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봉구안이 소욱의 잘못된 말을 바로잡으려 했으나, 그는 이미 자리를 떠났다.그 자리에 선 그녀는 온몸이 싸늘해졌다.그녀가 완부옥을 두려워한 이유는 그녀의 끈질긴 집착 때문이었다.아무리 차갑게 거절해도 물러서지 않았다.그런데 이제 황제까지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그러나 봉구안은 확신했다.권력과 풍요 속에서 자란 황제가 얼마나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있겠는가.아마 주방 도구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그녀는 다시 화신제 준비를 하기 위해 처소로 돌아갔다.이 축제야말로 중요한 일이었다.이를 통해 맹교먹의 죽음으로 불거진 불리한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한 시진 후.소욱이 돌아왔다.그 뒤로 몇 명의 시위가 각자 접시를 들고 따라왔고, 그 접시들은 정갈하게 식탁 위에 놓였다.다섯 가지 반찬과 한 가지 국, 고기와 채소가 균형 잡혔고, 색과 향, 모양이 모두 흠잡을 데 없었다.봉구안은 어리둥절했다.이 모든 걸 정말 소욱이 했다는 말인가?소욱은 옷에 묻은 연기 냄새를 풍기며 호위들에게 물러가라 명했다.봉구안이 의아하게 쳐다보는 가운데, 그는 태연히 입을 열었다.“내가 농사나 밭일을 모를 것 같으냐?”“이 모두가 내의 손끝에서 나온 것이니, 한번 맛보아라.”봉구안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젓가락을 들었다.먼저 초록빛 채소를 집어 한 입 먹었다.맛이... 괜찮았다.궁중의 대령숙수가 만든 화려한 음식이 아니라, 군영에서 먹던 소박한 음식이 떠오르는 맛이었다.그녀는 국을 한 모금 들이켰다.생선은 부드럽고, 국물은 신선하며 깊은 맛이 났다.고개를 들어 소욱을 바라보았다.그는 여유로웠다.“내가 어릴 적 궁을 떠나 무술을 익혔으니, 그리 여린 황자는 아니지.”“하늘을 나는 새도, 물속의 물고기도 손쉽게 요리할 수 있다.”“믿기 어렵거든, 내가 직접 나서는 것을 보여주마.”이 모습은 봉구안의 눈에 더 이상 폭군도 아니었고, 오히려 평범한… 요리사 같았다.“믿습니다.”그녀는 그의 소매 끝에 묻은 기름 자국과, 튀긴 기
궁문 밖.진한길이 입을 열었다.“궁문 밖에 많은 백성과 병사들이 모여 소란을 피우고 있사옵니다. 그들은 등문고를 두드리며, 맹 소장군을 위해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아뢰며, 더불어 폐하께 황후마마의 폐위를 요구하고 있사옵니다.”진한길은 상황을 차분히 설명했으나, 소욱의 눈빛은 살기를 띠어 마치 한겨울 서릿발처럼 차가웠다.“어찌된 일이냐. 궁 내외에서 소란을 일으키던 자들은 이미 잡아 들여 조사 중이지 않더냐.”진한길이 대답했다.“그리 하였사오나, 최근 며칠 사이 누군가 또 다시 움직이고 있는 듯하옵니다.”소욱은 목소리를 낮춰 명령을 내렸다.“막는 것보다 흘려보내는 것이 낫다. 흘려보낸다면 그 근원을 찾아야 하느니라. 궁문 밖에 모인 자들은 이용당한 무지한 자들일 뿐. 그들이 더 떠들게 두어라. 떠들수록 허점이 드러날 것이니.”“폐하께서 옳으시옵니다. 곧바로 조처하겠사옵니다!”소욱은 복도 끝에 서서 먼 곳을 응시했다.남제 조정에는 그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암수들이 숨어 있었다.맹성주가 군사를 사사로이 움직였다는 모함부터, 군 배치도가 도난당한 일까지, 지금 드러난 자들은 단지 바보 같은 졸개들일 뿐이었다.이번 맹교먹의 사건을 통해, 그 근원을 반드시 샅샅이 밝혀낼 작정이었다.잠시후 소욱은 내전 안으로 들어왔다.그 안에 있던 사람은 아직도 단잠에 빠져 있었다.늘 세상사에 밝은 소욱조차, 이 순간만큼은 참으로 고요하고 아름답다고 느꼈다.조정.대신들은 아침에 벌어진 궁문 밖의 사건에 대해 분주히 논의하고 있었다.“폐하, 등문고가 울렸으니, 이제는 이 일을 더는 덮을 수 없을 듯하옵니다.”“폐하, 백성들의 뜻을 따르는 것이 어떠하옵니까?”소욱의 시선은 얼음처럼 차갑게 내려앉았다.“그대들은 민심에 순응하려는 것이냐, 아니면 민심을 두려워하는 것이냐?”“폐하, 소신들은 그저…”소욱이 다시 묻는다.“지금 이 일이 마치 내 손으로 맹교먹을 죽였다는 것처럼 번지고 있다. 만약 저들이 폐위를 요구한다면, 그대들 또한 민심이라 여기고 따르겠
