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성녀 회귀하다

저주받은 성녀 회귀하다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10-27
Oleh:  시아햔Baru saja diperbar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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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가 오염되고 마물이 창궐하는 대륙. 마물의 오염을 전부 해결한 대가로 돌아온 것은, 화형대에서 처형당한 저주받은 성녀 셀레스티아. 회귀 후 배후를 알아채고 복수를 다짐한다. 드래곤의 혈통, 저주로 휩싸인 제국의 황제 아드리안 발티미르. 점차 광기에 잠식되어가는 미친 황제와의 계약 결혼. 처음엔 서로 이용하려던 관계가, 점차 로맨스로 변해가고, 이 세계의 우아한 가면극 뒤에 숨은 진짜 재앙이 다가온다. 냉철한 복수극과 애틋한 로맨스, 그 경계에서 성녀 셀레스티아는 자신의 운명을 다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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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 1

1화. 화형대 위에서

장작 타는 냄새가 먼저였다.

그다음이 밧줄이었다. 손목을 파고드는 거친 밧줄이 살을 쓸려서 피마디로 지나갈 때마다, 셀레스티아는 자신의 몸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몸이 아프다는 것. 아직 이 몸이, 이 삶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

끝나지 않았을 뿐이지, 이제 끝나가고 있어.

광장을 가득 메운 얼굴들이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눈동자, 셀 수 없이 많은 입. 그 모든 것이 그저 하나의 짐승처럼 같은 소리를 기염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마녀다! 저 마녀를 태워라!"

목소리가 파도처럼 부딪쳐왔다.

마녀. 마녀. 마녀. 그 단어가 반복될 때마다

셀레스티아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어이가 없어서였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저 입들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 성녀님께서 세계수를 구하셨다! ‘

’ 오염이, 정말로 멈췄어!‘

’ 더이상 마물이 나오지않아! ‘

몇 년에 걸쳐 대륙 전역으로 번져가던 세계수의 오염. 그 근원을 찾아, 셀레스티아는 자신의 성력을 남김없이 쏟아부었다.

처음 오염 정화에 나섰던 그날을, 셀레스티아는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변경의 작은 마을, 검게 죽어버린 논밭 사이로 마물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던 그곳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힘이 세상에 쓸모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손끝에서 흘러나온 빛이 죽어가던 땅을 되살리던 순간, 마을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발밑에 무릎을 꿇었다.

그 후로 몇 년, 그녀는 대륙 각지를 떠돌았다.

오염이 짙은 곳이라면 어디든 갔다. 북쪽의 얼어붙은 변경부터, 남쪽의 습지대까지. 정화할 때마다 몸이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처음엔 손끝의 저릿함이었던 것이, 나중엔 온몸을 갉아먹는 듯한 통증으로 번졌다. 머리카락이 뿌리부터 하얗게 물들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뭐, 이 정도쯤이야.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계속해서 나아갔다.

사람들의 감사가, 살아난 땅의 초록빛이, 그 모든 것이 그녀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세계수의 뿌리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 오염의 근원을 찾아냈을 때, 그녀는 이미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백발이 절반 넘게 진행되어 있었다.

그러나 내 몸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 정화가 끝나면, 대륙 전체가 다시 살아날 것이었으므로.

그리고 마침내, 대륙을 뒤덮던 그 검은 균열이 완전히 잦아들던 순간을 그녀는 아직도 기억했다.

세계수의 뿌리에 마지막 정화의 빛을 흘려보내던 그 밤, 그녀는 온몸의 힘이 완전히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쓰러졌다. 그러나 눈을 떴을 때,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죽어가던 나무들에 새싹이 돋고, 탁하던 하늘이 다시 맑아졌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종이 울리고, 거리마다 축제가 벌어졌다. 성국의 대신전 앞 광장에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녀의 이름을 연호했다.

"셀레스티아! 셀레스티아!"

그날의 함성을, 그녀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같은 광장에서 같은 사람들이 전혀 다른 말을 외치고 있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그녀를 절망케 했다.

