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부옥은 용상에 앉은 남제 황후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묘하게도 황후에게서 어딘가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봉구안은 아무런 내색 없이 고개를 돌려 소욱을 힐끗 보았다. 그는 마치 산에서 호랑이가 싸우는 광경을 지켜보는 듯, 한가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남강의 사신은 시선을 황후에게 고정했다.“황후마마, 이 여인이 어떻사옵니까?”궁중의 후궁들은 모두 봉구안을 바라보며 내심 황후마마께서 이 남강 사신의 요청을 거절하시길 바라고 있었다. 이미 궁궐에 여인들이 충분히 많았기 때문이다.봉구안은 조용히 사신에게 반문했다.“내가 보기에 참으로 마음에 드는구나. 다만 나의 시녀로 삼는다면, 이 여인이 억울하지 않겠느냐?”남강 사신의 얼굴빛이 순간 달라졌다. 시녀라니? 그들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완부옥은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남제 황제보다는 남제 황후가 더 마음에 들었다. 무언가 아주 딱 맞는 기분이랄까.남강의 사신은 속으로 깊이 고민했다. 완부옥을 남제 황제에게 바치려는 것은 남제의 국운을 끊고 은밀하게 황제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하지만 그녀가 황후의 시녀가 된다면 일이 제대로 성사될 리 없지 않은가?사신은 급히 바로잡았다.“황후마마, 본래 이 여인을 폐하께 바치려 했사옵니다.”봉구안은 이제야 알아차린 듯이 대답했다.“아, 내가 오해했구나. 하긴, 듣자 하니 남강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혼인을 중히 여기며 외족과 혼인을 맺지 않는다고 들었다. 또한 남강의 여인은 타인과 남편을 공유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이 말이 과연 사실인가?”이러한 남강의 규율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남강 사신은 거짓말을 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그렇사옵니다…”봉구안은 태연하게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우리 폐하께서 마음에 드신다 하더라도 이 여인을 받기가 어렵지 않겠느냐?”“게다가, 양국이 조공 관계를 맺은 이후로 여러 나라에서 남제가 호랑이와 이리 같은 나라라 하여 약소국을 괴롭힌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자국의 고유한 유산이 빼앗기는 것을 두려워한 남제의 신하들이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폐하, 절대 불가하옵니다! 아직 이 현영석 광산이 제대로 채굴되지도 않았고, 얼마만큼의 현영석을 얻을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사옵니다. 설령 충분히 많다 해도, 이 나라에도 주고, 저 나라에도 준다면 남는 게 거의 없을 것이옵니다!”“맞습니다, 폐하! 이것이야말로 헛된 수고만 하는 격이 아니옵니까?”이 말에 사신들은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바로 맞섰다.“헛된 수고라니요? 저희는 오십만 냥을 내어 장인들의 품삯으로 쓸 의향이 있사옵니다!”“황제 폐하, 저희 북월도 은 오십만 냥을 내겠사옵니다!”그러자 남제의 백발 노신이 기세등등하게 나섰다.“지금 이게 돈 문제는 아니지 않소! 현영석 같은 귀중한 물건이 과연 얼마의 가치를 지니는지, 그대들도 다 잘 알고 있지 않소!”물론 그들은 알고 있었다.현영석은 매우 드문 희귀한 광물이었다. 지난 백 년 동안 북연국만이 독점하고 있었고, 그 현영석의 풍부한 자원 덕분에 강력한 ‘화룡’을 주조하여 전장에서 무패의 강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타국에서는 현영석을 조금이라도 얻기 위해 비굴한 태도로 천금의 값까지 치렀으나, 손에 쥐는 양은 얼마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북연이 아예 타국에 현영석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기까지 했다. 이제 남제에서 현영석 광산이 발견되었으니, 어느 나라라도 이 이권에 한몫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했다. 설령 자신들이 많은 이익을 얻지 못하더라도, 남제가 이를 독점해 두 번째 강국으로 떠오르는 일은 용납할 수 없었다.소욱은 술잔을 홀짝이며 차가운 눈빛을 드리웠다. 오늘 생일 연회가 참으로 따분하기 그지없었다.사신과 남제의 신하들이 계속 언성을 높이며 다투고 있을 때, 서녀국의 사신이 입을 열었다.“황제 폐하, 서로 한 발씩 물러나 보는 건 어떻사옵니까?”“저희 서녀국은 현영석을 요구하지 않겠사옵니다. 다만 남제께서 새로 개발한 죽화총의 제작을 중단해 주셨으면 하옵니다. 죽화총을 제작
