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 아이를 의심하는 거니?”맹 부인이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봉구안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사모인 맹 부인이었다.그녀는 장미가 당한 일들에 대해 일일이 설명했고 교먹을 의심하게 된 이유까지 덧붙였다.자초지종을 들은 맹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일리가 있어.”“만약 교먹이 처음부터 소장군 자리를 노렸다면 너를 피해 장미에게 그런 잔인한 일을 벌였을 리 없어.”“만약 이 일이 그 아이의 짓이라면 정말 무서운 아이야!”맹 부인은 장미 사건에 교먹이 개입되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언제부터 이렇게 잔혹하게 변해간 걸까!봉구안도 마음이 착잡했다.“저도 그 아이를 의심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이 많은 사건들이 그 아이를 향하고 있어요.”맹 부인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그리고 또 하나가 있어. 원래는 증거를 잡은 후에 너한테 말하려고 했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말해도 무방할 것 같구나.”“난 용호군이 기습을 당한 사건에 교먹이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어. 며칠 전까지 줄곧 그 일을 몰래 조사했는데 아쉽게도 증거는 못 잡았어.”봉구안은 사모를 위로했다.“그 아이가 한 일이라면 필히 흔적을 남겼을 겁니다. 지금 시급한 건 사부님 사건이에요.”맹 부인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장군부에 그런 물건을 몰래 들여올 사람은 교먹뿐이더구나. 하지만 그 아이가 어떻게 그 많은 상자들을 몰래 저택으로 운송했는지는 아직도 갈피가 안 잡혀.”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밖에서 육 숙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장군, 어떻게 오셨나요?”교먹이 온 것이다!봉구안은 재빨리 몸을 숨겼고 맹 부인은 담담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마당에서 교먹이 거의 쓰러져 가는 담장을 수리해 주고 있었다.맹 부인을 본 그녀는 짐짓 놀란 얼굴로 말했다.“어머니, 안 그래도 안 보여서 걱정했는데 여기 와계셨군요.”교먹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환히 웃고 있었다.육 숙모는 맹 부인이 오랜 지인을 만나러 온 줄 알고 비밀을 지켜주었
벽 안쪽에 새로 교체한 벽돌의 이음새가 이상했다.봉구안은 딱히 티를 내지 않고 육 숙모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자신이 왔다간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밤이 되자 그녀는 육 숙모댁 서쪽 별채에 숨어들었다.잡동사니들을 다 정리하고 나니 안쪽에 느슨해진 벽돌들이 보였다. 대충 칠해진 진흙을 걷어내니 네모난 판자가 보였다.그 판자를 뜯어내자 지하통로가 나 있었다.그녀는 횃불로 안을 비춰보고 교먹이 어떻게 상자들을 장군부로 운반했는지 알아차렸다.다음 날.봉구안은 다시 맹 부인을 찾았다.그녀가 어제 알아본 일을 설명하기도 전에 맹 부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네 생부가 보낸 긴급 서신이야. 네 사부께 보내는 거였는데 내가 먼저 뜯어서 읽었어. 너도 한번 읽어보렴.”맹 부인의 표정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봉구안은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서신을 열어보니 폭군은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그 일로 봉 대인을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맹 부인은 그녀의 손을 잡고 무언의 위로를 건넸다.봉구안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폐하께선 아무 연유도 없이 봉씨 가문을 치려 하지 않을 겁니다.”지금 그녀에게 더 중요한 것은 북부의 일을 해결하는 것이었다.곧이어 그녀는 서신을 내버려두고 맹 부인께 육 숙모네 집에서 발견한 단서를 설명했다.설명을 들은 맹 부인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육 숙모네 집에 지하통로를 만들었단 말이냐!”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분명 지하통로를 처리하러 다시 돌아올 겁니다.”“네 말이 맞아. 사람을 시켜 감시해야겠어.”황성.어느덧 시간은 흘러 10월말이 되었다.봉안진과 주씨 가문 여식과의 혼례가 곧 앞으로 다가왔다.혼례를 준비하는 봉씨 저택은 기쁨이 흘러넘쳐야 마땅하나, 봉 대인은 점점 우울에 빠져 있었다.봉 부인 역시 마찬가지였다.북부에 보낸 서신은 지금도 답신이 오지 않고 있었다.그는 치미는 분노를 발설할 곳이 없었다.‘대체 내 딸을 어떻게 구워삶았길래!’무릇 여자라면 현모양처
