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이 빛나는 하늘 아래, 봉구안은 점점 졸음이 밀려왔다.소욱은 그녀를 안아 들며, 평소의 엄격하고 권위 있는 모습 대신, 산들바람처럼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돌아가서 자자.”집의 마당에 도착했을 때, 진한길은 황제가 봉구안을 안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소욱의 시선은 곧장 마당에 서 있는 또 다른 사람에게 닿았다.그 사람은 바로 서왕이었다.서왕은 이 장면을 보고 눈빛 속에 잠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이 곳엔 어쩐 일로 온 것이냐?” 소욱이 입을 열자마자 날카롭게 물었다.서왕은 고개를 공손히 숙이며 말했다.“신, 폐하의 안위를 염려하여 찾아왔습니다.”소욱은 품에 안긴 사람을 한 번 힐끗 본 후, 그녀를 먼저 안채로 데리고 들어갔다.서왕은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눈빛을 드리웠다.황제가 어찌하여 소환과 이렇게 가까운 사이가 되었단 말인가?잠시 후, 소욱이 밖으로 나왔다.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그의 모습은 이 소박한 집과 어울리지 않았다.“밖에서 이야기하자.” 소욱은 서왕에게 말했다.서왕은 그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누가 감히 짐의 행적을 조사하라 했느냐?” 소욱의 눈빛은 차가웠다.그는 비록 서왕과 형제 같은 우애를 나눴지만, 자신의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서왕은 손을 모아 공손히 예를 표하며 대답했다.“영비마마이십니다.”“폐하께서 위험한 상황에 처할까 염려하여, 신에게 신경 써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소욱은 고개를 끄덕였다.“이 일은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된다.”서왕은 공손히 대답하였다.“명심하겠습니다.”이내 곧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폐하, 그 소환과는…”“짐은 그에게 천룡회를 조사하라 맡겼을 뿐이다. 그가 자객에게 다리를 다친 것은 우연일 뿐.”소욱의 말에 서왕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신은 이만 궁으로 돌아가겠습니다.”서왕이 떠난 뒤, 소욱의 눈빛은 한층 더 차가워졌다.그날 밤, 소욱은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궁으
강호와 조정은 오랫동안 분리되어 서로 간섭하지 않는 관계를 유지해 왔다.그러나 이번에 관군이 각 문파를 대대적으로 토벌하기 시작하자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사전에 아무런 소문도 들리지 않았기에, 심지어 많은 첩자를 심어놓은 천룡회조차도 이 사태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이러한 상황에서 천룡회의 법사는 즉각적으로 명령을 내렸다.“철수하라.”그 순간, 면사포를 쓴 한 여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곧장 법사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교주께서 이미 이 일을 아셨습니다. 법사님, 이번에 조정을 자극한 건 중대한 실수입니다!”법사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이 어린 계집애가 감히 나를 나무라다니?’“넌 즉시 교주를 보호하라. 교주께 전해라. 내가 가서 모든 것을 자백하고 사죄하겠다고.”다른 문파에서 구원을 청하러 온 사람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부리나케 자리를 떴다. 관군의 위세는 그들이 도저히 대적할 수 없었다.이렇게 각 문파는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하룻밤 사이에 강호는 완전히 뒤집히고 말았다.조정에서는 체포된 강호의 인사들을 각지의 감옥에 가두었다. 감옥은 포로로 가득 찼고, 강호의 사람들이 연합하여 억울함을 호소하며 황제를 독재자로 비난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황성.조정 회의에서 대신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마침내 한 늙은 대신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폐하, 강호의 일은 강호에서 끝내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왜 폐하께서 그들을 체포하셨는지요? 그들이 어떤 국법을 어겼단 말입니까?”용좌에 앉은 황제는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대들은 걱정하지 마시오,”“짐은 그저 통천탑을 건설하려 하는 것이니. 그래서 사람들을 좀 데려와 일을 시킬 생각이오.”“그 사람들이 한가하게 있는 것도 문제 아니겠소?”그런데 한 대신이 용감하게 나섰다.“폐하, 이는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황제의 눈빛이 한순간에 서늘해졌다.“부당하다고? 아주 좋소. 그대도 가서 탑을 짓도록 하시오.”그 대신은 순간 얼어
