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구안은 봉장미의 추측을 부정하지 않았다. 소욱이 천하통일의 뜻을 품고 있다면, 필시 동산국을 겨냥할 것이었다.봉장미가 고개를 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참으로 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려 하는데, 그 뒤에 참새가 노리고 있는 형국이군요.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담대연 또한 만만치 않은 인물이에요. 그 자가 감히 황성을 정면으로 공격했다면, 분명히 퇴로도 미리 마련해 두었을 거예요.”“그럴 법도 하지.”봉구안이 낮게 중얼거렸다.그녀와 소욱이 동산국에 갇혀 있을 때, 담대연이 장공주를 통해 천 리 밖에서 '거미줄' 도면을 보내온 일이 있었다. 만약 담대연이 뒷수를 쥐고 있다면, 이른바 완전한 '거미줄' 도면은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봉구안은 남제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번 전쟁의 승부는 상대가 담대연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쉽사리 예측하기 어려워졌다.“어마마마!”소준연은 동생들과 놀다 지쳐서 그녀 곁으로 달려왔다. 봉구안의 근심은 아이들의 해맑은 목소리에 금세 사라졌다.그녀는 아이들의 앳된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이 따스해졌다. 심지어 아이들을 데리고 속세를 떠나 은거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이 순수한 아이들이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아마 소욱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는 아이들이 자라기 전에 천하를 통일하여, 그 모든 죄업을 자신이 짊어지려 하는 것이리라.막내아들이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봉구안의 옷자락을 꼭 쥐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마마마, 아바마마가 보고 싶어요.”소준연은 동생의 손을 살짝 밀쳐내고 봉구안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런 뒤 그녀의 배 속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마마마, 저는 알아요. 어마마마 뱃속이 작아지면 우리가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요.”봉구안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찌 그리 잘 아느냐?”소준연은 고개를 들어 어른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할마마마께서 방금 말씀해 주셨습니다. 동생은 놀기만 하
봉구안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송려가 서여국을 떠났다고?그녀는 곧장 봉장미에게 물었다. “장미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봉장미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언니,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일 일은 아니에요. 그저 부모님이 그리워서 남제로 돌아가 뵙겠다고 하더군요. 연초에 서신을 보내왔는데, 아버님 병환이 깊어 당분간 자리를 비우기 어렵다고 했어요.”봉구안이 한마디 더 물었다. “너희 사이에 불화가 생긴 건 아니지?”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봉장미가 송려 이야기를 꺼낼 때 예전처럼 설레는 듯한 표정은 사라지고, 대신 근심과 막연함만이 남아 있었다.봉장미는 곧바로 답하지 않고, 곁에 있던 유아를 바라보았다. 유아는 눈치가 빨라 곧 말했다. “저는 아직 읽을 서책이 남아 있어서요!”“어마마마, 이모님!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그 말만 남기고 그 작은 아이는 총총히 물러났다.그제야 봉장미가 언니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언니도 알다시피, 제가 유아를 거둔 뒤로는 오라버니가 우리 곁을 어슬렁거리는 걸 원치 않았어요. 특히 유아에게 영향을 주는 건 더더욱 싫었죠. 오라버니가 서여국에 눌러앉겠다고 할 때에도, 저는 그냥 눈감아 주었어요.”“그런데 오라버니께서 부군을 통해 틈만 나면 유아의 소식을 알아보려 하고, 심지어 직접 만나려 하더군요. 부군은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 그 점은 잘 알고 있답니다. 제가 부군과 오라버니의 개인적인 왕래를 막지는 않았지만, 오라버니가 혹여 선을 넘을까 싶어 암위들에게 살피게 했어요.”“그 일로 부군이 자신을 구속한다고 느낀 모양이에요. 그래서 마음을 식히겠다며 남제로 간 거죠. 그래서 저도 그냥 두었어요...”“그런데 어째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네요…”봉구안은 사정을 들은 뒤, 치우치지 않게 말했다. “부부 사이의 일에 내가 끼어드는 건 좋지 않아. 송려가 너에게 얼마나 잘했는지는, 너도 잘 알 터. 무슨 결정을 내리든, 훗날 후회만 하지 않는다면 돼.”봉장미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결정이
