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구안은 곧바로 자신의 추측을 소욱에게 전했다.소욱은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과거 약쟁이단이 남제에 발을 들였을 때에도 살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약을 시험하는 악행을 서슴지 않았다.“하지만 왜 하필 표사들일까?”소욱이 의문을 표했다.봉구안 역시 고민 중이었다.“그러게요… 왜 굳이 표사들인걸까요?”소무는 이야기를 들으며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어리둥절해졌다.그는 약쟁이단 사건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사형, 사수… 두 분이 대체 무슨 이야길 하시는 거예요?”심심하던 차에 신기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호기심이 더해졌다.소욱은 귀찮다는 듯 대답을 피했다.“가서 진한길에게 물어보거라.”하지만 진한길은 말수가 적었다. 그래서 소무는 결국 오백에게 갔다.오백은 이런 이야기를 풀어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입담도 좋은 데다, 마침 심심했던 터라 그는 소무에게 사건의 전말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다.소무는 들을수록 눈이 휘둥그레졌다.“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니? 완전히 미친 거잖아요!”“그중에서도 제일 소름 끼치는 게 그 모용길이라는 자네요. 근데… 진짜로 이 사람이 이백 년 넘게 살았다고요?”“설마 농담 아니죠? 저 놀리시는 거 아니죠?”오백은 단호하게 말했다.“믿든 말든 네 마음이다.”소무는 황급히 비위를 맞추며 자신의 검을 내밀었다.“화 푸세요! 제 검이라도 만져보실래요?”오백은 코웃음을 쳤다.“내가 적연검까지 만져봤는데, 네 검이 뭐 대수란 말이냐.”이야기를 다 들은 소무는 심심풀이 삼아 바깥으로 산책을 나갔다.그가 어느 노점 앞에 멈춰 섰을 때였다. 갑자기 누군가의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번쩍 고개를 돌렸지만, 수상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에이, 착각인가...”소무는 머리를 툭툭 두드리며 대수롭지 않게 자리를 떠났다.……역관 내.소욱은 변방의 정무를 살피고 있었고, 봉구안은 책상 앞에 앉아 강림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었다.그녀는 강림에게 임원표국을 조사해달라
서왕은 정예군 장군을 바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약쟁이단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고 있느냐?”장군 왕효가 고개를 끄덕였다.“현재까지 파악된 약인들의 은거지는 세 곳 있습니다.”“보름 전, 폐하와 황후마마께 서신으로 보고드렸으나, 별다른 지시가 없으셔서 추가 조사는 진행하지 않았습니다.”“그러다 어제, 황후마마의 밀서가 도착하여, 전하께서 전력을 다해 협조하고, 왕비마마를 구출하며 약쟁이단의 잔당을 소탕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왕의 가슴이 한결 가라앉았다.“당장 그 세 곳으로 가자!”그는 단 한순간이라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왕효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전하, 한 가지 미리 알려드릴 사항이 있습니다.”“말해라.”서왕은 조급함에 목소리를 낮출 겨를도 없었다.조금만 늦어도 완부옥과 아이가 더욱 위험해질까 두려웠다.왕효는 담담히 말했다.“황후마마의 명으로, 이번 작전은 소인이 지휘를 맡습니다. 전하께서도 하관의 명령을 따라야 하며, 독자적으로 행동하실 수 없습니다.”서왕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그의 뒤에 서 있던 호위들은 이 무례한 요구에 분노를 삼켰다. 혹시 왕효가 독단적으로 황후의 명을 사칭하는 것은 아닐지 의심까지 들었다.황후는 어찌 전하에게 남의 지휘를 받으라 명하셨겠는가?하지만 서왕은 조금도 불만을 내비치지 않았다.그는 두 손을 모아 왕효에게 공손히 예를 표했다.“알겠소. 왕장군, 부디 부인과 아이를 속히 구해주시오.”그는 황후마마의 뜻을 이해하고 있었다.황후는 자신이 정에 치우쳐 경솔한 결정을 내릴까 걱정한 것이다.그 누구보다 그의 심정을 이해하는 이가 바로 황후였다. 황제께서도 납치되었던 과거가 있었으니 말이다.황후는 그때와 같은 일을 다시 겪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그 시각 왕효가 또 다른 명을 전했다.“황제 폐하께서 전하께 밀서를 보내셨습니다. 이 영패를 지참하시고 남강왕을 찾아 약쟁이단의 실상을 설명드리라는 내용입니다.”사실 서왕 역시 남강왕에게 이 일을 알릴 계획