교먹은 장물의 출처를 밝혀냈고 그것들이 무덤도둑의 소행이라는 것을 증명해냈다.그들은 은닉한 장물들을 몰래 장군부로 운반했다.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자신했던 그들은 관병들이 장군부를 수색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맹건은 무죄 석방되었고 흠차 대신도 신상을 규명하는 서신을 황성에 보냈다.이 일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맹 소장군이 아버지를 구한 일은 군영의 미담이 되어 퍼져나갔다.장군부는 드디어 차압이 풀렸다.맹 장군이 돌아오는 날, 맹 부인과 교먹은 대문 앞에서 그를 마중했다.“아버지!”교먹은 격앙된 목소리로 맹 장군을 부르며 맹 부인보다도 먼저 달려나갔다.맹 부인은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참을 침묵했다.그날 밤.맹 부인은 봉구안과 만났다.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교먹은 대체 뭘 원하는 걸까?”이렇게 큰 판을 설계하여 그녀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일까?봉구안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어쩌면 사모께서 용호군 사건을 조사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맹 부인은 그제야 이해가 갔다.“내 주의를 분산시켜 용호군 사건에 대한 조사를 멈추게 하기 위함이라는 거지?”맹 부인의 얼굴이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정말 치밀한 아이구나! 나와 네 사부가 그 아이에게 대체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런 식으로 우릴 대한단 말이냐!”봉구안이 싸늘히 말했다.“도덕이라는 것이 없고 아주 잔인한 아이입니다.”“사모와 사부님의 안전, 그리고 나아가서 북대영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교먹을 계속 북부에 남겨둘 수는 없습니다.”맹 부인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것이냐?”다음 날 저녁.장군부로 돌아온 교먹은 익숙한 인영을 보았다.그녀는 마당에서 사부, 사모와 활짝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놀란 교먹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가갔다.“언니?”은색 가면을 쓴 봉구안이 뒤돌아서더니 그녀를 향해 담담히 웃었다.“왔구나, 내 동생.”저택 안에는 외부인이 없었다.교먹은
자진궁.진길은 다급한 걸음걸이로 안으로 들어섰다.“폐하, 황후마마께서 북부에 계신다는 소식이 있습니다!”곧이어, 병풍 뒤에서 온몸으로 냉기를 풍기는 황제가 걸어나왔다.소욱의 두 눈에서는 참을 수 없는 살기와 분노가 요동치고 있었다.‘내 이럴 줄 알았지.’황제는 싸늘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시위들 데리고 북부로 떠나거라.”하지만 그는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그렇게 대단한 재주를 가진 여자라면 진길이 그녀의 상대가 될 수 있을 리 만무했다.조회.봉 대인은 이미 죽을 준비를 마친 듯, 공허한 표정으로 조회에 임했다.‘내가 딸을 잘못 가르친 탓이지. 어찌 자기 자유만 추구하고 가문의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단 말이냐.’힘든 조회가 끝나고 황제가 자신을 남길 거라고 생각했지만 황제는 마치 한달 기약을 잊기라도 한 듯이, 조회가 끝나고 대전을 나가버렸다.봉 대인은 황제의 뜻을 알 수 없어 제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오늘은 안 죽어도 된다는 건가?’한편, 자녕궁.태후는 가빈의 헛소리를 듣고 있다가 인상을 찌푸렸다.“황후가 사당에 없다고?”가빈은 확신에 찬 어조로 답했다.“예, 태후마마! 제발 황후마마를 살려주시옵소서! 분명 폐하께서 황후마마를 어딘가로 끌고 갔을 겁니다!”그녀가 할 수 있는 건 태후께 청을 들이는 일뿐이었다.태후는 겉으로 티는 나지 않았지만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멍청한 것!’황제가 황후를 어디로 끌고 갔을 리가 없고 분명 황후의 신변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다.어쩜 황후는 위험에 처해 돌아오지 못할 처지에 놓였을지도 모른다.다만 황제가 왜 이 일을 굳이 숨기고 거짓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11월17일.황제는 직접 변방 군영을 시찰하겠다고 나섰다.하지만 그가 어느 군영으로 갈지는 아무도 몰랐다.북부.봉구안은 소환의 신분으로 가면을 쓰고 북대영을 출입했다.그녀가 군영에 오자마자 교먹은 그녀의 옆에 바짝 붙어다녔다.사람들은 두 사람이 잘 어울리는 한쌍이라고 생각했다.교먹이 매