사신들은 허리에 밧줄이 묶여 있어 몸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 말들이 뛰기 시작하자 목숨을 부지하려고 사신들은 다리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두 다리가 네 다리의 속도를 따라갈 리 만무하여 이내 쓰러져 땅바닥에 질질 끌려 다녔다.아무리 모래 땅이라지만 이 고문을 견뎌내기란 여간한 일이 아니었다. 몇 바퀴가 지나자 사방에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옷이 닳아 살가죽이 벗겨지고, 땅바닥에 피자국이 번졌다. 사신들은 연이어 자비를 구했다.“제발,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폐하!”“폐하, 감히 다시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사옵니다!”나머지 사신들은 그 모습을 보고 다행히 함부로 나서지 않았음을 내심 감사했다. 그러나 소요하는 그들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소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술을 마시고 음식을 즐겼으며, 인명이 오가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였다. 연회 분위기는 차갑고 무거웠으며, 누구 하나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하지만 그런 가운데, 유독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남강의 사신이자 여장부인 완부옥이었다.그녀는 남강의 사신이 말에 끌려다니는 참혹한 광경을 보면서도 마음의 짐 없이 술과 음식을 즐겼고, 심지어 궁녀에게 술을 더 올리라 지시할 정도였다. 술에 거하게 취한 뒤, 그녀는 해장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잠시 물러나기까지 하였다.그 모습을 살피던 봉구안은 그저 묵묵히 지켜보며 눈에 냉정한 빛을 담았다.이윽고 두 잔의 차가 지나간 후, 한 나이 많은 신하가 염려의 뜻을 담아 간언하였다.“폐하, 저들은 타국에서 온 사신들이옵니다. 만에 하나 불상사가 발생하면 남제의 대국 체통이 손상될 수도 있사옵니다.”온화하고 어진 성품으로 알려진 서왕도 거들며 폐하께 자비를 청했다. 후궁 중에는 평소 자비심이 깊은 모용선이 일어나 부드럽게 조언했다.“폐하, 오늘은 폐하의 생신이옵니다. 피를 보면 길하지 않으니, 부디 액운을 피하시옵소서.”소욱은 시선을 옆으로 돌려, 봉구안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의 의견을 중요하게 여기는
연상은 내전으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이 사실을 알렸다.봉구안은 암기를 정리하던 중 이 말을 듣고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유사양이 직접 말한 것이냐?” 연상은 고개를 저었다. “직접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그런 낌새였어요…”“또 돌아가신 영비마마 이후로는 폐하께서 그 누구도 자진궁으로 부르신 적이 없다 하니, 더욱 그 말이 오싹했습니다…”“마마, 오늘 밤 정말 자진궁에 가실 건가요?” 봉구안은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건 네가 염려할 일이 아니다. 다만 당장 할 일이 있으니 어서 가서 하도록 하여라.” 연상은 무슨 중대한 일이라도 있는 줄 알고 귀를 기울였으나, 봉구안이 지시한 것은 약환을 가루로 갈아 놓으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벌레를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이 계절에는 궁에 독충이나 뱀이 나오지 않을 터인데 말이다.그날 저녁, 봉구안은 자진궁으로 향했다. 환관이 그녀를 안내하였다. 황제의 침전은 다른 궁실보다 더더욱 엄숙하고 위엄 있게 솟아 있었다.정문에서 주전까지 이어진 백옥 바닥은 아흔아홉 개의 돌로 깔려 있었으며, ‘자진궁’이라 새겨진 세 글자는 황금빛으로 빛나며 젊은 황제의 포부와 위엄을 나타내고 있었다. 주전에는 용과 봉황이 정교하게 조각된 기둥이 서 있었고, 특히 용의 눈빛은 마치 진짜 용이 돌기둥을 휘감고 있는 듯 날카롭게 빛났다. 감히 정면으로 올려다보기가 어려운 기세였다.봉구안의 허리춤에는 향낭이 매달려 있었다. 어둠 속에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주머니에서 약가루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는 남쪽 지방의 독충들을 억제하는 약재로, 그녀가 특별히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이날 연회에서 남방에서 온 완부옥이 도중에 자리를 비운 것을 떠올리니, 궁 안에 무언가를 남겨두었을 가능성이 컸다. 남방에서 헌납한 여인의 이례적인 행동을 떠올리자, 봉구안은 그들이 소욱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되었다. 그래서 오늘 밤 황제가 그녀를 부르지 않았더라