황궁.봉구안은 오백이 보낸 소식을 받았다.황성 내의 비단 가게들을 이미 모두 조사했고, 지난 6년 동안 꽃무늬 비단 구매 명부를 얻었다는 내용이었다.그 명부는 이미 한차례 선별을 한 상태로, 독을 넣은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이들은 표기되어 있었다. 대부분이 황성 사람들이었고 신원이 확실했다.하지만 남은 이들은 주로 행적이 일정하지 않은 떠돌이 상인들로, 추가 조사가 필요했다.봉구안은 궁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기에, 내일 궁을 나가 볼 계획을 세웠다.바로 그때, 최 상궁이 꽃 한 무더기를 들고 들어왔다.“마마, 이 꽃들은 화신제에 필요한 것들이옵니다. 살펴보십시오.”봉구안은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알아서 준비하거라.”최상궁은 감격하며 고개를 숙였다.“예, 마마! 온 힘을 다해 이 화신제를 잘 준비하겠사옵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가빈과 강빈도 찾아왔다.“황후마마, 요 며칠 간 궁 밖에서 마마를 헐뜯는 험담이 넘쳐납니다. 심지어 조정에서도 황제께 황후 폐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아무리 맹 소장군이 국운을 지킨 훌륭한 장군이었다고는 하지만… 소장군의 죽음 때문에 마마께 누명을 씌우다니 말도 안 됩니다!” 가빈은 분개하며 말했다.강빈은 비교적 차분하게 추측했다.“마마, 이런 험담은 최근 며칠 사이 갑자기 퍼진 것이니, 분명 누군가 뒤에서 일을 꾸미고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걱정스러운 건, 황제께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마마를 희생양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봉구안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조정의 일은 궁 안에서 함부로 입에 담지 말거라.”두 사람은 서로를 한 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예, 황후마마. 죄송합니다… 마마가 걱정되어서 그만…”“저희가 꽃을 엮는 일을 도와드릴까요?”현흥궁.녕비와 현비는 꽃을 감상하며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하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언니, 이 꽃들을 이렇게 잘 키워 놓고 정말 영화궁으로 보내 황후마마가 화신제에서
봉명헌이 쾅소리를 내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폐하, 소인을 부디 용서하소서!”소욱의 얼굴은 철처럼 굳어 있었다.이 바보 같은 놈이 감히 자신에게 이런 난잡한 물건을 가져오다니!황제의 곁에서 시중들던 유사양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대체 무슨 물건이기에 폐하를 이토록 화나게 만든 것일까?봉명헌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꼈다.끝났다!이번에도 일을 망친 것 같았다.하지만, 보통의 남자라면 이런 물건을 마다하지 않을 텐데……봉명헌은 어릴 적부터 임이랑의 밑에서 자라며 교활하게 처세하는 법을 배웠다.또 폐하가 자신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의외로 좋아한다는 점도 눈치챘다.그는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 섞인 목소리로 애원했다.“형님, 소인을 용서해주세요. 제가 잘못했사옵니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않겠사옵니다……”소욱은 그가 연신 ‘형님’이라고 부르자 조금씩 화가 누그러졌다.더군다나, 이번 일은 부적절한 물건을 바쳤을 뿐, 용서받지 못할 큰 죄도 아니었다.“짐이 황후 대신 너를 잘 가르쳐야 마땅하나, 이번이 처음이니 그냥 넘어가겠다.”“이 물건은 압수하도록 하마. 어서 물러가거라!”봉명헌은 황급히 머리를 찧으며 외쳤다.“감사합니다, 폐하! 감사합니다, 형님!”소욱은 그가 답답하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꺼져라!”이 멍청한 놈, 정말 봉가 사람답지 않다.황후의 친 남동생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발로 차버렸을 것이다.봉명헌이 떠난 후, 소욱은 유사양에게 명령했다.“이 물건을 밖으로 가져가 불태워라.”“예, 폐하.”유사양이 조심스럽게 물건을 들고 나가려는 순간, 소욱이 다시 불렀다.“잠깐.”소욱은 마음을 바꾸었다.대체 무슨 물건이기에 봉명헌이 천금을 준다 해도 팔지 않았을까 궁금해졌다.황제로서 음양 교합의 도리를 배우는 것은 필수 과정이었다.소욱은 15, 16세 때 이미 이런 책을 접하며 자신이 이 도리를 통달했다고 자부해왔다.그러나 이번 물건을 펼쳐 보자,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 내용에 사로잡혔다.