사내는 느긋하게 등을 돌리고 싸늘한 눈으로 봉구안을 응시했다.그리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여기가 황궁보다 편하더냐.”말투는 담담했지만 봉구안은 그가 분노를 억제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황후가 신변에서 도망을 쳤으니 황제로서 존엄에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소욱은 걸음을 움직여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섰다.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조용히 그를 기다렸다.사내는 그녀와 한걸음 남겨두고 걸음을 멈추었다. 사내의 거대한 체구가 햇빛을 가려 그녀의 얼굴에 그림자를 만들었다.곧이어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면사포를 벗겼다.그는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매만지다가 마지막에 턱끝에 닿았다.“왜 도망친 거지?”말투는 부드럽고 온화했지만 당장이라도 살인을 저지를 것 같은 눈빛이었다.봉구안은 두려움없이 그의 눈을 응시하며 답했다.“두려웠기 때문입니다.”문득 사내의 손이 그녀의 목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계속 말해보거라.”봉구안은 죽음 앞에 두려워서 벌벌 떠는 대신, 평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날 밤에… 신첩은 오라버니께 배운 기술로 폐하를 기절시켰지요. 그후로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지요.”“자유를 잃은 이 삶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여자 사체를 하나 찾아서 황후가 이미 죽었다고 모두가 믿게 하고 싶었지요.”소욱의 눈빛은 날카롭고 어두웠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심연 같았다.“정말 죽고 싶었다면 짐이 네 요구를 들어줄 수도 있다.”봉구안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담담히 말을 이었다.“하지만 북부로 도망치는 길에서 힘들게 사는 백성들을 보았습니다. 신첩은 저를 곱게 길러주신 부모님이 떠올랐지요. 그리하여 욕심을 내려놓기로 하였습니다. 황후로 사는 것도 그리 나쁜 삶은 아니지요.”“폐하, 신첩의 잘못을 알고 있습니다.”소욱은 눈을 가늘게 뜨고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를 압박했다.“뭘 잘못했다고 생각
교먹은 곧장 황제와 황후가 있는 막사로 갔다.맹 장군이 친히 말동무를 해드리고 있었다.황제의 옆에 앉은 황후의 입술이 유난히 빨갰는데 딱 봐도 격렬한 입맞춤 후에 남은 흔적이었다.황제의 시선은 수시로 황후에게 향하고 있었고 마치 그녀를 많이 아끼는 것처럼 보였다.이는 교먹이 바라던 장면이 아니었다.황제가 도망친 비빈을 잡았는데 당연히 엄벌에 처해야 마땅했다.하물며 황성에서 그녀가 본 황제는 분명 황후를 좋아하지 않았다.봉구안은 분명 황성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 테고 거세게 반항을 해야 마땅했다.그들 사이가 이렇게 화목할 리가 없었다.교먹은 여러 의문을 참으며 억지미소로 예를 행했다.“소신, 폐하와 황후마마를 뵈옵니다.”“예는 되었다.”소욱은 대외적으로 황후가 처음부터 자신과 동행하여 변방의 장령들을 위로할 계획이었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긴 여정에 지쳐 잠시 역관에다 쉬다가 늦었다고도 덧붙였다.허점이 많은 해명이었지만 아무도 감히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다.맹 장군은 두 사람을 위해 거처를 마련했다 했지만 소욱은 다른 일정이 있다며 거절했다.그 뒤로 소욱은 계속해서 연무장을 둘러보았다. 봉구안이 말했다.“북대영에은 여인군이 있다고 들었는데 맹 장군, 날 위해 길을 안내해 줄 수 있겠나?”교먹이 미처 뭐라 하기 전에 소욱이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황후, 군영은 황궁과 달라. 짐의 옆에 있거라. 보고 싶은 게 있으면 저들에게 시키면 될 일이다.”그는 더 이상 그녀에게 도망칠 기회를 주지 않았다.봉구안은 공손히 답했다.“예.”교먹은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황후가 자신을 따로 부르려 한다는 건 분명 황제가 왜 그 오두막에 나타났는지 묻기 위해서일 것이다.그녀는 당연히 자신이 밀고했다는 것을 황후에게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북대영의 연무장은 무척 훌륭했다. 여인군은 풍채가 남달랐는데 대부분 전장에 부군을 잃은 미망인들로 구성되어 부군 대신 변방을 지키겠다는 것을 구호로 삼고 있었다. 아주 감동적인 사례였다.연무가 끝난 후, 소욱
