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구안은 이미 두 달 전, 소욱이 소주와 정국을 물리치기 위해 수공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표면적으로는 그가 하류 홍수 피해를 키운 듯 보였지만, 실상은 그 전부터 이미 범람한 물이 논밭을 집어삼켰고, 백성들 또한 피난을 마친 뒤였다.봉구안은 침수된 들판을 바라보며, 그곳에 있는 백성들의 심정을 이해했다.논밭은 그들 삶의 전부였고, 수많은 이들이 그 몇 마지기 땅에 의지해 생계를 유지해왔다.그들에게는 누군가를 탓할 이유가 그리고 살길을 열어줄 출구가 필요했다.하늘이 내린 재앙은 누구도 원망할 수 없다면, 책임은 결국 인간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소황부가 물길을 터뜨려 적을 무찌른 일은 짐이 허락한 일이야.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하늘을 탓하고 사람을 탓하는 건 아무 의미 없지 않겠느냐.”“난 약속할 것이다.”“조정은 온 힘을 다해 복구에 나설 거야. 무엇보다 급한 건, 물을 빼내는 일이겠지.”그 말을 들은 봉구안은 즉시 지방 관리들을 불러, 백성들 앞에서 문책했다.“짐은 이미 물길을 내라고 명을 내렸다. 그런데 어찌 아직까지 침수된 상태란 말이냐!”관리는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폐하, 이 지역의 지세가 매우 복잡합니다.”“여긴 세 강줄기의 하류에 위치해 있어, 아래에서만 수로를 낸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아랫마을에서 아무리 밤낮없이 물을 퍼내도, 윗마을의 물이 내려오면 그야말로 도루묵입니다.”“신도 하루라도 빨리 물을 빼고 싶사오나, 윗마을 주민들이 각자 살길만 찾고, 아래쪽 사정은 돌아보지 않으니 사정이 여의치 않습니다…”봉구안은 이 지역의 사정을 모를 리 없었다.그녀가 굳이 이런 문책을 한 이유는 백성들 앞에서 조정이 무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그 때문인지 백성들의 원망도 한풀 꺾였다.봉구안은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 홍수 피해는 한두 마을이 아니라, 성 몇 곳이 피해를 입은 일이다. 각 성이 제 살길만 찾고, 서로를 원수처럼 대한다면 어찌 재난을 이겨낼 수 있겠는가?”“그리고 너
남제가 북연과 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제국들이 남제를 포위 공격했던 전쟁에서 이미 양측은 막대한 병력을 잃었고, 지금은 휴식과 회복이 필요한 때였다. 북연이 남쪽으로 진군할 수 있었던 것은 도중에 아무런 저항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 병사도 잃지 않고 소주와 정국을 점령했으니, 남제가 아무리 분노해도 함부로 선전포고를 해서는 안 됐다.서왕은 어젯밤 충분히 쉬지 못했지만, 정신만큼은 여전히 맑았다. 그는 출병하여 북연과 싸우는 것을 단호히 반대했다. 이에 이 장군은 크게 불만을 품었다."전하, 감히 여쭙겠습니다. 폐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서왕이 우유부단하게 굴어서는 안 되었다. 중대한 결정은 반드시 황제가 내려야 했다. 자리에 앉은 서왕은 느긋하게 말했다."이 장군, 나도 그대가 북연을 미워하는 마음은 이해하오. 하지만 이번 일은 본래 남제가 나설 문제가 아니오. 서여국과는 동맹국이었기에 소주와 정국의 대군을 막기 위해 출병했던 것이지, 북연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다면 대체 무슨 명분으로 하겠소?"이 장군은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았다. "북연은 지나치게 오만합니다! 당연히 그들을 토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서왕은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게 한다면, 남제가 오히려 강한 힘을 믿고 약한 나라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일 것이오. 알아야 하오. 전쟁이 끝난 지 오래되지 않았소. 각국은 전후 배상과 영토 문제로 이미 남제에 불만을 품고 있소. 남제는 몸을 낮추고 조심해야 할 때지, 이곳저곳에서 전쟁을 일으켜 불필요한 재앙을 초래해서는 안 되오."이에 몇몇 대신들도 서왕의 의견에 동조했다."소주와 정국은 남제의 속국도 동맹국도 아니지 않습니까. 남제가 나설 이유가 없습니다.""맞습니다. 괜히 출병했다가는 오히려 타국 영토를 탐내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이 장군은 기세등등하게 반박했다. "그게 어쨌단 말이오! 스스로에게 물어보시오. 소주와 정국이 북연 땅이 된 걸 보면서, 속이