봉구안의 얼굴이 굳어졌고, 등은 곧게 편 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한 손이 소욱에게 붙잡혔다.그가 무슨 의도를 가진 건지 알아챈 그녀는 곧바로 그의 손을 떼어냈다.소욱은 갑자기 그녀의 턱을 잡아들며 키스하려는 자세를 취했다.봉구안은 바로 뒤로 물러났지만, 그는 간신히 멈춰서며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그 웃음에는 장난기와 조소가 섞여 있었다.“내가 보기엔 너, 낯짝이 두꺼워서 무서울 게 없는 줄 알았는데. 왜 당황하는 거지? 소장군... 넌 경험도 많다고 하지 않았던가?”그는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걸어 올리며 목선이 드러나도록 살짝 고개를 들게 했다.그리고 불쑥 그녀의 목덜미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봉구안의 등에는 순간적으로 전율이 흘렀다.“놓아주세요….”소욱은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고는 갑자기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너무 답답해서 그래. 나 좀 쉬게 해다오.”마치 극도로 피곤한 사람이 잠시 쉬어갈 안식처를 찾은 듯, 온몸의 긴장을 풀고 있었다.또한 방금 전까지 맹렬히 날뛰던 야수가 이 순간 주인의 무릎 위에 얌전히 웅크리는 것처럼…조금은 차분해졌고, 심지어 조금은 순종적인 모습이었다.잠시 후, 그는 목소리를 낮추어 허스키하게 말했다.“나도 어쩔 수 없어. 다 너희 동생 때문이야. 네 동생이 올린 이 해당집이 문제라고.”“황후… 나 정말 너무 힘들어. 어쩌면 좋소?”그가 말을 하며 또다시 그녀의 손을 잡아 무언가를 하려 하자, 봉구안은 남은 손으로 그의 손을 쳐내며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말도 안 되는 짓은 그만하시옵소서. 저를 안고 있으면 더 힘들어질 것이옵니다.”제기랄, 봉명헌!소욱은 팔에 힘을 더 주어 그녀를 더 꼭 껴안았다. 그의 숨결이 그녀의 귓가를 간지럽혔다.“그래도 안고 있어야겠어… 힘들어도, 안고 있어야겠어.”“황후, 정말 그대를 좋아하오.”“그대도 알겠지만, 나는 지금도 절제하며 그대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난 그냥, 그대가 알았으면 좋겠어. 내가 그대를
흥혜궁.정비는 평소의 온화하고 단정한 모습과 달리,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꽃봉오리를 쥐어 부숴버렸다.“알아냈느냐.”추홍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아래로 깔았다.주인의 분노를 느낀 그녀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했다.“백성들이 등문고를 울리며 황후 폐위를 청했지만, 폐하께서는…”그녀는 몰래 정비의 얼굴을 흘끗 보고, 빠르게 시선을 내렸다.“폐하께서는 여론을 무릅쓰시고 민심에 따르지 않으셨사옵니다.”정비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그녀의 웃음은 지극히 온화했다.“폐하께서는 정말 황후를 감싸시는구나.”“마마,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정비는 창밖을 바라보았다.금오가 이미 지고, 날이 저물고 있었다.“폐하가 황후를 지키고 싶으셔도, 수많은 백성과 장병들이 동의할지는 모르겠구나.”그녀는 기다릴 수 있었다.맹 소장군의 죽음은 아직 완전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적어도 북방 지역과 북대영에는 아직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을 터였다.거기 있는 병사들은 전부 맹교먹의 부하였다.그들이 소란을 일으키기 시작한다면, 북방은 위태로워질 것이 분명했다.그 소식이 만약 북방에 닿기라도 한다면… 폐하께서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못할 것이다.…영화궁.밤 자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봉구안은 궁으로 돌아왔다.그녀는 온몸에 밤행복을 걸치고 내전으로 들어섰는데, 침상에 앉아 있는 소욱을 발견했다.그는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며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돌아올 줄 알았느냐?”입으로는 엄하게 꾸짖었지만, 그의 눈빛은 은연중에 그녀가 다치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있었다.봉구안은 그에게 가볍게 예를 표했다.“확인할 일이 많아 시간이 늦었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아직 쉬지 않으셨사옵니까?”소욱은 화가 치밀어 올라 말했다.“황후가 이렇게 늦게까지 안 돌아오는데, 내가 어찌 잠들 수 있겠느냐?”봉구안은 공손하게 대답했다.“겸사겸사 최근 소문을 조사했는데, 모용가와 관련이 있는 듯 하옵니다.”소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모용가가?”그는 눈을 들어