“안 됩니다, 전하! 남강은 너무 위험합니다!”유화가 서왕의 팔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몇몇 호위들과 힘을 합쳐 겨우 마끈으로 서왕을 단단히 묶었다.서왕의 눈에는 붉은 핏발이 가득 섰다. 그는 유화와 호위들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너희들 지금 뭐하는 짓이냐! 당장 풀지 못할까!”그들은 반역이나 다름없었다.쿵!유화가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호위들도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다.유화가 두 손을 모아 정중히 예를 올리며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전하, 신하된 자로서 오직 전하의 안위를 먼저 생각할 뿐입니다!”“부디 안심하십시오. 저희가 왕비마마를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만약 왕비마마를 구하지 못한다면, 저희 모두 목숨을 내놓겠습니다!”“오늘 전하께 무례를 범한 죄는 훗날 반드시 벌을 받겠습니다!”그 말을 마친 유화는 나머지 사람들을 이끌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서왕의 곁에는 여전히 호위 병력 일부를 남겨 두어 안전을 도모했다.그들의 뒷모습은 결연하고 단호했다.서왕의 눈빛은 암흑처럼 어두워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의외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혹시 유화가 그에게 마비산이라도 쓴 것인가?생각만 해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완부옥이 남강 어딘가에서 약쟁이단의 잔당들에게 고통받고 있을 모습을 떠올리자 차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약쟁이단이 어떤 존재들인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남강에 온 이유도 약쟁이를 제조하는 그들을 근절하기 위해서였다. 완부옥의 사부 심성조차 약쟁이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이제 완부옥마저 그들의 손아귀에 떨어졌다니!서왕의 눈빛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가 완부옥의 남강행을 허락한 것을 지금 이 순간 깊이 후회했다. 그리고 독장에 중독되어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이 생에서 그는 누구 하나 지켜내지 못했다.부친은 원통하게 목숨을 잃었고, 그의 모친 또한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제 남은 것은 완부옥과 아이뿐이었다. 그런데 하늘이 이들마저 빼앗으려
완부옥의 실종 소식은 봉구안을 깊은 근심에 빠뜨렸다.그녀와 완부옥은 막역한 친구였고, 이번 일은 단순히 친구를 잃은 문제만이 아니었다. 이 사건은 남강의 약쟁이단이 얼마나 위험한 세력인지 말해주고 있었다.완부옥마저 그들에게 당했으니, 그들의 교활함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서왕은요? 아직 남강에 있는 건가요?”봉구안이 소욱에게 물었다.소욱은 말없이 서왕의 서신을 건넸다. 봉구안은 조용히 봉투를 열어 내용을 살펴보았다. 서신을 다 읽고서야 그녀는 자세한 전말을 알 수 있었다.완부옥과 서왕은 남강에 도착하자마자 스승인 심성을 찾기 위해 수색을 시작했다. 그러다 완부옥이 부득이하게 구술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때 적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서왕과 호위들은 독장이 퍼진 숲에서 갇히고 말았고, 결국 완부옥을 지켜내지 못한 채 그녀가 납치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남강의 독장은 실로 강력했다. 더구나 서왕은 그 지역에 익숙하지 않아 대응하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렇다 하더라도 아내와 아이를 지켜내지 못한 것은 서왕이 충분히 신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봉구안은 소욱을 바라보았다.“서왕이 이 서신을 보낸 건 도움을 청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에게 방법을 찾아 완부옥을 구출해달라는 것이죠. 폐하, 이를 어쩌면 좋죠?”명백히 현재로선 그들도 당장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북방과 남강은 거리가 너무 멀었다. 게다가 이번 순행에는 호위 인원도 제한되어 있었다. 아이들을 상성으로 호송할 때 이미 병력의 일부를 나눠 보냈으니, 현재는 파견할 병력조차 넉넉지 않았다.무엇보다 서왕조차 충분한 병력을 데리고 있었음에도 당했으니, 인원을 보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소욱은 한참 고민한 끝에 봉구안에게 말했다.“남방군을 출동시키는 건 어떻겠느냐?”봉구안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남방군은 국경을 수비하는 정규군이다. 만약 정규군이 남강으로 진입한다면 남강 측에서도 반발할 게 뻔했다. 그러다 일은 더 커질 수 있었다.게다가