그리고 그 대가가, 지금 이 화형대였다.

"성력을 그렇게까지 다뤄놓고, 몸이 멀쩡할 리가 없지."

"저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 좀 봐. 저게 사람이야?"

"신의 축복이 아니라, 애초에 저주받은 힘이었다는 거잖아."

우스운 이야기였다. 세계수를 구하기 위해 그녀가 짊어졌던 대가, 소진될수록 하얗게 물들어가던 머리카락과 파라이바빛으로 변해가던 눈동자가, 어느새 그녀가 "저주받은 존재"라는 증거로 둔갑해 있었다. 오염을 없앤 힘이 아니라, 오염 그 자체로 취급받고 있었다.

이제 완전히 해결했는데.

이제 드디어

단 하나의 마물도, 단 한 뼘의 오염된 땅도 남기지 않았는데.

성국의 대신관이 그녀 앞에 섰다.

세계수가 정화되던 그날, 누구보다 먼저 무릎을 꿇고 감사를 표했던 바로 그 손으로, 이제는 사형을 선고하고 있었다.

"셀레스티아. 그대는 금지된 힘으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신의 영역을 침범한 죄로 화형에 처한다."

뭐? 신의 영역을 침범해? 세계수를 살린 게, 이제는 죄가 됐다고?

목이 메었다.

억울함이 목구멍을 틀어막아서, 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셀레스티아는 대신관의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그 안에는 죄책감도, 의심도, 하다못해 흔들림조차 없었다. 오직 그 대신관의 눈에는 안도뿐이었다.

그렇구나…

오염이 사라진 후, 성국은 곧 다른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신의 축복이라 부르기엔 지나치게 압도적인 힘, 그리고 그 힘을 온전히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그 편협스러운 자들음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이 성국에는 절대 곁에 두고 싶어 하지 않았다.

구원자가 필요 없어지자, 나는 위협이 되었을 뿐이야.

불이 붙었다.

뜨거움 같은 건 이상하리만치 뒷전이었다.

셀레스티아의 눈에 들어온 건 고통이 아니라, 그 광장에 서 있는 얼굴들이었다.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세계수가 무너지기 직전, 그녀가 마지막 힘까지 짜내어 살려낸 변경 마을의 촌장이었다. 그가 지금, 다른 이들과 함께 목청껏 외치고 있었다.

"마녀를 태워라!"

······당신도.

셀레스티아는 웃고 싶었다. 정말로 웃고 싶었다.

진심으로 헛웃음이 났다.

세계수를 살린 대가로 그녀의 몸이 부서져가는 걸 직접 지켜봤던 사람이, 지금은 저 함성 속에 아무렇지 않게 섞여 있었다.

내가 살려낸 세상 값이, 겨우 저 미천한 함성 한 줄이었구나.

또 다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앳된 티가 채 가시지 않은 젊은 근위기사였다.

남쪽 습지대에서 마물 무리에 포위당했을 때, 그녀가 목숨을 걸고 구해준 소년병이었다.

그때 그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었다.

지금 그는, 화형대를 둘러싼 경비병들 틈에 섞여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한 그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그래. 차라리 저렇게라도, 눈을 피해주는 게 나은 걸까.

셀레스티아는 씁쓸하게 생각했다.

적어도 저 소년은, 아직 그녀를 향해 돌을 던질 용기까지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침묵도, 결국은 다르지 않았다. 침묵으로 이렇게 동조하는 것과, 목청껏 외치는 것 사이에 그리 큰 차이는 없었다.

인간이라는 게 한낯 이런 거였나.

셀레스티아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위기의 순간엔 손을 붙잡고 눈물로 감사를 표하다가도, 그 위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면 가장 먼저 그 힘을 두려워하는 존재.

그게 인간이었다.

적어도 그녀가 목숨 바쳐 지켜낸 이 대륙의 인간들은.

대신관의 얼굴에도 슬픔이나 죄책감 같은 건 없었다.

