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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Author: 레몬과 향수
“선주는 참 복도 많아요. 이 집안의 복덩이라니까요.”

이내 셋째 부인이 아부를 떨기 시작하자, 송씨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지영아, 그동안 경왕 세자의 평판이 어떤지 너도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혼인한 뒤에는 조용히 지낼 수 있도록 네가 잘 붙들어야 한다. 어차피 훗날 경왕부 작위를 잇게 되면 먹고사는 걱정은 없을 테니, 제발 사고를 쳐서 우리 집안에 피해가 가는 일만은 없게 하거라.”

유지영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당장 침소로 돌아가 한숨 자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다행히도 노부인이 이제 돌아가도 좋다는 뜻을 내비쳤다. 노부인 처소를 나서는데 시녀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왕 세자께서는 오늘도 선주 아가씨와 나들이를 나가셨대. 오찬은 돌아와서 노부인과 함께 드신다던데, 참 자상한 분이야. 선주 아가씨는 복도 많아.”

유선주는 어릴 때부터 복덩이라는 별명을 달고 태어나, 가는 곳마다 그녀와 얽힌 사람들에게 행운이 따른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유씨 노부인이 가장 총애하는 손녀이기도 했다.

‘왜 그리 서둘러 나를 돌려보내려 하나 했더니, 내가 있어서 방해가 됐던 거였구나.’

유지영은 더 이상 그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전생의 흐름대로라면 생모인 서 태후는 곧 황제를 대신해 수렴청정을 하며 조정의 업무를 관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경성에 올라간 지 사흘째 되는 날, 그녀를 궁으로 불러 모든 진실을 털어놓을 예정이었다.

그날 이후 태후는 곳곳에서 그녀를 도우며 보살펴 주었다.

“이 나라 국모의 자리는 우리 지영이 것이어야지.”

서 태후가 어느 날 그녀의 손을 잡고 했던 말이었다.

안타깝게도 전생의 그녀는 모녀간의 정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머니라는 큰 나무를 단단히 붙잡고, 자신을 짓밟았던 자들에게 처절한 복수를 할 생각이었다.

종령각으로 돌아오니 한꺼번에 시녀 넷이 사라져서인지 처소는 몹시 조용했다. 그러나 홍주 하나만 곁에 두자니 일손이 부족했다.

“혹시 사이가 좋은 자매나 친한 벗은 없느냐? 눈치가 빠르고 충성심만 확실하면 된다.”

유지영이 홍주에게 묻자, 홍주가 다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소인은 그저 하등 시녀에 불과한데, 누가 소인과 친하게 지내려 했겠어요?”

유지영은 부드럽게 홍주의 등을 다독였다.

“괜찮아. 앞으로는 친한 사람도 많이 생길 거야.”

그녀는 종령각의 이등, 삼등 시녀들을 불러 모았다.

유씨 노부인이 그동안 자신을 보살펴 준 것은 사실이지만, 진심으로 아낀 것은 아니었다. 평소에도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양모인 담혜정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저런 어리석고 쓸모없는 계집애만 낳고 갔다며 죽은 맏며느리의 흉을 보기도 했다.

그녀의 양부는 유국공이자 유씨 집안의 장남으로, 육 년 전 변방 수비를 맡으러 떠난 뒤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유지영은 명목상 유국공부의 적장녀였기에,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라도 집안에서 받는 물질적 대우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종령원에는 일등 시녀 네 명과 이등 시녀 여섯 명, 삼등 시녀 여섯 명, 그리고 허드렛일을 하는 어멈 두 명이 배정되어 있었다.

눈앞에 열 명이 넘는 시녀가 있었지만, 그들의 인신계약서는 유지영의 손에 없었다. 그러니 겉으로는 공손해 보여도 눈빛에는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았다.

“아가… 아니, 군주님.”

눈치 빠른 한 이등 시녀가 앞으로 나서더니 아부 섞인 웃음을 지었다.

“군주님 곁에는 홍주 한 명뿐이니 일등 시녀가 세 명이나 부족하지 않습니까? 군주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소인이 스스로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다른 시녀들도 저마다 앞으로 나섰다.

삼등 시녀인 홍주도 신분 상승을 했으니 자기라고 안 될 것 없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유지영은 뒷줄에 선 삼등 시녀들을 살펴보았다. 하나같이 체격이 다부지고,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유지영은 손을 들어 네 사람을 가리켰다.

“동금, 춘화, 그리고 임씨 어멈, 운선.”

이름이 불린 네 사람이 고개를 들더니 놀란 눈으로 유지영을 바라보았다.

“오늘부터 내 방에서 일할 사람들이다. 숙모님께 가서 너희의 인신계약서를 받아 오너라.”

유지영이 지시를 내리자마자 동금은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군주님, 아무 상의도 없이 가서 시녀들의 인신계약서를 달라고 하면 둘째 부인께서 기분 상하실 겁니다.”

한 이등 시녀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유지영은 나가는 동금의 등을 향해 한마디 덧붙였다.

“만약 숙모님께서 내줄 수 없다고 하시면, 내가 직접 처소로 찾아뵙겠다고 전해라.”

동금은 허둥지둥 달려갔다.

잠시 후 동금이 네 사람의 인신계약서를 들고 돌아와 유지영의 손에 건넸다.

유지영은 문서를 자세히 확인한 뒤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오늘부터 너희 셋은 홍주와 마찬가지로 일등 시녀로 삼겠다. 임씨 어멈은 처소 관리를 맡아 주세요.”

“감사합니다, 군주님.”

네 사람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승급하지 못한 자들이 불복해 입을 열려는 찰나, 유지영의 시선을 받은 동금이 대뜸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 매서운 눈빛에 이등 시녀들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군주님께서 그리 하라고 하시면, 그저 따르면 되지. 감히 군주님의 뜻을 거스르려는 자는 내 손에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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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안을 거슬러   제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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