성 서쪽의 한적한 팔각정에서 두 형제가 마주 앉아 있었다.탁자 위에는 바둑판이 놓여 있었고, 이미 끝을 향해 가는 국면이었다.소탁은 옅은 미소를 띠며 여전히 과거의 너그럽고 온화했던 형의 모습처럼 보였다.“폐하의 바둑 수법이 예전과는 다릅니다.”소욱은 무심하게 대답했다.“모든 것은 변하는 법이지.”소탁의 음성은 맑고 부드러웠지만, 어딘가 억눌린 감정이 느껴졌다.“한 가지 묻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폐하.”“그 당시의 일, 폐하께서는 제가 결백하다고 믿으셨습니까?”과거 태자가 친형제를 살해하고 당파를 결성해 반란을 꾀한 사건은 조정을 경악에 빠뜨렸다.소욱의 시선은 멀리 있는 호수로 향했고, 태연하게 말했다.“과거는 지나간 일이지 않느냐. 나는 이미 그 일을 잊었다.”소탁은 희미하게 웃었지만, 그 눈빛에는 씁쓸함이 어려 있었다.“솔직히 말하자면, 그 당시 저는 폐하께서 황좌에 앉게 될 사람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왕위 계승 다툼에서 소욱은 이미 배제된 인물이었다.조정 대신들 또한 그에게 등을 돌렸다.그러나 선제는 의외의 결정을 내렸고, 황위를 소욱에게 넘겼다.소탁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것이 세상의 예측 불가능한 이치이겠죠.”말을 하며 소탁은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소욱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소욱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과거에 그들이 남모를 우애를 나누었다 해도, 지금의 상황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소욱에게 있어서 소탁은 그저 낯선 인물에 불과했다.결국 군주는 군주이고, 신하는 신하다. 소욱은 이른바 친형제들조차도 경계의 대상일 뿐이었다.“오늘 날 보자고 한 이유는 무엇이냐.”소탁은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천천히 대답했다.“작별을 고하기 위해서 잠깐 들린 것 뿐입니다.”소욱의 미간이 약간 찌푸려졌다.소탁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곧 떠날 것입니다. 우리 형제는 다시는 만날 일이 없겠죠. 폐하께 안녕을 고하고 싶었습니다.”소욱의 표정이 단호해졌다.“어디로 가려는 것
봉구안은 며칠간 휴식을 취한 뒤, 이미 바닥을 디딜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다.그에 비해 범진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동방세는 그녀와 의논한 끝에, 범진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대체 약물을 찾아보기로 했다.범진은 이를 알게 되자, 단호히 거절했다.“아니, 괜찮습니다. 저는 범진입니다. 충분히 버텨낼 수 있어요!”그는 절대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그날 오후, 동방세는 봉구안의 방으로 와서 한 장의 초상화를 그녀에게 보여주었다.“이 사람이 바로 영산파의 여제자, 장설이오.”봉구안은 초상화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곧 눈빛이 가라앉았다.“그날 밤의 복면 여인은 이 사람이 아니네.”드러난 눈매뿐 아니라 체형도 달랐다.동방세는 초상화를 거두며 말했다.“보아하니, 그 여자가 널 속였군. 하지만 그 여자가 널 구해준 것도 사실이니, 적인지 아군인지 도통 알 수 없군…”봉구안 역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밤이 되어 소욱이 약속대로 찾아왔다.그는 첫마디부터 봉구안의 부상을 걱정했다.봉구안은 답했다.“이미 많이 나아졌습니다.”소욱은 안심하면서도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그렇게 되면 그녀를 안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달빛이 아름다운 밤이었다. 세 사람은 마당에서 격식 없이 식사를 시작했다.막 젓가락을 들었을 무렵,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진한길이 나가서 문을 열고 보니,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흔빈마마?!”연상이 문 밖에 서 있었지만, 들어오지 않고 망설이고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안쪽을 향했고, 마침내 소욱을 발견했다.소욱도 그녀를 보았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곧바로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여기까지 어떻게 찾아왔느냐.”연상도 사실 오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태황태후가 그녀를 강제로 보내 황제를 궁으로 모셔오라고 명령한 터였다.어쩔 수 없이 용기를 내야 했다.“폐하, 신첩은 그저 폐하를 궁으로 모시러 왔습니다.”툭!봉구안이 집던 고기가 식탁 위로 떨어졌다.동방세는 그녀를 돌아보며 눈길