오후.내시가 황제의 명을 받고 흥혜궁으로 가서 교지를 전했다.추홍은 정비와 함께 교지를 들을 준비를 하며 좋은 일이 있을 거라 기대했다.그러나 곧 두 사람의 얼굴은 경악과 당혹감으로 물들었다.“...그러므로 정비의 봉호를 박탈하고, 육궁을 협조하는 권한을 거두며, 귀인으로 강등한다. 즉시 주전에서 이거하도록 하라!”“그럴 리가 없사옵니다!”추홍은 무의식적으로 소리쳤다.“폐하께서 마마를 이렇게 대하실 리가 없습니다!”마마께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으셨는데 어찌 폐위당하실 수 있단 말인가!정비는 명문가의 자손답게 품위를 유지하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고 교지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황제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절을 올렸다.그러나 교지를 전한 내시가 떠나자 그녀는 갑자기 옆의 의자에 앉아 멍하니 바닥을 응시했다. 손은 성지를 꽉 쥔 채로 떨렸다.추홍은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마마,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폐하께서는 분명 마마를 각별히 아끼셨는데... 어떻게 마마의 빈위를 폐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주인과 하인의 운명은 하나로 연결된 법. 추홍은 정비보다 더 조급하고 불안했다.정비는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켰다.그녀의 눈에는 쓰라림과 함께 희미한 쓸쓸함이 비쳤다.빈에서 귀인으로 강등되는 것은 지극히 간단한 일.하지만... 적어도 이유는 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추홍은 평소의 마마와 다른 모습에 당황하며 금세 눈물이 맺혔다.“마마, 제가 지금 만수궁으로 가서 태황태후께 알려드리겠사옵니다!”“태황태후께서는 마마를 그토록 아끼시니, 폐하께서 마마를 폐위시키는 것을 절대 좌시하지 않으실 것이옵니다!”…만수궁.태황태후는 자리에 앉아 얼굴에 분노와 실망을 띠고 있었다.소욱은 그녀의 왼편에 앉아 공손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주변의 궁인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었다.태황태후는 소욱을 향해 분노하며 말했다.“나는 동의할 수 없다! 네가 꼭 정비를 폐하려 한다면, 차라리 나도
“마마…”연상이 돌아왔다.그녀의 마음은 무척이나 복잡했다.봉구안의 지시대로 도망치지 못한 것이 오히려 누를 끼칠까 두려웠다.하지만 봉구안의 곁에서 시중을 들며 함께 고난을 겪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다.“마마, 폐하께서…”연상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말하려 했지만, 봉구안은 차갑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 “이미 알고 있다.”소욱이 그녀의 신분을 숨긴 일로 연상을 탓하지 않을 것이기에, 연상이 궁에 머무르는 것도 무방했다.하지만 연상은 여전히 자신이 무능하다고 느꼈다.고개를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조금만 더 빨리 도망쳤더라면…”“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다.”봉구안이 담담히 말하며, 문밖에 서 있는 호위병을 바라보았다.그는 소욱의 사람이었고, 연상은 그의 호위를 받으며 돌아왔다.최 상궁은 연상이 궁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불편했다.저 아이가 돌아오면 자신이 봉구안의 신임을 잃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최 상궁은 더욱 서둘러 봉구안의 곁으로 다가가며 말했다.“마마, 이틀 후가 화신제를 여는 날이옵니다. 제가 준비한 것들을 한 번 보시겠사옵니까?”연상이 호기심에 물었다.“화신제요? 마마, 그게 무엇인가요?”봉구안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설명했다.“사월 초, 민간에서는 꽃의 신을 기리는 풍습이 있다.”“이번 폐하께서 백성과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 크게 준비하셨지…”연상은 신기하다고 느꼈지만, 화신제보다 더 궁금한 것은 봉구안이 과연 궁에 머물기로 결심한 것인지였다.…소욱은 모용선을 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모용 가문에도 벌을 내렸다.그녀의 부친 모용회는 관직이 강등되어 변명할 기회조차 없이 황성을 떠나야 했다.만수궁.모용선은 태황태후 앞에 꿇어앉아 눈물을 글썽였다.태황태후는 그녀를 때릴 수도 없고, 애가 타며 나무랐다.“애당초 너는 총명한 아이라고 여겼는데…”“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인 것이냐!”“너 스스로를 망치고, 가문까지 연루시켰다!”“선아, 정말이지 실망스럽구나!”“네 사
