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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위태로운 핏빛 서약

작가: KRYSE
last update 게시일: 2026-08-05 19:31:41

푸확―!

목이 잘린 단면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 뜨겁고 붉은 선혈이 하얀 창호지 문을 가차 없이 적셨다.

순백의 종이 위에.

기괴하고 잔인한 핏빛 동양화가 그려지는 순간.

털썩. 털썩ㅡ.

무거운 시신들이 바닥으로 무너지며 피비린내가 사방을 메웠다.

갑작스러운 잔인한 살상에 여인은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너무 놀라 다리가 완전히 풀린 채, 붉은 피가 흥건하게 번져나가는 바닥 위로 털썩 주저앉았다.

이 사내는 미쳤다.

아군마저 망설임 없이 도륙하는 잔혹한 살인귀였다.

고운 얼굴 위로 튄 핏방울이 그의 하얀 피부와 대조를 이루며 기괴할 정도로 선명하게 흘러내렸다.

사내는 이번에도 옷과 얼굴에 묻은 피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내 마당 구석에 있던 커다란 수레에 시신들을 능숙하고 신속하게 실었다.

그리고는 거친 짚더미를 가져와 그 위를 완벽하게 덮었다.

오직 자신을 제외하고는.

이제 이 세상에서 그녀의 진짜 신분과 비밀을 아는 자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처참하고 비릿한 흔적을 완벽하게 지워내자마자.

타카오가 마당 한구석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는 여인에게로 성큼 다가왔다.

그의 군화 바닥에 묻은 피가 걸을 때마다 끈적이는 소리를 냈다.

제발 다가오지 마라. 이 살인마.

밀려드는 압도적인 두려움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당장이라도 자신의 살점을 가를 것 같았다.

그때.

타카오의 커다란 손이 여인의 가녀린 허리와 무릎 뒤편으로 조심스럽게 파고들었다.

기이할 정도로 부드럽고 역할 정도로 피비린내가 났다.

그때 그가 그녀의 몸을 가볍게 안아 들었다.

사내의 가슴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와 묵직한 심장 박동이 그녀의 몸에 그대로 전해졌다.

소름이 돋고 숨이 막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살인자의 이중성.

그녀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는 안채에 위치한 자신의 방으로 그녀를 데려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를 방 한가운데 폭신한 보료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별안간 그녀의 손목과 발목을 밧줄로 단단히 묶어 결박했다.

그는 그녀를 살피려는 듯 가만히 응시했다.

그리고 그대로 문을 잠그고 나가버렸다.

자물쇠가 잠기는 소리가 딸깍 울렸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일까.

어느덧 창밖은 달빛조차 숨어버린 칠흑 같은 어둠이 짙게 깔렸다.

밀폐된 방 안.

여인은 통증과 지독한 공포 속에서 숨을 죽였다.

마당 저편 멀리 떨어진 곳에서.

승리를 자축하며 벌이는 왁자지껄한 술판 소리가 들렸다.

그 소란 속, 여인들을 희롱하는 사내들의 비열한 웃음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여인의 가녀린 어깨는 수도 없이 잘게 떨렸다.

조만간 저 밖의 여인들처럼.

그들의 노리개가 될 잔인한 현실이 그녀의 목을 졸랐다.

달각―.

그때, 정적을 깨고 안방의 자물쇠가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황급히 몸을 웅크렸다.

문이 열리고 낮의 그 살인귀가 들어왔다.

그는 피 묻은 군복이 아닌 얇은 청색 유카타 차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몸에서는 여전히 씻기지 않은 듯한 진한 철분 냄새가 풍겼다.

두려움과 역겨움이 함께 몰려왔다.

경계심 가득한 여인의 불안한 시선.

그는 그녀의 공포를 고스란히 받아내며 그녀의 코 앞까지 가깝게 다가왔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낮에 부하들의 목을 사정없이 베어 넘기던 그 잔혹한 악마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숙하고 정중했다.

그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私の国の言葉を、聞き取れますか?」

“저희 사츠마 말을…… 알아들으시겠습니까?”

사내의 단정한 입술 사이로 흘러내린 나직하고 이국적인 단어들.

여인의 황금빛 눈동자가 찰나의 순간 가늘게 떨렸다.

타카오는 그녀의 미세한 눈빛 변화를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그녀가 알아들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저는 타카오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저의 목숨을 걸고.”

「私が直接、お仕えいたします」

“마마는 제가 직접 모실 것입니다.”

마치 충직한 신하처럼 적국의 사내가 적국의 공주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무릎을 밀착하며 다가섰다.

이게 무슨 회괴망칙한 행동인가.

본능적인 거부감과 혐오감을 드러내며, 그녀는 뒤로 바짝 몸을 돌렸다.

적국의 장수가 건네는 감언이설과 친절만큼 기만적이고 위험한 게 또 있을까.

자신을 더 큰 지옥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사악한 연극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인의 황금빛 눈동자에 처절한 의심이 담겼다.

순간 타카오의 깊은 눈빛에 스치듯 애틋함과 난감함이 교차했다.

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듯 깊은 숨을 내쉬었다.

곧이어 굳은 결심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더니 다시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그녀의 발목에 묶인 포승줄을 풀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저항할 순간의 틈도 없이, 그가 여인의 가냘픈 몸을 단단하고 거칠게 품에 안았다.

“앗……! 읍! 으읍!”

이내 가공할 만한 악력으로 여인을 단숨에 들어 올려 그의 넓은 어깨 위로 험하게 들쳐맸다.

사내의 단단하고 굳건한 어깨뼈가 그녀의 아랫배를 압박했고.

결박당한 그녀의 가슴이 사내의 넓은 등판에 밀착되었다.

이럴 줄 알았다. 이 자의 충성이 거짓일 줄 알았다.

과격한 신체 접촉에 놀란 그녀가 다리를 버둥거렸으나.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둔부를 감싸 쥔 그의 커다란 손에 거친 힘이 들어갔다.

“가만히 계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소리가 나서 좋을 것이 없으니.”

타카오는 낮게 위협하듯 말을 건네며, 안채의 문을 열고 성큼 빠져나왔다.

차가운 겨울 밤바람이 두 사람의 살결을 스쳤다.

저택에서 가장 깊숙하고 삼엄한 경비로 겹겹이 둘러싸인 별채.

그는 그곳으로 향했다.

그들의 우두머리이자 이 땅을 짓밟은 괴물.

그 잔인한 쇼군이 기다리고 있는 그곳으로.

가장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전리품이 된 여인이 온 몸이 결박된 채 그가 있는 지옥의 문턱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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