봉구안은 담담한 어조로 해명했다.“폐하는 줄곧 맹씨 부자의 손에 너무 많은 병력이 치중될까 걱정하셨지요.”“교먹은 맹건의 제자이자 그동안 자식처럼 돌본 아이이니 교먹을 황성으로 부른다면 맹건 장군의 약점을 잡은 셈이 됩니다.”소욱은 냉소를 지었다.“맹교먹을 인질로 삼자는 말로 들리는군. 황후는 자신을 구해준 은인에게 이런 식으로 대하나?”봉구안은 고개를 숙이고 답했다.“사적인 감정보다는 폐하의 심려를 덜어드리고 싶습니다. 북대영에서 맹 소장군의 위망은 이미 군주를 넘어섰지요.”“신첩이 보기에 이는 아주 위험한 상황입니다. 소장군을 황성으로 부른다면 점차 북대영의 관할권도 폐하의 손으로 들어올 것입니다.”그녀의 진솔한 제안은 소욱으로 하여금 점차 후궁은 정치에 간섭할 수 없다는 법도를 잊게 만들었다.그 역시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맹씨 부자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황제로서 그들을 견제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황제라는 자리는 본디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하는 자리이며, 이는 소욱도 예외가 아니었다.전쟁을 치를 때, 그는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들을 지켰지만 천하가 태평한 지금 그에게는 권력을 한곳으로 모으는 작업이 필요했다.북부에 시찰을 와서 군영과 북부 백성들이 맹씨 부자를 신으로 칭하는 것 또한 보았다.그러니 그는 신이라는 칭호를 없앨 필요가 있었다.2각이 지난 후, 마차는 온천 객잔 앞에 멈추었다.산을 등지고 지은 이 객잔은 각 방마다 온천이 있었는데 남제에서도 호화롭기로 유명한 객잔이었다.황성에는 천연 온천이 없었다.멀리 고생하며 이곳까지 왔는데 소욱은 굳이 일만 하다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진길이 두 사람을 부축하여 마차에서 내렸다.객잔 주인은 사십 대 정도로 보이는 여인이었는데 그 나이에도 여전히 매혹적이었다.이 객잔에 투숙하는 투숙객들은 대부분이 부자 아니면 관료들이었으나 소욱의 주변으로 풍기는 비범한 기질은 여주인을 놀라게 했다.눈앞의 사내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옥패만 봐도 귀중하여 구하기도
봉구안은 아주 빠르게 반응했다. 고개를 황급히 돌려 가까스로 입맞춤을 피하였다. 그녀의 눈에는 서늘한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 황제는 그런 그녀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은 채 그녀에게 속삭였다.“보은이라느니, 짐을 위해서라느니… 너는 참으로 위선적이구나.”“너는 이미 맹교먹이 너를 배신했다는 걸 알지 않았느냐? 맹교먹을 곁에 두어 천천히 괴롭히려는 속셈이겠지…”“짐의 생각이 맞느냐?”봉구안은 잠시 표정이 얼어붙었으나 곧 평정을 되찾았다.이어 황제가 다시 물었다.“너는 정말로 돌아오고 싶었던 것인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돌아온 것인가?”봉구안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대답했다.“저는…”“오늘 오두막에서 너를 보았을 때, 너는 짐을 들고 있었다. 본디 도망치려 했던 것이 아니었느냐?”황제는 그녀의 속내를 모두 꿰뚫어 본 듯했다.그녀가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애원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그러나 그녀는 단지 고개를 들어 묵묵히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모든 것이 무언의 도전처럼 보였다.“돌아오고 싶었사옵니다.”그녀는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황제는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추측이 옳다고 확신했다. 그녀가 맹교먹에게 복수하려 한다고 믿었다.“그 아이는 남제 최고의 여장군이다. 그 아이를 망가뜨리면 너는 무엇으로 배상할 작정인가? 남제에 대한 가치로 따지자면, 너는 그 아이의 손가락 하나만도 못하니 말이다.”봉구안은 무표정으로 대답했다.“신첩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사옵니다.”“짐은 너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그는 다시 입술을 맞추려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 봉구안은 피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폐하께서는 전혀 개의치 않으십니까? 신첩은 예전에 산적들에게…”그 말을 들은 황제는 잠시 멈췄다. 그의 눈빛은 차가워졌고, 목소리에는 살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 감정은 그녀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너의 잘못이 아니지 않느냐.”엄밀히 따지면, 그녀가 이런 고난을 당한 것은