가벼운 입맞춤은 깃털이 스치는 듯 조심스러웠다. 마치 그녀를 아프게 할까 염려하듯, 순간적으로 닿았다가 곧 떨어졌다.소욱의 주량은 뛰어났다.황제로서, 궁중 연회에서 술을 피할 수 없었다.천 잔도 취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지 못했다면,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을 터.오늘 마신 술 정도는 그를 취하게 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지금 그는 의도적으로 취한 척하며 그녀를 품에 껴안았다.봉구안은 방금의 키스에 놀라 몸을 밀쳐냈다.뒤로 물러나다가 등 뒤로 벽에 부딪쳤고, 남자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등을 받쳤다.그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뜨거움은 옷을 뚫고 피부로 전해졌고, 방금의 키스보다 더 강렬하게 그녀를 떨리게 했다.그녀는 순간 멍해졌다.소욱은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 뒤를 받치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목덜미로 고개를 파묻었다.마치 한순간에 모든 힘을 잃어버린 듯, 약간 굽은 자세로 서 있었다.“짐은... 정말 후회한다.”“하지만 짐은 너를 보내야만 했다.”“황후... 나의 황후...”그는 명백히 술에 취해 사람을 착각하고 있었다.봉구안은 단호히 그를 밀쳐냈다.그녀의 호흡은 흐트러졌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는 미련 없이 소욱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그 후, ‘쿵’ 소리를 내며 문을 닫았다.문을 거세게 닫은 후, 그녀는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소욱의 눈빛은 왠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진한길이 와서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그는 밀쳐냈다.객방으로 돌아가서야, 그는 침대에 앉아 방금 일을 떠올리며, 입술 사이에 아직 그녀의 온기가 남아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다음 날 아침.소욱은 어젯밤 일에 대해 전혀 모르는 척했다.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봉구안에게 작별을 고했다.봉구안은 가면 속에서 냉담한 눈빛을 띄고 있었다.황제가 떠난 후, 동방세가 그녀에게 말했다.“조정이 각 대문파의 제자를 대대적으로 체포하고 있소. 천룡회의 잔당은 일부는 갇히고, 일부는 탑 건설에 끌려가고 있다 하
남자는 가면을 벗고 소년처럼 잘생긴 얼굴을 드러냈다.보아하니 아직 관례도 치르지 않은 나이였지만, 눈빛에는 또래를 훨씬 뛰어넘는 무거움이 서려 있었다. 마치 독기 가득한 약물에 오래도록 잠겨 있던 듯했다.그는 봉구안이 놀라 멍해 있는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꼬리를 올려 말했다.“왜, 절 기억하지 못하겠습니까? 형수님.”그는 ‘형수님’이라는 두 글자를 매우 힘주어 말했으나, 이는 호의적인 느낌이 아니었다.봉구안의 몸이 약간 굳어지고, 동공이 미세하게 떨렸다.“정아…”그가 친근하게 부르는 이 호칭을 듣자마자, 단정의 눈에 분노가 서리고 이내 붉어졌다.“그렇게 부르지 마!”“예전에야 내 형수였겠지. 지금은,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잖아?”“그러니… 나와 가깝게 지내는 것처럼 행동하지 마. 정말 역겨우니깐!”봉구안의 손끝이 싸늘해졌다.단회욱과 꽤 닮은 그 얼굴을 보며, 그녀의 눈에 시큼한 눈물이 어렸다.그래도 그녀는 다행이었다. 단정이 살아 있었다니.처음 그를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는 겨우 열세네 살 정도의 나이에 병약하고 마른 몸으로 침상에 누워 지냈다. 말도 더듬으며 사람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마치 겁에 질린 토끼 같은 소년이었다.단회욱이 그녀를 그에게 소개했을 때, 소년은 머리를 숙이며 수줍게 그녀를 ‘형수님’이라고 불렀다.그 당시 그녀와 단회욱은 결혼을 계획 중이었으나 아직 예를 올리진 않았고, 단회욱이 그를 바로잡았다.하지만 소년은 이상하리만치 고집스러웠다.이후 그의 병이 조금 나아지고, 말수도 늘었다. 그는 그녀에게 손수 만든 풀메뚜기를 선물했고, 그녀도 그를 친동생처럼 여기며 자유각에 그를 위한 방을 마련해 두었다. 결혼 후 그를 데려와 함께 살 계획이었다.그가 이 사실을 알고는 유난히 기뻐하며 눈에 빛을 반짝였다.하지만… 단회욱이 죽었다.단회욱이 죽은 뒤, 그녀는 단정을 찾아갔다.그는 단회욱의 유일한 혈육이었고, 그녀에게도 중요한 가족이었다.그녀는 단회욱을 대신해 그 아이를 잘 돌볼 생각이었