"공자님,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곧 다 됩니다!" 연상은 즐겁게 부산을 떨며, 자신의 이런 행동이 소탁에게는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곧, 음식들이 다 되었다. 연상은 미역국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소탁을 바라보았다. "소 공자님, 오래도록 장수하시길 기원합니다. 모용길처럼...""아, 이런! 제 입이 이렇게 험합니다. 모용길 같은 악인과 소 공자님은 전혀 다르시죠." 소탁은 국을 먹지 않고 연상에게 물었다."너는 행복하니?" 연상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저야 당연히 행복하죠. 나쁜 사람들이 인과응보로 벌을 받지 않았습니까.""게다가 오늘 의원께서 말씀하시길, 공자님의 눈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하였어요.""전 공자님께서 곧 다시 빛을 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연상아, 너와 나는 이뤄질 수 없는 사이야."소탁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도 결국에는 이런 말까지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연상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담담하게 웃었다. "공자님, 저도 알고 있어요. 공자님은 황실의 귀한 분이시고, 저는..." "네 신분 때문이 아니야. 연상아, 난 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너에게 짐이 되고 싶진 않다."이 말을 듣자마자 연상의 눈에 갑자기 한 줄기 빛이 어렸다. "단지 절 걱정하시는 것 뿐이지, 절 싫어하시는 건 아니군요?" 소탁의 목이 갑자기 조여들었다. "나는..." 그의 일생은 큰 기복이 있었고, 혼자 살아가게 될 운명이었다. 한 번도 인연을 찾을 생각을 해본 적 없었고,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할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연상이란 아이는 그에게 있어 더 과분한 존재였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 시간 동안 그녀가 곁에 있어 그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사실이었다. "난 너에게 남녀 간의 사랑을 품고 있지 않아. 설령 내가 여자를 찾는다 해도, 그건 아내지 시녀가 아니야." 연상은 그의 말을 듣고 눈이 크게 떠졌다. 시녀? 소탁은 선의로 그녀에게 일깨워주었다
완부옥은 예로부터 여자를 좋아했다. 남자를 대할 때조차도, 가볍게 희롱하거나 농을 던질 뿐이었다.그런 그녀 앞에 서왕이 호의를 드러내자, 그녀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게다가… 분명 그도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던가.서왕은 그녀의 반응이 예상보다 격해 당황하며 서둘러 설명했다.“우리는 비슷한 처지가 아니더냐? 같이 사는 건… 서로에게 나쁘지 않지 않느냐.”“네가 떠나면, 난 또 다른 이와 혼인해야 할 텐데… 너처럼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여인은 없을 것이다.”“또다시 나 자신을 숨기며 살아야 할 테니… 차라리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완부옥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그 말씀이셨군요.”그가 정말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알고 긴장했건만… 그게 아니라니 다행이었다.……한편 모용길의 죄행이 세상에 밝혀지자, 남제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백성들 또한 믿기 어려워했다.“그 자가 그렇게 오래 살았다고? 분명 불로장생의 술법이 있었던 게지. 폐하께서 그걸 두려워해 제거한 거야.”“약쟁이 사건도 정말 복잡하군. 처음엔 모용욱이 범인이라더니… 이번엔 왜 모용길이 나와? 설마 이번에도 헛다리 짚은 건 아니겠지?”“뭐가 어쨌든 간에 약쟁이는 전부 모용가 짓이란 말이잖아. 그런 집안은 몰아내야지!”분노한 백성들은 결국 모용가로 몰려가 돌과 썩은 달걀을 던지며 고함쳤다.“남제에서 당장 꺼져라!”“모용가 놈들은 천벌 받아야 마땅해! 죄 없는 사람들 고통받게 했잖아!”며칠째 모용가는 백성들의 소란에 시달려, 누구 하나 문밖을 나서지 못했다.……성 외곽의 한 촌락.낡은 농가 안, 여인이 낮은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들었어? 약쟁이 사건 피해자한텐 조정에서 보상금을 준다더라. 장순이네도 그랬잖아. 우리도 당장 관청 가자고, 장대복! 내 말 듣고 있는 거야?”장대복은 장순의 친삼촌이었다. 어린 조카를 생각하면 늘 미안함이 앞섰다.“형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그 모자 둘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당신도 알잖아.”