서여국에 오기 전, 봉구안은 이미 모든 대비책을 마련해 두고 있었다.소주와 정국은 이미 세작을 파견하여 서여국 황궁에 숨어들게 했다. 황제가 진짜 봉구안인지 탐색하기 위함이었다.뿐만 아니라 서여국 내부에서도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무리들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이번 일은 오히려 그들의 계략을 역이용할 절호의 기회였다.봉구안은 송려에게 명했다.“내일 장미를 데리고 남제로 돌아가세요. 서여국은 저와 폐하가 남을 겁니다.”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송려는 더 바랄 것도 없었다.하지만 봉장미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언니, 정말 내 도움이 필요 없어?”봉구안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동생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너만 무사히 남제로 돌아간다면, 난 그걸로 만족해. 난 걱정하지 말고, 우선 무사히 네가 남제에 돌아갈 방도를 생각해보자.”봉장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언니 말대로 할게.”입으로는 순순히 따랐지만, 마음은 어쩐지 허전했다.잠시 망설이다 결국 그녀는 입을 열고 말았다.“언니, 소주와 정국 일만 정리되면… 이 서여국의 황제는 누가 되는 거야?”그녀는 언니는 반드시 남제로 돌아가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봉구안은 주저함 없이 답했다.“서여국에 숙가 사람들 중 더 이상 남은 이는 없어. 이제는 현명한 이를 추대하여 황제 자리를 물려줄 수밖에 없어.”봉장미는 그 말을 듣고 묘한 감정을 억누르며 고개를 숙였다.하지만 황제와 송려가 있는 앞에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그날 밤 봉장미는 떠나기 전 호원아와 오양련을 따로 불러들였다.이 둘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언니께서 이미 서여국에 도착하셨어요. 앞으로 이 나라 황제는 언니가 될 거예요.”그 말에 두 사람은 놀라며 기뻐했다.하지만 봉장미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하지만 언니의 뜻은 이번 일은 소주와 정국의 반란을 정리하러 온 것이고, 그 후에는 황제 자리를 사양하시겠다고 하셨어요. 두 분
궁궐 밖 어느 저택.봉장미는 그곳에서 그리운 언니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안으려던 순간, 언니의 불러진 배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언니, 이게 무슨...?" 봉장미는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봉구안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회임했어."봉장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크게 벌렸다. "정말?!" 너무나 기쁜 소식이었다!자매는 자리에 앉아 오랜만에 만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할 말이 정말 많았다.옆방.소욱과 송려가 함께 있었다. 송려의 안색이 예전 같지 않았고, 눈 밑에는 검은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근심이 얼굴에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소욱이 눈치 없이 물었다. "황후의 지아비 역할은 어떠하냐?"송려는 고개를 떨구며 슬픈 표정으로 자조했다. "신은 재주가 없어 그 역할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소욱은 미간을 찌푸렸다.‘왜 저렇게 우울해 하지? 혹시 봉장미가 변심해서 새 남자를 들였나?’송려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눈을 반짝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소욱에게 공손히 예를 올렸다."폐하, 감히 여쭙겠습니다만 이번에 황후마마께서 오신 이유가 황제의 자리를 맡기 위함입니까?"소욱은 부정하지 않았다. 송려는 완전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이렇게 된다면 좋았다. 그러면 장미가 그와 함께 남제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다 문득 황제가 생각나 조심스레 물었다."폐하, 어찌하여 서여국까지 오셨습니까?"나라는 하루도 군주 없이 지낼 수 없는데, 황제께서 서여국에 오시면 남제에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어찌할지 걱정됐다.소욱은 눈빛이 깊어지며 말했다. "부부는 한 몸이니까."국사와 관련된 일, 예컨대 그가 소주와 정국의 반란을 해결하러 왔다는 등의 이야기는 굳이 송려에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송려는 망설이다 결국 조언을 건넸다. "폐하, 이 황부의 역할은 확실히 쉽지 않습니다. 신은 폐하께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권합니다."소욱의 칼 같은 눈썹이 찌푸