검은 옷을 입은 자는 말했다. 그녀는 단회욱이 천수지독때문에 죽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또한, 단회욱이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그녀에게 5년의 수명을 줬다는 말을 했다.봉구안은 아직까지도 이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했고, 때로는 그것이 그녀를 흔들려는 검은 망토의 거짓말이라고 의심했다.하지만 지금, 단정의 말투에서도 무언가 숨겨진 뜻이 있었다.그녀는 반드시 이것을 제대로 물어봐야만 했다!“네 형의 일, 네가 도대체 뭘 알고 있는 거지?”그러나 단정은 얼굴을 어둡게 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당신 따위가 알 자격은 없어.”말이 끝나기 무섭게, 짧은 칼이 그의 목에 닿았다.단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너 나를 죽이겠다는 거야? 봉구안, 너 미쳤어?”봉구안의 눈빛은 싸늘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얌전히 굴어.”다시 만난 기쁨은 잠시였다. 이내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지금의 단정은 이미 천룡회의 사람이었다.그가 나타난 이유가 단순히 그녀와 상봉하기 위해서일 리는 없었다.게다가 그는 검은 옷과 함께 몇 차례나 단회욱의 이름을 내세워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혔으니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그를 제압한 뒤, 봉구안은 주위를 빠르게 살폈다.다른 매복자는 없었다.이를 본 단정은 비웃음을 터뜨렸다.“내가 너를 덫에 빠뜨리려고 했다면, 진작 천룡회의 멍청이들에게 네 정체를 알렸겠지.”“너는 맹성주만이 아니라 소환이기도 하니까.”“너의 모든 것을 공개했을 거라고!”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봉구안은 손으로 그의 목을 내려쳤다.소년은 흰 눈을 뜬 채, 그녀의 어깨에 쓰러졌다.기절하기 전, 단정의 머릿속엔 단 하나의 생각만이 있었다.‘독한 여자! 내가 먼저 손을 썼어야 했는데!’봉구안은 고개를 숙여 그를 내려다보았다.나이는 먹었고 키도 자랐지만, 성격은 여전히 어린아이 같았다.계속 떠들어대니, 우선 데리고 가기로 했다.그가 어떤 일을 겪었고,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그녀는 하나씩 밝혀낼 것이다.단회욱이 죽기 전
봉구안은 확신했다. 단회욱은 죽었다고.그의 시신은 그녀가 직접 묻었다.단정은 그녀의 반응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그는 비웃으며 말했다.“뭐야, 기쁘지 않은거야?”“형님이 아직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했나 봐? 그를 대면할 용기도 없어진 거야?”“역시 너 같은 여자가 다른 남자랑 얽히고설킨 상태에서 무슨 면목으로 내 형을 보겠어…”봉구안은 그의 쓸데없는 말에 귀를 닫았다. 그녀의 눈빛은 엄숙하고 차가웠지만, 그 속에는 불안한 불길이 타올랐다.“정말 살아 있는 거야? 단정, 진실을 말해!”단정은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진실은 이거야. 내 형은 살아 있어! 너도 그 ‘5년 약속’이라는 걸 알고 있지? 잘 생각해봐. 만약 내 형이 죽었다면, 천룡회가 무슨 근거로 그 약속을 지키겠어? 그들이 바보도 아니고 말이야.”봉구안의 가슴이 갑자기 쿵 내려앉았다.그 ‘5년 약속’이 존재한다면 무엇이 그 약속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 결국, 구두로 합의한 약속은 당사자 중 한 명이 죽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특히, 천룡회 같은 자들에게는 말이다…그래서 단회욱이 정말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봉구안의 내면은 복잡해지기 시작하였다.한편으로는 믿고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천룡회가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단정을 보내 흔들려는 계략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그 순간, 단정은 더욱 방자하고 거칠게 웃으며 마치 사냥감을 완벽히 제압한 사냥꾼처럼 즐겼다. 그는 유혹하듯 말했다.“형님이 어디 있는지 알고 싶어? 그럼 어서 그 개 같은 황제를 죽여. 그러면 알려줄게.”봉구안은 그에게 다가가 그의 옷깃을 움켜쥐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정말 단회욱이 살아 있다면, 왜 나를 찾아오지 않은 거지?”“그가 정말 살아 있다면, 넌 왜 이제 와서야 나를 찾아온 것이지?”“말해! 이유가 뭐야?”단정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뭐야? 벌써 초조해진 거야?”“정말 알고 싶으면 내가 말한 대로 황제를 죽여. 아니면 설마… 네가 그를 좋아하게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했다. 열무신은 한 발 늦게 도착했다. 그가 천옥에 도착했을 때, 모용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모용길의 시신을 바라보며 열무신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낮은 포효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재앙은 천 년을 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모용길 같은 자는 200살이 넘게 살다가 죽었는데, 맹성주 같은 이는 관례도 치르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이를 생각하니 열무신의 증오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열무신은 천옥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기절해버렸다.