세계수가 정화되던 순간 두 손 모아 감사를 표했던 것도, 이제 와서 사형을 선고하는 것도, 그에게는 그저 순서가 바뀐 절차일 뿐이었다.

필요할 땐 성녀, 필요 없어지면 마녀.

그 편리한 재정의가 전부였다.

그래…… 그렇구나.

셀레스티아는 타오르는 연기 사이로 광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눈물을 흘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시선을 피하는 이조차 드물었다.

대부분은 무언가 흥미로운 구경거리라도 보듯, 그녀의 마지막을 눈에 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저들 하나하나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데.

저들은 세상을 구한 이름을, 마녀라는 두 글자로 바꿔 부르는구나.

목이 메었다.

고통보다 더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건, 뜨거운 화상이 아니라 서늘한 환멸이었다.

사람을 믿었던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자각. 세상 전부를 걸고 지켜낸 것들이, 결국 자신을 지켜주지 않으리라는 걸 진작 알았어야 했다는 후회.

"할 말은 없느냐."

대신관이 물었다. 형식적인 물음이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셀레스티아는 광장을 가득 메운 얼굴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은혜를 잊은 얼굴들, 침묵으로 동조하는 얼굴들, 그리고 아무 감정도 없이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얼굴들.

이게, 내가 세상을 구하고 돌려 받은 얼굴들이구나.

그리고 아주 작게, 자신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중얼거렸다.

"……다음에 태어난다면."

[ 다음에 태어난다면, 절대로. ]

세상 따위, 구하지 않을 거야.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거야.

이제 연기가 시야를 뒤덮었다.

광장의 함성은 끝까지 잦아들지 않았다.

그 소리를 죽기 직전에 가장 마지막으로 들으며, 셀레스티아는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마물도, 오염도 아니었다.

구원자를 두려워하는 데

마녀로 돌리는 것까지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

모든 인간의 얼굴이었다.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경멸스러워. 이 모든 게, 전부.

그녀의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

# 다시, 열여섯

눈을 떴을 때, 셀레스티아는 낯익은 천장을 보고 있었다.

성국 신전 부속 기숙사, 좁은 방, 삐걱거리는 나무 침대. 그리고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

……어?

셀레스티아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멀쩡했다. 화상도, 고통도 없었다.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불에 타지 않은, 매끄러운 열여섯 살 소녀의 손.

그리고 거울에 다가갔다. 성력을 다 쓰기 전, 열여섯 살 시절의 푸른빛이 감돌던 검은 머리와 사파이어색 눈동자가 자신을 마주 보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꿈……꿈이었나."

중얼거려보았지만,

그러기엔 모든 기억이 너무나 선명했다. 화형대의 열기, 광장의 함성, 대신관의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그 환멸까지.

그것이 단순한 악몽이라기엔 지나치게 생생했다.

셀레스티아는 침대에서 내려와 방 안을 둘러보았다.

낡은 책상 위에 놓인 것은 아직 그녀가 정식으로 성력을 각성하기 전, 신전 견습생 시절 쓰던 교본이었다.