봉장미는 억울함으로 가득 찼다.눈앞의 두 사람은 그녀의 어머니와 지아비였다.누구보다 그녀의 편이야 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믿지 않으니 그녀는 더욱 속상할 수밖에 없었다."군주란 정치에 힘쓰는 자이니, 두통쯤이야 대수로운 일인가요?""고모님이 이 자리에 계셨을 때를 기억해보세요.""수많은 상처를 입으시고, 몇 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하셨어도 단 한 번도 이 자리를 포기하신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왜 저더러 포기하라 하시나요?""언니가 대역을 준비했다는 건 알지만, 전 대역보다 더 잘할 수 있단 말이에요.""왜 위험을 감수해야 하나요?""두 분은 정말 제 마음을 모르세요…""언니는 멀리 계시니 지금 서여국이 얼마나 큰 위기에 처했는지 모르시죠.""소주와 정국은 현재 많은 세작들을 보내고 있어요. 궁중은 이미 그들의 침투를 받았고, 또한 그들은 이미 수만 군대를 주둔시켜 서여국을 공격할 기회만 노리고 있어요.""서여국의 흠이 있다면 바로 제가 황제의 자리에 앉은 것이겠죠.""만약 그들이 제가 가짜라는 것을… 제가 남제의 황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즉시 군대를 보낼 거예요! 대역만으로는 절대 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그녀는 원래 성격이 온화하고 순종적이라 보통은 남이 무슨 말을 해도 반박하지 않았다.하지만 이번만큼은 황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특별히 고집을 부렸다.송려는 왜인지 그녀가 낯설게만 느껴졌다.분명 황후를 모방해야 했기에 장미의 성격이 변한 것이라 생각하였다.송려는 그런 봉장미의 모습에 실망감이 들었다."그럼 나는? 송가는? 이런 것들은 신경 쓰지 않는 거야?"그는 이 서여국에서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원래 자신은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으니 어디서든 자신의 큰 뜻을 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의술로 세상을 구제하고, 병을 치료해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그의 꿈이자 삶의 목표였다.하지만 이 서여국에 온 후에야 그는 자신이 너무 순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한편으로는 황후의 지아비로서
5월 초, 차가운 겨울이 가시고 꽃이 피는 계절이 다가왔다.봉구안과 소욱은 서여국으로 향하는 여정에 올랐다. 가볍게 채비하여 가는 길에 각 성읍을 순시했다. 열무신은 동산국으로 향하기로 결심했다. 탈옥한 손추를 체포하고 약쟁이단을 뿌리째 뽑기 위해서였다. ...... 서여국. 봉장미는 이미 언니의 편지를 받았다. 대역을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서여국의 국사를 대역에게 맡기는 것이 불안해, 여전히 국주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첫째는 대역이 실수하여 화를 부를까 걱정되었고, 둘째로는 서여국의 일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서여국 황실의 혈통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이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송려는 여러 번 그녀를 설득하며 함께 남제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진실을 밝히지는 못했다.그녀의 옛 병이 재발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날 조회를 마친 후, 봉장미는 갑자기 머리가 찢어질 듯이 아파왔다. 그녀는 손에 든 상소문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고통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폐하!" 그녀 곁에 있던 송려는 상황을 보자마자 즉시 앞으로 나와 그녀를 부축했다. 그의 눈빛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궁녀가 즉시 태의를 부르려 했지만, 그가 저지했다. "태의는 부를 필요 없다! 폐하의 몸 상태는 내가 가장 잘 알아." 말하면서 그는 봉장미를 침상으로 안아 눕히고, 곧바로 침을 놓기 시작했다. 봉장미는 머리가 너무 아파서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 "당신... 왜, 제 머리가... 이렇게 아픈 거죠.""마치 폭발할 것 같아요... 정말 너무 아파요..." 그녀의 몸이 아프면, 송려의 마음도 아팠다. 은침을 잡은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두려워하지 마... 괜찮을 거야. 나를 봐, 다른 생각하지 말고.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그는 그녀를 위로하였다. 잠시 후 온 머리에 땀이 흘렀다. 봉 부인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딸이 이토록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분노와 급한 마음이 섞였다. 당시 그 짐