황궁. 봉구안은 임시로 자진궁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임 중이었고, 점차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회임이 실감 났다.정말로 아이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소욱이 정해준 태의는 매일 그녀에게 와서 맥을 짚었다. 최근 그녀의 태상은 안정되어, 더 이상 안태약을 마실 필요가 없고 그저 조용히 쉬기만 하면 되었다.아이의 일에 대해서, 봉구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약쟁이 사건도 이미 해결되어, 그녀의 큰 근심을 덜어주었다. 현재 유일하게 장미에 대해서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장미의 옛 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다.그것이 만약 재발한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을 터였다.봉구안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황제가 도착했다. 소욱은 약쟁이 사건의 최신 진전을 가져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열무신이 붙잡은 그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다는구나. 이미 200년 전에 태조는 돌아가셨고, 부활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하엿다. 모든 것이 모용길의 환상이었던 거야.”“짐은 이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을 대중에게 공개할 생각이다. 모용길이 남긴 큰 돈은 모두 약쟁이 매매로 얻은 것이야. 짐은 이 돈을 피해자들과 그 친척들을 위로하는 데 쓸 것이다.”“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그는 걱정이 가득했다.봉구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이 조치는 백성
마지막으로 태조를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이미 병석에 누워 숨이 끊어질 듯했다. [모용길... 내 아우야, 너는 내 마음을 알지. 짐에겐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이 많다. 새 정치를 세우지 못했고, 태자는 아직 어리지. 난 단지 하늘이 인색해서 짐에게 몇 년을 더 주지 않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단 일 년이라도 짐이 일 년만 더 산다 해도 좋을 텐데... 남쪽의 수해, 북쪽의 기근, 남제는 사방에서 적에 둘러싸여 있고, 북연은 우리를 업신여기며, 내부에는 반적이 있는데... 어찌할까, 염라대왕이 목숨을 거두어 가니, 짐은... 그저 손을 놓을 수밖에 없구나. 아우야, 나라의 일을 모두 네 손에 맡기노니, 너는 태자를 보필하라. 너는 그의 고모부이자, 또한 그의 상부이니. 아우야, 짐은 오직 너만 믿는다.]기억 속의 태조가 눈앞의 그와 겹쳐졌다. 모용길은 낮은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의 눈에 태조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했다."형님! 형님께서 원하던 것을 제가 마침내 이루어냈습니다! 형님께서는 불로장생할 것이고, 이 남제는 반드시 형님의 통치 아래 번영하며, 장차 천하를 통일하여 대업을 이룰 것입니다!"당초 남제가 새로 세워졌을 때 태조는 약속대로 그에게 강산의 절반을 주려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태조의 뜻이 천하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태조와 계속해서 사방을 정벌하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태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어, 그는 마침내 모든 짐을 내려놓고 평안히 떠날 수 있게 되었다.모용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로 가득 찬 시선 속에서,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그를 데리러 온 것이다. 그는 팔을 뻗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여인은 몸을 숙여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대고, 그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대인, 남은 길은 제가 당신과 함께 걸을게요." 모용길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함께..."
