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욱은 평생 잊지 못했다. 여섯 살 되던 해, 어머니의 생일이었다.그날 밤, 선황은 그의 어머니의 처소였던 미앙궁에 왔다. 그의 어머니는 몹시 기뻐하며, 이른 저녁에 손수 국을 끓이며 선황을 기다렸다.유모가 자신을 데리고 나가며 다정히 말했다.“황자님, 오늘 밤 마님께서는 황제 폐하와 시간을 보내실 거예요. 어서 가서 푹 쉬도록 하세요.”유모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다시 사랑을 받을 것이고, 그러면 미앙궁의 날들도 편해질 것이라는 의미였다.그 역시 어머니와 아버지가 화해하길 바랐다. 어머니가 다시는 슬퍼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그날 밤, 달빛이 참 아름다웠다.”소욱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선황께서는 몹시 지친 듯이 보였고, 침상에 누워 잠깐 눈을 붙이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술에 취할까 염려하여 몸소 해장국을 끓이러 나가셨지.”“그리고 다시 대전에 돌아왔을 때, 선황께서 그 궁녀를 총애하고 계신 모습을 보셨다.”봉구안은 손을 들어 그를 감싸 안았다. 아무 말없이 그의 마음을 달래고자 했다.이 모든 것은 소욱이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비밀이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이야기였다.“그 궁녀는 그날 이후로 미인으로 승격됐다. 그런데 어머니는 며칠 지나지 않아 뼈만 남은 듯 수척해지셨어.”소욱은 말을 이어갔다.“그날 밤, 눈이 펑펑 내렸다. 꿈을 꾸다가 깨어난 나는 어머니를 찾으려 대전으로 달려갔었지. 그러나 어머니를 찾을 수 없었고, 발길이 닿는 대로 걸어갔다. 그 끝에서, 어머니께서 높은 곳에서 떨어지시는 모습을 보았다.”소욱의 말투는 싸늘하고 무겁게 가라앉았다.“내가 이리를 불러들인 것이었다. 내가 그 궁녀를 불쌍히 여겨 어머니 곁에 두게 했던 내 손길이, 결국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었다.”봉구안은 그의 아픔과 후회가 고스란히 전해졌다.소욱이 어째서 후궁의 암투와 간사한 여인들을 혐오했는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그는 어릴 적 이미 속고, 이용당하고, 깊이 상처받았던
어전.서왕은 요녀의 자백서를 올렸다.소욱은 한눈에 대강 훑고, 시선이 ‘북연’ 두 글자에서 멈췄다.서왕의 눈은 건조하고 핏발이 서 있었다. 그는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폐하, 요녀의 말에 따르면, 그 자는 북연의 간첩으로, 과거 선황을 암살하여 남제를 혼란에 빠뜨리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합니다.”“그리고 지금 북연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폐하를 암살하라는 명을 받았다고 했습니다.”소욱은 차갑게 자백서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네 생각에, 그 자가 한 말들 중 몇 할을 믿을 수 있겠느냐?”소욱의 목소리는 냉담했으며, 그의 눈은 티끌 하나 용납하지 않는 냉기를 품고 있었다.서왕은 솔직히 대답했다.“중형 아래에서 얻은 자백이니, 사실이 담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다만 이 자가 정말로 간첩이라면, 보통 인물이 아닐 것입니다. 신 또한 얼마나 믿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하지만 선황께서 이 자의 손에 의해 피해를 입으셨다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신이 선황의 생존 당시의 맥진 기록을 다시 살펴보았는데, 그 자가 독을 쓴 시기와 병증이 딱 들어맞습니다.”소욱의 시선은 겨울의 눈처럼 차가웠다.“이미 모든 걸 자백했다면, 더 이상 살려둘 필요는 없겠구나.”서왕은 고개를 숙여 명을 받들었다.“예, 폐하.”서왕은 물러날 준비를 하며 몸을 돌렸으나, 소욱이 그를 불러 세웠다.“이번에 자네가 내 모습으로 분장하여 혼자 약속 장소에 나갔다지?”서왕의 몸이 살짝 멈추었다. 황제가 오해할까 염려되어 즉각 설명을 덧붙였다.“폐하께서 혼례를 올리신 직후, 모든 크고 작은 일을 신에게 맡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간첩이 보낸 서신이 신에게 전달된 것입니다.”“신이 서신을 처음 보았을 때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숙비마마의 일을 묻히게 할 수 없었기에, 부득이하게…”말을 하던 서왕은 한숨을 내쉬고 깊이 예를 올렸다.“신이 주제넘게 행동한 듯 싶습니다.”소욱은 천천히 그에게 걸어가 직접 부축했다.“내가 너를 책망하려는 뜻은