“뭐라고요? 표사를요?”서태상은 믿기 힘든 얼굴로 되물었다.그가 봉구안을 바라보며 물었다.“임원표국이 저 표사들을 팔아넘긴 겁니까?”인신매매라니.이 바닥에서 가장 더럽고도 추악한 범죄였다.보통은 유괴된 아이들이나 여자들을 운송할 때 표국이 개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음성적인 거래였다.그만큼 이윤은 어마어마했지만, 적어도 서가만큼은 그런 돈에는 손대지 않았다.봉구안은 지체하지 않고 오백에게 명령을 내렸다.“즉시 관아로 가서 모든 성문을 철저히 수색하라!”“예!”그러나 임원표국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단순히 돈 때문이라면 굳이 거금을 들여 표사들을 빼돌릴 필요가 없다.유민을 사서 팔면 훨씬 간단할 텐데.봉구안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했다. 서태상을 집으로 돌려보내 가족을 지키게 했다.그리고 소욱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소욱은 소막과 동산국 일로 머리가 아픈 와중이었지만, 표사가 팔려갔다는 말을 듣고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표사를 운반했다는 것이냐?”봉구안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떠올랐다.“변경의 혼란은 우리가 보는 표면적인 유민들 문제가 아닙니다. 왠지... 머지않아 큰일이 터질 것 같습니다.”“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갑자기 소무가 대들보 위에서 뛰어내렸다. 원숭이처럼 민첩하게 착지했다.소욱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봤다.“누가 네게 말하랬느냐? 물러가라.”하지만 소무는 물러서지 않고 봉구안 앞으로 달려가 눈살을 찌푸리며 호소했다.“역시 눈치채셨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며칠 전부터 심장이 쿵쾅거리고 눈꺼풀이 계속 떨립니다.”“이건 절대 좋은 징조가 아니에요. 사부님께서 예언하신 재앙, 그 '사형의 대재앙'이 다가오고 있어요!”소무의 표정은 진지했다.봉구안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점점 더 불안감이 커져갔다.그녀가 소욱을 바라보며 물었다.“계속 순시를 이어가실 생각이신가요?”소욱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계속한다.”변경의
소막은 결국 구금되고 말았다.배치도의 진위를 밝혀내기 전까지 그는 적과 내통한 죄를 안고 있어야 했다.억울하다고 목청껏 외쳐보았지만 소용없었다.동시에 머릿속은 복잡했다.원탁이 비단 주머니에 넣어준 그 배치도, 과연 진짜일까? 아니면 가짜일까?아무리 생각해도 진짜일 리 없었다.원탁은 속을 알 수 없는 자였다. 그런 자가 쉽게 나라를 배반할 리 있겠는가?하지만 또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만약 그게 가짜라면, 결국 자신이 적과 내통한 것이 되어 참수형을 면치 못할 터였다.순식간에 소막의 마음은 혼란으로 뒤섞였다.그리고 하루가 지난 뒤, 원탁 역시 오백 일행에게 압송되어 황제 앞에 섰다.그는 여전히 가면을 쓰고 있었다. 황제 앞에서도 가면을 벗지 않았다.“원탁, 폐하께 문안 올립니다.”예법은 더없이 공손했다.소욱은 그를 평신하로 부르지 않았다. 실내 호위들 역시 긴장한 채 원탁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혹여 수상한 움직임이라도 보이면 즉시 제압할 태세였다.동산국 출신인 그를 경계하는 건 당연했다.봉구안도 병풍 뒤에 숨어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그 병풍은 소욱의 뒤편, 가장 가까운 자리에 놓여 있었다.소욱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너는 동산국 원씨 가문의 후손이냐?”원탁은 부인하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그저 고개를 숙이며 차분히 답했다.“속세의 신분으로는 그렇습니다, 폐하.”소욱의 눈빛이 깊어지며 그를 꿰뚫어 보려 했다.“초왕이 말하길, 네가 남제에 투항하려 한다더구나. 그렇다면 왜 진짜 얼굴을 감추는 것이냐?”원탁은 담담히 대답했다.“소인은 외모가 추하여 폐하를 뵐 면목이 없습니다.”물론 소욱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손짓하자 진한길이 앞으로 나섰고, 원탁의 가면을 강제로 벗겨냈다.가면 아래에는 심하게 화상 입은 얼굴이 드러났다.분장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진짜 얼굴이었다.순간 원탁은 당황해 가면을 되찾으려 손을 뻗었다.흉한 얼굴을 가리고 싶었던 것이다.소욱의 표정이 냉랭하게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