열무신은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웠다.그가 아니었다면, 또 누군가 새로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그는 사로잡은 자객들을 직접 데리고 돌아와 천옥에 넘긴 뒤, 단 한숨도 쉬지 않고 곧장 심문에 들어갔다.자객들은 처음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하지만 모용길이 이미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의 희망도 이미 무너진 셈이었다.이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저희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폐태자를 노린 건 그 분의 ‘혈’ 때문이었습니다.”그들은 태조 황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불로장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태조 황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백골이었습니다. 이백 년 전, 모용길이 시신을 도굴해갔을 때부터 이미 시체에 불과했습니다.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건, 망상이었어요!”“애초에 죽은 자였다고요!”그들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 말투에는 모용길을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이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쓸모없는 일에 목숨을 건 그를 그들은 미련한 바보로 여겼다.같이 심문을 진행하던 관리가 물었다.“너희는 어떻게 아는 것이냐?”“태조 황제께서 살아난 적이 없다는 걸 말이다.”“모용길이 그렇게까지 집착한 이유가 뭐였지?”자객들 중 한 명이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모용길이 약쟁이를 만든 건, 그들로 실험해 불로장생의 약을 완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약을 제조한 의원들은 손수 기록을 남겼고, 그 손책들엔 분명히 쓰여 있었죠. 이백 년 동안 그들이 상대한 건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시체’였다고요.”“아무리 약을 먹여도 살아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입니다.”다른 자객 하나는 공포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모용길은… 이미 오래전에 미쳐 있었습니다. 그는 자주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마치… 마치 그 자리에 태조 황제가 서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에요.”또 다른 자객이 덧붙였다.“그 자는 단지 태조 황제를 살리려 한 게 아닙니다. 자신도 불로장생 하고 싶었던 거에요.”“그리고 그게… 그 자는 정말로 성공했
태황태후는 직접 선조를 만나기 위해 천옥으로 향하려 했다.하지만 황제의 명이 내려져 있었다.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모용길을 접견할 수 없었다.하는 수 없이, 태황태후는 궁으로 전갈을 보냈다.하지만 설령 황제가 허락하더라도 모용길이 누구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그는 오직 태조는 아직 살릴 수 있다는 집념 하나에 사로잡혀 있었다.그런 그가 천옥에 갇힌 지금, 마음은 타들어가듯 초조했다.“그 어린 황제놈은 어딨느냐! 어서 나를 뵈러 오라 하지 못할까!”모용길에게 후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는 생각했다.이 나라 남제는, 태조와 자신이 함께 세운 나라였다.그런 자신을 막고 있는 소욱 따위가 어찌 감히 군림한단 말인가.천옥에 갇힌 날부터,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소리쳤다.“태조를 살려야 한다! 어서 황제를 데려와라!”하지만 그는 몰랐다.그의 그 모든 고함과 분노는 소욱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며 그를 흔들기 위한 계략이었단 사실을 말이다.그리고 다섯째 날.천옥의 간수가 냉정한 얼굴로 명을 전했다.“폐하의 어명이십니다.”“모든 죄를 자백하고 문서에 서명하지 않는 한, 이곳을 나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죽을 때까지 말입니다.”모용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허튼소리 마라! 그 어린놈이 과연 알기나 한단 말이냐, 내가 이 모든 짓을 왜 해왔는지를 말이다!”간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나으리, 뭐가 그리 두렵습니까?”“자백했다고 당장 목을 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태조께서 하사하신 면사금패는 아직도 가지고 계시잖아요?”그 말에 모용길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그렇다.면사금패만 있으면, 그는 죽지 않는다.황제 따위가 그를 처형할 권한은 없었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태조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었다.결심이 선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종이와 붓을 가져오너라!”두 시진 후.모용길이 쓴 자백서가 궁으로 들여졌다.그 문서는 곧장 어전으로 올라갔다.문서를 넘겨받은 소욱은 한 장,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