책상과 옥좌 사이의 거리는 한 사람만 간신히 설 수 있을 만큼 좁았다. 봉구안은 책상을 등지고, 소욱을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소욱은 옥좌에 앉아 상반신을 여전히 곧게 세웠지만,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는 자세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그녀가 갑자기 다가온 이유를 알지 못했다. 혹 투항하여 껴안으려는 건가 싶었으나, 그녀는 그저 그 자리에 직립해 있을 뿐이었다. 봉구안은 즉각적으로 다가왔지만, 그럴 새도 없이 책상 위에 벌레가 꿈틀거렸다. 그것은 갈색을 띠며 지렁이처럼 보였고, 작아서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그러나 봉구안은 그 즉시 알아챘다. 바로 '천주충'이었다! 평범해 보이지만, 체내로 들어가면 순식간에 번식하여 무한히 증가하는 벌레였다. 이 벌레들은 사람의 내장을 갉아 먹고 뼈에 붙어, 결국엔 사람을 껍데기만 남기고 파괴해 버렸다. 이 급박한 순간, 그녀는 가장 짧은 거리에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한 손을 허리에 두고 약 가루를 움켜쥐고 내공을 이용해 뒤로 흩뿌렸다. 그러자 천주충은 그 자리에서 즉시 굳더니 바람에 사라져 버렸다. 봉구안이 책상의 천주충을 제거하자, 갑자기 허리로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소욱의 강인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아 단번에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녀는 그대로 그의 품에 부딪힐 뻔했으나, 재빠르게 반응해 두 손으로 그의 가슴을 짚어 충격을 완화했다. 그러나 숨 돌릴 틈도 없이 그녀의 입술이 갑작스레 닿았다. 봉구안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눈앞에는 소욱의 날카롭고 냉소적인 눈빛이 있었다. ……궁 밖에서는 유사양이 먼지떨이를 손에 쥔 채 지루한 표정으로 하늘의 별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때, 진한길이 급히 궁으로 들어갔다. 유사양은 황후가 안에 계시다는걸 알리려 했으나, 촛불이 꺼지지 않은 걸 보고는 아무 일 없으리라 생각하며 말하지 않았다. 또한, 진한길이 너무 급히 전각 안으로 들어간 터라 그는 더더욱 그를 막을 기회가 없었다.하지만, 진한길은 곧 다소 경
침대에 눕는 순간, 봉구안은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황제의 입술을 깨물어 피를 내었다. 피비린내가 그녀를 자극하며, 그녀는 갑자기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녀는 힘껏 밀어내며, 곧바로 이성을 되찾았다.황제는 입술을 뗀 후, 힘이 빠진 듯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의 높은 콧날이 그녀의 목에 닿아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피부를 달구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보려 했으나, 황제의 거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오늘 이곳에 머무르겠느냐.” 이곳은 자진궁. 황 귀비가 아무리 총애를 받았어도 발을 들이지 못한 곳이었다. 그의 말은 곧 그녀에게 뒤를 맡기겠느냐는 뜻이었다. 봉구안은 곧바로 대답했다. “신첩은 이제 돌아가야 하옵니다.” 그녀는 너무 직접적으로 거절하지 않았다. 그를 불쾌하게 만들어선 안 되었다. 황제들의 자존심은 종종 작은 일에도 무너지고, 그럴 때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소욱이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에는 약간의 냉기가 서려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한쪽 무릎을 침상에 세우고, 여전히 그녀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봉구안은 차분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 차분함은 오히려 그에게 불안을 일으켰다. 그의 입술 끝에는 그녀가 물어 터뜨린 피가 남아 있었고, 그로 인해 그에게 살벌한 기운이 더해졌다. 그는 그녀의 손을 붙잡아 손바닥을 펴더니, 그녀의 손목 사이를 세게 물었다. 그러나 봉구안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고 눈살조차 찌푸리지 않았다. 소욱의 눈은 매서운 매의 눈처럼 그녀를 노려보며 손목을 깨물고 혀끝으로 그 자리를 핥았다. 갑자기 봉구안의 손끝이 저릿해졌다. 솔직히 말해, 그녀는 소욱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그녀를 시험하려 들었고, 그녀가 욕심을 부리지 않는지 확인하려 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대체 뭘 하는 걸까? 봉구안
밤은 이미 깊었으나, 완부옥은 아직 잠들지 않았다. 자시가 되어 음기가 무겁게 내려앉자, 그녀는 침상에 앉아 향로에 불을 붙여 독충을 기르고 있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그녀는 눈을 번쩍 뜨고, 서늘하고 음흉한 눈빛을 빛냈다. 잘됐다, 그녀의 새로운 독충을 그들에게 시험해볼 기회였다... 쾅!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문을 부수고 들이닥쳤다. 좁은 방안은 순식간에 사람들로 가득 찼다. 완부옥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크게 휘저었고, 모양이 이상한 매미 같기도 하고 사마귀 같기도 한 독충이 튕겨져 나갔다. 그 독충은 날아서 한 검은 옷의 사람에게 붙었다. 단 한 순간에 그 사람은 온몸이 불타오르는 듯 뜨거움을 느꼈다. 그는 곧바로 비명을 지르며 옷을 벗기 시작했고, 연신 뜨겁다고 외쳤다. 