봉장미는 서여국 국주가 된 지도 여러 해가 지나, 더 이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소녀가 아니었다. 국정은 갈수록 손에 익어 능숙하게 처리하였으나, 언니와 남제에 대해서는 특별한 정을 품고 있었기에, 두 나라가 서로 적대하는 상황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오늘 언니가 불쑥 던진 질문은 그녀를 가시방석에 앉힌 듯 불안하게 만들었다.봉장미의 표정이 단호하게 굳어졌다.“언니, 분명 아무 이유 없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혹시... 남제가 이미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건가요?”그녀는 늘 의아해하였다. 언니가 어찌 갑자기 서여국에 와서 태교를 하겠다고 하는걸까.분명 깊은 속내가 있을 터였다.봉구안은 약탕 사발을 내려놓으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지금 남제의 시선은 모두 동쪽과 남쪽에 쏠려 있다. 하나 10년 뒤, 서여국이 맞서 싸울 만한 국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설령 남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가 반드시 눈독을 들일 거야.”봉장미의 목구멍이 바짝 메말랐다.“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꼭 서로 싸우고 피를 흘려야만 합니까?”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각 나라가 저마다 평화롭게 지내면 더욱 좋지 않은가?봉구안은 전각 밖을 바라보았다.“들짐승도 본능으로 영역을 다투거늘, 하물며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느냐. 시골의 농부 둘도 땅 한 뙈기를 두고 주먹을 휘두르는데, 거대한 두 나라야 오죽하겠느냐.”봉장미의 눈빛이 복잡하게 일렁였다.“그럼 언니는요? 언니도 전쟁이 옳다고 여기십니까? 설령 또다시 서양제 같은 인물이 나타난다 해도, 대주가 몇 년 못 가서 망하지 않았습니까.”봉구안은 담담히 답하였다.“분쟁은 누군가의 뜻만으로 멈추지 않아. 나에게 동의하느냐 묻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어찌 그게 의미가 없단 말입니까!”봉장미는 고개를 저었다. “이는 분명 형부께서 먼저 시작하신 일이 아닙니까? 언니께서 이렇게 먼 길을 오신 것은 서여국을 돕기 위해서가 아닌가요? 형부께서 언니를 가장 아끼신다면서요?
감옥 안.태감이 조서를 끝까지 읽었으나, 감옥 안의 사내는 미동조차 없었다.태감은 목을 가다듬어 다시 고했다.“원 장군, 폐하께서 장군의 병마대장군 직을 회복시키시고, 즉각 출정하여 군을 이끌고 적을 방어하라 명하셨습니다. 어서 일어나 성지를 받으시지요!”그러나 원담의 입가에 비웃음이 스쳤다. 그는 감옥 문을 등진 채 마른 풀더미 위에 누워 있었다. 힘없이 버려진 진흙덩이처럼,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간 모습이었다.“원 장군! 폐하의 명을 거역하실 작정이십니까!”그때, 태자가 발걸음을 옮겨 들어왔다.그는 눈빛으로 조서를 전한 궁인을 물리고, 이곳에는 태자와 원담 단둘만이 남았다.“몇 달이 지났건만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였느냐. 여전히 죽을 궁리만 하고 있느냐?”“네가 진가에 장가 들어 몸을 보전하라는 말, 나도 강요하지 않았다. 이번에 아바마마께서 반대하는 대신들을 무릅쓰고 너를 쓰려 하심은 마지막 기회다.”“원담! 어서 일어나라!”원담이 피식 웃었다.“전하께서는 제 온 집안을 멸문시킨 원수에게 제가 감사하고 충성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태자의 미간이 서서히 내려앉았다.“복수를 원하느냐. 그러려면 살아서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원담은 시큰둥하게 자세를 바꿔 등을 바닥에 붙이고 누운 채, 감옥 안 벽 위 작은 창을 바라보았다.그 틈새로 스며든 햇빛 한 줄기마저 눈을 찌르고 거슬렸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비웃음을 흘렸다.“저를 격동시키려 애쓰지 마십시오.”“저는 명을 받고 적을 막으러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폐하께서 말하는 적군은 바로 저의 동지이니, 그들이 하루빨리 동산국을 짓밟고, 이 나라를 모조리 없애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그 말끝에는 서릿발 같은 살기가 어려 있었다.태자가 더 말하려는 순간, 원담이 벌떡 일어나 고개를 돌리며 냉소를 지었다.“전하께서는 저를 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전하 자신을 구하려는 것이지.”“전하는 죽음이 두렵습니다.”“아들을 얻고 나서는, 더욱 목숨이 아까운 것이겠