염 신의가 모용길의 상태를 진찰한 결과, 그의 몸은 웬만한 노인들보다 훨씬 건장했고, 외견상으로도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폐하, 이 자가 망언을 일삼는 이유는… 실성, 즉 정신 착란 증세로 보입니다.”“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건 너희들이다!”모용길이 즉각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그리고 소욱을 향해 고함쳤다.“어서 저놈들을 다 내쫓아라! 나는 태조 폐하를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모두 다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하지만 소욱은 모용길의 광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붙잡아 두거라. 절대 도망 못 치게 해야 한다.”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모용길의 움직임을 단단히 제압했다.염 신의는 환자의 행동에 개의치 않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실성이란 곧, 마음의 병입니다.”“이 병은 뇌와 정신의 균형이 무너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죠.”“예컨대, 저희는 백골을 보지만 이 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이 자의 마음속 집착이 깊고, 오래도록 그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이미 병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니, 소인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의술이란 외상이나 내상은 다스릴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속 병, 특히 집착이라는 건 손쓸 수 없는 법이다.그건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이기에. 소욱은 여전히 ‘태조를 살려야 한다’며 중얼거리는 모용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자였다.그러나 유일하게 태조에 대해서만은 지극한 충성과 집착을 드러내고 있었다.“저 자를 별실에 따로 가둬라. 아무도 면회하지 못하게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자진궁.봉구안은 모용길이 실성 증세를 보였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오늘 제가 본 그 백골은 최근에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 말인즉, 모용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단 얘
봉구안의 한마디가, 마침내 모용길의 본모습을 드러나게 만들었다.그는 쇠창살을 움켜쥐고, 당장이라도 눈앞의 사람을 갈가리 찢어놓고 싶다는 듯이 이를 갈았다.“이놈이! 감히 태조 폐하를 저주하다니!”“태조 황제 폐하께서 이 강산을 개척하지 않으셨다면, 너희 같은 것들이 무슨 자격으로 오늘날을 누리겠느냐!”“특히 너! 소가의 자식! 네놈이 정말 태조께서 살아계시길 바란다면 당장 본좌를 풀어라!”소욱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태조 황제께선 지금 어디 계시느냐.”모용길은 그를 믿지 않았다.“당장 날 풀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만고의 죄인이 될 것이다!”소욱은 억눌린 분노를 담아 담담히 말했다.“태조께서 정말 살아계신다면, 그것은 분명 기쁜 일이겠지.”“하지만… 그 전에 말해보거라. 그분이 어디에 계신지, 반드시 밝혀야겠다.”모용길은 한참이나 소욱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리고 망설임 끝에 마침내, 한 곳의 지명을 내뱉었다.“육지산.”그곳은 황성 내부에 있는 산이었다.소욱은 그 말을 듣자마자 직접 병사를 이끌고 현장으로 향했다.봉구안 역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모용길이 함정을 파놓았을 가능성, 또는 산속에 기관 장치를 숨겨놓았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녀도 소욱을 따라나섰다.한 시진이 지나, 일행은 육지산에 도착했다.하늘은 점점 어두워졌고, 구름이 몰려들어 햇빛을 가리며, 마치 용이 잠든 연못을 둘러싼 기운처럼 음침한 기색이 피어올랐다.거센 바람이 불어와 흙먼지를 일으키며 시야를 가렸다.소욱의 옷자락은 세차게 펄럭였고, 그는 고개를 들어 육지산을 올려다보았다. 눈빛은 칼날처럼 매서웠다.“산에 오른다. 태조를 찾아라!”“예!”그는 봉구안이 회임 중인 것을 고려해, 줄곧 옆에서 손을 뻗어 부축했다.혹시라도 발을 헛디뎌 넘어질까 봐서였다.그러나 봉구안은 전혀 허약하지 않았다.오히려 그녀는 날쌘 걸음으로 병사들보다 먼저 앞서 나갔다.해가 저물 무렵, 마침내 병사들이 한 구덩이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폐하!
봉구안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둘째는 황실의 혈족을 해한 죄이다.”모용길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비웃었다.“허, 무지한 계집이구나. 헛소리도 정도껏 하거라.”“폐하께서 절 죽이고 싶으시다 해도, 이렇게까지 억지로 죄를 뒤집어씌울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그 얼굴에는 오히려 당당함이 어려 있었다.그러나 봉구안의 시선은 흔들림 하나 없었다.“네가 해한 이는 바로 태조 황제 곁을 지키던 사람들이었다.”그 말에 소욱도 놀라 고개를 돌렸다.모용길이… 태조의 측근들을?그녀는 어떻게 그런 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모용길의 웃음은 사라졌고, 시선은 무겁게 봉구안에게 꽂혔다.봉구안은 단 한 순간도 주저하지 않았다.소욱이 언젠가 말했던 ‘옥비석의 재앙’.남제가 건국된 직후, 태조 황제를 지키던 측근들이 하나둘 기이하게 목숨을 잃어갔다.그 당시 사람들은 모두 그것이 옥비석의 반작용 때문이라 여겼지만… 봉구안은 단정했다.“그 죽음들은 전부 너 모용길이 꾸민 짓이 아니더냐.”그 말이 떨어지자, 모용길의 눈동자가 매섭게 떨렸다.봉구안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실은 날카롭게 울렸다.