감옥.완부옥은 두 손으로 감옥 문을 잡고 있었다. 평범한 죄수들과는 달리 그녀의 행동에는 요염함이 가득했다. 마치 감옥 문에 감긴 아름다운 뱀처럼 곡선미가 돋보였다. 그녀는 문 너머의 서왕을 바라보며 낮은 웃음을 흘렸다.“전하, 황제 폐하를 연모하고 계십니까?”서왕의 눈동자에 어두움이 드리웠다.완부옥은 한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며 살짝 웃었다.“제 말이 맞죠? 제가 맞춘 거죠?”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황성에 머문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이미 서왕에 대한 정보를 다 조사해 두었다.지난 몇 년 동안, 서왕의 곁에는 특별히 의심스러운 애인이 없었다. 대신 그는 자주 소욱과 함께 있었고, 두 사람은 종종 어마장에서 시간을 보냈다.그런 정황을 보니, 서왕이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은 황제 소욱이 분명했다!서왕은 그녀의 웃음소리에서 조롱 섞인 악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참지 못하고 몸을 돌려 걸어가려 했다.완부옥은 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전하! 잠깐만요! 전하, 왜 갑자기 화를 내고 그러세요?”“얼굴이 그렇게 얇아서야 되겠어요?”“아니면… 제가 이 사실을 폐하께 전해볼까요?”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왕은 다시 발길을 돌려 그녀에게 다가갔다. 감옥 문 너머로 그녀의 옷깃을 움켜잡으며 낮게 말했다.“충고하는데, 사람답게 살거라.”완부옥은 겁먹기는커녕 도리어 고개를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전 전하가 겁쟁이가 아닐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소심하군요.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표현을 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안 그러면 고생은 결국 전하의 몫이 됩니다.”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낄낄거리며 웃었다.순간 그는 모용란의 조롱섞인 표정이 떠올랐다.모용란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비밀을 쥐고 암암리에 자신을 협박했었다.서왕은 그런 완부옥의 태도를 참을 수 없었다.“그럼 대체 나더러 어찌 하란 말이냐!”완부옥도 결국은 모용란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다.완부옥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과하게 침착한 것은 좋지
즐거운 날들은 항상 짧기 마련이었다.대혼례를 치른 지 사흘째 되는 날, 소욱은 아침 조회에 나가야 했다.평소라면 정시에 기상하여 단 한 번도 게으름을 피운 적이 없었으나, 이제 옆에 절세의 미인이 누워 있으니 그저 일어나기가 아쉬웠다.전날 밤은 영화궁에서 머물렀다. 소욱은 눈을 뜨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옆에 있는 사람을 안으려 했으나, 허공만을 붙잡았다.그는 순간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휘장을 걷어 올렸다.“황후는 어디 있느냐!”유사양이 외전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소욱의 목소리를 듣고 급히 앞으로 나와 아뢰었다.“폐하, 황후마마께서는 동이 트기 전부터 일어나 계셨습니다. 지금은 밖에서 무예를 연마하고 계십니다.”유사양도 꽤 놀랐다. 역시 군영 출신의 황후다웠다. 황제보다 더 일찍 일어날 줄이야.소욱은 황후가 일찍 일어나 무예를 닦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이른 시각부터 일어날 줄은 몰랐다.궁전 밖.봉구안은 간소한 의복을 입고 머리를 높이 묶었다. 그녀의 머리끝이 움직일 때마다 흔들렸고, 멀리서 보면 마치 젊은 낭군처럼 씩씩하고 당당해 보였다.먼저 오금희를 통해 몸을 풀고, 새로 얻은 적연검으로 몇 가지 검술을 연마했다. 이후 장창을 잡고 무예를 이어갔다.여명 속 햇살은 마치 그녀를 편애하는 듯 전부 그녀에게 몰려드는 것만 같았다.이른 아침 일을 시작한 궁인들은 그녀를 보고 발길을 멈췄다.그들은 곳곳의 구석에 모여 몰래 지켜보았다.“황후마마께서는 정말 대단하시군요!”“예전부터 듣기로는 이 맹 소장군이 창술 하나는 일품이라고 하더니, 직접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하... 뭐라고 할까, 황후마마께서는 사내들보다 더 씩씩하시다니까. 정말 영웅호걸이 따로 없구먼. 내 가슴이 다 두근두근거리네.”“크흠!” 유사양이 일부러 크게 기침하자, 회랑 처마 아래 몰려 있던 궁인들이 놀라 모두 사방으로 흩어졌다.유사양은 소욱을 뒤따르며 몰래 그의 안색을 살폈다.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그렇듯, 여인이 지나치게 눈에 띄거나 집안일