완부옥은 가벼운 비단옷만 걸친 채 스스럼없이 병풍 뒤에서 걸어 나왔다. 서왕은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손바닥에는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하, 하지만 아직 할 일이..." 그는 정사를 한 경험이 없었다. 뭔가 참고서라도 보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하지만 그런 말을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완부옥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사냥감을 노리는 짐승처럼 그를 노려보았다."공문이요? 그냥 도망치려는 게 아니고요?"그녀는 성큼 다가오더니 거칠게 그를 밀어 붙히며 말했다."이미 제 방에 발 들였으면 빠져나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마세요!"말을 마치기 무섭게 완부옥은 서왕을 번쩍 들어올렸다.서왕은 도무지 상상도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말이다!거꾸로 매달린 채, 피가 머리로 쏠리면서 정신이 아찔해졌다.아무리 그래도 자신은 사내 대장부가 아니던가!쿵!완부옥은 서왕을 침대에 거칠게 내팽개쳤다. 조금의 자비도 없었다.그녀는 순식간에 서왕의 허리띠를 풀어버렸다.서왕은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옷깃을 움켜쥐었다."잠, 잠깐만..."이 여자는 너무 급했다!완부옥은 그의 허리 위에 올라앉아, 양손으로 그의 손목을 침상 머리맡 양옆에 두었다.평소에는 늘 냉정하고 차분한 그 남자. 지금은 당황해 허둥대는 모습이 우습기 짝이없었다.완부옥은 그런 그를 보며 묘한 통쾌함을 느꼈다."겁나세요? 걱정 마세요. 제가 잘 아껴드릴게요~"그녀는 입을 벌려 굶주린 늑대처럼 그의 목덜미를 물어버렸다.서왕은 움찔거리며 신음소리를 냈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이러다 목숨이라도 잃는 게 아닐까. 진심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곧이어 방 안의 촛불이 꺼졌다. 암흑 속에 그는 완부옥에게 삼켜졌다.뜰에서는 호위 유화가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무언가 들리는 듯 했지만, 자세히 들리지는 않았다.고개를 숙이니 왕비의 애완 뱀이 문지방 위에 기어오르고 있었다.그 둘은 잠시 눈이 마주쳤다.예전 같으면 뱀만 봐도 다리에 힘이 풀렸을 유화였지만, 지금은 제법
"나의... 아이를 낳겠다고?" 서왕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눈앞의 완부옥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대체 어쩌다 갑자기 이런 황당한 생각을 하게 된 걸까? 설마 황후와 한집 식구가 되려고?완부옥은 여전히 그의 옷깃을 움켜쥔 채, 마치 높은 자리에 선 듯한 태도로 그를 내려다보았다."저흰 부부예요. 아이 하나 낳는 게 뭐 어때서요?”“오히려 전하께서 까다롭게 굴고 있잖아요?"서왕은 굳어버린 채 고개를 저었다."나는... 그냥..." 이건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서왕은 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누군가가 나타나 이 완부옥의 광기를 말려주기를 말이다.아이를 낳는다는 게, 그렇게 가벼운 일이 아니란 걸… 이 여자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나는 그렇게 아무하고나... 그러는 사람이 아니다." 서왕은 억지로 침착한 척, 그녀를 떼어내고는 뒤돌아 멀리 시선을 던졌다."아무하고나?" 완부옥은 어이없어 웃었다.‘나를 그렇게밖에 생각 안 하는 거야?’‘개 같은 남자. 말도 참 독하게하네.’"그럼, 전 다른 사람을 찾아볼게요!"완부옥은 말하면 행동하는 사람이었다.서왕은 급히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미쳤느냐?!"그녀는 엄연히 그의 왕비였다. 감히 바람을 피우다니!완부옥은 그런 그를 보며 더더욱 답답함을 느꼈다.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말지.뭘 그리 질질 끌고 우물쭈물하는지.그러나 서왕의 조급한 눈빛을 보는 순간, 완부옥은 눈치챘다.