그 불타는 고통은 몸 안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것이었기에 아무리 벗어도 달아오름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견디다 못해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진한길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 남강 여인, 정말 악독하다! 절대 살아남아서는 안 될 존재였다. 그 독충은 순식간에 두 사람을 해쳤다. 침상 위에 있던 완부옥은 자세를 바꾸어, 마치 투계놀이를 구경하듯 흥미롭게 반쯤 누워 있었다. 독충이 세 번째 사람을 해치려 하자, 진한길은 독충의 비행 방향을 예측하고는, 검을 번뜩이며 움직였다. 검이 번뜩이는 순간, 독충은 바닥에 떨어져 죽었다. 황제의 곁을 지키며 호위하는 진한길의 무술 실력은 단연 최고였다.게다가 완부옥이 방금 길들인 독충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진한길의 검에 죽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완부옥은 그제야 눈을 번쩍 뜨고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눈은 서늘한 기운을 내뿜었다. “내 보물을 죽이다니, 죽고싶은 게로구나!” 수십 명의 검은 옷의 사람들이 즉시 진을 쳐 그녀를 포박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그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완부옥은 내력을 뿜어내어 그물을 치더니, 그물의 끝
봉구안은 별안간 눈을 들어 완부옥을 바라보았다.그녀의 평온한 눈빛 속에는 경고의 기색을 띄었다. 완부옥은 마치 나쁜 짓을 하다가 딱 걸린 것처럼 어색해졌고,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그의 가면을 쓰다듬었다. 마치 그의 얼굴을 만지는 듯이, 손끝으로 살며시 가면을 더듬었다. “참 차갑고도 차갑네요...”“혹시, 오라버니 얼굴을 한 번만 볼 수 있을까요?” 그녀는 거칠고 막무가내였지만, 지킬 것은 지킬 줄 알았다. 소환과 다투더라도, 그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화를 내며 인연을 끊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규칙을 어기고 가면을 마음대로 벗긴다면, 그들의 인연은 거기서 끝일 터였다. 봉구안은 말없이 그녀의 상처를 정성스레 싸매기만 했다. 완부옥은 약간 기운을 되찾자, 다시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제 몸을 다 봤으니, 책임을 져야되지 않겠어요?” 봉구안은 손을 씻으며 무심하게 물었다. “듣자하니, 궁에 들어가 후궁이 된다던데.” 완부옥은 놀리듯 반문했다. “왜, 질투라도 나세요?” 봉구안은 차갑고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남녀 간의 감정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제가 후궁이 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완부옥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참으로 무정해요.” “실은, 정말로 궁에 들어갈 뻔했어요.” “하지만 오라버니를 위해 마음을 돌렸죠.” “부족의 배신자가 되더라도, 오라버니와 함께 있고 싶었거든요. 오늘 밤 제게 덤벼든 자들은, 저를 죽이기 위해 그 늙은이들이 보낸 자들일 거예요.”“이젠 갈 곳도 없어요. 오라버니, 절 버리지 마세요...” 그녀는 봉구안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애틋한 사랑이 눈에 어렸다. 봉구안은 손을 씻고 물기를 닦으며, 여유롭고 차분한 태도를 보이며 물었다. “그들이 널 궁에 들게 해서 하려는 일은 무엇이냐. 황제를 암살하려는 것이냐?” 방 안에는 아직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았다. 완부옥은 냉
염 신의가 모용길의 상태를 진찰한 결과, 그의 몸은 웬만한 노인들보다 훨씬 건장했고, 외견상으로도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폐하, 이 자가 망언을 일삼는 이유는… 실성, 즉 정신 착란 증세로 보입니다.”“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건 너희들이다!”모용길이 즉각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그리고 소욱을 향해 고함쳤다.“어서 저놈들을 다 내쫓아라! 나는 태조 폐하를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모두 다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하지만 소욱은 모용길의 광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붙잡아 두거라. 절대 도망 못 치게 해야 한다.”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모용길의 움직임을 단단히 제압했다.염 신의는 환자의 행동에 개의치 않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실성이란 곧, 마음의 병입니다.”“이 병은 뇌와 정신의 균형이 무너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죠.”