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쿠웅!
서고 전체가 무너질 듯 흔들렸다. 벽면 곳곳에 새겨져 있던 문양이 한꺼번에 빛을 뿜었다. 바닥에 잠들어 있던 선들이 거미줄처럼 퍼져 나가며 칼리안과 엘로라, 그리고 세드릭을 둘러쌌다. 세드릭의 표정이 급격히 굳었다. “이럴 수가…….” “무슨 일이에요?” 엘로라가 물었다. 세드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칼리안을 바라보았다. “네가 봉인을 건드렸군.” 칼리안이 검을 겨눈 채 말했다. “나는 기록을 확인했을 뿐이다.” “기록을 확인하는 것과 깨우는 것은 다르지.” 세드릭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이곳은 단순한 서고가 아니다.엘로라는 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황궁 가장 깊은 곳…” 황궁 지하, 황제조차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봉인 구역.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누구도 내부를 보았다고 말하지 않는 장소였다. “…” 칼리안은 침묵했다. 엘로라는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도, 어머니의 경고도. 칼리안의 보호도 거대한 거짓말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면, 자신이 믿어 온 기억과 감정 중 무엇이 진짜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제 돌아갈 수 없었다. 그 순간. 철컥. 서고 반대편 문이 열렸다. 엘로라는 칼리안의 손을 놓았다. 이번에는 그도 붙잡지 못했다. “……누구죠?” 대답 대신 문틈으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바닥에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하나가 아니었다. 둘, 아니 셋. 칼리안의 표정이 굳었다. “엘로라.” 그가 낮게 말했다. “내 뒤에 있어.”
쿠웅! 서고 전체가 무너질 듯 흔들렸다. 벽면 곳곳에 새겨져 있던 문양이 한꺼번에 빛을 뿜었다. 바닥에 잠들어 있던 선들이 거미줄처럼 퍼져 나가며 칼리안과 엘로라, 그리고 세드릭을 둘러쌌다. 세드릭의 표정이 급격히 굳었다. “이럴 수가…….” “무슨 일이에요?” 엘로라가 물었다. 세드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칼리안을 바라보았다. “네가 봉인을 건드렸군.” 칼리안이 검을 겨눈 채 말했다. “나는 기록을 확인했을 뿐이다.” “기록을 확인하는 것과 깨우는 것은 다르지.” 세드릭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이곳은 단순한 서고가 아니다. 황실의 피를 보관하는 장소다.” 엘로라는 숨을 삼켰다. “황실의 피요?” “황궁 가장 깊은 곳에 잠든 힘은 왕좌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힘은 황족의 피만으로는 움직이지 않아.” 세드릭이 엘로라를 바라보았다. “두 가문의 피가 필요하지.” 엘로라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에 푸른빛이 번지고 있었다. “설마…… 제 피가?” “네 어머니 헬레나는 황실의 마지막 계승자였다.” 칼리안이 낮게 말했다. 엘로라의 눈이 커졌다. “어머니가…… 황족이었다고요?” “정확히는 황위를 버린 사람이다.” 세드릭이 말을 이었다.
벽면에 새겨진 빛이 번졌다. 한 글자. 그리고 또 한 글자. 엘로라는 숨을 죽인 채 바라보았다. 누군가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드러나기도 전에 푸른빛이 흔들렸다. “……뭐야?” 엘로라가 다가서자 칼리안이 앞을 막았다. “뒤로 물러나.” “왜요?” “무엇이 나타나는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폐하는 알고 있잖아요.” 엘로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저 이름이 누구인지.” 칼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답이었다. “제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황실과 관련되어 있나요?” 칼리안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엘로라는 그의 곁을 지나 벽 앞에 섰다. 푸른빛이 눈동자에 스며들었다. 오래전부터 그녀를 따라다닌 푸른 눈동자, 아버지의 서재에서 발견한 은빛 반지, 그 안쪽의 낯선 문양, 그리고 반지를 볼 때마다 되풀이되던 어머니 헬레나의 경고. 모든 단서가 하나의 이름을 가리키는 듯했다.