‘이 사람… 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었구나. 다만 부끄러워서 말을 못 했을 뿐.’완부옥은 갑자기 그의 귓가로 다가가 장난스럽게 속삭였다."오늘 밤, 깨끗이 씻고 제 방으로 오세요."서왕은 그 자리에서 그만 굳어버렸다. 마치 모래알로 목구멍이 막힌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결국 그는 매우 굳은 몸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완부옥은 매혹적인 눈빛으로 그의 턱을 살짝 올리고, 신이 난 듯 한껏 웃어댔다."뭘 그렇게 겁먹으시는 거죠? 제가 전하를 잡아먹기라도 한단 말인가요?"사실 비록 소환과 가족을 이루고
어전 밖.소욱은 어두운 얼굴로 서 있었다.보정 대신들이 오양련을 본받아 죽음으로 봉구안을 압박하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이런 수법은 실로 비열하기 그지없었다.그녀들이 무사히 나오는 모습을 보고서야, 소욱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몇몇 대신들은 소욱을 못 본 척 지나쳤지만, 호원아만은 복잡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남제의 황제까지 친히 서여국에 온 것은 아마도 황제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남제를 돌아가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결국 이 점에 있어서는 서로 다를 것이 없었다.그들 모두 황제의 진심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정말이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이렇게 생각하니, 호원아는 오히려 담담해졌다.무엇보다 황제가 방금 전 그들에게 한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뼈아팠다.그녀들이 지키려 했던 것은 결국 단 하나의 세대일 뿐이었다.이는 마치 의원이 병을 치료할 때, 근본은 다스리지 않고 겉만 손보는 것과 다름없었다.방금 황제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떠올리면, 서여국이 강해지지 못하는 근본은 결국 내부에 있었다.남성들을 과도하게 억압한 탓에 남녀 간 반목이 심해져 결국 하나로 뭉치기 어려웠다.작은 위기만 닥쳐도 서여국은 조정부터 먼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특히나 남성들이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경우, 외부의 위기보다 내부의 내란이 먼저 터질 것이었다.이는 그녀의 외조모가 집권했을 때 궁궐 내 반란이 일어난 근본 원인이기도 했다.그러니 외부의 적을 물리치려면 먼저 내부를 안정시켜야 했다.호원아는 황제께서 하신 말씀을 마음속으로 다시금 되새겼다.그 말들은 따스한 봄바람처럼 그녀의 가슴속을 맑게 해주었다.……어전 안.소욱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지만, 마음속 불안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대신들이 너를 곤란하게 하였느냐?"그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그렇게 물었다.사실 그는 봉구안이 그 무례한 대신들을 어떻게 처벌할 생각인지 더 알고 싶었다.봉구안은 부드럽게 대답했다."이미 다 정리
보정 대신들은 모두 선제의 심복이었다.조정의 중심을 떠받치는 기둥과도 같은 존재들이었다.그녀들은 각기 나이도 달랐지만 모두가 충성심에 가득 차 있었다."황제 폐하를 뵙기를 청합니다!"봉구안은 어전의 용상에 앉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눈빛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전각 밖에 서 있는 대신들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그녀의 눈빛엔 흔들림 없는 결의와 함께 어딘가 서글픈 빛이 섞여 있었다."들여보내라."곧이어 몇몇 대신들이 차례차례 안으로 들어왔다.그중 가장 눈에 띄는 이는 중상을 입어 들것에 실려 온 호원아였다.봉구안은 손에 들고 있던 상소문을 내려놓고, 대신들을 한 차례 훑어보았다."무슨 일인가."호원아가 고른 숨을 내쉬며 말했다."폐하, 신은 이미 오 대인께서 왜 목숨을 끊으셨는지 알아냈습니다."호원아의 숨소리는 안정되어 있었다.상처는 심각해 보였으나 내상은 그리 깊지 않은 듯했다.이어 다른 대신들이 입을 모았다."