"공자님,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곧 다 됩니다!" 연상은 즐겁게 부산을 떨며, 자신의 이런 행동이 소탁에게는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곧, 음식들이 다 되었다. 연상은 미역국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소탁을 바라보았다. "소 공자님, 오래도록 장수하시길 기원합니다. 모용길처럼...""아, 이런! 제 입이 이렇게 험합니다. 모용길 같은 악인과 소 공자님은 전혀 다르시죠." 소탁은 국을 먹지 않고 연상에게 물었다."너는 행복하니?" 연상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저야 당연히 행복하죠. 나쁜 사람들이 인과응보로 벌을 받지 않았습니까.""게다가 오늘 의원께서 말씀하시길, 공자님의 눈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하였어요.""전 공자님께서 곧 다시 빛을 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연상아, 너와 나는 이뤄질 수 없는 사이야."소탁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도 결국에는 이런 말까지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연상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담담하게 웃었다. "공자님, 저도 알고 있어요. 공자님은 황실의 귀한 분이시고, 저는..." "네 신분 때문이 아니야. 연상아, 난 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너에게 짐이 되고 싶진 않다."이 말을 듣자마자 연상의 눈에 갑자기 한 줄기 빛이 어렸다. "단지 절 걱정하시는 것 뿐이지, 절 싫어하시는 건 아니군요?" 소탁의 목이 갑자기 조여들었다. "나는..." 그의 일생은 큰 기복이 있었고, 혼자 살아가게 될 운명이었다. 한 번도 인연을 찾을 생각을 해본 적 없었고,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할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연상이란 아이는 그에게 있어 더 과분한 존재였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 시간 동안 그녀가 곁에 있어 그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사실이었다. "난 너에게 남녀 간의 사랑을 품고 있지 않아. 설령 내가 여자를 찾는다 해도, 그건 아내지 시녀가 아니야." 연상은 그의 말을 듣고 눈이 크게 떠졌다. 시녀? 소탁은 선의로 그녀에게 일깨워주었다
완부옥은 예로부터 여자를 좋아했다. 남자를 대할 때조차도, 가볍게 희롱하거나 농을 던질 뿐이었다.그런 그녀 앞에 서왕이 호의를 드러내자, 그녀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게다가… 분명 그도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던가.서왕은 그녀의 반응이 예상보다 격해 당황하며 서둘러 설명했다.“우리는 비슷한 처지가 아니더냐? 같이 사는 건… 서로에게 나쁘지 않지 않느냐.”“네가 떠나면, 난 또 다른 이와 혼인해야 할 텐데… 너처럼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여인은 없을 것이다.”“또다시 나 자신을 숨기며 살아야 할 테니… 차라리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완부옥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그 말씀이셨군요.”그가 정말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알고 긴장했건만… 그게 아니라니 다행이었다.……한편 모용길의 죄행이 세상에 밝혀지자, 남제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백성들 또한 믿기 어려워했다.“그 자가 그렇게 오래 살았다고? 분명 불로장생의 술법이 있었던 게지. 폐하께서 그걸 두려워해 제거한 거야.”“약쟁이 사건도 정말 복잡하군. 처음엔 모용욱이 범인이라더니… 이번엔 왜 모용길이 나와? 설마 이번에도 헛다리 짚은 건 아니겠지?”“뭐가 어쨌든 간에 약쟁이는 전부 모용가 짓이란 말이잖아. 그런 집안은 몰아내야지!”분노한 백성들은 결국 모용가로 몰려가 돌과 썩은 달걀을 던지며 고함쳤다.“남제에서 당장 꺼져라!”“모용가 놈들은 천벌 받아야 마땅해! 죄 없는 사람들 고통받게 했잖아!”며칠째 모용가는 백성들의 소란에 시달려, 누구 하나 문밖을 나서지 못했다.……성 외곽의 한 촌락.낡은 농가 안, 여인이 낮은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들었어? 약쟁이 사건 피해자한텐 조정에서 보상금을 준다더라. 장순이네도 그랬잖아. 우리도 당장 관청 가자고, 장대복! 내 말 듣고 있는 거야?”장대복은 장순의 친삼촌이었다. 어린 조카를 생각하면 늘 미안함이 앞섰다.“형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그 모자 둘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당신도 알잖아.”