소욱은 더 이상 마음속에 맺힌 말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봉구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집요하게 물었다.“나와 단회욱 중, 누구를 더 깊이 사랑했느냐? 네가 그에게는 다정하게 대했으면서, 어째서 나한테는 이렇게 차갑기만 한 것이냐? 네가 단회욱에게 했던 그 말들, 왜 나한테는 한 번도 해주지 않느냐?”소욱은 과거 그녀가 자신에게 했던 가장 감정 어린 말이 ‘제 마음은 폐하께 있습니다’라는 짧은 고백이라는 것을 떠올렸다.그때는 그 한마디로도 만족했지만, 이제는 그 이상을 원했다.그는 그녀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싶어졌다.소욱이 마음속 불만을 쏟아내자, 봉구안은 가만히 있다가 단 한 마디를 물었다.“제가 단회욱에게 뭐라고 말했다는 건가요?”그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일을, 그는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의아했다.소욱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그를 '낭군'이라고 부르지 않았느냐...”봉구안의 미간이 점점 깊게 찌푸려졌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차분히 설명했다.“폐하께서는 단회욱과 다릅니다. 폐하는 천자이시니, 제가 폐하께 가벼운 말을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혼인 전에는 가끔 농담 섞인 말도 할 수 있었지만, 혼인 후에는 황후로서의 신분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했다.규칙은 어겨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소욱은 그녀가 자신에게 거리를 두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그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나는 네가 나를 제국의 황제로서가 아니라, 네가 사랑하는 사내로 봐주길 바란다.”그의 눈빛에는 간절한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봉구안은 그의 말을 이해한 듯했다.갑자기 봉구안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몸을 앞으로 숙여 그의 옷깃을 움켜쥐고 위압적인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낭군께서는 제가 이렇게 대하는 것을 좋아하시나요?”소욱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놀랐으나,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그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려 했지만, 그녀는 몸을 숙여 그의 목덜미를 물었다.그 순간, 그의 머릿속
봉구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녀는 소욱에게 물었다.“폐하의 아이입니까?”소욱은 터무니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내 아이가 아니다.”그러나 그 순간, 무언가 떠오른 듯 그는 눈을 좁혔다.“설마…”그가 기억해낸 것은 조묘의 난 당시, 모용란이 자신과 얼굴이 닮은 아이를 데려와 소욱의 자식이라고 속였던 일이었다.천룡회가 대패한 후, 그 아이는 천옥에 갇혔고, 이후 서왕이 조사하여 그 아이가 천룡회에 의해 친부모로부터 강제로 빼앗긴 존재임을 밝혀냈다.그 아이의 부모는 천룡회와 관련이 없었기에 서왕은 아이를 친가로 돌려보냈다.……그 아이가 궁문 밖에서 떠들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신하 진한길은 아이를 데려와 추궁했다.예상대로 그 아이였다.아이는 그때 입었던 옷 그대로였으나, 얼굴은 창백하고 야위어 있었다.아이는 소욱을 보자마자 억울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바마마, 왜 저를 버리셨습니까!”소욱의 눈빛은 싸늘했다.“내가 또다시 나를 아바마마라 부르면 네 혀를 잘라버리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진한길!”“예, 폐하!”아이는 겁에 질려 몸을 떨었다.“하지만 그들은 모두 폐하께서 제 아버지라고 했단 말입니다…”소욱은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진한길에게 명했다.“저 아이를 다시 부모에게 돌려보내라. 그리고 그들에게 경고하라. 아이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면 더는 키우지 말라고.”그는 냉정히 자리를 떴고, 남겨진 아이는 절망에 빠졌다.그날, 진한길은 아이의 친부모를 찾아냈다.그들은 진한길에게 하소연하며 고개를 숙였다.“우리 아들이 그자들 손에 끌려간 뒤로 이제야 돌아왔는데, 어려운 살림에 적응하지 못하고 황제 폐하가 자신의 아버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자기는 훗날 태자가 되어 황제가 될 운명이라며… 저희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진한길은 냉정하게 일갈했다.“폐하께서 아이를 살려주신 것만도 큰 은혜다. 당장 아이를 데려가라!”부부는 아이를 인계받았으나, 그가 말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을 발견하고 경악했다.“나