오 대인은 서여국의 사직을 지키고자, 자신의 죽음으로 황제 폐하께 이 나라에 남아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봉구안은 말없이 그들의 말을 들었다.그 눈빛은 한없이 고요했다.호원아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봉구안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신은 죄인입니다. 신이 이 지경이 된 것도, 황제 폐하를 지키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다른 대신들도 호원아가 처벌당할까 염려하여 급히 거들었다."폐하, 호 장군 또한 오 대인과 다름없이 모두 서여국을 위한 뜻이었나이다!""폐하, 만일 폐하께서 서여국을 떠나신다면, 신들 또한 오 대인처럼 목숨을 끊을 것입니다!""그렇습니다. 신들은 죽을 각오로 지금 폐하 앞에 나아왔나이다!"그녀들은 하나같이 비수를 꺼내어 자신의 가슴께를 겨눴다.하지만 봉구안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녀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보아하니 너희는 미리 짜고 짐을 협박하려는 것이로구나."호원아는 서둘러 부인했다."어찌 감히 황제 폐하를 협박하겠나이까. 그런
오양련의 죽음은 호원아에게 있어 실로 참담한 충격이었다.보정 대신들 중에서도 그녀들과의 사이는 가장 돈독했기 때문이다.무엇보다 이 일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져 호원아는 아무런 대비조차 하지 못했다.시녀가 조심스레 답했다."소녀가 알기로는 오 대인께서 독약을 복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고 합니다."호원아는 믿지 않았다.멀쩡히 잘 지내던 오 대인이 어째서 자결한단 말인가?"누군가 오 대인을 해친 게 틀림없다! 이 일을 폐하께서는 아시느냐?"시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오 대인께서 변을 당하셨을 때 폐하께서 오양부에 계셨습니다."호원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몸에 상처를 입은 탓에 직접 나서 철저히 조사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오양련의 죽음은 호원아만을 놀라게 한 것이 아니었다.조정 전체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다음 날 조정 회의 때 신하들이 거론하는 대부분의 사안은 오양련에 관한 것이었다.삼대에 걸쳐 충성을 바친 노대신. 공이 없어도 고생한 바가 있으니 마땅히 추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일부는 호원아가 습격당하고, 오양련이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은 것이 모두 적국 간첩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순식간에 조정엔 불안이 가득 찼다.용상 위에서 봉구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짐도 이 비보를 듣고 깊은 슬픔을 느꼈다.”"오양련이 생전에 근면성실하고 충성스럽게 직무를 다했음을 생각하여, 특별히 문충후로 추서하고 태묘에 배향하게 하노라."신하들은 일제히 조심히 예를 올렸다."예, 폐하!"궁 밖.오양부.오양련은 이미 관에 안치되어 있었고, 문무백관들은 차례로 와서 조의를 표했다.집안 식구들은 모두 삼베옷을 입고 통곡했다.장례식 날 보정 대신들도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했다.심지어 호원아도 중상을 입은 몸을 이끌고, 마지막으로 오양련을 배웅하러 찾아왔다.그녀의 절망에는 거짓이 없었다.오양련마저 떠나고 나면, 그들 중 누구도 더는 황제를 붙잡아 둘 방법이 없었다.이제 정말로 차선책으로 봉장미를 불러들여
의원이 도착했을 때, 오양련은 이미 독으로 숨을 거둔 뒤였다. 오양부의 하인들은 모두 무릎을 꿇은 채 울부짖기 시작하였다."대인…!"봉구안은 시선을 침착하게 침상 위로 내렸다. 오양련은 그곳에 누운 채, 단호하게 생을 마감했다. 목숨을 걸고 간언하는 것. 오양련의 이런 선택은 봉구안에게 큰 짐이 되었다."후장하라." 봉구안은 담담히 말한 뒤 몸을 일으켰다. 뒤이어 들려오는 울음소리에도 그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문밖에 서 있던 소욱이 다가와 봉구안을 부드럽게 부축했다. 그의 품은 단단하고, 조심스러웠다. 오양련의 죽음은 마치 커다란 돌이 호수에 떨어져 퍼지는 물결 같았다. 한동안 요동쳤지만 결국은 다시 고요해질 터였다. 