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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나 몰라?

ผู้เขียน: 강캔디
권하윤은 권씨 가문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아니다. 때문에 권씨 가문의 사상이 늘 이해되지 않았고 약혼남이 다른 여자와 뒹구는 걸 본 지금은 속이 메쓱거렸다. 민승현에게 살갑게 대하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졌다.

어제 민도준과 충동적으로 관계를 가진 것도 사실 보호막을 하나라도 만들어 놓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만약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면 민도준이 그나마 어제의 인연을 봐서 나서주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보호막이라고 생각했던 그가 알고 보니 구멍 난 우산이었을 줄이야.

외투를 일부러 벗어두고 간 남자를 떠올리니 권하윤은 또다시 속이 뒤틀렸다.

지난 반년 동안 권씨 집안 넷째 아가씨로 지내오면서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던 그녀였다. 상대에게 들킬까 두려워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고 눈빛도 되도록이면 남들과 마주치지 않았다.

만약 어제 민도준을 만나지 않았다면 한평생 그렇게 가짜 신분으로 생활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민도준이 나타나면서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그는 권하윤의 동의도 거치지 않고 진짜 그녀를 밖으로 끄집어냈다.

권하윤은 호흡을 가다듬고 허리를 곧게 폈다.

한평생 가짜로 살더라도 남한테 당하기만 할 수 없었다. 하필 민도준을 건드려서 일이 귀찮게 되긴 했지만.

-

민씨 저택.

권하윤은 메이드들과 함께 가족 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 와인잔을 테이블 위에 놓으려고 할 때 손 하나가 쑥 나와 잔 밑은 받들었다.

“오늘 와인 안 마실 거라서 보르도 컵 놓으면 혼날걸요.”

고개를 들어보니 우아한 여자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권하윤을 보고 있었다. 감탄을 자아내는 외모와 행동이었다.

“저는 원혜정이라고 해요. 형님이라고 불러요.”

“아, 형님.”

자기소개를 끝낸 원혜정은 메이드더러 위스키 잔을 가져오라고 명령하더니 말없이 권하윤을 도왔다.

하지만 갑자기 어디선가 느껴지는 미묘한 시선에 고개를 들어보니 강민정이 민승현 어머지, 즉 그녀의 이모 강수연의 팔짱을 낀 채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친하다는 걸 자랑이라도 하는 듯 활짝 웃은 채 귓속말을 하는가 하면 손가락으로 권하윤의 방향을 가리키기까지 했다.

그제야 방금 전 주방에서 술잔을 가질 때 강민정이 곁을 지나갔던 게 생각났다.

‘하, 일부러 나 엿 먹이려는 거였어?’

그러던 그때, 원혜정이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싱긋 웃으며 설명했다.

“민정이가 어릴 때부터 다섯째 숙부와 숙모가 거의 기르다시피 해서 승현 도련님도 엄청 예뻐해요. 친동생처럼.”

‘하 친동생처럼 친해서 같이 몸도 섞나?’

권하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다른 사람한테 할 수 없었다.

이윽고 모든 사람이 자리에 착석하자 민씨 가문 어르신 민상철이 휠체어에 끌고 주인의 자리에 앉았다.

그가 나타나자 현장은 순간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하지만 그때, 민상철은 주위를 둘러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민도준 이 자식은 또 어디 갔어?”

민도준의 이름 석 자에 권하윤은 어색한 듯 몸을 움질했고 민승현의 불만 섞인 눈총을 받았다.

그때 민상철 오른쪽에 앉은 남자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도준이가 어디 우리가 부른다고 올 애예요? 할아버지가 직접 불러보세요.”

민상철의 표정은 순간 구겨졌고 눈은 차갑게 식었다.

“한심한 놈!”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뒤에서 장난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 몰래 다른 사람 험담을 하면 수명 줄어요.”

민도준이 때마침 문을 열고 들어왔다. 190이 다 되는 큰 키는 순간 현장을 압도했다.

오늘 가족 연회는 모두가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민상철의 심기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갑자기 들리는 충격적인 한 마디에 모두 놀란 눈치였다. 심지어 방급 입에 물을 머금었던 권하윤마저 사레가 들렸다.

최대한 낮은 소리로 헛기침을 했지만 또다시 민승현의 불만 섞인 눈총을 받았다.

