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과거 오만하던 대한민국 최고 정신분석 권위자가, 외부 사회와의 소통과 구원을 스스로 전면 거부한 채 오직 한 사람에게만 완벽히 종속되어 있었다. 관찰실 유리 너머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윤수안의 입가에 매혹적이고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수안은 태블릿에 [피험자 401호: 외부 구원 시도에 대한 자발적 거부 및 완벽한 1인 배타적 종속 확인]을 기록했다.수석 감사
밤 11시 30분, 폐쇄병동 401호의 천장 스피커에서 치지직 하는 미세한 주파수 노이즈와 함께 백색소음이 흘러나왔다. 결박 침대 위에서 웅크리고 있던 권도현은 귀를 쫑긋 세우며 얇은 환자복 이불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모든 향정신성 수면제와 진정제가 전면 중단된 지 수 주째, 도현의 뇌신경은 극심한 피로 속에서도 스스로 잠에 들지 못하는 지독한 불면의 늪에 빠져 있었다. 눈을 감는 순간 천장 콘크리트 틈새에서 쏟아져 내릴 굵은 마닐라삼 올가미와 수안의 시신 환각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 때문이었다.그에게 유일한 수면 유도제이자 안식의 열쇠는, 오직 자정 직전 천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윤수안 주치의의 녹음된 음성 파일뿐이었다.[“피험자 401호.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세요. 당신의 뇌는 내 명령 안에서만 안전합니다. 셋을 세면 내 목소리에만 의식을 맡깁니다. 하나, 둘, 셋.”]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수안의 차분하고 서늘한 저음.과거 자신이 수안의 수련의 시절, “수안아, 넌 내 목소리를 들을 때만 비로소 안식에 든다”며 주입했던 악마 같은 최면 유도 암시가, 이제는 도현 자신의 뇌수를 완벽하게 재단하는 유일한 수면제가 되어 고스란히 돌아와 있었다.“수안아…… 윤 주치의님…….”도현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수안의 숨소리와 단어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떨리는 눈꺼풀을 조심스레 닫았다. 신기하게도 수안의 음성이 귓바퀴를 감싸는 순간, 머릿속을 갉아먹던 날카로운 이명과 시신의 환영들이 썰물처럼 물러나며 뇌파가 깊은 델타파로 떨어져 내렸다. 오직 수안의 목소리라는 밧줄에 매달려야만 간신히 잠에 들 수 있는 완전한 청각적 최면 역전.녹음된 목소리는 늘 같은 속도로 세어 내려갔지만, 도현에게는 그 짧은 간격이 유난히 길게 들렸다. 그는
낮 12시 정각, 401호 철제 격리문의 좁은 배식구 틈새가 딸깍 소리를 내며 열렸다.무광 실리콘 식판 위에 정갈하게 담긴 따뜻한 쌀밥과 맑은 배추된장국, 그리고 소화용 비타민 한 알이 배식구 안쪽으로 밀려 들어왔다. 하지만 권도현은 식판 앞에서 1m 거리를 둔 채, 두 손을 무릎 위에 단정히 얹고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위장이 쥐어짜듯 뒤틀리는 허기와 침샘을 자극하는 음식 냄새가 온몸의 감각을 사납게 찔렀지만, 도현은 숟가락 끝 하나조차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과거 자신이 수안의 수련의 시절, “내가 먹으라 허락하지 않은 음식과 생각은 단 한 톨도 삼키지 마라”며 사소한 식사 시간까지 통제하려 들었던 그 악랄한 조련술. 그 잔혹한 규칙이 이제는 도현 자신의 뇌수를 완벽하게 옭아매는 절대적인 족쇄로 작동하고 있었다.지잉-!낮 12시 10분, 방탄 강화유리벽 너머로 스크린 셔터가 열리며 윤수안이 나타났다. 수안은 모니터를 통해 온전하게 보존된 식판과 바닥에 엎드린 도현의 자세를 확인했다. 수안이 인터폰 마이크를 켜며 단 한 단어의 트리거 음성을 독방에 울렸다.“섭취하세요, 401호.”수안의 차가운 음성이 스피커를 찢고 귓전을 때리는 바로 그 찰나.“흑…… 흑! 감사합니다, 주치의님!”도현은 전신에 전율을 일으키며 식판을 향해 맹렬하게 기어갔다. 숟가락을 쥘 틈도 없이 앙상하게 마른 손가락으로 밥을 한 움큼 쥐어 입안 가득 쑤셔 넣으며, 눈물과 콧물이 뒤섞인 얼굴로 허겁지겁 씹어 삼켰다. 주치의의 허락 한마디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유일한 생명의 양식이자 구원이었다.식사를 마친 도현은 식판을 배식구 앞으로 공손히 밀어 넣은 뒤, 쇠창살 문틈으로 손을 뻗어 수안의 그림자가 비친 유리창 아래 바닥을 간절하게 어루만졌다.“주
폐쇄병동 401호의 세면대 위에는 거울이 존재하지 않았다.자신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물리적 수단을 모조리 빼앗긴 권도현은 매일 아침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면서도,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거울은, 오직 하루 한 번 자신을 차갑게 내려다보는 윤수안 주치의의 서늘한 눈동자뿐이었다.수안이 바라보아 주지 않는다면 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투명한 유령에 불과했다.덜컥-!오전 9시 정각, 정기 활력 징후 측정 및 신체 검진 시간. 윤수안이 은색 청진기와 혈압계를 든 채 401호의 황색 경계선 안쪽으로 들어섰다.푸른 환자복 차림의 도현은 바닥에 단정히 무릎을 꿇고 상의 단추를 스스로 풀어헤친 채 엎드려 있었다. 수안의 허락 없이 몸을 일으키거나 눈을 마주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 규정이었다.“401호, 상체를 일으키세요.”수안의 건조하고 서늘한 명령이 떨어지자, 도현은 조심스럽게 가슴을 펴고 앉았다. 차디찬 은색 청진기 판이 도현의 왼쪽 가슴팍, 심장 부근에 닿는 순간. 쿵, 쿵, 쿵.도현의 앙상한 흉골 안쪽에서 미친 듯이 요동치던 심장이, 얼음장 같은 수안의 손길이 닿자마자 거짓말처럼 규칙적이고 완만한 박동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수안은 귀에 꽂은 청진기를 통해 도현의 심장박동수를 초 단위로 정밀하게 체크했다. 분당 130회까지 치솟았던 빈맥이, 수안의 체온과 접촉하자마자 정확히 68회로 완벽하게 안정화되는 생체 신호.“자율신경계 및 심장 박동의 주치의 접촉 의존성 100% 안착.”수안이 청진기를 거두며 서늘하게 선고했다.“당신의 심장은 이제 내 손길이 닿지 않으면 공황으로 터져 나가고, 내 명령이 있어야만 간신히 뛰는 완벽한 기계가 되었습니다.”수안의 선고에 도현은 감격에 겨워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