소욱에게 오양련의 생사는 중요치 않았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봉구안이었다. 그녀의 얼굴빛은 유독 좋지 않았다."일단 궁으로 돌아가자." 소욱은 조용히 그녀를 대신해 결정을 내렸다.마차 안. 봉구안은 드물게 아무 말이 없었다. 소욱도 그런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 곁에 조용히 있어주었다. 필요할 때 기대어 쉴 수 있도록…궁에 돌아온 두 사람은 함께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소욱은 봉구안의 어깨를 조심스레 끌어당겨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그건 그 여자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네 잘못 아니야." 소욱은 걱정했다. 혹여 봉구안이 오양련의 관직을 박탈한 것이 그녀의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스스로 자책할까 두려웠다.그러나 봉구안의 눈빛은 단단했다. 오히려 차갑고 무정해 보일 정도로. 그녀는 바닥의 돌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낮고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들은 모두 제가 남기를 바라기에, 이런 미련한 선택을 했을 뿐입니다.."소욱은 그녀를 껴안는 손에 힘을 조금 더 주었다. 그의 눈빛은 어둡고, 읽히지 않았다."네가 머무르느냐 떠나느냐, 그걸 누가 강요할 수 있겠느냐. 구안아, 우리 조속히 여길 떠나자. 남제로 돌아가자."그는 걱정했다. 여기에 오래 머물수록, 봉구안의 마음이 흔들릴까
오양련은 봉구안 마음속에 일어난 작은 흔들림을 정확히 꿰뚫어보았다.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부분이었다."폐하께서는 어릴 때부터 남제의 평범한 여인들과는 달랐습니다. 폐하야말로 서여국을 위해 태어난 분이십니다. 폐하도 느끼셨을 것입니다. 남제는 여자에게 너무 가혹합니다. 폐하께서 아무리 뛰어나셔도, 혼자 힘으로 바꿀 수 없는 현실입니다."오양련은 말을 이으며 한숨을 삼켰다."폐하, 한 번 생각해보셨습니까? 만약 폐하께서 딸을 낳는다면 서여국에서는 황제가 될 수 있지만, 남제에서는 아무리 총애를 받더라도 결국 한 지아비를 위해 살아야 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습니다. 남제에서는 폐하처럼 여장부가 되는 여인은 극히 드뭅니다. 지금의 남제 황제야 총명하고 현명하지만, 후대의 군주들은 어떻겠습니까? 폐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라도 다시 생각해주십시오."그러나 봉구안은 오양련이 만들어놓은 감정의 덫에 빠지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듯했다."자네는 오직 여성의 입장에서만 생각한 것 같구나. 생각해보아라. 만약 짐이 아들을 낳는다면, 서여국에서는 그 아이가 공주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오양련은 잠시 말이 막혀버렸다. 이윽고, 쉰 목소리로 힘겹게 답했다."폐하, 서여국에서는 그래도 남성이 출세할 길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남제에서는 여성이..."그녀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렇습니다. 서여국이나 남제나, 결국은 한쪽이 억눌리는 구조죠. 신은 지금껏 세 분의 황제를 모셨습니다.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도 더 서여국의 약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감히 서여국이 남제보다 낫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오양련은 깊게 고개를 숙였다."폐하, 신이 폐하를 붙잡으려 한 이유는 서여국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위태롭기 때문입니다. 폐하와 폐하의 아이가 서여국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서여국이 폐하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봉구안의 얼굴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서여국엔 백성도 많다. 그러니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