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화요일 오전.은서율은 식탁에 앉아 공연 제작팀에서 보내온 수정된 관객 카드 시안을 확인하고 있었다.전날 요청했던 문구가 반영되어 있었다.《이 카드는 당신의 것입니다. 쓰지 않아도 좋고,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좋습니다.》서율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최태혁이 식탁 맞은편에 앉았다.“이번에는 마음에 들어?”“네. 제가 생각했던 방식이에요.”“그럼 이제 끝난 거야?”“카드는요. 공연 계약은 아직 협의 중이고요.”서율은 태혁이 펼쳐놓은 책을 바라봤다.책 사이에는 어제 그가 작성한 카드가 끼워져 있었다.“주인님, 그 카드 아직도 안 보여주실 거예요?”태혁이 웃었다.“어제 안 물어본다며.”“오늘은 새로운 날이잖아요.”“규칙이 하루짜리였어?”서율은 웃음을 터뜨렸다.“알겠어요. 안 볼게요.”오전 11시 38분.서율은 작은 도서관에서 연극 대본을 읽다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차보배와 서이강은 20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서로의 취향에 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좋아하는 책과 문장은 알았다.하지만 좋아하는 음식이나 싫어하는 계절, 쉬는 날의 습관은 몰랐다.서율은 수첩에 적었다.문장으로 아는 사람과 실제로 아는 사람은 다르다.그녀는 마지막 장면을 조금 수정했다.서이강이 묻는다.“차는 어떤 걸 좋아하십니까?”차보배가 대답한다.“오늘은 홍차요.”“평소에는요?”보배는 잠시 생각한다.“그날 기분에 따라 달라요.”이강은 웃는다.“그럼 다음에는 그날 기분부터 물어봐야겠군요.”서율은 그 문장을 읽고 미소 지었다.두 사람이 처음으로 서로의 일상을 알아가는 순간이었다.오후 1시 16분.서율은 태혁에게 다가갔다.“주인님.”“응?”“우리 서로 취향 맞히기 해볼까요?”태혁은 고개를 들었다.“갑자기?”“연극 쓰다가 생각났어요. 결혼한 지 10년 됐으니까 서로 얼마나 아는지 확인해보려고요.”태혁은 웃었다.“좋아.”서율은 종이 두 장과 펜을 가져왔다.“질문은 다섯 개씩. 서로 답을 적고 확인
월요일 오전.은서율은 작업실에서 공연 제작팀에 보낼 회신을 작성하고 있었다.연극 《책갈피를 돌려드립니다》의 낭독 공연 개발 조건은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다만 공연 기록 영상을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았다.서율은 마지막 문장을 입력했다.공연 기록물의 보관과 외부 공개는 구분하여 협의하고 싶습니다. 특히 홍보 목적의 영상 사용은 사전 확인 절차를 두었으면 합니다.문서를 다시 읽은 뒤 발송했다.그때 최태혁이 문을 두드렸다.“서율아, 택배 왔어.”“제 거예요?”“응. 그런데 상자가 꽤 커.”서율은 고개를 갸웃했다.“저 요즘 큰 거 주문한 적 없는데요?”태혁이 상자를 내려놓았다.발신인은 공연 제작팀이었다.오전 10시 42분.상자 안에는 두꺼운 종이 카드와 작은 나무 상자, 안내문이 들어 있었다.서율은 안내문을 펼쳤다.《관객 참여 프로그램 시안 검토 요청》지난 미팅에서 이야기했던 관객 카드의 실물 샘플이었다.공연이 끝난 뒤 관객이 자신의 마음에 남은 문장을 적어볼 수 있도록 만든 카드였다.앞면에는 질문이 인쇄되어 있었다.당신이 누군가에게 남기고 싶은 한 문장은 무엇인가요?서율은 카드를 뒤집었다.뒷면에는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작성하신 카드는 공연 종료 후 수거하여 일부를 익명으로 공개할 수 있습니다.》서율의 표정이 달라졌다.“이건 아닌데.”태혁이 물었다.“왜?”“제가 제안한 방식이랑 달라요.”서율은 카드를 보여주었다.“저는 관객이 직접 간직하는 걸 생각했거든요. 공개하거나 수거하는 건 원하지 않았어요.”태혁은 안내문을 읽었다.“그럼 다시 이야기해야겠네.”“네. 이건 중요한 부분이에요.”오후 12시 16분.서율은 제작팀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보내주신 샘플 잘 받았습니다.”“작가님, 어떠셨어요?”“카드 디자인은 마음에 들어요. 다만 뒷면 안내 문구를 수정하고 싶습니다.”“어떤 부분일까요?”“관객의 문장을 수거하거나 공개하는 방식은 제외했으면 해요.”담당자가 잠시 생각