“요녀 사건의 배후 주모자는 분명 북연이 아닙니다.” 봉구안이 단호하게 말했다.하지만 북연이 아니라면 누가 배후에서 지시한 걸까?이에 대해 봉구안과 소욱 모두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한편, 성 밖 교외의 객잔에서 소박한 비단옷을 입은 남자가 창가에 서서 남제 황궁을 멀리 내다보고 있었다.천하를 바둑판 삼아, 선수를 쥐는 것이 이치.아쉽게도 그의 상대는 큰 뜻을 잃고, 남의 아내가 되는 것을 선택해버렸다.…요녀 사건은 소욱이 은이에게 맡겨 자세히 조사하도록 했다.천하의 정세는 풍운이 휘몰아친다.소욱이 해야 할 일은 남제를 강성하게 만들어 외적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병이 오면 막고, 물이 들이치면 흙으로 막아내어 두려울 것이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다.그날 밤, 그는 봉구안과 함께 군대 개혁에 대해 늦은 밤까지 논의했다.“맹 장군이 제안한 개혁안이 매우 타당하구나. 하지만 너의 의견도 듣고 싶다.”봉구안은 스승이 쓴 개혁 방안을 읽어본 적이 있었다.그녀는 진심으로 말했다.“남제의 모병제는 지방 장군들의 권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방지하여 권력을 분산시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전시에는 모병제가 유리한 점이 많습니다. 스승님께서 제안한 부병제는 기존 부병제를 완전히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두 제도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는 방안입니다.”“부병제는 농사와 군복무를 겸하게 하는 제도로, 평소에는 농사를 지어 곡식을 생산하고, 전시에는 전장에 나가 나라를 위해 헌신할 수 있습니다.”“첫째, 백성은 먹을거리가 우선입니다. 근래 자연재해와 전쟁으로 인해 조정에서 계속 군사를 징집하자 농업 인력이 줄어들어 곡식 생산이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부병제를 시행하면 이 상황을 크게 개선할 수 있습니다.”“둘째, 병사를 한시적으로 사용하고 유지하는 데도 큰 비용이 듭니다. 대규모 전쟁이라도 벌어지면 하루에 수십만 냥씩 들어가게 됩니다. 병사들이 별도의 생계를 유지할 방법을 가지면 조정의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이는 스승님께서 선성의
며칠 되지 않아, 교무당의 제자가 서른 명에 이르렀다.이미 전장에 나가 장수를 맡았던 관리도 있었고, 병법에 능통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뜻을 품은 가난한 집안의 자제들도 있었다.장차 장수를 길러야 할 교무당에는 평범한 백성이 쉽게 발을 들이긴 어려웠다.교무당의 스승은 현재 세 명이었다.봉구안 외에도, 문책을 가르치는 스승이 있었다.예를 들어 지형과 지세, 병력을 배치하는 그림을 그리는 법, 암호를 만드는 법 등을 가르쳤다.또 다른 스승은 사람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법과 심리전을 가르쳤다.교무당 수업이 시작되기 전, 봉구안은 매우 바빴다.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를 깊이 고민했다.그날 밤, 소욱은 영화궁에 들렀다.봉구안의 책상 위에는 수많은 병서와 교무당 제자들의 명단이 놓여 있었다.소욱은 제자 명단을 집어 들어 몇 페이지를 넘겼다.이름들 중에는 그도 익히 아는 인물들이 많았다.봉구안이 이렇게까지 준비를 했으니, 자신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황후, 내게도 좀 가르쳐 줄 수 있겠느냐?”그는 명단을 내려놓고 그녀 곁에 앉으며, 피곤한 눈빛 속에 은은한 다정함을 담아 물었다.봉구안은 바쁜 와중에도 고개를 들어 그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그럼 절 국사로 봉해 주시겠습니까?”소욱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를 품에 안았다.“좋다. 네가 무엇을 하고 싶든, 다 들어주마.”하지만 봉구안은 그를 밀어내며 약간 귀찮다는 듯 말했다.“방해하지 마세요.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단 말입니다.”“내가 정사를 끝내고 달려왔는데도, 어찌 나를 외면하는 것이냐? 교무당 일이 내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냐?”소욱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불만이 묻어났다.그제야 봉구안은 그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듯 지도를 내려놓고 몸을 돌려 그의 얼굴을 손으로 감싼 뒤 입술 위에 가볍게 입맞춤했다.“이 정도면 됐습니까?”그녀의 이런 대충 넘어가려는 위로에 소욱이 순순히 만족할 리 없었다.하지만 봉