소욱은 미소를 지었다.“부창부수라 하지 않느냐. 함께 손잡고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황부도 결국 한 여자의 지아비이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서왕은 한껏 조이던 가슴이 결국 힘없이 내려앉았다.그는 즉시 두 손을 모아 절하며 간언했다.“폐하, 그건 절대 안 됩니다!”“폐하께서는 일국의 군주이십니다. 어찌 여인의 그늘 아래 계시겠습니까?”“이 일이 만에 하나라도 세상에 알려진다면, 조롱과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평소 성정이 온화한 서왕이지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기면 은근히 고집이 세지는 성격이었다.소욱은 목소리를 날카롭게 높였다.“그래서 말이지. 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아.”서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폐하도 이게 창피한 줄은 아시는구나…’“황후 마마께서는 폐하께서 황부가 되겠다는 걸 허락하셨습니까?”소욱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황후가 왜 반대하겠느냐? 설마 다른 사내를 맞이해야한단 말이냐?”서왕은 잠시 헷갈려 그 말에 말려들 뻔했다.“그런 뜻이 아니라, 황후마마께서도 이 일이 폐하께 불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계신지 여쭈려는 것입니다.”소욱은 눈을 좁히며 말했다.“내 너를 형제로 생각하니까 이런 말도 하는 것이다.”“이미 내가 결정한 일이야. 누구도 바꿀 수 없어.”“너는 그저 국정을 맡아 잘 처리하거라. 내가 황후와 함께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그러자 서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하지만 폐하 신도 이번에는 휴가를 청하려 했습니다.”매번 국정을 떠맡는 것도 지치는 일이었다.아무리 가까운 형제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지 않겠는가.‘이 나라는 분명 소씨 가문의 일국이지 않는가.’ ‘잠깐…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서왕은 방금 스쳐간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감히 황제에게 이런 불만을 품다니. 마음으로도 짜증을 내다니, 감히 내가?’소욱은 인내심을 다잡으며 물었다.“휴가를 내겠다고? 무슨 연유냐?”서왕은 몇 초간 머뭇거리다, 정색하며 대답했다.“왕비와 함께할 시간이 필요합니다.”소욱은
서왕의 심문이 시작되자, 손추의 수하였던 자객은 결국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그… 그 일은 저희가 꾸민 일입니다.”“모용길이 왕가의 피를 원했고, 손추가 직접 그 일을 맡았습니다.”“하지만 그분은 왕이셨고, 무공도 출중하셨습니다. 손추는 선제를 이간질해 부친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결국 모반의 증거를 조작했습니다.”그 뒤의 이야기는 서왕도 이미 알고 있었다.그의 아버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조정에 충성을 다했다.군주의 명이 떨어지면, 신하는 죽는 수밖에 없었다.유배길에 올라서도 그의 아버지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그는 끝까지 선제가 자신의 결백을 밝혀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약쟁이단이 아버지의 목숨을 노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진실이 드러났을 때, 서왕은 마치 천근 무게의 짐을 내려놓은 듯 가슴이 후련해졌다.그러나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쓰라림으로 번져왔다.그가 정원으로 돌아오자, 멀리 나무 아래서 완부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서왕은 한 걸음에 달려가 그녀를 와락 안아 올렸다.“이번 일을 해결해줘서… 정말 고맙다!”“드디어 모두가 알게 되었어. 부친께서 얼마나 억울하게 누명을 썼는지…”“선제도 진범을 찾고자 했었지만, 결국 오늘에서야 제대로 밝혀졌어. 정말, 정말 고맙다…”서왕은 거듭 고마움을 표현했고, 완부옥은 조금은 지겨워하며 그를 말렸다.무엇보다 이 남자가 이렇게까지 그녀를 직접 껴안을 줄은 몰랐다.조금 불편한 표정이었지만, 완부옥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의 등을 토닥였다.“됐습니다. 됐어요. 그렇게 큰일도 아닌걸요.”“정말 제게 보답하고 싶다면, 폐하께 소환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여쭤봐 주세요.”서왕은 그녀를 놓고,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아직도 포기 못 한 것이냐?!”완부옥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게 아닙니다.”“그저 소환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정인이 아니더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했다. 열무신은 한 발 늦게 도착했다. 그가 천옥에 도착했을 때, 모용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모용길의 시신을 바라보며 열무신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낮은 포효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재앙은 천 년을 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모용길 같은 자는 200살이 넘게 살다가 죽었는데, 맹성주 같은 이는 관례도 치르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이를 생각하니 열무신의 증오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열무신은 천옥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기절해버렸다.황궁. 봉구안은 임시로 자진궁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임 중이었고, 점차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회임이 실감 났다.정말로 아이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소욱이 정해준 태의는 매일 그녀에게 와서 맥을 짚었다. 최근 그녀의 태상은 안정되어, 더 이상 안태약을 마실 필요가 없고 그저 조용히 쉬기만 하면 되었다.아이의 일에 대해서, 봉구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약쟁이 사건도 이미 해결되어, 그녀의 큰 근심을 덜어주었다. 현재 유일하게 장미에 대해서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장미의 옛 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다.그것이 만약 재발한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을 터였다.봉구안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황제가 도착했다. 소욱은 약쟁이 사건의 최신 진전을 가져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열무신이 붙잡은 그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다는구나. 이미 200년 전에 태조는 돌아가셨고, 부활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하엿다. 모든 것이 모용길의 환상이었던 거야.”“짐은 이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을 대중에게 공개할 생각이다. 모용길이 남긴 큰 돈은 모두 약쟁이 매매로 얻은 것이야. 짐은 이 돈을 피해자들과 그 친척들을 위로하는 데 쓸 것이다.”“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그는 걱정이 가득했다.봉구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이 조치는 백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