월요일 오전 9시 18분.은서율은 작은 도서관에서 연극 《책갈피를 돌려드립니다》의 수정 대본을 정리하고 있었다.지난주 제작팀과 미팅한 뒤로 작품의 방향이 한결 분명해졌다.낭독 공연을 먼저 진행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계약 조건은 아직 협의 중이었다.서율은 대본의 마지막 장면을 저장하고 노트북을 덮었다.그때 최태혁이 작은 봉투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서율아.”“네, 주인님.”“나한테 초대장이 왔어.”서율은 고개를 들었다.“무슨 초대장이요?”태혁은 봉투를 건넸다.짙은 남색 종이에 은색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제18회 클래식 모터 헤리티지 특별전》서율의 눈이 커졌다.“어머, 주인님!”“왜?”“어제 우리 자동차 전시관 다녀왔잖아요.”“그러니까.”태혁은 웃었다.“전시관에서 신청한 관람 안내가 벌써 온 모양이야.”서율은 초대장을 펼쳤다.오래된 자동차 복원 과정과 희귀 차량을 공개하는 특별 행사였다.일반 관람 외에 복원 전문가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었다.“이거 가고 싶으세요?”태혁이 대답했다.“응. 꽤 궁금하네.”서율은 바로 수첩을 꺼냈다.“그럼 일정 확인해봐요.”오전 11시 06분.두 사람은 식탁에 앉아 특별전 안내문을 살펴봤다.행사는 다음 주 토요일이었다.태혁은 복원 시연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였다.“이건 실제로 엔진을 분해해서 보여주는 건가 봐.”서율은 안내문을 읽었다.“네. 그런데 사전 신청이 필요하대요.”“인원이 많나?”“회차당 20명이라고 적혀 있어요.”서율은 신청 페이지를 확인했다.아직 접수가 가능했다.“주인님, 신청할까요?”“좋지.”서율은 두 사람의 관람 신청을 마쳤다.확인 메시지가 도착하자 태혁이 물었다.“이번에도 네가 준비해주는 거야?”“네. 어제 데이트가 끝난 줄 아셨어요?”태혁은 웃었다.“아직 안 끝났어?”“주인님 취미 탐방은 이제 시작이에요.”오후 1시 24분.서율은 작업실에서 제작팀의 답변을 확인했다.낭독 공연 개발 조건에 관한 이메일이었다.제
일요일 오전.은서율은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옷장 문을 열었다.평소라면 일요일에도 작업실부터 들어갔겠지만, 오늘은 달랐다.어젯밤 최태혁과 겨울 바다 이야기를 나눈 뒤 문득 생각한 것이 있었다.결혼한 지 10년.그동안 태혁은 서율이 가고 싶다고 말한 곳을 대부분 함께 가주었다.이번에는 자신이 먼저 남편을 위한 하루를 준비하고 싶었다.서율은 연한 하늘색 니트와 검은색 미니스커트를 꺼냈다. 그 위에 크림색 롱코트를 걸치고, 머리카락 끝을 부드럽게 말았다.거울 앞에서 작은 은색 귀걸이까지 착용했을 때였다.“서율아?”태혁이 침실 문을 열었다.“어디 가?”서율은 뒤돌아보며 웃었다.“주인님, 오늘 시간 있으세요?”“있는데.”“그럼 저랑 데이트하실래요?”태혁은 그녀를 위아래로 바라봤다.“지금 신청하는 거야?”“네. 오늘은 제가 모실게요.”“어디로?”“비밀이에요.”태혁은 웃음을 터뜨렸다.“알겠습니다. 은서율 씨.”오전 11시 18분.서율이 예약한 곳은 실내 자동차 전시관이었다.태혁은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자동차?”“네. 주인님 예전에 클래식카 좋아한다고 하셨잖아요.”“그걸 기억했어?”“당연하죠.”서율은 그의 팔짱을 꼈다.“오늘은 제가 보고 싶은 거 말고 주인님이 좋아하는 거 보러 왔어요.”전시관 안에는 오래된 스포츠카부터 복원된 세단까지 다양한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었다.태혁은 평소보다 걸음이 빨라졌다.“서율아, 이거 봐.”그가 가리킨 것은 짙은 남색의 클래식 쿠페였다.둥근 전조등과 길게 뻗은 차체가 인상적이었다.“이 차는 어릴 때 사진으로만 봤는데.”서율은 남편의 얼굴을 바라봤다.“진짜 좋아하시네요.”“응. 실제로 보니까 훨씬 멋있다.”서율은 웃으며 휴대전화를 꺼냈다.“주인님, 차 옆에 서보세요.”“사진 찍어주게?”“네. 오늘 주인공이시니까요.”오후 12시 46분.두 사람은 전시관 안의 체험 공간으로 이동했다.운전석에 앉아볼 수 있는 복원 차량이 있었다.서율이 먼저 태혁을 밀었다.“