“예컨대, 저희는 백골을 보지만 이 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이 자의 마음속 집착이 깊고, 오래도록 그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이미 병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니, 소인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의술이란 외상이나 내상은 다스릴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속 병, 특히 집착이라는 건 손쓸 수 없는 법이다.그건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이기에. 소욱은 여전히 ‘태조를 살려야 한다’며 중얼거리는 모용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자였다.그러나 유일하게 태조에 대해서만은 지극한 충성과 집착을 드러내고 있었다.“저 자를 별실에 따로 가둬라. 아무도 면회하지 못하게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자진궁.봉구안은 모용길이 실성 증세를 보였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오늘 제가 본 그 백골은 최근에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 말인즉, 모용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단 얘
봉구안의 한마디가, 마침내 모용길의 본모습을 드러나게 만들었다.그는 쇠창살을 움켜쥐고, 당장이라도 눈앞의 사람을 갈가리 찢어놓고 싶다는 듯이 이를 갈았다.“이놈이! 감히 태조 폐하를 저주하다니!”“태조 황제 폐하께서 이 강산을 개척하지 않으셨다면, 너희 같은 것들이 무슨 자격으로 오늘날을 누리겠느냐!”“특히 너! 소가의 자식! 네놈이 정말 태조께서 살아계시길 바란다면 당장 본좌를 풀어라!”소욱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태조 황제께선 지금 어디 계시느냐.”모용길은 그를 믿지 않았다.“당장 날 풀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만고의 죄인이 될 것이다!”소욱은 억눌린 분노를 담아 담담히 말했다.“태조께서 정말 살아계신다면, 그것은 분명 기쁜 일이겠지.”“하지만… 그 전에 말해보거라. 그분이 어디에 계신지, 반드시 밝혀야겠다.”모용길은 한참이나 소욱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리고 망설임 끝에 마침내, 한 곳의 지명을 내뱉었다.“육지산.”그곳은 황성 내부에 있는 산이었다.소욱은 그 말을 듣자마자 직접 병사를 이끌고 현장으로 향했다.봉구안 역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모용길이 함정을 파놓았을 가능성, 또는 산속에 기관 장치를 숨겨놓았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녀도 소욱을 따라나섰다.한 시진이 지나, 일행은 육지산에 도착했다.하늘은 점점 어두워졌고, 구름이 몰려들어 햇빛을 가리며, 마치 용이 잠든 연못을 둘러싼 기운처럼 음침한 기색이 피어올랐다.거센 바람이 불어와 흙먼지를 일으키며 시야를 가렸다.소욱의 옷자락은 세차게 펄럭였고, 그는 고개를 들어 육지산을 올려다보았다. 눈빛은 칼날처럼 매서웠다.“산에 오른다. 태조를 찾아라!”“예!”그는 봉구안이 회임 중인 것을 고려해, 줄곧 옆에서 손을 뻗어 부축했다.혹시라도 발을 헛디뎌 넘어질까 봐서였다.그러나 봉구안은 전혀 허약하지 않았다.오히려 그녀는 날쌘 걸음으로 병사들보다 먼저 앞서 나갔다.해가 저물 무렵, 마침내 병사들이 한 구덩이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폐하!
봉구안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둘째는 황실의 혈족을 해한 죄이다.”모용길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비웃었다.“허, 무지한 계집이구나. 헛소리도 정도껏 하거라.”“폐하께서 절 죽이고 싶으시다 해도, 이렇게까지 억지로 죄를 뒤집어씌울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그 얼굴에는 오히려 당당함이 어려 있었다.그러나 봉구안의 시선은 흔들림 하나 없었다.“네가 해한 이는 바로 태조 황제 곁을 지키던 사람들이었다.”그 말에 소욱도 놀라 고개를 돌렸다.모용길이… 태조의 측근들을?그녀는 어떻게 그런 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모용길의 웃음은 사라졌고, 시선은 무겁게 봉구안에게 꽂혔다.봉구안은 단 한 순간도 주저하지 않았다.소욱이 언젠가 말했던 ‘옥비석의 재앙’.남제가 건국된 직후, 태조 황제를 지키던 측근들이 하나둘 기이하게 목숨을 잃어갔다.그 당시 사람들은 모두 그것이 옥비석의 반작용 때문이라 여겼지만… 봉구안은 단정했다.“그 죽음들은 전부 너 모용길이 꾸민 짓이 아니더냐.”그 말이 떨어지자, 모용길의 눈동자가 매섭게 떨렸다.봉구안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실은 날카롭게 울렸다.그녀는 시선을 한 치도 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내 짐작이 맞다면, 그 시절의 태조는 이미 병세가 깊었던 상태였을 거야.”“너는 불로장생의 방법을 찾기 위해 사술을 익혔고, 그 실험 대상으로 태조 곁에 있던 이들의 피를 썼지.”“다만 수많은 이들의 피를 말려 죽였는데도 아무런 효험이 없었을 거야.”“그러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게… 옛 서왕, 지금의 서왕의 부친이셨던 거지.”그녀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그 피만이 태조의 몸에 반응을 보였을 거야. 그렇게 태조께서는 ‘살아 있는 시체’가 됐고, 넌 그때부터 계속해서 약쟁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어. 진짜 목적은 태조를 살리는 거였지. 그저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 바로 그게 너의 최종 목표였을 거야.”모용길은 냉소 섞인 웃음을 흘렸다.그러나 봉구안은