열여섯…… 성력 완전한 각성 직전.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기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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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저녁 식사
7화. 저녁 식사"……폐하께서 저녁을, 함께 말씀이신가요?"셀레스티아는 방금 전까지 마사와 함께 먹기로 했던 저녁상을 떠올리며 되물었다."예. 갑작스러운 결정이라 저도 놀랐습니다만."레이먼드의 목소리에도 옅은 당혹감이 묻어 있었다.옆에서 듣고 있던 마사가 눈을 크게 뜨며 셀레스티아의 팔을 붙잡았다."마마님! 이거 큰일이에요! 폐하께서 누군가와 겸상을 청하신 건 제가 이 궁에서 일한 지 3년 만에 처음 듣는 일이라고요!""……그렇게까지요?""당연하죠! 대신들도 폐하와 겸상 한번 해보는 게 소원이라고 할 정도인데!"마사는 순식간에 시녀들을 불러 모으더니, 셀레스티아를 이리저리 돌려세우며 드레스를 갈아입히기 시작했다."이 색이 좋겠어요! 아니, 저 색이! 머리는 이렇게—""저, 마사님. 그냥 편하게 가도……""안 됩니다, 마마님! 폐하의 첫 겸상인데요!"⁃ 서로 계약 관계라고 분명히 말씀드렸는데.셀레스티아는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도, 시녀들의 분주한 손길에 몸을 맡겼다.그렇게 얼마 뒤, 그녀는 황제의 개인 식당으로 안내되었다.꽤나 작고 아늑한 방이었다. 화려한 대연회장을 상상했던 것과 달리, 식탁 위에는 단출한 음식 몇 가지와 촛불만이 놓여 있었다.아드리안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를 보자, 그는 살짝 눈썹을 들어 올렸다."……그 옷은, 마사가 골랐나 보군.""어떻게 아셨습니까?""과하게 화려하니까."셀레스티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 사람,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네."보시기에 불편하시면 갈아입고 오겠습니다.""됐다. 앉아라."그녀는 조용히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서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만 작게 울렸다."……저기, 폐하.""말해라.""겸상은 관례상 안 하신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갑자기……"아드리안은 잠시 포크를 내려놓았다."내 계약자의 컨디션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성력을 나누는 사이니, 상태를 살피는 게 당연하다는 뜻이었다.""……그게 답니까?""그 외에 다른 이유가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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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낯선 여운
8화. 낯선 여운저녁 식사가 끝난 뒤, 셀레스티아는 황후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썼다.전생에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 일렁거려 낯설었다.⁃ 별일 아니야. 손끝이 스친 것뿐이잖아."마마님, 저녁은 어떠셨어요?"마사가 신이 나서 물었다."그냥…… 평범했습니다.""에이, 그게 다예요? 폐하와 무슨 얘기 나누셨는지 하나도 안 궁금해하시는 척하시면서 저 사실 완전 궁금한데!""별다른 얘기는 없었어요. 식사만 하고 왔습니다."셀레스티아는 그렇게 답하며 대수롭지 않게 침실로 들어갔다. 사실이었다. 정말로 별일 아니었다. 그녀는 그 밤, 평소와 다름없이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 날 아침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눈을 떴다.⁃ 거봐, 아무렇지도 않잖아. 아무 일도 없잖아.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전생과 회귀를 겪은 그녀에게, 손끝이 잠깐 스친 감촉 따위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다.한편, 같은 시각. 아드리안은 집무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지만, 눈앞의 서류는 좀처럼 읽히지 않고 있었다."폐하."레이먼드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같은 문서를 벌써 삼십 분째 보고 계십니다."아드리안은 그제야 서류에서 시선을 뗐다."……그런가.""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아드리안은 대답 대신, 자신의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녀의 손끝이 스쳤을 때 느껴졌던 그 낯선 감촉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다.⁃ 단순한 성력의 반응이겠지.그렇게 되뇌었지만, 어쩐지 그 생각에 스스로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레이먼드.""예, 폐하.""황후궁에…… 별다른 문제는 없나."레이먼드가 눈을 크게 떴다. 늘 사무적인 보고만 요구하던 주군이, 처음으로 사적인 안부를 물은 순간이었다."딱히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만, 왜 갑자기……""그냥 물어본 것이다."아드리안은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글자는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레이먼드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조용히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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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첫 아침, 첫 소란