토요일 오전 8시 47분.은서율은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휴대전화를 확인했다.전날 방송된 《없는 역에서 내리는 여자》 4화의 반응이 쏟아지고 있었다.‘검은 구두 남자가 드디어 기록부를 열었는데 왜 이름이 없지?’‘4시 17분에 멈춘 시계가 하나가 아니었어?’‘마지막 열차 장면 소름 돋았다.’서율은 댓글을 읽다가 웃었다.그때 최태혁이 욕실에서 나왔다.“벌써 일어났어?”“네. 어제 방송 반응 보고 있어요.”“나도 어제 마지막 장면 때문에 잠이 안 오던데.”서율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주인님도요?”“응. 분명 열차가 지나갔는데 승강장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잖아.”“그랬죠.”“그런데 윤해온 손에 있던 사진은 왜 사라졌어?”서율은 웃으며 이불을 끌어올렸다.“그건 5화 보시면 알아요.”태혁은 한숨을 쉬었다.“매번 그 말이야.”“작가의 비밀 유지 의무입니다.”오전 10시 16분.정이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작가님, 어제 방송 보셨어요?”“당연하죠.”“마지막 장면 편집이 정말 잘 나왔더라고요.”서율도 동의했다.4화에서는 윤해온이 폐역의 기록부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기록부에 남은 승객 수는 1명.하지만 당시 역무원이 작성한 별도 점검표에는 승객이 아닌 방문자 1명이 추가로 표시되어 있었다.두 기록은 서로 다른 시간에 작성된 것이었다.그리고 검은 구두를 신은 인물은 그 점검표를 숨기려 했다.“5화 예고편에는 점검표 내용을 너무 많이 보여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서율이 말했다.이현이 대답했다.“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시청자들이 직접 연결할 여지를 남겨두는 게 좋겠어요.”두 사람은 제작진에게 전달할 의견을 정리했다.오후 12시 38분.서율은 태혁과 함께 외출했다.오늘의 목적지는 오래된 기차역을 개조한 문화공간이었다.“주인님, 여기 한번 와보고 싶었어요.”태혁은 붉은 벽돌 건물을 올려다봤다.“드라마 때문에?”“그것도 있고요. 오래된 공간을 어떻게 보존하는지 궁금해서요.”건
오전 9시 16분.은서율은 작은 도서관에 앉아 《책갈피를 돌려드립니다》의 작품 소개서를 다시 읽고 있었다.다음 주 수요일이면 공연 제작팀과 첫 미팅이 있었다.대본은 아직 초고였지만, 작품의 방향과 주요 장면은 정리된 상태였다.그녀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려던 순간 이메일 알림이 울렸다.발신자는 공연 제작팀이었다.《미팅 전 사전 검토 사항 안내》서율은 첨부파일을 열었다.예상 제작비, 무대 규모, 배우 구성에 관한 질문이 적혀 있었다.그런데 마지막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관객 참여형 연출 또는 공연 종료 후 배우와의 대화 프로그램에 대한 작가님의 의견을 부탁드립니다.“관객 참여형?”서율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작품에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은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그때 최태혁이 문을 두드렸다.“서율아, 아침 먹자.”“주인님, 잠깐 이것 좀 봐주세요.”태혁은 그녀가 가리킨 문장을 읽었다.“관객이 무대에 올라오는 거야?”“그런 방식도 있겠지만, 꼭 그런 건 아닐 거예요.”“네 작품하고 어울릴까?”서율은 잠시 고민했다.“그걸 생각해봐야겠어요.”오전 11시 03분.서율은 관객 참여형 공연에 관한 자료를 살펴봤다.공연 도중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관객이 선택한 답에 따라 장면이 달라지는 방식.공연 시작 전에 관객이 짧은 글을 남기는 방식.그녀는 마지막 항목에서 손을 멈췄다.“편지…….”《책갈피를 돌려드립니다》에는 20년 동안 이어진 익명의 편지가 등장한다.관객이 공연을 보기 전에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적는다면 어떨까.서율은 수첩을 펼쳤다.입장할 때 작은 카드 한 장을 제공한다.질문 — 당신이 끝내 전하지 못한 말은 무엇인가요?그녀는 곧바로 두 번째 문장을 덧붙였다.카드는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잠시 후 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중요하지.”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하도록 강요하는 공연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오후 12시 47분.태혁은 거실에서 서율이 가져온 카드를 바라봤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