그 노도사는 봉구안이 데려온 가짜 도사였다.사실 그는 타국의 평범한 백성일 뿐이지만, 실제로 삼백 년을 살아온 인물이기도 했다.이번 계책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쓰였다.약쟁이 사건의 진짜 배후를 꾀어내기 위해서였다.봉구안은 확신하고 있었다.그 자의 진짜 목적은 불로장생.그렇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단번에 끝을 내야 했다.하지만 마음 한켠엔 조바심이 일었다. 그녀의 표정을 살핀 소욱이 조용히 말했다.“약이 식겠다. 먼저 약부터 마시거라.”……밤이 깊은 시각, 궁 밖에서 전갈이 날아들었다. 노도사를 찾았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소욱과 봉구안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빛을 교환했다.그리고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폐하, 은이와 그 일행이 도사를 납치한 자를 붙잡았습니다! 지금 천옥으로 이송 중입니다!”소욱은 심장이 요동쳤다.진실을… 진실을 확인해야만 했다.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그는 봉구안과 함께 곧장 천옥으로 향했다.반 시진쯤 지나, 천옥.두 사람은 마침내 그 사내와 마주했다.노도사를 납치했던 자이자, 어쩌면 약쟁이단의 진짜 주모자일지도 모를 인물이었다.봉구안은 호위복으로 변장한 채 소욱 옆에 서 있었다.언제 어떤 돌발 상황이 터질지 모르기에, 그녀는 단단히 경계하고 있었다.감옥 안의 남자는 매우 늙어 보였다.눈은 푸르스름하게 흐려졌고, 머리는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확실히 동방세가 그려낸 인물과 유사했다.그는 소욱을 바라보더니, 마치 이미 모든 결말을 알고 있다는 듯 두려움이라고는 없었다.“절 잡기 위해, 아주 큰 판을 짰다던데 과연 사실이었군요.”소욱은 감방 너머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네 정체가 무엇이냐.”그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모용길입니다.”소욱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 이름을 직접 듣는 순간 잠시 멍해졌다.정말로… 이 남자가 그 전설의 모용길이란 말인가.이백 년을 살아온 그 인물이 맞다고?모용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당당한 눈빛으로 말했다.“
사월 하순, 약쟁이 사건이 마침내 일단락되었다.진범은 모용욱. 모용가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죄 방면되었고, 약쟁이단의 전원은 형장에서 참수당할 예정이라는 조서가 내려졌다.소식이 퍼지자 백성들은 너나없이 거리로 뛰쳐나와 입을 모았다.“아이고, 이 일도 드디어 끝났구먼!”“대리사에서 어지간히 수사를 잘했나 봐!”“모용가는 원래부터 수상했지.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그러게 말이야. 혹시 그 모용욱이라는 자, 그냥 바람막이 아니었을까?”이유야 어쨌든, 사건이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에 백성들은 안도했다.이제 다시는 길에서 납치당해 약쟁이로 끌려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해가 높이 뜬 봄날, 도성은 어느새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오월 초, 황성에 또다시 기이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술집과 찻집, 사람들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나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그거 들었어? 얼마 전에 도성에 도사가 나타났는데, 불로장생의 비법이 있다며. 사람들이 그 집 문턱을 닳도록 찾아간다더라!”“거짓말이지. 세상천지에 불로장생이 어디 있어.”“근데 말이야, 그 도사 무려 삼백 살이 넘었대.”“두 왕조를 거치며 살아온 살아 있는 신선이라잖아!”“그래, 나도 들었어. 요새는 대신들이며 귀족들까지 줄줄이 찾아간대.”“오늘은 심지어 궁에까지 불려 들어갔다더라고.”“폐하께서도 믿고 계신다는데… 그럼 뭔가 있긴 있는 거 아냐?”그때, 누군가 문 밖을 가리키며 외쳤다.“저기 봐! 도사님 오신다!”거리 끝에서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이 보였다.작은 가마에 올라타 있었고, 네 명의 제자들이 앞뒤로 가마를 들고 있었다.그 뒤를 수십 명의 도사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따르고 있었고, 그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백성들은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도사님! 제발 불로장생의 길을 가르쳐 주소서!”“도사님, 전 장생은 바라지 않아요. 제 딸 좀 살려주세요. 병이 너무 깊어요.”“도사님은 백병을 다스리신다던데, 제발…”모두가 각자의