“꼭 이럴 때 사람 쪽팔리게 행동해야겠어?”

곧이어 낮은 불평이 들려왔다.

권하윤이 물을 마시는 틈에 민도준은 어느새 빈자리에 착석했다.

그는 잔뜩 긴장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삐딱하게 앉더니 최선을 다해 자기 존재감을 낮추는 권하윤을 힐끗 살피고는 다시 민상철에게 시선을 돌렸다.

극도로 어두워진 민상철의 낯빛에 모든 사람들이 그가 화를 낼 거라고 짐작했지만 모두의 생각이 빗나갔다.

“어디 갔다 이제 왔어?”

“어디 갔냐고요? 어디 갔더라…… 생각 좀 해볼게요.”

민도준은 테이블 위에 놓은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맞은켠에 앉은 민상철에게 시선을 돌렸다.

“방금 저 배신한 놈 족치고 왔어요. 글쎄 누군가 사람을 시켜 절 감시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 새끼 눈알 뽑아냈어요. 칼을 눈에 찔러 넣고 한 바퀴 빙 돌리고 푹 뽑아내니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덕분에 손이 좀 더러워졌어요.”

동작까지 더해가며 설명하는 남자의 눈은 살기가 가득했다.

“그만!”

민상철은 끝내 참지 못하고 호통쳤다.

그리고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저마다 눈살을 찌푸리며 혐오하는 표정을 지었다. 여자들은 저마다 손수건을 입에 대고 헛구역질을 해댔다.

민도준은 그 사람들을 같잖은 듯 흘겨봤다.

‘꼴에 그런 눈으로 날 봐? 저들은 깨끗한 척하네.’

속으로 생각하며 둘러보던 그때 경멸하거나 무서워하는 눈빛들 속 유일하게 맑게 빛나는 눈이 보였다. 마치 이 일은 자기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듯 선을 긋고 있는 느낌이었다.

민도준은 재미있는 듯 권하윤을 살피더니 잔을 들며 인사했다.

무심한 듯 건넨 인사에 권하윤은 소름이 돋았다.

역시나 다음 순간 모든 사람들의 눈빛이 모두 그녀를 향했다. 심지어 민상철 까지도 그녀에게 눈길을 돌렸다.

민상철의 차가운 눈빛이 오롯이 자신을 향하자 권하윤은 마치 거대한 산에 눌린 듯 숨이 턱 막혔다. 미친 듯이 요동치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서 들리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녀가 멍하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그때 옆에 있던 민승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들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형.”

아마 저를 향해 인사한 거라 착각한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에 안하무인이던 민도준이 겨우 명문에 끼어들까 말까 한 말단 가문의 여자한테 인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딸을 팔아 자리를 굳힌 권씨 가문은 이곳에 있는 수많은 명문 가문들 사이에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다.

그러던 그때, 자리에서 일어난 민도준은 자신이 민도준의 시선을 가로막았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먼저 잔을 비우며 예의를 표했다.

그제야 권하윤은 그의 뒤에 숨어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런데 겨우 안도하려던 그때 민도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제수씨, 나 몰라?”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순간 민도준을 건드렸던 지난날이 후회스럽고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더 이상 피할 수도 없게 되자 권하윤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며 잔을 들었다. 그리고 당당하고 대범한 듯 미소 지었다.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건넨 한마디에 민승현마저 멍해졌다.

‘권하윤이 형을 안다고? 할아버지도 가족 연회 핑계를 대서 겨우 만나는 형을 권하윤이 어떻게?’

그 시각 사방에서 몰려오는 시선에 권하윤은 담담한 척 애를 썼다.

‘절대 티 내면 안 돼.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면 안 돼.’

이런 자리에서 만약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모두 득달같이 달려들어 공격할 게 뻔했다.

그때 민상철이 의아한 듯 눈썹을 들썩이며 민도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 알아?”

권하윤은 표정을 숨기려고 잔을 든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 때문에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만약 상대가 다른 사람이라면 그 일을 말해버릴 거란 걱정을 할 필요도 없겠는데 상대는 하필 민도준이다.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시한폭탄 같은 존재. 스릴을 즐기고 재미를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

하지만 지금 후회한들 이미 늦었다. 그저 민도준이 저한테 살길을 남겨달라고 속으로 빌고 또 빌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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