그녀는 시선을 한 치도 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내 짐작이 맞다면, 그 시절의 태조는 이미 병세가 깊었던 상태였을 거야.”“너는 불로장생의 방법을 찾기 위해 사술을 익혔고, 그 실험 대상으로 태조 곁에 있던 이들의 피를 썼지.”“다만 수많은 이들의 피를 말려 죽였는데도 아무런 효험이 없었을 거야.”“그러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게… 옛 서왕, 지금의 서왕의 부친이셨던 거지.”그녀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그 피만이 태조의 몸에 반응을 보였을 거야. 그렇게 태조께서는 ‘살아 있는 시체’가 됐고, 넌 그때부터 계속해서 약쟁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어. 진짜 목적은 태조를 살리는 거였지. 그저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 바로 그게 너의 최종 목표였을 거야.”모용길은 냉소 섞인 웃음을 흘렸다.그러나 봉구안은
그 노도사는 봉구안이 데려온 가짜 도사였다.사실 그는 타국의 평범한 백성일 뿐이지만, 실제로 삼백 년을 살아온 인물이기도 했다.이번 계책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쓰였다.약쟁이 사건의 진짜 배후를 꾀어내기 위해서였다.봉구안은 확신하고 있었다.그 자의 진짜 목적은 불로장생.그렇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단번에 끝을 내야 했다.하지만 마음 한켠엔 조바심이 일었다. 그녀의 표정을 살핀 소욱이 조용히 말했다.“약이 식겠다. 먼저 약부터 마시거라.”……밤이 깊은 시각, 궁 밖에서 전갈이 날아들었다. 노도사를 찾았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소욱과 봉구안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빛을 교환했다.그리고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폐하, 은이와 그 일행이 도사를 납치한 자를 붙잡았습니다! 지금 천옥으로 이송 중입니다!”소욱은 심장이 요동쳤다.진실을… 진실을 확인해야만 했다.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그는 봉구안과 함께 곧장 천옥으로 향했다.반 시진쯤 지나, 천옥.두 사람은 마침내 그 사내와 마주했다.노도사를 납치했던 자이자, 어쩌면 약쟁이단의 진짜 주모자일지도 모를 인물이었다.봉구안은 호위복으로 변장한 채 소욱 옆에 서 있었다.언제 어떤 돌발 상황이 터질지 모르기에, 그녀는 단단히 경계하고 있었다.감옥 안의 남자는 매우 늙어 보였다.눈은 푸르스름하게 흐려졌고, 머리는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확실히 동방세가 그려낸 인물과 유사했다.그는 소욱을 바라보더니, 마치 이미 모든 결말을 알고 있다는 듯 두려움이라고는 없었다.“절 잡기 위해, 아주 큰 판을 짰다던데 과연 사실이었군요.”소욱은 감방 너머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네 정체가 무엇이냐.”그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모용길입니다.”소욱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 이름을 직접 듣는 순간 잠시 멍해졌다.정말로… 이 남자가 그 전설의 모용길이란 말인가.이백 년을 살아온 그 인물이 맞다고?모용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당당한 눈빛으로 말했다.“
사월 하순, 약쟁이 사건이 마침내 일단락되었다.진범은 모용욱. 모용가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죄 방면되었고, 약쟁이단의 전원은 형장에서 참수당할 예정이라는 조서가 내려졌다.소식이 퍼지자 백성들은 너나없이 거리로 뛰쳐나와 입을 모았다.“아이고, 이 일도 드디어 끝났구먼!”“대리사에서 어지간히 수사를 잘했나 봐!”“모용가는 원래부터 수상했지.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그러게 말이야. 혹시 그 모용욱이라는 자, 그냥 바람막이 아니었을까?”이유야 어쨌든, 사건이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에 백성들은 안도했다.이제 다시는 길에서 납치당해 약쟁이로 끌려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해가 높이 뜬 봄날, 도성은 어느새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오월 초, 황성에 또다시 기이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술집과 찻집, 사람들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나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그거 들었어? 얼마 전에 도성에 도사가 나타났는데, 불로장생의 비법이 있다며. 사람들이 그 집 문턱을 닳도록 찾아간다더라!”“거짓말이지. 세상천지에 불로장생이 어디 있어.”“근데 말이야, 그 도사 무려 삼백 살이 넘었대.”“두 왕조를 거치며 살아온 살아 있는 신선이라잖아!”“그래, 나도 들었어. 요새는 대신들이며 귀족들까지 줄줄이 찾아간대.”“오늘은 심지어 궁에까지 불려 들어갔다더라고.”“폐하께서도 믿고 계신다는데… 그럼 뭔가 있긴 있는 거 아냐?”그때, 누군가 문 밖을 가리키며 외쳤다.“저기 봐! 도사님 오신다!”거리 끝에서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이 보였다.작은 가마에 올라타 있었고, 네 명의 제자들이 앞뒤로 가마를 들고 있었다.그 뒤를 수십 명의 도사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따르고 있었고, 그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백성들은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도사님! 제발 불로장생의 길을 가르쳐 주소서!”“도사님, 전 장생은 바라지 않아요. 제 딸 좀 살려주세요. 병이 너무 깊어요.”“도사님은 백병을 다스리신다던데, 제발…”모두가 각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