9화. 첫 아침, 첫 소란다음 날 아침, 셀레스티아는 낯선 새소리에 눈을 떴다.성국의 기숙사와는 비교도 안 되게 푹신한 침대, 그리고 천장을 수놓은 화려한 프레스코화. 잠시 여기가 어디인지 헷갈릴 정도였다."마마님! 일어나셨어요?"문밖에서 마사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문이 벌컥 열렸다."오늘부터 정식으로 황후 수업을 시작하셔야 해요!""……수업이요?"셀레스티아는 눈을 비비며 되물었다."네! 궁정 예법, 제국의 역사, 그리고 사교계 인맥까지! 배우실 게 산더미예요!"마사가 커다란 책 더미를 안고 들어왔다."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실 이런 쪽으론 아는 게 거의 없어서요."셀레스티아는 짐짓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성국에서는 이런 걸 배울 기회가 별로 없었거든요.""어머, 그러시겠죠! 성녀님이셨으니 이런 세속적인 건 잘 모르시겠어요!"마사가 안쓰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성국에서도, 성녀는 각국 사절을 맞이할 일이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어깨너머로 익힌 인사법이며 화법 정도는, 이미 몸에 배어 있었다.⁃ 게다가 전생에서도 스무 살 가까이 살아본 몸이었다. 신전 안에 갇혀 지낸 세월이었지만, 그동안 오간 사람들과 스쳐 지난 이야기들만으로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 정도는 자연히 눈에 익어 있었다.⁃ ……미안합니다, 마사님. 그러니 절반은, 사실 이미 알고 있습니다.셀레스티아는 속으로 조용히 사과하며, 겉으로는 순진한 얼굴을 유지했다.⁃ 하지만 지금 아는 척해봐야,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모른다고 해야, 사람들이 방심하고 더 많은 걸 알려주는 법이니까."그럼 처음부터 차근차근 알려드릴게요!"마사가 신이 나서 책을 펼치려는데, 몇 장 넘기기도 전에 그녀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어…… 마마님. 이거, 저도 사실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그럼 아는 만큼만 알려주세요. 대신—"셀레스티아는 살짝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책에 없는 것부터 듣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이 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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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정원에서
10화. 정원에서정원으로 향하는 길, 셀레스티아는 걸으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목적이 뭘까. 단순한 변덕은 아닐 텐데.그녀는 걸음을 옮기며 빠르게 경우의 수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시위용— 아니다, 굳이 자신과 단둘이 있을 이유가 없다. 첩자를 통한 정보 유출을 노린 함정— 그것도 아니다, 그런 목적이라면 좀 더 공개적인 자리를 택했을 것이다. 황태후파를 견제하기 위한 명분 쌓기— 이것도 어딘가 석연치 않다.⁃ 어느 쪽으로 계산해도, 앞뒤가 맞질 않아.전생에서 대신관의 표정 하나, 귀족들의 눈빛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읽어내던 그녀였다. 궁정이란 판 위에서, 모든 말과 행동에는 반드시 의도가 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그녀가 살아온 세계에서는 그랬다.⁃ 그런데 왜, 이 사람만큼은 읽히지가 않지.정원 입구에 다다르자, 아드리안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의 집무복 대신, 한결 편한 차림이었다."오셨습니까, 폐하.""기다렸다."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말투에 미묘하게 서두르는 기색이 묻어 있었다.⁃ ……기다렸다고?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셀레스티아의 머릿속에서 수십 갈래로 뻗어나가던 계산이 일제히 멈췄다. 마치 잘 짜여 있던 회로 하나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유로 순간 끊겨버린 것처럼.⁃ 지금 이건— 대체 뭘 분석해야 하는 감정이지.궁중의 암투라면, 상대의 숨소리 하나까지도 정보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녀는 그 어떤 정보도 손에 쥐지 못한 채, 그저 그 말 한마디에 붙들려 있었다.⁃ 이상해. 정말 이상해.두 사람은 나란히 정원을 걷기 시작했다. 화창한 아침 햇살 아래, 이국적인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이곳 정원은, 성국에는 없는 꽃들이 많군요."셀레스티아가 먼저 말을 꺼냈다. 침묵이 어색해서였다.⁃ 침묵을 못 견디는 것도, 낯선 일이네.궁정의 어떤 노회한 정치가와 마주 앉아 있어도, 그녀는 침묵을 먼저 깨는 법이 없었다. 침묵은 무기였다. 먼저 입을 여는 쪽이 언제나 불리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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