소욱은 봉구안의 생각을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었다.방금 전까진 분명 모용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갑자기 태조 황제 묘까지 들먹이는 것일까?그래도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답해 주었다.“태조께서는 동릉에 묻혔다.”도굴을 막기 위해 태조의 능은 총 열세 곳에 분산되어 있었고, 각각의 무덤엔 무거운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허나 그 열세 곳 모두가 가짜였다.진짜 묘는 오직 역대 황제만이 그 위치를 알고 있었다.봉구안은 잠시 망설이더니 곧 단호하게 말했다.“폐하, 능을… 잠시 열어볼 수 있겠습니까?”소욱의 눈썹이 즉시 찌푸려졌다.“안 된다.”태조 황제는 이미 서세를 마친 성조였다.그분의 안식을 함부로 깨뜨릴 순 없었다.봉구안도 그가 이 요청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일은 약쟁이 사건의 진상에 직결되는 문제였다.그녀는 침착히 입을 열었다.“진정 불로장생을 원한 사람은 모용길이 아니라 태조 황제였을 수도 있습니다.”소욱은 너무 놀란 나머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구안아, 지금 네 말은… 너무 황당하구나.”“설마 이 모든 약쟁이 사건의 배후가 태조 황제라는 것이냐?”도무지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동방세가 그린 그 인물은 모용길과 닮았을 뿐, 자신들의 소씨 가문과는 단 한 점도 닮은 데가 없었다.봉구안도 이건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이라 단정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의 직감은 이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모용길이 연막을 치고 모용욱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 뒤, 모용가 전체를 끌어들인 것만 봐도… 그 자는 모용가의 존망 따윈 개의치 않는 듯합니다.”“그렇다면 그 자가 진정으로 지키고자 한 건, 다른 무엇일지도 모릅니다.”그녀의 눈빛이 깊어졌다.“폐하, 이백 년 전의 일은 저희가 직접 본 게 아닙니다.”“하지만 사관의 기록에 따르면, 태조 황제께서는 남산왕, 서왕, 그리고 모용길과는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사이였다고 합니다.”“남산왕은 태조의 명을 따라 세세손손 봉맥을 지켜왔고, 서왕가는 동부를
봉구안은 이전에 모용가의 선조에 대해 조사하면서, 그들의 초상화를 본 적이 있었다.책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태조 황제가 천하를 개척할 당시, 모용길이라는 인물이 군량과 보급을 아낌없이 헌납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승상에 올랐지만 불과 세 해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향년, 마흔.그런데 지금 동방세가 그려낸 배후 인물의 얼굴이 그 모용길과 너무도 흡사했다.소욱 역시 그림을 비교해보았다.한 손엔 방금 받은 초상화, 다른 한 손엔 책에 실린 옛 그림이 들려있었다.똑같다고 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십중팔구 정도 닮은 듯했다!그는 봉구안과 눈을 마주쳤다.“얼굴이 닮은 거겠지. 아니면 모용가 어딘가에 숨어 있던 서자일지도 몰라.”소욱은 분명히 선을 그었다.그 모용길이라는 인물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리 없다는 것이었다.하지만 봉구안은 강호를 누비며 별의별 기이한 일을 겪은 사람이었다.“충북에는 삼백 살 넘은 노인이 있다 들었습니다.”“신무파 장문도 이백십칠 년을 살았다죠.”“남제가 건국된 지 이제 겨우 이백 년 남짓입니다.”“만일 정말 불로장생이 가능하다면, 모용길이 살아 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봉구안은 담담히 말했다.게다가, 그녀를 더욱 확신에 가까운 의심으로 이끄는 단서가 하나 더 있었다.“폐하, 서왕께선 납치 당시에 그들이 피를 원했다고 했습니다.”“그 피를 마시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요.”“이건 아주 중요한 단서입니다.”소욱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서왕 말로는, 그 자가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 하던데... 횡설수설하는 미치광이였다고.”봉구안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들을 때는 허무맹랑하게 들릴지 몰라도, 저는 오히려 모용길이 이번 일의 진짜 배후라 생각합니다.”“모용가의 조상사당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곳에 독초를 재배하려면 내부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지요.”“그리고 모용욱의 검거도 너무 순조로웠습니다.”“모든 것이… 너무 ‘그럴듯’했어요.”“어쩌면, 모든 건 모용길이 준