헬레나는 아기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나는 믿을 수 없어.”“나도 믿지 않는다.”“그런데 왜?”그레이스 대공이 한참 동안 침묵했다.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선대 황제에게 약속을 받았어.”엘로라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선대 황제.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보호를 받았던 이유.그 시작이 바로 이 순간이었다.“무슨 약속?”헬레나가 물었다.그레이스 대공은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품에서 작은 봉투 하나를 꺼냈다.봉투에는 황실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이건…”“그가 직접 남긴 서약서야.”“무슨 내용인데?”그레이스 대공이 봉투를 내려다보았다.“엘로라의 신분을 끝까지 숨긴다.”헬레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그리고?”“누구도 그녀를 황녀로 의심하지 못하게 한다.”“…….”“대신.”그레이스 대공의 표정이 굳었다.“황궁 안에서는 누구보다 안전하게 보호한다.”엘로라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그렇다면.자신이 황궁에서 살아남았던 것은 단순한 자비가 아니었다.처음부터 약속이 있었던 것이다.그러나.화면 속 헬레나가 갑자기 창밖을 바라보았다.“잠깐.”그녀의 표정이 변했다.“누군가 와.”그레이스 대공이 즉시 검을 뽑았다.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하나.둘.셋.점점
칼리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엘로라.”“제가 누구의 딸인지 아직 몰라도 괜찮아요.”그녀가 천천히 말했다.“제가 무엇을 물려받았는지 몰라도 괜찮아요.”그리고 맞잡은 손을 바라보았다.“그걸 안다고 해서 제가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푸른 문양이 강하게 빛났다.쿠구구구-그 순간 지하 서고 전체가 흔들렸다.금이 간 수정문 뒤에서 거대한 기계음이 울렸다.철컥.철컥.철컥.잠겨 있던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칼리안이 즉시 엘로라의 앞을 막아섰다.“뒤로 물러나.”“폐하…”“이번에는 내 말 들어.”수정문에 새겨진 균열이 하나둘 푸른빛으로 물들었다.그리고 마침내.쩌적.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그 틈 사이로 보인 것은 방 안에 놓인 거대한 석관이었다.엘로라는 숨을 삼켰다.석관의 표면에는 그레이스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그리고 그 아래.누군가의 이름이 있었다.헬레나.엘로라의 어머니.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석관 옆 벽면에는 또 다른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헬레나가 죽은 뒤에도, 그녀의 딸은 살아 있어야 한다.」엘로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그 순간.석관 안쪽에서 아주 희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엘로라.”그 목소리는.분명 죽은 어머니의 목소리였다.그리고 이어진 한마디가
「황녀 엘로라가 황제의 손을 놓을 것.」바닥에 새겨진 문장이 희미한 푸른빛을 토해냈다.엘로라는 그 문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이해할 수 없었다.아니.이해하고 싶지 않았다.“……손을 놓으라고?”그녀의 목소리가 지하 서고의 벽에 부딪혀 메아리쳤다.칼리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신 엘로라의 손을 더욱 단단히 움켜쥐었다.그 행동 하나만으로도 그의 대답은 충분했다.“폐하.”“싫다.”짧았다.너무 단호해서 오히려 엘로라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칼리안은 바닥의 문장을 내려다보았다.“기록이 무슨 조건을 내걸든 상관없다.”“하지만…….”“네가 내 손을 놓아야 한다면.”그가 천천히 엘로라를 바라보았다.“그 기록 따위는 보지 않아도 돼.”그 말에 엘로라의 가슴이 묘하게 저려 왔다.언제부터였을까.예전의 칼리안이라면 달랐을 것이다.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강요했을 남자였다.실제로 그는 한때 엘로라를 궁 안에 가두고, 도망치려는 그녀를 붙잡고, 유모의 목숨까지 빌미로 삼았다.그런데 지금은.진실을 알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손을 놓아야 한다는 조건 앞에서조차 그녀를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엘로라는 천천히 그들의 맞잡은 손을 내려다보았다.“저는…… 알고 싶어요.”칼리안의 눈빛이 흔들렸다.“무엇을?”“제 출생에 대해서요.”잠시 침묵이 흘렀다.엘로라는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