소욱은 미소를 지었다.“부창부수라 하지 않느냐. 함께 손잡고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황부도 결국 한 여자의 지아비이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서왕은 한껏 조이던 가슴이 결국 힘없이 내려앉았다.그는 즉시 두 손을 모아 절하며 간언했다.“폐하, 그건 절대 안 됩니다!”“폐하께서는 일국의 군주이십니다. 어찌 여인의 그늘 아래 계시겠습니까?”“이 일이 만에 하나라도 세상에 알려진다면, 조롱과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평소 성정이 온화한 서왕이지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기면 은근히 고집이 세지는 성격이었다.소욱은 목소리를 날카롭게 높였다.“그래서 말이지. 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아.”서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폐하도 이게 창피한 줄은 아시는구나…’“황후 마마께서는 폐하께서 황부가 되겠다는 걸 허락하셨습니까?”소욱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황후가 왜 반대하겠느냐? 설마 다른 사내를 맞이해야한단 말이냐?”서왕은 잠시 헷갈려 그 말에 말려들 뻔했다.“그런 뜻이 아니라, 황후마마께서도 이 일이 폐하께 불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계신지 여쭈려는 것입니다.”소욱은 눈을 좁히며 말했다.“내 너를 형제로 생각하니까 이런 말도 하는 것이다.”“이미 내가 결정한 일이야. 누구도 바꿀 수 없어.”“너는 그저 국정을 맡아 잘 처리하거라. 내가 황후와 함께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그러자 서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하지만 폐하 신도 이번에는 휴가를 청하려 했습니다.”매번 국정을 떠맡는 것도 지치는 일이었다.아무리 가까운 형제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지 않겠는가.‘이 나라는 분명 소씨 가문의 일국이지 않는가.’ ‘잠깐…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서왕은 방금 스쳐간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감히 황제에게 이런 불만을 품다니. 마음으로도 짜증을 내다니, 감히 내가?’소욱은 인내심을 다잡으며 물었다.“휴가를 내겠다고? 무슨 연유냐?”서왕은 몇 초간 머뭇거리다, 정색하며 대답했다.“왕비와 함께할 시간이 필요합니다.”소욱은
서왕의 심문이 시작되자, 손추의 수하였던 자객은 결국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그… 그 일은 저희가 꾸민 일입니다.”“모용길이 왕가의 피를 원했고, 손추가 직접 그 일을 맡았습니다.”“하지만 그분은 왕이셨고, 무공도 출중하셨습니다. 손추는 선제를 이간질해 부친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결국 모반의 증거를 조작했습니다.”그 뒤의 이야기는 서왕도 이미 알고 있었다.그의 아버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조정에 충성을 다했다.군주의 명이 떨어지면, 신하는 죽는 수밖에 없었다.유배길에 올라서도 그의 아버지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그는 끝까지 선제가 자신의 결백을 밝혀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약쟁이단이 아버지의 목숨을 노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진실이 드러났을 때, 서왕은 마치 천근 무게의 짐을 내려놓은 듯 가슴이 후련해졌다.그러나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쓰라림으로 번져왔다.그가 정원으로 돌아오자, 멀리 나무 아래서 완부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서왕은 한 걸음에 달려가 그녀를 와락 안아 올렸다.“이번 일을 해결해줘서… 정말 고맙다!”“드디어 모두가 알게 되었어. 부친께서 얼마나 억울하게 누명을 썼는지…”“선제도 진범을 찾고자 했었지만, 결국 오늘에서야 제대로 밝혀졌어. 정말, 정말 고맙다…”서왕은 거듭 고마움을 표현했고, 완부옥은 조금은 지겨워하며 그를 말렸다.무엇보다 이 남자가 이렇게까지 그녀를 직접 껴안을 줄은 몰랐다.조금 불편한 표정이었지만, 완부옥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의 등을 토닥였다.“됐습니다. 됐어요. 그렇게 큰일도 아닌걸요.”“정말 제게 보답하고 싶다면, 폐하께 소환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여쭤봐 주세요.”서왕은 그녀를 놓고,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아직도 포기 못 한 것이냐?!”완부옥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게 아닙니다.”“그저 소환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정인이 아니더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했다. 열무신은 한 발 늦게 도착했다. 