봉구안은 소욱이 자신을 다시 궁으로 데려온 진짜 이유가, 자신이 서여국에 가면 돌아오지 않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듣고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욱은 조심스레 사과할 말을 고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문득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소욱은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봉구안은 다시금 고개를 숙여, 부드럽게 그의 입술에 한 번 더 입을 맞췄다. 그 동작엔 위로와 다정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이번 일은 폐하를 탓할 일이 아닙니다. 폐하께서 저를 의심하신 건 제가 드린 믿음이 아직 부족했기 때문이겠지요.”“담대연은 말재주가 뛰어납니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흔들릴 만합니다.”그녀는 시선을 마주하고 또박또박 말했다.“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릴게요. 제 마음속에서 가족이 있는 곳이, 진짜 ‘집’입니다.”“폐하께서는 저의 지아비이십니다. 혈육은 아니지만, 저의 여생을 함께할 유일한 사람이지요.”“서여국이 아무리 좋아도, 폐하만큼 소중하진 않습니다.”소욱의 손끝이 떨렸다.“너… 그 말이 진심이냐?”그는 여전히 확신이 없는 듯한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내가 정말 네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야?”봉구안은 오히려 되물었다.“폐하가 아니면 누가 있겠습니까?”그러자 소욱은 손가락을 접으며 셈을 하기 시작했다.“사부랑 사모, 그리고 봉장미, 게다가… 네 뱃속에 있는 이 녀석.”“세상 사람들 다 그러더라. 자식은 어미의 인생 그 자체라고… 지금도 내 순위가 그리 높진 않은데, 아이가 태어나면 내 자리는 더 밀려나겠지.”봉구안은 어이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그녀는 진지하게 설명했다.“사부님과 사모님은 저에게 산처럼 큰 은혜를 주신 분들이지만, 그분들도 장미와 마찬가지로 ‘혈육’일 뿐입니다.”“저와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지요.”“아이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폐하를 마음에 두었기에 생긴 아이인데, 어떻게 그 아버지를 제쳐둘 수 있겠습니까?”“폐하야말로 제가 앞으로 비바람을 함께할 사람, ‘집’이라 부를 수 있는 유
아침 조회.조정에는 분노가 들끓었다. 신료들은 하나같이 모용가를 엄하게 조사하겠다며 격분한 목소리로 외쳤다.“폐하 모용가 사당에서 이상한 점이 드러났고, 모용욱의 저택에서는 약쟁이 소굴이 발견되었습니다. 반드시 모용 일가 전체를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신도 동의합니다! 모용욱 혼자만의 짓일 리 없으며, 모용가의 다른 이들도 직접 연루되진 않았더라도 방조하거나 제대로 알리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조묘 사건 이후, 모용가는 이미 추락할 대로 추락하였다.이번 약쟁이 사건은 수많은 무고한 관리까지 연루되며 사람들의 불신과 공포를 증폭시켰고,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민심을 수습하려면, 이참에 반드시 철저히 죄를 묻고 엄벌해야 했다.결국 모용 일가는 또다시 전원 구금되었다.이전엔 모용선의 아버지, 모용렴이 자신을 희생해 가문을 구했지만… 이번에는 그럴 틈조차 없었다.옥양산.태황태후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동요했다.더 이상 모용가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던 그녀였지만, 이번 일은 너무나도 중대했다.“약쟁이라니... 어떻게 모용가가 그런 일에 휘말릴 수 있단 말이냐…”수십 년을 모신 상궁이 다급히 물었다.“태황태후마마, 이제 어찌해야 할지…”태황태후는 부처상 앞에서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떨구었다.“모용가가 정말 죄를 지었다면, 내가 무슨 낯으로 구하겠느냐. 죄가 없다고 해도 나는 이제 황제 얼굴조차 볼 수 없는데… 어떻게 말을 전하겠느냐.”“이건… 하늘이 우리 모용가를 멸하려는 것이 분명하다…”태황태후는 그날로 병석에 눕고 말았다.황궁, 자녕궁.태후는 태황태후의 병세를 전해 듣고 즉시 태의를 보냈다.곁에 있던 계 상궁이 조심스레 속삭였다.“태후마마, 태황태후께서는 예전에 천룡회와 손잡고 폐하를 몰아내려 하셨고, 이번엔 모용가가 약쟁이 일로 큰 소란을 일으켰으니 굳이 정성을 들이실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그 말에 태후는 눈썹을 찌푸리며 나직이 꾸짖었다.“감히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냐! 입을 조심하지 못하겠느냐. 말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