"공자님,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곧 다 됩니다!" 연상은 즐겁게 부산을 떨며, 자신의 이런 행동이 소탁에게는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곧, 음식들이 다 되었다. 연상은 미역국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소탁을 바라보았다. "소 공자님, 오래도록 장수하시길 기원합니다. 모용길처럼...""아, 이런! 제 입이 이렇게 험합니다. 모용길 같은 악인과 소 공자님은 전혀 다르시죠." 소탁은 국을 먹지 않고 연상에게 물었다."너는 행복하니?" 연상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저야 당연히 행복하죠. 나쁜 사람들이 인과응보로 벌을 받지 않았습니까.""게다가 오늘 의원께서 말씀하시길, 공자님의 눈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하였어요.""전 공자님께서 곧 다시 빛을 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연상아, 너와 나는 이뤄질 수 없는 사이야."소탁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도 결국에는 이런 말까지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연상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담담하게 웃었다. "공자님, 저도 알고 있어요. 공자님은 황실의 귀한 분이시고, 저는..." "네 신분 때문이 아니야. 연상아, 난 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너에게 짐이 되고 싶진 않다."이 말을 듣자마자 연상의 눈에 갑자기 한 줄기 빛이 어렸다. "단지 절 걱정하시는 것 뿐이지, 절 싫어하시는 건 아니군요?" 소탁의 목이 갑자기 조여들었다. "나는..." 그의 일생은 큰 기복이 있었고, 혼자 살아가게 될 운명이었다. 한 번도 인연을 찾을 생각을 해본 적 없었고,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할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연상이란 아이는 그에게 있어 더 과분한 존재였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 시간 동안 그녀가 곁에 있어 그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사실이었다. "난 너에게 남녀 간의 사랑을 품고 있지 않아. 설령 내가 여자를 찾는다 해도, 그건 아내지 시녀가 아니야." 연상은 그의 말을 듣고 눈이 크게 떠졌다. 시녀? 소탁은 선의로 그녀에게 일깨워주었다
완부옥은 예로부터 여자를 좋아했다. 남자를 대할 때조차도, 가볍게 희롱하거나 농을 던질 뿐이었다.그런 그녀 앞에 서왕이 호의를 드러내자, 그녀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게다가… 분명 그도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던가.서왕은 그녀의 반응이 예상보다 격해 당황하며 서둘러 설명했다.“우리는 비슷한 처지가 아니더냐? 같이 사는 건… 서로에게 나쁘지 않지 않느냐.”“네가 떠나면, 난 또 다른 이와 혼인해야 할 텐데… 너처럼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여인은 없을 것이다.”“또다시 나 자신을 숨기며 살아야 할 테니… 차라리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완부옥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그 말씀이셨군요.”그가 정말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알고 긴장했건만… 그게 아니라니 다행이었다.……한편 모용길의 죄행이 세상에 밝혀지자, 남제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백성들 또한 믿기 어려워했다.“그 자가 그렇게 오래 살았다고? 분명 불로장생의 술법이 있었던 게지. 폐하께서 그걸 두려워해 제거한 거야.”“약쟁이 사건도 정말 복잡하군. 처음엔 모용욱이 범인이라더니… 이번엔 왜 모용길이 나와? 설마 이번에도 헛다리 짚은 건 아니겠지?”“뭐가 어쨌든 간에 약쟁이는 전부 모용가 짓이란 말이잖아. 그런 집안은 몰아내야지!”분노한 백성들은 결국 모용가로 몰려가 돌과 썩은 달걀을 던지며 고함쳤다.“남제에서 당장 꺼져라!”“모용가 놈들은 천벌 받아야 마땅해! 죄 없는 사람들 고통받게 했잖아!”며칠째 모용가는 백성들의 소란에 시달려, 누구 하나 문밖을 나서지 못했다.……성 외곽의 한 촌락.낡은 농가 안, 여인이 낮은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들었어? 약쟁이 사건 피해자한텐 조정에서 보상금을 준다더라. 장순이네도 그랬잖아. 우리도 당장 관청 가자고, 장대복! 내 말 듣고 있는 거야?”장대복은 장순의 친삼촌이었다. 어린 조카를 생각하면 늘 미안함이 앞섰다.“형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그 모자 둘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당신도 알잖아.”