그가 천옥에 도착했을 때, 모용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모용길의 시신을 바라보며 열무신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낮은 포효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재앙은 천 년을 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모용길 같은 자는 200살이 넘게 살다가 죽었는데, 맹성주 같은 이는 관례도 치르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이를 생각하니 열무신의 증오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열무신은 천옥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기절해버렸다.황궁. 봉구안은 임시로 자진궁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임 중이었고, 점차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회임이 실감 났다.정말로 아이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소욱이 정해준 태의는 매일 그녀에게 와서 맥을 짚었다. 최근 그녀의 태상은 안정되어, 더 이상 안태약을 마실 필요가 없고 그저 조용히 쉬기만 하면 되었다.아이의 일에 대해서, 봉구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약쟁이 사건도 이미 해결되어, 그녀의 큰 근심을 덜어주었다. 현재 유일하게 장미에 대해서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장미의 옛 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다.그것이 만약 재발한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을 터였다.봉구안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황제가 도착했다. 소욱은 약쟁이 사건의 최신 진전을 가져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열무신이 붙잡은 그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다는구나. 이미 200년 전에 태조는 돌아가셨고, 부활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하엿다. 모든 것이 모용길의 환상이었던 거야.”“짐은 이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을 대중에게 공개할 생각이다. 모용길이 남긴 큰 돈은 모두 약쟁이 매매로 얻은 것이야. 짐은 이 돈을 피해자들과 그 친척들을 위로하는 데 쓸 것이다.”“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그는 걱정이 가득했다.봉구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이 조치는 백성
마지막으로 태조를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이미 병석에 누워 숨이 끊어질 듯했다. [모용길... 내 아우야, 너는 내 마음을 알지. 짐에겐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이 많다. 새 정치를 세우지 못했고, 태자는 아직 어리지. 난 단지 하늘이 인색해서 짐에게 몇 년을 더 주지 않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단 일 년이라도 짐이 일 년만 더 산다 해도 좋을 텐데... 남쪽의 수해, 북쪽의 기근, 남제는 사방에서 적에 둘러싸여 있고, 북연은 우리를 업신여기며, 내부에는 반적이 있는데... 어찌할까, 염라대왕이 목숨을 거두어 가니, 짐은... 그저 손을 놓을 수밖에 없구나. 아우야, 나라의 일을 모두 네 손에 맡기노니, 너는 태자를 보필하라. 너는 그의 고모부이자, 또한 그의 상부이니. 아우야, 짐은 오직 너만 믿는다.]기억 속의 태조가 눈앞의 그와 겹쳐졌다. 모용길은 낮은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의 눈에 태조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했다."형님! 형님께서 원하던 것을 제가 마침내 이루어냈습니다! 형님께서는 불로장생할 것이고, 이 남제는 반드시 형님의 통치 아래 번영하며, 장차 천하를 통일하여 대업을 이룰 것입니다!"당초 남제가 새로 세워졌을 때 태조는 약속대로 그에게 강산의 절반을 주려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태조의 뜻이 천하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태조와 계속해서 사방을 정벌하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태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어, 그는 마침내 모든 짐을 내려놓고 평안히 떠날 수 있게 되었다.모용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로 가득 찬 시선 속에서,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그를 데리러 온 것이다. 그는 팔을 뻗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여인은 몸을 숙여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대고, 그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대인, 남은 길은 제가 당신과 함께 걸을게요." 모용길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함께..."