소욱은 요사이 국사를 처리하느라 분주하였다. 혹여 이런 일들이 봉구안의 건강을 해치고, 부부의 정마저 해하지 않을까 은근히 근심하고 있었다.그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궁 밖으로… 나가 있는 것도 좋겠구나. 자유각이 한적하니 말이다.”자유각은 그가 사들여 그녀에게 하사한 궁 밖의 거처였다.소욱은 그녀가 궁중에만 갇혀 지내기를 꺼린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다만, 자유각 또한 그의 손이 미치는 범위 안에 있었으니, 그곳이라면 그녀의 안위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었다.봉구안은 담담하게 아뢰었다.“서여국으로 가고 싶습니다.”소욱의 가슴이 순간 무겁게 내려앉았다.이내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으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동생이 그리운 것이냐? 굳이 이리까지 힘을 들일 필요는 없다. 남강이 평정되고 네가 아이를 낳으면, 내가 친히 함께 가 주마.”봉구안은 고개를 저었다.“이번에는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갈 것입니다.”“그래야 폐하께서 마음 놓고 정사에 전념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소욱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구안아, 어찌 그러느냐. 너희들이 모두 떠나면, 나는 더 마음이 쓰일 뿐이다. 뱃속의 아이만 생각한다면 자유각만큼 좋은 곳도 없지 않느냐.”봉구안은 한 치 머뭇거림도 없이 답했다.“아이 때문만은 아닙니다.”그녀는 눈앞의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그 시선에는 결연함이 어려 있었다.소욱은 잠시 침묵하더니, 곧바로 물었다.“혹 내가 머잖아 서여국에 군사를 일으킬까 염려하여, 미리 대비하려는 것이냐?”“그렇습니다.”허심탄회한 대답을 들은 소욱은 쓸쓸히 웃었다.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나직이 말했다.“그리도 솔직해야 했느냐. 나를 속일 생각은 없었더냐? 혹 내가 너를 못 가게 막을까 두렵지도 않느냐…”“그럴 리 없습니다.” 봉구안이 그의 말을 자르듯 답했다.소욱은 그녀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그리고 한참 후,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조심스레 입을 맞췄다.“좋다. 허락하마.”“서여국의 앞날이 어찌 될지는
자진궁봉구안이 발걸음을 들이니, 두 황자는 곧장 봉구안의 품으로 달려들었다.허나 그 순간, 뒤에서 뻗어 온 ‘마수’가 아이들의 뒤깃을 덥석 움켜쥐고는 냉큼 들어 올려 버렸다.“어찌 나보다 먼저 네 어미에게 안기는 것이냐. 구안이는 나를 뵈러 온 것이다.”소욱은 두 황자를 유모에게 건네주며, 황자들을 편전으로 데려가게 하였다.봉구안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걱정스레 눈길을 보냈다.소욱은 고개를 저었다.“어느 우매한 자가 이토록 소란을 피워, 너까지 놀라게 하였느냐?”“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봉구안이 미간을 좁혔다.소욱이 호탕하게 웃었다.“내가 그리 허약해 보이느냐? 염려 말거라. 멀쩡하니.”말을 마치고 그녀 앞에서 한 바퀴 빙 돌더니, 장난기 어린 눈빛을 띠었다.“아니면 이 옷을 벗어 보여 주랴? 구석구석 살펴보겠느냐?”봉구안은 그가 정말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마음을 놓았다.소욱이 그녀의 손을 잡고 자리에 앉혔다.“그 자객은 내 몸에 손끝 하나 대지도 못하였다. 지금 심문 중이나, 십중팔구 소황이 보낸 자일 게다. 그놈이 이제는 더 버티지 못하는 모양이야.”봉구안이 물었다.“어찌 그리 생각하십니까? 남강의 병력은 거의 다 그 자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까?”소욱이 미소를 지었다.“지난달, 남강 쪽이 우리를 지나치게 압박하거늘, 내가 일부러 소문을 흘리게 하였다. 완부옥이 이미 남제에 투항하였다는 내용이었지.”“소황은 ‘만에 하나’를 두려워한 게다. 그놈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고왕이 내 손에 들어오면, 약쟁이들로 성을 친다 한들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말이다.”봉구안의 미간이 다시금 좁혀졌다.“정녕… 꾀가 많으십니다.”이내 그녀의 얼굴에 근심이 드리웠다.“완부옥이 대하로 가려면 반드시 남강을 거쳐야 합니다. 완부옥이 무사히 빠져나가게 하시려, 몸소 위험 속으로 들어가신 것이지요.”소욱은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완부옥이 아니라, 대하를 구하기 위함이었다.”“게다가 지금쯤이면 이미 대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