소욱은 미소를 지었다.“부창부수라 하지 않느냐. 함께 손잡고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황부도 결국 한 여자의 지아비이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서왕은 한껏 조이던 가슴이 결국 힘없이 내려앉았다.그는 즉시 두 손을 모아 절하며 간언했다.“폐하, 그건 절대 안 됩니다!”“폐하께서는 일국의 군주이십니다. 어찌 여인의 그늘 아래 계시겠습니까?”“이 일이 만에 하나라도 세상에 알려진다면, 조롱과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평소 성정이 온화한 서왕이지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기면 은근히 고집이 세지는 성격이었다.소욱은 목소리를 날카롭게 높였다.“그래서 말이지. 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아.”서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폐하도 이게 창피한 줄은 아시는구나…’“황후 마마께서는 폐하께서 황부가 되겠다는 걸 허락하셨습니까?”소욱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황후가 왜 반대하겠느냐? 설마 다른 사내를 맞이해야한단 말이냐?”서왕은 잠시 헷갈려 그 말에 말려들 뻔했다.“그런 뜻이 아니라, 황후마마께서도 이 일이 폐하께 불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계신지 여쭈려는 것입니다.”소욱은 눈을 좁히며 말했다.“내 너를 형제로 생각하니까 이런 말도 하는 것이다.”“이미 내가 결정한 일이야. 누구도 바꿀 수 없어.”“너는 그저 국정을 맡아 잘 처리하거라. 내가 황후와 함께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그러자 서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하지만 폐하 신도 이번에는 휴가를 청하려 했습니다.”매번 국정을 떠맡는 것도 지치는 일이었다.아무리 가까운 형제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지 않겠는가.‘이 나라는 분명 소씨 가문의 일국이지 않는가.’ ‘잠깐…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서왕은 방금 스쳐간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감히 황제에게 이런 불만을 품다니. 마음으로도 짜증을 내다니, 감히 내가?’소욱은 인내심을 다잡으며 물었다.“휴가를 내겠다고? 무슨 연유냐?”서왕은 몇 초간 머뭇거리다, 정색하며 대답했다.“왕비와 함께할 시간이 필요합니다.”소욱은
서왕의 심문이 시작되자, 손추의 수하였던 자객은 결국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그… 그 일은 저희가 꾸민 일입니다.”“모용길이 왕가의 피를 원했고, 손추가 직접 그 일을 맡았습니다.”“하지만 그분은 왕이셨고, 무공도 출중하셨습니다. 손추는 선제를 이간질해 부친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결국 모반의 증거를 조작했습니다.”그 뒤의 이야기는 서왕도 이미 알고 있었다.그의 아버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조정에 충성을 다했다.군주의 명이 떨어지면, 신하는 죽는 수밖에 없었다.유배길에 올라서도 그의 아버지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그는 끝까지 선제가 자신의 결백을 밝혀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약쟁이단이 아버지의 목숨을 노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진실이 드러났을 때, 서왕은 마치 천근 무게의 짐을 내려놓은 듯 가슴이 후련해졌다.그러나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쓰라림으로 번져왔다.그가 정원으로 돌아오자, 멀리 나무 아래서 완부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서왕은 한 걸음에 달려가 그녀를 와락 안아 올렸다.“이번 일을 해결해줘서… 정말 고맙다!”“드디어 모두가 알게 되었어. 부친께서 얼마나 억울하게 누명을 썼는지…”“선제도 진범을 찾고자 했었지만, 결국 오늘에서야 제대로 밝혀졌어. 정말, 정말 고맙다…”서왕은 거듭 고마움을 표현했고, 완부옥은 조금은 지겨워하며 그를 말렸다.무엇보다 이 남자가 이렇게까지 그녀를 직접 껴안을 줄은 몰랐다.조금 불편한 표정이었지만, 완부옥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의 등을 토닥였다.“됐습니다. 됐어요. 그렇게 큰일도 아닌걸요.”“정말 제게 보답하고 싶다면, 폐하께 소환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여쭤봐 주세요.”서왕은 그녀를 놓고,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아직도 포기 못 한 것이냐?!”완부옥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게 아닙니다.”“그저 소환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정인이 아니더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했다. 열무신은 한 발 늦게 도착했다. 