열무신은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웠다.그가 아니었다면, 또 누군가 새로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그는 사로잡은 자객들을 직접 데리고 돌아와 천옥에 넘긴 뒤, 단 한숨도 쉬지 않고 곧장 심문에 들어갔다.자객들은 처음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하지만 모용길이 이미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의 희망도 이미 무너진 셈이었다.이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저희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폐태자를 노린 건 그 분의 ‘혈’ 때문이었습니다.”그들은 태조 황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불로장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태조 황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백골이었습니다. 이백 년 전, 모용길이 시신을 도굴해갔을 때부터 이미 시체에 불과했습니다.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건, 망상이었어요!”“애초에 죽은 자였다고요!”그들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 말투에는 모용길을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이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쓸모없는 일에 목숨을 건 그를 그들은 미련한 바보로 여겼다.같이 심문을 진행하던 관리가 물었다.“너희는 어떻게 아는 것이냐?”“태조 황제께서 살아난 적이 없다는 걸 말이다.”“모용길이 그렇게까지 집착한 이유가 뭐였지?”자객들 중 한 명이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모용길이 약쟁이를 만든 건, 그들로 실험해 불로장생의 약을 완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약을 제조한 의원들은 손수 기록을 남겼고, 그 손책들엔 분명히 쓰여 있었죠. 이백 년 동안 그들이 상대한 건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시체’였다고요.”“아무리 약을 먹여도 살아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입니다.”다른 자객 하나는 공포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모용길은… 이미 오래전에 미쳐 있었습니다. 그는 자주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마치… 마치 그 자리에 태조 황제가 서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에요.”또 다른 자객이 덧붙였다.“그 자는 단지 태조 황제를 살리려 한 게 아닙니다. 자신도 불로장생 하고 싶었던 거에요.”“그리고 그게… 그 자는 정말로 성공했
태황태후는 직접 선조를 만나기 위해 천옥으로 향하려 했다.하지만 황제의 명이 내려져 있었다.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모용길을 접견할 수 없었다.하는 수 없이, 태황태후는 궁으로 전갈을 보냈다.하지만 설령 황제가 허락하더라도 모용길이 누구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그는 오직 태조는 아직 살릴 수 있다는 집념 하나에 사로잡혀 있었다.그런 그가 천옥에 갇힌 지금, 마음은 타들어가듯 초조했다.“그 어린 황제놈은 어딨느냐! 어서 나를 뵈러 오라 하지 못할까!”모용길에게 후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는 생각했다.이 나라 남제는, 태조와 자신이 함께 세운 나라였다.그런 자신을 막고 있는 소욱 따위가 어찌 감히 군림한단 말인가.천옥에 갇힌 날부터,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소리쳤다.“태조를 살려야 한다! 어서 황제를 데려와라!”하지만 그는 몰랐다.그의 그 모든 고함과 분노는 소욱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며 그를 흔들기 위한 계략이었단 사실을 말이다.그리고 다섯째 날.천옥의 간수가 냉정한 얼굴로 명을 전했다.“폐하의 어명이십니다.”“모든 죄를 자백하고 문서에 서명하지 않는 한, 이곳을 나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죽을 때까지 말입니다.”모용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허튼소리 마라! 그 어린놈이 과연 알기나 한단 말이냐, 내가 이 모든 짓을 왜 해왔는지를 말이다!”간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나으리, 뭐가 그리 두렵습니까?”“자백했다고 당장 목을 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태조께서 하사하신 면사금패는 아직도 가지고 계시잖아요?”그 말에 모용길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그렇다.면사금패만 있으면, 그는 죽지 않는다.황제 따위가 그를 처형할 권한은 없었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태조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었다.결심이 선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종이와 붓을 가져오너라!”두 시진 후.모용길이 쓴 자백서가 궁으로 들여졌다.그 문서는 곧장 어전으로 올라갔다.문서를 넘겨받은 소욱은 한 장,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
염 신의가 모용길의 상태를 진찰한 결과, 그의 몸은 웬만한 노인들보다 훨씬 건장했고, 외견상으로도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폐하, 이 자가 망언을 일삼는 이유는… 실성, 즉 정신 착란 증세로 보입니다.”“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건 너희들이다!”모용길이 즉각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그리고 소욱을 향해 고함쳤다.“어서 저놈들을 다 내쫓아라! 나는 태조 폐하를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모두 다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하지만 소욱은 모용길의 광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붙잡아 두거라. 절대 도망 못 치게 해야 한다.”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모용길의 움직임을 단단히 제압했다.염 신의는 환자의 행동에 개의치 않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실성이란 곧, 마음의 병입니다.”“이 병은 뇌와 정신의 균형이 무너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죠.”“예컨대, 저희는 백골을 보지만 이 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이 자의 마음속 집착이 깊고, 오래도록 그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이미 병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니, 소인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의술이란 외상이나 내상은 다스릴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속 병, 특히 집착이라는 건 손쓸 수 없는 법이다.그건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이기에. 소욱은 여전히 ‘태조를 살려야 한다’며 중얼거리는 모용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자였다.그러나 유일하게 태조에 대해서만은 지극한 충성과 집착을 드러내고 있었다.“저 자를 별실에 따로 가둬라. 아무도 면회하지 못하게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자진궁.봉구안은 모용길이 실성 증세를 보였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오늘 제가 본 그 백골은 최근에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 말인즉, 모용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단 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