그가 천옥에 도착했을 때, 모용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모용길의 시신을 바라보며 열무신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낮은 포효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재앙은 천 년을 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모용길 같은 자는 200살이 넘게 살다가 죽었는데, 맹성주 같은 이는 관례도 치르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이를 생각하니 열무신의 증오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열무신은 천옥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기절해버렸다.황궁. 봉구안은 임시로 자진궁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임 중이었고, 점차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회임이 실감 났다.정말로 아이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소욱이 정해준 태의는 매일 그녀에게 와서 맥을 짚었다. 최근 그녀의 태상은 안정되어, 더 이상 안태약을 마실 필요가 없고 그저 조용히 쉬기만 하면 되었다.아이의 일에 대해서, 봉구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약쟁이 사건도 이미 해결되어, 그녀의 큰 근심을 덜어주었다. 현재 유일하게 장미에 대해서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장미의 옛 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다.그것이 만약 재발한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을 터였다.봉구안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황제가 도착했다. 소욱은 약쟁이 사건의 최신 진전을 가져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열무신이 붙잡은 그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다는구나. 이미 200년 전에 태조는 돌아가셨고, 부활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하엿다. 모든 것이 모용길의 환상이었던 거야.”“짐은 이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을 대중에게 공개할 생각이다. 모용길이 남긴 큰 돈은 모두 약쟁이 매매로 얻은 것이야. 짐은 이 돈을 피해자들과 그 친척들을 위로하는 데 쓸 것이다.”“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그는 걱정이 가득했다.봉구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이 조치는 백성
마지막으로 태조를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이미 병석에 누워 숨이 끊어질 듯했다. [모용길... 내 아우야, 너는 내 마음을 알지. 짐에겐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이 많다. 새 정치를 세우지 못했고, 태자는 아직 어리지. 난 단지 하늘이 인색해서 짐에게 몇 년을 더 주지 않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단 일 년이라도 짐이 일 년만 더 산다 해도 좋을 텐데... 남쪽의 수해, 북쪽의 기근, 남제는 사방에서 적에 둘러싸여 있고, 북연은 우리를 업신여기며, 내부에는 반적이 있는데... 어찌할까, 염라대왕이 목숨을 거두어 가니, 짐은... 그저 손을 놓을 수밖에 없구나. 아우야, 나라의 일을 모두 네 손에 맡기노니, 너는 태자를 보필하라. 너는 그의 고모부이자, 또한 그의 상부이니. 아우야, 짐은 오직 너만 믿는다.]기억 속의 태조가 눈앞의 그와 겹쳐졌다. 모용길은 낮은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의 눈에 태조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했다."형님! 형님께서 원하던 것을 제가 마침내 이루어냈습니다! 형님께서는 불로장생할 것이고, 이 남제는 반드시 형님의 통치 아래 번영하며, 장차 천하를 통일하여 대업을 이룰 것입니다!"당초 남제가 새로 세워졌을 때 태조는 약속대로 그에게 강산의 절반을 주려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태조의 뜻이 천하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태조와 계속해서 사방을 정벌하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태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어, 그는 마침내 모든 짐을 내려놓고 평안히 떠날 수 있게 되었다.모용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로 가득 찬 시선 속에서,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그를 데리러 온 것이다. 그는 팔을 뻗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여인은 몸을 숙여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대고, 그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대인, 남은 길은 제가 당신과 함께 걸을게요." 모용길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함께..."
열무신은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웠다.그가 아니었다면, 또 누군가 새로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그는 사로잡은 자객들을 직접 데리고 돌아와 천옥에 넘긴 뒤, 단 한숨도 쉬지 않고 곧장 심문에 들어갔다.자객들은 처음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하지만 모용길이 이미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의 희망도 이미 무너진 셈이었다.이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저희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폐태자를 노린 건 그 분의 ‘혈’ 때문이었습니다.”그들은 태조 황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불로장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태조 황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백골이었습니다. 이백 년 전, 모용길이 시신을 도굴해갔을 때부터 이미 시체에 불과했습니다.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건, 망상이었어요!”“애초에 죽은 자였다고요!”그들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 말투에는 모용길을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이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쓸모없는 일에 목숨을 건 그를 그들은 미련한 바보로 여겼다.같이 심문을 진행하던 관리가 물었다.“너희는 어떻게 아는 것이냐?”“태조 황제께서 살아난 적이 없다는 걸 말이다.”“모용길이 그렇게까지 집착한 이유가 뭐였지?”자객들 중 한 명이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모용길이 약쟁이를 만든 건, 그들로 실험해 불로장생의 약을 완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약을 제조한 의원들은 손수 기록을 남겼고, 그 손책들엔 분명히 쓰여 있었죠. 이백 년 동안 그들이 상대한 건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시체’였다고요.”“아무리 약을 먹여도 살아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입니다.”다른 자객 하나는 공포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모용길은… 이미 오래전에 미쳐 있었습니다. 그는 자주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마치… 마치 그 자리에 태조 황제가 서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에요.”또 다른 자객이 덧붙였다.“그 자는 단지 태조 황제를 살리려 한 게 아닙니다. 자신도 불로장생 하고 싶었던 거에요.”“그리고 그게… 그 자는 정말로 성공했
태황태후는 직접 선조를 만나기 위해 천옥으로 향하려 했다.하지만 황제의 명이 내려져 있었다.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모용길을 접견할 수 없었다.하는 수 없이, 태황태후는 궁으로 전갈을 보냈다.하지만 설령 황제가 허락하더라도 모용길이 누구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그는 오직 태조는 아직 살릴 수 있다는 집념 하나에 사로잡혀 있었다.그런 그가 천옥에 갇힌 지금, 마음은 타들어가듯 초조했다.“그 어린 황제놈은 어딨느냐! 어서 나를 뵈러 오라 하지 못할까!”모용길에게 후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는 생각했다.이 나라 남제는, 태조와 자신이 함께 세운 나라였다.그런 자신을 막고 있는 소욱 따위가 어찌 감히 군림한단 말인가.천옥에 갇힌 날부터,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소리쳤다.“태조를 살려야 한다! 어서 황제를 데려와라!”하지만 그는 몰랐다.그의 그 모든 고함과 분노는 소욱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며 그를 흔들기 위한 계략이었단 사실을 말이다.그리고 다섯째 날.천옥의 간수가 냉정한 얼굴로 명을 전했다.“폐하의 어명이십니다.”“모든 죄를 자백하고 문서에 서명하지 않는 한, 이곳을 나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죽을 때까지 말입니다.”모용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허튼소리 마라! 그 어린놈이 과연 알기나 한단 말이냐, 내가 이 모든 짓을 왜 해왔는지를 말이다!”간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나으리, 뭐가 그리 두렵습니까?”“자백했다고 당장 목을 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태조께서 하사하신 면사금패는 아직도 가지고 계시잖아요?”그 말에 모용길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그렇다.면사금패만 있으면, 그는 죽지 않는다.황제 따위가 그를 처형할 권한은 없었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태조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었다.결심이 선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종이와 붓을 가져오너라!”두 시진 후.모용길이 쓴 자백서가 궁으로 들여졌다.그 문서는 곧장 어전으로 올라갔다.문서를 넘겨받은 소욱은 한 장,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
염 신의가 모용길의 상태를 진찰한 결과, 그의 몸은 웬만한 노인들보다 훨씬 건장했고, 외견상으로도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폐하, 이 자가 망언을 일삼는 이유는… 실성, 즉 정신 착란 증세로 보입니다.”“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건 너희들이다!”모용길이 즉각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그리고 소욱을 향해 고함쳤다.“어서 저놈들을 다 내쫓아라! 나는 태조 폐하를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모두 다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하지만 소욱은 모용길의 광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붙잡아 두거라. 절대 도망 못 치게 해야 한다.”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모용길의 움직임을 단단히 제압했다.염 신의는 환자의 행동에 개의치 않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실성이란 곧, 마음의 병입니다.”“이 병은 뇌와 정신의 균형이 무너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죠.”“예컨대, 저희는 백골을 보지만 이 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이 자의 마음속 집착이 깊고, 오래도록 그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이미 병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니, 소인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의술이란 외상이나 내상은 다스릴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속 병, 특히 집착이라는 건 손쓸 수 없는 법이다.그건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이기에. 소욱은 여전히 ‘태조를 살려야 한다’며 중얼거리는 모용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자였다.그러나 유일하게 태조에 대해서만은 지극한 충성과 집착을 드러내고 있었다.“저 자를 별실에 따로 가둬라. 아무도 면회하지 못하게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자진궁.봉구안은 모용길이 실성 증세를 보였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오늘 제가 본 그 백골은 최근에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 말인즉, 모용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단 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